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나누기 가 삶에 대한 참된 대화의 기회였나?나의 삶 속에는 나 혼자만 이어서, 나 혼자의 길이기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이들이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랑나누기 의 장소는 봉화산 역 근처에 위치한 신내 요양원 이라는 곳이었다. 나라에서 지정한 생활보호 대상자로서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시는 곳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노인들의 모습이 곧 시간의 지난 후의 나를 비롯한, 누구나 여느 다른 사람의 똑같은 모습일 거란 생각이 드니 가슴 쪽 한켠이 아련해졌다. 그런 약하고 힘없는 분들을 도와드리며 그분들 한분 한분이, 그 존재 자체로서 나의 현재 삶 속에 부정적이고 게으른 나의 태도에 대한 반성과 동시에 감사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촉매제가 되었다. 내가 갇혀있는, 학교 -집-학원 의 갇혀진 삼각구도 틀에서 진정 가치있고 보람된 일을 함으로써 나 스스로 갇혀진 꽉 막힌 생각과 마음에 하나의 트임(?)점이 되는 기회가 되었다.2.가장 중요한 깨달음은?사회에서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분명 하나의 따뜻한 작은 손길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하고 감사해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뻘 정도 밖에 안 되는 나의 작은 심부름에도 기뻐 해주시는 모습에 정말 나 또한 더욱 기뻤다. 현재 나약한 스스로의 모습에 절망하거나 너무 스스로 위축되지 않고 작은 도움이라도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나의 기종의 편견은 씻게 해 주었다. 또 한가지는 나도 누군가에게 순수한 봉사만으로 기쁨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비록 기관에서 지정해준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복도에 걸린 게시판을 꾸미는 일 과 같은 것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따뜻하고 좀더 나은 환경 속에서 미소짓게 해드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3. 현장 체험 후, 교육내용과 과정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말.그리스도교 개론 이란 과목에서 반드시 이수해야만 하는 어떤 의무(?)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필수과정으로 해둔 것은 정말 좋은 부분인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기회를 접함으로써 예전엔 못 느끼고 스쳐 지나갔던 부분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각 봉사기관에서의 직원들 태도였다. 물론 우리와 같이 거의 의무적으로 봉사하러 온 대학생에 대해 선입견이 많겠지만, 지나친 감시와 용역직원을 대하듯 너무나 지시적인 행동들은 순수한 마음에서 봉사하러 간 진실 됨에 상처를 주었다. 따라서 현장체험에서의 지나친 감시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4.삶의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지성인으로서 느끼고 결심한 점은?마지막으로 이 체험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아울러 지성인으로서 느끼고 결심한 점을 말한다면 우선, 이러한 봉사할동이 어느 정도의 제도적으로 안정적으로 구축된 후 그 이후에 여러 단체나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활성화되도록 하여야할 것이다. 단순히 힘들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수발 들어드리고 청소해드리는 것이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 드리는 보람과 삶의 의미를 더욱 충만하게 해 줄 기회를 찾게 해주는 것이다. 얼마 전 종교시간에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라는 영화를 본 일이 있다. 한사람이 두 사람에게만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베풀고 또 그 사람들이 자기 밑으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면 2배, 4배, 8배..씩 모든 사람들이 행복 해 질 수 있다는 줄거리의 영화였다. 과연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는 얼마나 될까...사실 이러한 -누구를 도울 수 있는-기회를 가진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나누기 기회를 스스로 만들고 한번의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정말 성심 성의껏 온 힘을 다 해 사랑나누기를 실천한다면 앞으로의 미래가 절망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양반들의놀이문화과목명:한국의역사와 문화교수님:제출일:학과명:학번:이름:‘놀이’란 단순히 ‘논다..’는 의미가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가장 총체적이고 집약적인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양반들의 문화중 의.식.주 문화중 택일 하려고 했지만,양반들의 의.식.주문화에서는 이미 많은 책과 자료들은 쉽게 접할 수 있고, 교과서에서도 다룬 바가 있어 식상했다. 뭔가 양반들의 다른 면을 좀 더 들여다 보고 싶었다.과연 양반들의 모습은 항상 반듯하고, 정좌하여 글읽기에만 열중하는 모습이 전부일까? 아니면, 밥그릇싸움인 당쟁이나,이권다툼의 모습이 전부일까....놀이란 그 시대의 배경이나, 놀이의 주체자 ,사회 경제의 모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왜 양반들의 놀이등은 찾기 어려운 것일까? 유교사회는 인간에게 외향적인 것보다는 근엄한태도를 요구한 것이 분명하다. 많은 축제들이 2000여 년 전부터 계승되어 오다가 조선조에 한때 제지 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축제라는것,놀이라는 것은 신체를 움직이고,음주가무를 해야하는 것이다. 유교윤리에서 보면 견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양반들 스스로도 지적수준이 낮다는 관점에서 견제 했었기 때문에 더욱 자료가 없지 않았나 추측된다.당시 지배계층 이었던 ‘양반’이란 개념은 무엇이며,놀이의 주체가 대부분 서민이었던 것에 비해 양반들이 즐겼던 놀이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었는지 조사 해 봤다.1)‘양반’에 관해...국왕이 조회(朝會)할 때 남향한 국왕을 중심으로 문반(文班)은 동쪽에, 무반(武班)은 서쪽에 섰는데, 이 두 반열을 양반이라고 하였다. 문반과 무반이 처음으로 구별된 것은 976년(경종 1)에 실시된 전시과(田柴科)에서였다. 이때의 구분은 토지를 지급하기 위하여 정해진 구분으로 다분히 편의적인 것이었다.관제상의 문무 양반체제로 발전하는 것은 995년(성종 14) 고려가 당나라의 문무산계(文武散階) 제도를 받아들이면서이다. 이때의 문반은 정치, 무반은 군사를 담당하고 있었을 뿐 문무반(文武班)짐은 물론, 수족과 같은 노비를 대대로 전할 수 잇는 노비세전(奴婢世傳)이 보장되었고, 자녀균분제(子女均分制)에 의하여 가산(家産)도 물려줄 수 있었다.한편 양반관료체제가 점차 정비되어감에 따라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가문까지도 가부장적(家父長的) 가족제도 및 친족공동체적인 사회의 영향으로 양반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으로 양반계층은 음직(蔭職)과 과거를 통한 관직의 세전(世傳), 양반계층간의 폐쇄적 혼인 등을 통하여 그 세력 기반을 굳힐 수 있었으며, 본래 문반과 무반을 뜻하던 양반의 개념은 점차 사회 지배층을 뜻하는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보통 유학(儒學)을 업(業)으로 하고 예를 숭상하였으며 국가로부터 여러 가지 특권을 받았다.2)양반들이 즐기던 놀이놀이란 말은 놀다의 어간 '놀' 에 명사형 어미 '이' 가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노름 놀음 노래 등 '놀' 자 계열의 다른 파생어들과 마찬가지로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즐거움을 얻기 위한 자발적 참여의 의미를 담고 있다.땅따먹기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돌차기, 말타기 다방구 숨바꼭질 두꺼비집놀이…. 적어도 40 대 이상이라면 이름만으로도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어린시절의 놀이들이다. 딱히 특별한 도구가 필요없는, 같이 놀 친구 몇만있으면 족히 한나절을 즐길 수 있었던 이들 놀이에는 우리끼리만 통용되는 무언의 규칙과 지난 시절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다.이를테면 서너명의 아이들이 짝을 지어 땅바닥에 적당한 크기의 원이나 네모를 그리고,각기한모퉁이에 자기집을 정한 다음 손가락으로 돌을 튀겨 세번 안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하면 그 땅을 차지하는 땅따먹기에는 농경민족의 토지 확대 열망이 담겨 있다.그러나 이 놀이는 도시화 과정에서 아스팔트가 맨땅을 뒤덮어버린 요즘엔 농촌에서조차 흔적을 찾기 어렵다.정 1 품에서 종 9 품에 이르는 관직도를 그려놓고 주사위를 던져 그 점수만큼 앞으로 나가는종경도(從卿圖)놀이도 마찬가지. 양반들의 벼슬에 대한 욕구를 말을 나누어 가진다. 문과는 붉은말, 무과는 푸른말, 남행은 누른말, 군졸은 희말 그리고 은일은 누른 바탕에 붉은 테를 두른다.두번째 말을 굴린 사람은 그 숫자에 따라 자기출신의 칸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이 다음부터는 말을 굴려서 누가 빨리 높은 자리(문과출신은 영의정, 무과출신은 도원수)에 올라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 놀이에는 파직이나 사약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어 변화와 긴장을 더하게 된다.*화전놀이*(1) 개관대부분의 전통놀이가 세시명절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화전놀이 역시 삼월 삼짇날과 관련이 된다. 이 날은 중구(重九, 음력9월 9일)에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옛집으로 찾아온다는 호시절인 춘삼월에 드는 명절이다.산에는 봄을 알리는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나비들과 벌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집안 식구끼리 혹은 가까운 사람끼리 모여 하루를 즐겼다. 이날 남자들은 자연 풍경을 주제로 하여 시를 짓거나 노래를 읊기도 하였으며, 여자들은 들에 나가 음식준비를 하면서 머리를 감기도 하였다.이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소담해지고 기름기가 돈다고 하였다. 이 때 음식은 진달래꽃을 뜯어다 쌀가루에 반죽하고 참기름을 발라 지져먹는 것인데, 이를 화전(花煎)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화전놀이란 꽃 지짐을 지져먹는 들놀이를 일컫는 말이다.이 화전놀이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놀이지만, 주로 한강 이남에서 성행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남북이 긴 우리 나라의 지형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음력 3월이면 중?남부지방에 봄이 훨씬 더 완연하기 때문이다.(2) 내용화전놀이는 보통 꽃놀이로 불리기도 하는데, 봄철에 친지들 혹은 친구들끼리 경치 좋은 산이나 물가에 가서 봄의 흥취를 즐기며 춤과 노래로 하루를 즐기는 놀이를 가리키는 까닭이다 오늘날로 보자면 야유회에 가까운 성격의 놀이이다. 특히 여성들은 그 동안 규중(閨中)에 갇혀 집안 일에 골몰하던 것에서 잠시 벗어나 인근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풍물을 감상하며 쌓인 회포를 풀었다.이 있다. 서울지방에서 3월이면 버드나무와 꽃들이 만개하여, 화창한 날을 택해 친척이 나 친구들끼리 모여 들로 나가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겼다. 《열양세시기 》에는 남산의 잠두 (蠶頭)와 북한산의 필운대, 그리고 세심대가 놀이하는 이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되어 있다.(4) 화전놀이의 과정조선시대 양반 부녀자들에게 가장 기품있고 풍류적인 놀이는 역시 화전놀이였다. 양가 댁 규중 부녀자들이 청명절을 전후하여 들놀이를 하면서 노래한 것으로 조선 여인의 풍류노래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화전가(花煎歌)이다.대개는 화전놀이에서 돌아와 그 날의 흥취와 감회를 오래도록 남겨두기 위해서 짓는 것이 보통이다. 이 화전가에 읊어지는 내용으로는 경승지의 풍물과 가문법도, 여성들의 고달픈 삶에 대한 탄식 등이 주를 차지한다.때로는 화전놀이의 전체 과정이 나타나 있기도 한데, 화전가에 나타난 놀이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놀이에 대한 공론(公論) → 택일 → 통문 → (시)부모님 승낙 → 준비(음식) → 몸치장 → 나들이 → 화전굽기 → 유흥 → 귀가a. 놀이 공론화전가에 나타난 바를 보면 화전놀이를 계획하는 과정부터 매우 복잡하고도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그 속에는 시집살이에 묶인 여성들의 자유롭지 못한 상황과 그러한 삶의 조건에 대한 여성들의 안타까움을 엿 볼 수 있었다.그리고 화전놀이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삶의 활력을 주었던 놀이였던가를 알 수 있다.… … … … …… …… …… …… …… / 가소롭다 가소롭다 여자일신 가소롭다규중에 깊이 묻힌 여자유행 같을소냐 / 우리동류 서로 만나 한번놀기 어렵거던무심하신 남자들아 우리말좀 들어보소 / 팔자좋은 남자들이 부럽고도 애닯으다… … … … …… …… …… …… ……규중 안 여자라도 이리 놀 줄 알건마는 / 남자놀음 열 가지에 한가지도 못하오니가소로운 여자신세 어리고도 어린 마음 / 그 아니 애닯은가 애닯고도 애닯도다규중이 깊다 한들 몇 길이나 깊었던고 / 십리출입 오리출입 마음대로 어이하리친구고 사군자와 봉제사 접빈객에 무날에 / 화전 가자 통문 오니 명령을 나리시와부디허락 하옵소서 부모님 하는 말씀 / 효녀로다 너의 말이 백사순종 모든 행실허락 않고 어찌하리e.음식 준비허락이 떨어진 후 화전놀이 날이 올 때까지 설렘과 기다림 속에서 여러 가지 놀이 준비를 하 게 된다. 집집마다 쌀을 거둬 떡을 하고 묵고 쑤고, 화전을 부칠 때 쓸 밀가루나 파, 기름 등을 준비해 둔다.f.몸치장마침내 화전놀이 날이 왔다. 일년에 한 번 주어지는 나들이 길에 단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얼굴을 다듬고 화장을 하며 입고 갈 옷과 장식을 고르는 모습이 화전가 속에 잘 나타나 있어 여성들의 들뜬 심정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의 봄나들이 때 보여지는 여성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g.나들이막상 들로 나가 친구들과 이웃을 만나게 되어 들뜬 마음으로 놀이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가까운 곳의 푸른 산아래 시냇가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 때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북과 같은 악기도 가져가서 풍물을 치면서 흥겨움 속에서 걸어간다.h. 화전 굽기광주리를 가지고 편을 갈라 꽃잎을 따오면 둥글거나 네모진 모양으로 밀가루에 파를 섞어 굽다가 그 위에 진달래(두견화)를 보기 좋게 무늬처럼 새겨 넣는다. 먹다가 남은 떡과 전은 집에 있는 부모와 어린 동생들, 혹은 남몰래 남편을 위해서 싸가기도 한다.i. 유흥먹는 일이 끝이 나면 꽃구경을 하기도 하고 꽃을 따 머리에 꽂거나 입에 물어보기도 한다. 그 리고 산유화, 화초가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글을 하는 사람들은 지필묵을 가져가서 가사를 짓고 서로 평을 하며 시회(詩會)를 열기도 한다.j. 귀가해가 서산에 넘어가고 달이 솟을 무렵까지 하루종일 놀다가 드디어 산천과 친구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다음 해를 다시 기약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며 귀가하게 된다.*선유줄불놀이*(1) 선유줄불놀이의 유래하회 선유줄불놀이의 기원은 불확실하다. 구전이나 기록물에 의하면 하회의 선유줄불놀이는 서애(류성룡)선생의 부친인 관찰사 류중영 공 이전부터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