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알렌과 언더우드를 빼고는 한국의 초기 기독교 선교역사를 논할 수 없을 만큼 대표적인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 선교에 있어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그들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그런 대표적인 선교사 두 분 사이의 갈등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또 그것이 선교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게 되어서 이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2. 알렌의 사역보통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초기 선교사는 대표적으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등이 있는데 이들 보다 앞서서 한국에 정착하고 선교의 문을 연 선교사가 바로 알렌(Allen)이다. 그는 미국 북장로교 총회가 한국에 파송한 첫번째 의료 선교사로서 허드슨 테일러의 영향을 받아서 동양의 오지선교사로 헌신하고 중국에서 사역하다가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선교부에 의료선교사가 필요한 조선으로 보내줄 것을 청원, 허락을 받은 후 1884 년 9 월 20 일 제물포항으로 들어오게 된다. 미국 북장로교에서 의료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으나 조선의 쇄국정책으로 인하여 선교사 신분이 아닌 미국 공사 푸트(Foote)의 공관의 신분으로 오게 되었다.아직 서양 의술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초기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그 해 12 월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들이 주동한 ‘갑신정변’이 일어난다. 이 때 실세였던 민비의 조카인 고관대작 민영익이 중상을 입게 되는데 알렌의 수술로 민영익은 완치가 되고 알렌은 민영익과 고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된다. 당시 민영익의 상태는 매우 위중하여 치료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였으나 알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최선을 다해 수술을 하였고 그 결과 왕실의 신임을 얻어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자 왕립병원인 제중원이 설립되고 알렌은 제중원의 초대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