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는가?[서론]왜 일하는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질문이다. 너무도 당연해서 그 이유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살아 왔을 수도 있겠다. 좋은 직장에서 큰 욕심 없이 삶과의 균형을 이루며 그저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 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의 개념이었다. 이러한 틀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스스로에게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을 통한 사회구성원으로써의 소임을 중요시하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사이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해져만 갔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으려면 일에 대한 나의 태도와 철학이 보다 명확해져야 했다. 짐작 건데,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주관적이고 상대적일뿐만 아니라 각자 처한 환경, 생각, 능력에 따라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간극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책을 읽는다면 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저 성공한 사업가의 자기자랑에 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을 통해 내가 원하는 궁극적인 답변은 얻기 어렵고 취할 것만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읽어갔다.[본론]저자는 일본의 성공한 사업가이다. 망해가는 중소기업에 교수 추천으로 입사하여 죽기 살기로 일해 인정을 받고, 젊은 나이에 창업하여 일본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숱한 역경을 딛고 성공한 기업가.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모든 직원이 기피하는 파인세라믹이라는 분야에서 열악한 장비와 지원 속에 홀로 논문을 찾아가며 고군분투해 나가는 그의 신입사원 시절은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힘든 시절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과 과정은 나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는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주위의 만류에도 초연했으며 오로지 자신의 신념을 일관적으로 일에 투영하여 몰입함으로써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하여 현재 교세라로 불리 우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나는 부끄러웠다. 정말로 그와는 반대로 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고 남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렸으며 결정적으로 일에 대한 나만의 확고한 철학이 없었다. 책의 도입부에서 부터 나는 반성을 해야만 했다. 저자는 참으로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다. 남의 시선과 의견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생각과 직관을 가지고 주어진 일에 대한 일관된 스탠스를 취한다. 또한, 완벽을 추구한다. 더 이상 시도할게 없을 때까지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기다리는 자세. 정말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자세는 자연스레 성공으로 귀결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하는데 성공 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 시스템이 심각하게 이상하다고 생각 될 정도이다. 저자와 나의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했다. 일을 잘하는 방법적 측면보다 이러한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고 왜 나는 그러게 하지 못하는지 알고 싶었다.저자는 이 책의 근본적인 질문인 왜 일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내용 초반에 제시하고 있다.크게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1.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한다.일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행위이다. 즉, 높은 인격을 수양하는 훈련이다.2. 자신의 눈앞에 놓인 일에 온 힘을 다해 몰두한다면 우리는 내면을 갈고 닦아 두터운 인격을 갖출 수 있다.-하루하루 충실히 일에 매진한다면 자아를 확립하고 인격적으로 완성에 다가갈 수 있다.-아무런 목표 없이 일을 하지 않고 나태하게 생활하다 보면 인격적으로 성장하지 못할뿐더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마저 썩혀버리고 만다.-일하는 수고로움을 아는 사람만이 안락함의 소중함도 아는 법이다.- 매일 열심히 일하고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기에 인생의 시간이 더욱 즐겁고 귀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3. 일을 통해 화를 다스린다.- 열심히 일함으로써 삼독(욕망, 분노,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억제할 수 있다.- 일에 파묻혀 몰입하면 분노를 가라앉히고 푸념을 줄일 수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일하는 것은 곧 수행이다즉, 저자가 제시한 우리가 일을 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을 통한 내면과 인격의 수양”이다. 굉장히 철학적이고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사실 애초에 “왜 일하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철학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변도 철학적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답변에 동의한다. 일을 하는 이유는 저마다 각자 다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배워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일을 하니까 와 같이 우리는 그동안 아주 단순한 이유를 가지고 일을 해왔다. 결국, 일을 하는 이유가 나름의 철학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그 이유가 모호해지고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는 지점이 쉽게 찾아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저자가 제시한 일을 통한 내면과 인격의 수양이라는 관점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일반 직장인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관점이다. 다만, 내면과 인격의 수양은 일을 하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나는 저자와 나의 일을 대하는 자세와 사고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첫째, 불안전성을 감내하는 힘의 유무저자는 교수의 소개로 쇼후공업 이라는 회사에 입사한다. 한때 일본을 대표하는 고압초자 제조 회사였지만, 저자가 입사할 당시에는 내일 당장 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경영상태가 최악인 낡고 초라한 회사였다. 이것으로 보아 저자의 젊은 시절은 전혀 계획적이지 않았다. 또한, 고생하면서 일하는 걸 당치도 않게 생각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도 또래의 학생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사 동기가 모두 그만두고 본인만 홀로 남았을 때 회사에 남는 게 옳은 선택인지 고심을 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회사를 그만둘 이유를 찾지 못한 그는 우선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불평불만을 내뱉는 대신, 일단은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철저히 몰두해 보자고 다짐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불안전성을 감내”하고 주어진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 제 아무리 계획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계획하여 실행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환경에서 일을 시작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완전한 세계에 직면했을 때 도망갈 이유를 먼저 찾기보다 도망가야 할 명분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그 명분이 타당하지 않다면 불안정한 현재에 집중하여 극복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하루살이다. 세상이라는 복잡하고 비현실적인 상자 안에 내던져진 초라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 안에서 불완전성을 감내하는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둘째, 고생을 감내하는 힘의 유무저자가 청년이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사회 환경이 열악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기에는 현실이 너무 혹독했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 통념상 한번 입사한 회사를 쉽게 그만두는 행동도 결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통념이 일에 대한 가치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그 정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다. 강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일을 통해 나약한 마음을 단련하고 인격을 높여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잡을 확률을 높인다는 저자의 일에 대한 자세. 이는 일을 단순히 고생과 고난의 연속으로써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일을 마음의 단련, 인격 수양과 같이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대하고 일하는 수고로움을 통해 안락함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어떤 일이든 필연적으로 고생이 뒤따른다. 저자와 같이 일을 인격 수양의 수단으로 대하든 다른 어떤 자세로 접근하든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고생을 감내하는 자신만의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