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 1학기 기말 리포트‘나의 인생단어와 행복’1. 나의 과거 인생단어는?2. 나의 현재(미래) 인생단어는?3. 수업에서 접한 철학자들 중 누구의 입장이 내게 가장 와 닿는가? 그 이유는?4. 교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5개 소개한다면? 그 이유는?5. 행복의 대한 나의 생각은?제출자 성명소속학년학번1. 나의 과거 인생단어는?나의 과거 인생단어는‘적당(適當)’과‘안주(安住)’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적당(適當)’은‘엇비슷하게 요령이 있다’라는 뜻을 가졌고‘안주(安住)’는‘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함’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이때까지 나의 삶은, 현실에 안주하며 적당히 살아가는 유형이었습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분명 나름의 도전과 나름의 성취가 있었지만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성취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에만 도전적이었습니다. 성공이 뻔히 보이는, 좋은 결과가 예상 되는 것에만 열정을 쏟았습니다. 학창시절 교내 대회도 왠지 내가 하면 상을 탈 수 있을 것 같은 것만 골라서 나갔고 성인이 되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종목에만 지원했습니다. 대학교에 와서도 간단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것만 골라 했고 그 때문에 오랜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해야만 하는 것에는 잘 도전하지 않았습니다.뭐든지 적당히만 하며 살아왔습니다. 공부도, 성적도, 다이어트도, 인간관계도 모두 적당히만 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스스로‘적당’이라는 선을 긋고 너무 모자라거나 너무 넘치지 않게만 조절하며 살아왔습니다. 적당히 공부하고 그저 그런 성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살이 점점 쪄서 과체중이 되었을 때도 보통 사람처럼 보인다며 넘겨왔습니다. 인간관계도 너무 끊어만 내면 아쉬우니까 적당히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늘려왔습니다. “이만하면 적당하지”라는 말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나의 잠재력을 자꾸만 가늠하고 제한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로는 안심하며 살았습니다. 그 간의 보상심리로 먹는 양이 오히려 늘어버렸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몸무게 보다 늘어났지만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고 과체중이 되었습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하지만 전처럼 의지가 강하지도 않고 그 때문에 몸도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예전에는 인간관계를 넓히려고 애를 썼습니다. 모두를 진심을 다하여 대했고 모두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분명 그 속에서도 마음이 더 가는 사람과 덜 가는 사람이 나뉘었고 모두 안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줬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오히려 제가 상대방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편일 사람들만 챙기기로 했습니다.물론 제가 살아온 이러한 삶이 나쁘다거나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스스로에게 그었던 한계선을 넘어 한 단계 발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외부에 의해서 자극 받고 자신의 겉과 속을 알차게 채우는 삶, 진짜 살아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단어를 새로운 인생 단어로 결정해야할지 고민해보았습니다.2. 나의 현재(미래) 인생단어는?스스로가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고 싶은 삶의 이미지를 그려보고 그 이미지에 맞게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며 살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도 밝혔듯이 조금 더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면서 겉은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면서 속은 알차게 채우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그래서 나의 현재와 미래의 인생단어를‘기상(起牀)’과‘비상(飛上)’으로 설정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다’라는 뜻을 가진‘기상(起牀)’과‘높이 날아오르다’라는 뜻을 가진‘비상(飛上)’, 두 단어는 발음도 비슷하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가득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나에게 침대는 어로 삼았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역동적인 삶에 첫 발자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 새로운 마음가짐의 시작, 새로운 나의 시작은‘기상(起牀)’입니다.침대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할 것은 걷기도, 뛰기도 아닌 날기입니다. 일어나자마자 기본 단계를 거치지도 않고 바로 나는 것부터 하는 것이 조금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넘어져도 좋고 떨어져도 좋으니 세상에 온 몸으로 뛰어들고 싶습니다. 분명 행복한 성공만 있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실패에 무뎌지면 좋겠습니다. 실패의 아픔에 집중하기 보다는 성공의 발판,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배우고 금방 회복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머리로만, 이론으로만 아는 것 말고 실제로 경험하고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감각들을 이용해서 세상을 하나하나 느껴보고 살아있다는 것 또한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출발이 아닌 거대한 도약, ‘비상(飛上)’입니다.이렇게 살아가다 지치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이 잠시 스쳤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왔던 것을 돌아보면 참 스스로 위로하는 것은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면 잘 쉬어주었습니다. 가깝게는 박차고 일어나기로 마음먹은 침대가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과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하면서 위로를 해줍니다. 낮에는 따뜻한 햇살을 받고 밤에는 은은한 달빛을 받으면서 기분 전환을 합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재미있는 영상을 봐도 불쾌했던 감정은 쉽게 잊게 됩니다. 도저히 혼자서 풀 수 없을 때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친구들에게 잠시 기댑니다. 이렇게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전에도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휴식’입니다.나의 인생단어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지치면 ‘선택(選擇)’과 ‘집중(集中)’같은 단어가 인생단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뛰어들고 싶을 땐 뛰어들고, 쉬고 싶을 땐 쉬면서 중간점을되고 와 닿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지만 플라톤처럼 천상의 이데아, 전형적인 관념론자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조금 더 경험적 실재론자의 면모가 강했습니다. 현대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서양철학의 근본이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공감하며 왜 그가 고대 그리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였는지 깨달았습니다.첫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모든 행위는 언제나 어떤‘좋음’을 지향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좋음은 행위의 목적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어떤 목적은 또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 어떤 다른 것의 수단일 수 없는 삶의 최종 목적, 궁극 목적(최고선)은‘행복’이라고 주장했습니다.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게 물어봅시다. 그 행위를 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거슬러 올라가서 더 이상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없는 무언가가 나옵니다. 그것이 곧‘궁극 목적’이고‘최고선’이라고 불리며‘행복’이라고 칭합니다.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인 사람도 모두 행복을 추구합니다. 실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모두 행복을 추구합니다. 방금 태어난 아이도, 죽음을 고민하는 어떤 이도 모두 행복을 추구합니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지금 이 상황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누구든 마음속으로는 항상 행복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둘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좋음 외에 육체적인 좋음과 사회적인 좋음도 골고루 추구해야한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신적 좋음 외에도 육체적 좋음 (건강과 외모 등)과 외부적 좋음 (재산과 권력 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합니다.매우 현실주의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요즘 SNS에서 가볍게 농담처럼 떠돌아다니는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당신이 우울하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은지 확인해보라“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많으면 행복하기 쉬워진다고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경제력 부족으로 인한 고민은수업에서 많은 철학자들의 생각과 주장을 배웠습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마다 공감 되는 부분과 공감 되지 않는 부분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은 무엇이 정답인지, 어떤 사람의 사상이 옳은지 배우는 과목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고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볼 기회를 주는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수업을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지 많은 생각을 해보고 한 단계 발전한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4. 교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5개 소개한다면? 그 이유는?“심지어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각 시기마다 행복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삼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행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중략) 이처럼 행복에 대한 생각은 삶의 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머리말에 나온 구절입니다. 현재의 나는 무기력하지 않은 삶,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십 년 뒤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것을 행복이라 칭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질 수 있었던 구절이라 인상 깊었습니다.“먼 데 있는 것에 대한 욕심 때문에 가까이 있는 것을 무시하지 말라. 그리고 지금 가까이 있는 것도 한때 당신이 갈망하며 소망했던 것임을 생각하라. 그것은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작은 것에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많이 갖지 못했을 때 작은 것으로 만족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에피쿠로스 철학 중 자족과 절제를 강조한 구절입니다. 우리의 주변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뀐 상황에 실망감이나 욕망을 느끼기 보다는 빠르게 적응하고 마음가짐을 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구절이라 인상 깊었습니다.“세상의 아름다운 것이란 존재하다가 없어지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든 없어질 것에 우정을 붙이고 살다가 거기에 얽매여버리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던 것이 없어지게 될 때, 그 사람의 마음은 갈래갈래 찢어
대학글쓰기 기말고사 대체 레포트영화 ?길버트 그레이프? 비평문학과학번이름ⅰ. 서론 ? 글을 시작하며‘때론 부끄럽고 힘들지만 우리는 가족이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가족’, 가족의 소중함을 담은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는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배우들의 명품 연기는 물론이고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와 색감 또한 그들의 감정에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결말 부분에서는 나 또한 눈물을 흘리며 길버트 그레이프의 행복을 빌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감동과는 별개로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과 ‘그런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힘들 때 언제든지 기댈 수 있고 안정감을 느껴야 할 집에서 답답하고 도망치고 싶어진다면 진정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그런 가정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버트 그레이프?는 어떤 영화로 받아들여질지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ⅱ. 본론 ? ?길버트 그레이프?와 ?내일?을 비교하며길버트 그레이프는 지하실에서 자살한 아버지와 그 충격으로 초고도 비만이 되어 움직일 수 없는 어머니, 어머니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 누나 에이미, 반항적인 여동생 엘렌, 그리고 지적장애인 동생 어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떠나버린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해내야만 했다. 그는 자기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가족들을 그저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시선, 개선 의지가 없는 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위험한 곳을 오르는 동생을 감당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그도 사람인지라 한계가 있었고 결국에는 가족들에게 못 할 짓을 했지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돌아갔을 때, 따뜻하게 품어준 것 또한 가족이었다.네이버 웹툰 ?내일?에 ‘어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 ‘나’도 길버트 그레이프처럼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을 부양하며 가장 노릇을 했다. ‘나’의 어머니와 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나’에게만 의지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갈취하거나 폭력, 폭언도 일삼았다. 누구보다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나’지만 가족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 다시 돌아가곤 했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의지할 곳 하나 없었고 결국 자살할 생각까지 하며 삶이 피폐해지고 말았다.길버트 그레이프의 가족은 이미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고 어머니가 삶의 마지막에나마 삶의 개선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길버트 그레이프 자신도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 그러나 ‘나’의 가족은 오히려 족쇄가 되었고 짐이 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나’의 가족은 진정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많은 것들이 빠져 있는 형태의 ‘나’의 가족은 진정한 가족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환경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