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적 배경 - 한(漢)무제의 사상- 표면적으로는 유교주의를 내걸으면서도 다른 사상의 장점을 이용 진정한 의미에서 유교의 국교화가 이루어진 것은 왕망 이후의 일한(漢)이 유가(교)를 지배 원리로 선택한 이유와 흥성한 이유① 명분의 문제- 진의 법치를 부정하고 이와 상반되는 지배 원리를 표방② 권력의 절약 문제 - 법치의 통치는 언제나 강력한 힘을 배경, 유교는 효제 (孝悌) 도덕을 내세움. 유교는 정치와 형벌을 덕과 예로 대치③ 당시의 향촌 사회 즉, 리공동체 (里共同體)의 질서에서 볼 수 있다.한대 (漢代) 유교 (儒敎)의 흥성은 유교 사상이 전제 군주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지배계급의 이념으로 자기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데 적합한 사상이었으며, 사회적으로는 큰 세력으로 성장한 호족들의 종족 생활 및 가족 생활을 규율짓는데 적합한 사상이었기 때문에 가능2. 예법의 정비와 정절의 권장한왕조 - 예교가 형성된 중요한 시대첫 번째 계기 : 고조 (B.C. 256-B.C. 195) 때의 숙손통 (叔孫通)이 예법과 음악을 제정하면서 진나라의 것을 본받은 것두 번째 계기 : 한무제 (B.C.156-B.C.87)가 유가의 선비들을 불러 모아 함께 예절을 규정한 것B.C. 57년 (한 선제 4년) -『漢書』 「선제본기」177년 후에는 정절을 표창한 일- 『후한서』 「안제본기」진나라 때에는 법으로만 정절을 권장했지만, 한왕조에 와서는 법으로만 정절을 장려해서는 백성들을 교화하기 힘들게 되자 명예와 이익을 앞세워 정절을 유도3. 두 명의 여성 훈육론자, 유향과 반소조정, 사회 - 예법을 여성의 삶의 기준 전한과 후한에 각각 1명씩전한의 유향 (劉向;B.C. 77-B.C. 6) -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은 중국 최초의 여성 전기집. 후한의 반소 (49-120) 약 102년에 『여계』 7편을 지었다.◆ 유향의 『열녀전』: 『열녀전』은 모범을 보인 여인들과 경계하여야 하는 여인들 기록 즉, 여러 부류 여인들의 삶에 대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