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현장학습보고서0002024년 5월 8일 어버이날, 날씨가 그 어느 때보다 쾌청했던 날에 부모님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였다.처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줄 알았으나, 막상 도착해 보니 큰 계단 너머로 보이는 남산타워와 계단에 앉아 있던 아이들을 보며 어릴 적 초등학교 친구들과 손잡고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와 함께 왔던 이곳을 10년이 지나 부모님과 다시 방문하니 감회가 새로웠고 기분이 들떴다. 오랜만에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첫인상은 ‘웅장함’이었다. 돔 형식의 입구로 들어서자 바깥과 대비되는 시원한 공기와 넓은 실내가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웅장함에 이끌려 오늘 이곳에 있는 모든 문화재를 다 보고 가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들었다. 다짐을 하며 관람 경로를 살펴보았다. 팜플렛에 쓰인 추천 동선대로 1층부터 2층, 3층 순으로 관람하기로 결정하였다.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구석기실이었다. 구석기실에는 주먹도끼와 뗀석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뗀석기와 주먹도끼들의 첫인상은 "이게 문화재라고?"라는 생각이었다. 일상에서 마주쳐도 문화재라고 느끼지 못할 평범한 형태의 돌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벽에 써 있는 해설이 눈에 띄었다. 그제야 일반적인 돌처럼 보이는 것들이 문화재로서 어떻게 가치를 인정받았는지에 대한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일정한 형태와 일정한 강도로 내려찍은 듯한 모습으로 구성되어야 뗀석기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대충 생긴 것 같은 돌도 까다로운 기준으로 평가되어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신석기실이었다. 신석기실에서는 ‘조개무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현대의 해녀 모습에서도 관찰되는 외이도골종이 과거 해녀의 모습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몇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간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사람 모양을 잘 보존한 해골도 기억에 남는다. 신석기 시대에는 인간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 사용한 물이 돋았다.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청동기실이었다. 청동기실부터는 유물들이 호화롭게 변한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토기가 다양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와는 달리, 청동기 시대의 토기는 미송리식 토기, 붉은간토기처럼 반질반질하고 윗부분이 움푹 파여있는 형태였다. 또한, 검들도 굉장히 화려했다. 예리하고 긴 검들이 한쪽에 정렬되어있는 모습은 청동기 시대의 예술성과 정교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에도 바지 버클이 있었다는 점이 특이하였다. 현대와 비슷한 모양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것을 보며 놀라움을 느꼈다.네 번째로 고구려관을 방문했다. 단연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고구려 벽화였다. ‘이것이 고구려 때 그려진 것이라고?’라고 계속 의심하게 할 만큼 그림의 선들이 선명하고 뚜렷하며 섬세하였다. 그래서 4~5점 그려져 있는 벽화 조각들을 한동안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것 같다.이어서 다섯 번째로 백제관을 들렸다. 과거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울 때면 항상 백제의 문화재들이 화려하게 수록되어있어서 백제관에는 더욱 장신구에 기대를 안고 전시관에 들어갔다. 내 기대에 부응하듯 백제의 장신구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금관과 화려한 장신구들로 가득했다. 특히 백제금동대향로가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제작되어있어서 눈에 띄었다.여섯 번째로 신라관도 백제관 못지않게 금으로 만든 화려한 장신구들이 가득했다. 놀라웠던 점은 장신구 같은 경우 착용하는 사람에 미세한 크기들에 맞춰 제작되는데, 백제와 신라 때의 장신구들도 자세히 보면 반지의 색깔부터 반질거림, 두께, 크기 등 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보이지만 가까이서 관찰하니 세세하게 차이가 있었다. 심지어 엄청나게 얇은 반지들도 많아서 내 생각보다 과거의 우리나라 공예기술은 훨씬 뛰어났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또한, 한 구역을 독차지하고 있던 금제 왕관은 들어서자마자 ”와“를 육성으로 내뱉게 만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커서 ‘이 정도 크기의 왕관이면 왕관을 쓸 때는 혼자서 착용이 불가능하겠다’라는 생각과 들게 하였다. 나아가 엄청난 크기와 화려함으로 봐서 이것을 착용했던 사람은 당시에 엄청난 권위를 가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일곱 번째로, 불상의 경지라고 불리는 통일신라관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불상들이 놓여져 있었다. 특히, 불상이 취하고 있는 자세나 불상이 작은 틀 안에 완전한 모습으로 들어있는 것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석굴암 전시가 있었는데, 남들 다 한 번씩 가보는 경주를 못 가본 나로서 박물관 덕분에 석굴암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고 우리나라의 불교 사랑을 직접 느껴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여덟 번째로 고려관은 신라, 백제 시대를 거치고 온 것 치고는 장신구들이 상당히 소박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해설에 적혀있는 적극적인 고려의 여성상이 기억에 남는다. 현대에는 집안에만 여자가 생활하는 것을 시대의 흐름를 따르지 못하는 것으로 여기고, 남자와 여자가 사회에 나가서 사회적인 명예를 얻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고려 때는 여성이 집안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고, 남자가 돈을 벌고 오면 내조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인식을 보며 시대에 따라 인식이 변할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동아시아에 있는 대장경 중에 가장 오래된 팔만대장경을 보았다. 사실 과거 교과서로 한국사를 공부할 때는 금속 활자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를 몰랐다. 하지만 실제로 팔만대장경을 보니 왜 그렇게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지, 왜 과거에 선조들이 팔만대장경을 사수하려고 노력했는지 그 이유가 그대로 납득되는 매우 정교한 활자들이었다.아홉 번째로, 1층 대부분의 전시를 다 보고 홀린 듯 사람들을 따라 어느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로 ‘디지털 실감 영상관’이었다. 작은 스크린이 아닌 영화관 뺨치는 초대형 스크린이 ‘강산무진도’를 표현하고 있었다. 영상은 약 10분 정도였는데 그 시간 동안 정말 넋을 놓고 감상하였다. 특히, 내 의자 옆에는 외국인들이 함께 있었는데 “WOW!”를 연신 외치시며 감상 초대형 스크린 덕분에 작품의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고,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디지털 실감관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슬슬 다리가 무척이나 아파왔다. 나는 무릎이 약해서 이런 큰 건물을 다 돌아본 경험이 많지 않았는데, 이번 답사의 경우 박물관 곳곳을 다 보고 오기로 마음먹었기에 무릎 보호대까지 착용하고 갔다. 그래서인지 다리는 저려왔지만, 조금의 휴식을 취한 후 힘을 내서 2층 전시를 보러갔다.열 번째로 방문한 곳은 서화실이었다. 서예와 회화 작품들이 전시된 전시관으로, 이번에는 ‘옛 그림 속 꽃과 나비’라는 주제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주제를 들었을 때, 신사임당의 작품 속 식물과 꽃이 너무 생생해서 벌레가 찾아왔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래서 얼마나 실제적으로 꽃과 나비를 그렸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나비와 부채’를 비롯해 대부분의 작품들이 매화, 대나무 같은 꽃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놀라웠다. 특히 신명연 작가의 꽃 그림들이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꽃들을 각기 다른 특색에 맞게 그린 것이 바로 느껴질 만큼 섬세하였다. 또한, 구도도 똑같은 것이 아닌 여러 구도로 그려져 각 작품이 개성을 가지게 하였다. 조선의 산수화들도 기억에 남는데, 붓으로 그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명암 대비를 잘 표현하여 생동감이 뛰어났다. 한참 동안 그림들을 감상하며 지나갔다.열한 번째로 방문한 곳은 기증관이었다. 기증관이라 하면 '개인이 박물관에 기증을 해야 하므로 문화유산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는 5만여 점 이상의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한 번 놀랐고, 특히 이홍근 선생님의 경우 4번에 걸쳐 기증한 문화재만 만 점이 넘는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많은 분들이 기증해주신 문화재들을 하나씩 보며 문화재의 가치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좋은 마음으로 기증해주신 덕분에 내가 두 눈으로 문화재를 방이었다. 사유의 방은 입구부터 왠지 모르게 신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안쪽으로 걸어가니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가사유상을 직접 보니 그 특유의 분위기에 순간 압도되었다. 표정과 몸짓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부처의 뒷모습도 볼 수 있었다. 두 점의 부처님 모두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계속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표정을 따라 짓게 되었다. ‘저런 몸짓을 하면 깊은 사유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넓은 공간에 두 점의 문화재밖에 없었지만, 그 두 점이 압도하는 영향력은 매우 강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관람객으로 하여금 깊은 사유를 탐구하게끔 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여 매우 만족스러웠다.3층은 분청사기 및 백자, 아시아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열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분청사기 및 백자 전시관이었다. 이곳에는 고려인의 '파란 꽃'이라 불리는 청자와 백자들이 가득했다. 고려관에서 다른 장식품들이 상대적으로 소박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아마도 그 예술혼이 청자에 집중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민무늬 백자부터 대나무가 정교하게 그려진 청자까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주전자의 경우, 현대의 주전자보다 더 멋진 용 모양을 본뜬 형태를 띠고 있어서 감탄을 자아냈다. 관람 후 이러한 아름다운 청자들을 실수 없이 빚어내고 고열에서 보존하는 고려의 제작 기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마지막으로 아시아관을 방문하였다. 아시아관에서는 일본관과 중앙아시아관이 다음 전시 준비로 인해 관람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중국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국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자기였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도자기의 형태, 모양, 색깔 등이 비슷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 도자기가 대부분 빨간색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갈색 계열의 작품들이 많았고,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운 분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