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시스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작성해 주세요제 이름이 처음 기사에 바이라인으로 찍힌 순간의 두근거림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대학교 4학년 여름, 도쿄올림픽 기간 동안 뉴시스 인턴에 선발되어 스포츠부와 문화부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의 첫 경험이자, 기자라는 직업을 가까이에서 처음 만난 시간이었습니다.그 짧은 인턴 기간 동안 뉴시스는 제게 ‘뉴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 곳이자,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과 책임을 모두 체감하게 해준 소중한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기사 한 줄, 문장 하나를 쓸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고, 뉴스의 생명은 속도와 정확성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제 꿈은 언젠가 뉴시스의 기자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뉴시스는 ‘뉴스(NEWS)의 본질’에 충실한 언론입니다. 자극적인 제목 경쟁, 클릭 수 중심의 보도 행태가 만연한 오늘날, 뉴시스는 통신사로서 속보성과 공적 책임을 동시에 지닌 언론으로서 독자에게 신뢰를 주는 정보를 공급하고 있습니다.현장에서 만난 뉴시스 선배들은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공익적으로'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뉴스가 아니라, 정보의 출처가 분명하고 검증 가능한 뉴스, 그리고 기자 스스로 질문하고 확인한 내용만을 담아낸 기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재직했던 언론사에서는 뉴시스 기사를 참고 삼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 업계 내 신뢰도가 높은 매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또한 국내 최초, 최대 민영 뉴스통신사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국제·산업 등 각 분야에서 균형 잡힌 보도를 수행하며 ‘뉴스 공급자’로서의 품격을 지켜나가고 있는 언론이기도 합니다. 연예, 스포츠 등 화제성 콘텐츠에 치중하기보다는 종합통신사로서 전 부문에서 양질의 뉴스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뉴시스의 역량은 언론 전체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생각합니다.뉴시스 인턴 경험은 단지 기자의 꿈을 품는 계기를 넘어, 언론이 사회를 어떻게 기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배우게 해준 시간입니다. 이후 스포츠전문지에서 2년간 기자로 일하면서도 뉴시스의 보도 철학을 자주 떠올렸습니다.기자는 단순히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묻고 연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뉴시스에서 처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이곳에 지원합니다. 스포츠 뿐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고, 궁극적으로는 뉴시스 스포츠부에서 깊이 있고 입체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2. 뉴시스 기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작성해 주세요저는 뉴시스가 키워낸 ‘최고의 야구기자’입니다.뉴시스 인턴 당시, 저는 도쿄올림픽을 취재하던 뉴시스 스포츠부 선배들로부터 늘 빠르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기사들을 써내는 진실되고 열정 넘치는 기자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기자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고 연결하고 기록하는 사람임을 배웠습니다.그 배움을 실천하기 위해 저는 스포츠 전문지에 입사한 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여자야구'를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구를 잘 몰랐던 저는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은 '여자야구'부터 파고들자는 전략을 세웠고, 무작정 한국여자야구연맹에 전화를 걸어 취재를 제안했습니다. 연맹도 언론의 관심에 놀라움을 표했고, 저는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을 만났습니다.기존 보도가 거의 없는 영역이기에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를 일일이 발굴하고, 기록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여성’, ‘비인기 종목’, ‘아마추어’라는 세 겹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꾸준히 취재하며, 단발성 기사가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서의 취재를 실현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야구' 관련 단독 기사와 기획 기사를 꾸준히 생산하며 전문성을 쌓았고, 기자 2년 차였던 2023년, 한국야구기자회가 수여한 ‘올해의 야구기자상’을 포함해 체육기자상 3관왕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현장에서 저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주목했습니다. 사전 취재 결과, 대표팀의 전력이 알려진 것보다 상당하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당시 조별리그부터 현장을 지킨 기자는 저뿐이었고, 그들이 사상 첫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는 순간, 저는 단순한 경기 상보가 아닌 ‘이야기 있는 속보’를 송고했습니다. 기존 인터뷰 자료와 선수들의 일상적 모습들을 엮어 기사를 완성했고, 이는 포털사이트 메인에 게재되어 10만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기자란 속보의 민첩성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맥락과 사람들의 감정을 길어올릴 수 있는 직업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늘 현장에서 질문을 준비하고, 풍성한 맥락을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저는 단지 스포츠만 알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기자는 사회 전체를 꿰뚫어야 진짜 스포츠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국회, 검찰청, 청문회와 연결되는 이슈를 더 많이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전문지의 한계는 명확했고, 그래서 저는 더 넓은 필드로 나아가고자 올해 9월, 퇴사를 결심했습니다.이제는 다시, 뉴시스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 등 다양한 부서를 두루 경험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질문할 줄 아는 기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언론이 무너지는 시대에, 뉴시스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본질을 저 또한 실천해 나가고 싶습니다.3. 자신의 강점 3가지와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작성해 주세요기자의 가장 기본적인 힘은 ‘질문하는 용기’라고 믿습니다. 2022년 프로야구 SSG 랜더스가 우승했을 당시, 저는 구단주 정용진 회장의 멘트를 따기 위해 VIP석까지 올라갔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동승하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질문을 꺼내자, 즉시 경호원에 제지 당해 쫒겨났습니다. 비록 인터뷰에는 실패했지만, 구단주의 움직임을 관찰해 라는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기사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들이대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자가 됐습니다.야구공 한 번 만져본 적 없던 저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믿음으로 직접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시속 50km짜리 공을 던지며 투구 메커니즘을 익혔고, 배팅의 감각도 체험했습니다. 덕분에 투수-포수 간 볼 배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선수의 심리와 경기의 흐름을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라는 분석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관찰력을 키운 덕분에, 단순한 상보를 넘어 경기 안의 맥락을 짚어내는 기사를 쓸 수 있게 됐습니다.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취재 당시, 일본 교도통신 소속 시나가와 에리 기자와 빠르게 친해졌습니다. 야구를 취재하는 동갑내기 기자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대화의 꽂을 피운 저는 그에게 ‘팀플레이’를 제안했습니다. 시나가와 기자는 일본 선수 인터뷰를, 저는 한국 선수 인터뷰를 맡아 녹취록을 교환하고, 서로 상대국 선수들의 답변을 통역해줬습니다.그 결과 일본 선수 코멘트를 담은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 언론 중 유일하게 외신과 협업 취재를 한 기자였습니다. 제 친화력은 ‘경쟁보다 협력’이 필요한 취재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이 세 가지 강점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제 상황을 돌파하게 해주었고, 앞으로도 어떤 부서에서든 기자의 본령인 질문, 해석, 소통을 실현하는 데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4. 인생의 가치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작성해주세요대학교 4학년, 용돈 50만 원을 벌기 위해 학내 ‘장애학생 도우미’에 지원했습니다. 청각장애 4급의 학우와 함께 수업을 듣고 공부를 도왔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긴 머리로 보청기를 가리고 자신의 장애를 밝히지 못하던 그 학우의 모습은 제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여느 학생과 다르지 않았지만, 자신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습니다. 약자이자, 스스로를 숨겨야 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처음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저는 목소리만 크게 할 뿐, 장애학우를 다른 학우와 다르지 않게 대하려 했습니다. 경제학 수업에서 그래프를 함께 그리며 도서관을 찾았고,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공유했습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였고, 그 학우는 해당 수업에서 기대 이상의 학점을 받았습니다. 학기 말엔, 저에게 정성 가득한 손편지를 전해줬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존중은 대단한 게 아니라, 차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라는 가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기자가 된 뒤, 장애인 권리에 대한 관심은 ‘스포츠 관람권’이라는 현실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기명 칼럼을 통해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장애인석 가격 격차를 지적했고, 수도권 A구단의 ‘동반 1인 미포함’ 정책이 ‘포함’으로 변경되는 결과를 끌어냈습니다. 기자의 일이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1. 연합뉴스를 선택한 이유(지원동기) / 800자(공백포함)[연합이 키운 ‘최고의 야구기자’]“동경하지 맙시다.”2023 WBC 결승전을 앞두고 오타니 쇼헤이가 일본 대표팀에 남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연합뉴스를 '동경'했습니다.스포츠 기자가 된 이후, 연합의 보도는 제 기준이었습니다. 기사 제목, 문장 구성, 정보 배열 하나까지 연구하며 “언젠가 나도 저런 기사를 쓰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연합 선배들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정확한 취재력으로 독보적인 신뢰를 쌓고 있었습니다. 또 선배들로부터 늘 빠르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기사들을 써내는 진실되고 열정 넘치는 기자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기자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고 연결하고 기록하는 사람임을 배웠습니다.선배들처럼 양질의 보도를 쓰기 위해 보도자료 한 줄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하며 추가로 뽑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는지 반복해서 들여다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독 보도 기회도 여러 번 얻을 수 있었습니다.돌이켜보면 오타니의 말은 ‘상대를 존중하되, 우러러보지 말고, 우리만의 야구를 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저도 연합의 사실과 현장 중심 보도 철학을 따르되, 제 색깔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을 2년 이상 장기 취재했고, 그 결과 지난 3년간 '최고의 야구기자상'을 포함해 체육기자상을 3차례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저는 연합뉴스가 키워낸 ‘최고의 야구기자’입니다. 이제 '최고의 기자'가 되려 합니다. 연합에서 다양한 부서를 두루 경험하며 시야를 넓혀 최고의 기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2. 지원 분야를 위한 본인의 노력 및 준비사항 / 800자(공백포함)[세 겹의 사각지대를 비추다]‘여성’, ‘비인기 종목’, ‘아마추어’라는 세 겹의 사각지대는 저를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저는 이 사각지대들을 밝게 비추려 노력해왔습니다.야구를 잘 몰랐던 신입 기자 시절, 프로야구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여자야구'부터 파고들자는 전략을 세웠고, 무작정 한국여자야구연맹에 전화를 걸어 취재를 제안했습니다. 연맹도 언론의 관심에 놀라움을 표했고, 저는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을 만났습니다.기존 보도가 거의 없는 영역이기에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를 일일이 발굴하고, 기록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여성’, ‘비인기 종목’, ‘아마추어’라는 세 겹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꾸준히 취재하며, 단발성 기사가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서의 취재를 실현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야구' 관련 단독 기사와 기획 기사를 꾸준히 생산하며 전문성을 쌓았습니다.또한, 프로야구 수도권 A구단의 장애인석 가격 정책을 바꾸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대학 재학 시절, 학내 '장애학생 도우미'로 활동하며 장애인 학습권과 이동권 등 이들의 권리에 대해 피부로 느끼게 됐습니다. 장애인 권리에 대한 관심은 ‘스포츠 관람권’이라는 현실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기자가 된 첫 해, 기명 칼럼을 통해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최대 3.8배' 차이나는 장애인석 가격 격차를 지적했고, 수도권 A구단의 ‘동반 1인 미포함’ 정책이 그 다음해 ‘포함’으로 변경되는 결과를 끌어냈습니다. 기자의 일이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3. 연합뉴스가 본인을 선발해야 하는 이유 / 800자(공백포함)[당돌함]기자의 가장 기본적인 힘은 ‘질문하는 용기’라고 믿습니다. 2022년 프로야구 SSG가 우승했을 당시, 저는 구단주 정용진 회장의 멘트를 따기 위해 VIP석까지 올라갔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동승하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질문을 꺼내자, 즉시 경호원에 제지 당해 쫒겨났습니다. 비록 인터뷰는 실패했지만 이후 저는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기사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들이대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자가 됐습니다.[관찰력]야구공 한 번 만져본 적 없던 저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믿음으로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야구공을 던지며 투구 메커니즘을 익혔고, 배팅의 감각도 체험했습니다. 덕분에 투수-포수 간 볼 배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선수의 심리와 경기의 흐름을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체험을 통해 관찰력을 키운 덕분에, 단순한 상보를 넘어 경기 안의 맥락을 짚어내는 기사를 쓸 수 있게 됐습니다.[친화력]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취재 당시, 일본 교도통신 소속 시나가와 에리 기자와 빠르게 친해졌습니다. 저는 그에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시나가와 기자는 일본 선수를, 저는 한국 선수를 맡아 녹취록을 교환하고, 서로 상대국 선수들의 답변을 통역해줬습니다. 그 결과 일본 선수 코멘트를 담은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 언론 중 유일하게 외신과 협업한 기자였습니다.이 세 가지 강점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제 상황을 돌파하게 해줬고, 앞으로도 어떤 부서에서든 기자의 본령인 질문, 해석, 소통을 실현하는 데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4. 입사 후 포부 등 / 800자(공백포함)[연합뉴스를 통해 다시, 더 넓은 현장으로]저는 단지 스포츠만 알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기자는 사회 전체를 꿰뚫어야 진짜 스포츠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국회, 검찰청, 청문회와 연결되는 이슈를 더 많이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전문지의 한계는 명확했고, 그래서 저는 더 넓은 필드로 나아가고자 지난해 9월, 퇴사를 결심했습니다.연합뉴스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 등 다양한 부서를 두루 경험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질문할 줄 아는 기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언론이 무너지는 시대에, 연합뉴스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본질을 저 또한 실천해 나가고 싶습니다.한국 프로야구는 지난해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첫 1000만 관중을 달성했습니다. 올해도 무난하게 1000만 관중을 돌파할 기세입니다. 화려한 스타 선수, 수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그곳만을 쫓는 것이 기자의 임무는 아닙니다. 저는 그 반대편,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똑같이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여자야구 대표팀은 제게 말해줬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좋아하는 걸 계속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연합뉴스에 입사한다면, 사회를 보는 눈과 스포츠를 사랑하는 열정을 바탕으로 단단하고 입체적인 기사를 쓰겠습니다. 국가기간 통신사의 이름으로, 더 깊고 넓은 취재로 공공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독자의 신뢰를 받는 기자로 현장에 있겠습니다.
1. 지원동기와 입사 후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더 많은 '손가은'들을 기록하겠다]2023년 제51회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선수 ‘손가은’이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주최사인 한국일보를 포함해 그 누구도 이를 즉시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여자야구를 꾸준히 취재해 온 스포츠 기자로서 저는 이 장면을 단독 보도했고, ‘기자가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그리고 1년 뒤, 손가은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섰고 이번엔 한국일보가 그 등판을 스포츠면 톱기사로 전했습니다. “손가은이 53년 봉황대기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10대 청춘의 야구, 그 자체가 낭만적이었다.” 비록 첫해에는 놓쳤지만, 다음 해에는 이를 충실히 보완하며 한 소녀의 도전을 끝까지 따라간 한국일보의 보도를 보며, 저는 이 신문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저는 이제, 한국일보의 이름으로 더 많은 ‘손가은’들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주류에서 비켜난 목소리, 그럼에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한국일보를 통해 다시, 더 넓은 현장으로]저는 스포츠 기자이지만, 스포츠만 알고 싶은 사람은 아닙니다. 진짜 스포츠를 이해하려면 그 뒤에 있는 정치, 제도, 사회 구조까지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검찰청·청문회 등 사회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이슈를 다루고 싶었고, 그 확장 가능성을 좇아 지난해 9월, 전문지를 퇴사했습니다.입사 후에는 다양한 부서를 두루 경험하며, 사건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습니다. 단단한 취재력과 질문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국일보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본질을 실천하겠습니다. 화려한 스타보다 그 반대편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는, 현장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한국일보 기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2. 본인이 보유한 핵심 역량과 해당 분야에서의 강점을 작성하시오.[세 겹의 사각지대를 비추다]‘소수자’, ‘비인기 종목’, ‘아마추어’라는 세 겹의 사각지대는 저를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저는 이 사각지대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가까이에서 비추는 저널리즘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4대 구기종목(축구, 농구, 야구, 배구)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 프로팀이 없는 ‘여자야구’부터 파고들자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무작정 한국여자야구연맹에 전화를 걸어 취재를 제안했고, 언론의 관심에 놀라워하던 연맹은 흔쾌히 취재를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여자야구 국가대표팀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기존 보도가 거의 없던 영역이기에 선수 한 명, 한 명의 스토리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록했고, 긴 호흡의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단발성 보도를 넘어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진 이 취재를 통해, ‘여성’, ‘비인기 종목’, ‘아마추어’라는 사각지대를 기록하며 그들의 존재를 언론 안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야구 관련 단독 기사와 기획 기사를 꾸준히 생산했고, 현재까지 두 곳의 출판사로부터 ‘여성 스포츠’를 주제로 한 출간 제안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단지 현장을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오래 머무르며 축적한 결과입니다.또 다른 사각지대는 장애인의 ‘스포츠 관람권’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장애학생 도우미로 활동하며 느꼈던 문제의식을 기자가 된 이후 현실 기사로 연결했습니다. 기명 칼럼을 통해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장애인석 가격 격차를 지적했고, 수도권 A구단의 ‘동반 1인 미포함’ 정책을 ‘포함’으로 바꾸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기자의 일은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기록하고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게 제가 가진 가장 강한 역량이자, 한국일보에서 더 발전시키고 싶은 저널리즘의 방식입니다.3. 뉴미디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무엇이며, 본인이 갖고 있는 디지털 역량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뉴미디어는 위기이자 기회다]뉴미디어 시대, 정보는 넘쳐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속도와 자극에 치우친 콘텐츠가 확산될수록 언론이 제공해야 할 가치는 더욱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언론이 ‘정확하고 맥락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독자에게 신뢰받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습니다. 단순한 속보 경쟁이 아닌, 독자의 생각과 삶에 연결되는 저널리즘이 필요합니다.[X 팔로워=863명]저는 여성 스포츠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SNS 계정을 운영하며 뉴미디어 환경에서 실질적인 경험을 쌓았습니다. 알차고 검증된 정보만을 선별해 콘텐츠를 구성한 결과, 단 3개월 만에 X 플랫폼에서 팔로워 863명을 확보했습니다. 단순히 응원이나 감성 중심 콘텐츠가 아니라, 경기 기록, 선수 인터뷰, 제도적 쟁점 등 ‘정보’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기획했고, 이를 통해 팬층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기획부터 이미지 편집, 업로드 타이밍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관리하며 콘텐츠 유통과 반응을 분석하는 감각도 키웠습니다.특히 뉴미디어의 가장 큰 강점은 독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도달하는 구조 속에서, 어떤 정보가 소비되고, 어떤 톤이 신뢰를 얻는지를 체감하며 콘텐츠의 방향성을 조정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기사 전달이 아닌, 독자의 눈높이에서 메시지를 구성하는 역량을 키웠습니다.저는 뉴미디어 시대의 기자는 단순한 작성자에 머물지 않고, 콘텐츠의 ‘의미’와 ‘도달 방식’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일보의 깊이 있는 해설과 균형 잡힌 시선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저널리즘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전통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독자와 연결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전달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4. 본인의 최우선 가치관 또는 좌우명이 무엇인지 작성해 주십시오.[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한다는 것]저의 좌우명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취재하는 일이 즐겁고, 기사를 쓰는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에, 저는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가치관은 제가 지난 2년간 꾸준히 취재해 온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에서 비롯됐습니다.국내 언론에서 여자야구 대표팀을 이처럼 장기적으로 다룬 기자는 드뭅니다. 처음엔 단발성 취재일 줄 알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선수들의 야구를 향한 깊은 애정이 저를 계속 그들과 함께하게 만들었습니다. 국가대표 투수 최송희 선수는 레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구 훈련을 이어갔고, 외야수 안수지 선수는 퇴근 후에도 매일 배팅장을 찾으며 땀을 흘렸습니다. 비인기 종목,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이들의 모습에서 저는 진짜 ‘전문성’과 ‘열정’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좋아하는 일을 지켜내고 있었습니다.지난해 한국 프로야구는 관중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주목받았지만, 기자의 임무는 늘 스포트라이트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그 반대편, 주목받지 못한 채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여자야구 대표팀은 제게 조용히 말해주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좋아하는 걸 계속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하는 사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재밌으면, 흥미가 있다면, 그리고 가치가 있다면 개의치 않고 끝까지 취재하는 사람. 그게 제가 지향하는 언론인의 모습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끝까지 귀 기울이며, 언론이 가야 할 방향을 질문할 줄 아는 기자로 남고 싶습니다.
자기소개 및 지원동기를 자유롭게 표현해주세요.[중앙일보 보고 꾼 꿈, 최고의 야구기자 되다]현관문 앞에 놓인 중앙일보를 집어 들고 손가락 감각만으로 28, 29면(베를리너판 기준)을 습관처럼 펴던 아이. 오늘은 어떤 기사가 실렸을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10년 넘게 중앙일보 스포츠면의 모든 기사를 정독한 아이는 2022년 한 스포츠 전문 일간지 스포츠 기자가 됐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기자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고 연결하고 기록하는 사람임을 배웠습니다.그 배움을 통해 저는 스포츠 전문지에 입사한 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여자야구‘를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구를 잘 몰랐던 저는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은 ‘여자야구‘부터 파고들자는 전략을 세웠고, 무작정 한국여자야구연맹에 전화를 걸어 취재를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2년 이상의 장기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기존 보도가 거의 없는 영역이기에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를 일일이 발굴하고, 기록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여성’, ‘비인기 종목’, ‘아마추어’라는 세 겹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꾸준히 취재하며, 단발성 기사가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서의 취재를 실현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야구‘ 관련 단독 기사와 기획 기사를 꾸준히 생산하며 전문성을 쌓았고, 기자 2년 차였던 2023년, 한국야구기자회가 수여한 ‘올해의 야구기자상’을 포함해 체육기자상 3관왕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중앙일보‘에서 최고의 기자 되겠습니다]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환기시키고, 용기를 건네며, 기억 속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스포츠 일간지 재직 시절 여성 스포츠, 장애인 접근권, 비인기 종목 등 소외된 영역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중앙일보는 제게 ‘기자’라는 꿈을 처음 심어준 신문입니다. 영향력 있는 보도와 사람을 중심에 둔 서사, 치열한 현장 취재력이 살아 있는 신문 속에서, 저 역시 ‘누군가의 기억을 바꾸고, 꿈이 되는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기자는 [ ]다'에 들어갈 [ ]를 채우고, 그 이유를 서술해주세요.[기자는 ‘연료‘다]지난해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1000만 관중을 돌파한 프로야구(KBO)의 인기 비결은 바로 ‘연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연료는 다름 아닌 기록입니다.기록은 단순 숫자가 아니라, 서사의 연료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타율, 평균자책점 순위, 라이벌전 복기, 레전드 재조명처럼 팬들이 즐기는 많은 콘텐츠는 기록이 축적되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록이 있어야 기억이 시작되고, 기억이 쌓여야 이야기가 됩니다. 이야기가 있어야, 스포츠는 살아 움직입니다. 저는 기자란 그런 서사의 첫 불씨를 지피는 사람, 즉 연료를 공급하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여자야구를 2년 넘게 취재하며 느꼈습니다. 기록이 없으니 “여자야구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야구는 공이 느리기 때문에 재미없다"는 말이 너무 쉽게 진실처럼 퍼집니다. 하지만 제가 매 경기 데이터 위주로 경기 상보를 작성하고, 선수들의 이름을 지면에 실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기사 하나가 기록이 되고, 누군가는 그 기사를 퍼나르고, 또 누군가는 제보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또 실제로 구속은 조금 느릴지 모르지만, 공의 회전수(rpm)와 타구 속도는 남자 선수 못지 않다는 것을 기록으로 확인하면서, 막연한 편견에 맞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작은 기록이 연료가 되어, 더 많은 서사들이 붙기 시작했습니다.기자는 기억의 출발점이고, 다음 서사의 기반이 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서사의 불씨를 지피는 연료 같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쓴 기사로 또 다른 이야기가 타오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자기소개 및 지원동기를 자유롭게 표현해주세요.[중앙일보 보고 꾼 꿈, 최고의 야구기자 되다]현관문 앞에 놓인 중앙일보를 집어 들고 손가락 감각만으로 28, 29면(베를리너판 기준)을 습관처럼 펴던 아이. 오늘은 어떤 기사가 실렸을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10년 넘게 중앙일보 스포츠면의 모든 기사를 정독한 아이는 2022년 한 스포츠 전문 일간지 스포츠 기자가 됐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기자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고 연결하고 기록하는 사람임을 배웠습니다.그 배움을 통해 저는 스포츠 전문지에 입사한 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여자야구‘를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구를 잘 몰랐던 저는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은 ‘여자야구‘부터 파고들자는 전략을 세웠고, 무작정 한국여자야구연맹에 전화를 걸어 취재를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2년 이상의 장기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기존 보도가 거의 없는 영역이기에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를 일일이 발굴하고, 기록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여성’, ‘비인기 종목’, ‘아마추어’라는 세 겹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꾸준히 취재하며, 단발성 기사가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서의 취재를 실현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야구‘ 관련 단독 기사와 기획 기사를 꾸준히 생산하며 전문성을 쌓았고, 기자 2년 차였던 2023년, 한국야구기자회가 수여한 ‘올해의 야구기자상’을 포함해 체육기자상 3관왕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