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낭만주의: 멜랑콜리 개념 중심으로독어독문학과B835042 김도혜목차서론본론멜랑콜리 개념의 역사독일 낭만주의에서의 멜랑콜리칸트의 ‘자연을 동경하는 인간으로서의 천재’한국 민족주의에서의 멜랑콜리-프로이트의 관점에 기반하여결론참고문헌서론멜랑콜리(Melancholy), 그 단어로부터 느껴지는 심상은 아름답다. 그것은 한 인간에게 기나긴 밤 중의 고뇌를 허락하고 타인으로부터 벗어나 고립될 자유를 주며 유한한 존재로서 무한의 지평에 가 닿도록 이끌어준다. 긴 밤이 지나가고 이성의 아침이 밝아오면, 멜랑콜리는 사라지고 육체는 지쳐있지만, 멜랑콜리로 밤을 지샌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각성된 무언가로서 굳건히 남아있다. 천재들은 그러한 각성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켜 표출하는 능력 그 자체로 동경받아 마땅할 것이다.“멜랑콜리에 빠진 인간은 아름답다.”“그것은 하나의 인격체고, 뚜렷하게 목도하기란 두려운 어떤 실체이다. 멜랑콜리라는 것은, 그것에 도취된 인간을 넘어서야 한다.”멜랑콜리적 고뇌는 오랜 기간 지식의 축적 이후 그것의 내적 처리과정에서 오는 고통이다. 앎의 즐거움이라는 계몽적 환희보다는 고통의 과정으로서 지식과 사색의 범람이다. 난데없는 거대한 지식과 사유 패러다임, 인생을 살아가며 생각해보게 되는 여러 문제들에 닥친 인간은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답을 구하고, 흡수하고, 저장하는 일련의 뇌의 사고활동을 통해 고뇌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이 당면한 과업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해결해내야만 하는 부담을 진 채 살아가야 하고, 그것이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멜랑콜리가 동반된 이유일 것이다.본 레포트에서는 이러한 멜랑콜리를 먼저 개념사적 변천에 대하여 개괄해 본 뒤 알브레히트 뒤러의 에서 기원한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멜랑콜리에 대해 무한과 유한 사이의 사유 관점에서 분석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르네상스 이후 문화적 발전을 이끈 예술적 천재의 덕목으로 여겨지던 천재의 역할을 칸트 미학의 관점에서 간략히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민족주의로서 구현된 멜랑콜리는 어떤 천문학과 물리학이 유입됨으로써 멜랑콜리는 점성학적으로 토성의 기질을 가진다고 여겨졌다. 토성을 상징하는 신 사투르누스(크로노스)는 대부분 위엄을 갖추면서도 침울해 보이는 늙은이로 묘사되는 멜랑콜리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5세기말경 마리실리오 피치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멜랑콜리 연구를 근거로 멜랑콜리의 체질의 하나로서 이루어지는 내면세계로의 침잠이 예술적 창조력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중세 당시 부정적 체질로 여겨지던 멜랑콜리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켰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는 이전까지 노동자나 장인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던 미술가들은 예술적 상상력을 발산하는 ‘위대한 천재’로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이 시기의 미술가들은 자신들을 ‘멜랑콜리커’로 지칭하며 자신들의 고차원적 사유와 이로 인해 나타나는 창조적 예술성이 내면의 멜랑콜리에서 기원한다고 여겼다. 이 때 등장한 ‘우울한 천재’개념은 이후 칸트의 미학에 영향을 끼친다. 로코코 시대의 멜랑콜리는 예민한 심리의 감각적 표현, 바로크 시대의 멜랑콜리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융합하여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기능하였다. 특히 독일 낭만주의에서 멜랑콜리는 시대상황의 산물이었다. 30년 전쟁과 종교전쟁 등 사회적 혼란을 지나온 사람들은 육체와 사물에 무상함을 느끼고 이들 너머의 영역을 동경하였다. 이에 도달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가운데 멜랑콜리의 정서가 독일 전역을 지배하고 유럽으로 확산해 나간 것이다. 이후 헤겔은 인간학적 차원에서 멜랑콜리를 설명하였다. 유아에서 성인을 거쳐 노인에 이르는 인간의 삶 동안 유아기와 성인기 사이의 단계에서 인간은 이상을 구축하려는 젊은이다운 포부와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거나 실현될 수 없다는 판단의 충돌로 인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약한 기질의 우울한 정서가 멜랑콜리라는 것이다. 니체는 멜랑콜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면서 “가장 고귀한 종류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꿈속에서 한 번을 중시하고 합리적 사고로 지식을 탐구하고 성찰하는 것이 인류 진보의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이들과 같은 목적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보다 정신적 측면에 집중한 사고로 계몽주의를 보완하고자 하였다.18세기 후반, 계몽주의를 내세우며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제 3계급을 위한 진정한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나폴레옹의 집권으로 마무리되자, 유럽의 많은 낭만주의자들은 대혁명에 대한 신뢰와 그 이후의 절망감을 모두 체험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이상적 세계가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하면서 유토피아 이상의 성취와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사이에서 회의하게 되었다. 또한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근대자본주의 문명이 확산됨에 따라 낭만주의자들은 물질주의가 확산되고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사색할 여유를 상실하게 된 것을 비판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산업사회의 근대화가 가져오는 도시적 폭력성을 인식하고 근대에 대한 반동으로 자연이나 내면세계로 도피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고뇌하는 인간으로서 자아 속에 내재된 신을 찾아 주관적으로 내면을 성찰하고 자연을 관조하였다. 그들에게 고독은 멜랑콜리의 원인이자 결과였다. 특히 내면에 침잠하기 위한 이상적인 공간이자 동경할 수 있는 순수로서의 자연을 중요시하며, 자연을 문명이 지배하는 도시와 대비되는 공간으로서 도시에 비해 영원에 가까운 거대한 유기체로 여겼다.독일 낭만주의자들에게 자연이란 도시문명의 유한한 무상성에 대비되는 무한한 공간이며, 영원히 순환하는 재생의 공간이다. 자연 속에서의 죽음은 순환의 일부이다. 자연의 이러한 특성은 고독하게 사유하는 사람들에게 인간관계를 벗어난 은둔의 공간을 제공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자 현실을 벗어나 종교적 목적으로 방랑하는 수도승에게는 순례 공간이 되기도 한다. 멜랑콜리커들의 사유를 자극하는 달빛, 안개, 폐허, 묘지, 바다 등의 공간은 인간의 유한성을 체감하는 동시에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이다. 안개와 함께 주로 낭만주의 회화에 등장하는 고과정의 근간으로서 재능이 표출된 결과로 이해된다. 천재의 창조성은 창조 대상의 자연적 본성을 파악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천재의 산물은 모범적이고 범례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오직 모범들로서만 기여하며 그 자체로 개별적인 규칙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무규정적인 표현성이 수반된다. 이 작품들은 어떤 신비한 능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자연의 무한성을 떠올리면서도 현실 속 인간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존재의 표현이다. 즉, 천재는 “어떠한 학문도 가르쳐 줄 수 없고, 또 어떠한 근면도 배울 수 없는, 미묘한 관계, 즉 어떤 주어진 개념에 대하여 이념들을 찾아내는 한편, 또 이 이념들을 적절히 ‘표현’한다고 하는 행운의 관계에서 성립한다.” 우리로 하여금 대상을 이성 목적으로서 보도록 허용하는 존재론적 판단력을 정당화하는 가운데 천재는 미적 예술의 가능성을 위한 선험적 조건들을 수반한다. 아름다움의 경험은 그저 개별적인 발전뿐 만이 아니라 문화적 진보에 이를 수 있는 기틀이다.3) 한국 현대문학의 멜랑콜리-프로이트의 관점에 기반하여한국 문학작품에 나타난 멜랑콜리를 알아보기 이전에, 먼저 프로이트의 멜랑콜리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한국의 현대문학에서 나타나는 멜랑콜리는 주로 식민 현실로 인한 조국과 민족정신에 대한 상실과 산업화에 의한 전통적 가치의 상실감에서 오는 멜랑콜리이기 때문이다.프로이트의 멜랑콜리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이후 현실 존중과 적응의 차원에서 대상으로부터의 리비도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으로 논의할 수 있다.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들은 외부세계를 차단함으로써 상실한 대상 이외의 다른 대상으로의 목적이나 관심을 상실하게 된다. 일반적인 슬픔과 달리 멜랑콜리는 외적 대상의 의식적 상실에 무의식적 내면의 상실이 동반된다. 상실의 대상을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대상에 집중되던 리비도는 대상의 상실 이후 철회되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서 멜랑콜리에 빠지게 되면 상이 된다.3. 결론지금까지 멜랑콜리에 개념에 대한 전체적인 변화 양상을 알아보고 특히 독일의 낭만주의 예술로서는 어떠한 특성으로서 나타났는지 살펴보고 특히 칸트 에서 언급된 천재에게 주어진 역할과 그 우울함에 대해서 별도로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프로이트적 멜랑콜리는 특히 한국 현대문학에서 한국 고유의 민족주의와 결합된 형태로 식민지 사회의 조국 상실감으로서 구현되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백석 시인의 와 에서 나타난 멜랑콜리적 측면을 파악함으로써 독일 낭만주의의 멜랑콜리를 비롯한 멜랑콜리 개념 전반에 대해 분석하였다.멜랑콜리에 대한 개념은 크게 두 갈래로 이어져 내려왔다. 하나는 히포크라테스로부터 기원한 병리학적 관점에서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여기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기원한 예술적 창조의 필연적 특질로 여기는 관점이다. 학문적 연구나 예술적 창조 차원에서 이 두 가지 관점은 나란히 병행하여 진행되기도 하지만, 하나로 합치되어 병리적 멜랑콜리를 앓는 환자의 예술적 창조 등 두 관점의 경계는 모호하고 때로는 이들과 전혀 다른 양상의 기질을 가진 멜랑콜리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멜랑콜리는 그 자체로 명확하지 않은 무언가이다.뒤러의 에서 기원한 예술가 이미지로서의 멜랑콜리는 프랑스 대혁명 좌절 이후 계몽주의에 대한 회의에 빠진 독일 사람들 사이에 깊숙히 스며들었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인한 물질주의의 확산은 지나친 이성중심 사고에 따른 인간성 상실은 멜랑콜리커들이 현실의 도시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열망하게 되고 자기 세계에 대한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이 원한 것은 현실에는 없는 이상적인 다른 시공간이었으며 설령 그것이 실현되더라도 결코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이상을 그려냈다.한국 일제강점기 문학은 식민사회의 억압에 대한 고통과 조국의 상실감에 대한 멜랑콜리에서 기원하며 한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이다. 프로이트의 멜랑콜리 이론에 의하면 그들의 멜랑콜리는 자기 민족과 고향에 닿아 있던 리비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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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smuskurs Deutsch B1+SOSE 2021Meine LieblingslandGRIECHENLANDabgegeben von: DOEHYE KIMam 31.05.2021.1. Geografische MerkmaleGriechenland, das sich im Südosten von der Balkanhalbinsel im Südeuropa befindet, besteht aus mehreren Inseln auf der Halbinsel Mainland mit einer Fläche von etwa 130.000km^2 und der Mittelmeerküste. Im Südosten ist das Ionische Meer, im Süden das Mittelmeer und im Osten das Ägäi Meer umgeben, und es gibt Albanien, Nordmazedonien, Bulgarien von Westen nach Osten entlang der nördlichen Grenze und im Osten die Türkei gegenüber. Im Mittelmeer gibt es Kreta, die größte Insel Griechenlands, und im Westen liegt das Kretameer zwischen der Insel und der Halbinsel. Die Halbinsel von Griechenland ist größtenteils aus Bergen und die Ebenen sind im Kessel oder unteren Flusslauf verteilt, sodass Poleis, die alten griechischen Städte, sich in dieser Region entwickelt haben.Der Süden und die Inselregion Griechenlands sind typisches mediterranes Klima, das im Sommer sehr trockephabeten und sprechen Griechisch, und weniger als 1% der Bevölkerung sprechen Türkisch, Bulgarisch und Rumänisch. In vielen anderen Gebieten gibt es viele gefährdete Sprachen, und die Sprecher werden immer geringer. Im nördlichen Grenzgebiet gibt es eine Gruppe, die Slawen spricht, die rassistisch meistens griechisch ist. Ihre Dialekte werden auch linguistisch als Mazedonisch oder Bulgarisch klassifiziert. Die griechische jüdische Gruppe spricht Ledino-Sprache, ein Espanisch-Jüdisch, und heute sind nur noch Tausende übrig. Deutsch, Englisch und Französisch werden in Sehenswürdigkeiten und Hotels verwendet.2-3. ReligionDas Christentum wird als dominierende Religion Griechenlands anerkannt. In Griechenland war die Ostkatholische Kirche gegenstand des Willens der Griechen, als Osman Thurk besetzt wurde, deswegen hat das Christentum einen großen Einfluss auf die Gesellschaft. 97% der griechischen Bürger betrachten sich als griechische Orthodoxen und 81% der griechischen Bürger glauben an dden die meisten für den Anbau von Getreide verwendet, um ins Ausland zu exportieren. Der Anbau kommerzieller Kulturen ist sehr wichtig, weil mehr als die Hälfte der griechischen Exporte aus dem Ausland stammen. Tabak werden besonders landesweit angebaut und machen 40% der Exporte aus.Die griechische Wirtschaft sind traditionelle Tourismus- und Seeverkehrsindustrie, aber die Herstellung hat sich kaum entwickelt. Die Schifffahrt spielt seit jeher eine wichtige Rolle in der griechischen Wirtschaft und ist heute die wichtigste Industrie. Die Grundlage der modernen griechischen Schifffahrtsindustrie wurde nach dem zweiten Weltkrieg gebildet.4. Kulturelle Merkmale4-1. GeschichteAltes GriechenlandDie Geschichte Griechenlands beginnt mit Ägäi Zivilsation, Minos Zivilisation und Mickene Zivilisation. Athen, einer der "Stadtstaaten", die sich nach der dunklen Ära gebildet haben, entwickelte politische Demokratie und konzentrierte sich wirtschaftlich auf den Handel und den Seeverkehr. Ein anderer von 1912 bis 1913 Mazedonien, Ephyrus und Kreta besetzt.Nach den WeltkriegenKurz vor dem ersten Weltkrieg wurde die griechische Politik durch den Konflikt zwischen dem König und dem Premierminister über die Außenpolitik geteilt. Nach dem Ersten Weltkrieg hat Griechenland einen Krieg mit türkischen Nationalisten geführt und etwa 1,5 Millionen griechische Flüchtlinge sind von der Türkei nach Griechenland gezogen. Griechenland gewann den zweiten Weltkrieg gegen das Vernichtungsland, aber das mit Italien-vereinigte Nazi-Deutschland wurde Ende April 1941 von Deutschland besetzt. Im Jahr 1947 konnte das mehrere Inseln aus Italien bekommen, das im zweiten Weltkrieg verloren hatte.Modernes GriechenlandGriechenland hat 30 Jahre lang soziale Konflikte durch politische Unsicherheit und wirtschaftliche Schwierigkeiten erlitten, obwohl das die Erholung nach dem Krieg durch den Marshall-Plan erreicht hat. Im Jahr 1974 wurde der König durch ein Referendum abgeschafft und 1975 wurde die Verfassung dehen in der Form eines Gewinns in die offene Universität ein.4-3. TourismusDer Tourismus macht einen großen Teil des griechischen Einkommens aus. In 2007 kamen mehr als 19 Millionen Touristen zu Griechenland und gehörten zu den höchsten Touristenattraktionen der Welt. Die Rhodos-Insel ist das beliebteste Touristenort für europäische Touristen. Andere berühmte Sehenswürdigkeiten sind Athen, die nördliche Halbinsel Chalkidiki, Korfu der Ionischen Inseln, Mykonos, Santorini, Paros und Kreta.4-4. EssenDas griechische Essen, die sich seit der Antike entwickelt hat, ist die Grundlage für mediterrane Küche. Es gibt viele Lammfleisch in Griechenland, weil der Sommer trocken ist und es viele Berge gibt. Das moderne griechische Gericht besteht aus Salat, Vorspeisen, Hauptspeisen und Dessert, und es gibt kaum Suppe, die in westlichen Dessertationen üblich ist. Das Klima Griechenlands ist berühmt für den Weinanbau. In Taverna werden Retsina serviert, wobei der Geschmack des Weins je nach Region unt
독일 현대문학에 드러난 소시민들의 나치즘 분석-O. von Horva??th의 과 G. Grass의 중심으로김 * * (독어독문학과)국문요약20세기 초에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게 된 독일은 경제적 문제는 물론, 바이마르 공화국 내외에서 발생한 여러 갈등 때문에 불안정했다. 그러던 중 1930년대에 민족주의와 경제난 해결을 선전하며 등장한 나치당은 독일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 여겨졌고, 나치즘은 독일 시민들 사이의 사회적 분위기에 쉽게 흡수될 수 있었다. 독일 사회 내에서 시민들의 나치즘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당시 독일 사회에서의 나치즘과 그 모순을 알 수 있는 시민소설인 과 을 통해 제 3제국 시기 시민사회의 나치즘과 그 폐단에 대해 알아본다.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시대감각과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자기 스스로 소속된 집단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한계점을 중요하게 짚어본다. 마지막으로 을 통해 작품 내 인물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무의식적인 폭력성을 알아봄으로써 두 시대소설의 인물들에 대한 분석이 현대 사회의 독자들에게 가져다주는 시사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속에서 독일 소시민에 대해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언급을 통해 본 논문의 가치를 강조한다.주제어: 소시민성, 나치즘, , , 내면적 이주, 평범한 폭력성I. 도입: 20세기 중반 독일 국민들의 삶 탐구의 필요성20세기 초반의 제 1차 세계대전, 20세기 중반의 제 2차 세계대전, 20세기 중후반의 냉전을 지난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사건들을 과거에 있었던 큰 사건들 중 하나의 단편으로서 접한다. 19세기 말 무렵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발생한 급격한 근대화는 과학적, 기술적으로 급진적인 발전을 이뤘기도 하지만 이로 인한 인문학, 사회학적 사상까지 크게 변화시키게 되었다. 전근대시기까지 있던 기존 사회구조의 경계는 붕괴되고 당시 소시민들은 안정되어 있던 삶의둘러싸고 발생한 대내외적인 혼란은 수립된 지 얼마 안 된 바이마르 공화국을 국가적 위기의식에 빠뜨렸다. 이 뿐만 아니라 제 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이어져 온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과 대외적으로 전범국 국민으로 낙인찍힌 것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확산되면서 독일인들은 내부의 배신자를 추려낼 수 있는 강력한 영웅적 지도자의 출현을 갈망했다(장소원 2018, 9).사실 바이마르 공화국 내의 불안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상황이 주는 특수성에만 원인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무렵 서구 유럽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근대화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나 실증주의 철학의 확산뿐만 아니라 여러 층위의 경계들이 불분명해지는 아노미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전근대 사회에서의 안정감이 붕괴된 이후의 불안은 특히나 주변국들에 비해 발전 속도가 느렸던 독일에서 더욱 확산되었다. 그러던 차에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에서 받은 충격까지 가중되어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독일민족의 혈통적 순수성마저 훼손당하고 있는 불안감이 바이마르 공화국 내 사회적 분위기의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이하 나치당)이 성장하였다(방청야 2002, 12).1919년 히틀러를 비롯한 7인의 작은 집단에 의해 결성된 나치당은 1921년 돌격대 Strumabteilung(SA) 와 친위대 Schutstaffel(SS)를 결성하였다. 1932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제도가 와해되던 시기를 틈타 나치혁명을 진행한 뒤, 1933년 독일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 해방 및 장래의 희망 선전으로 내세운 나치당이 총선거에서 승리하고 히틀러가 총통으로 인정됨으로써 제 3제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히틀러는 제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몰락하기 전까지 강력하게 권력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방청야 2002, 13).앞서 언급했던 바이마르 공화국 내의 불안한 해 다른 선생님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하지만 믿어다오, 나는 양심의 가책 없이”? 나는 문득 누군가 걸상 밑에서 무엇인가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말을 멈춘다. “거기서 뭘 쓰고 있는 거니?”[..]“이리 내놔!” 내가 그것을 빼앗자 그 학생은 나를 비웃는다. 그것은 그 학생이 종이 위에 나의 모든 말을 속기로 받아 적고 있었던 종이였다. “아하, 너희가 나를 염탐하려 했단 말이지?” 학생들은 비죽거린다.교사의 반 나치즘을 위협하는 인물들은 학생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오래 전 이미 나치즘에 물든 부모로부터 나치즘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나치즘은 학생들보다 더욱 내면화되어 있고 부모들의 나치즘은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승되었다(이지연 2001, 27). 예를 들어 학생 N의 아버지는 나치즘을 신봉하는 소시민의 전형이다. 제빵사라는 그의 직업과는 맞지 않게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며 자신의 정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여긴다(장소원 2018, 28). 나치즘적 사상과 인종차별주의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학생 N의 아버지는 교사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항의한다.“제가 여기에 있음은”, [.], “제가 이른 유년기 때부터 정의를 추구해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검둥이들에 관한 그 수상쩍은 표현이 이와 같은 형태로 그리고 이러한 맥락 안에서 실제로 당신네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란 말입니까?”‘Ich bin hier’보다 공적인 상황에 어울릴 법한 표현인 ‘Mein Hiersein’을 쓰며 자신의 정의를 거스르는 교사에게 반발하는 학생 N의 아버지는 나치즘을 따르는 것이 곧 그에 맞는 상층 계급이라는 소시민적 허위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과 허위의식이 만연해있던 분위기 속에서 그는 에서 부모 세대의 인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장소원 2018, 29).주인공인 교사가 작품 내에서 가장 뚜렷한 반나치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을 사지 않은 덕분에 그는 주변의 사람과 사물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평범한 시민들 아래 발치에서 오스카는 세계의 부조리와 이중적인 도덕의식도 포착한다(오산정 2001, 21). 그는 테이블 아래에서 아그네스와 얀의 불륜도 볼 수 있지만, 연단 뒤에서 군중집회 연설가의 허위도 보게 되면서 연단 위의 연설에 선동당하는 사람들에게 연단 뒤의 실상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모든 사람들은 연단 앞에 모이기 전에 연단 뒤의 광경을 충분히 보아야 할 것이다. 일치감치 뒤쪽에서 연단을 잘 보아두었던 사람은 그때부터 면역이 되어, 형태의 차이에도 불문하고 연단 위에서 거행되는 그 어떠한 마술에도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양철북 1 1999, 180)연단 뒤는 그 특성상 세 살 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지만, 오스카는 그 뒤에서 선동의 허위를 자각하였다. 그는 연단 뒤의 허구를 자각하지 못한 채 연단 앞의 연설에 복종하는 단치히 시민들의 맹목성에 대해 조소를 보낸다.2. 오스카 및 주변 인물들의 나치즘오스카의 아버지 알프레드 마체라트는 이제 막 태어난 그에게 21살이 되면 식료품 가게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정신적 성숙이 완결된 채로 태어난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가 태어난 사회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린다. 알프레드는 고지식하고 미래지향적인 인물로, 독일 소시민의 전형이다. 아내 아그네스와 얀이 불륜 관계임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지 못하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침묵하기만 하는 마체라트는 아들 오스카에게조차도 아버지보다는 요리사로서 인식될 뿐이다. 이처럼 튼튼하지 않은 자아정체성을 지닌 마체라트는 자신의 가정에서 안락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는 외부로 눈을 돌리던 중 조직에 대한 순응 욕구를 채우고 안정감을 찾기 위해 나치즘에 입당하여 외부적인 힘에 편승한다.그러나 상대의 손짓에는 반드시 손짓으로 답하고, 상대가 소리치거나 웃거나 손뼉을 치면 똑같이 소리치거나 웃 있게 사용하면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을 머리에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북이 없다면, 그리고 매일 세 시간 내지 네 시간 나의 양철북으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는 병원의 허락이 없다면, 나는 조부모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가련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양철북 1 1999, 26).오스카 인생의 최후의 종착지인 정신병원에 이르게 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북을 두들기고, 낡아 못 쓰는 북은 ‘북의 내력에 관한 일자와 메모를 기입한 종이쪽지’(양철북 1 1999, 324)를 붙여 면회 온 아내 마리아에게 전달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오스카는 북을 두들기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회상한다.오스카는 자신이 살던 집을 ‘비좁고 조잡하지만 소시민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것(양철북 1 1999, 59)’이라고 하거나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주부들이 양탄자를 털면서 내는 ‘청결을 찬양하는 합창(양철북 1 1999, 144)’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등 그가 속해 있는 독일 시민 사회의 일상에 파고든 알레고리적 파시즘을 고발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그 역시도 시대적 한계 내에서 죄의식을 품고 있으며 때로는 그의 안에 내재된 평범한 폭력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의 외모적 특성을 이용하기도 한다. 오스카는 그의 양철북을 통해 시민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그와 북 사이의 외부 사회를 외면하고 자신만의 영역으로 도피함으로써 그 당시 전후 독일 사회의 예술가들이나 지식인들이 ‘내면적 이주 innere Emigration’를 했던 것에 비유된다(조영준 2003, 146). 귄터 그라스는 오스카 마체라트를 통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각성하지 못하고 속물근성에만 집착하는 전후 서독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조영준 2003, 156). 또한 오스카는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전시체제로 접어들게 되자 그는 시대상황에 대한 걱정이나 문제의식보다는 자신의 새 양철북 조달 경로가 끊길 것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