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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과 서양의 차(茶) 연구 - 중국&한국, 영국&미국을 중심으로
    동양과 서양의 차(茶) 연구- 중국&한국, 영국&미국을 중심으로-목 차-1. 서론2. 동양의 차2.1. 중국 차2.2. 한국 차3. 서양의 차3.1. 차마고도3.2. 영국 차3.3. 미국 차4. 결론1. 서론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에 휩싸였고, 우리의 일상은 크게 변화했다. 사람들은 코로나 장기화에 따라 실내활동을 많아 찾게 되었는데, 특히 집에서 프리미엄 차(茶)를 즐기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프리미엄 차(茶) 브랜드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14.4% 증가했다. 이는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다.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 거리두기가 강화되었던 3월 이후부터 6월까지는 온라인 차 매출이 작년보다 48%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급격히 증가한 차 매출에는 2030 고객들도 적지 않았으며, 이들은 다양한 다구(茶具)를 구매하기도 했다. 최원준 신세계 백화점 식품 담당은 “유명 카페 못지않은 예쁜 그릇에 특별한 홍차를 즐기는 홈카페 트렌드가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라는 말도 남겼다.이처럼 실내활동으로써 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차는 조그마한 찻잔에 다채로운 매력이 담긴 신비한 음료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그래서 차는 ‘단지’라는 부사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단지 건강을 위해서, 단지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단지 맛을 위해서 차를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차를 즐기는 사람 중 대부분은 찻잔에 담긴 과학, 예의, 맛, 전통 등을 고루 음미한다. 또 이처럼 다양한 것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차는 느림의 미학이 담겼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차 문화는 아직 많은 사람에게 생소한 실정이다. 매출은 올라갔지만, 차에 대한 지식과 소양은 예전과 다름없으며, 그저 홀짝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람이 차를 완전히 음미하고 즐기는데 큰 지장을 주며, 나아가 한국의 차 문화 차가 널리 퍼지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중엽 이후, 차를 마시는 풍속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원인은 간단히 네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교통의 발달, 둘째는 제다(製茶) 방법의 개량, 셋째는 승려 생활의 간접적인 자극, 마지막으로 넷째는 육우의 『다경』 저술이다. 특히 많은 책에서 육우를 엄청난 공헌자로서 언급하고 있으며, 후세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차가 급격히 퍼졌던 당대 중기 이전까지를 차 대중화 기반단계로 잡으면, 시작단계는 당대 중기 이후부터이며, 촉진단계는 송대이다. 또 가속단계는 원대부터 명·청대까지이며, 완성단계는 20세기 후반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예상보다 안정된 시기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기원전 206년에 세워진 한나라와 618년에 세워진 당나라 설립 시기를 생각하면, 중국 차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반박하기 쉽지 않다.중국 차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종류 또한 다양하고 대부분이 사랑받는다. 따라서 필자는 한 가지만 특정하여 언급하기 힘들어 전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분류법에 따라 구분이 달라지겠지만, 필자는 현재 가장 저명한 분류법인 ‘육대차류(六大茶類)’를 제시하고 싶다. 사천대학 역사문화학원 박사인 박영환은 “중국에서 거론되는 수천 가지의 차 명칭들은 모두 이 범주 안에 속하며, 동시에 이 여섯 종류의 명칭에서부터 비롯되어 천태만상의 각종 명칭과 수천 갈래의 종류로 나누어지기 시작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중국 차 분류학에서 언급되는 육대차류는 제다(製茶) 방법을 기준으로 차를 분류했으며 녹차, 황차, 청차, 백차, 홍차, 그리고 흑차로 구성된다. 이 여섯 가지 차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 색깔이 다르며, 건조법이나 산화 시기까지 제조 공법 또한 전부 다르다. 물론 이 분류법은 보이차를 포함하지 못하는 한계도 가진다. 보이차란 ‘운남성에서 생산된 대엽종의 찻잎을 쇄청 건조시킨 모차를 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산차(散茶), 혹었으며 양자강 이남과의 교류는 해로를 통한 백제 쪽이 활발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 이 주장 또한 고대 문헌에서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이렇듯 다양한 고대 문헌에서 차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당시 왕을 비롯한 고관들의 차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후 고려 시대부터는 국내 차 문화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신라의 차 문화가 고려에까지 이어지면서 차를 음용하는 사람들도 여러 계층으로 늘어났다. 신라에선 왕실과 귀족·승려·문인들이 주된 향유층이었다면, 고려 시대에는 평민들 사이에도 차를 즐겨 마시는 풍습이 성했고, 국가 의식은 물론 백성들의 제사 의식에도 차가 빠지지 않았다. 예컨대 고려 시대 국가 의식에는 반드시 ‘진다의식(進茶儀式)’이 행해졌다. 여기서 ‘진다(進茶)’란 술과 과일을 임금께 올리기 전에 임금이 먼저 차를 청하면 신하가 차를 올리는 것을 일컫는데, 이것이 별도의 의식으로써 다례가 행해졌다는 사실은 이미 차가 중요한 위치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또 조선 시대는 고려와 달리, 초기부터 왕실 행사에서 차가 의례(儀禮)의 대부분에서 쓰였던 것이 점차 줄어들고, 차 대신 술이 쓰이기도 했다. 물론 선비·귀족 계층에서는 계속 성행했지만,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쇠퇴하게 되었고, 그 여파로 사찰 중심의 차 문화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이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와 차를 마시는 여건이 새로 조성되면서 음다(飮茶) 풍습이 되살아나게 되었지만, 이는 곧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큰 위기를 맞이했다. 이처럼 한국 차 역사는 흥망성쇠를 꾸준히 반복해왔다. 즉, 한국 차는 일정 수준의 번영과 몰락을 거듭하며 우리 곁에 오랫동안 함께해왔다고 볼 수 있다.최근 들어 차가 많이 수입되면서 소비자들의 입맛도 다양해지긴 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차 중에선 아직 녹차가 가장 대중적이다. 녹차는 이름 그대로 찻잎을 우려냈을 때 녹색을 띤다. 그 이유는 제조의 첫 단계에서 가열함으로써 찻잎에 포함되어있는 효소의 활동을 팔았다. 지금이야 교통이 엄청난 발전을 이룩해 교역이 손쉽게 이루어지지만, 고대에는 다른 지역의 물건을 구하려면 오랜 시간과 큰 노동력이 필요했다. 특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험난했음을 고려하면, 누구도 ‘차마고도를 통한 교역에서 마방이 큰 역할을 맡았다’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들 역시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수많은 산을 넘었다. 차는 물론 곡식, 소금 등을 산악 지역의 티베트 사람에게 주고 현지의 말, 버터, 버섯 등으로 교환하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험한 길을 오고 갔던 만큼 대가가 컸던 것이다. 이렇듯 서로의 필요에 의해 물물교환이 성립되었고, 새로운 교역은 높고 험난한 오지에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냈다.차마고도의 길은 크게 여덟 가지의 노선으로 나뉘는데, 마방들이 주로 이용하던 노선은 윈난에서 출발하는 길과 쓰촨에서 출발하는 길이었다. 차마고도를 통해 건너가는 것은 윈난의 푸얼(보이)차가 대표적이다. 사계절이 모두 따뜻한 윈난성은 중국의 대표적인 푸얼차 생산지로 독특한 맛과 향을 자랑하며, 특히 장시간 발표시킬수록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보존성도 뛰어나 머나먼 곳을 잇는 교역품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또 티베트 사람들은 고산지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에너지 섭취를 위해 육류를 주식으로 삼는다. 이때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분해하고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해선 채소가 필요한데, 고산지대에서 채소가 잘 자라긴 힘들다. 그래서 대체품으로 차를 찾게 된 것이다. 물론 차도 우려내기 위해선 찻잎이 필요한데, 티베트는 찻잎도 자체 생산이 불가능하여 중국 차와 본인들의 말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차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필자는 중국 차의 특징과 티베트 민족의 생활이 잘 결합하여 차마고도가 꾸준히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해석하였다.2011년 국제 명원 차(茶)문화대상 공로상을 수상한 강법선 또한 이에 관련된 차마고도의 우수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티베트인에게 차는 양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기에 중국인들은 높은 산을 넘어 차를 사천성 정도로 변질될 염려는 전혀 없었기에, 이 설은 옥수수가 수류탄을 맞고 팝콘이 되었다는 정도의 낭설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영국에서 본래 왕실 음료였던 차를 최초로 시판된 곳은 1657년, 담배 가게를 함께 운영한 게라웨이(GARAWAY)의 커피 하우스라고 한다. 커피 가게에서 차를 팔았다고 하면 의아하게 들리지만, 이는 단지 커피가 수년 앞서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차도 커피와 같이 외래의 진귀한 음료였다는 점에서 별로 다른 점이 없었기에, 두 가지를 한 가게에서 팔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18세기의 중엽부터 시작되는 다음 한 세기는 산업혁명이 진전되어 중산 계급이 형성된 시기로, 차가 점차 중류사회로 확산되었고, 일반노동자들까지도 가끔 차를 홀짝일 수 있게 된다. 이때 질 낮은 녹차에서 발효된 홍차로 전환되기도 했으며, 홍차를 점심과 저녁 사이에 즐기는 ‘Afternoon tea’ 습관이 정착되기도 했다. 즉, 영국식 홍차 문화의 원형(原型)이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이후 차 생활에 필요한 여건이 갖추어지면서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끽다의 문화가 널리 퍼져 마침내 ‘영국의 홍차 문화’가 만개한다.앞서 계속 설명했듯이 영국을 가장 대표하는 차는 홍차이다. 홍차란 80% 이상 발효된 차를 지칭하는데, 흥미롭게도 명칭은 동서양에서 각각 다르다. 동양에선 찻잎을 다 우려낸 음료 색깔이 붉어서 홍차(紅茶, red tea)라고 부르지만, 서양에선 제다한 찻잎이 검은색을 띠어 ‘블랙티(black tea)’라고 부른다. 명칭만 다른가 하면 또 그렇지만도 않고 선호되는 제조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영국 홍차 제조공정은 다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중국의 전통적인 방법을 개량하여 기계화한 방법인 순오소독스(orthodox)가 있다. 인도가 영국에게 지배당할 때, 아삼에서의 영국인은 중국식 홍차 가공법을 철저히 답습했으나, 기후와 환경의 차이에 적응하기 위해 가공 과정을 개선하게 되었다. 이처럼 채엽, 위조, 유념, 산화, 있다.
    인문/어학| 2021.07.22| 11페이지| 2,000원| 조회(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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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소외된 채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
    소외된 채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은유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돌베개, 2019)를 읽고〉오늘도 어딘가에서 사람이 죽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정말 비극이지만, 그 죽음으로 인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코미디이다. 대다수는 고인의 직업이나 신분 등에 따라 죽음의 귀천이 나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누가 죽었는지에 따라,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때로는 세상이 떠들썩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컨대, 10월 25일엔 삼성그룹 회장을 지냈던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손에 쥔 것이 많았던 분이 세상을 떠나니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고, ‘상속세’라는 키워드가 검색창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우리의 뇌리에 박혀있는 부고 소식은 대부분 연예인이나 재력가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즈음 세상을 떠난 사람은 단지 회장이나 유명인사들만이 아니다. 산업 재해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도 계실 것이고, 세상의 벼랑 끝에 몰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런 소외된 자들의 죽음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도 주위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바로 그런 소외된 채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을 다루며 사회에 간절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그중 우리에게 익숙하지 못한 특성화고 아이들의 노동 현실을 르포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내용을 요약한 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제시하면서 이를 토대로 전체적인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이 책은 크게 1,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인 김동준 군의 이야기와 그 주위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김동준 군은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바로 실습 현장으로 뛰어든 학생이었다. 그는 덩치가 매우 컸지만, 속은 판다 같은 성격으로 착하고 순했다. 그도 그런 성격 때문에 스스로 답답할 때가 많았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애썼다. 이런 노력은 그에게 특별한 불만이나 문제없이 학교 다닐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친구들과 대인관계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CJ 진천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고부터는 문제가 생긴다. 항상 모든 것을 불평 없이 수용하는 편이었던 동준 군에게 사회는 도무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 사회는 자신이 알던 것보다 꽤 어렵고 차가웠기 때문이다. 큰 포부를 가지고 취업했지만, 정작 동준 군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멸시였다. 직장 선후배 관계도 좋지 않았고, 일을 잘하지 못한다며 직접적인 멸시를 받을 뿐 아니라 구타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는 끝내 투신자살을 선택한다. 동준 군의 친구들도 그가 회사에 들어간 이후부터 우울한 얘기를 많이 했으며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느낌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시 이 사건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동준 군의 가족이었다. 아이의 자살에서 오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뿐더러, 그의 어머니와 이모는 특히 특성화고 출신 현장 실습생의 노동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는 결코 불우한 성장 환경이나 안타까운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노동 조건이 완벽히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들어가면서 생긴 비극일 뿐이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그의 소식을 듣고, 그의 과거나 집안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는 편견을 가졌다. 이 억측들은 유가족을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들었고, 이에 그들도 손을 놓고 있을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이모는 ‘특성화고 아이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일부러 시키지 않는 거예요. 순진하고 멍청하게 개처럼 일하길 바라는 거예요’라고 적나라하게 말하면서 동준 군의 회사와 적극적으로 싸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김기배 노무사가 등장해 더 전문적이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컨대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매몰찬 태도를 보이는 회사에게 산재 판정을 받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기배 노무사의 인터뷰에는 그런 산재 신청서를 포함한 극적인 과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또 이 폭력적이고 거친 현실에 대한 그의 폭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2부에서는 김동준 군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사람은 이민호 군의 아버지였다. 이민호 군은 부상으로 집에서 쉬고 있었지만, 기계를 다룰 사람이 없어 불려가 일하던 와중 적재 프레스에 몸이 끼어 안타깝게 사망했다. 문제는 회사에서 기계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특별한 조치 없이 공장을 돌렸으며, 그런 기계를 가장 미숙한 아이에게 맡겼다는 점이다. 게다가 회사는 사건이 터지자 민호 군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끝내 산재 판정은 받아냈지만, 민호 군의 아버지는 이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은 부자가 아니면 애 키울 나라가 아니에요. 돈 없으면 애 낳고 저세상 보내는 거예요’라며 현실에 대한 환멸을 보였다. 다음은 노동인권 교육을 다니는 특성화고 담임 장윤호 교사가 등장한다. 그는 현장 실습생이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담임선생님인 만큼, 그들의 현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의 근무 환경을 보면 그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열악한 부분을 최전선에서 만나고 있지만, 사회나 회사가 선생님의 개입과 산재 인정 등을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선생님에 이어 취직을 앞둔 특성화고 학생도 등장한다. 그 두 학생의 특성화고 진학 사정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특성화고를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거의 다 반대했다는 사실은 같았다. 그런 좋지 않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단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안타까운 죽음의 선례가 쌓이자 학생들도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예컨대 이 두 학생도 선배로부터 미리 노동 환경이나 임금 등의 정보를 모으는 등 억울함을 당하지 않기 위해 체계적이고 현명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외에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내고 있는 이은아 씨의 노조 활동 등과 관련된 인터뷰가 책에 실리기도 했다.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특성화고 출신 직장인도 딱 한 명뿐인데, 그마저도 사회에서 만난 사이라 그들의 취업 준비과정이나 취업 직후의 노동 환경은 전혀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필자는 오랜만에 그에게 연락해보았고 그는 흔쾌히 지나간 이야기를 해주었다. 개인사라서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그가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던 해도 아직 그들의 노동이 주목받지 못할 때였다고 한다. 그도 김동준 군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근무 환경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해야 했었고, 그저 고생했었다며 말을 아끼는 태도가 필자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게다가 그는 본인의 공장에선 산재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다니는 공장에선 가끔 사상자도 나왔다고 말을 덧붙였다.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니 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독후감/창작| 2021.07.22| 3페이지| 1,500원| 조회(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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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을 통해 바라본 올바른 돌봄 문화
    반려동물을 통해 바라본 올바른 돌봄 문화‘XX야, 내 강아지 다른 집 보냈다.’ 나는 최근 석 달 동안 다른 두 친구에게서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한 친구는 생각보다 집을 비워야 할 때가 많아 강아지를 돌봐주지 못해 4개월 만에 다른 집으로 분양 보내야 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친구가 슬퍼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또 다른 친구는 이제 아기 때만큼 이쁘지 않다며 3개월 만에 분양을 보냈다. 그 당시엔 내가 욕설을 날렸지만, 후에 그녀가 동물병원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분양 보낸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 두 친구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꼬꾸라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다음번에는 네가 정말 새로운 가족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 잘 판단해서 데리고 와’라는 말을 남겼다. 그들은 겸연쩍어 갑자기 방언이 터졌지만, 내가 날린 말은 그들이 더 신중했다면 서로의 가슴 속에 아픔이 새겨질 일도 없었을 거라는 회심의 한 방이었다.1991년 한국에서 동물보호법이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은 점차 보편화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총 591만 가구로 국민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그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버려지거나 재분양 가는 동물의 수는 더 급격히 늘고 있다. 2019년에는 일평균 365마리, 20년에는 9월까지 일평균 372마리가 주인의 손을 떠났다. 이는 충동적 구매에 따른 변심이나 질병 발생 시 경제적 부담 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둘 다 모두 사전에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항들 아닌가? 아니면 판단력이 그토록 흐려질 만큼 너무나도 예쁘게 풀 메이크업한 아이를 보았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데려온 후 생각하는 주먹구구식 돌봄으론 그들을 잘 키울 수 있을 리 없다는 점이다.한편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에서는 체계적인 돌봄 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한국은 이미 심각한 사회재생산 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 핵심은 돌봄의 위기였다. 그나마 남의 손을 빌려 서로를 돌보던 사회가 감염병을 만나니 혼돈의 도가니로 변했다. 감염병 확산 우려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에 의해 사회적 돌봄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자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인은 몰라도, 남의 손을 반드시 요구하는 아기나 환자 또는 노인이 있는 가정에서 코로나는 그야말로 재앙의 시발점이었다. 이처럼 코로나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우리가 유지해온 돌봄 문화가 쿠크다스에 불과했음을 가르쳐주었다. 한순간에 쿠크다스를 단단하게 만드는 게 가능할까? 갑자기 그렇게 만든다고 한들 사람들이 소화나 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앞서 설명했듯이 아직 현 한국에서 올바른 돌봄 문화가 정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우리 사회가 돌봄 문화의 급진적 체계화를 추진하기보다,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쌓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성급하게 흉내만 냈다가는 또 코로나 같은 예상치 못한 재앙에 쿠크다스처럼 부서질 뿐이다. 나는 그 중 돌봄 중심 사회로의 첫 번째 전환으로 반려동물을 꼽고자 한다.
    인문/어학| 2021.07.22| 2페이지| 1,500원| 조회(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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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중국어 교육 실태와 중국어 교육의 올바른 방향성 - 서면 중국어에서 실용 중국어로
    현재 한국은 무한경쟁 시대가 도래하여 모두가 높은 스펙을 갈망하는 상황이다. 이런 글로벌한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외국어의 중요성은 점점 커져만 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외국어 가운데 영어는 이미 현대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외국어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힌-영어공용화 시대에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어는 경쟁 시대에서 출세와 성공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재를 걸러내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1)그러나 오랜 기간 수많은 양질의 영어 연구와 교육이 우리에게 제공되면서 현대인들의 영어는 상향평준화 되었고, 영어는 단지 기본적인 여과 도구 중 하나가 되었다. 그 후, 무한경쟁 시대는 항상 우리에게 평균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듯이 최근 많은 한국인이 자신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제2외국어를 필수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최근 꾸준한 상승세를 자랑하고 있는 외국어 중 하나가 바로 중국어이다. ‘작년 공자학원총부 한고국제를 대표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개최한 제 3회 HSK 중국 유학·기업 박람회를 참가한 이군봉 기술감독은 “한국은 현재 중국의 가장 큰 유학생 원천국으로서, 작년 중국어 시험 응시자 수는 14만 명을 넘어서 올해 더 늘어날 전망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2)이처럼 중국의 경제 위상이 세계적으로 점점 높아지면서 학생들과 직장인들의 중국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사람들에게 중국어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 기관들도 굉장히 다양하고 보편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필자는 현재 한국의 중국어 교육은 대중화되었으나 실용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외운 문장도 막상 원어민하고 부딪히면 쉽게 뱉어지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중국어 학습자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 있기에 이제는 해결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인문/어학| 2021.07.22| 5페이지| 1,500원| 조회(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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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두 문학가의 근대화 사상 - 루쉰과 후스를 중심으로
    위대한 두 문학가의 근대화 사상 - 루쉰과 후스를 중심으로과거 중국은 그야말로 혼란스러웠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위대한 발전에 공헌한 인물은 많았지만, 이 중에는 의외로 루쉰(魯迅)과 후스(胡適) 라는 두 ‘문학가’도 있었다. 이 두 지식인은 대격변기에 중국 내 ‘고질적 문제’와 고투했던 계몽사상가이면서 동시에 자유를 추구했던 사상가로서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하지만 봉건성과 근대성, 계몽과 자유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 두 사람은 많은 부분 비교된다. 여기서 근대성이란 근대시대와 관련된 이념·양식 등을 가리키며, 근대화라는 역사적 과정의 구체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근대화는 근대성을 추구하고 이행해 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일종의 ‘혁명’이 된다. 이 반복되는 혁명은 과거 혼란스러웠던 중국을 크게 안정시켜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의 혁명 즉 근대화를 연구하여, 도대체 어떠한 사상과 방법을 기반으로 민중들을 깨우쳤는지 알아볼 가치가 있다.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이 바로 당시 근대화 사상을 제창해 민중을 계몽시킨 대표적인 인물들이며, 마침 이번 수업 중 언급되었으니,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을 조금 더 자세히 탐구해보겠다. 그들은 각자 어떤 근대화 사상을 주장했고, 어떤 부분에서 이견을 가졌을까? 또 한편 문학가로서 그들은 문학이 근대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보았을까? 이 글에서는 중국 근대화에 대한 그들 각자의 사상과 각자가 주장한 근대화 과정에서 문학의 역할을 알아본 후, 그 차이를 제시하고자 한다. 또 필자는 그들의 사상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각종 서적 등을 활용하였음을 미리 밝힌다.서양문명의 서세동점과 근대화로의 폭우 속에 어린아이처럼 노출되어 있던 20세기 초엽의 중국, 루쉰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린 자세를 가졌고, 자기 발전을 향한 끊임없는 존재의 이동과 학습, 첨예한 현실인식의 과정을 통해 근대적 주체로서의 의식을 키웠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자신이 지향해야 할 가치의 방향을 서서히 결정해갔다. 그것은 당시의 수많은 지식인과 사상가가 지향하였던 방향으로부터 배우고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이 지닌 중국 현실에의 부적합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자기 고유의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보편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개성과 인성’ 문제를 고민하였고, 실용과학의 급박한 현실 논리와 구국 논리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역사적·문화적인 안목으로 인간의 ‘정신’이 지닌 본질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각성한 ‘개인’, 각성한 ‘정신’의 구체적 요건으로서 근대적 사유의 기초인 주체성의 자각과 획득, 자아의 오성(悟性)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들었다. 또 이상적인 근대적 주체의 행동 양식으로서 인간성을 억압하는 모든 전통적 질서와 전 세계적인 힘의 폭력,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해 저항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역량 즉, 전투 정신을 실천적인 문제로 제기하였다. 이러한 근대의식의 근간에는 과학의 발전은 물론 인간과 역사의 발전에 대한 영원한 신뢰와 낙관, 혁명에 대한 강한 기대감이 흐르고 있었다.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왕후이는 루쉰이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공간을 창조하여 정치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형식의 창제는 역사와 생활을 관찰하는 독특한 시각을 창조하여 이전과 다른 세계관을 형성하니, 이를 곧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왕후이의 관점에서 보면 루쉰의 자주적 문단의 창조와 존재도 역시 정치적이다. 그럼 그가 정치에 개입하기 위해 문학을 썼다면,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실천 방향은 어떠했을까? 루쉰 소설은 중국의 암흑사회 구조를 객관화시키는 것이고, 그것은 ‘진실한 소리내기’로서의 문학적 실천이었다. 이때 문학적 실천은 ‘계몽을 위한 선전’이 아니고 각성한 근대적 주체의 외침이다. ‘진실한 소리내기’란 현실의 모순을 정시할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은 현실의 모순을 문학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순을 가장 예리하게 반영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를 통해 비극적 정화를 가져오게 한다. 즉 독자는 그의 소설에 직접 참가함으로써 비로소 비극적 정화를 거쳐 새로운 도덕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점은 루쉰이 ‘역사에서 화해하지 못한 것은 소설에서 화해시켜주고 보답이 없는 것은 보답을 받게 하는’ 전통적인 ‘기만문예’를 비판한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근대적 주체의 확립을 구체적인 문학적 실천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공식문화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이데올로기 비판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중국의 근대적 문학 의식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후스는 5·4 신문화운동 시기 문학혁명과 개인주의, 자유주의 등을 중국에 소개하면서 근대화를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후스는 ‘실험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문화를 개조하고 신문화를 건설하려고 했다. 이때 개조와 건설의 원동력이 바로 ‘개인주의’였다. 그는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들이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면서 자유롭게 생활해 나갈 때, 그 사회는 비로소 건강해진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독립된 인격의 소유자만이 현실에 맹종하지 않는 비판 정신을 가질 수 있고, 바로 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정신만이 중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사회발전의 힘으로 설정했던 ‘개인주의’는 허위적이고 독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개인들이 비판 정신에 기초하여 당면한 사회현실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써 사회를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건전한 ‘개인주의’였다. 여기서 후스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다면, 그에게서 중국 개혁을 위한 계몽은 이론적으로 ‘전반서화론’에 근거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구의 선진적 문화를 전적으로 수용하여 발전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론으로, 그는 전면적 서구화 외에 중국 문화의 미래가 없다고 믿었다. 물론 과거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은 사회진화론에 기초하여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문화적 열등감을 조장하는 한편 자신들의 문명을 보편적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후스가 서구적 근대화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맹목적인 서구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문명을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이원화시켜 인식하는 중국인들의 태도였다. 특히 서양문명을 물질적이라며 무시하고, 동양문명은 정신적이라서 숭배한다는 자기 기만적인 태도를 경계했다. 그는 이미 모든 문명과 문화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겸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국수주의와 절충주의에 사로잡힌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문화 의식이 개혁되지 않고는 새로운 근대문화의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후스는 실험주의의 ‘역사적 태도와 실험적 태도’를 문학에 적용한 ‘역사적 문학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제창하고 실천했다. 그의 혁명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문학진화론은 ‘문학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며, 그 변화 속에서 진화가 일어난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진보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퇴보한다’라는 변화와 진보의 문학사관에 기초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는 이 진화론을 근거로 문언문학의 절대성과 불변성, 고정성을 부정하고 백화에 기초한 새로운 문학을 건설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처음부터 ‘백화는 문언이 퇴화한 것이 아니라 문언이 진화한 것’이라는 문체 의식과 ‘백화문학이 중국 문학의 정통’이라는 문학관을 핵심적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고대 문언문으로는 새로운 근대적 사상과 가치의 전파와 유교적 전통문화의 비판이라는 신문화운동 시기의 역사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었다. 개인의 주체적 감정과 사상은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씌어질 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후스가 문언문을 타파하고 백화문을 신문화의 전달 수단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역사적 문학진화론’은 당시 새로운 지식인들의 요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론적 대응이었으며, ‘백화문학’ 주장은 바로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실천적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백화시 운동 과정에서 제시했던 시론들은 신문화운동 시기의 해방과 자유의 정신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의 사상체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인 실험주의·개인주의·자유주의는 모두 ‘사회진화론’이란 같은 뿌리에서 가지를 치고 나온 것들이었다. 즉 후스는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서구의 근대를 수용해야 한다는 사상을 지니고 있었고, 문체개혁에 이 사상적 요소들을 결부시켜 계몽과 근대화를 실현하고자 했다.
    인문/어학| 2021.07.22| 3페이지| 1,500원| 조회(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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