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이번 음악회가 내 첫 음악회이다. 그동안 관심이 가지 않아서, 악기 소리를 직접 듣는 행 위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생긴 과오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기왕에 스케일이 화려한 공연을 볼 기회가 생기길 기대했다. 그러던 중 하이든 오라토리오를 공연한다는 정보를 얻고, 곧바로 예매했다. 일찌감치 도착해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어떤 사람들이 관객으로 왔는 지 살펴보았다. 관객들은 동네 어르신들이 많았고 ‘클래식 음악회’라 하면 떠오르는 한껏 차려 입은 차림새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 모임의 친목회 역할을 하는 지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지역 음악회를 친숙하고 일상적인 이벤트처럼 여기는 듯했다.
은유의 연쇄몇 년 전부터 인가 넷상에서 으레 쓰이던 말로 '암 걸린다.'라는 표현이 있다. 답답한 일이 생기거나 어떤 일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사용되는데, 이는 암이라는 질병이 가진 치명성과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도 할 수 없다는 통제 불가능성에 근거하여 발화되는 메타포이다. 요즘에 들어서는 암을 겪는 실제 당사자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의 일환으로 소셜 미디어와 같이 공공성이 담긴 곳에서는 사용이 줄었으나, 여전히 게임 속 채팅창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 내에서는 이러한 메타포가 공격적으로 사용되곤 한다. 이는 사람들이 특정 질병에 대한 인식이 담긴 메타포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은유로서의 질병』에 따르면 많은 문학 작품과 정치적 수사 속에서 질병이 특정 의미를 지닌 메타포로서 쓰였다. 너무나도 다양한 질병들이 메타포의 소재로 투입되었다. 결핵으로 시작해서 흑사병, 매독, 암, AIDS에 이르기까지 그 메타포도 시대에 따라 유행이 달라진다. 질병 메타포가 가장 신랄하게 표현된 영역은 정치적 수사이다.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널리 쓰였다. 예컨대 1919년 히틀러의 연설문 속에서 유태인들은 유럽 사회 속에 퍼진 매독 혹은 암으로 비유되었고, 트로츠키가 1929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추방되며 스탈린주의를 공산주의의 콜레라, 매독, 암으로 비유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매독 등과 같은 감염성 질환에 대한 비유는 줄고, '암'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암'과 'AIDS'가 서로 반대되지만 한 편으로 유사한 특성을 가진 것으로 모순적으로 이해되며 메타포를 생산해낸다. 정치적 적(또는 정치적 신념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소수자적 집단)을 '암'으로 비유하여 비난하거나, 암을 외과적인 제거 대상으로 설정하여 문제적인 부분으로 삼아 그것을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이용된다면, 'AIDS'는 내부의 적을 찾아내기 위해 구성원을 검열하려는 언어적 체계를 갖는다. 암은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그를 제거하는 것은 곧 망가진 신체를 복구할 사명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AIDS는 환자 스스로가 원인을 알고 있다고 여겨져, 그 자체로 오염된 대상이 되어 사회적으로 격리 당한다. 공통적으로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메타포이므로 이는 인간이 자연과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완벽히 통제 하에 둘 수 있다는 근대적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질병은 '국가 발전'의 반대편에 있는 집단이 가진 부정적 특성을 대리하는 것으로 대상화된다. 은유를 위해서는 질병은 신비로우면서 동시에 두려운 적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에 맞서 군사주의적 언어로 가득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나아가 질병의 은유는 건강한 신체를 모든 인간 활동—특히, 지식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정치적이거나 의료적인 행위의 측면—의 주체로 놓고, (건강하지 못한) 질병을 가진 신체는 통제하고 해결하거나 심지어는 제거해야 할 객체로 선언된다. 결국에 “건강함”은 신체 자본으로 변형되어 그 자체로 위계를 만들어 낼 힘을 얻는다. 암은 외과적으로 제거 되어야 하며, 모든 질병은 인간의 신체에서 치료되어야 한다. 치료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치료 과정을 가득 채운 언어들이 매우 군사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수전 손택이 분명히 제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언어는 그대로 정치적 수사들에 투영된다.어떤 질병에서 파생되는 인식과 메타포는 그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IDS는 병명이 아닌 HIV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 의학적 조건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그 자체로 질병이라고 간주되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모든 질병이 근대 이전의 ‘역병’과 같다고 여기는 감염의 공포는 예방의학의 발전으로 현대에서 창궐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감소한 유행병이 아닌, 다른 질병에게도 프레임을 덧씌우고 환자(또는 보균자)를 배제하려는 논의로 확장된다. 이는 오염의 원인으로 질병을 지목하고, 질병의 특질을 메타포 속에 함축 시켜 타자를 정의하는 일련의 추방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과정이다. 내부의 적을 질병으로 빗대거나, 질병을 가진 특정집단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만큼 곧바로 피부에 와 닿는 감각적인 말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휠씬 큰 위험을 가지고 있다. 신체, 그 중에서도 감각계의 수준에서 불러일으켜진 혐오의 정서는 더욱 강력한 거부의식을 몰고 온다.질병의 은유는 수전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펴낸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로서도 유효한 수사(修辭) 전략이며, 무엇보다 동원하기 쉬운 은유이다. 질병 자체에 남아있는 대상화의 낙인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는 끊임없이 소비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여전히 AIDS는 남성 동성애자를 혐오하기 위한 단골 수단이 되었고, 상품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늙어감’(aging) 역시 질병과 같은 인간 문명사회의 경계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이미 많은 발전국가가 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시점에서, 늙어감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현상으로 바라보거나 추하고 불행한 모습의 상징으로만 읽어 낸다면, 노인의 늙은 삶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배제된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신체 활동이 가능한 노인들을 위해 열린 공간은 교회와 광화문 광장이 전부인 세상에서, 그들도 주류 사회에서 어느샌가 쫓겨난 난민인 셈이다. 그리고 강남역 살인사건과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 등의 중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점화되는 정신장애인 범죄에 대한 논의는 실제 범죄 통계, 의료복지 시스템의 허점, 정신장애인의 일상을 무시한 채 ‘조현병’을 사회의 위협으로 재탄생 시킨다. —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도 그에 못지않게 미디어에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정신장애(질환)’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싸워 이겨내야 할 악(惡)으로 지명하여, 하나의 메타포로서 사용하게 된다. 정신장애도 다른 질병처럼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요구되는 정책과 인식 개선은, 환자를 향할지도 모르는 정신질환에 대한 “비하”에 가로막혀 제대로 공적 담론에서 다뤄지지 않는다.메타포들이 또 다른 질병의 이름을 등에 업고 활개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전 손택의 말대로 "가장 진실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질병을 다루고 겪어내"기 위해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저항"하는 것이다. 은유의 형식으로 질병을 겪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어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차별하거나, 질병이 가질 '난치성'과 ‘위험성’을 심각하게 과장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은유를 폭로하고, 비판하고, 물고 늘어져, 완전히 쓸모 없게 만들"어야 한다. 아파도 살아갈 수 있고, 충분히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며, 질병을 안고 갈 신체의 소유인들을 주체적 삶과 동떨어진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만 한다. 그로부터 질병에 따라붙는 상징과 그 상징에서 생산되는 은유를 덜어낼 수 있다. 앞으로 만들어 가야할 질병에 대한 언어는 어떤 질병을 적으로 규정하는 '군사적 은유'에 쓰이기 보다는, 질병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내 삶 전체를 희귀 질환과 함께한 만큼 나 또한 이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이 ‘사무라이(侍)’를 떠올릴 때, 허리 한 춤에 찬 긴 일본도와 할복(腹切り)이 가장 먼저 상상된다. 나아가 그에 수반되는 도덕 규범인 '무사도(武士道)' 역시 무사계급의 발전사 속에서 성문화(成文化)되고 체화된 사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타의 일본적 전통 가운데에서도 특히 ‘무사도’라는 사상은 일본의 근 대화 과정에서 서구를 타자화하며 재구성되고 체계화된 산물이다. 근대 일본의 목표는 일본이 서구와 판 이한 ‘비문명적 사회’가 아니라는 증명과, 서구와 다른 '일본적인 것'—화혼양재(和魂洋才)론에 근거하여 주로 ‘정신적인 요소’와 이어진—의 발견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교육가 니토베 이나조(新渡戸 稲造)가 1900년 미국에서 출판한 『무사도(武士道, Bushido: The soul of Japan)』―이하 『부시도』―는 일본이 비문명적인 아시아와 다른 공간1임을 서구 사회가 인식하는 것에 공헌한다.『부시도』의 저술 배경은 니토베가 벨기에 법학자 라블레이(M. de Laveleye) 교수로부터 질문을 받은 것에서 출발한다. 서구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여 도덕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종교교육이 없는 일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도덕교육이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던 것이다. 니토베는 그의 문제제기에 관 해 숙고하였고, 니토베가 떠올린 도덕교육의 원천은 ‘무사도’였다.2 그리고 ‘무사도’와 일본의 봉건제를 함 께 서술하여 서구와의 역사적 동질성3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부시도』의 출간은 서구 사회는 물론이고 일본 내부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이는 니토베가 서구 교육을 받은 엘리트라는 점도 있지만, 『부 시도』가 근대 일본이 추구하던 ‘서구 타자화 작업’에 부합하는 저술이었다는 점도 있다. 당시 메이지 정부 는 국내의 반전(反戰) 분위기4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징병제에 기초한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부시도』 속에서 묘사된 ‘무사도’를 일본 고유의 정신(大和魂, やまとだましい)으 로 내세워, 러일전쟁을 앞두고 국민의 사기를 북돋우고 집결시키는 정치적 운동에 동원한다.5
디지털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환경을 이어주는 기술과 그로부터 만들 어진 플랫폼에 접근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플랫폼’은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수요를 만족시키는 다양 한 수단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다. 플랫폼은 가상 공간을 기반으로 공간의 제한을 넘어 설계 되는 한편, 물리적인 접근을 전제로 하는 장치의 형태로 등장한다. 이때 플랫폼을 통해 오프라인-온 라인의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구간은 시민이 ‘소비자’로 전환될 때이다.특정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플랫폼에 접속함으로써 오프라인 소비 공간은 실체적인 소 비자와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 도시 시스템 내부에서 일상을 보내는 실천으로 작동한다. 실 제로 소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디지털 장치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플랫폼의 한 축을 구성한다. 디지털 도시에서 플랫폼은 이미 사람들의 생활과 분리할 수 없는 일상적인 요소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플랫폼 기술이 이용자에게 가져다 주는 ‘편리함’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으 로 흔하게 인식된다.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접근은 일상 속에 녹아 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접 근’ 그 자체의 성립은 곧 디지털 도시에서 동등한 시민으로서 인정받는 조건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어떤 플랫폼으로 접근하고 사용하는 전체 과정에 있어서 누군가가 배제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으며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소비’는 도시공간을 일상 영역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된 경제적 행위이다. 도시 공간에서 소비자를 경제 주체로 설정하는 작업은 소비 행위의 실천적 내용을 ‘개인의 권리’로 상상할 수 있는 의식적 전환의 토대가 된다. 경영 전략의 적용 대상으로서 소비자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된다.
2021년 5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게시되었다. 그로부터 22일이 지난 6월 14일을 기준으로 10만 명의 동의를 충족하여, 2020년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과 함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되어 심사를 받게 된다.차별금지법은 2007년 참여 정부 시기, 당시 법무부가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최초 발의되었다. 그러나 초기의 차별금지법이 입법되지 못한 것은 기독교계를 비롯한 반대 집단의 영향도 있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안에 포함된 시정명령권과 이행강제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이 빠진 미흡한 법안이라는 시민사회계의 반대 이유도 있었다. 이후 여러 차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입법되지 못했다. 한편, 차별금지법 반대 의견의 중추적 위치에 놓인 주요 세력으로서 보수 개신교계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가톨릭도 인권 측면에서 차별금지법의 입법에는 동의하지만,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취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의 표명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으로 입장을 개진하는 세력으로서 보수 개신교는 실체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여기서 특정 종교 집단의 의견에 대한 비판이 아닌,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 세력이 현재까지 어떤 정치적 이슈를 중심으로 입장을 표명하였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제에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이 영향력의 기반은 무엇인지, 특히 정치계와 갈등을 빚었던 다른 의제보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된 사항에 훨씬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지 살피고자 한다. 2018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한 기독교 인구는 27.6%로 전체 응답자의 약 1/4을 차지한다. 기독교 인구 내부에서 보수 성향의 개신교 인구를 추산햐면 그 수는 더욱 적을 것이다. 한편 ‘종교없음’으로 응답한 사람은 5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