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 커뮤니케이션과현대사회월56교시R E P O R T학번X00000성 명XXX제출일0000.00.00영화“여인의 향기”를 보았다. 처음 교수님께 여인의 향기란 제목을 전해 듣고, 여인의 매혹적인 것. 그 무언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의 줄거리는 내 추측과는 전혀 달랐다. 여인을 키워드로 내세운 줄로만 알았던 이 영화는 여인을“그리워만 할 뿐”인 퇴역장교와 명문고의 고등학생이 뉴욕으로 떠난 3~4일간을 담은 영화였다. 줄거리와 다르게 영화의 이름이“여인의 향기”인 것은 이 영화가 1974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영화 Parfum De Femme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영화의 줄거리는 앞서 말했듯, 눈이 먼 퇴역 장교 프랭크와 명문고의 고학생 찰리가 뉴욕으로 3~4일간 떠나면서 보고, 느낀 것을 담은 이야기이다. 처음 만난 그 둘은 여태껏 살아온 삶과 행동, 성격 등 무엇 하나 닮은 것이 없지만 짧은 여행을 통해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각자 마음속에 지고 있던 큰 짐을 여행을 통해 내려놓게 된다.겉보기에 자신감 넘치고 가족을 사랑하며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던 프랭크는 사실,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을 넘어 크게 좌절하고 있었다. 시각을 잃음으로써 마음속에 큰 상실감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실감은 프랭크가 결국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남은 생을 거두는 계획을 세우게끔 하였다. 어찌보면 우리의 오감. 즉, 시각과 후각, 미각, 청각, 촉각 중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소통의 매체이다. 그리고 더 넓게 본다면 우리가 생활에서 마주보는 모든 것들이 모두 소통의 매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하지만 인간으로서 타고난 이러한 소통매체의 유무가 꼭 소통의 능력과 비례할 것인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소통매체 중 하나인‘시각’을 잃은 프랭크는 시각을 갖고 있는 찰스보다 여인과의 소통에 능통하다. 여인과의 소통에서는 시각이라는 매체보다 성격이라는 또 다른 매체가 비중이 더 컸던 것이다.영화는 소통의 필요성, 소통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학교에서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큰 짐을 지게 된 찰리는 프랭크와의 소통을 통해 그에게서 사건 해결의 답을 얻게 되고, 그 해답에 감동받은 프랭크는 또다시 배심원과 여러 학생들에게 연설함으로써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만약 찰스가 이것을 혼자 판단하며 배심원들과 소통했더라도 이러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아마 이러한 결과를 내더라도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범죄와 사회작성일 : 2016. 03. XXXXXX과 X000000 XXX“그린마일” 을 보고과제로 인해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 내가 선택한 영화는 바로 “그린마일”. 사실 보려던 영화는 “데드맨워킹” 이었는데 제목을 착각해서 “그린마일”을 보게 되었다. “그린마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내가 꼬꼬마시절이었던 2000년도에 개봉되었던 영화로 무려 188분... 3시간이나 되는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이다. 사실 나는 톰 행크스가 누구인지와 유명하다는 것만 알지,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나온 영화의 리뷰들에는 종종 “역시 톰 행크스!!” 라는 글이 등장한다는 것은 안다. 그의 최신작인 “스파이 브릿지” 라는 영화도 그런 리뷰에 낚여서 보게 되었었는데... 내가 아직 덜 성장한 탓인지.. 이념이니 신념이니 최고의 명작이라는 리뷰와는 달리 그 영화는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하였었다. 때문에 영화를 하나하나 검색해 본 후,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역시 톰 행크스!!” 와 같은 리뷰가 있는 것을 보고 이 영화는 목록에서 조용히 삭제하였었는데... 바보같이도 나는 착각을 했고, 톰 행크스 주연의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영화의 대략적인 분위기는 “스파이 브릿지” 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펙타클한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느끼기에 큰 사건, 위기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조금은 지루한 분위기. 어쩌면 내가 네이버영화의 줄거리를 대충 읽어보고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더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주인공 존 커피가 무죄라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이 커피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도 나는 ‘그는 착한사람’ 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박혀있었기에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영화는 3시간이나 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느 할아버지의 회상으로 드디어 영화가 시작이 되는데, 이 할아버지가 주인공 “폴”이다. 폴은 과거에 교도관으로 일했던 사람으로, 그 당시 겪었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주된 내용에는 ‘딘’ 등 그의 동료 교도관들과 ‘에드와드’ 와 ‘해리’ 그리고 ‘아린’ 등 몇몇 사형수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이 E구역에 새로운 사형수 커피가 들어오는데, 이 사형수 심상치 않다. 거대한 몸집과 다르게 그의 표정과 행동들은 너무나 착해 보이고, 눈빛은 마치 ‘슈렉’ 의 장화신은 고양이마냥 글썽글썽하다. 사실 이것은 내가 이미 그가 착한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느낀 것 일수도 있지만.그리고 그 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범죄자” 의 모습을 갖춘 비열하고도 약삭빠른 그리고 불쾌감을 주는 사형수인 ‘와일드 빌’ 이 새로 들어오게 되고, 그가 들어오던 날 E구역에서는 작은 소동이 발생한다. 처음 빌의 정신이 나가보였던 것은 그의 계획된 연기였다. 그리고 그는 그 연기를 통해 교도관들의 경계심을 낮춘 후, 그 허점을 이용하여 교도관들을 다치게 하였다. 교도관들에게 있어서 그 사건은 빌에게 한방 먹은 치욕적인 사건임과 동시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동료 교도관 ‘퍼시’ 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가져다주게 되는 사건이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위치,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퍼시는 그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여 동료 교도관을 구하지 못하였다.이 사건 이후로, 애초에 유하지 못한 성격으로 동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퍼시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된다. 그 장면을 볼 때에는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멍청이!!”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퍼시는 정말 무능력했고 너무나 겁쟁이 같았다. 사건은 결국 뒤에 나타난 브루탈이 몽둥이로 빌을 제압하며 마무리 되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있었던 인물인 브루탈이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왜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이렇게 키크고 멋있는 사람이 성격조차 올곧은 것인가...어찌되었든 그렇게 한 바탕 소동이 지나가기도 하면서 영화에서는 사형수들이 있는 교도소답게 중간 중간 사형수들의 사형이 하나 둘 집행된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신기했던 것은 사형집행에도 리허설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사형집행에서도 리허설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르나, 영화 속 리허설에서의 사형수 대역은 실제 사형수가 아닌 제3의 인물이었다. 아마 현실에서도 같지 않을까싶다. 우리 사회는 역시나 범죄자의 인권도 중요히 생각하고 있구나 다시 느꼈다. 심지어 리허설의 진행까지도 사형수가 모르게끔 비밀리에 진행한다.그렇다면 “사형” 그것은 옳은 선택인 것일까? 더 거슬러 올라가 범죄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는 없다. 대부분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유전적인 것은 사람의 외형을 결정지을 뿐, 그 속은 주변 환경과 경험들을 통해 채워진다고 생각한다. 가장 흔한 예를 들면 친구를 잘못 사귀어 불량 청소년이 되는 경우다. 나와 초등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 A양은 중학교에 올라가 친구를 잘못 만나 나쁜 길로 빠지게 되었고, 그 A양보다 더 순수하고 어른스러웠던 A양의 여동생까지도 A양의 영향으로 더 일찍 나쁜 길에 빠지게 된 것을 나는 가까이서 지켜보았었다. 물론 어느 정도 사람의 성향도 영향을 미치긴 할 것이다. 하지만 환경은 사람의 성향까지도 변화시킨다는 것이 중요하다.사실인지는 모르나, 신창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안 왔을 거다. 내가 5학년 때에 선생님이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라고. 물론 범죄자를 환경이 만들어 낸 것이라 해도 모든 범죄자들을 옹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환경이라고 모든 사람이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벌은 필요한 것이고, 또 그 처벌은 적절히 행해져야만 한다.그렇다면 어떠한 처벌이 적절한 처벌일까? 이것이 문제이다. “사형” 이 과연 적절한 처벌인 것일까? 이것은 수없이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영화를 보기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사람” 이라는 건 정말 멋진 사람이지 않은가? 아직 멀었지만 내가 나중에 정말 “되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사회도 강자에게는 강한처벌을 하여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이 좀 많이 강하다하더라도.더 자세히 내 입장을 말하자면 나는 꽤 이기적인 사람이다. 내 자신이 많은 이익을 얻으려 하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게 되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공평” 하다는 것에 조금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을 한 자를 사형시킨다하여 죽은 사람이 살아오느냐!” 는 나에게 크게 중요치 않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올 수 없듯이, 피해자가 입은 피해만큼 가해자도 피해를 입어야만 한다. 살해당한 자에게는 생명을, 남은 삶에서의 행복을 앗아갔고 남겨진 이에게는 잊지 못할 큰 슬픔을 준, 어쩌면 그 남은 이의 행복, 남은 삶의 방향까지 빼앗아간 그 행동이 용서받지 못할 것은 물론이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커피가 퍼시를 조종하여 와일드 빌을 살해시켰던 장면에서는 그 누구도 불쌍하지 않았고, 오히려 통쾌했다. 둘 다 자신의 죗값을 드디어 받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혹시나 주인공 폴이 보통 만화나 영화 속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처럼 사람의 생명을 운운하며 커피를 매도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폴은 그러지 않았다. 아마도 감독은 그 두 사람으로 인해 발생했던 불편함을 그 사건을 통해 풀어주려 했을지도 모른다.퍼시는 참회를 하지 않은 와일드 빌은 물론,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뉘우친 것처럼 보이는 에드와드에게조차 못되게 굴었다. 심지어 에드와드의 마지막 길에서까지 그의 소중한 친구 징글스를 그의 두 눈 앞에서 살해하였고, 마지막 순간에서는 그의 남은 희망을 앗아갔으며, 심지어 그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서까지도 그를 고통스럽게 하였다. 최소한의 고통으로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지는 수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퍼시의 행동 그 자체는 절대 정상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 행동들이 그렇게 미칠 정도로 나쁜 것이었을까?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범죄자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퍼시의 행동은 어쩌면 나 그리고 보통 사람들과 전혀 관계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퍼시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느꼈고, 오히려 사형수 에드와드를 더 안쓰럽게 여기며 그의 편에 설 때가 많았다. 평소 나의 입장과 영화의 구체적인 사건에서의 입장은 분명히 달랐다. “공평” 에 민감하다고 생각해오던 나인데, 왜 나는 에드와드가 사형될 때 그가 불쌍하다고 여기었는가? 만약 그가 강호순이더라도 나는 그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었을까? 그가 지은 죄를 보면 그 정도 고통은 오히려 부족한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의 답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순이 발생한다. ‘아무리 사형수라도 영화 속에서의 에드와드는 그렇게 나빠보이지 않았고, 어차피 죽는데 그런 고통을 줄 필요는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강호순이었더라면 아마 그런 감정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부족할지도.’ 라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영화의 감독은 이걸 노렸을지도 모른다. 관객이 객관적으로 “사형”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범죄 명을 그리지 않은 것이다. 범죄 사실은 제쳐두고 “사형” 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여러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사형은 필요하나, 아무리 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퍼시의 행동같이 고통스런 방법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죽는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고통이 아닐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끝인 것을. 그에게서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그렇기에 나와 그리고 다른 관객들이 에드와드의 죽음에서 불쾌감을 느낀 것일 테다. 실제로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매스 커뮤니케이션과현대사회월56교시R E P O R T학번X000000성 명000제출일0000.00.00영화 “You’ve got mail” 을 보았다. 영화는 1998년에 만들어진 것치고 생각만큼 촌스럽지 않았다. 줄거리는 뉴욕이라는 같은 공간속에 살아가는 두 남녀가 컴퓨터 속 메일이라는 매체를 통해 연결되어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큰 틀 안에서 흘러간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이버공간이지만 현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메일을 통해 두 사람은 친밀감을 느끼지만 현실 속 두 사람의 관계는 경쟁으로 사이가 나빠진 소규모/대형서점의 주인이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갈등과 메일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 갈등이 화해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결국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영화 속 시간배경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전환기인 컴퓨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물론 영화 속 배경보다 이미지나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은 많이 발전했었지만, 나의 10대 초반은 영화 속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집 근처에 컴퓨터학원이 생기면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컴퓨터를 배우게 되었는데, 나는 이때 학원에서 인터넷을 하는 날이면 매일 온라인 채팅과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내며 시간을 보냈었다. 어린 나이지만 그래도 또래가 좋다고 10대 채팅방에 들어가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시덥지도 않은 이야기를 자주 나눴었는데, 그 당시에는 항상 내 주변으로 한정 돼있던 관계에서 더 멀리 사는, 범위를 넓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웠고, 익명성이라는 틀 안에서 현실과는 다르게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으로 다가왔었다.한참 채팅과 메일을 즐기다가 곧 메신저라는 것이 생겨났고, 그와 동시에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채팅과 메일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메신저는 채팅/메일과는 다르게 신속하면서도 정기적으로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지만 핸드폰의 등장으로 또 다시 침체되었다. 핸드폰의 상용화는 새로운 소통매체를 만들어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메신저보다 더욱 신속성을 갖춘 문자이다. 그리고 곧 대중은 “문자친구” 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이 메일을 통해 친밀감을 쌓아가는 과정이 메일보다는 내가 중고등학생 때 유행하던 “문자친구”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인터넷초창기 때 메일과 채팅 등을 사용하긴 했어도 그 속에서 이뤄진 관계는 거의 대부분 하루를 넘기지 못하는 짧은 관계였기 때문에 영화 속 내용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자친구는 번호라는 쉽게 변하지 않는 자신의 고유아이디를 통해 긴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그리고 매우 신속하게 주고받는 것을 가능케 했다.이러한 가상세계의 소통미디어들은 한 가지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가상세계의 “보이지 않음”은 생각보다 호감도에 큰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마지막에 SHOPGIRL과 NY152가 만나기 전에 죠는 캐서린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캐서린은 그런 죠를 남겨두고 NY152를 만나러 떠난다. 결국 캐서린은 현실 속 눈앞의 죠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에서 만난 NY152에게 더 호감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나도 예전에 문자친구 등 가상세계에서 친구를 사귀어보아 알지만 “보이지 않음”은 상대방에 대한 자신만의 환상과 기대를 품도록 하고, 그것은 생각보다 더욱 큰 효과를 내어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높여서 더욱 빨리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만의 환상을 마음 속에 품고 상대방을 자신이 정한 이미지대로 판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