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주어진 시간 동안 우선순위에 따라 꾸준히 노력을 투입하여 성과를 달성했던 경험에 대해 서술하십시오.[계획성]대학교 2학년을 복학 전 학교를 재학 중일 때 최선을 다해 공부해 보자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1학년 당시 제 평균 성적은 3점 초반으로 그다지 좋은 성적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2학년에서는 모든 과목을 최소 A 학점을 받아보자고 계획하였습니다. 첫째, 예습을 철저히 하였습니다. 수업하기 직전 쉬는 시간 혹은 수업 당일 아침에 30분 정도 투자를 했습니다. 전체적인 수업 주제와 목차를 확인하고 각 목차의 제목과 소제목을 확인하고 가볍게 내용을 빨리 훑어보았습니다. 주제와 목차를 읽음으로써 주제의 전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각 목차와 소제목을 확인함으로써 배운 내용과 배울 내용에 대해서 유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볍게 내용을 훑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표시해 수업 중 좀 더 주의 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복습을 철저히 하였습니다. 교양 과목에서 배운 망각곡선 이론을 활용하였습니다. 사람은 정보를 받아들인 후 10분이 경과하면 기억이 지워지기 시작합니다. 학습을 하고 하루가 지나면 33%만 기억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배운 후 바로 복습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친 뒤 10분~20분 정도 활용하여 전반적으로 가볍게 훑어보았습니다. 그 결과 2학년 1년의 시간 동안 15개 과목에서 12개 과목에서 A 이상의 성적을 받았습니다. 예습과 복습이라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성과를 달성했습니다.2. ② 육체적으로 꾸준하게 땀 흘리며 노력(일or자기계발 등)해본 경험에 대해 서술하십시오.2022년 2월에 졸업한 후 2개월 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마지막 날 항상 밥을 드시면서 쌀 한 톨까지 다 먹으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외할아버지가 준비하시던 농사를 다른 사람 주지 말고 저랑 외삼촌이 1년만 해보겠다 말씀드려서 본격적인 초보 농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저희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재배하는 작물의 심는 시기나 수확 시기마다 항상 시골에 내려와 도와드렸기 때문입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재배하는 작물에 대한 재료는 미리 준비해 주셨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크게 2가지의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첫째, 기본적인 농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이 부분은 요즘 귀농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있는 군청에 가서 문의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농업기술센터를 연결해 주셔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질 높은 교육과 농작물에 대한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모든 작물의 땅을 얼추 계산해 보니 10만 평이라는 큰 땅을 외할머니 포함 3명이 일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을에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시골에는 품앗이 농사가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 같이 특정 땅에서 일을 하면서 빠르게 끝내는 것입니다. 이를 주민분들에게 부탁하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분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물론 외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지만, 저는 마을회관에 가서 이장님, 주민분들과 자주 소통 하며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회관에서 다 같이 놀이 하시면 구경하러 가고 마을에서 축제 하면 일손을 보태면서 가깝게 지냈습니다.수확을 마친 후, 농사를 마무리하는 날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농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시기만 농사일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매우 성실해야 합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을 하고 잡초를 뽑고 비료를 뿌리고 기계를 이용해 수확하면서 반복되는 작업을 하루 종일 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꾸준하게 땀과 노력을 다해 한 일에 대한 마침표를 찍는 것이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할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어떤 일을 시작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3. ③ 원칙을 지키고 성과를 포기할지, 성과를 얻기 위해 원칙을 타협할지 가장 크게 고민했던 경험에 대해 서술하십시오.[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 군인으로 복무 중일 때 제 주특기는 탄약병이었습니다. 탄약병은 탄약고에서 탄약을 반출, 반입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습니다. 위험물을 다루기 때문에 사전에 통보 없이 불시 검문이 자주 나오는 상황이 많습니다. 제가 배치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불시 검문을 당해 서류상의 탄약 개수와 탄약고에 있는 탄약 개수를 검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저까지 포함하여 총 4명이서 검수를 시작하는데 검수 중 개수가 안 맞는다는 것을 저만 알았습니다. 이대로 넘어간다면 좋은 성과를 받아 포상휴가를 받겠지만 원칙대로 말해야지 더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 결과 불시 검문은 사실 사전에 상급자와 검사관이 미리 탄약 개수를 조작하여 검수하는 병사의 진실성을 보는 테스트였습니다. 저는 원칙을 지키고 사실대로 말해 테스트를 통과하여 좋은 결과를 받았습니다. 검문 이후 부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상장도 수여받고 포상휴가를 받았지만 제일 좋은 것은 부대 내에서 사람들이 저를 믿고 중요한 업무를 맡겨주는 것에 대해 가장 뿌듯했습니다.4. ④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본인의 손해를 무릅쓰고 배려했던 경험에 대해 서술하십시오.[코로나19로 인한 추가 근무] 군 입대 한지 얼마 안 되고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하여 군대 안으로까지 퍼졌습니다. 제가 복무 중인 부대에도 코로나19로 인하여 40명의 병사 중에 저를 포함하여 8명의 병사들만 격리당하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중에 4명은 모두 신병 휴가를 앞둔 사람이었습니다. 격리 기간 3주 동안 24시간 근무를 4명이서 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저와 제 동기들은 자발적으로 서로 의논을 하여 근무에 공백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신병 휴가를 미루고 근무에 투입하겠다고 지휘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근무뿐만 아니라 격리 인원들의 식사, 청소, 외부작업까지 진행해 하루 수면시간이 4시간 미만이였고 근무하고 수면패턴도 일정하지 않아 몸이 많이 고생했지만 3주 동안 근무를 한 후 코로나19로부터 무사히 회복을 하고 나온 동료과 무사고 표지판이 적힌 것을 보고 신병 휴가를 미룬 것에 대해 미련이 없고 오히려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