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사랑 이란 무엇일까? 사랑 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면, 1.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 2. 남녀간에 정을 들여 애틋이 그리는 일, 또는 그러한 관계나 상대, 3.동정(同情)하여 너그럽게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 4.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소중히 여김, 또는 그 마음 등의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야후, 국어사전이처럼 사랑 이란 두 음절의 짧은 단어에는 남녀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함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랑 의 가장 큰 의미라고 한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간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동성간의 사랑 등을 들 수 있다.다음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슈를 낳았던 동성애의 사랑을 다룬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와 이은채의 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을 통해 영화와 시에 나오는 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또,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번지점프를 하다 - 동성애의 사랑뉴질랜드의 길고 푸르른 계곡을 날아가고 있는 듯한 장면에서 먼 기억을 되짚어가는 느낌을 주며 이 영화는 시작된다. 1983년 여름....첫 눈에 반하는 일 따위는 믿지 않는 국문학과 82학번 서인우는 적극적이고 사랑스런 여자 인태희를 만난다. 비 오는 날 자신의 우산 속으로 당돌하게 뛰어들어온 여자 인태희... 비에 젖은 검은 머리,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당돌한 말투까지 인우의 마음은 온통 그녀로 가득 차 버린다. 그녀의 존재로 가슴 설레하고, 그녀의 손이 닿은 물건이면 무엇이든 소중하게 간직하며 사랑은 무르익어 간다. 험한 소리를 퍼부으며 다시는 안볼것 같이 뒤돌아 가다가도 금세 그리움에 애를 태우는 그들에게 군입대라는 짧은 이별의 순간이 왔다. 인우가 군입대하던 날 태희는 나타나지 않고 서로에게 짧은 이별이라 위로했던 그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지는데......2000년 봄. 사랑의 추억만을 간직한 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인우....이제 그는 어엿한 가장이고 현빈)을 만나게 된다. 아직도 태희를 잊지 못하는 그의 머리 위로 다시 한번 쏟아지는 감정의 소낙비....17년 전, 소나기가 쏟아지던 그 여름 자신의 우산 속에 갑작스레 뛰어들었던 태희처럼, 다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람. 그녀처럼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버릇이 있고,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고,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에게서 인우는 다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젓가락은 ㅅ받침인데 숟가락은 혼자 ㄷ받침이야?”라고 묻는 태희에게 “하나 더 있어...숟갈!”그리고 터져나오는 태희의 웃음, “태희씨에게 마법을 걸었어요...! 물건 잡을때 새끼 손가락을 펴고 잡으라고” 그리고...그 마법에 걸린 태희, 보고 싶고 말을 걸고 싶어 뛰어나가서 태희가 가는 길을 막아보지만 할말을 잃고 결국 풀어진 그녀의 운동화 끈만 묶어주고 돌아서는 인우, 지리산 꼭대기에 올랐을때 절벽아래로 뛰어내려보고 싶다고 뛰어내려도 끝이 아닐것 같다고 말하는 태희를 사랑하는 인우,“내가 다시 태어나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바로 너야.”라고 영원을 맹세하는 인우..... 이런 모습들은 어딘가 유치하지만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어쩌면 그건 그때의 평범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였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러브스토리’,‘로마의 휴일’,‘연인 처럼 지고 지순하거나, 너무 안타깝거나, 그립거나, 한마디로 영화같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사랑만큼 평범한 사랑이 또 있을까? 만날때의 안타까움, 다툼, 사랑의 확인, 영원한 사랑의 맹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지내는 사람의 기억 저편에 묻어있는 깊은 사랑.....아주 평범함 속에 포장된 일상이 실은, 평범도 아니고, 운명이라는 것. 그렇기에 다음 생에까지 이어지는 깊은 사랑과 그 사랑의 소품안에 담긴 깊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추억. 사라지지 않는 추억이 이어주는 지난 생의 사랑과 새로 시작해야 하는 사랑.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요. 그냥 같이 지내다 보니...정이 들어서...”라고 말하는 우리 주변의 그런 평범한 사랑마저도, 실은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것을...번지점프가 긴장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처럼...그리고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이 그렇다는 것을. 그리곤, 다시 평범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처럼 사랑도 다시 그렇게 일상 속에서 운명의 모습을 감춘다는 것을 깨닫는다.사람들은 첫사랑, 아니면 자신이 했던 사랑, 혹은 현재 하고있는 사랑에게 운명적 이란 말을 붙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만큼 그 사랑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창하게 불교의 윤회설을 말하지 않아도, 그런 사상이 별로 없는 외국에서 마저도 소울메이트란 단어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소울메이트{) 언제 어디에서 만나든지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을 이어가는 영혼의 동반자, 그말에 가장 맞는 우리말이 아마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다.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항상 만나는 인연. 그 얼마나 길고 긴 세월간의 사랑일까...떠나기 전 인우에게 남긴 태희의 말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야 돼....” 그렇게 기다린 인우에게 결국, 17년의 시간이 흐른 후 현빈의 모습으로 그 장소, 그 마음 그대로 되돌아온 태희. 그렇게 지난 생과 현재의 생의 기억이 공존하는 그들의 깊은 사랑...태희에게는 두번 생 동안의 사랑, 인우에게는 한번의 생 동안의 사랑...그렇게 깊은 그들의 사랑의 결말은 영화의 결말속에 ‘번지점프’처럼 떨어져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거나, 아니면 바닥에 닿아 내리는 것처럼 되어버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천 번의 생 중 몇번을 만나 사랑을 했는지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의 엔딩 장면을 보고 선뜻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연애시절 태희가 뉴질랜드로 번지점프를 하러가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인우는 현빈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가고..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거라고 말한 현빈, 그 속의 태희와 손을 꼭잡고 뛰어내린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다시 만나 사랑하기랑과 동성간의 사랑 두 가지를 모두 엿볼 수 있다.과거 인우와 태희의 사랑과 현재 인우와 현빈의 사랑, 물론 이 모든 사랑이 그들에게는 하나 이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이성간의 사랑은 이쁘고 진정한 사랑이라는 시선을 받는 반면에 동성간의 사랑은 쉽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공감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이성간의 사랑이든 동성간의 사랑이든 사랑은 다 똑같은 것인데 말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될 수 도 있고 여러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성의 사람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랑에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성을 사랑하건 동성을 사랑하건 그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은 사랑이라 할 수 있다.2.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은채-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가슴속 저 깊은 곳에아름다운 지옥 하나를 만드는 일입니다.그 지옥속으로아무런 망설임없이스스로 뚜벅뚜벅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세상 어디서도그를 찾을 수 없는 날들이면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오고베개를 아무리 고쳐 베어도결코 잠들 수 없는 숱한 밤들,나의 살아있음 조차 믿기 어려워지는그 지옥같은 순간들을기꺼이 견뎌내는 것입니다.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것은단 하나의 그리움,단 하나의 기다림,가슴속에 신앙처럼 품고그 신앙을 위해두려움 없는 순교,눈이 시리도록 시퍼런 칼날,그 외로움 아래에나의 떨리는 목을내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바람부는 벌판에홀로 서 있어야하는 일입니다.어차피 말로는 다 못할 얘기들,내 안에 아무도 몰래 차곡차곡 쌓으며그 벌판에서외로움으로 혼자 펄럭이며제 상처,제 손으로 싸매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그가 있는 이 세상이 참 눈물나게 고마운그런 일입니다.외로워서,그 외로움 덜어보려고누군가를 사랑하려 한다면그건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그런 사람이 있다면그는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외롭게 하는지,얼마나 속울음 울게 하는지,아무 것도 모르는어쩌면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이 지상에 허락된가장 아름다운 형벌,사랑입니다.어떤 시를 감상로 이은채님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다. 처음 감상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선을 한번에 끌어당긴 이 시를 그냥 넘어 갈 수 없어서 이렇게 쓰게 되었다.이 시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아름다운 지옥하나를 만드는 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이 말이 사랑 이라는 정의의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서는 말이다. 이성을 사랑하든 동성을 사랑하든 사랑을 하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일이면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그냥 지옥이 아닌 아름다운 지옥을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면 정말 어떠한 고통이 기다린다 해도 뚜벅뚜벅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면 신앙처럼 품고 그 사랑을 위해 두려움 없이 순교하는 것, 외로움을 견딜 줄 알고 자신의 상처를 제 손으로 싸매면서도 그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 이란 것을 해보진 않았지만 사랑 은 생각만으로도 가슴한 구석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아무리 지옥과 같은 것이라도 말이다.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마지막의 이 지상에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형벌, 사랑입니다 이다. 사랑이 비록 형벌처럼 힘들진 몰라도 아름답다는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사랑이란 감정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정의 내리긴 힘들 것이다. 다만 각자 개개인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Ⅲ. 결론 - 두 작품의 비교처음으로 살펴본 번지점프를 하다 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전혀 비슷한 것 같지 않지만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번지 점프를 하다 에서는 선생님가 제자의 동성애적 사랑을 묘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동성애라고 하면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것이 정확한 정의는 아니다. 동성애자는 이성보다는 동성에게 정서적, 애정적, 사회적으로 애착관계를 갖고, 성적인 매력이나 욕구를 느끼는
☆ 영화제목 : 연애소설 ☆감 독 : 이한제작년도 : 2002년주 연 : 차태현, 손예진, 이은주≪ 인상깊었던 영화 장면 ≫영화의 후반부에 경희가 죽은 듯 조용히 누워있는 장면에서 수인이가 경희의 코에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손을 대보고 숨을 쉬지 않는걸 발견한 후 수인의 옆에 누워 함께 흰 천을 씌우고 난 후, 장면이 바뀌고 경희의 영정 앞에서 멍하니 쳐다보다 수인이가 벽에 걸린 시계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다가 가지고 내려와서 시계 시계뚜껑을 열려다 안되니 시계의 유리를 깨고 시계바늘을 과거로 계속해서 돌리는 장면. 이 장면은 주인공들의 대사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상과 효과음, 배경음악으로 그 장면을 잘 표현하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수인이, 이때는 카메라가 아래에 있는 law angle shut 이다. 수인을 걱정하는 수인을 아래에서 찍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카메라가 수인의 얼굴에서 수인의 손을 따라 서서히 내려가서 경희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손이 떨리다가, 수인이가 이미 숨을 멈춘 경희 옆에 눕는 것으로 화면이 바뀐다. 여기서는 아직 친구가 자신을 떠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예전과 똑같이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 카메라는 high angle shut으로 높게 위치해 있고, 주인공들을 비추는데 카메라가 위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안타깝고 슬픈 듯 한 느낌을 준다.카메라는 그들이 누워있는 곳, 즉 천장에서 아래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수인이가 서서히 흰 천을 끌어올리는 장면을 클로즈 업 하고 화면 전체가 흰 천으로 뒤덮인다. 화면전체가 흰 천으로 꽉 차면서 다시 한 번 경희의 죽음을 알리는 듯하다.그리고 화면이 완전히 바뀌어서 경희의 영정과 그 옆의 꽃들을 비추어 주는데 이때는 카메라와 눈높이가 같은 일반적인 쇼트로 eye level shut이다. 경희의 영정을 비춤으로써 경희가 죽었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정을 비추고 몇 초 흐른 뒤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망연자실해 있는 수인이 얼굴로 바뀐다. 이때도 eye level shut 이 쓰인다. 이 때 주변, 즉 뒤의 배경들도 함께 찍히는데 뚜렷하게 가 아닌 흐릿하게 처리해서 수인의 슬픈 표정에 집중하도록 만든다.그러다가 화면이 바뀌고 카메라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는 수인의 뒷모습을 찍고 있는데 이 때 시계는 4시 19분여를 가리키고 수인이가 살짝 시계를 올려다보는 각도로 카메라가 눈높이보다는 살짝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찍고 있다.손을 뻗어 시계를 내리고 시계 내릴 때 수인이가 시계를 내려서 앉는 듯 화면은 정지해 있고 수인이의 모습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다 화면에서 사라지고 텅 빈 벽을 2초 정도 보여준다. 수인이가 앉은 모습이 오른쪽에 보이고 멀리 영정이 보이고 뒤 쪽 화면으로는 상가 집의 흔한 풍경, 음식이 상의 여기저기 차려져 있고 널려져있는 모습이 전체 쇼트로 보인다. 즉 멀리 찍은 long shut으로 여러 가지가 함께 찍혀서 정보가 풍부하다.환자복위에 분홍 가디건을 입은 수인은 손으로 시계 뚜껑을 열려하다가 열리지 않자 손으로 유리를 깬다. 여기에서는 수인의 절실한 감정이 드러나는 듯하다. 열려다 뚜껑이 열리지 않자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채 손으로 유리를 깨니 말이다. 유리를 깨고 대충 피묻은 손으로 피묻은 유리 조각을 몇 조각 집어낸다. 이때까지는 long shut으로 전체를 다 보여준다. 여기서 맨 손으로 유리 깨는 장면이 효과음으로 쨍쨍 크게 들린다. 이 부분이 가장 긴 쇼트 인 것 같다.그 뒤 바로 수인의 얼굴로 카메라가 클로즈 업 되고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눈물은 흘리는 자국이 선명하고, 그 동안 처음부터(내가 언급한 장면부터) 흘러 나오 던 잔잔하고 슬프면서 느리던 배경화면은 점차 커진다. 클로즈 업 함으로써 수인이의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깨진 시계로 클로즈 업 되면서 피 흘리는 손과 피 묻은 유리 조각들이 화면에 보이고 배경음악은 최대가 된다. 이 때 시계로 클로즈 업 될 때 바로 장면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수인의 얼굴에 살짝 시계가 비추면서 자연스레 화면이 옮겨간다. 갑자기 화면이 확 바뀌는 것보다 자연스레 겹치면서 화면이 옮겨가는 것은 무언가 여운을 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피 묻은 손으로 시계를 계속해서 과거로 돌리는 장면을 카메라가 바로 위에서 바라보며 클로즈 업 해서 찍는다.돌리는 손이 계속 가까이 클로즈 업 되다가 다음 화면과 겹치면서 장면이 바뀐다. 계속해서 피가 흘르는데도 불구하고 아픔도 잊은 채 클로즈 업 돼서 시계바늘을 전 시간으로 돌리는 장면은 친구가 살아있는 그 시간으로 시간을 되돌리려는 수인이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전체적인 화면의 색깔은 아무래도 슬픈 장면이라 그런지 밝지는 않고 어둡다. 어두운 조명을 사용한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가 암흑같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 살짝 명암을 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Ⅰ. 서론 - 사형이란 무엇인가?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사라져갔다. 이들 가운데에는 나쁜 범죄자들이 상당수였겠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사형 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사형으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사실에서 이들을 사형시킨 법이 추구하는 '정의'라는 것이 보편적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사형을 형법적으로 정의하면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 사회적 존재를 영구적으로 말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형벌'이다. 즉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므로 이를 생명형이라고 하고 형벌의 성질상 가장 중한 형벌이므로 이를 극형이라고도 한다.형벌은 국가를 지키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정한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그러한 범죄에 대하여 국가가 가하는 벌칙이다. 형벌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자유형이다. 형벌 가운데 사형은 국가가 제도적으로 합법적으로 시행하는 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교도소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자유형이 없었던 시대에 사형은 하나의 극단적 형벌로서의 기능을 했다. 그러나 무기자유형이 현실적으로 실행되고 있고, 자유형으로서 범죄억제가 가능한 이상 사형은 무해화의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없다.아래에서는 우리 나라의 사형 제도, 각 국의 상황, 존치론과 폐지론, 관련법규정 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우리 나라의 사형제도우리 나라도 국가가 성립된 고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 사형은 일반적인 형벌중의 하나로 많은 범죄가 사형에 해당되었다. 특히 고려 이후에는 중국의 법을 받아들여 중국과 유사한 형벌제도를 채택하고 있었으며, 조선시대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형은 일반적으로 공개적으로 시행되었으며, 반역죄와 같은 경우 3족을 멸하는 등 연대형벌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는 통치질서에 도전하는 죄와 살인죄 등 많은 범죄들이 있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사형이 매우 많이 시행된 것은하는 범죄도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형방법도 다른 방법은 없어지고 교수형만 남게 되었으며, 사형집행장소도 공개된 곳이 아닌 비공개로 이루어졌으며, 연좌제 역시 폐지되었다.이와 같이 사형이 완화되기는 했으나 일제시대에는 식민지배하에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사형 당했다. 오늘날과 같은 체제를 갖춘 것은 해방 이후이다. 1997년 대량으로 사형이 집행된 이후 1998년부터는 현재까지 사형집행이 없었다.시기별로 볼 때 가장 많이 집행된 시기는 박정희 정부 때이며, 특히 유신을 선포한 후인 1970년대에 사형이 많이 집행되었다. 전반적인 추이를 보면 70년대 전반에 사형집행건수가 가장 높았으며, 그 뒤 대체로 집행건수가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10년 단위로 보더라도 사형의 집행건수는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며, 1998년 이후에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형의 선고는 계속되어 현재 사형이 확정된 후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가 50여명에 이르고 있다.사형집행을 시기별로 볼 때 1987년을 전후하여 사형선고 사건의 분포가 매우 달라진다. 이것을 일반범과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정치범으로 나누면, 정치범에 대한 사형선고건수가 70년대까지는 상당한 비율을 점하고 있으나 80년대 초반부터 줄어들었으며, 1991년 이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경우가 없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보안법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여야 한다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이러한 집행은 위협세력을 제거하는 한편, 집권자에게 불리한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국민에 대한 위협을 가함으로써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는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집권한 신 군부세력은 김대중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는 등, 시대마다 정치적 목적으로 사형제도를 이용한 것이 분명한 사건들이 있다.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이러한 정치적 목적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경을 상실당한 살인자를 처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현재로도 사형을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형을 폐지한 국가에서도 중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을 위하여는 사형을 부활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다. 사형존치론은 사형이 응보와 위하라는 형벌의 목적에 의하여 정당화되며, 일반의 법의식에 의하여 자명하고도 필요한 형벌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을 이론적 근거로 한다.1) 사형이 위하적 효과를 가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생명은 인간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것이므로 사형의 예고는 범죄에 대한 강력한 억제력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형의 위하력은 통계에 의하여 밝혀지지 않는다고 하여 부정될 성질이 아니다.2) 형벌의 본질이 응보에 있는 이상 극악한 범죄인에게는 사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사형은 특히 공격적인 범죄에 대한 사회의 도덕적 분노의 표현이며 이러한 기능은 법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회의 안정성을 중진함에 있어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사형에 의하여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극악한 범죄에 대하여 사형을 과하는 것은 적절하고 필요한 형벌이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나. 폐지론- 사형폐지론을 최초로 주장한 학자는 1764년 "범죄와 형벌" 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Ancien Regime의 잔혹한 형벌을 비난하고 사형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한 Beccaria이다. Beccaria는 범죄인이나 공중에게 위하가 될 수 있는 것은 형벌의 잔혹 엄격성이 아니라 그 확실성에 있다고 하고, 사형은 인간본성에 따라 곧 잊혀질 것을 방지할 수 없고 위하력에 있어서도 무기형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형은 배척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도 사형폐지론은 사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과 일치할 수 없고, 정책적으로도 합리적인 형벌이 될 수 없다는 두가지 측면에서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되고 있다.1) 사형은 야만적이고 잔혹한 형벌이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전제가 되는 생명이 위하력을 가졌다면 사형을 폐지한 국가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가 폐지전 또는 존치하고 있는 국가나 주에 비하여 많이 발생하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스위스 및 미국 등 사형을 폐지한 어떤 국가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3. 관련 법 규정..판례.- 사형이 과연 필요하고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규정에 합치하는가?이 점에 대한 우리 판례의 태도는 몇 십년간 변함이 없다...지난 반세기 동안 법원은 사형에 대한 합헌론으로만 시종해 왔다. 헌법재판소는 그보다 나아갔지만 역시 합헌론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즉 헌재결 1996. 11. 28.95헌바1(형법 제 250조 등 위헌소원) 사건으로 헌법재판관들은 7인이 다수의견으로 사형의 합헌을 선언했으며, 2인이 위헌의견을 소수 의견으로 남겼다.한 사람의 생명은 전 지구보다 무겁고 또 귀중하고도 엄숙한 것이며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존귀한 생명을 잃게 하는 사형은 형벌 중에서도 냉혹한 형벌임은 틀림없다(대판 1963. 2. 28 62도241)인도적 종교적 견지엣 존귀한 생명을 빼앗아 가는 사형제도는 모름지기 피해야 할 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범죄로 인하여 침해되는 또 다른 귀중한 생명을 외면할 수 없고 사회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하여 국가의 형사 정책상 사형 제도를 존치하는 것도 정당하게 긍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므로...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헌법에 위반되는 조문이라고 할 수 없다(대판 1987. 9. 8, 87도 1258)이 판례는 사형의 일반예방적 효과에 대하여서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사형선고를 하기 위하여서는 罪責의 중대성·죄형의 균형성·일반예방적 차원에서의 불가피성 등의 요청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형을 선택할 경우는 범행의 동기·양태·범행의 수단·잔악성·결과의 중대성·피해자의 수·피해감정·범인의 연령·전과범행 속의 정황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죄책이 심히 중대하고 죄형의 균형이나 범죄의 일반예방적 견지안 세계 31개국에서 총 1,813명 이상의 사형이 집행되었고, 63개국에서 총 3,857명 이상이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비록 1998년의 2,258명에 비해 사형집행의 수치가 감소되기는 하였으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1999년 한해동안 사형집행이 급격히 증가되었다.그러나 전체적인 국제추세는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1999년 한해동안 동티모르와 투르크메니탄, 우크라이나 그리고 영국령 버뮤다는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하였고, 라트비아는 평화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하였다. 그리고 러시아 연방의 옐친 대통령은 1999년 6월에 700건 이상의 사형 선고를 감형하였으며, 2000년 3월 필리핀은 연말까지 모든 사형집행을 유보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이에 따라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국가나 영토(여기에서 영토는 형식적으로는 독립국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독립하여 운영되는 나라로 편의상 국가로 표시한다)는 73개국이며 일반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13개국, 제도는 있으나 최근 10년 이상 선고, 집행을 하지 않은 국가는 22개국으로 실제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총 108개국에 이르고 있다.여전히 사형을 존치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을 비롯하여 총 87개국이지만 매년 실제 집행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형은 중국, 미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집행되고 있다.이 밖에 특정 부류의 사람에 대한 사형의 금지를 선언하고 있는 국제조약도 있다. 국제인권협약은 범죄 당시 18세 미만인 사람에게 사형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미주인권협약 그리고 아동권리협약 모두가 이러한 금지규정을 명시하고 있다.5. 사형에 대한 각 기관의 입장가. 법원의 입장- 대법원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절대적 존엄은 인정하지만, 우리 나라의 실정과 도덕적 감정 그리고 법문에 나타난 표현 등을 고려해 볼 때 사형제도의 폐지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검토해야 하지만 아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