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세1.1 강세의 정의단어에 있어서 뜻을 갈라내는 강약(强弱)과 고저(高低), 우리가 말을 할 때 똑같은 높이로, 또는 똑같은 세기로 말하기는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조금 높게, 조금 세게 발음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조금 낮게, 조금 약하게 발음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자연스러운 발화행위에는 이러한 자질이 분절음소 위에 얹혀서 실현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러한 사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언어는 아마 없을 것이다.강세(强勢, stress) : 연속된 음성에서 어떤 부분을 강하게 발음하는 일.강세란 단어의 어느 한 위치에 높은 성조가 있는 것을 말한다. 어군 또는 한 단어의 발음에 있어서 각 음절의 상대적 강도를 일컫는다. 문장에 있어서의 강세를 문장 강세라고 하고, 단어에 있어서의 가세를 어강세, 음절에 있어서의 강세를 음절 강세라고 한다.1.2 악센트에 대하여한국어에서는 강세 현상은 있어도 강세 악센트는 없다고 보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악센트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하도록 하겠다.일단, 악센트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강세악센트이며 다른 하나는 고저악센트이다. 이 둘의 차이는 성대의 진동 방식에 관계된다. 즉, 강세악센트는 성대 진폭의 대소에 따라서 구분되며, 고저악센트는 성대의 진동수의 다소에 관계되어 진동수가 많을수록 높은 소리가 난다. 강약악센트는 강세라고도 불린다.이러한 악센트는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소리를 균등한 힘으로 발음하기가 오히려 힘이 들어 어떠한 부분의 소리를 강하게 내는 수도 있고, 섬세한 어감의 표현으로, 즉 강조하거나 화자의 심적 상태를 나타내기 위하여 자주 이용되는데 이는 특히 의미를 판별할 경우에 중요하게 취급된다.강세악센트를 특히 '스트레스'라 하는데, 이 스트레스의 단위 내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를 강약언어(强弱言語:stress language)라 하며 영어나 러시아어가 이에 속한다. 예를 들어, 영어의 content는 스트레스가 앞음절에 있을 경우에는 '내용'이라는 뜻이며 뒤음절에 있을 경우에는 '만족하다'의 의미가 된다.강세가 어의분화에 관여하여 음소와 같은 기능을 가지느냐의 여부는 언어에 따라 다르며, 이때에 그 강세가 몇 가지 있으며, 어떻게 그 기능을 드러내느냐도 언어에 따라 다르다. 우리 국어에는 강세가 뜻을 분화하는 일이 없으므로 강약악센트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세를 가진 언어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영어와 독일어 등이다. 영어의 강세는 보통 4단계 즉 제1강세, 제2강세, 제3강세, 약세 등이 그것이며, [']?[^]?[`]?[˘] 등과 같이 표기하거나, 1?2?3?4와 같이 숫자로 표기하기도 한다.또한, 고저악센트는 '피치'라고도 하는데, 피치가 각 음절에 얹히는 경우와 문장 전체에 얹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피치의 차이가 단어 혹은 문장의 의미를 분화할 때, 그 언어들은 각각 억양언어(抑揚言語:intonation language)·성조언어(聲調言語:tone language)로 불린다. 억양언어의 예로는 영어·프랑스어 등을 들 수 있다.고저악센트는 엄격한 성조(聲調)와 구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저악센트나 성조가 다같이 몇 개의 고저를 어사(語詞)의 음절에 배정하고 그것으로 어의를 분화함은 같은점이나, 다만 그때에 그 배정된 고저의 기능이 한결같이 드러나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양자를 구별하게 된다. 음절에 대한 고저의 배정이 일 대 일로 되어 있고, 그 배정된 고저가 또한 한결같이 일 대 일의 기능을 발휘할 때에는 이를 성조라 하고, 음절에 대한 고저의 배정이 일 대 일로 되어있다 하더라도 그 배정된 고저의 기능이 일 대 일일 수 없을 때에는 이를 고저악센트 혹은 어사성조(word pitch accent)라고 한다.현대국어의 경상도 방언과 함경도 방언에는 고저악센트(혹은 어사성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것이 이들 방언의 한 특징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방언의 고저악센트는 후기 중세국어의 방점표기와 규칙적인 대응을 보여주고 있는 데에서 대개 중세국어와 동일 방사 원점에서 발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세어가 평성 · 거성 · 상성의 세가지 높이를 그 표기상에 보여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방언에서도 표면상으로는 세 가지 높이, 즉 저조 · 고조 · 선저후 고조(혹은 장조)를 구별하고 있다.1.3 강세의 유형전통적인 강세 외에 강세에는 생리적인 관련 아래에서 생기는 것과 심리적인 관련 아래에서 생기는 것이 있다. 한국어의 경우 장모음 음절에 강세가 오게 되는 것 비음을 종성으로 가지는 음절 및 경음 ? 격음을 초성으로 가지는 음절에 강세가 오게 되는 것은 생리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다. 심리적인 강세는 감정 표현의 효과를 위한 것으로 개념이 중심이 되는 말 문장에 새롭게 등장하는 말 또는 앞, 뒤 문장에 쓰인 말과 대립되는 말에 강세가 오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 어법적인 것으로 흔히 명령 ? 금지 등은 강세로 써서 표현되며 의문 ? 추측 등은 약세로 써서 표현된다.영어와 한국어 강세의 특징을 분석한 연구(구희산1995)에 의하면 영어강세는 분절음의 음향자질, 음절 유형, 하강 현상, 강세 부여, 규칙리듬, 규칙 통사적 기능 등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 낱말강세가 실현되나 한국어 낱말 악센트는 영어보다 단순하여 분절음의 특성, 음절 유형, 하강 현상 등과 같은 요인에 따라 실현된다고 하였다. 또한 한국어 표준어 기본발화에서 고저 우세 위치는 고정적이기 때문에 음절의 수에 관계없이 두 번째 음절에 나타나게 되며 그 이유는 한국어의 기본적인 발화 단위인 구절이나 문장의 억양 형태가 상승 하강조이기 때문에 낱말 단위인 고저도 상승하강조가 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중세국어의 모음체계 연구목 차1. 서론12. 이숭녕.22.1. 훈민정음 제자해로 본 모음22.2. 술어의 개념32.3. 모음체계42.4. 한계53. 김완진63.1. 김완진(1963)63.2. 김완진(1978)94. 이기문124.1 모음추이를 통해 본 모음체계 124.2. 한계155. 김주필165.1. 모음관련 음운현상과 모음체계165.2. 후기 중세국어의 모음체계185.3. 후기 중세국어 모음체계의 특성196. 비교216.1. 중세국어의 모음 음가 추정 방법 216.2. ‘ㆍ’의 음가 설정226.3. 모음체계236.4. 모음조화의 유형247. 결론241. 서 론.중세국어에 관해서는, 시기를 언제로 볼 것 인지부터 시작해서 체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다양하고 복잡한 논의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중세국어의 모음 체계에 대한 논의는 한 편의 연구사를 쓸 만큼 깊이 있고 방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한편 중세국어는 고대국어와 근대, 그리고 현대국어의 과도기적 시기에 위치하기 때문에 전후시대의 국어학 연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현대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이번 논고는 지금까지의 중세국어 모음체계의 대표적인 논의들을 학자위주로 다뤄볼 것이다. 이에 따라 중세국어의 모음 체계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이해를 시도해보고자 하며, 대표되는 각 학자들의 논의에 한계점까지 지적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자 한다.제1장에서는 훈민정음에 의존한 이숭녕의 모음체계에 대한 배경개념과 함께 한계점을 알아볼 것이며, 2장에서는 김완진의 중세국어 모음체계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김완진은 1963년 모음체계를 연구해 발표한 후 이기문(1972)에 비판을 받아 다시 ‘김완진(1978)’으로 수정했기 때문에 3장에서 크게 둘로 나누어 알아볼 것이다. 4장에서는 모음추이를 통해 중세국어의 모음체계를 이해한 이기문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볼 것이며, 한계점을 지적할 것이다. 5장에서는 김주필의 논문을, 그리고 6장에서는 거시적으로 학자들 간의 모음체5세기의 모음체계가 7모음체계였음을 확립했다.또, ‘아’에 대해서는 ‘ㅏ與ㆍ同異口張’이란 훈민정음 제자해를 인용하여 ‘아’는 설축(蹙)과 성심도에서 ‘?’음에 가깝고, 구장이 다르다는 것은 개구도가 다르다는 것으로 ‘아’음이 개구도가 최대인 저모음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ㅜ與ㅡ同異口蹙’과 ‘ㅓ與ㅡ同異口張’이라는 훈민정음 제자해 기술에 의해 ‘으’음이 ‘어, 우’의 간음이고, ‘어’음이 ‘으’음 근처임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음은 모든 모음 중 설면(舌面)이 가장 펼쳐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전설 모음이고 고모음으로 훈민정음 규정의 설불축은 당연한 표현이라고 본다.한편 이숭녕(1949c)은 중세국어의 모음조화를 고모음과 저모음의 두 계열의 대립이 있는 수평적 모음조화로 보았는데 이와 관련한 문제점은 한계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2.4. 한계위에서 살펴본 이숭녕의 모음체계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첫째, 이숭녕은 중세국어 단모음의 음가를 ‘훈민정음’의 술어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추정하였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훈민정음에 제시된 술어는 정확한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없다. 즉,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며 그에 따라 모음체계를 볼 수 있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숭녕의 논의는 훈민정음에 제시된 술어의 의미를 현대 언어학의 술어로 해석할 때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난점이 있다.둘째, 이숭녕의 모음도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배치된다는 한계를 가진다. 위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이숭녕은 ‘ㅣ, ㅡ, ㆍ’를 각각 전설, 중설, 후설 모음으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모음도에서는 그러한 체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또 모음조화를 ‘고설 대 저설’의 대립으로 인식하면서 수평적 조화체계로 바라본 것과 달리 모음도에서는 오히려 사선적 조화와 가깝게 인식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역시 모순이라 할 수 있겠다.또, 이숭녕(1949c)은 모음조화가 주로 어간 모음과 접미사 모음과의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한 법칙이라고 정의도 음향성에서 후설모음으로 보고 모음을 i ㅏ’의 변화ㄷㆍㄹ(月) >달 / ㅅㆍ랑(愛)> 사랑‘ㆍ > ㅡ’의 변화하ㄴㆍㄹ(天)>하늘 / ㄱㆍㄷㆍㄱ (萬)>ㄱㆍ득‘ㆍ > ㅡ’의 변화ㄱㆍㅁㆍㄹ(早)>ㄱㆍ믈>가물 / ㅎㆍㅁㆍㄹ며(況)>ㅎㆍ믈며>하물며3.2. 김 완 진(1978)김완진(1963) 이후 김완진(1978)에서는 이기문(1972b:134)에서 모음조화를 지나치게 의식한 모음체계라는 비판에 대한 반론과 더불어 ‘縮’이 혀의 위치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현대 국어의 중설 모음들을 관찰한 결과, 개구도가 커질수록 설축의 정도도 비례하여 심화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김완진(1978)의 논고를 김완진(1963)과 달라진 ‘縮’ 개념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살펴보도록 하겠다.3.2.1. 5모음 체계의 상정김완진(1978)에서는 김완진(1963)에서 보인 모음 체계를 부정하고 새롭게 ‘사선(斜線)대립’을 보이는 체계를 설정했다. 사선체계는 구개적 대립을 바탕으로 하는 체계로, 모음조화를 설명하려는 입장에서 기원한다.[그림3] 김완진(1978)의 모음도 이어으(우)ㅇㆍ(오)아[그림3]의 모음도는 ‘우, 오’를 재음소화 하는 방식을 택함으로 해서 기본 5모음 체계를 상정했다는 점이 특이하다.김완진(1978)은 ‘縮’이 ‘혀의 위치’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증명에서부터 출발한다. 때로 중설모음이 ‘설소축’을 보이고 후설모음이 ‘설축’을 보이는 일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모음들에서 보는 우연한 일치이지 ‘축’이라는 개념과 ‘혀의 위치’라는 개념간의 등가성을 보장하는 것일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 좋은 예로 현대국어의 ‘에’와 ‘애’가 있다. ‘에’나 ‘애’는 전설모음이지만 이 모음들을 발음 할 때 혀가 상당히 움츠러드는 것을 관찰 할 수 있는데, 그 ‘축’의 정도가 ‘으’의 경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과 또한 ‘에’, ‘애’ 사이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개구도와 혀의 위치에 따라 그 상승치로써 설축의 정 있어서 이것으로 모음들의 연쇄적 이동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한편, 이기문(1969, 1972)은 전기중세국어의 ‘?’가 원순성을 지닌 후설모음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다음의 ‘?’ 재구에서 알 수 있다.이를 통해 이기문(1969, 1972)은 다음과 같은 중세국어 모음체계도를 제시한다.l ㅜ ㅗㅓ ㅡ ?ㅏ4.1.2. 후기중세국어 모음체계이기문(1968b, 1969, 1972)은 조선관역어와 사성통해를 통해 후기중세국어 모음체계도를 재구하면서 전기중세 국어 모음체계도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전기중세국어와 후기중세국어의 모음체계도가 차이나는 이유에 대해 이기문(1969, 1972)은 전설 중모음 위치에 있었던 ‘어’가 중설 중모음 이치로 밀리면서 모음추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이기문(1968b, 1969, 1972)은 조선관역어를 통해 ‘ㅗ’와 ‘ㅜ’는 [o]와 [u]로 구별되고, ‘어’의 음가는 김방한(1964)과 다르게 ‘ㅓ’의 음가가 [?]였기 때문에 ‘ㅕ’[j?]로서 e를 표사했음이 분명하다고 보며 전설 쪽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또한 ‘ㅡ’의 음가는 사성통해에서 중국음[I](支韻)에 대응하고 있는 점을 들어 현대국어와 같은 중설 고모음일 것으로 후기 중세국어 ‘ㅡ’의 음가를 추정하고 있다. 한편 ‘ㆍ’가 후설 중모음이었다가 모음추이에 밀려 후기중세국어에는 후설 저모음으로 밀려난 것으로 본다. 이기문(1968b)는 ‘ㆍ’의 음가 이치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데, ‘ㆍ’의 위치는 음성적으로 ‘아’보다는 다소 높은 이치에서 실현된 후설 모음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아’의 음가 위치는 전기중세국어와 동일하게 보았다. 다음은 이기문(1969, 1972)에서 제시한 후기중세국어 모음체계도이다.l ㅡ ㅜㅓ ㅗㅏ ?이기문(1969, 1972)은 전기중세국어와 후기중세국어 모음체계가 차이가 나는 것을 ‘어’의 중설화 즉 ‘e>?’를 단초로 하여 모음추이가 13세기 이후 15세기 이전, 즉 대체로 14세기에 일어나 후기 중세.또한 양모음 ‘ㆍ, ㅗ, ㅏ’와 음모음 ‘ㅡ, ㅜ, ㅓ’사이에 엄격한 모음조화가 지켜진 와중에 모음조화의 일반 경향을 따르지 않은 ‘ㅕ’의 경우를 들어서 ‘ㅓ’의 특성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5.2. 후기 중세국어의 모음체계김주필은 이 시기의 원순모음화와 비원순모음화 현상을 통해 ‘ㅡ’와 ‘ㅜ’, ‘ ㆍ’와 ‘ㅗ’는 원순성 자질에서만 차이가 있고 개구도와 혀의 전후 위치는 같았던 것으로 추정한다.‘ㅜ’와 ‘ㅗ’가 개구도 상에서는 각각 ‘ㅡ, ㆍ’와 같거나 유사하다고 가정한다면, 이 모음들의 개구도 자질은 ‘ㆍ’의 변화를 통하여 추정할 수 있다. ‘ㆍ’와 ‘ㅡ’의 교체에 의한 비어두음절에서의 ‘ㆍ>ㅡ’ 변화라는 제1단계 변화와 ‘ㆍ’와 ‘ㅏ’의 교체에 의한 어두음절에서의 ‘ㆍ>ㅏ’의 변화라는 제2단계 변화를 통해 ‘ㅡ, ㆍ, ㅏ’의 위치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ㆍ를 가운데 두고 그 양쪽에 ㅡ와 ㅏ가 각각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6)고모음 ㅡ ㅜ중모음 ㆍ ㅗ저모음 ㅏ후기 중세국어의 7단모음 중에서 전설, 비원순, 고모음에 위치했다는 데 이견이 없는 ‘ㅣ’를 제외하면, 후기 중세국어의 모음체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ㅓ’가 된다.김주필은 ‘ㅓ’의 특성으로 ‘*y?’의 재구형에 적용했던 ‘*y? > y?’ 변화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y?’의 재구와 ‘*y? > y?’ 변화에 대해서는 그 시기와 조건을 분명히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여 활용하지 않았다.단지 ‘ㆍ→ㅗ, ㅡ → ㅜ’ 교체와 외국어 음의 전사에서 보여주는 ‘ㅓ’의 특성이 mid-front wide sound였던 사실을 바탕으로 ‘ㅓ’를 전설·중모음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자 한 이기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ㅣ’와 ‘ㅓ’를 추가하여, 후기 중세국어의 모음체계를 다음과 같이 봤다.(7)ㅣㅡㅜㅓㆍㅗㅏ(7)은 원순모음화와 비원순모음화의 현상, ‘ㆍ’의 변화 등을 바탕으로 현대언어학적 접근 방법으로 재구한 결과이다. 그런데 모음에 대한 의 설명은
「김수영 전집」 One Page Report 4하…… 그림자가 없다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요릿집엘 들어가고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영화관에도 가고애교도 있다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우리들의 전선(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보이지는 않는다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 좋은 것도 아니다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풋나물을 먹을 때도시장에 가서 비린 생성 냄새를 맡을 때도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사이렌 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하…… 그림자가 없다하…… 그렇다……하…… 그렇지……아암 그렇구말구…… 그렇지 그래……응응…… 응…… 뭐?아 그래…… 그래 그래.어릴 적 만화 속에 나오는 악당은 언제나 우리의 적이라는 그림자가 뚜렷했다. 우리는 항상 누가 적인지 구분할 수 있었고 그들을 이겨내는 우리의 영웅을 응원하며 나 또한 악당을 이겨내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만화 밖의 세상은 그런 그림자가 없다.이런 세상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의 적은 때로는 애처로운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하다. 평범하게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그 싸움은 언제나 지속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끊이지 않고 싸워야한다.사실 나는 그런 세태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래서 적을 내편인줄 알고 지내다가 배신을 당하기도하고 그게 배신인 줄도 모르고 지내기도 했다. 김수영의 시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 줬다면 조금은 더 똑똑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그래서인지 이 시가 많이 위로가 되고 고맙다. 우리가 싸워내야 할 적이 누군지, 우리가 싸워야할 때는 언제인지 담담한 말투로 말해준다. 동정이나 위로의 말 없이. 특히 마지막 행이 ‘그렇지, 응, 그래그래……’하는 것이 마치 내가 힘들어 투정 부리는 말을 들어주는 것 같아서 가장 좋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 One Page Report작품을 읽는 내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고 읽었다. 박준은 대체 어떤 사람인걸까 안형은 왜 박준의 소설을 싣지 않았을까 의사는 박준에 대해 왜 그런 말을 할까 뒤에 당시 시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떤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며 읽었다. 하지만 내가 읽으면서 생각했던 방향과 소설이 전개되는 방향이 달라서인지 내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이청준의 「소문의 벽」도 좋지만 나는 작가 박준의 , 그리고 ‘G’에 대한 이야기도 진짜 소설로 읽어보고 싶다. 내 생각에 박준이 현실에서 소설가였다면 굉장한 팬이 됐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청준의 「소문의 벽」보다는 박준의 소설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됐다.의 ‘그’는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가사의 잠까지는 아니지만 스트레스 받았을 때 마음이 고되어 지칠 때는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마치 죽은 사람같이 모든 것과 단절되는 것처럼 나도 외부의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고 싶어진다. 나는 ‘그’가 가사의 잠을 잘 때 기운을 차리기 위한 휴식이라고 봤다. 나 역시도 나 홀로 있을 때 기운이 충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얼추 예상은 했다. 이청준의 소설에서 ‘나’는 ‘그’가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그가 깨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어나지 “않”은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그 순간이 너무 달콤하게 느껴져서 바깥세상이 원래보다 더 어둡고 험난한 곳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시간을 끝내기가 망설여지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고, 그렇다고 외부와 완전히 연을 끊고 살아가기엔 용기가 없어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오곤 한다. 그냥 우리가 보기에 ‘그’는 마치 죽은 것 같겠지만 나는 그가 그 가사의 잠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소설가 박준이 정신병원에 간 이유는 전짓불들을 피해서 ‘그’와 같은 가사의 잠을 자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신병원에서 박준은 더 많고 집착적인 추궁과 전짓불들을 마주해야했다. ‘그’가 꾸지람을 피해 잤던 가사의 잠 속에서 더 많은 꾸지람을 듣게 된다면, 내가 나 홀로 있던 그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고 마주쳐야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아마 매우 두려울 것이다. 도망갈 곳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모든 일에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두 번 다시는 가사의 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가사의 잠이 나쁘기만 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는 뜻으로 저자인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낸 말이다.제1권은 저자인 모어와 베타 힐테스 그리고 라파엘의 대화로 당시 영국 사회의 악폐를 지적한다.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엄격한 법과 정작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남의 노동으로만 풍족하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부를 축적할 생각만 하는 귀족들, 전쟁을 좋아하는 군주 그리고 양털 값이 올랐다고 밭과 땅을 목장으로 넓혀가는 지주와 사유재산제도를 비판하고 있다.제2권은 라파엘이 유토피아에서 경험한 이상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이뤄져있다. 유토피아는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인 해협에 반달처럼 떠있는 섬이다. 이 나라의 기본은 농업이다. 농기구들이 잘 갖춰진 농촌에는 사람들이 교대로 와 농사를 짓는다. 시장은 시민들의 선출로 뽑힌 공무원들이 다시 시장을 뽑는데, 시장직은 독재의 혐의가 없는 한 계속된다. 시민들은 모두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업 이외의 다른 기술을 갖고 있다. 노동시간은 6시간이고 게으른 자는 추방된다. 여가는 각자의 자유지만 거의 학문이나 음악을 하며 보낸다. 혈연 중심의 가족은 일정 수 이상이 되면 가족 수가 모자라는 다른 가정으로 보내진다. 결혼은 여자 18세 남자 22세가 되어야 가능하고 상대에게 나체로 선을 보이는 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며 이혼은 원칙적으로 허가되지 않는다. 모든 재산이 공유되며 보석은 어린 아이나 갖고 노는 것이고, 특히 금은 노예나 전과자를 표시하는 장신구로 쓰인다. 다른 지방을 여행하려면 관리에게 허가를 받아 그 기한과 구역의 범위 내에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또한 타국에서 전쟁을 걸어오지 않는 한 전쟁을 피하며 자국이 침략당하지 않는 한 출병하지 않는다. 전쟁을 하더라도 가능한 한 용병을 쓴다. 유토피아인들의 목표는 쾌락이다. 그러나 이 쾌락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사냥과 같은 잔인한 행위를 싫어하고 실속 없는 명예를 경시하며 내세를 위해 현세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어리석게 생각한다.유토피아라는 것을 처음 접한 때는 중학생 때다. 리바이어던이니 뭐니 하며 머리 아픈 사회에 대한 개념을 배우다가 접한 단어라서 당연히 그 책도 머리 아프고 재미없을 것이라고 여겨 절대로 읽지 않았다. 내게 ‘유토피아’란 그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살기 좋은 곳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과제를 위해 책을 펼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별로였다. 잘 읽히지도 않고.. 특히 제1권은 너무 지루하여 제2권을 읽는 시간의 두 배 이상 걸린 것 같다. 그래도 제2권은 꽤나 읽을 만했다. 유토피아라는 나라의 자세하고 세세한 묘사 덕분에 내가 직접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제1권을 읽을 때는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1권에서 라파엘이 하는 얘기만 들으면 유토피아는 참 살기 좋은 나라다. 전쟁을 일으키는 군주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다. 약간 공산주의의 느낌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행복하게만 산다면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2권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먼저 여행에 대한 부분이다. 나는 여행을 매우 좋아하는데 여행의 묘미는 계획 없는 떠남과 예상치 못한 사건의 발생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는 관리에게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데다가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한과 범위가 정해져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노예가 되고 만다. 또 여섯 시간의 노동시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여가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심지어 여가시간에도 사람들은 학문을 하거나 음악을 한다.또 결혼을 할 때는 그 사람과 직접 만나보고 겪어보는 것 보다는 선을 통해서 나체의 몸과 인품 등을 따져보고 결혼해야하니 더욱 유토피아에 가고 싶지 않아졌다. 인품과 성품이 아무리 좋아도 나와 맞지 않는다면 함께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사람이 아무리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한다고 해도 이렇게 하나하나 촘촘히 짜인 규칙들 속에서 과연 인간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지 정말 정신적인 쾌락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규칙들에 모두 순응하고 잘 지켜내는 유토피아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 어쩌면 그런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노예가 될 것이 두려워서 지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은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