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정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동서양의 다리, 실크로드
    동서양의 다리, 실크로드우리들은 보통 비단길(Silk Road)이라고 일컫는 실크로드를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 간에 비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역을 하면서 정치ㆍ경제ㆍ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실크로드는 단순한 선이 아니라 거미줄 같은 연결망을 지닌 네트워크로 볼 수 있다. 시안, 하서주랑,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이스탄불, 로마를 잇는 길이며 그 사이사이마다 중국문명, 북인도문명, 아랍문명, 페르시아문명, 유럽문명 등 다양한 문화와 문명을 만나게 된다. 이렇듯 실크로드를 통해 인류는 과거부터 모든 방향으로 펼쳐진 단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기존의 문명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는 로마를 낳았고, 로마는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을 낳았으며.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은 르네상스를 낳았고, 르네상스는 계몽주의 시대를 낳았고, 계몽주의 시대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을 낳았다. 이어 산업은 민주주의와 만나 미국을 낳고 생존권, 자유권, 행복 추구권을 구면했다.”처럼 단순히 인과관계에 따라 서술할 뿐이다. 이런 사관에서 벗어나 세계를 새롭게 인식해본다면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볼 수 있는 실크로드를 단순히 길로만 보는 것이 아닌 인류의 문명의 발전과 역사의 발전 양상을 담고 있는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바라본다면 어떨까?우선 실크로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실크로드란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 간에 비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역을 하면서 정치ㆍ경제ㆍ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의 총칭이다. 중국 중원 지방에서 시작하여 허시후이랑을 가로질러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 가장자리를 따라 파미르 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르는 길이다. 하지만 실크로드라는 말은 130여년 전인 근세에 들어서야 사용되었는데, 이 명칭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리히트 호펜은 1868~1872년에 중국 각지를 답사하고, 1877~1912년까지 『중국(China)』이란 책 5권을 찬술했다. 이 책 제1권의 후반부에 동서교류사를 개괄하면서 실크로드라고 명명한 이유가 나온다. 그 이유는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 두 강 사이에 있는 트란스옥시아나 지역과 서북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물품이 비단이였기 때문이다.그 후 스웨덴의 허턴과 영국의 스타인 등에 의해 중앙아시아 각지뿐 아니라 지중해 동안에 위치한 시리아에서도 중국의 견직 유물이 다량 발굴되었다. 이를 근거로 독일의 동양학자 알베르트 헤르만은 1910년에 이 실크로드를 시리아까지로 연장하였다. 이 실크로드는 주로 중앙아시아 일원에 점재한 여러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이루어진 길이므로 일명 ‘오아시스로’라고도 하였다.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양학자들은 오아시스로를 통한 동서교류 연구를 심화하여, 중국에서부터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지나 터키의 이스탄불과 로마까지 연결하여 장장 1만 2천km에 달하는 이 길을 동서간의 문화통로와 교역로로 규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의 범위를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지대를 지나는 초원로와, 지중해로부터 홍해 · 아라비아 해 · 인도양을 지나 중국 남해에 이르는 남해로까지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 실크로드의 3대 통로(간선) 중 남해로의 명명 유래는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점이 있는바 수정되어야 한다. 원래 ‘남해로’란 이름은 이 루트가 남방에 위치해 있고, 또 그 길이 중국의 남해에까지 이르는 바닷길이라는 이유에서 그렇게 명명되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이른바 ‘남해로’라 불리는 이 해로가 중국의 남해를 넘어서 태평양 건너 미주에까지 연장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종래의 ‘남해로’란 명칭은 적절치 못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환지구적으로 연결된 이 바닷길은 범칭적인 의미에서 ‘해로’로 개칭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실크로드 3개 간선의 정확한 명칭은 ‘초원로’와 ‘오아시스로’ ‘해로’가 된다.실크로드란 원래 중국 비단의 유럽 수출로에서 연유된 조어였으나, 그 개념이 확대된 결과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하나의 상징적인 아칭으로 변하게 된다. 사실상 초원로나 해로는 물론이거니와, 오아시스로도 그 길을 따라 비단이 교류품의 주종으로 오고간 것은 역사상 짧은 기간이었을 뿐, 여러 가지 교역품이나 문물, 문화가 오랫동안 교류된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실크로드는 비단의 일방적인 대서방 수출로 인해 이름이 지어졌고, 또 비단이 로마제국(특히 말엽)에서 큰 인기를 모은 진귀품으로서, 그 진가를 기리기 위해서 그 명칭이 고수되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명칭은 분명히 유럽 중심주의 문명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진정한 문명교류 차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란 이름이 시종 존속되어온 것은 바로 그 상징성 때문이다. 기원전 7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생한 농경과 목축업 및 토기와 방적기술 등 원시문명이 이 길을 따라 각지에 전파되었으며,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각각 기원전 6000년경과 4000년경에 발생한 채도도 이 길을 따라 동서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이 시기 이전인 선사시대에 동서교류를 시사하는 최초의 유물로는 만여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너스상이 있다. 지금까지 유럽의 피레네 산맥 북방으로부터 바이칼호 부근에 이르는 광할한 지역의 20여 곳에서 수백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시기의 문명이동은 일방적이고 단향적인 이동으로 상호교류의 형태는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교류는 역사시대 전반기에도 지속되었는데 기원전 8~7세기 무렵 오아시스로나 초원로, 해로를 통한 교류의 흔적이 유물뿐만 아니라 문헌기록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으므로 이 시기를 실크로드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이때부터 시작된 실크로드는 18세기에 이르러 초원로와 오아시스로는 폐로가 되버린다. 근대적인 교통수단이 발명되고 근대적인 민족국가들의 출현으로 자유이동이 제약됨으로써 이 두 통로의 사용이 불필요를 넘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2500년간 맥을 이어온 실크로드의 변화과정을 추적해보면 크게 개척기, 번영기, 쇠퇴기의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개척기는 기원전 8~7세기에 스키타이가 초원로를 개척한 때부터 시작해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있었던 장건의 서역창공과 로마인들의 동방초행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번영기는 기원후 중국 비단이 다량 서양으로 전파된 때부터 중국 당대와 아랍-이슬람제국의 활발한 동서교류와 몽골제국의 서정(西征)을 거쳐 17세기 신 · 구대륙간의 교역이 진행되기까지의 시기에 해당된다. 쇠퇴기는 18세기에 이르러 초원로와 오아시스로의 이용이 점차 퇴조 · 마비된 시기다.실크로드는 리히트호펜이 명명한 후 130여년동안 학계의 탐구로 인해 공간적 포괄 범위와 그 기능에 대한 인식의 폭이 점점 확대해왔다. 실크로드를 통해 전개된 교류의 실상이 점차적으로 밝혀짐에 따라 실크로드의 개념에 그만큼의 확대가 초래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으로 이러한 개념 확대는 교류에 대한 시야를 그만큼 넓혀주었다.실크로드는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비롯한 교통망의 총체로서, 이 교통망을 통해 인류문명은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교류되어왔다. 문명교류를 포함한 인류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실크로드가 담당 수행한 역할은 실로 막중하였다. 그 역할은 첫째로 명실상부한 문명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문명이란 교류를 통한 상보상조 가운데 발달할 수 있으며, 또 그 생명력을 발휘하게 된다. 예로부터 많은 문명들이 동서남북간에 서로 교류가 되어, 그것이 한 문명의 발생요인이 되거나 발달 촉진제가 되기도 하였다는 것은 많은 역사적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동기의 동방 전파는 아시아 민족의 문명 전환을 촉진하였으며, 제지법의 서방 전파는 유럽의 개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이러한 당위적인 문명교류가 현실화되려면 반드시 가교로서의 일정한 공간적 매체와 물리적 수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매체와 수단이 바로 실크로드다. 둘째로 그 역할은 세계사 전개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실크로드는 환지구적인 대동맥으로서, 이 길을 따라 중요한 세계사적 사변들이 전개되고, 수많은 민족들과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거듭되면서 인류역사는 전진해왔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창조자들에서 그리스 · 로마제국, 페르시아제국에서 이슬람제국, 선진시대의 중국부터 몽골제국, 석가시대의 인도에서 티무르제국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북방 유목민족들의 흥망에서부터 중앙아시아제국들의 출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모든 역사적 사변은 모두 실크로드를 따라 전개되고, 또 이 길에 의해 서로 연계되고 관련됨으로써 비로소 모든 변화와 발달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다리우스 · 알렉산드로스 · 한무제 · 당태종 · 이슬람 칼리파들 · 칭기즈칸 · 티무르 등 수많은 세계적 영웅호걸들이 이 길을 통해 다니며 역사를 개척해나갔다. 이 길이 없었던들 세계사의 전개는 인류가 일찍이 경험한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셋째로 그 역할은 세계 주요 문명의 산파역을 감당한 것이다. 원래 문명의 탄생은 교통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교통의 불편은 문명의 후진을 초래하며, 교통의 발달없이 문명의 창달이나 전파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러한 문명론의 바탕이 되는 것이 실크로드에서 실증되었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을 비롯한 황허 문명 · 인더스 문명 · 그리스로마 문명 · 스키타이 문명 · 불교문명 · 페르시아 문명 · 이슬람 문명 등 동서고금의 중요한 문명은 모두가 이 실크로드를 둘러싼 지역에서 발아한 다음, 이 길을 타고 개화 · 결실하였다. 그 가장 뚜렷한 일례가 바로 불교와 이슬람교가 이 길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전파되어 세계적인 종교가 된 사실이다.
    사회과학| 2021.12.09| 4페이지| 1,000원| 조회(225)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8일 목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58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