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민음사)(알베르카뮈)(줄거리)알제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청년 뫼르소는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친구가 없던 뫼르소는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진다. 그 후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레몽의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레몽이 괴롭히려는 내연녀의 아랍인 오빠와 그의 무리들이 해변으로 여행을 떠난 뫼르소와 레몽 일당을 미행한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치고 소동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답답함을 느껴 혼자 시원한 샘 가로 향한 뫼르소의 앞에 우연히 레몽을 찌른 아랍인이 나타난다. 그 후, 아랍인이 꺼내는 칼의 강렬한 빛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뫼르소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뫼르소는 체포되고 감옥 안과 재판장에서 지난 날을 반추하고 사색에 잠기며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매우 유명한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이 뫼르소의 성격을 다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친이 사망할 경우 매우 큰 사건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돌아가신 날도 정확히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어머니가 언제 죽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모르겠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생각해낼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이렇듯 뫼르소는 그저 흘러가는대로, 어떤 것에든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다. 언뜻 보면 도를 깨우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3페이지에서 뫼르소는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고 정말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뫼르소는 그런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 것 같다. 지나치게 솔직한 뫼르소. 어쩌면 ‘이방인’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 중 가장 순수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뫼르소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욕구에 너무 솔직했던 뫼르소는 결국 인간의 일부 자유권을 제한하는 감옥에 가게 된다. 난 이런 모습이 가장 솔직한 사람이 가식적으로 연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도태되고 배제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태양이나 빛은 긍정적인 표현에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 책에선 뫼르소의 스트레스를 묘사하는 듯하다. 28페이지에서 뫼르소의 어머니 관을 옮길 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와 77페이지의 "눈부신 빛의 칼날","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었고 번쩍하는 긴 칼날 같은 것이 되어 내 이마를 쑤셨다."를 보면 태양과 빛이라는 보편적인 긍정의 대명사를 대조하여 부정적인 기분을 표현하는 것이 인상깊었다.매사를 대부분 무미건조한 태도로 일관하던 뫼르소는 사람의 일부 자유를 박탈하고 강제로 수용해두는 시설인 감옥에서 지난 날을 반추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형이라는 죽음과 대면하자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그렇게 보니 그곳에서 뫼르소가 정신적으로는 다시 태어났으나 육체적으로는 죽음을 맞는 것이 모순적이고 참 아이러니했다.(인생에 적용할 점) 민음사에서 출판한 '이방인'에서 옮긴이 김화영님께서 해설해주시는 것처럼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에 사형수나 다름없다. 알베르 카뮈는 말한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이 말은 피상적으로 '그냥 빨리 자살해라'라고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본질적으로 '당신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생각하고 어쩌면 지옥같은, 이 괴로운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을 생각했을 때 죽음을 도피하지 않고 그것을 용기있게 받아들이며 일상적인 가능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을 선택하는 하이데거의 '죽음으로의 선구'가 떠올랐으며 결국 죽을 이 한정적인 인생을 내가 자살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찾고 그 이유를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