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잘못만난 연개소문,그리고 시대의 운을 타고난 김춘추연개소문과 김춘추에 관한 엇갈린 평가가 있다. 각각 극과 극의 해당하는 상반된 평가를 그 둘은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극과 극에 달하는 평가는 당시 시대 상황에 따른 이상적 정치의 모습을 평가자들의 가치관에 따라 반영해 평가한 것이다. 먼저,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는 신라왕실의 후예이고 본관이 경주이다. 이런 그의 사상에는 신라 왕실의 후손이라는 점은 그의 사상에 없지 않아 그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에서 김춘추에게 후한 평가를 주었을 만도 하다. 그 당시 금나라의 세력이 강해지자 보수파이자 기존지배계층이었던 이자겸은 금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원했다. 그와 정치적 의견이 다른 묘청이 난을 일으켰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김부식은 왕을 죽이고 기존 세력을 없앴던 연개소문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동국통감을 작성하였을 시기 국제 정세는 평화로운 편이지만 당시 외교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조선은 명나라에 우호적인 외교를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 동국통감의 저자는 평화로운 시대에 정변을 일으키는 연개소문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을 것이고, 김춘추와 같은 외교방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일제강점기 시기 신채호와 박은식과 같은 역사가들은 민족의 독립을 원하였다. 일제가 조선에 침략하고 조선이 힘이 없는 그 시기 신채호와 박은식 같은 역사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주적인 모습을 보여 줄 인물을 찾아 억압된 현실 속에서 자주정신이 깃든 조선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할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연개소문은 그들이 원하는 정치적 영웅상 뿐만 아니라 자주적인 아이콘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은 당나라와의 외교정치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자주적인 정치를 펼친 연개소문을 당연히 높이 평가하였을 것이다. 이런 평가를 하는 그들의 가치관 내면에 당시 억압된 시대 상황에서 민족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바람이 내포되었을 것이다. 연개소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가들은 당시의 억압된 시대상황에서 민족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반대로 김춘추는 그들의 눈에 외세의 힘에 의존하고 외세에게 빌붙는 인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손진태의 경우 그의 신민족주의 이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국제사회에서 세계화를 따르되 우리민족의 고유성을 지키자는 그의 의견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관점으로 보아 연개소문는 부정적으로 평가하였을 것이다. 김춘추와 같은 경우, 당나라의 동맹에서 신라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혼란스러운 한반도 땅에서 세력을 넓힌 김춘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을 것이다.이와 같은 평가는 개인의 사상과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평가한 것이기에 각각의 평가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연개소문과 김춘추는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그저 최선의 선택을 한 것 뿐이고 연개소문의 경우 시대 상황이 그에게 유리하지 않게 돌아간 것 뿐이고, 김춘추는 시대 상황이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간 것 뿐이라 생각된다.-시대를 잘못만난 연개소문고구려에서 당나라와 전쟁에 대한 입장차이가 있었다. 영류왕은 온건파로 거의 매해마다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등 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연개소문은 영류왕과 반대입장을 가진 강경파였다. 정치적인 입장이 서로 다른 둘은 대립되었고, 영류왕은 연개소문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 연개소문이 난신적자라는 이런 평가가 있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입장에서 왕을 죽이지 않았으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과 영류왕과 온건파를 제거해야만 그의 정치적 입장을 실천이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켰고 혼란한 가운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친족들을 포함한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시켰다. 그의 행동은 귀족들에게 큰 반발을 샀고, 독재정권에 불만을 품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성과를 얻어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울 무언가를 그는 찾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춘추는 연개소문에게 외교를 시도했고, 연개소문은 죽령 이북 땅을 돌려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였다. 그의 행동으로 보아 고구려의 위상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신라의 동맹을 거절한 연개소문이 거절한 타당한 배경들이 몇 가지 있다. 당시 신라는 삼국 중에서 힘이 약하였고, 고구려가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의자왕의 직위 초기 백제의 국력은 탄탄하였고, 신라보다 백제가 고구려에게 더 큰 이익을 줄 것처럼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백제와 왜, 그리고 당을 둘러싼 북방민족과 힘을 합치면 연개소문의 외교는 승산이 있어보였을 것이다. 힘이 없는 신라, 그리고 당을 둘러싼 북방민족과 손을 잡은 고구려의 외교정책은 당과 신라를 압박하며 주도권을 가질 것이라고 연개소문은 판단하였다. 그의 판단은 옳았을 수도 있겠지만 변수가 작용하였다.당시 집권초기 의자왕은 탄탄한 국력과 강력한 왕권을 가졌지만 집권 15년을 넘기면서 그는 사치와 유흥을 즐기며 재정을 돌보지 않았다. 당연히 백제의 국력은 약해져갔고, 이러한 상황에서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백제는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오자 뒤늦게 군사를 마련하여 대비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로써 고구려는 동맹군을 잃어버렸다. 또 다른 변수는 북방민족들의 세력악화이다. 북방민족이 당에게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면서 고구려의 입지는 불리해졌다.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대해 연개소문은 예견하지 못하였고 그가 처한 환경에서 최상의 외교적 선택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드라마, 편견 없는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다.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 우리 일상생활에서 너무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너무 깊숙이 차지하고 있어서 그 존재가 당연한 듯이 여겨진다. 너무 친숙하고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를 전통 예술의 관점에서는 드라마는 예술로 취급하지 않는다.먼저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기준은 무엇인가?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활동이다. 이런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활동의 기준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그 기준의 중심축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공교롭게도 그 중심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들이다. 특정 소수 집단은 그들의 기준을 오직 전통적인 예술로 기준을 삼는다. 이런 그들에게 드라마가 천박한 매체라는 비하를 들으며 평가 절하되는 것은 새로운 예술에 대한 기존 세대의 거부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쌓아올린 틀을 무시하고 학문의 전통을 깨려고 하는 드라마를 고운 시선으로 볼 리가 없다.하지만 예술은 고지식한 학문이 아니다. 다수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다수와 소통해야 한다. 예술은 단순히 자신의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예술은 소통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문화적 요소들을 반영하고 인간이 소통하는 것이고, 창조자와 수용자가 예술을 사이에 두고 심리적으로 소통하는 행위이다. 즉, 지금 현실세계에서 어떤 예술보다 ‘드라마’라는 것은 이 조건을 그 어떤 예술보다도 가장 잘 충족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대중화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드라마는 예술이라는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을 받게 되었다.드라마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텔레비전라는 매개체이다. 일상에 가장 가까이 있고, 우리가 일상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습득하는 곳 중에 하나인 텔레비전에 대한 편견은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까지도 이어진다. 가장 친숙하지만 위협적일 수도 있다는 텔레비전에 대한 인식은 드라마를 예술로 평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텔레비전은 가장 효과적인 전달매체라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보상자’라는 주홍글씨가 뒤따르는 것이 끊이지 않았다.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대중성이다. 대중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있다는 이유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이 영향력을 행사해서 대중의 인식을 가장 위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즉,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적합하지 않다. 이데올로기를 행사한다고 해서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인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듯이 대중을 급작스럽게 바꾸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또 텔레비전은 많은 대중들이 보고, 공공재의 성격을 띈다는 이유로 드라마는 교육적 기준에 서 벗어나면 사회악을 행하는 것처럼 간주된다. 이런 공공재적 성격으로 인해 드라마는 예술로써 적날하게 표현하면 오히려 비판을 받는다. 그 이유는 드라마의 가치가 교육적인 잣대에 올바른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것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본질로 돌아가는 질문을 하게 한다.지금 드라마가 겪고 있는 상황은 1900년대 초 연극이 겪었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당시 시대 교육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던 연극은 당시 시대과 드라마의 대우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예술을 예술자체로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은 또 하나의 예술에 대한 차별이다.이런 드라마는 그 유형과 매우 흡사한 영화와 많은 비교의 대상이 된다. 영화와 드라마는 많은 부분에서 공통된 부분도 있지만 차이점도 많다. 먼저 영화는 드라마보다 능동적인 행동의 필요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는 영화보다 더 수동적이다. 이와 같이 영화와 드라마는 몰입도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영화관에서 집중하여 관람할 수 있는 영화는 주로 가정에서 보는 드라마에 비해 몰입도가 높다.이와 같이 장소에 따라 몰입도의 차이가 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순간의 착각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돈을 지불하고 보았다는 인식이 분명한 것에 반해 드라마는 수신료를 당장은 내지 않기 때문에 몰입하는 수준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차이점의 절대적 우위의 기준이 영화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동등한 위치에서 차이점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하위항목으로 드라마는 여겨지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편견과 평가절하를 받고 있는 드라마는 그 어떤 예술보다도 수용자와 아주 긴밀하게 소통한다. 그 소통은 창조자와 수용자의 소통이기도 하고, 제1 의 수용자와 제 2의 수용자끼리의 소통이기도 하다. 가장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드라마 그 자체가 소통하려는 틈을 염두해 두었다는 점이다. 수용자와의 소통이 염두해 놓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독특한 것이고,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술은 공동체 사회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 대화라고 말한 윌리엄스의 말처럼 예술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소통하는 것을 가장 잘 들어낸다. 즉, 그것은 드라마인 것이다. 그 어떤 예술보다 지금 사회의 감정 구조를 가장 낱낱이 보여주는 것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내용 요약 과학 과 철학2 내용 요약 목차 핵심어 , 주제어 그리고 그 의미 내용 요약 저자의 핵심 정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장점 , 단점 함께 생각해볼 문제2 내용 요약 1 . 핵심어 , 주제어 그리고 그 의미2 내용 요약 1. 핵심어 , 주제어 그리고 그 의미 핵심어 , 주제어 그리고 그 의미 애플 ( 사과 ) 단순함 조화로움 절제미 신플라톤주의 자연을 보다 단순하게 파악2 내용 요약 2 . 내용 요약2 내용 요약 스티브 잡스 연설 사과에 담긴 의미 2. 내용 요약스티브 잡스 연설 신념을 가져라 사랑과 상실 죽음에 대한 생각 2. 내용 요약내용 요약근대과학 혁신 앨런 튜링 IT 혁신 아이작 뉴턴 ① 혁신② 단순 신플라톤주의 →보다 단순하게 만들려하는 주의 천동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3 법칙③ 결 론 혁신 단순 창조 무한한 상상 인류의 원동력단순 혁신 창조2 내용 요약 3 . 저자의 핵심 정보 ( 주장 )2 내용 요약 자연에서 수학적 단순함을 찾는 것을 추구해서 세상을 바꾼 것처럼 잡스는 수학적 단순함과 통합을 추구하여 세상을 바꾸었다 .2 내용 요약 4 . 새롭게 알게 된 사실 !2 사과 사과모양로 고 뉴 턴 신플라톤주의 수학적 규칙 조화로움 단순함 앨렌튜링 금단의 과일 스피노 자 폴 세잔2 신플라톤주의 → 혁명 천문학 혁명 역학 혁명 화학 혁명 발상의 기초 철학 혁 명 의 원동력 스티브 잡스 생리학 혁명2 내용 요약 6 . 함께 생각해볼 문제 ?2 내용 요약 수학적 단순함 , 조화등을 추구하는 신플라톤주의 가 앞으로 우리 삶에 어떤 영항 을 미칠까 ? ① ② ③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잡스의 말처럼 과거에 신플라톤주의 라는 철학이 없었더라면 현재사회 는 어떻게 되었을까 ? 스티브 잡스의 성공 요소에는 신플라톤주의 철학 말고 다른 요인이 있지 않을까 ?{nameOfApplication=Show}
The artist는 미셀 하자나비우스 감독 하에 만든 흑백영화이자 무성영화이다. 지금 현대에서 낯선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뛰어난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었기 때문이다.먼저, 이 영화는 무성영화이다. 무성영화는 1920년대 후반에 크게 흥행되었던 영화로 녹음된 소리가 없이 화면위주로 표현되었던 영화이다. 무성영화는 유성영화와 달리 소리를 유무에도 차이점이 있지만, 전개 속도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빠르고 긴박한 전개를 보여주는 무성영화는 지금 현대 영화와 속도감이 다르다. 그렇기에 무성배우 영화에 출현한 배우들은 지금 배우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현대 영화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세세한 감정과 표현을 전달하지만 무성영화 배우들은, 특히 남자 배우들은 액션 연기에 적합한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무성영화는 유성영화의 발전 전단계가 아닌 독자적인 예술의 한 장르를 담당하고 있다.유성영화는 1925년 위너브라더스가 바이타그라프를 인수받아 유성영화가 탄생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초기 유성영화는 자연스럽지 않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일치하지 않아 불안전한 완성도를 보였다. 또한 이미지 표현을 미학을 파괴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이미지와 사운드의 일치를 이루어 냈고, 무성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게 되었다. 사운드를 통해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렇게 유성영화 배우들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남성 배우, 관능적인 이미지를 가진 여자배우들이 출현을 하였고, 유성 영화 배우들은 이미지 뿐만 아니라 목소리 또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The artist'는 무성영화가 쇠퇴하고 유성영화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배경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남주인공인 조지는 1920년 당시 무성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배우이고, 여주인공은 새롭게 떠오르는 유성영화계의 배우이다. 이 둘은 영화배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소리, 자신의 목소리를 영화에서 낼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즉, 조지와 페피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갈림길에 서 있던 사람이고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인물들이다. 조지는 무성영화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지만, 결국 무성영화는 ‘소리’라는 요소가 들어간 유성영화에게 밀리게 되고 조지의 인생 곡선도 하락하게 된다. 반대로 페피는 새롭게 등장한 유성영화가 상승곡선을 그림에 따라 그녀의 인생도 활짝 펴지게 된다.이렇게 서로 다른 갈림길에 서 있는 인물들이 다른 길을 갈 것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페피, 그리고 내려가는 계단에 서 있는 조지의 모습이다. 이 장면은 다른 위치의 계단에 서 있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미래를 함축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무성영화와 유성영화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계단 외에도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과 표정도 이 장면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두운 옷을 입고 있는 조지, 그리고 밝은 옷을 입고 있는 페피. 또한 카메라를 통해 포착된 배우들의 표정연기 또한 이 장면에서 무시할 수 없다. 씁쓸하면서 미묘한 표정을 짓는 조지와 밝은 표정을 짓는 페피, 그들의 희비가 반대되는 것을 통해 감독이 시대적 갈림길에 놓인 그들, 그리고 각각의 영화가 어떻게 쇠퇴하고 발전할 것인지를 암시한다.이런 장면은 유성영화와 다르게 오직 장면만을 통해서 관객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한다. 관객이 직접적으로 감정에 개입하지는 않지만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그들이 처한 운명적인 아이러니를 감상할 수 있게 한다. 각각의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더욱더 부각하는 요소들이 있다. 많은 문학작품에서 나오듯이 ‘날씨’이다. ‘날씨’라는 것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쇠퇴하는 무성영화의 배우로서 맞이할 조지의 비참함을 비를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비 뿐만 아니라 어두운 이미지를 나열함으로써 인물의 심리를 관객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영화 중간에 조지와 페피의 상황이 대비되는 장면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서 있는 갈림길의 격차가 점점 더 심화됨을 점층적으로 표현하였다.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출현하는 것에 대해 호기심과 공포감을 가진다. 유성영화에 대한 출현 또한 무성영화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공포를 주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점을 ‘소리’라는 것을 통해 잘 표현하였다. 여기서 ‘소리’는 공포를 유발하는데, 무성영화를 상징하는 조지는 소리가 나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영화의 한 장면 중, 조지가 처한 환경은 소리가 나는데 정작 자신은 소리를 말할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조지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깃털은 조지의 공포감이 극도로 향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깃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포감을 극대화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영화 중간에 깃털을 제외하고 긴장을 유발하는 장치가 더 있다. 바로 카메라이다. 카메라를 사선으로 표현함으로써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투영하였다. 조지가 소리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는 것을 깃털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장면은 조지가 ‘소리’에 대한 트라우마와 공포심을 느낀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조지가 쇼윈도에서 양복을 바라보는 것을 저지하는 경찰의 입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나온다. 이를 통해 공포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준다.이 영화는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장면에서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직접 전달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문구를 통해 이러한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관객에게 보여줌으로 장면의 상황을 직접 표출함과 동시에 장면의 영상미를 더한다. 그 예 중 하나는“PLEASE SILENT BEHIND SCREEN"이다. ‘SILENT’는 영화관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것을 뜻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무성영화임을 내포하고 있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또 ”THIEF OF HER HEART."는 조지와 페피의 사랑이라는 감정과 선후배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을 문구를 통해 장면의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다.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구는 관객에게 감정이 직접 전달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지의 상황을 “LONELY STAR" 이라는 문구는 관객이 이 모든 상황을 한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인간,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하다.우리 삶에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과 인간이 주고 받는 말. 과연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인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실을 파해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묻혀져 있는 깊이감에 놀라게 된다. 그 묻혀져 있는 깊이감과 동시에 인간의 끝도 없는 이기심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인간은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해서 저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왜곡해서 정보를 받아드렸다는 것조차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에서 하는 모든 행동과 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한다. 그로인해 순수했던 진실을 감춰지고, 왜곡되고, 변형되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왜곡된 말들이 결국 진실을 감춰 결국에는 진실을 찾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한다. 결국 속고 속이는 세상, 바로 인간이 사는 세상이다.‘라쇼몽’이라는 작은 공간에 오고가는 대화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낱낱이 파해쳐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을 축소해서 보여준다.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 그리고 그 인간들끼리 만들어낸 세상을 말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놀라면서 영화를 보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이기심에 직접 대면하게 한다.‘모르겠다. 아무래도 모르겠어.’ 영화의 첫 부분의 장면에서 나무꾼과 스님은 넋이 나간채로 이 대화만을 반복한다. 이런 장면을 관객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장면은 관아로 바뀐다. 나무꾼의 증언에 따라 시점은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그 날로 후진에 간다. 뒤이어 나오는 의문의 물건들. ‘사무라이 모자, 여자 모자, 새끼줄 붉은 부적 주머니’ 관객으로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 영화의 내용에 직접 개입하여 능동적인 주체가 되도록 한다. 또한 재판장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인물들의 증언하는 모습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객관적인 판단을 요구하도록 하여 사건에 더 가까이 개입하게 만든다.사건과 연류된 주된 인물인 다조마루, 여자, 남자가 나오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다 남 탓을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 스스로 진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건을 왜곡해서 받아드려 결국 인간 스스로도 결국 진실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타조마루의 진술 장면이다.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타조마루의 앞에 두 사람이 지나갔다고 한다. 바람이 불었다고 말한 타조마루의 발언을 주목해야 한다. ‘만일 그때 바람만 안 불었어도 저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를 이은 발언,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를 죽일 마음은 없었다.’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바람으로 인해, 여자로 인해 발생한 일임을 말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인간 자신이 한 행동을 직접적으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왜곡해서 받아드림으로써 결국 인간이 자신에 대한 진실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는 상태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여자의 진술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다조마루와 여자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남자를 죽였다는 타조마루의 진술과는 달리 남편의 경멸어린 눈빛으로 인해 자신이 실신해서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본 관객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타조마루가 죽인 것인가? 여자가 죽인 것인가?’ 말이다. 여자가 증언하는 장면은 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관객의 의문을 더 강하게 들게 한다.다음은 무당을 통한 죽은 남자의 증언이다. 죽은 남자는 앞서 말한 두 사람의 증언과는 전혀 다른 증언을 한다. 이때 관객으로 하여금 나오지 않는 진실에 대한 더 깊은 의문을 던져준다. 이때, 남자는 여자의 추악함을 증언하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당을 통한 남자의 증언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라는 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죽은 사람이 증언을 하는 장면은 관객으로부터 진실의 객관성을 더욱 멀어지게 하여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렸다는 점이 아쉬웠다.증언하는 장면들을 통해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결국 진실조차도 왜곡해서 말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결국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고, 자신 스스로 왜곡해서 말하는 것조차 알지 못함을 담고 있다.마지막으로 다시 나온 나무꾼의 증언은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넘어 패닉과 혼란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았다던 나무꾼은 관객에게 객관적인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진실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는 소망을 주었다. 그러나 결국 단도를 훔쳤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한 위증임이 들통남으로 결국 행위의 주체인 자신과 다른 인간들까지 패닉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기적이 인간의 모습이 결국 자신임을 아는 동시에 혼란에 빠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들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