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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미나 레포트] 5-60년대 국가에 대한 김수영의 자연법적 사고
    5-60년대 국가에 대한 김수영의 자연법적 사고학번 과 이름< 목차 >1. 김수영 시인과 국가2. 국가에 대한 김수영의 자연법적 사고2.1. 5-60년대 지식장의 국가/법의 사유방식2.2. 국가에 대한 김수영의 자연법적 사고3. 자연법적 사고를 통한 현실 극복20세기 후반 한국의 가장 큰 변화는 자본주의적 산업화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근대화 담론은 1960년대 들어 더욱 강력한 지배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60년대 전반기는 현대적 정치 사상, 민족 정체성, 법이념 등 근대 국가로서의 중요 가치들을 정립해가는 복잡한 시기였다. 60년대에는 성장·발전주의가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와 목표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김수영의 시는 그러한 담론으로부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김수영은 근대화와 같은 표면적인 목표보다는 근대화의 어두운 이면과 세속성에 오염된 자유를 찾는 데 더 관심을 보였다.김수영은 그의 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그 방안을 탐색했다. 김수영은 이나 등 그의 시에서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통해 당대 현실을 성찰한다. 김수영의 시는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당대의 과제가 성장·발전주의 담론에 의해 왜곡되고 문화적 자유가 억압당했던 5-60년대와 시인 김수영의 내면이 부딪힌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이 글에서는 5-60년대에 국가와 법이 비판받던 이유가 무엇인지 당대 지식장의 국가/법의 사유방식을 살펴보고, 김수영의 시에서 나타나는 자연법적 사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5-60년대 지식장의 국가/법의 사유방식먼저 5-60년대 지식장에서 국가와 법을 어떻게 사유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수영이 국가와 법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당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근대국가 건설을 지향하며 계속된 시행착오를 겪었던 60년대에, 국가/법에 대한 개념은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현대적 정치 시스템과 법이념이 결합되며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민주공화국으로6 이전의 구정권하에서는 일찌기 가져 보지 못하였던 강력한 권력구조하에 의욕적인 사회개혁을 단행하기 위하여, 신법을 제정하고 구법을 개발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요, 둘째로는, 구한말 이래 특히 일정시대와 미군정시대의 법령이 이미 정리되어 정부에 의 한 우리 자신의 법으로 대치되어야 할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략) 그것을 전부 폐지하고 그것에 대치될 신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중략) 법은 민중의 법의식이라는 기초 위에 제정될 때에만 ‘살아있는 법'으로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말하자면 ‘법의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법학자 현승종은 민중적 법의식에 기초를 둔 법을 ‘살아있는 법’이라고 정의하며 ‘죽어있는 법’과 구분한다. 그는 5·16 직후 혁명정부에 의해 이행된 수많은 입법과정이 민중의 법의식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와 같이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권위적인 법을 ‘죽어있는 법’이라고 하며, 법의 과잉인 ‘법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는 당대의 법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기 혁명정부에게는 신법제정과 개정과정을 통해 국가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여기서 60년대 법감정 및 사유방식은 동시에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국가와 법을 민중적 법의식과 반대되는 ‘죽어있는 법’으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민중적 법의식에 해당하는 ‘살아있는 법’의 가능성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있는 법’이란 민중의 법의식에 어긋나는 실정법에 저항 가능한 ‘자연법’적 정의감으로 인식되기에, 5·16 이후의 신법은 비판받았다. 60년대 초반 법이 과잉되는 상황 속에서도 법은 권력자들을 위한 국가권력 강화의 수단이라는 비판적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처럼 법제정과 개정의 구체적 필요 속에서 법비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50년대 추상적인 국가/법이해와는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법감정은 60년대가 그만큼 입법과 법과잉의 시 이해되었다. 이에 비하면 60년대의 국가/법에 대한 사유는 600여개의 입법 및 개정과정이라는 혼란한 사태 속에서 법과 국가와의 관계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50년대의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법이해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60년대 국가/법의 문제는 헌법개정안 중심의 다양한 논의를 통해 자유와 통제, 의무와 권리, 개인과 국가라는 상쇄적인 개념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헌법은 권력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일반적 규칙이라고 정의되고, 국가권력은 한계를 모르는 끝없는 욕망이라는 병리를 지닌 것이며, 헌법의 역할을 권력의 욕망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로 인식하였다.종합하자면 60년대 법에 대한 사유는 죽어있는 법, 즉 실정법을 비판하면서도 살아있는 법의 가능성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양가적이며, 원론적인 명령으로서의 법의 의미를 현실적 정세와 생활 속에서 검토한다는 점에서 구체적 현실감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법의 문제는 현실와 관련된 구체적인 법감정을 포괄하고 있었다.60년대 지식장에서의 국가/법 사유는 구체적 정세와 현실적 사안 속에서 공동체적 질서와 개인의 자유, 통제 권력과 민주주의적 질서의 대립각을 통해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가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억압과 해방이라는 이중적 목표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국가감정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국가에 대한 김수영의 자연법적 사고김수영은 60년대 전반기를 거치며 일련의 정치적 사건에 대하여 깊이 사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른바 ‘참여파 시인’으로 불려졌으며, 국가/법에 관한 성찰과정에 내용적인 변화를 겪는다. 4·19 직후의 시에서 국가/법 비판적 사유는 극명한 비판과 직설적 언어로 표현되지만, 이후 64년경의 국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며 역설적인 비판양상을 가진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시를 통해 국가/법을 사유하는 방식에 자연법적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시로 「육법전서와 혁명」이 있다.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중략)이래도/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公序良俗) 정신으로위정자가 다 잘해 줄 줄 알고만 있다?순진한 학생들/ 점잖은 학자님들?체면을 세우는 문인들/ 너무나 투쟁적인 신문들의 보좌를 받고아아 새까맣게 손때 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4·26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차라리/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하기야/ 혁명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하고?신문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쓰는 말밖에는 아니 되지만/ 그보다도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는 밖에 없으니까김수영, (1960. 5) 부분「육법전서와 혁명」은 4·19에서 이승만 하야 이후 과도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을 거치며 국가/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시에서 성찰의 언어적 계기는 ‘혁명’ 이다. 혁명은 국가/법보다 우선하는 가치이다. 따라서 기성의 육법전서로서의 법은 혁명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기성의 손때 묻은 구육법전서, 즉 실정법으로서의 법은 “불쌍한 백성들”인 “그대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위정자”와 “그놈들”을 위한 혁명을 수행한다. 그러나 “혁명의 육법전서는 밖에 없다”는 구절을 보아, 진정한 혁명이란 기성의 육법전서로서의 법이 기준이 되지 않는, 방법부터가 혁명 그 자체인 것이어야 한다.여기에는 법에 대한 이중적 기준이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성의 육법전서와 혁명적 법, 즉 기성의 실정법과 그로부터 초월한 혁명적 법이라는 대립 관계를 드러낸다. 이 시는 “기성 육법전서”와 “혁명의 육법전서”, “그놈들”과 “그대들”이라는 대립구도와 이분화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방법과 목적 모두 ‘법 위의 법’ 이라는 초월적인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에게 국가/법이란 억압적 존재로서 부정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는 이 시기 날카로운 비판적 시선의 혁명적 법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법의 대립을 통해 당대의 국가/법을 부정하고자 한 것이다.이 시기 이후로는 국가/법에하게 돌아가는 정세 속에서 법의 정당성과 윤리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했다. 60년대 자연법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시기적 필연성과 맞물리면서 담론화되었다.자연법은 50년대 후반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60년대에 들어 학문적으로 진지하게 연구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실천적 휴머니즘담론과 결합하여 60년대 지식장에 들어왔다. 60년대 자연법은 학문분야뿐 아니라, 신민법제정이나 헌법개정비판과 연결되면서 실물감을 갖는 법감정으로 형성되었다.이처럼 자연법은 사실적 법제정과 개정의 현실 속에서 표준점이 될 수 있었다. 60년대 전반기 자연법적 가치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실정법이 부적절하다면 일시적으로 폐기될 수 있다는 법파괴적 사유까지 가능케 하였다. 자연법이라는 개념은 법유지적 실정법과 법파괴적 자연법을 분리하고 이원화함으로써 국가/법이라는 규범세계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김수영 문학에서 자연은 근대적인 것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의미를 내포하였다. 김수영은 50년대 후반부터 자연에 대해 적극적인 사유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국가/법 비판의 대안적 보충물로 의미화 될 수 있다. 국가/법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적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비판의 양상을 국가/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의 방향을 바꿀 때 ‘무엇'의 내용이 바로 자연법적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자연'이란 ‘자연 그 자체'의 표상을 포함하는 인간 삶의 자연적 본성을 의미한다. 자연법이란 실정법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실정법에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법규범 즉, 신의 법칙, 우주 질서 혹은 인간본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 김수영의 실정법 비판의 근거는 실정법 우위의 법, 윤리적 차원의 법에 있다. 60년대 지식계에서 새롭게 주목했던 자연법담론이 김수영의 사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가/법에 대한 김수영의 관심의 지평 속에서 자연법적 사유는 작동되고 있었다.김수영의 시에서 자연 그 자체를 직접 대상화하고 표있다.
    법학| 2023.06.18| 7페이지| 3,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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