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박티 요가’에 대한 탐구들어가며는 간디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즐겨 읽었던 인간 영혼의 길잡이가 되는 서적이다. 또한 와 함께 힌두 철학의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져 오늘날까지도 그에 대한 연구가 이어져오고 있다. 를 포괄하는 이야기인 에서 아르주나 형제는 그들의 친척들에 의해 부당하게 왕국을 빼앗긴다. 그리하여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아르주나는 혈육을 죽이는 것에 대한 비애의 감정에 휩싸인다. 는 신(神)이자 그의 전차장인 크리슈나가 그에게 어지러운 마음을 붙드는 법, 즉 요가를 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요가에는 지혜의 요가, 행위의 요가, 신애의 요가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신애의 요가, 즉 박티 요가에 대한 연구를 택하게 된 것은 최고신은 일체에 대해서 평등하다고 하여 모든 사람의 해탈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박티 요가’를 이해하기 위해 의 6장에서 12장까지를 참조하였다.본론에 나타난 박티 요가사실 가 체계적인 경전은 아니며 또한 나라다의 와 같은 곳에서는 낮은 단계의 박티와 높은 단계의 박티를 나누는 만큼 박티 요가에 관한 일관된 견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hakti의 어원상 박티 요가가 ‘숭배하다, 헌신하다, 사랑하다’ 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박티 요가는 절대자에 대한 인식과 숭배를 통해 해탈에 이르는 것을 강조한다.한편 이 박티 요가가 다른 것과 구분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의 즈나나요가(지혜의 요가)와 카르마 요가(행위의 요가)와 떨어져서 생각될 수 없다. 6장 명상의 요가에서 크리슈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의무의 명을 받으며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무심하니 그가 바로 요기이다. 감정을 제어하는 자에게는 땅과 돌과 금이 같아 보인다. 그는 브라흐만과의 합일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크리슈나는 행위의 요가를 잘 수행함으로써 신애의 요가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세 요가는 따로따로 생각되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박티 요가의 실행과 그 결과그렇다면 어떻게 박티 요가를 실천할 수 있는가? 우선 7장에 따르면 우리는 온 마음을 절대자에게 바쳐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절대자에게서 유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8장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이 끊임없이 절대자를 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죽어서 절대자의 품 안에 안착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 돌아갈 때 간절히 염원하는 것은 그가 온 생을 통해 염원해 온 것이므로, 그것이 후세에 실현되기 때문이다. 9장 신비주의 요가에 따르면 덧없는 세계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절대자에게 귀의함으로써 진정한 기쁨을 찾아야 한다. 절대자는 너그럽게도 다른 것을 숭배하는 것도 자신을 섬기는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절대자는 오직 유일한 신이기 때문이다. 단 이러한 사람들은 절대자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윤회의 굴레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이러한 크리슈나의 말을 듣고 아르주나는 12장에서 묻는다. 어떤 사람들은 절대자를 사랑으로 신앙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고 고정불변한 신으로서 신앙하고 있는데 누가 더 박티 요가를 잘 이해하고 있느냐고. 크리슈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끊임없는 사랑으로 절대자에게 몰두하는 자들은, 절대적 신념을 갖고 신앙하는 것이다. 신으로 신앙하는 자들은 더욱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데 구체화된 영혼들이 나타나지 않는 자를 인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써 에는 박티 요가의 실체와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이렇게 우리가 박티 요가를 행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른 인도철학과 마찬가지로, 이 박티 요가 역시 해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 끊임없이 신에 대해 생각하여 절대자에게 도달한다면, 카르마는 소멸되고 더 이상 고통스럽게 윤회하지 않는다.박티 요가의 대상이 되는 절대자박티 요가의 대상이 되는 절대자는 아르주나에게 요가에 대해 설명하는 크리슈나이다. 그리고 이 크리슈나는 유지와 보존의 신인 비슈누 신의 현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절대자는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절대자는 유일한 독존자라는 점에서 브라흐만이다. 제 10장에서 이 절대자는 비슈누이며 마리치(바람의 신)이며 사마 베다이다. 이는 인도철학의 다신론적이며 일신론적인 시각과 상통한다. 또한 이 절대자는 샹키야 학파의 푸루샤에도 비견될 수 있다. 7장에서 크리슈나는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유래하며, 자신은 이들을 포함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포함하지 않으며 자신과 접촉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박티 요가의 특성이러한 박티 요가 사상에서 특성이라고 할 만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절대자를 진정으로 경배한다면 절대정신의 실현에 다다를 수 있다고 인정한 점이다. 카스트는 전생의 카르마가 현재에 나타난 결과로,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전생에 업(業)을 많이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박티 요가를 통해 이러한 업을 단숨에 뛰어넘어 신의 품 안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평등주의적 사상을 내포하는 것이며 박티 요가가 가진 큰 힘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박티 요가에서는 진실로 악행을 저지르는 자라고 할 지라도 절대자를 숭배한다면 실로 선하다고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선 인간의 좁은 시야로 판단하는 선악 개념을 뛰어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인간의 지혜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전락하며 이는 기독교와도 유사하다. 또한 이 역시 다른 것에 우선하는 박티 요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구절로 이해할 수 있다.박티 요가에 대한 비판의 일관되지 않음을 고려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점을 비판할 수 있다. 앞서 서술했든 절대자는 심한 악행을 하는 자라도 자신을 진정으로 경배하는 자라면 선하다고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절대자는 다시 모든 것에 선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에 의해 판단된 선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긍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는악행을 긍정할 여지를 남겨준다.박티 요가에 대해서 베단타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할 수 있다. 불이론(佛二論)을 주창한 베단타의 샹카라는 브라흐만을 삼매(三昧)의 경지에서 존재-의식-희열로 체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브라흐만에 대한 높은 차원의 이해이고 이를 세계의 원인으로 이해하고 경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낮은 차원의 이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신애(信愛)의 요가를 포용하였지만 이것이 최선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았다.나가며박티 요가는 자신을 버리고 절대자를 온 마음을 다해 경배하는 요가 수행의 한 방법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전생과 현생의 카르마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를 수 있다. 비록 박티 요가가 베단타에서 지적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절대자가 자신을 내려놓고 온 생을 다해 그를 경애하는 사람은 마침내 그의 품에 안길 수 있음을 약속한 점에서 유한한 인간의 짐을 덜어주고 안도감을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주석 함석헌, 한길사, 1996, 옮긴이 박석일, 정음사, 1978, 곽미자, 한국심리치료학회지, 2006, 이태영, 인도철학회, 1989
니체의 「비극의 탄생」 4~6장 요약4장.소박한 예술가(A)에 대해서는 꿈의 비유가 우리에게 몇 가지 가르침을 준다. 1) 꿈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환영에 몰입하여 그것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사람을 상기하면, 우리는 꿈을 관조하는 것이 마음속에 커다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2)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를 위해 대낮과 대낮의 끔찍하고 성가신 일들을 잊어버려야만 한다.우리는 해몽의 신인 아폴론의 인도를 받아 이 모든 현상들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우리들의 삶 전체는 깨어 있는 상태가 절반을, 꿈꾸는 상태가 절반을 차지한다. 이 둘 중에서 우리는 깨어 있는 상태를 더욱 중시하며, 그것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니체)는 꿈의 가치를 정반대로 평가하고자 한다. 즉 나는 자연 속에서 저 강력한 예술충동을 감지하고 이 충동에 깃든 가상을 향한 강렬한 열망과 가상에 의한 구원에의 열망을 감지하게 될수록 다음과 같은 형이상학적 가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진정으로 존재하는 근원적 일자(B)는 영원히 고뇌하며 모순에 가득 찬 존재이면서 자신의 지속적인 구원을 위해 즐거운 가상(A)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러한 가상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으로 성립되는 바, 이러한 가상을 우리는 진정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율(A)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하는 것으로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경험적 존재를 세계 일반의 경험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근원적 일자(B)가 매 순간 만들어내는 표상으로 파악하게 된다면, 이제 우리는 꿈을 가상의 가상으로서, 가상에 대한 근원적 욕망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으로서 간주해야 한다.]가령 라파엘로는 에서 가상이 한 번 더 가상으로 승화되는 과정, 즉 아폴론적 문화의 근본적인 진행과정을 묘사했다. ⅰ.이 작품 하반부는 미친 소년과 그를 껴안고 절망하는 부모와 어쩔 줄 모르고 불안해하는 사도들을 묘사하면서 영원한 근원적 고통[모순],에게 숨길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아폴론적 존재 전체는 모든 아름다움과 절도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뇌와 인식이라는 숨겨진 토대에 근거하고 있다. 결국 아폴론은 디오니소스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그렇다면 가상과 절도 위에 건립된 세계 안으로 디오니소스 축제의 황홀한 음조가 어떻게 흘러들어가게 되었을까. 개체는 모든 한계와 절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디오니소스적인 상태라는 자기 망각 속으로 몰락해 갔고 아폴론적인 규준을 망각했다. 과도함이 자신을 진실로서 내세웠으며 고통에서 탄생된 환희라는 모순이 자연의 심장부로부터 자기 자신을 알렸다. 이리하여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침투했던 모든 곳에서 아폴론적인 것이 지양되었다. 그러나 또한 최초의 습격을 견뎌낸 곳에서는 델포이의 신의 위용과 존엄이 이전보다 더 견고하고 위압적으로 되었던 것이다; 도리스 국가와 그 예술이 이러한 아폴론적인 것의 연장이다.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은 항상 새롭게 잇달아 탄생하면서 서로를 고양시켜 가면서 그리스 본질을 지배해 왔다. ⅰ.청동시대-거인들의 전쟁시대-가 아폴론적 미의 충동에 의해 지배되면서 ⅱ.호메로스적인 세계가 생겨났다. 이러한 ‘소박한’ 장려함은 ⅲ.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물결에 삼켜지고 ⅳ. 이에 대항하여 아폴론적 도리스 예술의 시대가 도래한다. 최종적으로 두 예술충동의 공통의 목표로서 아티카 비극과 극 형식의 주신찬가(Dithyrambus)가 등장하게 된다. 이전의 오랜 투쟁 끝에 성취되는 두 충동의 신비로운 결혼은 이러한 자식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영광으로 장식되었다. 그러한 자식은 안티고네이면서 동시에 카산드라이기도 하다.5장.나중에 비극과 주신찬가로 발전하는 저 새로운 맹아는 그리스 세계의 어디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가? 이에 대해서 고대 그리스 자신이 우리들에게 형상을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즉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A)와 아르킬로코스(B)를 조각품과 보석 등에 나란히 새겨 넣었던 바, 이는 그들이 후대의 그리스 세계 전체에 흘러들어가는 불의 강의 원 반복, 세계의 두 번째 주조라고 불린 것은 정당하다. ⅱ.이제 음악은 서정시인에게 마치 비유적인 꿈의 영상처럼 아폴론적인 꿈의 작용에 의해 눈에 보이는 것이 된다. ⅰ.근원적인 고통은 처음에는 형상도 개념도 없이 음악 속에 반영되었지만 이제는 ⅱ.가상 속에서 구원을 받음으로써 개개의 비유, 실례로서의 두 번째 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술가는 이미 자신의 주관성을 ⅰ.디오니소스적 과정에서 포기해 버렸다. 그에게 이제 자기가 세계의 심장과 일체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형상은 ⅱ.저 근원적 모순과 근원적 고통을 가상의 근원적 쾌감과 함께 형상화하는 꿈의 장면이다. 따라서 서정시인의 ‘자아’는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울려나오는 것이다.조각가 및 그의 친척관계에 있는 서사시인(A)은 형상들에 대한 순수한 관조 속으로 침잠한다. 서정적 영혼(B)은 신비한 자기포기 상태와 합일상태로부터 하나의 형상세계, 하나의 비유가 자라나는 것을 느낀다. 전자는 이 형상들 속에서 그리고 오직 그것들 속에서만 즐거움을 누리고, 이들을 꿈 속에서 가상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처럼 감상한다. 따라서 이들은 가상이라는 이 거울을 통해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형상들과 일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반면 후자의 형상들은 바로 그 자신이며 자신의 다양한 객관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으로서 ‘나’라고 말해도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나는 깨어있을 때의 경험-현실적 나가 아니라 진실로 존재하는 유일한 자아 그리고 사물의 근저에 자리 잡은 영원한 자아이다. 이 자아의 모상들을 통해서 서정적 천재는 사물의 저 근거까지 꿰뚫어보게 된다.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 즉 서정적 천재가 이러한 모상들 중에서 비(非)천재로서의 자기 자신, 즉 하나의 ‘주체’, 주관적 열정과 의지가 뒤섞여 있는 전체를 어떻게 통찰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정열에 불타올라 사랑하고 증오하는 인간 아르킬로코스는 실제로는 이미 더 이상 아르킬로코스가 아니라 세계영혼으로 존재하는 영혼이 만들어 낸 하나의 환상 결핍을 느끼는 욕구의 절박한 충동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의 느낌이…본래 노래 전체에서 표현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서정적 상태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서정적 상태에서는 순수한 인식이 우리를 욕구와 충동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항상 거듭해서 욕구와 우리의 개인적 목적에 대한 상기가 우리를 고요한 관조로부터 떼어놓는다…”이 묘사 속에서는 서정시가 좀처럼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은 하나의 예술로서, 마치 욕구와 순수 관조의 기이한 혼합을 본질로 갖는 절반의 예술로 특징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분류하면서 쇼펜하우어도 여전히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하나의 가치척도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이러한 대립 자체가 미학에서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주체가 예술가인 한 그는 이미 예술의 적인 자신의 개인적 의지로부터 해방되어 있으며, 진실로 존재하는 주체[세계영혼]가 가상 속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것을 (자축하는 것을) 돕는 매체가 된다. 예술이 우리를 위해서 상연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우리가 저 예술세계의 진정한 창조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굴욕이 되면서도 우리를 우쭐하게 한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세계의 진정의 창조자에게는 이미 형상이고 예술적인 투영이며 예술작품이 갖는 의의 속에서 우리는 최고의 품위를 갖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삶과 세계는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에 관한 우리의 지식 모두는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식하는 자로서의 우리는 저 예술의 유일한 창조자이자 관객인 세계영혼과 일체도 아니고 동일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천재가 예술적 창조행위를 통해서 세계의 저 근원적 예술가와 융합되는 한해서만 그는 예술의 영원한 본질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아는 바가 있는 것이다. 이는 그가 자신을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제 그는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고, 또 동시에 시인이자 배우이며 관객이기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호메로스의 시세계와 가장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새로운 시세계가 아르킬로코스와 함께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 언어가 현상이나 형상의 세계를 모방했는지(A) 혹은 음악 세계를 모방하여 왔는지(B)에 따라 그리스 민족의 언어역사에서 두 개의 주요 흐름을 구별할 수 있다. 이러한 대립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려면 색채와 문장구조, 어휘와 관련해서 호메로스와 핀다로스에서 보이는 언어상의 차이를 단지 한 번이라도 보다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호메로스 시대와 핀다로스 시대 사이에 올림포스의 광란적인 피리가락(B)이 울려 퍼졌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이 손에 잡힐 듯이 분명하게 될 것이다. 이 피리가락은 음악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달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도취적인 열광상태로 이끌었고, 당시의 사람들이 모든 시적 표현 방식을 음악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자극했다.나는 여기서 우리 시대에 잘 알려진 어떤 현상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베토벤의 교향악을 들을 경우 아무래도 개개의 청중은 머리속에 형상을 그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떤 악장에 의해 산출된 여러 형상 세계들은 환상적으로 다채롭게 보일 것이며 더 나아가 서로 모순되게 보일 것이다. 그것들을 조합하는 데는 자신들의 빈약한 기지를 발휘하지만 진정으로 설명할 가치가 있는 현상은 간과해 버리는 것이 [근대] 미학의 수법이다. 설령 작곡가 자신이 어떤 교향곡을 전원이라고 부르고 어떤 악장을 ‘시냇가의 풍경’이라고 이름 붙이더라도 그것 역시 음악에서 태어난 비유적인 표상들에 지나지 않으며, 이 표상들은 음악의 디오니소스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못한다. 음악이 모방하는 대상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에서 태어난] 이 표상들은 다른 형상들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독자적인 가치도 갖지 못한다.우리는 “음악은 형상과 개념의 거울에 어떠한 것으로서 나타나는가?”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의지로서 나타난다. 이 경우 의지는 쇼펜하우어가
플라톤의 『국가』 요약1. 올바름에 관한 논의1) 올바름이란(가) 그 자체로 좋은 것 (나) 그 자체로도 좋고 결과도 좋은 것 (다) 결과로서만 좋은 것(나) 소크라테스 (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논의의 토대2) 글라우콘의 올바름; 올바름이 주는 결과만을 추구해야 한다- 실제로 올바르지 못함에도 올바름에 따라오는 좋은 평판만 취하는 것이 더 이롭다- 탐욕이 인간의 본성; 올바름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한가?- 올바름이란 법이고, 이는 허약하고 무능력한 이들의 계약 ; 강한 자는 이 구속에서 벗어나야- 인간은 올바르지 못한 일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올바름을 찬양3) 아데이만토스의 올바름; 올바름이 주는 결과만을 추구해야 한다- 올바름은 신의 은총을 가져다준다- 신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산다고 해도 불운을 내릴 수 있고 올바르지 않게 산다고 해도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다- 올바르지 않게 산다고 해도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 용서받을 수 있다- 신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만약 그렇다면 올바름을 추구할 이유가 없다이들이 이러한 반론을 펼친 것은, 소크라테스가 올바름이 결과로서 좋은 것(다)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기 원했기 때문4) 트라시마코스의 올바름- 올바른 것(to dikaion)이란 ‘더 강한 자(ho kreitton)의 편익(to sympheron)’- 국가마다 힘을 가진 쪽은 지배하는 쪽이고 이들은 법을 제정하는데 있어 자신의 편익을 목적으로 삼는다.5) 트라시마코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 편익이 올바른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것이 꼭 더 강한 자의 것이어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더 강한 자, 즉 통치자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통치자는 자신에게 편익이 되지 않는 것을 제정할 수 있는데, 다스림을 받는 이들이 이를 이행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더 강한 자의 편익이 되지 않는 것도 올바르다.즉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정반대로 이행하는 것도 올바르다는 결론이 게 되니 지배 하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이행하는 것이 올바르다.7) 소크라테스의 재반박; 진정한 통솔자의 의미- 의사의 예; 의술은 돈벌이가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것에 뜻을 두고 있음. 기술은 그 스스로에게 편익을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기술이 관여하는 대상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그리고 그 자체의 훌륭함(arete)를 도모한다.- 마찬가지로 통솔자는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명령하지 않고 자신이 통솔하는 사람들의 편익이 되는 쪽으로 일한다.2. 국가의 정의1)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개인 수준이 아니라 국가 수준의 정의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말함2) 국가의 성립가. 국가의 기원- 최소한도의 나라; 분업을 위한 생활공동체- 사람은 상대적으로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이 있다-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개인의 효율이 높아지면 사회 내 효용 또한 높아진다.나. 국가의 확장건강한 국가(참된국가) ; 구성원들이 필요에 맞는 생활을 영위하는 국가(무역, 검소)다. 큰 국가염증 걸린 나라; 규모 확대 – 자원부족 – 전쟁3. 수호자1) 수호자의 조건가. 좋은 신체적 조건나. 적에게는 용맹스럽되(격정) 자국민에게는 절제(온순)지혜를 사랑 - 앎을 바탕으로 피아구분2) 수호자들의 교육: 몸을 다스리는 체육교육과 영혼을 위한 시가교육시가 교육이 우선해야가. 시가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감독 필요; 덕을 습득a. 그리스 신화 비판신들은 경솔하거나 잔인해서는 안되며 올바르고 도덕적이어야사후세계의 고통만을 묘사하면 젊은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므로 사후세계가 즐거운 곳으로 그려져야b. 시가교육에서의 말투웃음을 너무 좋아하게 해서는 안됨정직을 사랑하도록 해야함절제와 순종의 미덕c. 모방을 부정; 한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하나만 해야d. 음악; 복잡 x 예절과 용기를 나타내는 리듬나. 체육교육; 몸을 돌보는 활동 전반다. 시가 교육 극대화 – 필요 이상으로 온순/체육교육 극대화 – 필요 이상으 해로운 일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러한 원칙을 평생에 걸쳐 고수하는 사람4. 국가의 도덕과 개인의 도덕1) 국가의 도덕가. 지혜; 나라 전체가 잘 지내도록 수호자들이 지닌 지식나. 용기; 군인들이 자신이 두려워해야 할 것에 대한 소신다. 절제; 개인 내에서 한결 나은 부분이 못한 부분을 제압하듯 국가 내에서 한결 나은 구성원이 못한 구성원을 제압라. 올바름; 각자 맡을 일을 하고 참견하지 않는 것2) 개인의 도덕가. 국가의 올바름 – 각자가 맡은 일을 하는 것개인의 올바름 – 영혼의 각 부분이 각자 맡은 일을 하는 것나. 국민의 세 부류에서 영혼의 세 부분을 유추; 헤아림, 격정, 욕구다. 개인의 올바름; 헤아림, 격정, 욕구가 제 일을 하는 것라. 올바르지 못함; 조화의 깨짐3) 도덕과 행복의 관계건강; 신체 각 부분의 지배와 피지배관계 확립질병; 조화의 깨짐훌륭함 – 혼의 건강/나쁨 – 혼의 허약함혼의 상태는 생활 습관에 따라 좌우됨건강을 잃은 사람이 행복할 수 없듯 올바르지 못한 사람 또한 행복할 수 없다올바르지 못한 것이 이득이 될 수 없다5. 여성의 지위와 가족의 문제1) 여성의 지위여자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을 받아야 한다가. 여성에 대한 수호자 교육의 가능성분업의 원리를 따른다면, 남녀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할 수 없음반론) 남녀는 성향이 아니라 육체의 차이가 있다대머리 제화공과 장발의 제화공의 성향이 달라서 한쪽은 제화공 노릇을 하게 하고 다른 한쪽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스운 것남자 의사와 여자 의사는 성향이 같다남자 수호자들과 그들의 아내는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어 같은 업무에 종사해야나. 여성에 대한 수호자 교육의 유익성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사람이 수호자가 됨나라 안에 최선의 여자들과 남자들이 생기는 것은 좋은 것2) 가족의 문제가. 결혼의 문제, 처자들의 공유수호자 계급에는 사적 소유가 허용되지 않고 공동 생활이 요구되기에 그 속에 있는 남녀는 성적 필연성에 의해 이끌림수호자 계급이 최선의 가 아니거나, 변변찮은 사람들의 자식들은 양육되지 않음)나. 처자들의 공유와 최대선나라의 최대선; 단결처자공유제를 실현함으로써 동료 수호자를 가족으로 생각하게 됨a. 옳고 그름에 대한 공감b. 재산 공유 통해 분쟁 방지6. 철인 통치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상 국가가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움을 인정1) 철인 통치의 정당성;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리거나, 권력자가 철학을 하지 않는 한 나쁜 것들의 종식은 없음2) 철학자란가. 철학자에 대한 정의모든 종류의 지혜를 욕구하는 자/모든 배움을 선뜻 맛보려 하고 반기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진리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나. 인식, 의견, 무지철학자는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 같은 상태로 있는 것들’과 그것이 관여하고 있는 것 구분철학자의 사고; 인식(↔의견)있으면서 있지 않은 것에서, ‘있는 것’에는 인식이, ‘있지 않은 것’에는 무지가, 그 사이에는 의견이 대응다. 철학자의 성향과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a. 철학자는 언제나 존재하며 생성과 소멸에 영향 받지 않는 본질을 드러내는 가르침인 지혜를 사랑함b. 진실함 (거짓을 싫어하고, 진리를 좋아함)c. 고매함 (세속적인 삶에서 초월하여 본질을 관조); 어떤 욕구가 특정한 방향을 향하게 되면 다른 방향에 대한 욕구들은 그만큼 기쇠d. 쉽게 배우고 기억력이 좋음라. 철학자에 대한 비방의 원인쓰이지 않는 자가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철학적 성향의 타락마. 철학적 성향이 타락하는 원인좋은 것들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 준수함, 부, 체력 등이 철학에서 멀어지게 함철학적 성향을 가진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를 철학에서 멀어지게 함민중의 선동과 소피스트들의 가르침이라는 잘못된 지도가 철학에서 멀어지게 함a.바. 철학자로 남게 되는 사람들a. 고귀하고 훌륭하게 양육되었지만 망명한 사람b. 위대한 혼을 지녔지만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나랏일을 경시하는 사람c. 훌륭한 혼이지만 몸이 허약하여 정치를 못하고 주저앉은 사람. 철인 통치자가 나타나는 두 가지 가능성우연적으로 철학자가 통치자가 됨신적인 감화로 인해 철학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나라에 엄습c. 민중 교화의 희망; 민중이 거칠게 된 것은 선동하는 소피스트들 때문/진정한 철학자를 본다면 이들이 철학에 호의적으로 바뀜d. 철인 통치자가 하게 될 일자신이 목격한 것을 타인의 인격에 구현되도록 함올바른 정체로 올바른 것, 아름다운 것을 인간의 성격에 구현하여 이를 신적인 것으로 이끔7. 좋음의 이데아와 선분의 비유1) 좋음의 이데아가. 소수만이 가능한 철학자의 자질재치있고 민첩하고 활기차고 당당한 성향과, 안정됨을 유지하고 절도 있게 살고 싶어하는 성향을 동시에 가져야 함나. 좋음의 이데아가장 큰 배움올바름 및 다른 것을 유용하고 유익하게 하는 원리다른 것들의 좋음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는, 모든 것의 궁극적 원리수호들이 좋음의 이데아에 대해 알지 못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음다. 좋음좋은 것은 올바르고 아름다운 것들로 ‘여겨지는 것’들을 넘어 ‘사실로 그런 것들’을 추구라. 태양의 비유이데아사물일다보편개별지성에 알려지기는 하나 보이지 않음보이기는 하되 지성에 알려지지 않음태양이데아같은 역할보는 힘 – 빛 – 보이는 힘지성 – 인식 – 지성에 알려지는 것태양 → 빛좋음의 이데아 → 인식2) 선분의 비유보이는 것들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것들존재영상, 그림자물리적 대상수학적인 것이데아앎의견추론인식상상믿음8. 동굴의 비유1) 동굴의 비유동굴 속에 사지가 결박된 사람들 – 인형 – 불/사람들은 그림자가 실재라 생각결박당한 사람들 중 누군가가 풀려나 인형을 봄 – 불빛을 봄 (눈이 부셔 이끄는 사람의 지도가 없으면 거부함) – 불빛에 익숙해져 동굴 밖을 나갈 수 있도록 함동굴 밖의 실물 그 자체(이데아)와 태양(선의 이데아)을 보게 됨동굴 속의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껴 그들을 데려가려 하지만 비웃음만 삼2) 동굴의 의미실재를 인식할 가능성이 없는 세계벗어나야 할 기존의 관습3) 바깥 세계태양은 보는 힘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 1장1. 시학의 주제는 작시술이다.2. 서사시, 비극시, 희극시, 디티람보스(디오니소스 제전의 찬가)는 모두 모방의 양식인데, 1) 모방의 매재 2) 모방의 대상 3) 모방의 양식에 있어 차이가 있다.1) 모방의 매재는 율동, 언어, 해음인데, 이들은 단독으로 사용될때도 있고 혼합되어 사용될때도 있다.Ex. 무용술은 율동을 사용한다.단, 사람들은 운율과 시를 연관시킨다. 이들은 의학이나 자연학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운문으로쓰여졌으면 그 저자를 시인이라고 부른다(ex. 엠페도클레스의 작품은 운율을 가지지만 그는 자연학자이다.)모든 매재를 다 사용하는 기술 형식은 디티람보스, 송시, 비극, 희극이다.제2장2) 모방의 대상모방자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고,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선인이거나 악인이기 때문에, 이는 우리들 이상의 선인이든지, 혹은 그 이하의 악인이든지, 혹은 우리와 동등한 인간일 것이다(*여기서 선인과 악인은 도덕적인 의미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탁월함과 연관지어져야 한다.)희극은 현실적 인간 이하의 악인을 표현하려 하고, 비극은 그 이상의 선인을 표현하려 한다.제3장3) 모방의 양식a. 모방의 매재와 대상이 동일 - 서사시b. 시인의 목소리로 - 서정시c. 모방자들, 즉 배우가 모든 행위를 실현 - 극제 4장시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고, 이 두 개의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근거를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본성인간은 모방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다르고, 모방에 의해 획득하기 시작하며, 모방된 것에 대해 희열을 느낀다.배우고자 하는 본성, 운율과 율동을 향한 본성비극과 희극은 즉홍적인 것에서 기원한다(비극은 디티람보스에 기원을 두고 변화를 겪은 후에 본연의 형식을 획득하고 발전은 정지되었다).제5장1. 희극희극은 전술한 바와 같이 보통 사람 이하의 악인의 모방이다. 그러나 이때 보통 사람 이하의 악인이라 함은 모든 결점에 관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그 특별한 종류 즉 우스운 것에 관하여 행됨을 의미함3. 비극의 6개의 부분: 장경, 가요, 조사, 성격, 사상, 플롯1) 모방의 양식: 장경2) 모방의 매제: 가요와 조사조사: 운문의 작성.가요: 비극이 주는 쾌감을 돕는 가장 좋은 양념3) 모방의 대상: 성격, 사상, 플롯• 행위자는 성격과 사상에 따라 일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행동의 원인도 이 두 가지이다. 성격이란 그것에 의하여 우리가 행위자를 일정한 성질이라고 말하는 바의 것이다. 성격은 행위자의 의지를 명백히 한다. 사상이란 그가 어떤 것을 증명하거나 혹은 보편적 진리를 진술하려고 할 때, 그의 언어에 나타나는 것이다(해당되는 경우에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화자가 어떤 것을 그렇다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고 논증하거나 어떤 보편적 명제를 언명할 때 그들의 언사 중에 나타나는 것이다.• 행동의 모방이 '플롯'이다. 플롯이라는 것은 다름아니라, 사건의 결합이기 때문이다.4) 가장 중요한 것은 플롯.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다.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하는 것이며,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고, 우리의 생활의 목적도 어떤 행동이지 성질이 아니다.행동은 성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격이 행동을 위하여 극에 포함되는 것이다(성격은 2차적인 것).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주로 행위자를 모방하는 것도 행동을 모방하기 위해서인 것이다.제 7장비극의 사건들은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가비극은 완결적이고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있는 전체적 행동의 모방1. '전체'는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지고있는 것인데,시초는 그 자신이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고,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하는 것종말은 이와 반대로 그 자신이 필연적으로 혹은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오나, 그것 다음에는 아무런 다른것이 오지 않는 성질의 것중간은 그 자신이 다른 것 다음에 오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잘 구성된 플롯은 아무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나서는 안된다.2.리멸렬이 되게끔 구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현저한 차이를 초래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제9장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 즉 개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것을 말하는 것에 있다.역사는 실제 일어난 것을 말하고, 시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을 말하는데, 따라서 시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삽화적 : 어떤 플롯이 다른 것과 개연성도 필연성도 없는 것비극은 단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만 아니라 공포와 애련을 환기하는 사건의 모방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건이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것은 그것이 불의에 일어나고 동시에 상호 인과관계에 의하여 일어날 때다. 이와 같을 때에 사건은 그것이 저절로 혹은 우연히 일어날 때보다 더 경탄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우연한 사건일지라도 마치 그것이 어떤 의도에 의하여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면 가장 큰 경탄을 자아내기 때문이다.제10장플롯은 단일하거나 복잡하다. 왜냐하면 플롯의 모방의 대상인 행동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1) 단일한 행동: 하나의 계속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는 행동,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는 급전과 발견 없이 이루어진다.2) 복잡한 행동: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가 발견 혹은 급전에 의해, 혹은 양자가 다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경우.3) 급전과 발견은 플롯 자체의 구조로부터 발생하고, 이전 사건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여야 한다.제11장플롯의 세 부분1.급전: 사태가 반대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변화는 개연성 내지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ex. 에서 한 사자가 오이디푸스를 기쁘게 하고 그의 모친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의 신분을 밝혔기 때문에 사태는 역전된다.2.발견: 행운 혹은 불행에의 숙명을 가진 인물들이 무지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함을 - 그 결과 그들은 친애 혹은 적대의 관계로 들어가게 된 번영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4) 단일한 결말(행복>불행)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중의 결말(권선징악)을 가져서는 안된다.제14장공포와 애련의 환기1. 장경이나 사건의 구성 자체로부터 환기될 수 있는데, 후자가 더 우수하다;플롯은 시각에 호소하지 않더라도 사건의 경과를 듣는 자가 그 사건이 일어날 때부터 전율과 애련을 느끼게끔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장경에 의한 환기는 외적 수단(무대나 인물의 장식 등)을 필요로 한다.[반복] 비극에 고유한 쾌락이란 애련과 공포에 기인한 쾌락이고, 시인은 이 쾌락을 모방에 의하여산출하지 않으면 안된다.2. 두려운 혹은 가엾은 인상을 주는 사건1) 친한 사이에서2) 무서운 행위가a. 의식적으로()b.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나중에 발견()c. 상대가 누군지 알고 행하려다가 중지d.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행하려다가 범행 직전 알게 됨c종(구리쇠로 그의 생명의 물을 푸면서: 푸다=제거하다)유비: 네 개의 항이 있을 때, 제 2항의 제 1항에 대한 관계가 제 4항의 제 3항에 대한 관계와 같을 때를 의미. 이럴 때에는 제 2항 대신에 제 4항을, 제 4항 대신에 제 2항을 대치할 수 있기 때문.4) 수식어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의 명칭으로 부르는 동시에 이 명칭에 고유한 속성의 하나를 부정5) 신어한 국민 사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말을 시인 자신이 만든 것6) 연장어원래의 단모음을 장모음으로 하였거나, 추가로 음절을 삽입한 말7) 단축어그 일부분을 상실한 말8) 변형어시인이 어떤 말의 일부분은 그대로 남겨두고, 다른 부분을 조작한 말3. 명사의 성 - 어미1) 남성 - N, R, S(*S와의 합성어 Psi, xi)2) 여성 - eta, omega, alpha무성음이나 단유성음(E, O)으로 끝나는 명사는 없다.3) 중성a. 장음도 될 수 있고 단음도 될 수 있는 유성음(A, I, Y)I로 끝나는 명사는 3개 - meli(꿀), kommi(고무), peperi(고추)Y로 끝나는 명사는 5개 - dory(창), pwy(양떼), .제24장2) 서사시는 비극과 동일한 종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즉 그것은 단일하든지 복잡하든지 해야 하며, 성격적인 것이든지 혹은 파토스적인 것이어야 한다.또 그 부분도 가요와 장경을 제외하고는 비극과 동일하여야 한다.서사시도 급전과 발견 및 파토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2. 서사시와 비극의 차이점1) 구조의 길이서사시는 동시에 일어난 많은 사건을 그려내는게 가능하다.2) 운율영웅시의 운율이 서사시에 적합하다(장단단격 6절운율). 이것은 가장 안정성 있고 무게 있는 운율이다.* 시인은 자신이 작품 중에 나타나서 말하는 것은 될 수 있는 한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에는 그는 모방자가 아니기 때문이다.3) 서사시에서는 비개연적인 것이 더 많이 허용된다.왜냐하면 서사시에서는 행위자가 우리의 눈 앞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4) 허구를 잘 구성하는 법 - 오류추리갑이 존재하거나 혹은 일어날 경우에 을이 존재하거나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을이 존재하면 갑이 존재하거나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따라서 만약 갑은 허위이나 을이 존재하고, 이 을은 갑이 참일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때 허구를 구성하는 방법은 을을 부가하는 것이다.5) 스토리는 비개연적인 사건을 부분으로 하여 구성되어서는 안되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와 같은 부분은 본 스토리 밖에 놓여져야 한다.제 25장여러 문제와 그 해결전제1) 시인은 모방자이므로 사물을 세 국면 중의 하나에 있어서 모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 국면이라 함은 사물의 과거나 현재의 상태이거나, 혹은 사물이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 이러저러하다고 말하여지거나 생각되는 상태이거나, 혹은 사물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상태이다.2) 시인은 외래어나 은유 및 변용된 말을 혼용할 수 있다.3) 작시술의 두 가지 오류 -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비본질적)인 것a. 작시술 자체의 오류: 시인이 사물을 정당하게 모방하기를 의도하였으나 역량 부족으로 실패b. 부수적 오류: 각 분야에서의 기술적 오류(예컨대 의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