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에세이도서: 구운몽_저자 김만중소재/주제: 행복을 알려준 [구운몽]-서론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을 때가 있다. 자금을 마련해 원하던 옷을 사도, 학우들과 만나 담소를 나눌 때도, 시험을 잘 마쳤을 때도 기쁨은 잠시 잠깐만 찾아오며 그 후 찾아오는 감정은 허무함과 허탈함이다. 비로소 “내면의 무언가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세속과 향락을 모두 느꼈음에도 허무함과 허탈함을 느낀 [구운몽]의 양소유의 모습은 나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 사상 중 ‘무상’이라는 교리에 대해 깊게 고찰한 기억이 남는다. 세속적 허무함은 예부터 지속적으로 느껴왔던 감정이기에 이상적 교리에 관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기법 사상에 의하면 개인은 영원한 것으로 노래하며 영원한 것을 찾고자 하여도 우리가 세상 속에서 겪는 경험을 토대로는 결코 영원한 것을 발견할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지금 나는 마음 속에 영원한 무언가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해 어떠한 일을 하든 잠깐의 보람만 가지며, 그 뒤로는 별 다른 생각 없이 허무함을 느낀다. 허무함과 허탈함의 반복은 무기력을 가져오며 결국 이러한 상황의 반복 속에서 나는 결코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허탈감과 허무감은 내면의 행복을 이끌지 못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했으며 내면의 무언가를 채워야만 행복해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어떠한 행위를 하든 다음에 따라오는 감정이 ‘무’라면 진정 그 사람이 행복하기는커녕 살아갈 의지를 가질 것인가?그렇다면 나는 세속적인 허무함을 이겨내고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목표를 잡고 생활을 해나가야 할까. 나는 [구운몽]과 이외 여타 도서를 읽으면서 명상[교양]과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속적인 문제, 행복해지기를 단순한 생활 속에서 행위와 함께 알아가고자 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했다.-본론1. 세속의 끝, 허무함달콤한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리는 제자의 모습은 나와 필연 닮았다고 생각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만족감 속에 실제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일침이 내가 세상 속에서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 속에 채워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며 설령 이러한 상황은 환상에 그친다는 것을 잘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속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면의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행복은 결코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당장 어젯밤만 하더라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대접과 호의 이상의 감정을 드러냈던 행동을 받아 이 곳이 현실인 것 마냥 해벌레하다 깨어나서 보니 모든 게 꿈이어서 아쉬었던 기억이 있다. 이는 세속적인 향락이 그저 환상에 비침을 알 수 있었던 나의 하나의 경험이었다. 김만중의 [구운몽]에는 나비의 비유를 들어 현실과 꿈은 분별점을 이룩할 수 없이 교화되어 나타난다고 말해주고 있다. 역시 구운몽_주인공의 삶도 그러한데, 단순 현실과 이상의 구별하지 못함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주는 의문적 해석과 열린 결말에 기준을 맞추기보다는 현실과 꿈 사이 분별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만족하며 기뻐했던 양소유의 모습이 세속으로 흘러 들어간 양소유의 마음가짐을 더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양소유는 세속적인 행복 속에서 진정한 내면의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나만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글을 쓰는데 기준을 두었다. 즉 마음 속 허무함을 통해 멀어져가는 행복에 더 개념적 초점을 둔 것이다.2. 행복을 가진 사람들내가 그토록 바라는, 그러나 나와는 다르게 일상 속에도 내면의 행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많이 가진 것 같지도 않는데, 부유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얼굴엔 항상 미소와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반대로 불행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은 가진 것도 많아 보이고, 부유해 보이는데 항상 예민한 상태이며 빈번히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 번은 돈이나 재산이 많으면 행복해 질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착각을 단번에 사라지게 만든 건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일화이다.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약 430억원의 돈을 얻고도 “돈이 나의 삶을 파괴했다”라는 말을 남기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영 마가린의 사례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인생을 산 것 같지만 몇 년 후 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슬픔과 ‘돈 없어요.’이 두 가지 말에 국한된다. 일반화를 시킬 수는 없지만 조심하게나마 무언가 채워져도 자신의 내면은 채워지지 않았지만 세속적 물질로 그 속을 채워보려는 단순한 노력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부족해도 행복한 사람들은 왜, 어떻게 행복했을까? 물론 개인적인 방법과 방식으로 행복을 찾았을 것이며 개개인의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인 시각에서 그들의 공통점은 눈에 띄는 부유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세속적인 것에서 욕망을 채우기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내면의 가치를 바라봄으로 행복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무언가 세속적 풍부함을 벗어난 무소유의 정신을 알고 있다는 듯이, 세상에서의 덧 없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꿈 속에서 주어지는 세속적 환상에서 벗어나 진실되고 깨어있는 삶을 살고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추구하는 무소유의 정신은 세속적인 욕망을 떨치고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내면의 원인을 더 바라보는데 집중하게 만들었을 것이며 이는 [구운몽]의 양소유나 본인에게도 필요한 내면의 행복을 찾는 길라잡이가 되었다.따라서 나는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를 배워 무소유에 입각해 나만의 행복의 길라잡이로 사용해보기로 하였다. 인생 속에서 내가 가진 세속적 욕망의 탈피가 허탈함과 허무함을 극복하는 것의 방편을 마련해주고 더 나아가 어떠한 일을 해도 내면의 무언가를 채워 행복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3. 내가 행복을 찾는 방법자아 정체성과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키우는 일은 세속으로 채울 수 없는 속을 가득 채워 나만의 행복을 이끄는 표지판이 된다고 생각한다.힘든 생활 속에 조금 이나마 힘이 되어준 건 ‘자아와 명상’이라는 과목이었다. 실상 명상과목을 정각원 안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의 바람이었는데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어 선배들이 경험했던 진정한 명상의 맛을 느끼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어떠한 명상이든지 기본이 되는 것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다. 소유욕으로 인해 무엇을 가지든 만족감을 못 느끼던 나에게는 그저 일반적인 하나의 설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지 여기서 언급되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부려 쓸데없는 것을 가지려 하는 것을 막는 것이며, 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 적은 것에도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정신이다.법정의 [무소유]에 따르면 무소유의 인식은 본질적인 선천적 진리관에 입각하기 때문에 무소유에 입각하여 자아 존재감과 정체성을 잘 형성한다면 세상의 덧 없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정신적 가치를 키울 수 있어 욕망에서 벗어나므로 평안과 안정이 찾아옴을 알 수 있었다. [구운몽]의 양소유의 모습처럼 모든 것이 헛됨을 깨닫고 세속적인 욕망을 떨치니 더욱 성숙된 성진이 될 수 있었던 거처럼 무소유를 생각하는 명상을 통해 적게나마 윗 정신을 다듬고자 한다면 어찌 만족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마음은 허탈함과 무기력함을 넘어 안정되며 행복까지 느낄 수 있었다.또 하나로 나의 행복은 사람 대 사람으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유독 기뻐했던 과거의 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시간에 집중했던 보람이 있던건지 ‘인드라 망’이라는 개념이 문뜩 떠올랐다. 인드라라는 그물은 매우 범위가 넓고 그 그물의 사이사이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주는 관계라고 한다.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세상의 모습을비추고 있다. 우리는 서로서로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비추고 있는 밀접한 관계이다. 이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원인과 결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인연생기의 모습과도 잘 연결되는 적합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부족한 해석이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와 내 친구는 물론 모든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 그러기에 내면의 공허함, 적어도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노력은 만남이라고 생각했으며 현실적인 경험으로는 관계를 가져, 감정과 다양한 경험과 각자의 인격적 가치를 함유하고 존중하는 것이 내면의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경험를 가질 것이 어려운 방식에 근거하지 않는 것은 우리는 모두 인드라 망에 속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