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네 바둑 둘 줄 아는가 >주5일제 근무의 활성화와 학교의 주5일 등교제, 그리고 기계화와 산업화 등의 도입으로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 많아지고 그에 따른 여가활동의 종류가 늘어나고 그와 관련한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주5일제와 발맞추어 펜션사업이 부흥했으며 관광지나 테마공원의 손님유치홍보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또한 기존의 술집들은 주말특수에서 금요일 저녁특수로 일대변화를 가져왔으며 유흥가의 매출이 30%이상 감소하게 되었다. 이렇게 점점 여가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여가활동들이 발전하는 이때에 선조들의 가장 주된 여가활동 중 하나였던 바둑의 여가적 가치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바둑의 규칙은 간단하다. 바둑판 위의 교차점위에 두 사람이 흑과 백의 돌을 쥐고서 한 수씩 교대로 두면 된다. 교차점 위에 있는 돌을 에워싸면 따먹을 수 있고, 자신만의 영토를 늘려가면 되는 게임이다. 그렇게 자신의 영토를 더 많이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처음 게임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음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복잡한 규칙들은 귀에 안 들어오고, 그것을 다 기억하고 게임에 임하려면 게임에 집중 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게임은 하면서 하나씩 배우고 스스로가 그 비법에 대해서 깨우치고 자신만의 방법을 개척하는 것이지 선행한 사람이 전부다 가르쳐 주는 것은 게임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단 두 줄로 설명될 수 있는 바둑은 그 규칙이 간단해서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지만,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고, 그것을 전문 직업으로 갖고 경기를 할 정도로 수많은 이기기 위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규칙이 간단하다고 경기까지 쉽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점은 바둑과 비슷한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 장점으로 부각된다. 체스나 장기를 두자면 규칙을 듣다가 말들의 특성을 다 외우지도 못하고 지치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정말 마음먹고 덤벼들지 않으면 말의 특성을 다 배우지도 못한다.“아버님. 고스톱이나 한판 하시겠습니까?”처음 자신의 여자친구 집에 가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고스톱=돈내기=도박=천한 것’ 이라는 인식은 우리나라사람 대부분이 갖고 있는 생각이며 -간혹 이것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고 계신 분들의 경우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예를 차려야 할 자리에서는 권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둑의 경우 그렇지 않다. 처음 인사간 자리에서 여자의 아버지는 자기 딸이 교제중인 남자에 대해 알고 싶으시겠지만 그런 궁금증이 심문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질문과 같은 형태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것은 게임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격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부욕이 존재하고, 승부욕이 없는 사람이라면 열정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지나친 승부욕으로 인한 과도한 흥분은 잠시 이성을 잃게 하고, 그 사람의 내면 깊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인격을 보려면 게임을 한 판만 해보면 알 수 있다.그렇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 시집갈 나이의 딸을 두신 아버지께 농구나 축구와 같은 외부활동은 조금 무리가 간다. 그리고 잔뜩 멋을 내고 온 사윗감(?)에게 그런 활동을 요구한다는 것은 조금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또한 외부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번거롭고 초면에 어색함이 있다. 그럼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팔씨름(?) 어쩐지 바닥에 비스듬이 누워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힘을 쓰는 장면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만은 않다.티비에서 보면 이런 자리에서 아버지가 하는 말은 ‘자네 바둑 좀 둘 줄 아는가?’ 이다. 그렇다면 왜 바둑인가?바둑은 조용하다. 멍이요~ 장이요~를 외칠 필요도 쌍피입니다. 흔듭니다. 등의 말을 할 필요도 얼굴이 시벌개질 정도로 씩씩 거릴 필요도 없다. 상대가 돌을 놓고 나면 조용히 빠져나갈 방법을 연구하면 된다. 혹여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아 그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한다면 그 생각하는 시간동안 간단한 대화들을 나눌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경기가 아닌 그저 유흥을 위해서라면- 그렇기에 처음 만난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체의 접촉도 언성을 높이고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또한 바둑은 정직하고 투명하다. 모든 게임에는 어느 정도의 운이 따라준다고 한다. 물론 바둑도 그날 몸 상태라든지 컨디션 등에 따라 운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것을 전적인 운이라고 볼 수 없다. 내가 무슨 카드를 집어드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카드게임과는 달리 직접 내 두뇌를 믿고 두어야 하기 때문에 두는 사람의 머리와 실력이 정직하고 투명하게 바둑판위에 드러난다.
< 이것이 바둑이다. >" 재미있대. 그거 한번 봐봐.““예? 바둑이요? 그거 좀 그렇지 않나?그냥 다른 것 볼래요. 어디있어요?”얼마 전 동생 모의고사가 끝나는 날 기분을 풀어줄 겸 만화책을 빌려보자며 책방에 가서 아줌마와 이루어진 대화이다. 요즘 티비에서 방영중이라는 다른 사람들도 다들 재미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왠지 바둑이라는 것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고등학교 때 클럽활동(C.A)을 뭐하느냐는 3시간을 어떻게 자유하게 보낼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연관이 되었기에 신중하고도 치열하게 결정 되었다. 1,2 학년 2년동안 내 C.A활동은 ‘기초바둑부’였고, 수많은 가위.바위.보를 모두 이기고 ‘채택’된 행운아였다. 일단 바둑부가 되면 3시간 내내 ‘영화감상반’에서 틀어주는 엄선된 영화들을 중앙 TV를 통해 감상할 수 있고, 시험전이라면 3시간 내내 영어단어들과 함께할 수 있으며, 시험 후라면 피곤에 절은 내 몸을 편안히 쉴 수 있었다. 1년 동안 이 C.A에서 하는 ‘바둑적인’ 활동이라고는 선생님이 갖고 오셔서 바둑을 ‘조금’둘 줄 아는 학생 한명을 불러 바둑 몇 판을 두실 동안 다른 바둑판과 알을 이용해서 ‘오목’을 두는 일 정도였다. -이 때는 왜 알까기가 없었을까?- 어쩌다가 선생님께서 C.A의 본래 목적을 생각하셔서 우리 선배 중 바둑으로 명지대를 간 선배를 초청해서 바둑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얘기를 해주는 시간을 갖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고, 결국 몇 마디 하던 그 선배와 선생님은 바둑 두기에 몰두 하시고 말았다.바둑은 알려고 한 적도 없고, 가르쳐 주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괜히 바둑이란 말만 들어도 알러지가 일어나는 것처럼 거부반응이 일어나고,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재미없는 것을 하라는 말이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부터 솟는다. 바둑이라는 것은 으레히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만의 여가생활. 혹은 바둑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프로기사들의 돈벌이. 영화 속에서 아버지가 화나시면 아들에게 ‘에헴’ 한 번에 -나가라는 뜻인 것 같은- 던지시는 소품도구 정도의 것이었다. 처음 이 강좌를 신청한 이유도 졸업한 선배들이 ‘강추’하는 ‘졸업 전 학점을 얻기 위해 꼭 들어야 할 교양과목’ 에 제1순위로 랭킹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첫 시간 강좌를 클릭하면서 절반 정도의 내 뇌는 이미 잠 속으로 빠져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바둑이 일종의-쉽게 말한다면- 땅따먹기 경쟁이고, 작은 전쟁이라는 설명에서부터 귀가 솔깃해지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각종 오락들은 땅따먹기 형태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의 경우도 자신의 종족으로 서로의 기지를 파괴하고 땅을 따먹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또한 그 규칙을 설명해보자면 자신의 돌로 이어서 지정하는 부분은 내 땅이고 상대방의 돌을 감싸서 그 돌을 뺏어올 수 있다는 것,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는 사람이 궁극에는 승리한다는 것. 이것 밖에 없다. -물론 그 내부를 파고들어가 보면 더 복잡한 규칙이나 꼼수라고 불리우는 그런 어떤 방법들이 더욱 많이 존재하겠지만 모든 게임에서 초보자에게 모든 규칙이나 모든 비법들을 전수해 준 뒤에 경기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고스톱을 가르칠 때 처음에는 그냥 단지 그림 맞추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림만 맞추라고 설명해줘야지 이것은 쌍피고, 이것은 고도리고, 이것은 오광이고, 이것은 쿠사에 홍단에 청단에 이러고 나온다면 배울 사람은 그 규칙에 질려버려서 배울 수 없다. 그냥 단지 몇 판 정도를 ‘오고가는 벌금’을 없는 것으로 하고 몇 판하면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그거야’라고 규칙을 설명해주는 쪽이 더 빨리 배우고 익힐 수 있게 한다.- 바둑이 특별히 복잡한 규칙이 없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과 조용히 말없이 치고 박고 싸운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면 바둑에 귀가 솔깃했을 텐데 왜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말로 귀가 솔깃하게 하지 않고, 바둑을 배우면 정신함양에 좋다느니 머리가 좋아진다느니 하는 말들만 한 것일까?
우울氏의 一日-함민복성선설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읽는 순간 소름이 끼쳤던 작품이다. 그것도 첫 장에 있는 작품이...별생각 없이 펴들었던 함민복의 시집은 첫 만남부터 그렇게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함민복에 시집에는 돼지, 어머니, 똥이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또한 가난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도 많다. 조금 과장을 해서 말하자면 시집 속에 들어있는 거의 모든 시속에 한번씩은 거론되고 있다.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원초적이기에 사람들이 꺼리는 소재를 작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루고 있고, 그것을 읽으면서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함민복의 시는 직접적으로 쏘아대는 독설가의 말처럼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유나 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한 언어로 쉽게, 그러나 내숭떠는 여자라면 아우∼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면서 얼굴이 발그레해질만한 어휘들로 시를 써내려 가고 있다는 말이다.또한 함민복은 가난이나 어린시절의 외로움과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출 등을 주로 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절대 길게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는다. 위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이 느끼는 느낌을 또한 하고자 하는 말을 단번에 내 뱉고는 다른 부분을 채우지 않고 물러난다. 그러한 그의 시작법은 시집을 읽으면서 여러번 나타난다. 숨이 길고 묘사가 많고, 말이 많은 시들을 읽다가 이렇게 짧은 시를 대할 때면 시집을 읽어나가다가 한번쯤 숨을 쉴 수도 있고, 그 여백에서 왠지 모를 여유도 느껴진다. 또한 뭔가 더 설명이 있을 듯 한데 끝내는 것이나 그 몇 줄 되지도 않는 아니 그 중 한 단어에도 시인의 생각을 싣고 공감대를 형성해 준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참 힘, 가난을 추억함, 중앙선, 박수소리3, 자위 등의 시는 특히 더 기억에 남는 시이다.기형도의 시집이 전체적으로 하나가 되어 흘러가는 느낌이었고, 장석남의 시집이 아름다운 그림 한편씩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한 발자욱씩 떼면서 감상하는 느낌이었다면, 함민복의 시집은 시집의 제목과도 너무도 맞게 우울氏의 하루 생활을 가만히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사람에 따라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하루처럼 시집 한 권을 한 호흡에 후딱 읽어 치울 수도 있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한 장씩 한 장씩 넘길 수도 있는 시집이었다. 이 시집을 총 4번 읽은 나는 처음에는 한 호흡에 후딱 읽어 치웠고, 두 번째는 책장 넘기기가 너무도 아쉬워서 시집이 끝나간다는 것이 너무도 아쉬워서 한 장씩 한 장씩 천천히 넘기면서 생각하면서 읽어 나갔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장석남달과 수숫대- 貧막 이삭 패기 시작한 수숫대가낮달을마당 바깥 쪽으로 쓸어내고 있었다아래쪽이 다 닳아진 달을 주워다 어디다 쓰냐생각한 다음날조금 더 여물어진 달을이번엔 洞口 개울물 한쪽에 잇대어깁고 있었다그러다가 맑디맑은 一生이 된빈 수숫대를 본다단 두 개의 서까래를 올린집속으로 달이들락날락한다만약 앞장에 나온 시인의 사진을 먼저 보지 않았다면 시를 읽고서는 시인이 여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장석남의 시는 여자의 시라고 오해 할 만큼 섬세하고 부드럽다. 과격한 언어나 격한 호흡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고 다만 수줍게 웃으며 읖조리는 듯한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달, 물, 별, 꽃과 같은 자연을 그린 소재들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도 그의 시가 가지는 여성성에 한 몫을 했다.처음 그의 시를 읽을 때 아무생각 없이 읽었다가는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멈칫거릴게 분명하다. 그의 시는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색다른 묘사들이 쉽지 않게 한다. 그의 시는 정형화된 어떤 것들이 없다. 초승달=눈썹과 같은 시인만의 어떤 특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손톱달이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아이 젖니 같다고도 했다가 하면서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계속해서 변해간다. 백지 위에 계속해서 색다른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랄까? 마치 어린 아이가 토끼를 빨간색으로 칠했다가, 노란색으로 칠했다가 파란색으로 칠했다가 하는 듯한 순수성. 그의 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림이 그려질 듯 말 듯 아리송하게 다가온다.그의 시가 딱딱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다다다 거리지 않는 어미의 사용에 있다. 그는 때로는 명사의 나열을 행갈이를 하는 것만으로 시를 만들기도 하고, 그냥 ∼일 , ∼것 등의 명사로 끝을 맺기도 하고, ∼가 ∼자 ∼나 와 같은 어미로 끝을 맺기도 한다.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살살 꼬득여 자신의 생각속으로 함께 빠지게 만들려는 간질간질한 속삭임이 그의 시속에 숨어 있다.잦은 행갈이를 통해서 시의 호흡을 짧게 끊는 것도 그의 시의 특징이다. 그의 시 속에는 두 글자로 된 행이 많다. 이렇게 잦은 행갈이는 그의 시를 읽는 속도를 느리게 늘여주어서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림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마치 옛 시인이 한발자욱씩 날짝날짝 걸음을 떼면서 시조를 부르는 듯한 느낌. 그렇지만 자칫 늘어질 수도 있는 시의 박자를 비슷한 시어의 반복을 통해 잡아주고 있다. 비슷한 시어를 점점 강도가 짙어지도록 반복함으로서 몰아치는 듯한 강(强)을 주었다면 단어를 끊어주는 기법으로 속도를 늘여서 평안한 느낌의 약(弱)을 준다.그의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르는 것은 김영랑의 시였다. 그의 시속에서 나는 김영랑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김영랑이 떠오른 것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의 시는 자연 친화적인 소재라든가 울림소리인 ㄴ,ㅇ,ㅁ,ㄹ 등의 사용을 통해 김영랑적인 느낌의 시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진눈깨비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나는 굽히다 말고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불행하다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내가 기형도의 시를 처음 만난 것은 고1때 국어선생님으로부터였다. 그때 학문적으로 단어 하나하나 파헤쳐 가며 배운 은 그냥 기형도 라는 사람이 있구나. 에서 그치고 말았었다. 열흘 전 즈음 신촌에서 시집을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처음으로 시집을 펼쳐들고 읽었을 때 처음 10편 정도를 읽고는 책을 덮어버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쳤고, 흔들리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시집을 펼쳐 들었을 때에도 한번에 시집을 읽어나가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꺼번에 시집 전체를 읽기에는 너무도 숨이 가빴고, 심장이 터져 나가버릴 것만 같아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나고 너무 우울해져서 죽고싶다는 생각까지 들게했다.기형도의 시는 짧은 단문의 서술식 문장의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 마치 그냥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일기를 써 나가듯이, 홈페이지 속 다이어리 게시판 안에 쓴 글과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문장인데도 그 속에서 시라는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마침표가 없이 끝나는 종결형 어미는 자신의 역할을 반정도만 한 체 뒤로 이어지고, 그렇게 이어질 듯 끊어질 듯 진행해 가다가 숨이 찰 때쯤이면 쉼표(간혹 마침표)의 삽입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컴퓨터로 모든 문서를 해내면서 쉽게 마침표나 말줄임표 등의 문장부호들을 남발하는 나로서는 신선하고 깨끗한 느낌이었고, 문장부호 하나가 시속에서는 얼마나 큰 차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실제로, 라는 시에서 가는 비…… 뒤의 말줄임표는 마치 비가 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느끼게 해서 더욱 현실감있고 생동감있는 시를 느낄 수 있었다.두 번째 시적인 요소는 행과 연의 나눔에서 볼 수 있다. 위의 시에서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에서 허리를 과 나는 을 시인의 의도로 띄어쓰기가 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레 밀려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떨어진다, 뒤에 행갈이를 해주지 않고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뒤에서 행갈이를 해 준 것은 뒤에 생각한다 라는 단어를 살려주면서 시를 따라 읽는 독자에게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부분이 쉽게 쓸 수 있는 일기와는 다른 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한 문장이 끝나면 꼭 줄바꿈이나 마침표를 써야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으로도 그 시를 읽는 독자에게는 그 시를 창작할 당시의 시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그의 시속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것 하나는 일상 속의 평범한 것들이지만 서로 연관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흔한 연상작용에 의해 떠오르는 것들에서 벗어난 소재들을 연관지어 시속에 함께 등장시킴으로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이더라도) 비유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전혀 다른 소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해준다. 위의 시속에서 찾아내자면 도시 위에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표현하다가 대학시절을 회상하다가 다시 소설 얘기로 또다시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이 모든 것은 시속에서는 교묘하게 어울리지만 한 문장씩 따로 떼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렇게 그는 지극히도 자기 중심적인 소재들을 그저 툭툭 내뱉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그것들을 또한 교묘하게 연결시켜 시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들을 아낌없이 다 토해내고 있다. 눈발이 저벅거리며 낯선 곳들을 헤매이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많은 각오를 했지만 변덕이 심한 다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눈을 털어내는 사람들의 동작과 내 눈물이 흐르는 것 등은 흩날리는 진눈깨비와 갈 길, 목적을 잃고 헤매는 인간의 삶을 저벅거리다 다리 눈물 과 같은 단어로 아슬아슬하게 서로 연결시키고 있다.눈이라고 해서 다 같은 눈은 아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자기 앉을 곳을 몰라 헤매는 진눈깨비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스러져 버리고, 마치 비와 같이 변해버려 툭툭 자신의 옷을 터는 사람들에게서 마치 눈물처럼 떨궈지고 만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눈깨비의 인생인 것이다. 너무도 허무하고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인생 같아서 눈물이 나지만 그것이 진눈깨비의 일생 몫의 경험이기에 그것이 나의 일생 몫의 경험이기에 마냥 눈물이 나지 만은 않고 그런 진눈깨비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 김진명의 소설과 민족주의 >Ⅰ. 서론김진명씨는 1993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의 출간 이후부터 최근 황태자비 납치사건 에 이르기까지 펴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작가이다. 사람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며함께 분노하며, 숨어있던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끄집어내게 된다. 17세기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민족주의는 19세기 식민주의 민족주의 등을 거치면서 탈민족주의에 까지 이르게 되었고, 근대 개인주의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중요시되는 사상으로서의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런데 김진명의 소설을 읽은 뒤에 생겨나는 공통되는 감정들을 사라졌다고 생각한 민족주의로 본다면 김진명의 소설에 나타난 민족주의는 어떤 모습일까?Ⅱ. 본론한(韓) 민족 한(韓) 민족주의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즉,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모여서 살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 때문에 인간은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또한 그 사회는 고대에는 단순히 우리집단을 뜻하기도 하지만 문명의 발달과 함께 크고 작은 저마다의 사회를 만들어 여러 공동체 속에 속해서 살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일정한 지역에서 함께 삶으로써 독특한 언어, 풍습, 문화, 역사 등을 가지게 된 사람들의 공동체. 라는 의미를 가진 예의 하나가 바로 민족(民族)이다. 또한 민족에 대한 베네딕트 앤더슨의 정의는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사람은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결속되어 단일한 민족을 이룬다는 것을 상상을 통해서 아는 것이다. 이다. 즉, 민족은 나 라는 개인을 우리 라는 이름으로 묶기 위한 하나의 상상 속의 산물이며, 매개체인 것이다. 이런 매개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유사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 첫 번째가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삶으로 우리 들만의 고유한 언어, 풍습, 문화, 역사 등을 갖게 되었다는 일체성과 동질성이다. 중요한 것은 같은 국적이나 단순히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 풍습, 역사 등의 면에서 동일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며(일체성) 또는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는 동일한 집단이며 그 고유한 본질은 신성하다고 믿는 한 핏줄로 지켜져 와야만(동질성) 한다는 점이다.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민족으로 묶어주는 매개체는 문화, 역사와 깊게 관련하고 있다. 특히 우리 민족은 한민족이라 하여 단일 민족이라는 생각이 강하며 그것은 여타 다른 민족들과 다르다는 민족의 우수성과 자긍심까지 내보이고 있다. 또한 36년 간의 일제강점기 시대는 식민지 민족주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계속해서 해방과 더불어 발발한 민족 간의 전쟁인 6·25이후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에 의한 강제 분단은 통일신라 이후 분단되지 않았던 단일 민족으로서의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70년대 80년대를 거치며 이룩한 경제개발 계획에 의한 삶의 풍요로움은 우리의 민족주의를 사라지게 했다. 하지만 교육을 통한 역사전달과 돈이 절대적인 권력의 상징이 된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국가간의 분쟁에서 강대국이 아니기 때문에 겪게 되는 부당함은 우리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고는 한다.김진명의 소설피눈물나는 현실 속에 정신까지 엎드릴 수 없다는 이야기, 가슴이 뭉클했다.가슴속의 고통과 눈물, 지금 이 소설 하나가 닦아주고 있다. 우리 현실에눈물이 난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다시 한번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일깨워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용기를 주었다.위의 글은 1998년 하늘이여 땅이여 출간 당시 광고에 개재된 독자의 목소리라는 부분에서 발췌한 것이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며 빨려 들어가는 어떠한 것을 느꼈으며, 민족적 자긍심과 더불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까지 극찬하고 있다. 하늘이여 땅이여 (1998-전2권)는 무궁화... (1993-전3권), 가즈오의 나라 (1995-전2권)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그의 책이다. 이 책은 중앙청(전 조선 총독부) 건물의 철거 시 나타난 석주. 즉,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혈에 박아 넣은 거대한 콘크리트 말뚝을 시작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일본의 음모에 관해 사도광탄과 기미히토를 통해 서술해 나가고 있으며 또한 빅뱅의 위기에 처한 한국의 금융시장에 뛰어든 세계최고의 큰손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해킹의 천재 이수아와 박정완이라고 하는 인물을 통해 우리 민족이 일본과 미국을 이겨낸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이 소설 속에는 우리 민족이 우수하다는 것과 함께 우리의 정신이 흐트러져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고 주장이 들어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독자들의 반응은 책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고 보여진다. 즉,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분노 이며, 보이지 않는 적 의 확인이며, 한국인 으로서의 자의식이며,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용기 인 것이다. 이렇게 개인주의 속에 묻혀 버린 우리의 민족의식을 꺼내기 위한 김진명씨의 노력은 6차례, 총 13권에 걸쳐 발간된 그의 소설 속에서 계속해서 보여지고 있다.그러나 그의 소설 속에 담겨진 민족주의가 본래의 취지를 잃은 상업적 민족주의에 불과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적절한 출간 시기에 있다. 무궁화... 가 출간되었을 시기는 외환위기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한창 어려워 졌을 때이며, 하늘이여..'의 출간시기 역시 계속되는 실업난과 더불어 첫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어려워진 환경에 놓여있을 때였다. 이처럼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그의 소설은 과거의 역사와 빗대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그 두 번째는 한번쯤 있을 법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오던 것을 소설화하여 나타내어 줌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소설로서의 허구와 진실을 구분하기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김진명씨는 소설을 한 권 쓰려면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한 권의 소설을 쓰기 위해 최소한 100권의 책을 읽고 그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등의 수고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자료를 토대로 그는 마치 자신이 사관이나 수필가가 되는 것처럼 글을 써내려 가는 것이다. 그 예로 보여지는 것이 민주정부 뒤에 닥친 외환위기와 계속되는 전 대통령들의 비리에 지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군사정권을 그리워 할 때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싸고 한번쯤은 의심해 보았을 만한 미국과의 연관성을 그린 한반도 이다. 또한 일본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전해지는 명성황후에 대한 우리의 재인식이 팽배해지고,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와 더불어 일본과의 껄끄러운 관계 속에 나온 황태자비 납치사건 등의 책들은 국수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생각을 마치 대변해 주는 듯 했고, 소위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작가의 의도여 어떻든 이처럼 상업적 민족주의로 평가되어지는 작품이 독자들에게 끼친 영향력이다. 김진명의 저서가 내재되어 있는 독자들의 민족주의 의식에 미치는 파장은 그 범위가 컸다.위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분노하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시대나 6·25를 직접 겪지 않은 젊은이들까지도 분노하고 있으며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민족주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고유의 전통문화, 민족의 맥, 민족의 우수성 등은 자칫하면 과거 역사에 연연한 채 머무르게 할 수 있다. 또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민족이 우수하고, 강대국에 의해 지배당했던 지난 과거에 빗대어 현재 사회에도 계속해서 그런 움직임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점은 자칫하면 배타적 민족주의로 빠져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그의 여러 작품 중 대표적으로 하늘이여 땅이여 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하늘이여... 속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사도광탄 은 단군이나 팔만대장경등을 지키는 우리만의 고유의 기(천기)들 만이 우리 민족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하고 있다. 사도광탄이 수아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수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일이다. 인간은 결코혼자의 힘만으로는 완전해지지 않아. 개인의 행복이란 것도 결국은 역사와문화 속에서 찾아진다는 것을 잘 알겠지. 그래서 나는 단군을 찾아나선것이다.이제 그 일이 너에게로, 아니 이 땅의 모든 젊은이에게로 넘어갔구나.비운의 세기를 당하여 잃어버렸던 겨레의 시조 단군을 되찾는 날 천기는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 하늘이여 땅이여 , 1998, 해냄, p.296)라고 하면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고유 문화를 살려 나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한 신화로만 여겨지는 단군의 존재를 실제 존재했던 인물로 우리의 시조라고 여겨 그것을 되찾는 날
< 金大問과 語原說 >인간은 예로부터 특정한 낱말의 연원, 즉 語源에 대하여 강한 호기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어원의식은 말을 사용하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일종의 反省作用이다. 그리고 이런 호기심이 뒤에 과학적인 해석 방법과 이론체계를 확보함으로써 語源論(etymology)이라는 언어학의 한 분과가 성립하게 되었다. 고대의 어원의식은 제한된 문헌에서 귀남되나, 그들의 어원은 신화전설과 함께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문헌에서의 어원의식은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우리 문헌에 나타난 어원설은 대개 역사적 서술과 관련되어있다. 특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잘 나타나 있는데, 어원관에 바탕한 우리 古人들의 어원 해석은 흔히 說話의 형태로 표출된다. 예컨대 三國遺事에 의하면 高句麗의 始祖 東明聖王의 諱는 朱夢인데 이 말은 활 잘 쏘는 사람을 朱夢이라고 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였고, 新羅 始祖 赫居世는 光明理世에서 유래한다고 하였고 居西干은 閼智가 처음 낫을 때 閼智居西干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말로 因緣해서(因其言稱之) 王의 號稱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이렇게 나타난 어원에 관련된 기록들은 누구의 견해인지 명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新羅 聖德王代의 대학자이자 저술가였던 金大問{) 김대문(金大問)생몰년 미상. 신라 중대(中代) 한산주총관(漢山州摠管)을 지낸 학자·문장가. 진골(眞骨)출신의 귀족이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704년(성덕왕 3)에 한산주도독에 임명되었다고 한다.그런데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에 의하면 “도독은 주(州)의 장관으로 원성왕 원년(785)에 종래 총관이라 부르던 것을 도독이라고 고쳤다.”고 하므로 704년 당시 김대문은 한산주총관 이었다고 함이 타당하다. 한산주총관이 최고관직이었는지 또 그밖의 관직경력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저술로는 《계림잡전 鷄林雜傳》·《화랑세기 花郎世記》·《고승전 高僧傳》·《한산기 漢 山記》·《악본 樂本》 등이 있었는데,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당시에도 남 아 있었다고 한다.은 개인으로서 語原說에 관한 기록을 「三國遺事」와 「三國史記」에 두루 인용하여 전하고 있다.1 次次雄(巫)[次次雄, 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世人以巫事鬼神, 尙祭祀, 故畏敬之,遂稱尊長者, 爲慈充] 次次雄, 或作慈充, 金大問云, 次次雄方言謂巫也, 世人巫事鬼神, 尙祭祀,故敬畏之, 遂稱尊長者, 爲慈充. (김대문이 이르기를 차차웅은 우리말의 무당(스승) 을 뜻하는 것이니, 세상사람들이 무당은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므로 그를 외경하여 마침내존장을 慈充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次次雄=慈充(巫, 스승)2 尼師今(齒理)金大問則云, 尼師今方言之也, 謂齒理, 昔南解將死, 謂男儒理·□脫解曰,吾死後. 汝朴昔二姓, 以年長而□位焉, 其後, 金姓亦興, 三姓以齒長相□,故稱尼師今.(김대문이 말하기를 이사금 즉 우리말로서 닛금 을 이른 것이니 옛적에남해왕이 장차 돌아가려 할 때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이르되, 내가죽은 후 너희 박석삼성이 연장자로 왕위를 이으라 하였더니 그 후에 김씨도또한 일어나 삼성이 연치의 많음을 따라 서로 왕위를 이은 까닭에 이사금이라한다고 하였다.) ※尼師今(齒理, 닛금)金大問云,… 或云 尼師今, 言謂齒理也, 初南解王□, 子弩禮讓位於脫解,脫云, 吾聞聖智人多齒, 乃試以 之, 古傳如比.(金大問이 이르기를 (王을) 혹은 尼師今이라고도 하였으니, 우리말의 닛금을 말하는것이라 하였다. 처음 南解王이 돌아가매, 아들 弩禮(노례)가 왕위를 脫解에게 사양하니, 脫解가 이르되 내 들으니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치아가 많다 한다 하고 떡을 들어 시험하였다. 예로 전하기는 이와 같다. ) ※尼師今(齒理. 닛금).脫解云, 凡有德者多齒, 宜以齒理試之, 乃咬餠驗之, 王齒多故先立, 因名尼叱今, 尼叱今之稱, 自比王始. (탈해가 말하기를 덕이 있는 이는 치아가 많다 하니 마땅히 잇금으로 시험하자 하고 떡을 물어 보았다. 왕이 치아가 많으므로 먼저 즉위하고 인하여尼叱今(잇금)이라 하였으니 尼叱今의 칭호는 이 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尼師今=齒叱今(齒理, 닛금)3 麻立干[金大問云, 麻立干, 方言謂 也, 謂 操, 准位而置, 則王 爲主, 臣列於下, 因以名之.] 或曰麻立干, 金大問云, 麻立者, 方言謂 也, 標准位而置, 則王 謂主,臣 列於下, 因以名之.(김대문이 말하기를 마립이란 것은 우리말의 말(말뚝) 을 이른 것이라하였다. (궐)은 標-좌석표의 뜻으로서 자리를 정하여 두는 것이다.王 이 주석이 되고 臣 은 아래에 벌이므로 이로 인하여 이른 것이라하였다.) ※ 麻立=麻□( , 말)이와 같이 어떤 특정의 語들은 이름과 대상물과의 사이에 밀접한 因果關係가 있는데 그것을 因以名之라고 했다. 이 因以名之의 사상은 나아가 모든 言語의 영역에까지 擴大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언어에 대한 宗敎的 世界觀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因以名之의 立場에서는 말과 對象物과의 사이에는 因果關係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어떤 事物이나 槪念을 把握코자 하면 그 말의 緣起를 구명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런 입장에서 제기된 것이 語源緣起說이다.語源緣起說의 구명은 오래된 역사적 사실의 論證에 이용된 예가 가장 많다. 그것은 사실의 근거가 구전되어 오는 동안에 그 원인을 據證할 수 없게 되었거나-卽 未記錄時代의 言語가 사멸되었을 때 이러한 緣起說을 이용함으로서 史實에 어느 정도 구체성을 부여하고 더불어 讀者의 흥미를 이끌려고 한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國語學史란 무엇인가. >1. 國語學史의 槪念우리는 일반적으로 國語學史라 하면 大韓民國의 國語를 연구하는 學文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즉 우리의 생각은 國語學史라고 하면 韓國語를 硏究하는 學文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맞을 수 도 틀릴 수 도 있는 반만 맞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國語學史는 한 마디로 國語를 대상으로 한 硏究의 歷史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國語란 한국어(이하 한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겠지만 일반적으로 韓語라 하면 英語, 日語, 中語와 같이 個別言語의 하나로 간주된다. 이 경우에 韓語는 다른 언어들과 같거나 區別될 수 있는 구조적 여러 特徵을 가진 國語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國語라는 말은 한국이라는 國家的 背景을 전제로 했을 때만이 成立될 수 있다. 그러므로 韓語라는 말은 韓國이라는 國家를 背景으로 하지 않더라도 存在할 수 있으나, 國語라는 말은 韓國이라는 國籍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國語學史를 단순히 韓語學에 대한 歷史를 보는 것에 그친다면 韓語學史 정도의 가치만 가진 硏究가 되겠지만 범위를 확대하여 본다면 단순히 韓語의 歷史만을 硏究한 國語硏究의 歷史에서 벗어나 學史를 보는 사관의 정립과 國語硏究의 發達史까지 아울러 생각하는 학문이 되는 것이다.2. 國語學史의 意義(目的)우리 先祖들의 國語學 硏究의 역사를 심리적 因果關係와 사회적 價値體系에 비추어 記述하는 것이므로 과거의 硏究業績에 대한 검토는 한문적 전통 모색과 국어학의 指標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重要하다 할 수 있다. 선인들의 국어 연구물은 귀중한 민족문화의 유산으로 後學의 硏究는 사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그 시대 국어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는 실증성을 확보할 수 있고, 국어학의 전통을 수립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3. 國語學史가 되기 위한 3대 條件國語學史는 인식 내용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저서나 논문의 창의적인 학설을 다루는 것이 타당하나, 국어 硏究에 대한 저서가 따로 있기 어려웠던 시대나 국어 이론이 체계화되지 못하였던 시대에 대해서는 그 나름대로의 정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國語學史라고 하여 硏究할 가치가 있는 것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그 첫 번째로, 한 學者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학자에 대한 傳奇的 硏究는 출생지, 가족의 계보, 修學, 그 학문의 계통, 친구관계, 취미, 개성, 연구한 일반 업적, 서신 왕래, 그 학풍과 시대적 사조와의 관계 등이 있다 하겠다. 또한 學說로서의 업적내용의 연구는 외래사조와의 관계, 스승-학파간의 상호영향과 차이, 그 시대의 과학 사조에서 받은 영향 여부, 후세에 끼친 학문적 가치 등이 있고, 그 학자의 학설이 실린 文獻의 경우 서지학적 고려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두 번째로, 한 학자만을 대상으로 할 수 없을 때는,같은 시대, 같은 학파의 주장을 모아 시대적 경향을 찾아내어야 하며, 서로 다른 학파의 학설들일 때는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다루어 둘 도는 셋의 시대적 경향을 찾아내어야 바람직 하다고 할 수 있다.세 번째로, 國語學史 이전의 문제를 논의하고자 할 때는,資料(3대조건)가 구비되지 않는 조건에서 國語學史를 논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국어에 대한 漢字借字 表記法(표기법 발견에 노력한 흔적 ; 國語 意識史)에 義擧하여 論하는 것이 일반적이다.4. 國語學史의 記述 態度우리 조상들은 15세기 訓民正音의 創製 이전에는 말만이 존재했었으며, 글을 표기해야 할 때는 중국의 한자를 빌어다 쓰는 형식을 취해왔다. 신라시대, 고려 시대 때에 한자를 우리 표기법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두나 향찰과 같은)들이 있었으나 그것 역시도 한자를 빌어 쓰는 형식이었다. 또한, 15세기에 訓民正音 創製 이후에도 한자를 통한 문자의 기록은 여전하였으며, 19세기 말경 본격적으로 訓民正音을 통한 한글 표기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는 국어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國語學史의 서술의 기점을 15세기 訓民正音의 創製로 할 것인지, 그 이전 국어구조의 특징에 대한 인식인 借字 標記를 통하여 나타나는 시기로 할 것인지, 19세기 말경 서구의 언어학적 방법론이 도입된 때로부터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