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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생활속의 전자공학 과제
    생활속의 전자공학 과제
    제목 : 기술의 발전기사 내용 요약 : 경동나비엔에서 시각장애인의 보일러 사용을 돕는 시각장애인 지원 인터페이스를 업계 최초로 제공한다는 홍보가 주된 내용이다. 시각장애인 지원 인터페이스를 음성 안내를 지원하는 룸콘과 제어 기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점자 스티커, 제품 사용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점자 안내문 및 음성 매뉴얼로 구성했다고 한다. 점자 적용은 업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며 점자 스티커와 안내문은 온도조절기와 함께 제공된다고 한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사회에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기업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경영 이념이 바탕이 된 노력의 일환”이라며 “모든 고객의 쾌적한 생활환경 파트너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학/기술| 2024.02.23| 1페이지| 2,000원| 조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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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시대별 전쟁 양상 변천
    시대별 전쟁 양상 변천
    1. 서론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은 발전했고 동시에 전쟁의 형태도 변화했다. 각 시대별로 중요한 전쟁을, 해당 전쟁 중 전쟁 양상의 변천과 무기 발달의 실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전투를 조사했다.2. 본론가. 고대 (BC 20세기~AD 4세기): 중보병 방진, 군단고대 유럽의 전쟁터를 지배한 것은 보병이었다. 트로이 전쟁 시대부터,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는 물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까지 전장에 나선 고대 그리스인들 군대는 전적으로 보병이 주력이었다.1) 페르시아 전쟁(BC 492~480): 마라톤 전투(BC 490)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군 기병의 기동 공간을 제한하면서 병력을 좌우 양측에 집중 배치하고, 중앙에는 얇게 배치하는 이른바 ‘양익 포위 전투대형’으로 페르시아군의 주력인 보병부대를 사방에서 압박했다.2)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전쟁(BC 334~323): 이수스 전투(BC 333)알렉산드로스는 중앙에 밀집 보병대를, 좌우 양쪽에 기병대를 배치함으로써 기병대의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페르시아군의 양 측방을 공격했다. 적군의 좌익을 돌파한 후 후미와 우익을 연이어 공격함으로써 적 진영을 혼란 상태로 몰아넣는 포위 섬멸전을 펼쳤다.나. 중세 (4세기~15세기): 영주(기사), 기병, 공성전, 봉건제도등자의 도입으로 말 위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게 되자 기수들은 손을 훨씬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등자 덕분에 높이에다 속도의 우위까지 십분 활용하게 된 기병들은 전장의 새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1) 백년전쟁(1337~1453): 크레시 전투(1346)프랑스군의 기병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영국군 진영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궁병들이 이들을 향해 화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화살은 기병대의 말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기사의 갑옷까지 관통하면서 이들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게다가 비좁은 전장 공간은 기병대의 전투력 발휘를 크게 제한했다. 프랑스 기병대는 전체 병력의 절반가량을 잃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다. 근세 (16세기~18세기): 절대왕권(용병), 제한전쟁, 화약무기십자군 원정 이후 교회 권위의 쇠퇴로 지방분권적이던 중세 사회가 해체되고 국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화가 경쟁적으로 추진되었다.1) 30년 전쟁(1618~1648): 브라이텐펠트 전투(1631)약 3km 길이의 횡대로 상호 대응하게 병력 배치를 마친 틸리군과 스웨덴군은 9월 17일 정오경에 포격전을 시작으로 거의 5시간 동안 공방전을 펼쳤다. 전투 초반에 우세한 듯했던 틸리군의 예봉을 꺾고 승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스웨덴군의 야전포였다. 이 전투에서 스웨덴군의 5천여 명에 비해 틸리군은 거의 2만 명에 달하는 전상자를 낼 정도로 참패를 당했다.라. 근대 (18세기~19세기):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과 전쟁 규모 확장총검의 발명은 유럽의 모든 국가에 화력과 살상률의 증대를 가져다주었고 전쟁 양상을 이전과 다르게 변화시켰다.1) 나폴레옹 전쟁(1799~1815): 아우스터리츠 전투(1805)나폴레옹은 대포를 집중 운용하여 접전 초기에 적의 대형을 와해시키고 전투력 소모를 강요함으로써 아군 보병부대의 원활한 작전 수행을 가능케 했다. 그는 화약 사용 이래 개별적으로 발전해 온 군사 연구의 제반 요소들을 통합하고, 이를 머스킷 소총과 활강식 대포라는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통해 실현했다.마. 현대 (1914~): 첨단 무기, 핵무기의 등장, 비대칭전정립된 기준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는 1945년부터 현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1차 세계대전 개시부터를 현대로 구분하고 있다.
    사회과학| 2024.02.23| 2페이지| 1,000원| 조회(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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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자유론 서평
    자유론 서평
    제목: 자유의 범위에 대한 고찰: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서병훈 역, (책세상, 2022)을 바탕으로밀이 『자유론』을 쓴 직접 동기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도시 빈민, 노동자, 농민들이 봉기하였던 1848년의 혁명이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정부 군대의 진압으로 실패한 이후 유럽에서 반동의 바람이 불어 자유주의가 크게 위축되는 것을 보고 자유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존 스튜어트 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말하는 ‘의지의 자유’(liberty of the Will)를 다루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이 책은 그보다는 시민의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Civil or Social Liberty)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이 책에서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그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는 『자유론』을 통해 생각과 토론의 자유, 개개인의 자유 그리고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같은 ‘사회적 자유’에 대한 본인의 철학적 사유를 말하고자 했다.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유의 정의가 재정립되고 있다. 개인과 개인의 자유, 그리고 사회가 시민에게 제한 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까지.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와 같이 법으로 확정 지을 수 없는 자유의 범위가 사람 사이의 분란을 일으켰다.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한국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우리는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게 되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대두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지리상의 거리가 무의미해지자 성별, 나이 혹은 문화의 차이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갈등의 주요 원인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은 자신의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의 자유가 상대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책이 『자유론』이다. 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먼저 어떤 사람에게 자유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김형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밀의 자유론은 자신의 행위 의미와 결과에 대한 충분한 사실적 판단과 가치서열을 매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성인을 위한 책이다. 『자유론』에서 자유의 원리에 적용할 수 없는 사람이 두 부류로 나뉜다. 바로 미성년자와 미개인이다. 밀은 “미개인들을 개명시킬 목적에서 그 목적을 실제 달성하는 데 적합한 수단을 쓴다면, 이런 사회에서는 독재가 정당한 통치 기술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인이자, 한국으로 따지면 동양척식주식회사와 같은 영국의 동인도회사에서 35년간 근무했던 사람이다. 밀은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지만, 저자 역시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 옹호론자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밝힌다. 따라서 『자유론』 서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삶의 배경은 일부 배제하고 이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개인적으로 자유의 원리는 모두에게 즉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도 타인을 억압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에 본론에서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자유를 보장받는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에 적용되는 자유의 원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1. 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 제한되어야 하는가.『자유론』의 저자는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밀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만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자유의 원칙을 해악의 원리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밀은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가 간섭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이러한 밀의 생각을 특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4장이다. 4장에서 저자는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쥐는 것을 경계했으나, 동시에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균형을 깨뜨릴 것을 우려했다. 밀은 개인의 자유가 타인에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개인의 행복이나 성공에만 목적을 가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도와가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며, 나쁜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취하도록 서로 격려하길 바랐다. 『자유론』을 읽으면 자칫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4장을 읽으면 저자는 협력과 소통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밀은 자유의 영역을 내면적 의식의 영역, 행동의 영역, 결사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첫째로 내면적 의식의 영역에서의 자유란 모든 주제에 대한 생각, 감정, 양심의 자유를 말한다. 여기에는 그러한 생각의 표현물이라 할 수 있는 출판과 언론의 자유도 포함된다. 둘째로 행동의 영역에서의 자유란 개인의 기호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유로서, 각각의 개성에 맞게 자기 삶을 설계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자유를 말한다. 셋째, 결사의 영역에서의 자유란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고, 강제성이나 속임수가 없다는 조건 하에 개인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모임을 결성하고, 단체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위에서 제시한 자유의 영역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헌법에도 제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갈등은 왜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이론적으로 자유의 원칙은 두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이 원칙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에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를 판별할 기준이 애매하다. 둘 때, 밀은 어려서부터 그의 아버지(James Mill)와 아버지 친구인 벤담(Jeremy Bentham)의 영향을 받아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사회 현상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공리주의자로 평생을 살았다. 이런 공리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자유주의가 도출되기 힘들다. 즉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는 논리적 연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제는 불법적인 행위가 아니라면 정확하게 선을 긋기 어렵다. 하지만 밀은 개인이 사회에 행해야 할 의무에 대해 제시하며, 공동체에서 조화롭게 살기 위한 방법을 서술했다. 저자는 “사회에서 보호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혜택을 받은 만큼 사회에 갚아주어야 한다. 또 사회 속에서 사는 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기 위해 일정한 행동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밀이 말하고자 하는 ‘자유’가 결코 ‘만용’은 아닐 것이라 본다.‘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 제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이미 답을 내린 적이 있다. 바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다. 『자유론』의 저자 역시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이 막연한 질문에 막연한 답을 내리길 바라고 『자유론』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나왔듯이 밀이 말하는 타인의 영역이 애매하다. 이렇듯 『자유론』의 한계가 명확함을 알 수 있지만,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혹은 본인도 몰랐던 개인의 권리를 명시했다. 19세기에 저술된 도서가 현대에 와서도 ‘고전’으로 명명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히고 싶었다.2. 『자유론』의 시대적 한계『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5월 20일에 태어나 1873년 5월 7일에 사망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났던 전쟁이다. 이를 통해 밀은 세계대전 이전의 사람이었고, 『자유론』 역시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저술한 것임을 알 수 있다.저자는 2장에서 “지금까지 네 가지 분명한 이유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가질 자유와 그것을 표현하는 자유가 인간의 정신적 복리를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네 가지 이유 중 두 번째 이유가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였다. 밀은 그 사람의 주장이 다소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해도 표현할 권리 자체를 뺏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19세기 영국에 ‘선동’이란 단어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밀은 개인의 생각이 타인에게 혹은 다수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결과가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는지는 몰랐으리라 본다.
    독후감/창작| 2024.02.23| 4페이지| 2,000원| 조회(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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