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서 기 록도 서 명마틴 루터 킹:인권운동의 희망기록 일자0000년 0월 00 일저 자정지아분야공통독후 내용 학교에서 월드 히스토리라는 책으로 역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 중 한 명이 마틴 루터 킹이었다. 책들을 둘러보다가 “마틴 루터 킹”이라는 제목을 발견하자마자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그를 단순히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로만 알았지만, 이번 기회에 그의 삶과 신념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마틴 루터 킹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희망이 만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교육을 받은 그는 어린 시절, 심각한 인종차별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흑백분리법이 초래하는 부조리를 깨닫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특히, 버스에서 백인과 흑인의 좌석을 구분했던 관행을 없애기 위해 11개월간 이어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 버스 보이콧 운동의 대표로 활동하며, 흑인 지도자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 운동은 단순히 지역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그는 이를 통해 흑인 인권 운동의 핵심적인 인물로 자리 잡았다.간디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마틴 루터 킹은 “폭력을 써서는 안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백인들이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차별을 가해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합시다”라며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이 신념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많은 고난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30여 차례나 체포되고 많은 위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키며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1960년대의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민권운동과 블랙 파워 투쟁으로 사회 구조의 변화를 겪고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초래하며 점점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었다. 지도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염려해 전쟁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못했지만, 킹 목사는 제국주의적 전쟁에 반대하는 용기를 보였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과정에서 흑인 사회 내의 진보주의자들과 백인 지도자들에게서 외면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끝까지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포기하지 않았고, 암살당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실천했다.
독 서 기 록도 서 명마이컬슨이들려주는프리즘이야기기록 일자0000년 0월 00 일저 자송은영분야물리독후 내용 빛의 활용이라는 주제로 과학탐구토론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빛에 관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마이컬슨이 들려주는 프리즘 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했다. 빛의 성질을 이해하면 이를 활용할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아 이 책을 선택했다. 또한, 마이컬슨과 프리즘의 관계가 궁금했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사람들은 빛의 색이 무엇인지 궁금해 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빛은 순수 그 자체인 하얀색이라는 주장을 폈고, 이는 불변하지 않는 하나의 진리처럼 굳어지면서 17세기 후반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하지만 영구의 과학자 뉴턴의 프리즘 실험에 의해 빛이 7가지 색으로 나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빛의 7가지 색은 저마다 각각의 다른 파장을 가지고 있다. 한번 프리즘을 통과한 7개의 색의 빛은 다시 프리즘을 통과해도 더 이상 나눠지지 않고 각 또한 일정하다. 즉, 단색광은 일정한 각도로만 굴절하며, 프리즘에 의해 분산된 빛이 다른 프리즘을 통과하면 원래의 흰색이 된다.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생각했고 이는 뉴턴의 생각을 추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공고해졌지만 뉴턴이 사망하자 빛은 파동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반격을 했다. 대표적 인물은 영국의 물리학자 영으로, 둘 이상의 파동이 모여서 어느 부분에서는 강해지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약해지는 현상인 빛의 간섭현상을 이유로 이를 반론했다. 하지만 뉴턴의 지지자들에게 큰 충격을 받고 빛 연구에서 손을 떼게 된다. 하지만 곧 빛의 본성이 파동임이 밝혀지면서 매질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빛이 파동이라면 빛의 매질이 있어야하는데, 여기서 마이컬슨의 빛과의 관련성이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테르라는 물질이 지구 밖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하늘의 천체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에테르는 투명하고 고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에 따르면 에테르는 쇠나 돌보다 더 단단하고 무거워야 한다. 에테르로 가득 찬 우주는 딱딱한 물질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펼쳐진다.하지만 “우주공간이 에테르로 가득 차 있다면 지구가 공전할 때 마다 에테르의 바람이 불 것이다.“라는 마이컬슨은 이를 바탕으로 광속의 차이를 실험했지만 광속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에 영향을 끼쳤고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통해 빛은 입자적인 성질과 파동적 성질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독 서 기 록도 서 명나쁜 과학자들기록 일자0000년 00월 00일저 자비키 오랜스키 위튼스타인분야과학 공통독후 내용 이 책의 표지에 적힌 ”생명의 윤리가 사라진 인체실험의 역사“라는 문구를 보고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과학이 항상 생명에 이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표지를 본 순간 이를 깊이 있게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끼며 이 책을 선택했다.--------------------------------------------------------------------------------------------------------------------------이 책은 인체실험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 1장의 이름인 “인간 기니피그”라는 말이 이 책의 전부를 설명해준다. 의사들은 과학자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백신과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수차례 실험을 했고 그 실험의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험을 했고 그 결과 현재의 발달된 의료기술과 의약품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먼저 의사, 즉 과학자들은 흑인들과 가장 약한 아이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단지 자신이 고안한 기술을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실험대상일 뿐 이었다. 생체해부 반대운동, 생체실험 사전 동의 운동 등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밤에 흑인들을 병원으로 납치해 가기도 하고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해 준다는 거짓된 유혹으로 암을 치료하는 백신 대신에 그와 관련 없는 방사능 플로토늄 주사를 주입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인류의 발전에 기여 했다는 명분으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세계 2차 대전 시기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식민지가 생겨났다는 것은 의사들에게는 자신의 실험대상이 더 많아 졌다는 뜻이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자신의 국가의 지배국의 요구에 저항할 수 없었다. 나치 의사들은 열등하다고 생각되어진 사람들이 실험대상이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실험을 꼽자면, 세계 2차 대전 직전의 맨해튼 프로젝트이다. 이는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는데 시험도중 방사능이 들어있는 유리병이 깨지고 방사능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국가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실험 참가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소송이 두려워 방사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암암리에 실험하게 된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1년간 쬐는 방사능의 양의 80배를 동의 없이 케이드라는 사람에게 주입시켰고 그의 이빨을 뽑거나 뼈를 부러뜨리고 방치하는 등의 실험을 했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토착화된 사자탈춤Ⅰ. 서론통일신라 시대에 들어온 서역문물에 대해 조사하던 중, 사자탈춤도 그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자가 없는 땅에서 사자탈춤이라는 춤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고, 사자탈춤의 수용이 실크로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랜 전통문화인 사자탈춤이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에 토착화된 과정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는 사자무의 흔적을 직접 일일이 찾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자무에 관한 여러가지 연구를 정리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Ⅱ. 본론서역의 사자무와 중국에의 전파중국에의 사자무의 전파는 크게 인도기원설과 페르시아기원설로 나뉜다. 먼저 인도기원설은 인도에서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사자무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쿠차로 그리고 장안에까지 전래되었다는 주장이다.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이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사자석주를 세웠다. 이후 사자가 석가모니를 수호하는 신수로 사용되어왔고 사자무가 만들어졌다. 쿠차에 불교가 전파되고 한 무제가 기원전 2세기 후반에 동서교역을 활발히 하면서, 쿠차의 국력이 강해졌다. 그 당시 사자는 불법과 왕권을 상징했는데, 이에 따라 쿠차에서는 불교적인 사자무를 왕권강화의 목적으로 오방사자무로 전환시켰다.쿠차에 오방사자무가 만들어진 데에는 중국의 다섯개의 방위와 색, 동물이 연관되었다는 오방관념도의 영향을 받았다. 민펭현의 니야유적지 1호 묘지에서 출토된 비단에 쓰여진 “오성이 동방에 나타나니 이롭다.”라는 문장이 서역에 중국의 의식이 전파되었으며, 쿠차가 이를 받아들여 오방사자무를 창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의 무용극인 ‘푸훌리아 차우’에서도 사자무를 찾아볼 수 있어 사자의 상징적 의미가 유사하게 전파되었음을 알 수있다.페르시아기원설을 살펴보면, 페르시아 역시 사자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기원전 3500년경의 이집트에서 무덤의 수호신인 스핑크스는 제왕의 얼굴에 사자의 몸체를 가지고있었으며, 기원전 2세기.”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사자에 대한 관념이 전파되었음을 말한다.인도기원설과 페르시아기원설 모두 역사적 측면에서 개연성이 있지만, 쿠차에서 사자무가 자생적으로 탄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서역(좁은 의미로 오아시스국가까지)의 유목민과 관련된 동물은 야수류, 가축류이며 동식물을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다. 사자는 일반적으로 인도, 아프리카, 유럽, 서아시아에 존재한다. 하지만 투루판의 아스타나고분(191호)에서 출토된 수렵도를 보면 서역에도 사자가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스나타고분(216호)에서 머리는 사자이고 발은 소이며 꼬리는 승냥이인 수호신상이 발견되어, 사자를 악귀를 막아내는 수호신으로 숭배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우루무치현에서 발굴된 기원전 5세기경의 사자모양의 금패장식을 통해 한 무제에 의해 동서교류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사자가 서역과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서역에서는 가면문화 또한 발달되어 있었는데, 인도나 페르시아의 사자무가 전래되기 전에 사자탈춤이 존재했고, 여기에 외래의 사자무가 결합되었을 가능성 또한 있다. 쿠차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토착화 한 사례가 있는데, 쿠차의 음악가 수찌포가 장안에 와서 중국의 정역이 만든 음악을 서역의 비파로 연주하여 서역과 중원의 화합을 이룬 적이 있었다. 이를 통해 사자탈춤 또한 외래문화와 통합된 것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사자탈춤의 발생은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의 오방사자무는 쿠차에서 온 것임이 확실시되고있다. 『악부잡록』과 『통전』에서는 장안의 오방사자무는 쿠차에서 온 것이며, 오방색의 가죽을 걸친 사자들이 태평악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동안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황색 사자는 태평악을 부르며 황제의 공덕을 칭송한다고 나와있다. 무엇보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최초로 서자무를 선보인 사람들이 쿠차인들이다.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에는 그 시대에 개편된 사자무 연극이 묘사되어있다.西凉伎 서량기에는假面胡人假獅子 가면 쓴 오랑캐와 가짜 사자가 등장하는데刻木爲頭絲는 게如從流砂來萬里 마치 서쪽 사막 건 만릿길 온 듯하네.紫髥深目兩(羌)胡兒 자빛 수염에 이 움푹한 두 오랑캐가鼓舞跳粱前致辭 북 장단에 춤추며 뛰어나와 말 아뢰네.應似凉州未陷日 이르기를 양주가 함락되기安西都護進來時 안서도호부에서 공물 바칠 에 왔는데,臾云得新消息 문득 새 소식 해 오기를安西路絶歸不得 안서로 가는 길이 끊기어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네.泣向獅子涕双垂 사자 마주보고 두 기 물 흘리며 울면서凉州陷沒知不知 양주가 에게 함락된 아는가 모르는가 묻네.獅子回頭向西望 사자가 머리 돌려 서쪽 바라보며哀吼一聲觀悲 한 소리 슬피 우니 객들도 모두 슬퍼하네.貞元邊愛此曲 정원(785~804)의 변경 장수들이 이 악곡 좋아하여……시에서는 양주를 오랑캐에게 빼앗겼음에도 회복의 의지없이 를 구경만 하는 세태를 개탄하여 지은 시이다. 백거이는 사자 조종자가 양주를 토번에 빼앗겨 안서도호부가 있는 쿠차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서러움을 토하는 장면을 기록했다. 서역중심인 쿠차의 오방사자무가 중원에 들어오면서 서역이 오랑캐로 칭해지며 중원중심으로 변용되었다.사자무의 한국에의 전파사자무가 한국에서 나타난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가야의가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가야에서는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사자무를 수용하였고, 가야가 멸망해갈 때, 신라에 투항하며 진흥왕이 파견한 사람들에게 춤과 노래를 전수했다는 기록이 있다.신라에서 사자무에 대한 기록은 그로부터 300여년 뒤, 최치원이 기록한 의 오기에 나타난다. 은 최치원이 서역에서 전래된 다섯개의 춤을 관람하고 지은 관극시다. 오기는 , , , , 등의 무용이다. 이 중 에서는 고비사막을 거쳐온 사자춤이 나타난다.멀고먼 고비사막 만 리 길 건와떨어진 털가죽에 먼지만 뒤덮여.고개와 꼬리 흔들어 어진 덕 보이니,백수의 재주일망정 이 기상을 따르리?(遠涉流砂萬里來 / 毛衣破盡着塵埃 / 搖頭掉尾馴仁德 / 雄氣寧同百獸才)사자무가 쿠차에서 타클라마칸사막이나 고비사막을 건너 전파되었다는 점을 나타낸 것은 백거이의 와 유사한 점을 보인다. 하지만다. 또한 신라의 사자무는 신라 가무극 형태로 변용되어 고유성을 지니게 되었다.백제에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 된 금동대향로에 사자가 조각되어 있다. 또한 백제에서 일본으로 기악을 전해준 기록인『교훈초』에도 사자탈춤이 기록되어 있어, 백제에도 사자탈춤이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삼국시대 이후의 사자무는 조선시대『화성성역의궤』의 에 사호무(獅虎舞)로 등장한다. 오방사자무가 아닌 사호무로 기록되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김수장의 사설시조에서 사자춤이 궁중의식만이 아니라 민간사회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사자를 탄 체과리요 호랑이를 탄 오랑캐와 ……” 라는 구절에서 사자를 조종하는 체과리는 후대의 산대놀이나 봉산탈춤의 ‘취발이’ 또는 은율탈춤의 ‘최괄이’이다. 봉산탈춤에서 취발이가 노장과 겨루면서 자신을 ‘사자 어금니’와 같다고 말하는 것도 취발이가 원래는 사자의 조종자였던 사실과 관련 있다. 또한 오랑캐가 탄 호랑이는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나타난다.쿠차, 중국, 한국의 사자탈춤 비교쿠차에서의 사자탈춤은 인도의 불법수호신인 사자와 이집트의 왕권수호신인 사자를 수용하였고 이에 가면문화, 오방관념을 결합시켜 오방사자무를 형성시켰으며 쿠차왕의 왕권강화가 주 목적이었으나 중원으로 가면서 그 중심의 역할이 달라지게 되었다.현재 중국의 사자가면은 정밀한 감정묘사의 세밀함과 다양함은 오색을 기본으로 하여 깊은 불교적 전래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중국 민간에서는 정초에 거의 모든 지방에서 사자무를 공연하여 다양한 성향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국가적 행사로 전승되면서 규모와 형태가 놀랍게 발전했다.한국의 사자가면은 언뜻 보면 사자의 위엄을 가지나, 자세히 보면 푸근하고 정적이다. 이는 한국인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데, 사자의 위엄 있는 모습조차 친근감 있게 표현하려는 화합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사자탈춤은 종교적, 권위적이기보다는 풍자적, 해학적, 민중적인 방향으로 발전되었다.Ⅲ. 결론민속 탈놀이인 사자탈춤은 해서지방의 봉산탈춤, 강령탈춤 통해 변화되고 한국화· 토착화 된 사자춤이 또 한번 지역의 문화에 맞추어 여러 형태로 변형되었다. 불교적 의미가 줄어들거나, 다른 신앙과 결합되기도, 종교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사자가 단순히 맹수만을 의미하게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가산오광대에서 사자탈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면서 정체성을 상실하기도 했다.실크로드를 통해 사자무는 서역에서 건너와 중국과 한국에 종교적, 상징적인 의미를 전파하며 각 나라의 환경, 풍습 그리고 종교의식 등과 함께 토착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사자탈춤은 각 나라의 독창적인 예능 가면극으로 전승되고있다. 사자무 외에도 근대 한국에서 서역과의 교류를 통해 들여와 현재 토착화된 악기나 놀이를 찾아볼 수 있다.실크로드는 교통로, 교역로만이 아니라 동서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진 길이기도 하다. 인도문명· 페르시아문명· 중국문명의 교차 지점이며, 불교· 이슬람교· 도교· 유교가 공존하고 전파되는 지역이다. 한국의 전통놀이인 사자탈춤이 그 사이에서 발생하여 한국까지 들어왔다. 이는 전근대의 한국이 서역과의 교류를 활발히 했으며,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함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문헌박진태, 「쿠차(龜玆) 사자탈춤의 전파와 한국적 변용」, 『비교민속학』33, 비교민속학회, 2007.민병훈, 「실크로드와 동서문화 교류」, 국립전주박물관, 2016.신명숙, 「한국 사자무의 변천사」, 『체육사학회지』7, Korean Journal of History Physical Education Sports and Dance, 2001.박진태, 「한중일 사자탈춤의 전래와 변천」, 한국문화재재단, 2016.김현주, 「한·중·일 사자무 전래사적 비교연구」, 『대한무용학회논문집』33, 대한무용학회, 2002.「파도처럼 밀려온 서역문물」, 『한겨레』, 2017.10.25 Hyperlink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100030/2004/11/0*************1151543082.html" httphtml
생물발광의 이용빛의 활용에 대한 사례를 조사해 본 결과 의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킬 수 있는 자연에서의 생물발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생물발광을 활용하면서 발생되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며 생물발광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더욱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았다.① 의료-MRI, CT 같은 방사성 원소나 자기장을 이용한 분자영상기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발광영상이나 형광영상에 대해 탐구한다.-발광 박테리아를 이용하여 인체에 유해한 외부 반응을 빠르게 탐지하고 암세포 의 분포도와 전이 방법을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② 환경-발광 박테리아로 에너지 전환 효율이 낮은 백열 전구를 대체할 수 있고 LED의 빛 공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친환경 램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발광 박테리아로 토양이나 수질의 오염도를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본다.-분자 수준적으로 생체의 생화학적인 변화까지 영상화 할 수 있는 광학영상법은 현재 상용화 되어 있는 자기장 또는 방사성을 이용한 CT, MRI에 비해 효율적이고 각광받는 기술-광학영상법에는 크게 형광발광과 생물발광으로 나뉨1. 광학영상법-형광발광형광영상법은 세포, 조직, 또는 생체 내의 형광물질이 외부에서 조사한 빛을 흡수한 후 흥분되어 좀 더 긴 파장의 빛을 방출할 때 이를 감지하여 영상화하는 방법이다. 이때 방출되는 특정 파장 대의 빛을 선택적으로 탐지하기 위해서는 광학영상 기계나 현미경에 적절한 필터가 부착되어야 하므로 CCD카메라를 이용해 화상을 얻는다.-가시광선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생체 투과도가 불량하다는 단점이 발견됨-이 점을 생체 투과율이 높은 근적외선을 이용하고자 생각하기도 함-생체 내에 존재하는 헤모글로빈, 체액 및 지방에 의해 흡수되는 양이 가장 적음-또한 생체가 가지는 자발광도 가장 적게 나타남-분해능이 작아 측정속도가 매우 빨라서 빠른 선별이 가능함2. 광학영상법-생물발광형광영상에 비한 생물발광영상의 장점-배경 영상 노이즈가 거의 없다-생체 내 좀 더 깊은 곳에서 나오는 빛을 감지해 낼 수 있다-작은 소동물에서 짧은 시간(수 초~수 분)내에 한꺼번에 많은 수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반정략적이어서 종양 치료의 효과를 정량 분석하거나 줄기세포 치료 후 이식편의 생존율을 분석하는 실험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생물발광의 분류생물발광에는 크게 광발광과 화학발광으로 나뉘는데 광발광의 경우에는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높아진 에너지 준위가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빛을 냄으로써 에너지 준위가 낮아지는 원리이다. 이에 대한 예시로는 해파리의 녹색 형광 단백질(GFP)등이 있다. 이에 반해 화학발광은 보통 발광물질이 산소와 반응하여 옅은 노랑이나 황록색으로 보인다. 예시로는 반딧불이의 루시페린과 산소와의 반응, 루미놀과 과산화수소의 반응, 물리적 충격에 의해 빛을 내는 야광충, 세포 밀집도에 의해 빛을 내는 하와이 밥테일이라는 오징어 등이 있다.다음의 탐구는 표적물질에 항체와 형광 단백질을 결합한 소재를 접합하여 분자수준적으로 관찰하고자 계획하였다.① 먼저 해파리와 같은 생물에서 형광 단백질을 채취한다.② 형광단백질이 외부로부터 빛을 받았다가 에너지 준위가 높아지면 다시 원래의 상 태로 낮아지면서 빛을 낸다.③ 형광 단백질 중 해파리에서 채취한 녹색 형광 단백질(GFP)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 을 통해 대장균에 주입시켜 빛을 내는 박테리아를 만든다.④ 빛을 내는 박테리아와 항체를 결합하여 암과 같은 항원에 결합시킨다.⑤ 이 항원에서 지속적으로 영상신호를 방출하여 항원을 분자수준적으로 관찰한다. 여기서 분자영상기술력과 연계되어 앞으로 생명공학에 더 이용될 수 있다.*녹색형광단백질을 가지고 광발광을 가진 생물해파리 해파리의 녹색형광단백질(GFP)대유동방아벌레*화학발광하는 생물(밥테일 오징어, 야광충)형광영상이란 세포, 조직, 또는 생체 내의 형광물질이 외부에서 조사한 빛을 흡수한 후 흥분되어 좀 더 긴 파장의 빛을 방출할 때 이를 감지하여 영상화하는 것이다.-방사성을 이용하지 않으므로 손상이 없어 장기간 또는 반복적으로 영상획득이 필요한 경우에 부담이 훨씬 덜함*위와 같은 탐구는 형광영상법에서 유전자의 발현과 표적물질의 분포와 이동 등을 관찰하기 위한 것형광단백질 중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해파리에서 채취한 녹색형광단백질로 GFP로 줄여 일컫는다. 이 GFP는 외부로부터 빛 에너지를 받아서 높은 에너지 준위에 있다가 다시 원 상태인 준위로 돌아가기 위해 발광을 하게 된다. 이러한 원리로 형광 단백질을 관찰하고자 하는 표적물질에 결합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형광 단백질을 대장균에 발현시켜 발광 박테리아를 만든다. 이 때 대장균은 대장균을 사용한 이유는 빠른 번식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쉽고 싼 비용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박테리아는 형광물질로써 바로 표적물질인 항원에 결합하기 어려워 항원을 쫓는 항체와 먼저 결합한 뒤 항원과 결합하게 된다. 발광 박테리아와 항체가 결합된 소재는 항원에 결합된 상태에서 영상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어 영상화할 수 있다. 또한, 항원과 결합하지 못한 소재는 바로 배출이 되어 나중에 영상화했을 때 S/N(좋은 형상영광을 얻기 위해 높여야 하는 것으로 이것이 높을수록 형광색소가 존재하지 않는 부분은 어둡게 나오고 존재하는 부분은 형광이 밝게 나오는 영상을 얻게 된다.)을 높여 항원이 어디에 분포하고 있으며 어디로 전이되는지 영상으로 관찰하기 매우 좋다.*위와 비슷하게 이용되는 다른 사례-발광 박테리아를 이용해 암 전이에 대해 연구가 가능하다.-표적물질을 암 세포로 한 뒤 암 세포의 분포와 전이에 대해 관찰할 수 있게 된다.-수술을 시행할 때는 시야의 확보를 위해 인체 조직이 절개 및 절제되므로 광선 투과의 장애물이 제거되어 광학영상을 응용하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 예로, 종양 수술 전에 형광물질을 정맥 주사하여 종양을 선택적으로 표지하면 수술시 형광현미경으로 종양의 경계를 보다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 유용할 것이다.이러한 광학영상 기법은 종양 수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수술에 이용되어 보다 좋은 수술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다음 탐구 계획은 반딧불이에서 얻을 수 있는 루시페라아제를 이용한 종양 치료에 관한 것이다.① 종양이 Renilla 루시페라제를 발현시키도록 유전자 조작을 한 뒤 생체에 이식(Renilla : 산호류의 일종인 생물, Firefly : 반딧불이)② 종양을 없애는 TRAIL을 분비하도록 만든 줄기세포가 Firefly 루시페라제를 발현 하도록 조작한 뒤 종양 주위에 이식(Renilla 루시페라제는 Renilla 루시페린에 의해서만, Firefly 루시페라제는 Firefly 루시페린에 의해서만 반응하므로 Firefly 루시페라제에 Renilla 루시페린 이 반응하여 빛을 낼 변수를 제외해도 된다.)③ Firefly 루시페린을 생체 내 주사를 한 뒤 영상을 보면 줄기세포가 증식하면서 종 양 주위로 이주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음④ Renilla 루시페린을 주사한 뒤 영상을 보면 줄기세포에서 분비되는 TRAIL에 의해 종양의 크기가 줄어듦을 관찰할 수 있음*레닐라(Renilla)의 발광*반딧불이의 화학발광*루시페린과 루시페라제의 반응생물 발광물질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반딧불이로 루시페린이라는 발광물질이 루시페라제라는 효소에 의해 산화되면서 빛을 낸다. 이 원리를 통해 일반적으로 연구자가 원하는 세포나 조직 또는 유전자를 추적 및 관찰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되어 왔다. 표적 유전자에 루시페라제를 주입시키고 영상화하기 직전에 효소작용에 필요한 기질인 루시페린을 투여하는 방법으로 같은 종류의 루시페라제와 루시페린끼리 반응한다. 이 특징을 이용하여 위의 탐구에서 renilla 루시페라제를 종양에서 발현시켜 생체에 이식하여 Firefly 루시페린을 주입해도 반응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Renilla 루시페린을 주입했을 때 반응이 일어나게끔 한다. 종양을 없애는 TRAIL(Tumor Necrosis Factor-related Apoptosis-including Ligand)을 분비하는 줄기세포에 Firefly 루시페라제를 발현시키도록 만든 뒤 종양 주위에 이식한다. 시간이 경과된 후 Firefly 루시페린을 생체 내 주사를 한 뒤 영상화를 해 보면 이 루시페린과 반응하는 루시페라제가 발현된 줄기세포가 발광을 하게 되면서 종양 주위로 이주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 후 Renilla 루시페린을 주사하고 영상화하게 되면 종양의 크기가 줄어듦을 관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