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현대 단편 문학의 초석을 놓은 러시아의 작가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의 소설집이다. 현대의 단편소설은 체호프를 통해서 양식과 주제를 습득해 풍요로운 세계를 구축했고, 현대의 연극은 체호프의 극적 스타일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고리끼, 나딘 고디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펼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건의 강한 등장이 아니라, 빛과 공기, 바다 냄새 같은 감각의 배경이다. 얄타의 산책로를 느리게 가르는 사람들의 발걸음, 늘 끌려다니는 작은 개의 리드, 그 위로 쏟아지는 지중해성 햇빛의 조각들이 인물보다 앞서 독자를 맞이한다. 체호프의 이야기에서 사랑은 선언이나 비극적 돌출로 도래하지 않는다. 사랑은 주변부에서 스며들고, 일상의 균열 속에서 천천히 태어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흔히 ‘불륜담’으로 축약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어휘가 얼마나 부정확한지 깨닫게 된다. 체호프가 그려내려는 것은 금기의 파열음이 아니라, 금기와 순응 사이에서 스스로를 발견해 가는 인간의 더디고 미세한 각성이다.
이야기의 뼈대는 단순하다. 모스크바의 은행원 구로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젊은 여성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휴양지 얄타에서 만난다. 두 사람 모두 기혼자이며, 처음의 만남은 가벼운 유희의 예감으로 덧칠되어 있다. 그러나 이 유희는 곧 자신들의 삶을 재구성하도록 강요하는 내적 사건으로 자라난다. 구로프는 그간의 무수한 연애 경험과 냉소의 습관으로 자신을 안전하게 둘러싸고 살아왔고, 안나는 규범의 안온함 속에서 젊은 감각을 마취시키며 살아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낯선 진면목을 마주한다. 얄타의 햇빛은 이들에게 단지 배경이 아니라, 위장된 삶을 탈색시키는 일종의 조명이다.
체호프의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의 승리’나 ‘도덕의 승리’ 같은 간명한 결말을 거부한다. 대신 “이제야 가장 어려운 것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남긴 채 이야기를 닫는다. 이 문장은 단지 플롯의 열린 결말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에게 삶의 난점이란 언제나 ‘이후’의 문제이며, 진정성은 선택 그 자체보다 선택 이후의 지속과 감당에서 증명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입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꽤나 들어보셨을텐데, 읽어보신 분들은 글쎄요?
저번에 소개해 드렸던 러시아 문학 전공 번역가 유튜버 북클럽비바님 개인 선호도 1위이기도 한 안톤 체호프, 그의 대표작으로 들어가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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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었던 건 꽤 오래 전이다. 흐릿한 기억으로는 7, 8년이 지났을 것이다. 왜 샀는지, 도 가물하다. 지금도 좋아하는 인물이 추천하는 책을 많이 찾아 읽는 편인데 7~8년이 더 젊은 시절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이를테면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박학다식함에 놀랐다면 그가 읽거나 추천한 책들은 모조리 읽으면 그와 동등해지거나 적어도 조금이라도 닮아질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었다. 아마도 이 책도 그런 동기가 작동했을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는 단편 소설들의 거장으로 유명하다. 당시 러시아 출판계는 단어수로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다소 지엽적이고 늘어지는 부분들이 많았던데 반해, 체호프의 소설들은 간결하면서도 재미있고 세밀한 그 표현들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의 여러 단편 중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그의 장점인 ‘일상어를 사용해서 난해한 인간들의 심리를 명료하게 풀어내는 것’이 잘 녹아있기로 유명한 작품이다. 심리묘사 이외에도 ‘얄타’라는 도시를 아름답게 묘사하는 부분이나 주인공 구로프의 안나 세르게예브나를 관찰하면서 뱉어내는 감탄이 섞인 문장들이 특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