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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구별짓기, 유행에서 서브컬처로
    구별짓기, 유행에서 서브컬처로
    ‘구별짓기’, ‘유행’에서 ‘서브컬처’로 - 포스트모던과 취향의 파편화한국의 문화 지형과 상징질서의 약화부르디외는 계급적 배경에 따라 취향이 다르게 형성되며, 이와 맞물려, 상징질서에 따라 취향이 계층화되어 계급 간 ‘구별짓기’가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제출된 60년대 프랑스와 현재 한국의 상황은 상이하다.먼저 한국의 경우 사회적 변동이 컸고, 따라서 계급별 문화가 고착될 수 없었다. 프랑스 사회의 경우 계급이 고착되어 별다른 사회적 변동 없이 유지되었고, 그 고착 속에서 고급문화나 하층문화가 성립했다. 따라서 문화자본의 상속과 계급의 재생산, 그리고 계급 간 ‘구별짓기’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식민지와 전쟁 등 극심한 사회적 변동을 거쳤으며 이 과정에서 전통도 단절되었다. 이어지는 산업화 시대에는 계급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세대 간 격차도 확대되어 취향의 재생산이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요컨대, 계급도 아비투스도 불안정하기에, 고급문화를 비롯하여 고유한 계급 별 문화라는 역사가 없었고(혹은 단절되었고), ‘구별짓기’의 기준점이 될 상징질서가 성립하기 힘들었다.이 상징질서의 공백을 현재 한국에서는 대중문화가 채우고 있다. 비단 한국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막강해지는 반면 고급문화의 영향력은 약해진다. 부르디외가 진단한 60년대 프랑스에서 중간계급은 상류계급에 대한 선망을 바탕으로 그들의 문화를 모방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리스먼이 지적했듯 “자본주의가 과점적 양산 체제에 들어서면서 생활의 풍요로움이 실현되자 기존의 상류계급을 모방하는 단계에 있었던 소비가 점차 표준화되어 간다.” 즉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대중문화가 헤게모니를 쥐게 되고, 부르디외가 상정한 문화의 위계질서=상징질서는 그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 지형은 데이비드 리스먼 쪽에 기울어져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는 선망할 만한 전통도 고급문화도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고급문화는 딱히 찾아보기 힘들고, 일상은 대중문화가 장악하고 있다. 대중은 “문화를 고급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으로 보게 된다.정리하자면, 한국에서는 사회 계층과 취향의 연결고리가 약하고, 대중문화의 위세 아래 상징질서가 약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르디외가 논하는 ‘구별짓기’의 프로세스로는 한국의 문화 지형을 설명하기 힘들다.포스트모던과 취향의 파편화‘구별짓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취향의 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당겨 말하자면, 취향의 형성이 보다 개인화, 파편화되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견해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사회 전반에서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계급을 비롯한 구조적 요인이 취향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 ‘취향의 파편화’는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성으로 지적한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과 접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취향의 파편화는 먼저 사회에서 ‘유행’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인터뷰 기사 〈걸그룹 삼촌 팬, ‘변태’인가 ‘희망’인가?〉에서 ‘X-세대’ 출신 문화연구자 김성윤은 2010년대 이후 대중문화가 극적으로 분화하면서 더는 국민가요도 국민 드라마도 없다고 지적하고, 대중음악계 일각에서는 농담 삼아 ‘대중’이 아니라 ‘소중’으로 불러야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즉 10년대에는 사회 전반에 통용된다는 의미에서의 ‘유행’이 성립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행’이란, 어떤 취향이 폭넓은 대중에게 소구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일종의 표준으로서 문화적 주체에게 동조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선으로서 드라마 를 살펴보자. 드라마는 (실제 90년대의 상황은 차치하고) 대중문화를 균질화된 것으로 묘사한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상경한 등장인물들은 대중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서울 사람’이 되어 가며, 결말에서는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서울말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 이 서사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대중문화가 문화적 주체를 묶어 대중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시킨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의 형성은 표준화(균질화)를 전제하며, 드라마에서는 (결말에 획득되는 아파트와 같이) 대중문화가 그 표준이 된다.한편 10년대에는 그 표준을 공유하던 ‘상상의 공동체’가 분할되고 있으며(‘소중’), 따라서 공동체 내에서 표준으로 작용하는 유행의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넷플릭스, 혹은 디지털 환경에 지원받는 ‘취향’‘구별짓기’와 ‘유행’에서 벗어나 취향이 파편화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다른 예로 넷플릭스를 들 수 있다. 〈Netflix says Geography, Age, and Gender are “Garbage” for Predicting Taste〉라는 기사에 의하면, 넷플릭스의 빅데이터 기반 추천 알고리즘에서 인구학 데이터는 거의 영향력이 없다. 시청자는 거의 공통된 취향만으로 묶인 ‘클러스터’로 구분되고, 넷플릭스는 각각의 취향 프로필에 대응하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콘텐츠를 추천한다.빅데이터 기반 추천 시스템은 취향을 훨씬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개인은 타인이나 유행을 의식하지 않고 넷플릭스의 추천을 받아들이면 된다. 또한 추천 시스템은 개인이 별다른 문화적 훈련을 거치지 않고 뚜렷한 취향을 형성시킬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즉 사회인구학적 요인과 무관하게 취향이 심화될 가능성이 커진다.매스미디어가 일방향적 전파로 대중문화를 유통한다면(브로드캐스팅), 넷플릭스는 쌍방향 소통을 통해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콘텐츠를 제공한다고(스트리밍)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취향의 파편화를 지원하는 중요한 기술적 조건이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인터넷 기술은 개인의 정보 발신과 전달을 용이하게 만들고 기존 매스미디어에서 불가능한 정보의 유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로써 분화된 취향의 클러스터가 손쉽게 형성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일간베스트는 기존에는 유통되지 못할 언설들이 인터넷 환경을 통해 발산되면서 형성된, 분화된 취향의 커뮤니티인 것이다.서브컬처화하는 한국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논한 개념틀을 현대 한국 사회 내지 포스트모던 사회에 적용되기에는 난점이 있다. 지금까지 논한 바와 같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취향은 사회 구조와 무관하게 보다 개인적이고 파편화된 형태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23.02.18| 4페이지| 1,000원| 조회(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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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김승옥 소설 문체의 특징과 그 의미
    김승옥 소설 문체의 특징과 그 의미
    김승옥 소설 문체의 특징과 그 의미I. 감수성과 문체김승옥에 대해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오래 회자될 표현을 남기면서 유종호는 “평범한 일상의 저변에서 경이를 조성하면서 환상과 현실을 희한하게 조화시키는 허구 조성 능력, 기지가 번뜩이는 분석력, 만화경(萬華鏡)같이 다채로운 의식의 요술도 결국은 그의 참신한 언어 재능에 의존하고 있으며 새로운 감수성이란 요컨대 이 언어 재능이 성취한 혁신의 이명(異名)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김승옥을 전 세대와 차별화된 자신들의 세대, 소위 4·19 세대, 한글세대의 선구자로 내세운 김현은 김승옥 소설이 “중문과 복문의 교묘한 배합,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교합 등으로 서구적인 냄새를 풍기면서도 번역투 같지 아니한 교묘한 문체를 내보인다”며, 역시 언어적·문체적 특징을 강조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홍정선은 “사건의 이미지를 정황을 알려 주는 감각적 언어로 매개시키는 수법은 일찌기 한국의 어떤 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방법”이라며, “김승옥의 이러한 언어 감각은 천천히 생각하며 한글을 써야 하는 세대에게서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일본어로 사고하고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쓰던 전후문학 세대와 비교하여 “국민학교 시절부터 모국어로 배우고 사고하기 시작한” 한글세대로서 김승옥의 언어 의식에 주목하였다.이처럼 김승옥의 새로운 감수성이 표출되는 문체에 주목한 논의들과 더불어 문학사적인 차원에서의 세대론(4·19세대/한글세대), 주제적인 측면에서 도시화·근대화·산업화의 형상화 등이 김승옥 소설에 대한 대체적인 기존 접근의 방향이었다. 김승옥 소설의 문체가 가지는 의미는 이러한 논의들이 관여하는 총체성 속에서 비로소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외적인 새로움이 아니라 김승옥 소설 문체의 내적 필연성의 배경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구체적 양상은 어떠한지에 대한 검토를 거칠 때 비로소 김승옥 소설의 문체적 특징이 가진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II. 자기 세계와 자기 언어4·19 세대라는 명칭이 보여주듯이 당시의 학생들해도 그렇다. […] 초급대학을 그나마 중퇴하고 지금은 군대엘 갈까 자살을 할까 망설이고 있는 그이긴 하지만 꾸준히 시도 써모으고 가끔 옷도 새걸로 사입고 하였다.- 「생명연습」(1:26)처음부터 세계로 나아감을 거부당한 주체의 극단적 개별화인 ‘자기 세계’에서 자의식의 지하실은 ‘유복함’의 징표로 간주된다. ‘자기 세계’는 자기 확신의 최대치를 섬광처럼 경험한 개인, 그 힘과 방향성을 한꺼번에 빼앗긴 개인이 가진 그나마 “귀한 재산”인 것이다. 자살이냐 군대냐 하는 질문을 해결이 아닌 해소의 방식으로 통과해 버리는 곳에 가치 기준이 들어설 여지는 없으며 행위보다는 조작이, ‘극기’ 혹은 ‘극기의 기록’만이 값지다.시 쓰기(「생명연습」, 「환상수첩」), 일지나 수기를 거듭 쓰는 행위(「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혹은 편지를 쓰는 행위(「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낙서를 하거나 남 몰래 섬돌을 들어올리는 행위(「역사」), 현실을 왜곡하여 적음으로써 어머니를 용서하는 행위(「생명연습」)들은 자기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면서 극단화된 각각의 극기 방식이다.결국 ‘자기 세계’는 극기라는 요소를 고려할 때만 비로소 분명해지는데, 극기를 통한 생존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확실성의 영역이 바로 ‘자기 세계’이다. 그리고 극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과 그 의미는 바로 ‘자기 언어’라는 지표를 통해 가장 유효하게 해명될 수 있다. ‘하더라’ 체의 언변으로 견지하는 무심한 냉소, 일기나 편지를 거듭 쓰고 부치는 행위 따위는 ‘자기 언어’의 구사와 ‘자기 세계’의 구축 사이의 엄밀한 연계를 표현한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이 김승옥의 소설은 작가 자신의 자기 세계를 자기 언어, 자신의 문체로 구축해 낸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몇 가지 유형화된 문체적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그 형상화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III. 문체적 특징의 유형1. 비유와 이미지①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뺑 둘러싸고 있 사이에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와 세계 사이에 본질적으로 아무런 단절이 없으므로 ‘나’는 안개를 자아와 동일시하고, 이에 따라 전망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안개에 의탁할 수 있는 것이다.김승옥의 소설에 등장하는 비유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창조해내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무진의 안개 역시 소설을 휘감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으며, 독자는 인물을 감싸고 있고 무진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안개만을 느낄 수 있다. 「무진기행」에서 사건과 인물들의 행위는 단편적이며, 내적인 서사 원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동기화된 것이 아니다. 요컨대 “단편 소설의 고전적 구성법을 이루고 있는 주제와 플롯과 작중인물의 유기적 상관관계에 대하여 작가는 냉담하다.”안개에 싸인 무진에 햇빛이 들자 무진의 실체가 드러난다. ‘나’가 도착한 무진은 햇빛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제시된다.① 버스는 무진 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기와지붕들도 양철지붕들도 초가지붕들도 유월 하순의 강렬한 햇빛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 냄새가 새어들어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빠진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 햇볕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끓고 있었고 그 눈부신 햇살 속에서, 정적 속에서 개 두마리가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② 그들은 책가방이 주체스러운 모양인지 그것을 뱅뱅 돌리기도 하며 어깨 너머로 넘겨 들기도 하며 두 손으로 껴안기도 하며 혀 끝에 침으로써 방울을 만들어서 그것을 입바람으로 훅 불어 날리곤 했다.- 「무진기행」(1:131)①에서 김승옥 소설의 핵심 기법이 비유적 표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물과 ‘나’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함과 함께 분위기의 한 축을 형성하는 것은 햇빛과 양철 지붕에서 환기되는 시각적 이미지로서의 눈부심 또는 은빛이다. 햇빛이 너무 강렬할 때 사물은 잘 분간되지 않는다. 시각적 이미지는 분뇨와 크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무진이 가까웠다는 것이 더욱 실감되었다.- 「무진기행」(1:127)위 인용문에서 ‘~(하)고’, ‘그리고’, ‘나는’, ‘그런’, ‘그것은’과 같은 음운의 반복은 대단히 리듬감 있게 읽힌다. 이러한 리듬감 있는 읽기를 가능하도록 배치된 ‘그, 나, 고, ㄴ’과 같은 운들, 구절 단위의 호흡 조절,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는 수식·피수식, 인접한 구·문장 간의 유사한 통사론적 구조 등은 이러한 율동감의 훌륭한 요소들이다. 이렇게 엇비슷한 형식과 구조적 유비를 지닌 문장 간의 매듭은 성분들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안긴문장과 안은문장을 적절히 연결하는 ‘그것은, 그것이, 내게는’ 등의 거의 관계대명사에 상응하는 요소들의 내포적 역할과 함께 확장 변형된 장문에서도 속도와 경쾌감을 가능하게 한다. 읽기 좋게 끊어진 쉼표, 여러 접속사, 명사형 종결 등도 이러한 경쾌한 읽기에 기여한다. 특히 은연중에 인접을 주도하는 단어들 예컨대, 보문(補文)들을 받는 대명사, 지시적인 부사, 접속사 등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다.말하자면 이러한 보존은 이미지 중심의 진행을 보이는 이 소설에서 문장의 형성을 돕는 장치이며 인접성과 의미 보존을 보장하는 요소들이다. 음운, 접속사, 동격의 구 따위를 반복에 의해 이미지에 접합시키는 복잡한 내포들은 찬찬히 따져 볼 때 일면 간단한 조합이다. 음이 닮아 있고 문의 구조가 닮아 있는 연쇄들은 의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었다.”(1:127~128)고 느낀다. 한결같이 주체를 향해 오는 각각의 대상의 이미지들은 이 반복적으로 기입된 주체의 주변에 포진하며, 주체의 기표들에 의해 논리적으로 의미 분할되어 있다. 각 성분 간의 분명한 의미 관계, 읽기의 율동감, 공감을 유도하는 유려한 장문의 형성도 이 ‘나’라는 기표의 개입과 연계적이다.이처럼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나’라는 기표는 행위의 주체는 아니다. 그것은 「건」에서 소년이 빨치산의 시체 주변에 있던 빨간 벽돌에서 감지한 “무시무시한 의지”(1:54)와 관련이 있다.내가 몸을 돌렸을 때 두어 발자국 저편에 벽돌이 쌓여 있는 더미의 강렬한 색깔이 나의 눈을 찔렀다. 엉뚱하게도 나는 거기에서야 비로소 무시무시한 의지(意志)를 보는 듯싶었다. 적갈색과 자주색이 엉켜서 꺼끌꺼끌한 촉감의 피부를 가진 괴물이, 밤중에 한 남자가 몸을 비틀며 또는 고통을 목구멍으로 토하며 죽어가는 것을 바로 곁에서 묵묵히 팔짱을 끼고 보고 있다가 그 남자가 드디어 추잡한 시체가 되고 그리고 아침이 와서 시체를 구경하러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나는 모든 걸 다 보았지, 하며 구경꾼들 뒤에서 만족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건」(1:54)이 충격적 이미지의 전이 이후 소년의 행위는 가해자의 행위이지만, 소년은 자신 역시 유년을 도둑질당한 피해자임을 알지 못한다. 주체는 어떻게든 자신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그 주체는 ‘무시무시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역사의 강렬함에 대해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개인은 주어라는 발화 주체를 노리지만 행위의 주체이기는 꺼려한다. 그 양방향의 운동에 따라 인용문과 같은 피동형 서술과 장황한 수식 관계, 원인 접속들이 나타난다.열거의 최종 단위에서 ‘그리고’를 잊지 않는 서구어식 표현이 암시하듯이 이러한 피동형 서술과 서술 주체의 강박적 쓰임, 엄밀한 주술 구문 따위는 우리말에서 표준적인 것은 아니다.
    인문/어학| 2023.02.18| 10페이지| 2,000원| 조회(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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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김사량의 이중어글쓰기에서의 언어의식
    김사량의 이중어글쓰기에서의 언어의식
    김사량의 이중어글쓰기에서의 언어의식Ⅰ. 일제강점기 일본어글쓰기의 배경일제 초기 조선 작가들에게 일본어 창작은 근대문학 모형을 습득하는 통로였다. 이들은 일본어를 통해 터득한 근대적 문체를 조선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남겼다. 이때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은 근대 지식을 흡수하는 도구적 차원에서 일본어를 터득했다.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이중어 사용은 조선의 식민통치 장기화를 위해 일본어의 국어화를 도모하는 일제의 의도와 일본어를 통해 근대 지식을 흡수하려는 식민지 조선의 필요가 맞물린 결과였다.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은 일본어를 통해 근대 국가와 근대 문학의 모형을 학습하고 그 모형을 통하여 근대 한국 문학의 기틀을 형성할 수 있었다.1938년 일제는 본격적인 중국 본토 침략에 나섰고, 그에 따라 식민지 조선은 대륙 진출의 기지로서 전쟁 협력을 강요당했다. 일제는 내선일체 강화를 위해 조선어 문학 ? 언론 탄압에 나섰다. 조선어로 발행되는 언론 매체는 폐간되어 문인들이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조선어학회가 해산당하고 조선어는 선택과목으로 지정되어 학교 교육에서 조선어가 배제되었다(3차 조선교육령). 같은 시기 일본어 해독 인구의 증가로 일본어 매체 숫자가 점점 늘어났으며 수입되는 외국어 책 중에서도 일본어 책이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였다.이 시기에 접어들어 일제는 일본 문인들을 동원하여 조선인 문인들의 일본어 창작을 강요하였다. 일본어, 즉 고쿠고[?語] 보급은 식민통치를 강화하는 작업이었고, 이 과정에서 고쿠고로 쓰인 ‘국민문학‘이 요구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어로 글을 쓴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이 일본어 창작 강요에 수동적인 자세만 취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의 일본어 창작 배경에는 ‘근대어’인 일본어를 통한 세계문학에의 편입 욕구, 보편성 확보 기도,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실상을 ‘내지인’에게 알린다는 내적 요인도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어를 해소하고 일본어로만 창작하여 내선일체를 지향함으로써 평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공허한 믿음도적으로 내지어로 예술적 형상화가 가능한 사람이 몇 사람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는 계속 ‘과도기’와 ‘번역’을 주장하며 내지어와 조선어 사이에 선다.김사량은 번역을 통해 조선문학을 일본에 소개하여 세계문단에 진출할 기회를 마련하고, 이를 위해 조선문학의 제재를 확장하고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 하에 이광수의 「무명」을 직접 일본어로 번역하여 게재하는 한편, 조선어로 발표한 자신의 작품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와 「지기미」를 일본어로 다시 발표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 및 활동을 볼 때 김사량은 두 언어 시스템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어 사용자로서의 자기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김사량은 자신의 작품은 일본어로 쓰였지만 조선 문학의 일부라고 주장했던 것이다.김사량은 「빛 속으로」가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르면서 단번에 일본 문단에 알려졌다. 그는 암울했던 1940년대에 일본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일제의 억압이 거세지던 1930년대 말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이어진 김사량의 일본어 작품활동은 언어로 형성되는 민족 정체성 ? 지역문화 정체성 ? 언어 시스템간의 상호 영향 등 근대적 언어 시스템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식민지 지식인의 이중어의식, 그리고 언어와 국가의 상호 영향에 대한 통찰이 나타나 있다. 김사량은 자신의 이중어 사용이 도구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양상을 예민하게 관찰하여 「빛 속으로」 등 주요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또한 「풀숲 깊숙이」를 통해 지식인의 이중어의식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이중어 사용이 나타내는 다양한 양상을 형상화하였으며,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중어 사용과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이중어 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하여 김사량이 자신을 조선어와 일본어 두 가지 모두 사용하는 이중어 사용자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김사량의 자기인식은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 작가들의 이중어된다. 이후 하루오는 남선생을 볼 때마다 ‘조선인이다’라고 외치며 더욱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남선생은 하루오의 아버지 한베에도 혼혈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갈등에 빠진다. 그러던 중 한베에가 하루오의 어머니 정순을 심하게 폭행한 사건을 계기로 남선생은 하루오를 돌보게 된다. 두 사람은 백화점과 동물원에서 일상을 즐긴 뒤 서로 신분을 정식으로 밝히면서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된다.작품의 주요 갈등 요소는 두 가지이다. 조선인인 남선생의 이름이 일본어식인 미나미라고 불리는 것과 야마다 하루오가 자신의 조선 혈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텍스트에서 남선생은 한자로 ‘南先生’으로 표기되고, 상황에 따라 발음을 표기하는 루비가 달려 있다. 일본어 발음 루비는 ‘みなみ’이며 조선어 발음 루비는 ‘なん’이다. 그러므로 남선생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발음이 다르게 표기되는 것이다. 조선인 이군이 남선생의 일본 이름 사용을 추궁할 때 남선생은 “일종의 선입견 같은 것이 앞서게” 될 수도 있다고 변명하며 미나미라고 불리는 것을 굳이 정정하려 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식민지 지식인인 남선생이 일본어 시스템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남선생은 이중어 사용자이며, 이가 지적할 때까지 이중어 사용에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오의 존재가 그의 조선 이름, 혈통을 일깨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선생과 하루오는 국적-혈통-언어의 단일 체제에 속하지 않은 서로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리적 부담을 내려놓는다. 남선생의 자신의 이름이 두 가지로 불리는 것을, 하루오는 자신이 남선생이나 어머니와 같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수용한다.그러나 하루오가 ‘남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그 발음은 사실 ‘남’이 아닌 ‘난’에 가까운 것으로, 그것은 조선어와 일본어 사이의 결코 없앨 수 없는 거리를 암시한다. 또한 하루오 어머니의, 조선어 흔적에 뒤틀리고 깨어진 일본어는 그녀가 감추려고 애쓰는 자신의 혈통을 드러내고, 그녀가 자유롭게 분격을 터뜨릴 때의 말은 조선어이다.그러나 이 모든 조선어는속으로」는 이중어의식이 처음으로 나타난 작품으로 김사량은 이 작품을 통해 모어인 조선어와 근대어인 일본어의 분열을 인식하고 수용한다. 조선어와 일본어의 대립적인 관계는 작가 자신이 두 가지 언어 시스템 속에 동시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그러나 인정만으로 그 대립은 해소되지 않는다. 두 언어 사이에는 식민지 문제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사량의 이중어의식은 식민통치의 영향을 날카롭게 인식하면서 전개되었다.2. 「풀숲 깊숙이」(草深し)「풀숲 깊숙이」의 주인공 인식은 화전민 조사를 위해 숙부가 군수로 재직하는 지역에 들렀다가 그의 엉터리 일본어 연설을 듣게 된다. 산민들의 옷에 먹물을 칠하는 광경에 분노하던 인식은 중학교 시절 동맹파업으로 쫓겨난 조선어 선생과 마주친다. 그 조선어 선생은 숙부의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비굴한 모습으로 학생들의 비웃음을 샀던 조선어 선생이 색의장려 정책을 무턱대고 따르다가 부인에게 망신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인식은 비참함을 느낀다. 화전민을 조사하려 산으로 들어간 인식은 동물이나 다름없는 화전민의 모습과 그들의 고혈을 빠는 사이비 종교 집단을 보며 다시금 절망에 빠진다. 이후 숙부는 군수직에서 밀려나면서 일본어 사용도 그만두고, 조선어 선생은 화전민들이 사는 산중으로 색의장려를 선전하려 떠났다가 실종된다. 인식은 조선어 선생이 백백교를 믿던 화전민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한다.「풀숲 깊숙이」의 식민지 조선은 단순한 민족집단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식민지 조선의 비민족적 재현은 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김사량은 식민지 조선의 중산층과 농민층에 작동하는 이중언어의 권력 관계를 미세하게 관찰하여 민족주의와 식민주의 담론에 포획되지 않으면서 식민지 조선을 재현할 수 있었다. 식민통치를 매개하는 일본어는 조선에서 신분 상승의 도구이며, 농민 계층을 배제하는 장벽이다. 김사량이 본 식민지 조선 중산층에게 일본어란 근대어의 지위나 문화적 우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일본어는 식민자를 모방하여 색의장려 연설을 듣게 된다. 숙부는 서투른 일본어로 연설을 하고 조선어 선생은 그것을 통역한다. 연설하는 자리에 일본인은 내무주임 한 사람뿐이고, 청중으로 동원된 산민들은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게다가 연설은 일본어 발음이 여기저기 잘못되어 있다.식민자는 피식민자에게 자신의 문화를 모방하면 비슷한 권력을 얻을 것이라는 담론으로 피식민자의 협력을 끌어낸다. 그러나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야말로 식민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식의 숙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군수에서 물러난 뒤 일본어 사용을 그만둬 버린다. 일본어 사용이 이익이 되지 않는 이상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편 조선어 선생은 산속에 색의장려 활동을 떠났다가 실종된다. 인식은 조선어 선생이 화전민들을 끌어 모아 “어눌한 내지어로 떠들어대고 그리고 나서 다시 자신이 그걸 자랑스럽게 통역을 하기도 하다가’ 살해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색의장려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풀숲 깊숙이」는 피식민자 모방 문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의 허구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사량은 이 작품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피식민자 모방 문제와 일본어 사용의 관계를 통찰하고 있다. 또한 지식인의 이중어 사용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 중산층의 일본어에 대한 허위의식을 꿰뚫어 보았다.3.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도쿄에 사는 화이트칼라 지식계층 조선인 대학동창 네 명이 기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중 한 명인 화자는 과거 도쿄 경찰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을 때 형사와 간수들 사이에서 왕백작이라고 불리는 청년을 만난다. 조선의 고위 공직자이자 백작의 아들인 그는 수감되어 있으면서 일본 형사와 간수들에게 일반 잡범들도 보이지 않는 비굴한 태도를 취해 주변의 비웃음을 산다. 그는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면서 경찰에 구속된 사상범에게 편지를 써 보내거나 방 안에 일부러 불온서적을 쌓아놓고 드러누워 있다가 경찰이 동행을 요청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나서는한다.
    인문/어학| 2023.02.18| 8페이지| 2,000원| 조회(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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