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우리네 이야기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소설을 다 읽고 나서 들었던 감정은 `공감`이었다. 장류진 작가는 바닥까지 슬퍼하고, 끝간데없이 분노하는 인물들은 그리지 않는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평범하다. 생존하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 이제 삼십 대가 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십대 초반 시절처럼 쉽게 일을 구하기도 힘들고, 주변에서 해고당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며, 노동은 생존의 문제라고 말이다. 포인트로 월급을 받고도 계속해서 직장을 다니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거북이알처럼 우리는 별의별 사건에도, 결국 일을 한다.“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우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힘들어하다가도, 다시 “어김없이 날은 밝”고 여전히 우리는 출근을 한다. 사실 직장을 마냥 즐겁게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많은 이들이 퇴사를 꿈꾸고,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고민한다. 나 또한 며칠 전까지 GOD의 명곡 “길”을 들으며 출퇴근을 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이라기엔 너무도 많은 감정이 든다. 「일의 기쁨과 슬픔」 속 두 주인공처럼, 너무도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상사 혹은 동료와 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치솟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거북이알 같은 상황에서 퇴사하지 않는 것을, 누구는 왜 그런 대접을 받아가며 계속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을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직장 욕을 안 하는 사람은 드물다. 당장 일을 그만두면, 좋아하는 “조성진 홍콩 리사이틀”도 예매할 수 없고, “월세”,“관리비”,“공과금”,“인터넷”,“핸드폰 요금이랑 할부금” 등을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도 완납”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가슴 속에 “오로라 엽서” 같은 아름다운 꿈을 서랍 안에 넣어두고, 일을 한다. 그것은 조롱 받을 일도, 무시 받을 일도 아니다.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고 남에게 기대지 않는 일은 어떤 것보다 숭고한 가치를 지닌다.나도 사실, 「탐페레 공항」의 화자처럼 서랍 깊숙이 넣어둔 꿈이 있다. 일을 하고, 고양이와 나 스스로를 먹여살리고, 퇴근하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꿈을 외면하며 살고 있다. 당장 일을 그만두면 나와 고양이의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에 꿈보다는 생계를 선택했다. 어떤 가치를 선택하든 나름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갈림길에 선다. 「탐페레 공항」의 화자처럼 가족의 의료비와 학자금 대출을 위해 일을 할 수도, 「다소 낮음」의 장우처럼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을 위해 조건이 맞지 않는 계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혀 뒤늦게 계약을 원할 수도 있다. 꿈과 현실, 직장내 인간관계, 소통, 성차별 등등 일하며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이 소설집 안에 꾹꾹 담겨 있다. 직장 생활을 한 작가는 나도 알고 있어, 이런 감정들을 느꼈지? 이런 어려움이 있었지? 하고, 섬세한 순간순간들을 포착해,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다. 사실 모두들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이런 감정들을 서로서로 도닥여주기란 어렵다. 이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는 지친 직장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나도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사회생활 경력이 십 년쯤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여기저기 이직을 하면서 온갖 군상들을 다 보았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의 화자처럼, 나는 그저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대했을 뿐인데 내게 들이대던 유부남과 계속 직장에서 얼굴을 맞대야하고, 「잘 살겠습니다」의 빛나 언니처럼 나한테 1을 주고 3을 바라는 눈치 없는 이와 부대끼며 지내야 하기도 한다. 일을 하는 것은 어쩌면 견디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돈을 받기 위해 타인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견디기도, 그들에게서 배우기도, 동정심을 느끼기도, 응원하기도 하며 지낸다. 인생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불가능하다.이 독후감을 쓰기 전, 이직 면접을 본 곳에서 합격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내일 출근을 해 지금 다니는 직장에 이번 달까지 근무해야할 것 같다고 말을 해야한다. 이제 합격은 그리 설레는 단어는 아니다. 간절히 바라던 대기업 입사도 아니고, 그저 그런 완벽히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곳보다는 더 나은 곳이길 바라며. 어쩌면 누군가는 도피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현직장은 너무 배울 것이 없어 조금 부족한 조건이더라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영화 감상문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2013년 처음 극장에서 를 관람한 후,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는 질문에 늘 를 첫번째로 떠올리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SF는 은유라는 말이 있다. 모든 허구 작품이 은유겠지만, 그 당시 내게 는 단순한 우주 영화로 다가오지 않았다. 슬픔과 상실, 애도에 관한 거대한 은유 같았다.주인공 라이언 스톤 박사는, 나사(NASA)의 임무 수행 중 사고로 인해(러시아의 위성 폭발) 모든 동료를 잃고 우주에 혼자 남게 된다. 그녀는 이미 세 살밖에 되지 않은 딸을 사고로 허무하게 잃은 경험이 있다. 운전 중에 사고 소식을 들었던 라이언은, 이후로 정처 없이 거리를 운전하며 지구에서의 시간을 견뎌냈다. 그랬기에 마지막까지 함께 남았던 동료 코왈스키를 떠나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둘 중 하나라도 살아 남기 위해서 손을 놓아야할 때, 코왈스키는 라이언을 위해 손을 놓고 우주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라이언의 다리 쪽에만 우주선과 연결되는 끈이 걸려 있었고, 코왈스키의 무게 때문에 점점 풀려가는 상황이었다.) 안된다고 놓지 말라고 소리치던 라이언은 코왈스키가 떠나자 꼭 데리러 가겠다고 연거푸 말한다. 이미 늦었다고, 거리가 너무 멀다고 코왈스키는 대답하지만, 인정하지 못하는 라이언에게 우주 속에서 그가 말한다. 놓을 줄도 알아야 해.결국 라이언은 혼자 남는다. 우주는 광폭하면서도 고요하다. 우리는 흔히 슬픔을 우주에 비유하곤 한다. 우주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지만 우주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애써서 들어온 소유즈에 연료가 부족하자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잠들기를 선택하려 한다. 그때 코왈스키가 나타난다. 그는 말한다. 알아. 여기가 좋긴 하지. 그냥 시스템 다 꺼버리고 불도 다 끄고 눈을 감으면 세상 모두가 잊혀지잖아. 여기선 상처줄 사람도 없고 안전하지. (중략) 계속 가기로 했으면 그 결심을 따라야지. 편하게 앉아서 드라이브 즐겨.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중략) 집에 갈 시간이야.코왈스키는 환영이었다. 그가 살아돌아올리 없었다. (결국 코왈스키가 한 말은 라이언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고 본다) 그가 사라진 뒤 라이언은 다시 한번 시도해보기로 한다. 지구에서 시뮬레이션으로 늘 실패했던 연착륙을 해보기로 말이다. 착륙을 위한 엔진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결국 그녀는 연착륙을 성공하고, 위성 파편에 맞아 고도가 떨어져 대기권에 진입하려 하는 중국 우주정거장 톈공을 보며 말한다.“고도가 떨어져 톈공. 그대로 가다가는 대기권에 진입해. 하지만 날 두고는 못 가. (중략) 이제 운전은 그만 할래. 집에 가는 거야.”
윤이형의 ≪붕대 감기≫를 읽고몇 달 전 투블럭 커트를 했다. 인터넷에서 본 한 남성의 글이 떠오른다. 머리를 자르건 말건 여자들 마음이지만 왜 굳이 못생겨 보이려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몇 년이나 기른 머리가 아깝지 않느냐고 말이다. 미용실 거울 앞에서 후두둑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내가 든 생각은 아깝다 였을까? 아니, 전혀.이제껏 숏컷과 단발을 오가는 머리 스타일을 유지했던지라, 투블럭 커트는 엄청난 변화가 아닐지 모르지만, 미용실에 가기 전까지 나는 정체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렇지만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순간 느낀 건 강렬한 쾌감이었다. 정말로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후련했다. 머리칼이 없는 것처럼 가벼웠다. 그 글을 쓴 남성에게 되묻고 싶다. 왜 예뻐야만 하는데?심진경 평론가의 말처럼 ‘미추의 기준’이란 결국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규범 지은 것 아닌가. 머리는 길어야 하고 피부는 백옥처럼 고와야 하며 다리는 매끈해야 하고 화장을 하는 일이 예의 있는 그것들. 나는 예뻐야 한다는 마음을 머리카락들과 버렸다.그렇지만 사실 백 프로 버렸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중학생 때부터 어려 보이는 얼굴 탓에 성숙한 성인 여성의 옷차림을 선호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 나는 블라우스를 무척 좋아했고(통풍이 잘 안 되어 여름엔 매우 덥다) 꽃무늬 원피스 덕후였다. 거의 십 몇 년을 내 속에 체화된 그 많은 것들을 한번에 다 갖다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했던 화장과 옷차림과 말투들.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상을 따라가기 위해 했던 노력들. 물론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지만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다. 주변에 많은 여성들이 내 예전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마음이 복잡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이직 면접을 위해 머리를 숏컷으로 기르고 있는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내 안에도 수많은 규범들과 강박들이 싸우고 있다.인터넷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많은 것 같지만 적어도 내 주변엔 나처럼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렇지만 내가 머리를 자르고 출근한 다음날 멋있다고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다 여성이었다. 오십 대 조리사 여사님 한 분이 회식날, 여자가 단발은 돼야지 머리가 그게 뭐냐고 술김에 얘기한 적은 있지만 말이다. 여사님은 그 말을 하고 덧붙였다. “이렇게 말했다고 나 미워하면 안돼.”내가 어떻게 미워하겠는가?그게 그들이 주입받아온, 내가 배워온 인식인데 말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애쓰고 늙어가는 피부를 걱정하고 마르고 예쁜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여성을 부러워하는 그들을 어떻게 미워한단 말인가.내가 정말 미워해야 할 것은 여성에게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이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아니다. 분노해야 할 대상은 그런 사회와 그 기준에 맞춰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팔아먹기 위해 애쓰는 자본주의와, 여성들의 운동을 폄하하고 방해하는 남성들이다. 범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게 막는 모든 것들이다.무임승차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한 버스를 타고 있다.이 페미니즘 운동이 머리가 길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여성의 인권이 향상된다면 그녀들도, 엄마들도, 할머니들도 모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어린이들도,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도 말이다.머리가 길든 짧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공분하는 이들도 모두 여성들이다. N번방 사건 때 남성들은 모든 남자들이 그렇진 않다고 주장하느라 바빴지만 진정으로 마음 아파하고 분노했던 사람들은 여성들이었다. 성범죄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남성들은 혹시 여성이 꽃뱀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일단 분노하고 피해자 입장을 걱정하고 슬퍼하는 건 기혼 여성이든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하는 여성이든 모두가 같다.
소설과 시나리오, 영화의 차이1. 소설과 시나리오의 차이점소설과 시나리오의 가장 두드러진, 첫번째 차이점은 이미 수업 시간에 언급되었던 새로운 인물과 사건의 등장이다. 소설에서는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식모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식모는 계란장수와 사랑에 빠지는데, 둘은 시나리오에서 톡톡히 감초 역할을 해낸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의 사랑이 정적이고 점잖다면 계란장수와 식모와의 사랑은 역동적이고 우스꽝스럽다. 자칫 너무 진지하고 깊어질 수 있는 영화를 계란장수와 식모의 사랑이 가볍고 재미나게 만들어준다.두번째, 소설은 옥희의 시점으로만 그려진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방 아저씨와 어머니의 사랑, 갈등 부분이 첨예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좀더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옥희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잡아내고 두 사람의 사랑과 내면갈등을 소설보다 더 가시화시킨다.대표적인 예로써 옥희가 벽장에 숨어 잠이 들었던 씬을 들 수 있다. 소설에서는 옥희가 서술자이므로, 옥희가 숨는 장면과 벽장에서 잠이 깨는 장면만이 나와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에서는 옥희를 찾는 엄마, 할머니, 사랑방 손님의 모습이 자세히 나와 있다. 옥희를 애타게 찾으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사랑은 한층 더 깊어진다. 이런 장면들로 인해 관객들은 좀더 영화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이처럼 시나리오에서는 보다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없었던 장면을 여러 군데 삽입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옥희의 감기이다. 옥희는 감기가 들어 누워 있고 옥희를 돌보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사랑이 무르익는다. 관중들이 좀더 둘의 사랑에 집중하고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2.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은 앞에 들었던 소설과 시나리오의 차이점과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시나리오보다 좀더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면들이 많이 삽입되었다. 이때 소설에서의 갈등은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고, 가팔라진다. 옥희의 관점에서 독자들이 유추할 수 있던 갈등은 영화에서 관람객들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영상화된다. 깊어지는 갈등은 관객들에게 긴장을 유발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또한, 소설과 영화는 각각의 재미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 재미가 좀더 심화된다. 어린아이 옥희의 눈으로 보았던 소설의 서사들은 영화에서는 나레이션으로 처리되어 소설의 재미를 그대로 살리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사랑이 자칫 무거워지고 깊어질 때마다 보모와 계란장수를 등장시켜 웃음을 유발한다.3. 영화와 시나리오의 차이점앞에 언급했다시피 영화에서는 갈등이 가장 극대화된다. 고조되는 갈등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나리오에서 나오지 않았던 장면들이 나와 갈등을 심화시키는데 그 예를 들어보자면, 점쟁이의 등장과 어머니 친구 미용사의 등장, 할머니와의 갈등 등을 들 수 있겠다. 미용사 친구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런 걸 따지냐고 한다. 할머니 또한 어미니를 불러 자신의 보수적인 생각이 너의 발목을 잡는 것 같다고 눈물을 보인다. 이제 시대가 바뀐 것이다. 어머니는 굳이 수절을 할 필요가 없다. 과부가 재혼하는 것이 흉이 되지 않는 시대라고, 친구는 말한다.
모니카 마론의 을 읽고사랑이 감옥을 부수고 나온 종신형 죄수라고 상상해보면, 얼마 안 되는 자유의 순간들에 사랑이 왜 그렇게 미쳐 날뛰는 것인지,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온갖 약속 안으로 우리를 밀어넣었다가 곧바로 온갖 불행 안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를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사랑을 내버려두기만 하면 사랑이 무엇을 줄 수 있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처럼, 사랑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에 어떤 벌을 받아 마땅한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p. 24~25소설 은 빛나는 문장이 정말 많다. 사랑에 관한 문장들은 아름답다. 화자는 프란츠와의 ‘청춘의 사랑’ 때문에 그가 떠난 이후로 외부 세계와 단절하고 그를 추억하면서 살고 있다. 그녀는 부러 자신의 눈을 흐리게 만들어 단절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자신의 나이조차 파악할 수 없도록 말이다.화자는 ‘청춘의 사랑’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때 ‘청춘의 사랑’이란 “유일하게 그 사랑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랑이다. 유일하게 그 사랑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랑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프란츠가 말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랑에 대한 구절. “사랑은 현실 생활 밖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연인들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말. 유일하게 그 사랑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랑이란 현실 밖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랑인 걸까? 그래서 화자는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현실 세계와의 단절을 꿈꾸며, 실제로 실행시키며 집안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것일까?화자에게 사랑이란 절대적인 권위로 보인다. 그녀는 사랑에게 절대적으로 지배당한다. 이것은 그녀의 선택이기도 하고 선택이지 않기도 하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숱한 세월을 그에 대한 회상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아직 이와 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두 번째 연애는 하고 있다. 첫 번째 연애 후 힘들었지만 두 번째 연애가 시작된 이후 구남친보다 좋은 남자는 많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현재의 연애에 몰두하게 되었다.나도 화자의 말처럼 인생의 정답은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뿐이라는 것도 안다. 말처럼 실천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말이다. 나는 호스피스에 두 달 동안 매일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죽음이 닥친 사람들이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 곁에는 오직 그들을 지키는 사람만이 전부다. 메마른 팔과 다리로 생사의 경계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며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을 했다. 에서 말하듯 ‘정답은 사랑’이고,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구절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