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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1492 콜럼버스 영화감상문> 기말레포트
    <1492 콜럼버스 영화감상문> 기말레포트
    1492년의 콜럼버스, 1992년의 콜럼버스1. 서론어느 위인전 전집을 살펴봐도 빠지지 않는 인물들 중 하나가 콜럼버스이다. 어렸을 때부터 최고의 탐험가로,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인물로 배워왔다. 특히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는 모두가 알 것이다.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했을 때, 그는 달걀을 살짝 깨뜨려 탁자 위에 세웠다. 이것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에게 콜럼버스는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반박했다. 일화 덕분에 사람들은 흔히 상식을 깨고 대단한 일을 해냈을 때 가리키는 말로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렇게 콜럼버스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스페인어권 문화의 이해 시간에 본 LA 콜럼버스 동상 철거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영상 속에서 콜럼버스의 동상이 철거되고 그에 환호 하는 LA 시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LA 시는 내년부터 10월 12일을 ‘콜럼버스 데이’에서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공식 변경한다는 소식 역시 보도됐다. 콜럼버스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가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항상 영웅으로만 비춰지던 그였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에게는 원래 있던 대륙을 ‘신세계’라고 칭하며 수단을 가리지 않고 원주민을 약탈한 정복자로서 인식되기 시작함을 확인했다. 콜럼버스를 향한 다양한 평가를 접했기에 영화 에 대한 관심이 증폭했다.영화 (1992)는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의 일환으로 제작된 2개의 영화 중 하나이다. 영화는 영국, 미국, 프랑스, 스페인이 합작하여 제작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콜럼버스의 일대기를 통해 15세기 근대 초 대탐험의 시대를 그려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 등 유명 영화를 연출한 영국 출생의 할리우드 유명 감독이다. 뛰어난 연출력으로 인정받은 그가 흥행 실패를 겪은 작된다. 콜럼버스는 항해일지에 이렇게 적는다. “육지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는데도 현재 나와 선원들의 관계는 심각한 상태다.” 실제로 그가 9월 24일에 남긴 항해일지이다. 10월이 되자 다시 에스파냐로 돌아가자는 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선상 반란의 조짐이 보이고 신의 뜻이 아니라고 말하는 선원들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콜럼버스는 “우리를 믿어야한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다.”라는 일장 연설을 펼친다. 신의 뜻이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된다며 선원들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고 한다. 신에 대한 믿음을 넘어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다.2.1.2.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며 항해의 조건을 갖출 수 있게 된 것도 당시의 상황 중 하나이다. 조선술의 발달과 함께 원거리 항해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범선 제조가 가능해졌고, 삼각돛과 사각돛의 결합, 나침반의 개선과 상용화 등이 동시에 일어나는 시기이다. 또한 지리학과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며 지구구형설이 확산되고 천문 관측술이 발달하는 계기가 된다. 총포류가 발전하고 대포를 선박에 장착할 수 있는 것도 역시 과학기술 발전의 일부분이다.콜럼버스는 르네상스적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리상의 발견에 있어서 선구 주자였다. 영화 속에서도 그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강력하게 믿고, 지구본을 만지작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또한, 서쪽 바다로는 끝이 없다는 의견에 이탈리아 지리학자 토스카넬리의 계산에 따르면 인도에 금방 도착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는 카톨릭 중심의 폐쇄적인 중세 세계관을 벗어나 과학적 사고와 도전 정신으로 무장하고 구세계의 질서를 벗어나 신세계에서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기획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이런 부분이 영화에 그려진 르네상스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2.2. 중세적 배경2.2.1. 마녀 재판과 재수복운동 (reconquista)1478년의 스페인에서는 위장 개종자들을 감시하고 심판하기 위해 종교재판소가 설치된다. 스페인의 종교재판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위해 항해를 원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저의 목적은 그들 이방인들을 주님 앞으로 이끄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실제로 콜럼버스는 항해일지에 가톨릭 양왕에게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두 분 폐하, 저는 그들의 언어를 잘 아는 독실한 종교인이 있으면, 그들이 모두 쉽게 그리스도 교도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두 분 폐하께서 일찍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을 멸망시켰듯이, 이 종족을 개종시켜 교회로 이끌기 위해 단호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주님의 이름으로 결정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 분 폐하께서 승하하신 이후에도(사람은 누구나 몸이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므로), 왕국은 이단이나 악으로 물들지 않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고, 두 분 폐하께서는 영원한 창조주의 왕좌 앞에 서시게 될 것입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임과 동시에 신의 뜻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콜럼버스의 모습은 여전히 신 중심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중세적 면모를 드러낸다.2.2.3. 종교적 지리학적 세계관당시 지리적 세계관은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부분이 다수 존재했다. 예를 들어 콜럼버스는 여러 종교서적을 바탕으로 지리학적 세계관을 구축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의 지리적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저서로는 피에르 다이이 추기경의 , 마르코 폴로의 , 플리니우스의 , 피콜로미니의 , 플루타르크의 , 프톨레마이오스의 , 중 ‘에즈라 서’가 있다. 특히 와 의 에즈라 서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책들의 내용으로는 ‘지구의 6/7이 땅이고, 나머지 1/7이 바다’라는 것과 지구 둘레는 1만 9천 마일이라는 것 등이 있었다. (실제 지구의 둘레는 2만 4900 마일이다.) 또한, 에서는 지상낙원, 둥근 모양의 우주와 지구, 괴물들, 인디즈의 경이로움, 아시아의 황금보석과 향신료와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로 그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이러한 저서를 통해 콜럼버스는 서쪽으로의 항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3. 콜럼버스의 양면성3.1. 순수한 이만 아니라 문법, 신학, 철학을 독학하며 과학적으로 자신의 가설을 입증했다. 더 나아가, 구약의 예언자들, 그리스 지리학자들, 자기 자신의 견해를 종합해 국왕들을 설득했다. 지금 세비야 대성당의 콜럼버스 도서관에 콜럼버스가 항해를 위해 읽은 지리서, 역사서, 철학서 등 2천여 권이 넘는 책들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이다.순수한 이상주의적 모습은 처음 아메리카 대륙 옆 작은 섬에 도착했을 때에도 작 속에서 드러난다. 처음 육지에 다다랐을 때, 콜럼버스의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이 나온다. “1492년 10월 21일 에덴동산을 발견했다. 세상의 처음이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이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는 무력이 아닌 설득으로 해야만 할 것이다. 아무도 이 순수함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이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야만인이 아니다. 우리의 가족을 대하듯이 이들을 대하여야 한다. 저들의 신념을 존중하고 약탈과 강간은 엄히 다스릴 것이다.” 약탈자 이미지의 콜럼버스를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놀랄만한 나레이션 대사이다. 원주민과 평화로운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선한 이웃이자 세계 시민이 되는 것. 콜럼버스가 처음 신대륙에 가졌던 이상은 이런 것이었을 것이라는 감독의 해석으로 보인다.작품 마지막에 산체스가 콜럼버스에게 “당신은 몽상가야!”라고 외친다. 콜럼버스는 이에 “밖을 봐요. 무엇이 보이죠?”라고 되묻는다. 산체스는 “탑과 궁전, 그리고 교회들의 첨탑, 문명, 하늘을 찌르는 종탑이 보이는군.”라고 답한다. 이에 콜럼버스는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한마디를 한다. “모두 나 같은 몽상가가 만든 겁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당신과 나는 같아질 수가 없어요. 난 해냈소. 당신은 못했고.” 귀족들과 기득권층에게 몽상가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을지라도 그의 순수한 열망은 가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있다.3.2. 희대의 약탈자로서 콜럼버스3.2.1. 콜럼버스의 폭력성콜럼버스는 희대의 약탈자이자 정복자로 평가 받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은 콜럼버스의 악다. 또, 원주민들로 하여금 금광 채굴 등 강제부역을 시켰다. 그의 가혹한 지배로 3년 만에 원주민의 3분의 2인 200만 명 이상이 죽고, 500명은 노예로 스페인에 보내졌다. 영화와 달리 실제 콜럼버스가 얼마나 잔인한 정복자 이었는지 알 수 있다.3.2.2. 문명의 정복 도구로서의 언어와 문자신항로 개척 이후의 언어 사용 실태는 유럽인들의 정복자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다. 콜럼버스의 통역사 우타판이 영화 말미에 “당신은 우리들의 말을 배우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고 콜럼버스의 곁을 떠난다. 이 대사처럼 그는 끝까지 원주민들의 언어를 배우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신대륙 탐험 시기 통역사들은 탐험가들의 의사소통 필요에 의해 생포된 원주민들이었다. 실질적으로 이들은 통역사라기보다는 노예에 가까웠다. 스페인어와 100여개의 원주민 언어가 통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언어 수준을 고려해볼 때, 언어적인 통역보다도 비언어적인 통역, 즉 수화 통역이 실생활에 걸쳐 널리 사용되었을 것을 짐작된다. 1492년 안달루시아 출신의 언어학자인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가 살라망카에서 로망스어로는 최초로 스페인어 문법서를 출간했다. 그는 이사벨 여왕에게 헌정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언어는 제국의 동반자”라고 진언한다. 이 사건은 신대륙 발견을 위한 절묘한 준비 절차로 해석될 수 있다.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의 말대로 ‘제국의 동반자’인 언어를 정비한 것은 타자의 육체와 영혼을 정복하기 위한 제국의 기틀 마련의 일부였다.3.2.3. 아메리카 원주민의 상황과 이들에 대한 유럽인의 시각과 태도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인도에 다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일행은 카리브 해의 한 섬에 도착했을 때 그 섬을 인도의 서쪽에 위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거기에 사는 원주민을 인디오(인도 사람)라고 불렀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부족 단위로 생활했다. 그들은 수렵, 채집, 어로 활동을 통해서 경제 활동을 영위했다. 또한 옥수수 재배와 같은 농경 활동과 자신들의 가축을 있다.
    인문/어학| 2024.07.24| 10페이지| 5,000원| 조회(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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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18세기 프랑스를 담은 박물관들 (비교문 작성 연습)
    18세기 프랑스를 담은 박물관들 (비교문 작성 연습)
    18세기 프랑스에서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왕의 감시 아래서 벗어난 귀족들은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다시 돌아온다. 이들은 국가 공동체 속 일부인 자신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소비 및 여흥 문화를 통해 개인의 개성을 발현하려 했다. 더불어 사람들은 계몽주의 정신에 힘입어 개인의 즐거움과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게 된다. 이때의 사회가 이 글에서 지칭하고자 하는 18세기이다. 구체적인 연도로 따지면 루이 14세가 죽은 1715년 이후부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사이의 시기를 뜻한다. 이 시기에 변화한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예술의 흐름 역시 계몽주의 정신을 따라 변화했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애정을 나누는 장면이 담긴 다소 경박한 분위기의 작품을 선호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속화, 초상화 등과 같은 장르의 작품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회화 부분에서 역시 개인의 자유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확연히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코냐크-제 박물관과 쟈크마르-앙드레 박물관이 있다. 두 박물관 자체가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며 19세기 프랑스를, 두 박물관의 전시품들을 통해 18세기 프랑스를 조망하며 근대로 접어드는 프랑스를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이전 시대의 컬렉션을 모아 전시를 해 놓은 것이 코냐크-제 박물관과 쟈크마르-앙드레 박물관이다. 각 박물관의 컬렉션을 제공한 컬렉터는 모두 부부이며, 두 박물관 이름 모두 컬렉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코냐크-제 박물관은 에르네스트 코냐크와 마리 루이즈 제 부부의 컬렉션을, 쟈크마르-앙드레 박물관은 에두아르 앙드레와 그의 아내 넬리 쟈크마르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중세, 르네상스, 고전주의 예술 작품들과 같은 18세기 이전의 미술 작품은 개인 컬렉터가 수집해서 모아놓은 박물관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그러한 박물관이 존재한다고 해도, 국가나 지방 차원에서 지어진 박물관이 대표성을 크게 띠고 있다. 이와 달리 18세기 회화작품은 개인 컬렉터에 의해 거대한 규모로 수집될 수 있었는데, 이는 19세기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크다. 개개인이 부유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17-18세기와 달리 19세기는 개인이 부유함을 과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 덕분에 방대한 규모의 개인 컬렉션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코냐크-제 부부와 쟈크마르-앙드레 부부 역시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직전 시대의 작품들을 다수 수집하는 것이 가능했다. 두 박물관을 18세기의 프랑스 미술 전반을 파악할 수 있다. 코냐크-제 박물관과 쟈크마르-앙드레 박물관은 로코코의 거장인 부셰의 작품들과 로코코와 인상주의의 과도기를 담당하는 프리고나르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로코코 미술이란 프랑스에서 성행한 유럽 미술 양식의 하나로, 경쾌, 우아하며 화려한 특성을 지니는 양식을 뜻한다. 18세기는 로코코 양식이 유행하던 때로, 더 이상 고전주의 시대처럼 영원한 이상, 고전에 대한 그리움, 교훈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 일례로 신화의 소비의 양상을 통하여 그러한 차이를 알 수 있다. 17세기 예술에서는 신화를 통해 마르스, 아폴론, 아테나처럼 완전무결하고 완벽주의적, 권위주의적인 신들의 이미지가 소비되었다. 반면, 18세기 회화 작품에는 신화 속의 가상의 천사, 큐피드들이 등장한다. 신들도 인간과 비슷하며 애욕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신화를 소비했다. 이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쟈크마르-앙드레 박물관에 소장된 , 과 코냐크-제 박물관의 이 있다. 더불어 두 박물관 모두 18세기 로코코 가구로 전시실을 꾸민 것을 볼 수 있다. 자그마한 사이즈의 곡선 다리를 가진 가구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다. 작품뿐만 아니라 가구까지 18세기 프랑스 예술 분위기에 맞춘 것을 알 수 있다. 코냐크, 제는 산업혁명 이후 일자리를 찾아 파리로 몰려들은 무수히 많은 소년, 소녀들 중 한 소년과 한 소녀였다. 이들은 몽마르쉐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만나 부부가 되었다. 두 사람과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활동할 시기는 1850년대로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되던 때였다. 다방면적으로 진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적 바탕이 뒷받침 되었던 시기였던 것이다. 덕분에 이 부부가 운영하던 옷 가게가 크게 번창했다. 그 후 백화점을 설립하여 자수성가한 코냐크 부부는 수많은 회화작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모은 컬렉션을 파리시에 기증했다. 이 컬렉션은 파리가 소유하고 있던 마레 지구에 위치한 호텔(과거 귀족들의 저택)에 전시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코냐크-제 박물관이 된 것이다. 쟈크마르, 앙드레 부부는 대대로 부유했던 집안 출신으로 요즘 말로 ‘금수저’ 부부라고 볼 수 있다. 남편은 왕의 총애를 받는 은행가였으며, 부인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류 예술가였다. 이들은 베르사유풍으로 지은 집에서 거주했고, 훗날 이 저택을 박물관으로 활용했다. 저택의 벽면 설계를 보면, 이미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소장품들을 토대로 저택을 박물관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저택 내의 모든 타피스리가 벽감의 액자틀 안에 들어가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타피스리를 액자처럼 넣을 수 있게 주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계몽주의 정신을 일깨워 혁명의 토대를 다진 사람들이 이끌어간 18세기를 보여주는 회화 작품들을 전시하는 코냐크-제 박물관과 쟈크마르-앙드레 박물관에 대해 알아보았다. 두 박물관은 컬렉션을 만든 사람이 살아온 배경, 현재 컬렉션을 관리하는 주체, 박물관의 운영 방식, 박물관이 위치하게 된 과정도 다르다. 하지만 이는 당시 19세기의 프랑스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통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코냐크-제 박물관과 쟈크마르-앙드레 박물관 모두 개인이 수집한 18세기 프랑스 회화 컬렉션을 바탕으로 설립되는 것이 가장 큰 의의이다. 1) 서정복, , 제 3호, 1999, pp. 5-24. 2) 김정락, , 제 36호, 2012, pp. 7-32. 3) 백종률, , 1999, pp. 113-127.
    인문/어학| 2024.07.24| 2페이지| 1,000원| 조회(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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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현 교육감 선출제도의 문제점
    현 교육감 선출제도의 문제점
    약 한 달 뒤인 6월 13일에 전국에서 동시에 지방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지방 자치단체장, 의원들과 함께 시·도의 교육 학예에 관한 사무의 집행기관인 교육감을 선출하게 된다. 오늘날과 같이 주민들이 직접 교육감을 선출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1991년 전까지는 대통령이 시도별로 설치되어 있는 교육위원회의 추천 인사를 교육감으로 임명했다. 지방자치가 뿌리내리면서, 교육감은 지방의회의 추천인사들로 구성된 교육위원회에서 간접 투표에 의해 선출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교육감 선거가 주민 직선제로 바뀐 것은 2010년이다. 교육감 직선제를 실시한 지 8년차에 접어든 지금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현 교육감 선출 제도는 유권자 입장에서 깜깜이 선거가 될 확률이 높다는 점, 후보자 입장에서 선거 비용이 큰 부담이 된다는 점과 공약과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펼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이는 개선되어야한다. 현 교육감 선거제도 내에서 유권자들이 교육감 후보가 누군지, 공약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선거하는 ‘깜깜이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는 광역·기초단체장을 뽑는 선거이다. 즉, 정치적 인사를 뽑는 자리이다 보니 교육행정에 권한이 한정되어 있는 교육감은 다른 단체장들에 비해 유권자들에게 받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교육 받을 나이의 자녀가 있는 유권자들만 교육감이 내세우는 공약을 꼼꼼히 살피고 신경 써서 투표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국일보와 KBS가 한국리서치와 11, 12일 서울과 경기, 인천, 충남, 부산, 경남 등 6개 지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교육감 후보로 누가 적합한지 모르겠다는 응답이 최대 54.4%(인천)에서 41.9%(서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에 무관심한 유권자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번호를 보고 교육감을 선출하는 경우가 많아,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자들에게 기호를 부여하지 않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교육에 무관심한 다수의 유권자들이 로또 형식으로 교육감 투표에 임하자 이러한 규칙을 도입한 것이다.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의 본질적 자주성이 아닌 표면적, 절차적 자주성을 보장하는 것에 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교육감 선출제도는 주민 직선제이기 때문에 후보자 입장에서 다수의 유권자 표심을 향한 공약을 내세우게 되고, 이는 교육 정책의 일관성을 잃는 결과를 낳는다.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 있는 외에도 주민들이 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비전을 고려하기보다 표심을 향한 공약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교육감의 공약들이 정치색을 짙게 띠는 상황도 다수 존재한다. 그렇지 않아도 정권이 교체될 때도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불안에 떤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감마저 직선제로 인해 정치 영역에 더 가까워졌고, 교육감 교체 때에도 학생들과 학부모는 이전과 180도 다른 교육 정책이 실행될까봐 또 걱정할 수밖에 없다. 교육감 후보자로 하여금 교육 대상을 고려하기보다 포퓰리즘을 따라 공약을 내세우게 유도하는 것이 현재 선출 제도이다. 교육감 선거의 특성상, 후보자 개인에게 선거 비용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점 역시 문제가 된다.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에서 2004년 학교 운영위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선거관리비용으로 6억 원 정도가 지출되었음에 비해 2008년 주민직선제 선거비용은 206억원으로 수십 배에 이른다. 그렇지만 교육감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선거에서 정당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후보 본인이 모든 선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선거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탁금이 존재하지만 교육감 선거에서는 많은 후보자들이 출마하면서 득표율이 낮을 때가 많다.때문에 후보자는 10퍼센트 이상 득표해야 돌려받을 수 있는 기탁금을 돌려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무리한 선거운동으로 선거법을 위반하거나, 선거가 끝난 뒤 각종 비리에 연루되는 교육감 후보들이 나온다. 역대 서울특별시 교육감을 살펴보면 선거 비용으로 인한 교육감 선거 시스템의 문제점을 볼 수 있다. 교육감 직선제가 서울시에서 실시된 지는 8년차이지만 이를 통해 당선된 교육감은 4명이었다. 이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난 교육감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직선제를 도입하고 처음으로 당선된 공정택은 부패혐의로 재임 중에 구속되면서 임기를 결국 채우지 못하게 된다. 재보선을 통해 선출된 18대 교육감 곽노현 역시 부패혐의로 중도에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현재 재직중인 조희연 교육감 역시 무리한 선거운동으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어 선고유예를 받았었다. 이렇게 직선제로 당선되었던 서울특별시 교육감들이 잘못된 선거 자금 공천과 과도한 선거 운동에 연루되었던 사례는 선거 비용 부담과 무리한 선거운동을 유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교육감 선출 제도는 깜깜이 선거가 되기 쉽다는 유권자 입장과 선거 비용이 큰 부담이 되고 공약과 정책을 일관성 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후보자 입장을 미루어 보아 현재 교육감 선출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주민에게 교육감을 직접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민주주의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특수한 행정 분야에서 선거를 치루는 것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1) 김정현, 「깜깜이 교육감 선거… 유권자 절반, 후보 누군지 몰라」, 『한국일보』, 2018.5.13, , 2018.5.23 2) 이상철, 「교육감 주민직선제 쟁점 및 과제 분석」, 『아시아교육연구』 10(2), 2009, 11면. 3) 황대훈, 「
    사회과학| 2024.07.24| 2페이지| 1,0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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