노자와 공자의 ‘도’에 대한 분석과 적용동양 사상에서 ‘道’라는 개념은 굉장히 빈번하게 등장하고 자주 언급되지만, 굉장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한 여러 철학자들이 서로 다른 개념과 의미를 나타낼 때도 모두 같은 단어를 활용하기에 동양철학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번 보고서에서는 ‘도’의 개념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우선, 노자가 이야기하는 ‘도’라는 용어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공자가 사용하는 ‘도’와 비교하겠다. 그런 후에 두 사상가가 ‘도’의 개념을 어떻게 인간의 성품적인 특징과 어떻게 연결 짓는지 살펴보겠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두 사상가들의 입장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도덕 교육과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내용을 분석한 뒤, 나의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번 보고서를 전개하겠다.1. 노자의 ‘도’와 공자의 ‘도’1.1 도의 근거기본적으로, 노자의 ‘도’는 ‘무’에 기반을 두는 반면, 공자의 ‘도’는 ‘유’에 기반을 둔다.다음은 노자의 도덕경 25장의 내용이다.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强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한 혼연일체의 물건이 하늘과 땅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 그것의 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것의 형체를 볼 수 없으며, 그것은 혼자 오랫동안 존재하며 영원히 다하지 않고, 순환 운행하며 그치지 않아서 천지만물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하니, 억지로 그것을 ‘도’라고 부르며, 다시 억지로 그것을 ‘대’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것은 넓고 끝이 없이 쉬지 않고 두루 흐르며, 쉬지 않고 두루 흐르면 요원하게 펼쳐지고, 요원하게 펼쳐지면, 본원으로 돌아간다.위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노자에게 있어 ‘도’라는 것은 ‘무’로, 형체와 실체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 노자가 ‘도’를 형체가 없는 것으로 본 이유는 ‘도不善已.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서로 대립하는 성질을 가진 사물들에 대한 노자의 생각을 잘 드러낸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곧 ‘추함’이라는 관념에서 생겨난 것이고, ‘선함’이라는 개념은 또한 ‘선하지 못함’이라는 것에서 생겨난다. 결국, 아름다움은 추함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고, 선함도 선하지 않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물들이 상대적인 개념에서 생겨나고 자주 변화해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도덕경 22장의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則新, 少則得, 多則惑.라는 구절을 보면, 굽으면 오히려 온전할 수 있고, 구부리면 오히려 필 수 있고, 밑이 움푹하면 오히려 채울 수 있고, 낡고 오래되면 오히려 새로워질 수 있고, 적게 가지면 오히려 많이 얻을 수 있고, 많이 탐하면 오히려 미혹 당하게 됨을 이야기하며 사물들이 서로 대립하는 성질을 가지면서 변화함을 많은 예시를 들어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성질이 오히려 긍정적 상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한편, 순환에 대한 노자의 인식은 앞서 언급한 도덕경 25장의 내용에서 볼 수 있다. ‘도’라는 것이 순환하며 끝이 없게 두루 흐르고, 펼쳐지며, 본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도’의 순환운행은 운동이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도덕경 16장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靜曰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만물은 순환을 하다가 결국 뿌리, 즉 근본으로 되돌아감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경거망동하여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근본이란 허정(虛靜)한 상태로, ‘도’에 부합하는 자연상태이며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한편, 노자는 ‘무위’를 강조한 사상가로,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를 설명함에 있어 노자는 가장 중시하는 자연물인. ‘천’은 고대로부터 인간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고, 악한 사람을 벌하며 ‘지, 정, 의’를 갖춘 존재로,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공자 또한 이러한 ‘천’이 이 세계를 관장하는 ‘도’라는 인식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천명이 존재한다고 믿었다.또한, 공자는 인간의 근본을 우주의 근본과 동일시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주장하였고, 인간 사회의 모든 문화적 현상이 자연의 현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천’은 인간 개인에게 도덕성 또한 부여하는 절대적인 존재이고, 인간은 하늘의 명을 자각하여 구현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공자의 사상이 종교적 자연관에서 인간중심적 사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공자는 하늘을 절대신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인간의 삶에 무관한 것이라고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그렇기에 공자의 도는 인도(人道)와 천도(天道)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인도는 ‘인(仁)’으로 볼 수 있고, ‘인’은 인간의 본질이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가치이다. 그리고 공자는 이러한 인도를 실천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보았다.1.2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도’노자는 도가 무형의 것이지만, 만물에 작용할 때는 일종의 규율로 나타나며, 인간 행위의 준칙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형이상학적 개념인 ‘도’가 우리의 삶에 적용될 때는 ‘덕’으로 나타나는데, ‘덕’은 ‘도’의 작용이자 ‘도’가 드러나는 모습이다. 그리고 노자는 자신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특성을 인간의 성품으로 연결하여 설명한다. 도덕경 15장에서 그 내용을 볼 수 있다.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위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노자는 ‘도’를 체득한 사람이 가져야 할 성격적 특성을 제시하고 있다. 노자는 자만하지 않는다는 성격적인 특성을 긍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그래야지 새롭게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노자가 주장한 도의 순환과 맥락을 같이 하는 한 것으로, 남에게 내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지 말고, 나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또, 인은 예로써 실현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예는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도덕교화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원리이다. 또한, 정치에 있어서는 덕치로 백성들을 다스릴 것을 이야기했다. 덕치로 다스리지 않고 법제로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형벌만을 면하려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2. 도덕 공부와 정치에서의 ‘도’노자의 경우, 말하지 않는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이야기한다. 도덕경 2장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라는 부분을 보면 성인은 ‘무위’의 태도로 ‘불언’의 가르침을 행해야 한다고 제시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위’의 태도는 자연을 따르는 것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도뎍경 43장의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의 글도 비슷한 맥락에서 말하지 않는 가르침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무위의 ‘도’를 주장하는 노자는 가르침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것, 예컨대 지식, 배움 등과 같은 것들을 모두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자가 주장하는 인의예약의 사회적 규범의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자연의 길을 따라 ‘欲不欲, 學不學’의 자세로.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노자는 비움을 통해 무위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비움의 공부가 ‘도’를 행하는 공부라고 이야기한다. ‘비움’이란 欲不欲에서의 ‘欲’의 대상을 덜어내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 즉 부귀, 치장 등과 같은 것을 덜어내고, 결국 무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지혜, 욕망 등을 덜어내고 ‘허정(虛靜)’한 마음에 이르러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결국 이러한 무위의 공부는 노자가 주장한 ‘도’의 근원인 ‘무’와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이렇게 무위를 강조하고, 불거를 둔다고 주장했던 것과 비슷하게, 공부에 있어서도 그 실질적인 쓸모를 강조하였다. 공자는 교육이 사람의 인격을 수양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봤고, 도덕적 인간이 되기 위해 수양하는 것이 천명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봤다. 즉,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이 인간이 나아가야 할 하늘의 길이자 하늘의 명령이라는 것이다.공부는 개인이 도덕적 인격적으로 완성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善)을 택하고 굳게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선은 한 번 알거나 택하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꾸준히 지키려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중용’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중용은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는 것으로, 천도에 합치되는 인간의 가장 잘 발휘된 덕이다. 또한, 공자는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정신으로 학문을 통해 인간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봤고, 이것이 윤리적·도덕적 인간의 토대라고 봤다. 그리고 개인이 이러한 사회화과정을 통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삶을 달성할 것을 주장했다.한편, 공자는 교육과 도덕을 하나로 보았으며, 정치가 도덕의 실현이라고 이야기했다. 공자는 덕치와 예치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는데, 덕치가 공자 통치법의 본질이라고 하면, 예치는 그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덕치란 앞서 언급한대로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운 것으로,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부끄럽게 여기며, 올바른 방향으로 스스로 나아가는 도덕적 행위를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덕치는 법치와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백성들이 형벌을 두려워하여 복종하게 하며, 법망을 피하며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한편, 예치는 차등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 존귀한 사람을 존귀하게, 천한 사람을 천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화(和)를 강조하여 상하가 서로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3. 내 생각노자는 공자로부터 이어져 나오는 긴 동양철학의 역사 속에서 공자와는 상반되는 사상을 가진 인물로, 두 사상
양반전 서평 쓰기양반전의 줄거리를 먼저 설명하자면, 한 마을에 양반이 있었는데 이 양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매번 쌀을 관아에서 얻어서 생활했는데 얻어먹다 보니 천 석이 넘는 양을 얻어먹었다. 사찰을 나온 관찰사가 많은 빚을 진 양반을 잡아오라고 한다. 갚을 능력이 없는 양반은 감옥에 들어갈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자신의 신분 때문에 멸시당하고 있던 부자가 양반의 빚은 갚아주는 대신 양반의 지위를 사기로 했다. 군수는 이 사실을 알고 고을의 백성, 양반, 장사치 등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증서를 만들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군수는 부자가 이제 양반이 되면서 지켜야 할 많은 것들을 나열했다. 그러자 부자는 그 자리에서 양반이 되기를 거부하고 죽을 때까지 양반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양반전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박지원이 변화하는 시대를 잘 표현했다는 점이다. 양반은 더 이상 권력, 돈도 없는 상징 뿐인 지위였고, 계급은 천하지만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의미가 없어진 양반은 스스로 일도 하지 않고 쌀도 관아에서 얻어서 먹고 그 빚이 무려 천 석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글만 읽는다며 일도 하지 않는 양반의 무능력함을 잘 비판한 것 같다. 게다가 신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많은 돈을 번 부자는 여전히 신분의 차이 때문에 무능력한 양반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을 잘 그려낸 것 같다. 또한 책 중간에 아내가 나오는데, 아내는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양반을 구박한다. 그녀는 글만 읽는 양반의 모습에서 불만을 느끼고 앞으로 일어날 사회적 변동을 드러낸다.하지만 이 책에 대한 비판점도 있다. 왜 부자는 양반이 되는 것을 포기했을까? 양반의 지위를 산다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고 지금까지 당했던 멸시를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 양반이 되기를 거부했다는 점을 잘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사람은 모두 태어나면서 선천적인 지위를 가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왕자와 거지’라는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비슷하게 생긴 왕자와 거지가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서로의 삶을 체험한 뒤 새로운 삶에 대해 두려움과 불만족을 느끼고 자신의 원래 신분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양반전도 이 동화와 비슷한데, 부자는 자신이 양반이 된다면 지켜야 하는 것들이 싫어서 양반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양반과 상인으로 정해진다는 것인가? 현대의 평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맞지 않는 것 같다.
문학: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본 영미문학과 1920년대 미국의 사회 현실에 대한 분석보고서 주제로 ‘위대한 개츠비’를 고르게 된 이유는 1학년 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당시에는 그냥 책으로만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2학년 떄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로 봤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개츠비의 호화로운 파티, 그리고 사회 빈민층들의 대비되는 생활을 시각적으로 보고 난 뒤에는 책을 조금 더 분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이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소설의 배경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중서부 출신으로 증권업을 배우러 동부 뉴욕의 웨스트에그로 이사를 오고 이웃집에 사는 개츠비와 친구가 된다. 맞은편 해변에는 상류 사회의 이스트애그의 저택들이 줄지어 있는데, 닉의 먼 친척뻘인 데이지와 닉의 대학 동창인 톰 부부가 산다. 개츠비는 매일 밤마다 호화로운 파티를 열며 수백명의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밤마다 호화로운 파티를 하는 개츠비에 대해 닉이 경멸을 내비치자 개츠비는 이것이 옛 연인인 데이지를 만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18살의 데이지와 군인이었던 개츠비는 연인이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고, 데이지는 조건 좋은 톰과 결혼했다. 그리고 톰은 자동차 수리공 윌슨의 아내와 외도를 즐기고 있었다. 개츠비는 닉을 통해 데이지와 재회하였고, 이를 안 톰은 호텔 스위트에 모인 지인들 앞에서 개츠비의 정체를 폭로한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더 이상 톰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라고 하지만 톰은 이미 그녀의 속내가 다름을 눈치 챈다. 데이지는 끝까지 대답을 피하고 개츠비와 둘은 먼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한편 아내의 불륜을 직감한 윌슨은 그녀와 말다툼을 벌이는데, 그녀는 집 밖을 지나던 차를 보고 뛰쳐나갔다가 그 차에 치여 즉사한다. 그녀를 친 차는 얼마 전 윌슨의 정비소에 몰고 와 기름을 넣은 노란색 쿠페였다. 그러나 톰은 윌슨에게 자기 차를 몬 것이 개츠비라고 말한다. 윌슨은 아내의 외도 상대이자 그녀를 죽인 것이 개츠비라 믿고 자택 수영장에 있던 개츠비를 총으로 쏴 죽인 뒤 자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은 결국 닉, 개츠비의 아버지 등 두세 사람만이 참석한 채 쓸쓸하게 치러진다.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이 소설의 배경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으로 미국인들에게는 고도의 성장기였다. 1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미국인들은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이러한 사치와 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개츠비이다. 개츠비, 닉, 데이지와 톰이 살고 있는 이스트 애그와 웨스트 애그는 그 부를 상징하는데, 이스트 애그는 과거 영국으로부터 물려 받은 전통적 부자들, 귀족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이젠 흑인을 비롯한 열등 인종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이라 생각하는 톰 뷰케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이곳에선 세습된 부의 특징인 배타주의가 두드러진다. 반면 또다른 주 무대인 쓰레기 계곡은 이러한 부가 미치지 못하는 곳, 사회 빈곤층이 머무르는 곳이자 부에 취한 사람들과 부를 쫒는 사람들의 도덕이 버려지는 곳이다. 톰 뷰케넌이 아내 데이지의 눈을 피해 정부와 만나는 곳이기도 하며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정점인 이곳에선 부자들의 일탈과 가난한 자들의 절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처럼 작품에서는 공간적인 장치들을 이용하여 당대의 미국을 정확하게 표현해 낸다. 세습되어온 부와 벌어들이기 시작한 부가 충돌하는 이스트 애그와 웨스트 애그의 헛된 자존심 싸움만이 가득하고, 그들이 사회의 평판에서 도망쳐 마음대로 쾌락을 추구하는 곳에서 부자와 가난한자의 같은 추잡한 모습이 두드러진다.캐릭터들의 성격을 살펴보면, 우선 주인공인 개츠비는 가난한 서부의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눈부신 전과를 올리고 옥스퍼드에서 고작 몇 주 공부한 것을 가지고 옥스퍼드 출신으로 신분 세탁을 한 케이스이다. 개츠비는 전쟁 중에 만난 데이지를 사랑했지만 당시에 가난했던 그는 곧 전쟁터로 갈 수밖에 없었고 데이지는 톰과 결혼한다. 전쟁에서 돌아와 부자가 된 개츠비는 순수한 열망을 가진 사람으로, 허영과 사치에 빠진 사람 같지만 결국 그 호화로운 파티들은 자신의 첫사랑을 되찾아오기 위한 수단이었다. 개츠비는 오래전의 사랑을 가슴속에 새긴 채로 데이지가 있는 반대편의 이스트애그의 등대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러나 그가 데이지에 대한 열망으로 사용하는 방법들이나 축적한 부는 불법이었다. 이는 목적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그 당시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개츠비의 첫사랑인 데이지 또한 그런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으로, 개츠비가 떠난 후에 조건 좋은 톰과 결혼합니다. 그런 데이지를 개츠비는 자신이 부족했던 부와 학력으로 다시 데이지를 찾아오려고 하는 것입니다.왜 이 소설의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개츠비에 대한 이 평가는 이 책의 화자인 닉이 개츠비에 대해 내린 평가이다. 닉은 예일대에서 문학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음에도 홍수처럼 밀려오는 증권시장의 부에 떠밀려 증권가가 되기로 한 사람이었고 미녀 골퍼인 조던 베이커, 톰, 데이지와 함께 뉴욕의 부를 즐기던 사내였다. 하지만 이내 개츠비의 엇나가는 인생을 보면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뉴욕의 부가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깨닫고는 조던 베이커를 차버린다. 뿐만 아니라 닉은 그 속에서 무엇을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지를 본다. 개츠비가 바라보던 초록빛 등대를 자신이 바라보는 것이다.그는 개츠비를 지켜보며 그동안 잊고 있던 순수한 꿈에 대한 열망을 되찾았고 이렇게 자신을 일깨워준 위대한 사내의 이야기를 글로 썼고 그에 대한 평가를 ‘위대하다’라고 내린 것이다. 두번째 해석은 개츠비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닉이 한말,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속절없는 슬픔과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삼은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에서 알 수 있듯이 개츠비가 품고 있던 순수한 열망과는 무관하게 그가 타락하여 목적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다. 더러운 먼지들은 개츠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뿌려대고 있었던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당시의 미국 전역이 황금 만능주의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던 것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가슴 한 켠에 순수한 열망을 간직하던 개츠비를 통해 무너져 가는 사회속에서, 한때 미국이 추구하던 가치가 아직은 등대의 불빛처럼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곳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는 순수한 꿈의 열망을 가지고 있던 사내가, 그 누구보다 순수하던 그 사내의 꿈이 도덕이 무너져 내린 사회에서 휩쓸리고 뿌리 뽑혀 결국에는 총탄에 갈기갈기 찢기는 과정을 그려낸 비극에 가깝다. 황금이 그 사내의 꿈을 돈으로 더럽혀 버렸고 시대는 개츠비의 죽음에 가쉽만을 쏟아낸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이 비극위에 아련한 희망을 얹어 놓음으로써 결정적인 담론을 만들어 낸다. 돈에 파묻혀버린 초록빛의 등대를, 위대한 개츠비의 엇나간 인생을 통해 다시한번 삶속으로 가져오려 했던 것이다.
조선의 붕당 정치 탐구1. 붕당 정치란?조선시대의 왕정은 당초 중앙집권 관료제로 운영되었으나 15세기 말엽부터 훈구파로 불리는 기성 관료 집단을 비판하는 사림파(士林派)가 등장했다. 여러 차례 사화가 반복하던 끝에 정치적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무리로서 붕당이 발생해 항구적인 당쟁이 시작되었다.당쟁 발생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선조대에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의 이조전랑(吏曹銓郎) 추천 문제로 생긴 양자의 반목이라고 한다. 이후 조정의 인사들이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으로 나뉘고 나아가 재야의 유생들까지도 어느 한쪽을 지지해 모든 관료와 지식인들이 대를 물려가면서 대립하는 양상을 빚었다. 동서분당 이후 붕당은 계속 분열을 일으키는 추세를 보였다. 동인에서 갈린 남인(南人)·북인(北人)·서인(西人)에서 나뉜 노론(老論)·소론(少論) 등을 중심적인 붕당으로 꼽았다. 붕당간의 대립은 지극히 배타적이었을 뿐더러 주로 복상(服喪) 문제, 세자책봉 문제 등 민생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통념되었다.당쟁의 흐름을 개관하면서 중요 정쟁을 정리한 이 저술은 오랫동안 정치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여러 계층을 대변해 당쟁이란 정치 현상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양반 중심의 정치를 청산하고 마무리하는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적인 비판 작업은 일본 침략주의자들이 한국의 국권을 침탈해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크게 악용, 왜곡되었다. 일본 어용학자 및 언론인들은 한국 국권 침탈 초기부터 조선시대 정치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른바 당파성론(黨派性論)을 창출했다.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져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점이었다.2. 붕당 정치 평가우리 역사에 있어 당파싸움, 지금은 붕당정치로 칭해지는 정치권의 대립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늘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붕당정치에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과한 부분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붕당정치의 일부분만을 보고 그것을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진 정치와 거리가 먼 당파 간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이루고 수준 낮은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는 우리 정치의 행태가 더해지면서 조선시대 붕당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더해지는지도 모른다.붕당정치는 조선 중기 본격화됐다. 조선 초지 정치의 주도 세력은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한 공신들과 태종 이방원과 권력 쟁취를 함께 한 측근들이 중심이 된 훈구세력 들이었다. 이들은 소수였지만, 대를 이어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관직은 독점되었고 왕권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기도 했다.조선 왕들은 훈구세력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위해 이들과 맞설 정치세력이 필요했고 지방을 기반으로 한 사림세력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성종 때 이후 왕들 역시 사람 세력을 적극 기용했다. 하지만 사람 세력들이 중앙 정치무대에서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기득권을 가진 훈구세력은 그들을 끊임없이 견제했다. 그 과정에서 수차례 사화가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 세력들이 숙청 당했다.그럼에도 사람 세력을 꾸준히 그 세력을 넓혔고 선조 때에 이르러 정치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사람 세력은 공공의 적이었던 훈구세력을 몰아낸 이후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됐다. 한정된 관직에 늘어난 양반의 수는 권력을 향한 대결을 불가피하게 했다. 애초 성리학 사상적 차이로 갈라져 있던 사람 세력이 정치적 대립관계가 더해졌다. 이는 붕당정치의 시작을 불러왔다.선조 때 조정의 중요 관직을 놓고 시작된 대립에서 시작해 동. 서 양당으로 갈라진 정치 세력을 지금의 여당과 야당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붕당정치를 본격화했다. 한때 율곡 이이와 같은 인물이 동. 서 양당의 공존을 모색하며 이를 위해 힘쓰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인은 율곡 이이의 사상을 기반으로 동인은 퇴계 이황의 사상을 기반으로 더 강하게 대립했다. 이후 서인은 노론과 서론으로 동인은 북인과 남인 등으로 다시 분화되며 붕당정치는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초기에는 상대 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호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 독점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상대당을 숙청하는 식의 정치 보복이 난무하는 식으로 변질됐다.더 큰 문제는 이들의 대립이 정파 간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면서 국가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직전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수행원들이 동인과 서인의 입장에서 다른 의견을 내면서 일본의 야욕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부분은 붕당정치의 폐해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렇게 붕당들의 대립은 나라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보다는 정파의 이익과 권력투쟁의 방향으로 전개됐다.물론, 붕당정치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용한 왕들도 있었다. 조선 후기 부흥기를 이끈 영조와 정조는 특정 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인재 기용으로 정파 간 대립을 완화했다. 이를 통해 정치 안정과 함께 왕과 권력을 지난 붕당과 그렇지 않은 붕당이 상호 견제하에 공존했다. 이런 구조는 권력의 독점과 부패를 막는 효과도 있었다. 이처럼 붕당정치의 본래 목적은 권력의 쏠림 현상을 막고 다양한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는 발전된 정치 형태였다.하지만 이런 이상적 붕당정치는 강력한 왕권이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했다. 그 시간도 길지 않았다. 왕권이 미약할 때 정파 간 이해관계는 다시 심화됐고 권력 투쟁은 다시 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상호 공존의 원칙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일반 국민들을 위한 정치는 실종됐다. 마치 오늘날 우리 정치의 모습과 같았다.정조 사후 붕당정치는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로 변질되면서 그 명맥마저 끊어지게 됐다. 그나마 존재하던 견제세력마저 사라진 세도정치는 나라를 더 병들게 하고 조선을 쇠락시키는 원인이었다. 즉, 붕당정치가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식의 논리는 다소 비약한 측면이 있다 할 수 있다. 그나마 유지되던 붕당정치 시스템의 붕괴가 더 큰 문제였다.이렇게 붕당정치는 당파싸움으로 매도되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조선의 역사다. 근대적 정치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사장시켰다는 점이다. 붕당정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조선 시대 붕당정치의 나쁜 이면을 그대로 닮은 우리 정치의 모습을 보면 붕당정치에 대해 무조건 비판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붕당정치가 조선을 망하게 할 원인이었을지 아직은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To kill a MockingbirdScout Finch lives with her brother, Jem, and their widowed father, Atticus, in the sleepy Alabama town of Maycomb. One summer, Jem and Scout befriend a boy named Dill, who has come to live in their neighborhood for the summer, and the trio acts out stories together. Eventually, Dill becomes fascinated with the spooky house on their street called the Radley Place. The house is owned by Mr. Nathan Radley, whose brother, Arthur (nicknamed Boo), has lived there for years without venturing outside. But, on Dill’s last night in Maycomb for the summer, the three sneak onto the Radley property, where Nathan Radley shoots at them. Jem loses his pants in the ensuing escape. When he returns for them, he finds them mended and hung over the fence. The next winter, Jem and Scout find more presents in the tree, presumably left by the mysterious Boo. A fire breaks out in another neighbor’s house, and during the fire someone slips a blanket on Scout’s shoulders as she watches the blaze. To the consternation of Maycomb’s racist white community, Atticus agrees to defend a black man named Tom Robinson, who has been accused of raping a white woman. Because of Atticus’s decision, Jem and Scout are subjected to abuse from other children, even when they celebrate Christmas at the family compound on Finch’s Landing. Tom Robinson’s trial begins, and when the accused man is placed in the local jail, a mob gathers to lynch him. Atticus faces the mob down the night before the trial. Jem and Scout, who have sneaked out of the house, soon join him. Scout recognizes one of the men, and her polite questioning about his son shames him into dispersing the mob. At the trial itself, the children sit in the “colored balcony” with the town’s black citizens. Atticus provides impressive evidence that the marks on Mayella’s face are from wounds that her father inflicted; upon discovering her with Tom, he called her a whore and beat her. Yet, despite the significant evidence pointing to Tom’s innocence, the all-white jury convicts him. The innocent Tom later tries to escape from prison and is shot to death. In the aftermath of the trial, Jem’s faith in justice is badly shaken, and he lapses into despondency and doubt. Despite the verdict, Bob Ewell feels that Atticus and the judge have made a fool out of him, and he vows revenge. He menaces Tom Robinson’s widow, tries to break into the judge’s house, and finally attacks Jem and Scout as they walk home from a Halloween party. Boo Radley intervenes, however, saving the children and stabbing Ewell fatally during the struggle. Boo carries the wounded Jem back to Atticus’s house, where the sheriff, in order to protect Boo, insists that Ewell tripped over a tree root and fell on his own knife. After sitting with Scout for a while, Boo disappears once more into the Radley house. Later, Scout feels as though she can finally imagine what life is like for Boo. He has become a human being to her at last. With this realization, Scout embraces her father’s advice to practice sympathy and understanding and demonstrates that her experiences with hatred and prejudice will not sully her faith in human goodness.The mockingbird, which is the title of the book, symbolizes the weak. In the story, characters like Jem, Tom Robinson, Boo Radley and Mr. Raymond represents the weak. For instance, Tom, a black man, was accused for raping a white woman. Atticus Finch, father of the main character, Scott Finch, is a lawyer. He was appointed as Tom’s defense attorney, and he defended well. Also, there were some big evidence that shows that Tom is not the criminal. Mayella Ewell, the victim of the crime, had a bruise on the right side of the face and Tom can’t even use his left arm. However, since all the people in the village was a racist and even the judge was, the judge convicted him being the sex offender. So, the title, ‘to kill a mockingbird’ means to destroy the weak, usually destroyed by evil forces.Boo Radley is one of the mockingbird in the story. He is a man who lives Atticus’s next door, who only stayed in the house. Children had a bad image of him. However, throughout the story, children’s attitude towards Radley had changed, as they interacted with him more often. At the end of the story, Atticus had fully understood him and she learned one of her lesson through him, understanding others by putting herself in other person’s shoes. When he killed Bob Ewell, it was decided that Bob Ewell’s name would not be cleared publicly, because that would be killing another mockingbird because of all the attention he would be receiving. He is also a symbol of good. He interacted well with the kids, helping them with their moral education. Also, he saved the kids from Bob Ewell, despite his disadvantaged childh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