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들어가며이라는 소설은 이번에 처음으로 접한 것이어서 나름대로 어떤 소설일지를 기대하며 첫 장을 넘겼다. 제일 첫 부분에 빨래터에서의 대화를 읽을 때에는 등장인물도 많은데다가 대화의 어투도 설고 상황파악도 잘 되지 않아서 좀 지루했다. 그래도 그냥 계속 읽다보니 어느 정도 그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암만 봐도 주인공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이발소 소년 재봉이의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되어서 재봉이가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뒷이야기에서는 또 달랐다. 차츰차츰 읽어나가다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천변에 사는 모든 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소설이 50개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있을 뿐, 일정한 스토리가 없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처음 접해보는 형태의 소설이어서 조금 어색했지만 읽다보니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천변풍경 읽어나가기는 읽는데 중간에 문장의 끊어짐이 드물었다. 지문이 마침표로 끝나지 않은 채 곧장 대화로 넘어가고 또 마침표로 끝나지 않은 채 다음 사람의 말로 넘어간다. 사실 이를 통해서 어떠한 효과를 노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그냥 영화나 드라마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느꼈고, 빨래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 대화를 통해서 잘 드러난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은 소년의 시각을 중심으로 천변을 관찰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소년의 시점을 빌림으로써 일반적인 전지적 시점과는 색다르게 서술한 것이 독특했다. 재봉이의 관찰로 천변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에 따른 이야기를 조금씩 제시하여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들에 대한 소개를 하는데, 그러한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소년의 시선과 생각에 조금씩 담겨져 있다고 느껴졌다. 소년이 시선을 돌리며 이곳저곳을 관찰하는 것이 흡사 카메라를 돌리며 화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에 나오는 창수는 도시의 생활을 거리감 있게 관찰하는 이발소의 재봉이와는 다른 캐릭터였다. 창수는 어려운 시골살림을 하는 가족과 헤어져 한약국집의 사환으로 일하게 된다. 시골에서 막 올라온 세상물정 잘 모르고 순박하게 묘사된 창수는 금방 서울 생활에 적응하고 동화하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돈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도 별 불만 없이 이발소에서의 일을 계속하는 재봉이와는 달리 창수는 잔소리 많고 시키는 일도 많으면서 돈은 조금밖에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옮길 궁리나 하고, 일도 꾀를 부리며 열심히 하지 않는다. 빠르게 물질주의에 물들고 도시의 오락에 적응하는 창수의 모습은 재봉이의 시각에 의해서 약간 비판적으로 보여진다. 결국 창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놀기 좋고 돈 많이 주는 구락부에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이 소설에서는 여성들의 삶도 캐릭터에 따라서 비교되고 있다. 가장 온건하고 평안한 삶을 사는 한약국집 며느리와 인기 좋은 카페 여급에서 부잣집 맏며느리로 신분이 격상되지만 남편의 변심과 시댁 식구들의 냉대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는 하나코, 유한계급인 민 주사의 첩으로 간교하게 민 주사에게 돈을 뜯어내며 몰래 젊은 학생과 놀아나는 관철댁, 제대로 된 결혼 생활도 못 해보고 어린 남편이 죽어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시어머니의 학대를 받다가 사기꾼에 의해 서울까지 오게 되는 금순이, 편모슬하에서 예쁘고 착하게 자라지만 시집을 잘못 가서 바람만 피는 남편과 고된 시집살이만 하게 되다가 결국엔 남편에 의해 쫓겨나는 이쁜이, 아내에게 손찌검하는 버릇을 지닌 남편을 피해서 서울로 올라온 만돌 어멈, 그리고 비록 가난하긴 매한가지인 카페 여급이지만 화통하고 주위 사람을 신경써주고 돌봐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기미코. 그 밖에도 여러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통하여 도시 여성의 각기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 , 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세 여인의 사건을 나란히 보여 주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서로 다른 한약국집 며느리, 하나코, 관철댁의 삶을 비교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에 의해 고통을 겪는다. 민 주사와 같이 늘 주색과 노름에 골몰하는 남성상도 여럿 등장한다.천변이라는 공간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경제적인 면에서도 서로 비교되고 있다. 점룡이네, 이쁜이네, 만돌이네, 금순이, 하나코와 기미코 등 가난하고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는 이들은 비록 생활은 힘들지만 서로 의지하고 걱정하며 인정을 잃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약국집 주인, 종로은방 주인, 포목전 주인, 민 주사 등은 권력과 재화를 지니어 유복한 삶을 누리지만 허위적이고 속물적인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도시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 세련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지만, 누리는 자 곁에는 가난하고 비참한 자도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도시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빈부의 대조는 타락과 폭력, 소외의 그늘을 만든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로 들어온 인물들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부유한 자들을 바라보며 뒤에서 비난 섞인 소문을 전달하는 것밖에 없지만 부유한 이들의 노름과 주색, 더 안정된 생활을 원하는 욕망은 끝없이 이어진다.하지만 작가는 이를 통한 인물들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고 그저 한 공간 안에서 그들 사이의 줄어들지 않는 거리를 오히려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민 주사와 그의 첩 관철댁, 관철댁의 정부인 학생의 관계에서 도덕적인 타락의 문제가 다루어지기보다는 이들의 이해관계와 약점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희극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며 이를 비판어린 시각이 아닌 따뜻한 웃음과 인정으로 읽어나갈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유머에 기반한 미적 태도가 이 소설의 중심 정조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소설에서 쓰인 카메라 기법읽으면서 카메라 기법을 유심히 보라시던 교수님 말씀에 나름대로 신경 써서 보았지만 사실 그냥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왜 카메라 기법인지 어떻게 쓰여서 그런 효과를 나타내는 것인지 정확히 와 닿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내가 궁금해 하던 것을 설명해 놓은 글이 있어 여기에 인용하였다.이 소설은 중심 플롯이나 주인공 없이 개별 삽화가 모자이크 방식으로 짜여진 작품이다. 한 권의 소설에 70여명이나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어 넣은 것과, 시점의 다양한 이동을 통해 작가의 주관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객관적인 관찰의 방식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작가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첫 번째 장소는 바로 이 빨래터이다. 빨래터에 나온 만돌 어멈, 이쁜이 엄마, 점룡이 엄마, 귀돌 어멈, 칠성 어멈 등은 제각기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이 소문의 장을 통해 사람들은 이쁜이 남편이 외도한 이야기며 민주사의 첩 이야기, 기생이 된 언년이, 신전집의 처남 이야기 등을 전해 듣는다. 그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고소해 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는 등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이렇게 이들이 전달하는 이야기와 소문을 통해 독자는 각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다.빨래터에서 아낙들이 전하는 풍문이 여성 인물의 시각과 범위에서 포착된 이야기들이라면 이발소의 손님들이 나누는 술집 이야기, 신상에 관한 정보 등은 남성 인물들의 시각에서 포착된 것이다. 특히 남다른 호기심을 가진 이발소 사환 재봉의 눈으로 천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세히 관찰된다. 이발소에서손님의 머리를 감겨 주는 일과 심부름을 하는 재봉은 시간만 나면 이발소의 창문으로 천변의 풍경을 내다본다. 다음은 재봉의 시선이 전환되는 부분이다.아이는... 유리창 너머로, 석양녘의 천변 길을 오고 가는 행인들에게 눈을 주었다. 소년은, 그곳에 앉아 바라볼 수 있는 바깥 풍경에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소년은, 아까 한나절 아이를 보아주던 신전집 주인의 장구 대가리 처남이, 이번에는 또 언제나 한가지로 물지게를 지고 천변에 나오는 것을 보고오늘도 소년은 신사의 뒷모양을, 그가 배다리를 건너 골목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헛되이 바라보고 나서, 고개를 돌려 천변 너머 맞은편 카페로 눈을 주었다.혼자 생각을 하며 고개를 조금 돌려, 저편 한약국 집에서 젊은 내외가 같이 나오는 것을 보자소년은, 잘 닦아 놓은 유리 창문 너머로, 한약국안 사랑방에 가, 손님과 대하여 앉았는 주인 영감을 바라보았다.천변의 행위에서 신전집 처남, 포목전 주인과 카페 안의 여급들, 한약국 집 내외, 한약국 집주인으로 재봉의 눈은 천천히 움직이며, 그들의 외양과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 동일한 시간에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소년의 순진무구한 눈에 포착되어 그려지는 까닭에 그 관찰은 간혹 장난기 섞인 웃음을 만들어낸다. 뚱뚱하고 우스꽝스러운 포목전 주인 머리에 사뿐 올려진 중산모(꼭대기가 둥글고 높은 서양 모자)가 바람에 날리기를 기대하는 동심이나, 나이 많은 어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과장된 관심이 그렇다. 비록 소년의 눈을 통해서이지만, 독자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호기심을 갖고 소설을 읽어가게 된다.
주5일제 수업이 학교생활에 끼치는 영향주5일제 수업이란 일주일에 5일만 학교에 등교하여 정규 교과 수업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5일제 수업은 5일간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1일은 가정에서의 다양한 체험으로 학교 학습을 심화 보충하는 학교 운영방법이다. 보통 토요일을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휴업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에서는 매주 수요일, 호주에서는 매주 금요일을 쉬는 것을 볼 때 반드시 토요일에 못 박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주5일제 수업은 효율적인 학교 운영 방안 또는 교육과정의 효율적인 운영 방식의 하나로서 그 근본 취지는 학생들에게 주체적 학습능력과 자질을 길러주며, 더 나아가서는 가족과의 유대 증진과 지역에서의 사회 체험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성을 형성시켜 주는 데 있다. 이전까지는 교육이 학교교육에 지나치게 편중되면서 요즘 '교실붕괴'라는 용어가 보여주고 있다시피 학교도 그 본연의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학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지식의 양을 미처 다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이를 메우기 위하여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이는 학교가 이미 '인성교육'의 장의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잘 대변해 준다. 학생들은 학교를 오래 다녀도 기본 생활습관이나 기본예절조차도 제대로 갖추기 어렵게 되었으며, 폭넓고 다양한 인간적 교류를 통하여 익혀야 할 사회성이나 봉사하는 정신을 함양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의 교육사태는 학교,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의 교육력 모두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제기된 것이 주5일제 수업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주5일제 수업 운영 방식과 유사한 '책가방 없는 날', '체험 학습의 날', '자율 학습의 날' 등은 학교에 등교하여 학교 계획에 따라 교사의 지도 하에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완전한 의미의 주5일제 수업 운영과는 다르다. 그러한 형태의 교육과정 운영들은 완전한 의미의 주5일제 수업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수순으로 볼 흡 등의 문제로 적용 어려움1997전북사창초등학교자기주도적 학습력 신장을 위한 주 5일제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주5일제 수업을 위한 학교 교육과정 편성토요휴업일 실시를 위한 학교의 여건 조성교육내용의 재구성을 통한 현장체험학습의 날 운영주5일제 수업 도입의 필요성 인식함다양한 체험활동 및 바람직한 여가활동 가능주 5일제 운영을 위한 학교 교육환경 조성결국에는 가정과 사회에 일임해야 함마산해운초등학교주5일제 수업 대비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주5일제 수업을 위한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특별활동 프로그램 구안학교, 가정, 지역사회의 지원 체제 확립학교 체제의 개선수업인정제도는 주5일제 수업의 운영에 효과적교육과정 재구성에 한계가 있음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의 총체적 지원체제 필요교육과정 내용의 감축 필요특활, 재량 시간 이수에 대한 지역 및 단위학교의 재량권 인정 요구이화여자대학교 부속 초등학교자율성 함양을 위한 주 5일제 수업주5일제 수업을 위한 교육과정 운영시수의 재구성주5일제 수업 전개를 위한 지역사회와의 연계 방안토요일 자율 등교제 실시토요 활동 프로그램 운영토요 특기 과외교실 운영아동의 토요 자율 활동 계획 실천을 위한 지도연간 30일 이내의 수업일수 감축 가능주중의 수업시간 증가와 아동, 교사의 부담 가중토요학교 특별 프로그램 운영으로 다양한 체험활동 조성가정과 지역에서 생활체험이 강화됨자율성 신장은 물론 사회성, 가족관계의 개선을 통해 바른 인성이 형성됨가정과 지역사회의 지원이 필요자율성 신장의 방안 연구 필요2000부산진 중학교자율성 함양을 위한 주5일제 수업 운영교육과정의 탄력적인 재편성재택학습 및 자유체험일 운영교과별 창의적인 교육활동 운영클럽활동 전일제 운영재택학습의 날과 창의적 교육활동 운영으로 학생들의 자주적 문제해결능력과 자율성 함양다양한 체험 중심의 활동은 견문과 교양을 넓힐 수 있는 계기 제공현장학습 및 문화관람 활동을 통해 우리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고, 학생들에게 이웃, 지역사회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추진, 직접 경험 중시, 지역 사회 문화, 체육 시설 활용을 위한 정보 제공, 월-금요일의 개선점, 토요 휴업일의 제 활동 기획과 개발, 5일제에 대한 보호자 지역주민의식 계발, 자립을 촉진하는 수업 참조의 연구내용으로 해서 지역 사회가 학생들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계획 실시, 지역 어른과 학생 교류 활발, 다양한 체험함, 자기시간 사용법 연구, 스스로 계획, 실천 가능케 됨, 가정, 지역 사회 이해 인식 고취, 자기 학습 능력 자세 길러짐, 휴업일에 지역 주민과 교류 깊어짐, 여유, 주체성 회복, 과도한 학교의존 체질 반성, 변화, 여유 생긴 직원 근무, 교육과정 편성상의 과제, 휴업일의 제 활동 시설 확보, 정비, 학교 개방 시 관리, 학원 다니기의 결과가 나왔다.다음은 다른 나라의 주5일제 수업 현황을 찾아본 것이다.일본은 1986년부터 주5일제 수업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89년 8월 조사 연구 회의를 주최하여 학교 주5일제에 관한 조사 연구를 착수하고 1990년부터는 9개의 도, 현 68교를 연구 협력교(우리나라의 시범학교에 해당함)로 지정하여 월 1회나 2회의 학교 주 5일제를 2년 반 동안 실시하였다. 그 후 1992년 2학기부터는 월2회(거의 격주로) 실시하는 조사연구 협력 학교를 지정하여 운영해 오다가 1995년도 4월부터는 유치원,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특수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교에서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의 토요일은 휴업일로 하는 주5일 수업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1996년에는 중앙교육심의회에서 일본의 초중등학교는 학교 주5일제를 가까운 장래에 월 4회로 늘려 완전 실시하도록 결의하였다. 2002년도에는 완전 주5일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사립 학교에서는 도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 교육은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원만한 인간 품성 함양과 주체적 창조적인 생활 능력과 자질을 계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중국의 주5일제 수업의 목적은 아동들의 건강한 신체 발달을 도모하고, 학교, 가정, 주5일제 수업제도를 적용하지 않고 지역에 따라 월1회 실시, 계절에 따라 융통성을 부여하여 운영한다.독일의 학교는 반일제로 점심은 집에서 먹고 오후에는 숙제 학습을 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며 독일 사람들에게는 학교는 학업의 장이고 그 외의 가정과 사회의 책임이라는 역할분담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주5일제 수업을 운영해 본 결과 수업 시간이 증가하여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많은 부담을 주며, 학생들의 점심 식사 문제 해결로 급식 시설을 위한 재정적인 어려움, 그리고 학생들의 과다한 숙제로 어린 학생들의 체력 문제 등이 대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5일제 수업이 시행되면서 학생들의 체험활동을 위하여 학교, 학부모, 그리고 지역 사회 교육 담당자들 사이에 활발한 연계가 이루어져 학교에서는 시설 개방, 지역에서는 '아동의 마을'이 탄생하는 등 주5일제 수업의 정착을 위하여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지역 사회의 다양한 노력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프랑스는 매주 수요일을 휴업일로 하는 주5일제 수업을 운영하며 수요일은 과외활동의 날로 정하여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살리는 교육을 받고 있다. 말하자면 프랑스는 특별활동이 강조되는 주5일제 수업 유형이다. 수요일 학습활동을 주관하는 것은 주로 학부모들이다.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박물관, 미술관을 가기도 하며 일일 교사가 학생들을 담당하는 봉사를 해 준다. 그러나 파리의 학교는 수요일과 토요일 모두 쉬는 주4일제 수업을 운명하며, 특별 프로그램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학교 시설을 개방한다고 한다.이태리 초등학교(1학년∼5학년)는 학부모의 선택에 따라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오전반, 오후반으로 학교 생활을 하게 되는데 오전반은 12시까지, 토요일도 등교하는 주6일제 수업을 하며, 오후반은 오후 4시 반까지 수업을 하면서 토요일은 등교하지 않는 주5일제 수업을 한다.한 학교 내에서 오전반, 오후반을 나누어 운영하거나, 오전반 학교, 오후반 학교가 따로 운영되기도 하는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의 자립 능력은 학생측에 세우고, 학생을 중심으로 계획되고, 그것이 구김살 없는 인간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캐나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여가의 사용법이 능숙하다고 생각한다. 휴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그것은 아무런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일광욕을 한다던가 휴양을 취한다고 하는 확실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경축일도 토요일, 일요일을 생각해서 월요일에 인위적으로 가져온다든지, 금요일에 전야제적인 의미를 가지고서 휴일로 하는 일도 있다. 이것은 여가를 즐긴다고 하는 국민성의 발로라 생각된다. 주말에는 별장에서 보내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는 가족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능력, 적성을 나타내어 기업에 판매한다고 하는 면이 상당히 크다. 그 대신 자기가 있는 회사에서 능력이 발휘되지 않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재빨리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자기를 팔아서 자신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이상과 같은 자료를 통해서 보자면 주5일제 수업은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갖는다.우선, 학교 교육 본래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 주5일제 수업은 지금까지 교육하면 학교라는 과도한 의존 관계의 본질을 개선하고, 아이의 교육을 바르게 평가하여 「가정?사회 2일제」라는 시점에서 각자의 역할분담을 서로 확인하며, 책임 있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단지 휴일이 늘어나니까 그 대체적인 방안 만들기라는 단순함만으로는 절박한 도입의 의의가 오히려 희석될 염려가 있을 뿐이다. 주5일제 수업이 갖고 있는 의의를 십분 이해하여 우리 교육 정상화의 일보로 추진해 갈 필요가 있다.둘째로 아동의 자립성을 기를 수 있다. 지금의 교육상황에서는 아동의 자립성을 육성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아동의 생활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부모나 교사에 의해 관리되고, 작성된 일정표에 따른 처리에도 허덕이면서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아동 자신만의 자유로운 시간은 지극히 한정되고, 친한 친구들과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현실에서의 생활이 힘들지만 학문에 힘쓰는 주인공이 꿈을 꾸면서 임금의 부름을 받는다는 데서 금오신화의 나 과 비슷한 이야기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다보니 중간에 삽입된 한시나 꿈속에서의 인물들이 전부 허망하고 슬픈 분위기를 띄우고 있어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임금이라는 말과 왕위 찬탈에 대한 언급에 혹시나 ‘단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자료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를 주인공으로 하여 사육신 및 단종의 사후 생활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같은 몽유 소설이지만 금오신화의 나 에 비해서 좀더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점에서 주제의식이 강화된 것 같다.사씨남정기를 먼저 읽고 나서 유충렬전을 읽었는데 사씨남정기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유충렬전도 기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너무 비교될 정도로 재미가 없어서 읽기 힘들었다. 주인공이 천상계에서 지상계로 내려온 비범함을 지녔다는 점과 도술을 부리고 홀홀단신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등의 여러 가지 비현실적인 면모 때문에 작품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부모와 헤어진다거나 우연하게 누구를 만난다거나 하는 내용도 사씨남정기에서는 설득력있다고 느끼며 읽어 넘어갔었지만, 이상하게도 유충렬전에서는 유난스레 어색하고 비정상적으로 우연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유충렬전은 일상적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주인공이 일시적인 고난을 극복하고 가문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전형적인 배경과 구조를 보여주는 영웅 소설이다. 또한 이 작품은 거듭되는 위기의 설정과 군담을 통해 병자호란의 경험 등 외적에 대한 복수 의식과 당쟁에서 패배한 실세 집안의 지위 회족 의식 등 현실 반영의 측면도 드러내 준다. 유충렬의 영웅적 성격은 단순하고 본능적이고 용력위주이며, 직선적 행동을 하는 특징을 가진다는 점에서 작자가 민중의식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웅의 일대기 구조는 예사롭지 않게 출생하고 비범한 자질을 갖춘 고귀한 신분의 주인공이 뜻밖의 재난으로 위기에 부딪혔다가, 양육자의 도움을 얻어 이를 모면하고 힘과 지혜를 기른 뒤 마침내 세상에 다시 나아가,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영광을 쟁취한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당시의 유교적인 시대 배경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천상계에서 내려온 주인공이 충신의 직언을 바로 듣지 않고 간신을 가까이 하던 천자에게 종속된다는 것이 현대젹인 상황에서 봤을 때는 별로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사씨남정기는 어릴 적에 한참 시리즈로 나오던 고전 만화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오래된 일이라 내용을 거의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책으로 읽어보니 상당히 재미있었다. 이미 이 소설이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쫓고 장희빈을 맞이한 것을 배경을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읽어나가면서 계속 비교를 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실적인 배경을 비판하는 데서 시작한 소설이라면 내용이 지나치게 사실화 되거나 딱딱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면 꿈의 계시를 사용하고, 권선징악의 인물구조를 사용하는 등 전형적인 고대 소설의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사건의 전개가 긴박하고 기발하여 작품의 배경이 아닌 작품 자체로서도 문학적인 가치를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읽어도 별로 나무랄 데가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시대적 배경 탓에 사씨의 성격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사필귀정이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라는 데서 고대소설로서의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한 교훈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어 작품성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막연하게 선악을 이야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국정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미 몇백년도 지난 지금에서도 독자에게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묘미가 아닌가 싶다. 가난한 선비의 처가 되느니 부귀공명을 누리는 집안의 첩이 되는 편이 낫다는 교씨의 발언과 재물을 따라가는 그녀의 행동은 당시 사회에서도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1. 이미지의 정의이미지는 우리말로 심상(心象) 또는 영상(映像)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그냥 쓰이기도 한다. 이미지란 원래 심리학에서 쓰이던 말로서 "상상력에 의하여 구체적인 정경(情景)을 마음 속에 그리는 일" 또는 "이전에 감각에 의하여 얻어졌던 것이 마음 속에서 재생한 것"으로 정의된다.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감각적 지각에 의해 기억 속에 담아두며, 그렇게 저장된 사물에 대한 기억을 어느 순간에 다시 마음 속에서 재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러한 감각적 경험이 그대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 또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변형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변형된 것이 다시 우리의 상상력에 힘입어 독특한 모양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용이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문학의 본원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상상이란 과거에 보고 듣고 겪었던 사물의 이미지를 마음 속에서 다시 생각해 내는 일이다. 경험된 이미지들이 시인의 정서와 사상의 해석과 선별, 그리고 조합에 의하여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를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지각체험을 구체적인 어떤 표상으로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또한 독자의 이미지에의 참여와 대응도 상상력에 의존한다. 시의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며, 이것은 다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결국 시에서 참다운 이미지의 창출은 시인과 상상력이 긴밀히 조우하는 데서 가능한 것이다.이미지는 신체적 지각에 일어난 감각이 마음 속에 재생된 것이다. 한 때 지각되었으나 현재는 지각되지 않는 어떤 것을 기억하려고 하는 경우나 체험상 마음의 무방향적 표류의 경우나 상상력에 의해서 지각 내용을 결합하는 경우나 꿈과 열병에서 나타나는 환각 등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신체적 지각이 아니라도 마음은 이미지를 역시 생산할 수 있다. 한층 특수한 문학적 용법으로서의 이미저리는 언어에 의하여 마음 속에 생산된 이미지군을 말한다. 한 편의 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여러 이미지들의 무리로 나타난다. 이미지란 말은 거시적으로도 사용되며 미시적으로도 사용됨으로써 개념의 혼란이 나타난다. 이러한 혼란을 제거하기 위하여 이미저리라는 용어가 사용된다.2. 이미지의 종류(1) 정신적 이미지언어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오른 감각적 이미지가 바로 정신적 이미지다. 정신적 이미지는 좀더 구체적으로 시각적, 청각적, 미각적, 후각적, 촉각적 이미지 그리고 여기에 다시 기관적 이미지(심장의 고동과 맥박, 호흡, 소화 등의 감각을 제시한 이미지)와 근육감각적 이미지(근육의 긴장과 움직임을 제시한 이미지)까지 덧붙여 세분된다. 감각은 외적 및 내적 감관에 가해진 자극으로 말미암아 생긴 정신현상이다. 시인은 한 대상에 대하여 한 감각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감각이 동원되어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공감각(synaesthesia)이란 것이 생겨난다. 공감각은 첫째 대상에 접하여 촉발된 한 감각이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두 개 이상의 감각이 합쳐진 형태다.(2) 비유적 이미지비유적 이미지란 주로 비유적 양식으로서의 이미지를 말하는데 대체로 이미지가 비유의 형식을 띠고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비유어는 은유로서 취의(원관념)와 매재(보조관념)를 논의의 핵으로 하여 인식의 갱신을 지향한다. 일반적으로는 매재가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때로는 취의-매재의 관계가 동시에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비유적 이미지에서 이미지는 주로 관념에 봉사하는 역할 한다. 곧 직유, 은유, 제유, 환유, 의인법, 우화법, 상징 등의 비유형식을 띠는 것이 그것이다.(3) 상징적 이미지상징적 이미지는 이미지가 감각적, 경험적, 현실적인 것을 뛰어넘어서 보이지 않는 초경험적인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상징적 이미지 논의의 기본 가정은 반복과 회귀이다. 대체로 반복과 회귀의 양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들을 일부에서는 이미지다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4) 서술적 이미지서술적 이미지는 대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서술, 묘사한 것으로 어떤 생각, 관념을 전달하기 위한 수법으로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런 시에서 심상 이외의 어떤 의미를 발견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관념이 배제되고 사물만으로 이루어진 사물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5) 절대적 이미지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과 무관한 것, 의미, 대상을 지우려고 하는 것이다. 시는 무슨 목적에 쓰이기 위한 수단적 지위에 있지 않고 다른 아무런 목적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것이 현대시관의 한 양상이다. 그래서 시는 않고 단지 있는 것이다. 절대적 이미지는 시의 이미지가 객관적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실체 그 자체라고 본다. 그리고 또한 이미지는 의미를 전달하는 하나의 기호도 아니다. 무의미시, 선시, 주술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시의 심상이 어떤 관념이나 목적성을 벗어나 절대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는 주술적인 효과로써 현대 문명의 관념화, 논리화의 세계를 파괴하거나 교란시키는 기능이 있다.(6) 원형적 이미지원형적 이미지는 원형성을 띄는 상징이다.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양상을 상징화 한 것으로 역사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몇 개의 심상 패턴이 있다는 가정 아래서 쓰이는 상징이며 신화나 종교, 각 민족의 전설이나 의식(儀式) 속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기본 패턴을 상징화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신화나 원형 의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한 현상계 속에서 사는 인간에게 먼 인류와의 유대감, 지속성과 인류로서의 정체감을 확인시키며 삶의 균형 감각을 유지시켜 준다. 즉, 원형적 이미지는 모든 인류가 살아가면서 공통으로 이룰 수 있는 이미지이다. 예를 들어 물이나 불, 바람, 태양 등의 이미지는 인류가 문화 발생 초기부터 형성해왔던 것들이었다.3. 이미지의 기능이미지는 표현의 구체성을 높여서 의미 전달의 기능을 수행하고, 은유적 이미지, 시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표현에 있어서 개성적이고 신선함을 살려준다. 이미지는 정서를 환기하여 감정과 사상을 통합하며 시의 주제를 추적하는 지표가 된다. 이미지를 통해서 주제를 추적하게 하는 방법으로 지수비평이 있다. 또한 이미지는 시간적 배경, 공간적 배경, 소재, 제재와 같은 시의 제재와 배경을 알려준다.4. 예시(1) 서술적 이미지- 박목월 「불국사」흰 달빛자하문(紫霞門)달 안개물소리대웅전큰 보살바람소리솔소리범영루(泛影樓)뜬 그림자흐는히젖는데흰 달빛자하문바람소리물소리.이 작품은 실재하는 불국사의 밤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의 이미지는 실재하는 사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는 관념이 배제되고 사물만으로 이루어진 사물시이다. 불국사를 표현하는데 불국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서술어를 거의 배제하여 절제된 시어 몇 개만을 나열함으로써 그 전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게끔 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흡사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를 보는 듯싶다.(2) 비유적 이미지- 박두진 「꽃」이는 먼해와 달의 속삭임비밀한 울음한 번만의 어느 날의아픈 피 흘림.먼 별에서 별에로의길섶 위에 떨궈진다시는 못 돌이킬엇갈림의 핏방울.꺼질 듯보드라운황홀한 한 떨기의아름다운 정적(靜寂).펼치면 일렁이는사랑의호심(湖心)아.이 시는 꽃이 피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고귀함,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기쁨을 정신적인 경험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대비하여 존재의 의미를 추구한다. 1,2연에서는 인간이 감히 알 수 없는 ‘해와 달의 속삭임’처럼 생명은 신비롭고 경건한 것이며, ‘피 흘림’으로 비유되어 ‘한 번’이라는 일회성, 유한성을 가지는 고귀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런 생명에서 태어나는 사랑은 호수 같은 정적과 깨끗함, 순결함을 잉태하는 것으로,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궁극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이 시에서는 꽃을 속삭임, 울음, 피 흘림, 핏방울, 정적, 호심의 은유로 표현하여 비유적 이미지를 통해 대상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3) 상징적 이미지- 유치환 「바위」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愛潾에 물들지 않고熹怒에 움직이지 않고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億年 非情의 緘默에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흐르는 구름머언 遠雷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두 쪽으로 깨뜨려져도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이 시에서 시 전체에 흐르는 시상이 집중되고 있는 '바위'라는 대상은 그 이면에 어떤 의미들을 숨기고 있는 상징물이다. 바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나 시적 의미들을 통해 그것이 암시하는 바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위는 그 견고함과 무게, 생김새 등으로 하여 무거움, 강인함, 신중함 등을 연상시키며, 감정의 기복, 변화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비유될 수 있다. 여기에서도 의인화된 비유는 이러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애련에 물들지 않’는 비정함과 노여움, 성냄, 기쁨 따위의 감정에 물들지 않고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저 함묵한 채 자신을 지키고 견디며 안으로 더욱 강해지는 게 바로 바위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생명도 망각'하는 초월의 경지에 이르러 그 어떤 외부 자극에 흔들림이 없는 존재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다. 바위는 이러한 세계를 소망하는 시인의 강한 의지나 신념, 초극의 경지를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또는 일체의 생명에 대한 허무의식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며, 읽는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해석에 따라서 또 다른 다양한 의미들을 끄집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1. 비유의 의미비유라는 말은 원래 희랍어의 metaphora에서 온 말이다. 이 중에서 meta는 운동 또는 변화를 나타내며, phora는 '운반하다, 이동하다' 등을 뜻하는 pherein의 변화형이다. 그러므로 비유라는 말에는 언어의 운동 개념 즉 전이(轉移) 또는 이월(移越)이라는 의미가 원래부터 담겨 있었으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즉 비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관념을 그것과 유사한 다른 사물이나 관념에 빗대어, 보다 생동감있고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표현방법이다. 비유는 두 사물의 유사점에 근거하여(유추관계) 이루어진다. 이 때, 표현하려는 대상을 원관념, 비교되는 매개물을 보조관념이라고 한다.표현기법으로서의 비유는 시가 시일 수 있는 특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이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비유를 통하여 형상화하고, 독자들은 이런 비유적 표현을 통해 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감지하게 된다. 따라서 시적 형상화를 위해서는 비유가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는 시의 품격과 시로서의 자질을 정해주는 잣대라고도 할 수 있다.2. 죽은 비유와 살아있는 비유좋은 시는 우리에게 인지의 충격과 경이감을 던져준다. 우리의 체험과 삶을 활성화시키고 풍요롭게 하며 우리들 자신을 신장시켜 나가도록 만든다.비유는 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인식과 상상력에 의해 미지의 사물을 우리 앞에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시적 원리이며 표현방법이다. 이 비유를 통하여 사물의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발견, 새로운 의미,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그런데 모든 비유가 이러한 창조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유를 이루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이 상상력을 필요치 않는 상식수준이거나, 습관화된 인식 속에서 나온 것이거나, 너무 낯익어서 진부한 것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세계와 사물에 대하여 그 어떠한 경이감과 충격을 자아내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비유를 죽은 비유라고 하는데, 즉 비유로서의 생명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우리는 이 죽은로 받아들였던 꽃의 모습이 아니다. 시인의 눈에 의해서 발견된 '속삭임', '울음', '핏방울', '정적', '호심' 등의 비유는 우리가 예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꽃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의미들을 탄생시키고 있다.3. 비유의 종류(1) 직유직유는 말 그대로 직접적인 비유이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처럼', '~같이', '~듯이' 등의 매개어를 통하여 결합시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인 비유이기 때문에 비유의 형태 또한 단순하고, 두 대상-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 동일성이 많기 때문에 시인이나 독자로 하여금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직유를 만들고 그것을 시의 공간에서 활용할 때는 무엇보다도 참신한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A같은 B이다‘의 형태를 취하여 대상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며 대상간의 유사성이 높고 분석적이다. B는 A를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언제부턴가내 몸의 깊은 안 쪽에는허리선이 버선볼 같은 강 하나 살고 있네그 강물 속 맑기가가을 햇빛 같아야만,그 강물 속내가어린 것에게 젖물린 어미 같아야만,그대 전체!나에게 살포시 보여주는데강물의 한 끝을 닦아오는 사이허리선이 버선볼 같은 강둑에는들꽃들 하나 둘 찾아와 서로 사랑하더니,철철이 아기꽃들 태어나더니,강물은들꽃 향기로들꽃 그림자로 흐르네.- 고미경 「물그림자」이 시에는 여러 개의 직유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강의 모습을 '버선볼'에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참신함 때문이다. 휘돌아 나가는 강의 모습에서 우리의 전통미를 느끼게 하는 곡선의 버선볼을 결합시킨 것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 동일성이 무척 큼에도 불구하고 결코 흔하게 여길 수 없는 개성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적인 시각으로 사물들을 포착하고 그것들의 동일성을 발견해 내는 일은 비유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다.(2) 활유무생물에다 생물적 특성을 부여하여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나타내는 방법이다. 단순히 생물적 특성광야」(3) 의인법의인법은 인간이 아닌 대상이나 관념에 인간의 생명력과 속성을 부여하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해하기는 좋지만 식상한 면이 있고 윤리적ㆍ교훈적인 내용에 많이 쓰인다.옥창에서 바라보이는 조각 하늘에누집 아히가 날려보내는 고운 연이냐푸른 하늘로 끝없이 깃더오르랴는 갈망연의 마음도 한없이 자유가 그리운게다미친 것처럼 떨며 내달아 솟아도번번이 야문 실오리에 끌려내려와야 하는연아! 너의 슬픈 몸부림을자미롭다고 사람들은 바라보겠구나얼마나 가고 싶으냐 새떼 마음놓고 지저귀는구름과 바람이 번덕여 재롱떠는 하늘가노을이 타서 피가 듣도록 타서숲속에 마지막 종소리 울리는데연아 달아나거라 끝없이실끝 끊어 버리고 일사천리 끝없이 달아나거라- 김상훈 「연」제1연의 "옥창에서 바라보이는 조각 하늘에"라는 첫 행에서 드러나 있듯이 시의 화자는 지금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시의 화자는 이 억압의 구속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리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화자의 처지와 마음의 갈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감옥에서 바라본 '연'이라는 대상이다.그래서 시의 화자가 보기에는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의 모습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며, 아무리 솟구쳐도 끌려 내려와야 하는 연의 모습은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은 의인법을 통해서 시인의 모습과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4) 제유드러나 있지 않은 전체를 그 사물의 일부분으로 대신 표현하는 방법인 이 제유는 대유의 일종이다.노래하리라 비 오는 밤마다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우리들 서울의 전쟁과 평화- 정호승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中이 시에 등장하는 '빵'은 음식물이나 먹을 것 전체를 대신 표현하는 제유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유는 직유나 은유처럼 시 속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풍부한 시적 의미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시에서 제유는 이러한 기능을 하는 데 별로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 '백악관'이 미국의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 등이 모두 이 환유에 해당되는 것들이다.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제유와 환유는 한 개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는 비유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전체적인 생활 속에서 오랜 동안의 경험이나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다.(6) 풍유풍유는 알레고리, 즉 1:1의 관계로 본뜻을 숨기고 다른 말을 내세우는 것으로 상징과 비슷하다. 속담, 격언 등과 같이 원관념을 나타내지 않고 보조 관념만 드러내어 본뜻을 독자가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표현 방법이다. 거의 모든 세계의 경전이 다 풍유로 되어 있으며 신랄한 비판을 할 때도 많이 쓰이지만 잘못 쓰이면 너무 뻔하고 식상할 수 있다.껍데기는 가라.4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여기서 ‘껍데기’나 ‘쇠붙이’는 외세에 의한 물질 문명을 나타내는 것이며 ‘알맹이’나 ‘향그러운 흙가슴’은 중립의 평화로운 세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껍데기'와 '알맹이'로 대변되는 참으로 안타까운 민족의 현실이 '아사달과 아사녀'의 신선한 상징성을 통하여 '중립(中立)'이라는 무한한 상상력을 내포한 말로 연결됨으로써 전통을 현재에 투입시킨 예술성과 사상성의 일치를 보여 주고 있다.(7) 의태/의성의태는 실감있는 표현을 위해 사물의 상태와 동작을 시늉하여 나타내는 것이고, 의성은 사물의 소리를 표현, 흉내내어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생동감, 활기, 생명을 환기하는 효과가 있다.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中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고 고전적인 은유가 바로 이 치환은유에 해당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대상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미지의 대상인 원관념을 구체적인 대상(보조관념)으로 전이하여 의미의 확대 또는 변용을 가져오는 것이 이 치환은유를 만드는 방법이다. 치환은유는 'A는 B, C, D…'와 같은 형태로 원관념 하나에 여러 개의 보조관념을 결합시켜준다.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내 마음은 촉불이요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내 마음은 나그네요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내 마음은 낙엽이요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그대를 떠나오리다.- 김동명 「내 마음」이 시에서 내 마음은 원관념이요,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은 보조관념이다. 원관념에 여러 가지 보조 관념을 결합시켜 비유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를 이루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각기 다른 이질적인 대상들이다. 이질적인 대상이 서로 결합하여 비유를 만들 수 있는 근거는 바로 동일성 내지 유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각기 다른 사물의 이질성 속에서 발견한 동일성 혹은 유사성이 비유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이 시의 제1연을 보면 원관념인 '내 마음'과 보조관념인 '호수'는 분명 이질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이 두 대상 사이에서 우리는 동일성, 유사성을 유추해 낼 수 있다.'내 마음'은 관념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것이다. 그것은 고정의 틀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시로 변화한다. 그래서 불꽃같이 타오르는 느낌이 드는가 하면 때로는 잔잔하고, 맑고, 고요하고, 깊고, 푸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주관적인 느낌들이 '호수'라는 사물에서 받는 인상과 서로 닮았다. 즉 서로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동일성의 발견은 과학적 법칙을 찾아내는 것처럼 객관적었다.
내가 생각하는 성서는 이것이다- 비기독교인의 입장사실 나는 기독교와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성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막연하게나마 나에게 성서라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슷한 기록이라는 이미지였다. 거기에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인식을 새겨주는 기능이 첨가되어 마치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처럼 구전되어 오다가 기록된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지만, 성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런 내용을 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에서, 성서에 대한 배경지식을 조금이라도 얻어 보고자 자료를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성서는 구원을 주는 능력의 말씀이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내용의 글들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이 갑자기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는 성서의 측면은 접어두고,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그동안 살면서 곁다리로 들어온 것들과 대학에서의 기독교의 이해, 성서의 이해 수업을 통해서 들은 것을 토대로 하여 그냥 내 나름대로 써보기로 하겠다.앞서 말했듯이 나는 윤리적인 기능을 가지고 전래된 설화가 전파되면서 하나의 종교적인 믿음으로 발전하여 성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세계 창조, 인간 창조, 자연의 변화와 같은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사실들과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설화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왜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여 살아가고 죽어가며 생존과 번식의 본능을 지니는가에 대한 물음은 인간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한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 신의 존재를 통하여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 성서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을 믿음으로써 인간에게는 삶의 의무와 정체성이 주어져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근거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과 연결되었다는 믿음이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에 비해 우월하다는 인간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며 믿으면 죄를 사하여 준다는 것과 같은 내용은 나에게 ‘성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을 하며 그를 믿는 인간은 어린 아이와도 같다’는 생각을 떠오르게 만든다.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혼내주고 잘 들으면 칭찬을 해주는 것처럼,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완벽하도록 이끌어 주며 잘못 나아가는 인간을 바로 잡아준다는 느낌인 것이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원초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나는 바로 이와 같은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성서라고 본다. 그리고 성서의 이러한 면은 인간의 행위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역시 ‘이상적인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라는 도식에서 설명할 수 있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당해진다. 부모는 아이의 모든 것을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랑을 지닌 존재라는 인식이 무의식중에 아이에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를 하나의 완벽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며 그를 선망하고 모방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행위를 포용해줄 부모의 존재로 인해 평소에 혼자라면 하지 못할 대범한 행동도 부모가 등 뒤에 있을 시에는 서슴지 않고 행하게 되기도 한다. 성서는 이와 같이 인간에게 부모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부모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던 아이가 오히려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게 되는 것은 부모가 늘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아이의 인식상의 오류이다. 이와 같은 오류는 성서와 인간간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오신화는 고등학생 때도 몇 번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수이전은 이번에 처음으로 접하는 것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소설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기이함 자체를 보여주는 설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와 , 같은 것은 이러이러한 신기한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식으로 주변인에게 전해질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도 그 인물의 뛰어남을 남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설화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문학적 가치가 있다거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와 달리 이나 , 은 사건중심으로 다루어져 단순히 기록된 설화가 아니라 이야기 형식이 갖추어진 소설에 근접한다고 느껴졌다. 그중 은 내용 중간 중간에 삽입된 시로 등장인물의 심경이 표현되어 다른 이야기에 비해서 신선하게 다가왔고 문학적 측면이 강조된 듯한 느낌이었다.전체적으로 이러한 기이한 이야기는 불교적이거나 초현실적인 것에 연관되어 있었고, 남녀의 사랑이야기도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거나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당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겠지만, 어떠한 현실을 반영하여 어떠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금오신화는 예전부터 교과서로도 조금씩 접하며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 익숙하게 읽었다. 다섯 개의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비슷비슷한 내용에 주인공의 성격도 비슷하여 하나하나 구분하여 읽기는 애매한 듯싶다.가 인간과 혼백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두 존재 사이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은 죽음으로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가 남자주인공의 사랑과 의리에 중점을 두었다면, 은 여자주인공의 사랑과 정절에 중점을 두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초월적인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예전에 교과서에서 접해보기도 했고 금오신화의 다섯 가지 작품 중에서 제일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지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반면에 는 계속 긴 시가 나와서 조금 읽기 힘들었다. 앞의 두 작품에서 나오는 시가 사랑에 대한 내용이라면 이 작품에 나온 시는 맥수지탄과 같이 왕조부흥의 유한함을 자연의 무한함으로 빗대어 슬프게 읊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사의 무상함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작자의 배경을 고려하면 위만과 기자조선의 이야기는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와 은 앞서 언급한 세 작품과는 달리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두 작품 모두 염라국과 용궁이라는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꿈을 빌어 담고 있다. 에서는 작자의 철학관, 종교관, 정치관이 잘 드러나 있어 꼭 작자의 강연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인간이 추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귀신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다. 왕이 죄인의 뇌물을 받고 부처가 세속의 공양을 받는 이야기를 꺼내서 현실을 비판하고 일리론을 주장하는 등 작자의 생각이 가장 많이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 주제가 모호하다. 작품을 살펴보면 단순히 풍류적인 내용만 담겨 있고 주인공의 비범함과 용궁의 신비함만이 드러나 어떤 교훈이 담겨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앞의 네 작품이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교훈을 주거나 작자의 생각을 드러냈던 것과는 대조된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었는데 자료를 찾다가 “이 작품은 김시습 일생의 한 부분과 같은 작품이다. 즉, 용궁으로 들어간 사실은 세종이 신동인 시습을 궁중으로 불러들인 것과 같다. 또 상량문을 지어 감탄하게 한 것은 삼각산의 시를 비롯한 뛰어난 한시를 지어 임금을 놀라게 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빙초를 선물받은 것은 세종으로부터 명주를 하사받은 것과 비유된다.”라는 것을 읽고 나자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1. 서동요(薯童謠) - 서동(百濟 武王)善化公主主隱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夜矣卯乙抱遣去如善化公主니믄 그지 얼어두고맛둥방 바 몰 안고 가다 선화 공주님은남 몰래 사귀어(정을 통해) 두고,맛둥(서동) 도련님을밤에 몰래 안고 간다.단평 : 이 향가에 대한 설화에는 신화적인 성격을 띄어서 정말 그 당시 그런 일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단지 서민들의 신분 상승 욕구에 의한 상상의 노래인지 알 길은 없다. 서동이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하여 노래를 짓고 아이들에게 퍼뜨린 것은 재치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아내로 맞기 위해서 일부러 선화공주를 헐뜯었다는 것은 오히려 이 노래가 단순히 서민들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2. 풍요(風謠) - 萬姓 男女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오다 오다 오다 오다 셔럽다라 셔럽다 의내여 功德 닷라 오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서러운 이 많아라 서럽다 중생의 무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단평 : 풍요는 승려 양지가 영묘사의 장육존상을 만들 때, 만성의 남녀가 진흙을 운반하면서 부른 노래라고 한다. 설화에서는 만성 남녀들이 법심에 감화되어 공덕을 닦기 위해 앞을 다투어 흙을 운반해 주었다고 했지만 서럽다라는 말이 쓰인 것은 약간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단순히 삶 자체가 서러워서 공덕을 닦으러 온다는 것일까.3. 헌화가(獻花歌) - 어느 老人 紫布岩乎邊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不喩慙伊賜等 花折叱可獻乎理音如딛배 바회 자온손 암쇼 노시고 나 안디 붓리샤 곶 것가 받리다 자줏빛 바위 끝에 잡은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치오리다단평 : 헌화가는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절벽 위의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자줏빛 바위가 꽃이 핀 절벽이라면 거기에 잡은 암소를 놓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직 공부가 미숙하고 자료가 모자란 탓에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노인이 꽃을 바치는데 자신을 부끄럽다는 표현을 한 것은 수로부인에 대한 공경 때문이었는지 단순한 신분상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노인의 겸손하고 정성된 마음이 느껴진다.4. 도솔가(兜率歌) -월명사(月明師)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寶白乎隱花良汝隱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彌勒座主陪立羅良오 이 散花 블어 고자 너는 고 命ㅅ 브리디 彌勒座主 뫼셔롸 오늘 이에 산화가 불러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 명받아 미륵좌주를 모셔라단평 : 다른 향가는 그 제목이 설화의 내용과 연관되어 쉽게 떠올릴 수 있었지만 도솔가는 도무지 제목과 내용이 연관이 되질 않아 책을 보고서야 그 내용을 알았다. 다른 자료를 찾아보자 도솔은 미륵을 지칭한 말로서, 미래 불로서의 미륵불을 모시는 단을 모아놓고 이 노래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라는 말이 나와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꽃을 뿌려서 미륵을 모신다는 것은 단순하게 불교적인 것으로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당시의 무속적 풍속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다.5.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득오(得烏) 去隱春皆理米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史年數就音墮支行齊 目煙廻於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作乎下是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간봄 그리매 모것 우리 시름 아 나토샤온 즈 살쯈 디니져 눈 돌칠 이예 맛보디 지리 郞이야 그릴 녀올길 다봊 잘밤 이시리 간 봄을 그리워하매 모든 것이 울어서 시름하는데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에 주름살이 지려 하는구나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만나뵙기를 짓고저 랑이여, 그리운 마음에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단평 : 모죽지랑가는 죽지랑의 낭도인 득오가 죽지랑의 죽음을 애도하며 불렀다고 한다. 죽지랑을 아름답다하고 함께 있던 때를 봄이라 표현하여 그 마음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봄이 끝나고 아름다움이 주름살로 변하는 것은 죽음을 앞에 두니 인생이 무상하다는 작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6. 처용가(處容歌) - 처용(處容) 東京明期月良夜入伊游行如可入良沙寢矣見昆脚烏伊四是良羅二隱吾下於叱古二隱誰支上焉古本矣吾下是如馬於隱奪叱良乙何如爲理古긔 래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 자리 보곤 가리 네히어라 둘흔 내해엇고 둘흔 뉘해언고 본 내해다마 아 엇디릿고 서울 밝은 달에 밤 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은 앗아간 것을 어찌하리오단평 : 처용가는 처용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고 있는 역신(疫神)을 물리치기 위해 부른 노래라고 한다. ‘본디 내 것이지만 앗아간 것을 어찌하리오’ 라는 구절은 체념과 관용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신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태도로 대하는 여유로움과 부정적이지 않은 생활 태도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아무 배경 지식이 없이 봤을 떄 처용가는 단순히 풍기 문란을 비판하는 노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7. 혜성가(彗星歌) - 융천사舊理東尸汀叱乾達婆矣游烏隱城叱良望良古倭理叱軍置來叱多烽燒邪隱邊也藪耶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月置八切爾數於將來尸波衣道尸掃尸星利望良古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如後句 達阿羅浮去伊叱等邪此也友物比所音叱彗叱只有叱故녜 믌 乾達婆 노론 잣란 라고 예ㅅ軍두 옷다 燧얀 이슈라 三花 오보샤올 듣고 두 즈리 혀렬바애 길 별 라고 彗星여 여 사미 잇다 아으 아래 갯더라 이 어우 므슴ㅅ 彗ㅅ기 이실꼬 예전 동해 물가 건달파가놀던 성을 바라보고왜군이 왔다고봉화를 사룬 변방이 있어라.삼화의 산 구경 오심을 듣고달도 부지런히 등불을 켜는데길쓸 별을 바라보고혜성이여 사뢴 사람이 있구나아으 달은 저 아래로 떠 갔더라이보아, 무슨 혜성이 있을고.단평 : 이 향가에서 혜성은 왜군과 동일시되어 부정적 이미지로 쓰이고, 흉조로 인식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찾아본 자료에서는 ‘혜성을 물리치는 주술의 노래’라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달도 부지런히 등불을 켜는데 무슨 혜성이 있느냐’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어지러운 인심을 가라앉히고 앞으로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라는 느낌이 들었다.8. 원왕생가(願往生歌) - 광덕(廣德) /광덕의 처月下伊底亦西方念丁去賜里遣無量壽佛前乃惱叱古音(鄕言云報言也) 多可白遣賜立誓音深史隱尊衣希仰兩手集刀花乎白良願往生願往生慕人有如白遣賜立阿邪 此身遣也置遣四十八大願成遣賜去하 이뎨 西方장 가샤리고 無量壽佛前에 닏곰다가 고샤셔 다딤 기프샨 尊어 울워러 두손 모도호 願往生 願往生 그릴사 잇다 고샤셔 아으 이몸 기텨 두고 四十八大願 일고샬까 달님이시여, 이제서방 정토까지 가시려는가.(가시거든)무량수불 앞에일러 사뢰옵소서.맹세 깊으신 부처님께 우러러두 손을 모아왕생을 원하여 왕생을 원하여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사뢰옵소서.아, 이 몸 남겨 두고마흔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단평 : 이 향가는 광덕이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노래라고 한다. 달님을 서방정토에 이르는 사자로 여겨 달님에게 무량수불(아미타불)에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청원하여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간절히 표현한다. 처음에 나는 이것을 광덕의 친구인 엄장이 부른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뒤에 나오는 ‘이 몸 남겨 두고 마흔 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라는 표현이 꼭 남겨진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을 따르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처럼 느껴졌기 떄문이다.9. 원가(怨歌) - 신충物叱好支栢史秋察尸不冬爾屋墮米汝於多行齊敎因隱仰頓面矣改衣賜乎隱冬矣也月羅理影古理因淵之叱行尸浪 阿叱沙矣以如史沙叱望阿乃世理都 之叱逸烏隱第也後句亡자시 안 이우리 디매 너 엇뎨 니저 이신 울월던 치 겨샤온 그림제 녯 모샛 녈 믈결 애와티 라나 누리도 아쳐론 데여 뜰의 잣(栢)이가을에 아니 이울어지매너를 어찌 잊겠는가 하신우러르던 낯이 계시온데달 그림자 옛 못(淵)의가는 물결 원망하듯이얼굴이야 바라보나누리도 싫은지고!단평 : 원가는 신충이 자신을 잊은 왕을 원망하며 부른 노래라고 한다. 왕과의 약속을 변함없는 잣나무로 표현하고 약속이 잊혀짐을 유동적인 물결로 표현한 완곡함이 신충의 사람됨을 느끼게 한다.10. 제망매가(祭亡妹歌)- 월명사(月明師)生死路隱此矣有阿米次伊遺吾隱去內如辭叱都毛如云遺去內尼叱古於內秋察早隱風未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一等隱枝良出古去奴隱處毛冬乎丁阿也 彌刹良逢乎吾.道修良待是古如生死路 예 이샤매 저히고 나 가다 말ㅅ도 몯다 닏고 가닛고 어느 이른 매 이 저 딜 닙다이 가재 나고 가논곧 모온뎌 아으 彌陀刹애 맛보올 내 道닷가 기드리고다 삶과 죽음의 길은 이에 있음에 두려워하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 세계에서 만나볼 나는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 단평 : 제망매가는 죽은 누이에 대한 추모의 노래이다. 죽음을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형제를 같은 가지에 난 잎사귀로 적절히 비유하여 애틋한 혈육의 정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죽음에 대한 슬픔을 미타찰에서 다시 만나겠노라고 종교적인 승화의지로 발전시킨 것은 불교의 윤회사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떠난 누이에 대한 애달픔이 가슴 깊이 느껴지면서도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아 공허한 느낌이 든다.11. 안민가(安民歌) - 충담사(忠談師)君隱父也民隱愛賜尸母史也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民是愛尸知古如窟理叱大生以支所音物生此惡治良羅此地捨遺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國惡持以支知右如後句 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國惡太平恨音叱如君은 어비여 臣은 샬 어여 民 얼아고 샬디 民이 알고다 구믈ㅅ다히 살손 物生 이흘 머기 다라 이 리곡 어듸갈뎌 디 나라악 디니디 알고다 아으 君다이 臣다이 民다이 나라악 太平니다 君은 아비요 臣은 사랑하실 어미요, 民은 어린아이라고 하실진대 民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 꾸물대면서 사는 백성들 이를 먹여 다스려져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할지면 나라 안이 보전할 것을 알 것입니다. 아, 君답게 臣답게 民답게 할 것이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사물시사물시는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시, 일반적으로 물질현상을 노래하는 시, 순수시 등을 포함한다. 이미지스트 시인들은 사물을 사물성 속에서 제시한다. 순수시는 사물시의 변주이며, 죠지 무어처럼 이미지의 구성을 통한 순수한 재현ㆍ관조의 세계를 창조한다. 사물시는 이미지스트의 시이든,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시이든, 순수시이든 한결같이 관념을 죽임으로써 관념의 허위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미지스트의 경우, 체계적인 추상화의 세계, 곧 과학의 세계에 대한 혐오가 시적 동기를 이룬다.다알리아-정지용-가을볕 째앵하게내려쪼이는 잔디밭.함빡 피어난 다알리아.한낮에 함빡 핀 다알리아.시악시야, 네 살빛도익을 대로 익었구나.젖가슴과 부끄럼성이익을 대로 익었구나.시악시야, 순하디 순하여 다오.암사슴처럼 뛰어다녀 보아라.물오리 떠돌아 다니는흰 못물 같은 하늘 밑에,함빡 피어나온 다알리아.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다알리아.'시인을 찾아서'에서 신경림은 이렇게 말했다. -이때 지용은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구식 여성인 아내와는 다르게 발랄하고 싱싱한 소녀와의 사랑에. 하지만 여러 기록은 그가 별로 탈선을 하지 않은 모범적인 생활인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이처럼 이 시에서는 다알리아(달리아)를 '시악시야, 네 살빛도 / 익을 대로 익었구나. / 젖가슴과 부끄럼성이 / 익을 대로 익었구나. / 시악시야, 순하디 순하여 다오. / 암사슴처럼 뛰어다녀 보아라.'와 같이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처녀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마치 햇볕이 내리쬐는 청명한 초가을 날, 벤치에 앉아서, 잔디밭에 함빡 핀 다알리아와 그 옆에서 줄겁게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여고생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그림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물오리 떠돌아 다니는 흰 못물 같은 하늘'은 정말 못물에 비친 하늘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실적이면서도 감상적인 시각의 이미지로 다가온다.모밀꽃3-정태준-당신은永遠한 아름다움까만 表皮 속에 감추어진白雪의 사랑은오직나만이 가져야할 所望입니다온 밤을오롯이 달빛 모아행여가냐른 여린 마음 엿보일까그믐밤으로 감싸 안은 채모나게 새초롬 짓는情熱의 숨결은빠알간 대궁에 물들여 놓고스칠 듯 스칠 듯향그러움하이얗게 언덕으로 피어 올라우리들의 이야기가 묻어 나오고지금은허기진 사연이전설되어 흐르는데먼 빛으로소리 없이 손짓하는女人들의 群舞갈 곳 잃은 詩心이허공을 맴돌다아스라한 追憶으로보일 듯 보일 듯가슴에 밀려들 오는슬프도록 하이얀 아름다움이여정태준 시인의 「모밀꽃3」은 메밀꽃이라는 사물을 자아화하여 얻어진 사물시(physical poetry)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메밀꽃의 생태학적 특성이나 감각적 특질을 예리하게 잡아내어, '白雪의 사랑, 새초롬 짓는, 여인들의 群舞' 등과 같은 서정적인 표현으로 메밀꽃의 여성적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달빛 속에 하얗게 비치는 메밀꽃을 수줍은 여인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 인상깊다. 또한 '지금은 / 허기진 사연이 / 전설되어 흐르는데'와 '갈 곳 잃은 詩心이 / 허공을 맴돌다 / 아스라한 追憶으로 /보일 듯 보일 듯 / 가슴에 밀려들 오는 / 슬프도록 하이얀 아름다움이여'에서 보면 앞서서 표현된 향토적인 아름다움이 잃어버린 것을 추억하는 듯 비극적으로 인식되어진다.관념시관념시는 관념을 노래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사물의 세계를 파고 든다. 사물시가 비록 순수관념이긴 하지만 어떤 관념을 노출한다면, 관념시는 관념을 은폐하기 위하여 사물시처럼 보이도록 노력한다. 모든 관념시의 목적은 관념의 전달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관념시는 시를 가장한 과학이거나, 체계적 추상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관념시의 약점은 사물을 해설할 뿐 참된 시가 못 되는 점에 있다. 참된 시는 사물의 해설이 아니라, 사물의 진실한 이미지를 보여 준다.바위-유치환-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애련(哀憐)에 물들지 않고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드디어 생명도 망각(忘却)하고흐르는 구름머언 원뢰(遠雷)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두 쪽으로 깨뜨려져도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이 시는 의지의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유치환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시이다. 그가 여기서 노래하는 바위는 바위 그 자체로서보다 어떤 이념 또는 의지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일체의 감정과 외부의 변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초탈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의 한계성을 극복하여 시간의 흐름에도 굴하지 않는 초연한 존재로서의 바위를 꿈꾸는 것은 허무한 삶에 대한 정신적 극복의지라고 볼 수 있겠다.폭포-이형기-그대 아는가나의 등판을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질주하는 전율과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벼랑의 직립(直立)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그대 아는가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그 때 하늘 높이 날으던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무수한 복안(複眼)들이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그대 아는가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시퍼런 빛줄기2억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이 시의 대상인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또한,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 자신이 아닌 '산'이며,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의 청자인 '그대'가 되어 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 시퍼런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는 지울 수 없는 고통이며, 연속된 '벼랑의 직립'에서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를 피우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이 '한 마리 장수잠자리'를 통해 잘 나타나있다.형이상시랜섬에 의하면 형이상시는 관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인간의 몸짓이다. 시적 충동이 관념 때문에 자유롭지는 않으나, 시인은 자유를 즐기기 위하여 관념적 체계, 과학적 논리에 저항한다. 사물의 이미지들과, 인식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과학은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충동을 통하여 인식을 극소화하지만, 예술은 인식적 충동을 통하여 이성을 극소화한다. 결국 현대의 형이상시는 과학의 보완, 담화의 개선을 노린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들어가며시인이 말하길 새들마저 뜨고 싶은 세상이란, 정의 사회 구현의 구호 아래 숙정과 통폐합 바람이 부는 가운데 컬러 텔레비전에서 연일 팔육 팔팔을 떠들던 80년대초 국운상승기였다. 그런 이 땅을 떠나자는 이 불경스러운 시집은 80년대 시의 한 상징으로 남았다.이 시집은 시적으로도 불순했다. 골목벽보, 시사만화, 속칭 [빨간책]의 한 대목, 상업광고 등 시인이 선진조국 서울의 일상 속을 어슬렁거리며 마주치는 [세상 돌아가는 꼴]이 시에 원색적으로 삽입된다. 이를 두고 당대 평론가들은 시의 형태파괴, 혹은 해체시의 전범이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정작 시인은 그런 거창한 비평용어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현실이 일그러지면 시도 일그러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내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형식을 쓰려고 했다. 나는 시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두려워할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전하려는 메세지가 급했다. 그게 남들 눈에는 형태파괴로 비쳤던 모양이다."이 시집에는 스트레스 해소용의 풍자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학을 전공한 시인의 회화적이면서 감각적 이미지들이 현실을 아파하는 시인의 처절한 심정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시들이 도처에 번득인다. 시인이 먼 바다를 날아가는 철새떼의 자유와 쌍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때 그가 속한 80년대적 현실의 조건은 더욱 더 비극적 색깔을 분명히 한다. 삶이란 저 너머에 아름다움이 있기에 슬프고, 그처럼 슬픈 삶을 지고 가는 인간의 초상은 아름답다는 것이 이 시집의 전언이다. 조선일보 97년 11월 11일 기사◈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지금은 사라졌지만 영화관에서는 애국가 연주와 대한 뉴스를 내보낸 뒤에 영화를 시작했다. 뉴스 매체가 적었던 시절이라서 대한 뉴스는 시민들에게 나름대로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단단히 해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애국가 연주도 마찬가지다. 일제 식민 통치와 동란을 체험한 국민들에게 애국가는 국가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단합된 힘으로 국가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관의 애국가와 대한뉴스는 관습화되어 자율을 구속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풍습이 되어 버렸고 독재정권의 타율적인 강제로 생각되기까지 이르렀다.이 시에서 애국가는 청중들로 하여금 모두 기립하게 하고 또 앉게 만드는 구속력을 가진 보이지 않는 강제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관람석의 불이 모두 꺼진 캄캄한 극장은 바로 암울한 현실 상황을 표상하며, '삼천리 화려 강산'을 배경으로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하는 관객들은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맹목적인 삶을 따라야 했던 당시의 민중 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한 사람인 화자는 애국가 화면에서 끼룩거리면서 날아가는 을숙도 철새들처럼 지상적인 구속을 벗어나 한세상 떠메고 자유롭게 세상 밖으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은 다시 애국가의 마지막 구절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와 함께 제 자리에 주저앉게 만드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여기서 '삼천리 화려 강산'이란 풍자의 대상인 조국이 더 이상 '화려 강산'일 수 없다는 역설로 쓰이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이 시에서 애국가는 관중들을 일어서게 하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고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으라고 강요하는 정치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고 있다. 시인은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애국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억압하는 유신정권 시대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인 시적 표현-고향의 이미지『80년대 한국시문학의 한 지류를 따라 지금까지 흘러온 저의 시적 연혁도 제 고향이 갖고 있는 두 모습, 자연적 아름다움과 사회적 불행을 체화하는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황지우 시인은 자신의 문학인생을 갈무리해 펴낸 「문학앨범」에서 고향 남녘의 풍토가 오늘의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새삼 고백했다.이 시집의 첫번째 시인 '연혁(沿革)'에서 드러나는 그의 고향은 '저희는 雨期의 처마 밑을 바라볼 뿐 가난은 저희의 어떤 관례와도 같았습니다.'와 '빈 항아리마다 저의 아버님이 떠나신 솔섬 새울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에서 보듯 가난과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간인 길림성 봉천 역시 '우리 세상은 국경에서 끝났고 다만 우리들의 털 없는 흉곽에 어욱새풀잎의 목메인 울음 소리 들리는 저 길림성 봉천'(만수산 드렁칡1)과 '길림성 옛 갈대밭에서 입에 손 모으고 호명하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고/.../그곳에도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고'(手旗를 흔들며)에서처럼 황량함이 묻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에 드러나는 고향은 이처럼 어두운 이미지를 띄움과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을 통한 회귀의 꿈을 가지게 한다. 그는 '活路를 찾아서'와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씨의 어느 날'에서와 같이 일상적인 현실에 대한 풍자를 하며 다른 어디론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그 다른 어딘가를 '물결 하나가 수만 겹의 물결을 데리고 와서/ 나의 애간장 다 녹이는/ 조이고 쪼이는/ 내 몸뚱어리 빨래가 되고/ 오 빨래처럼/ 시신으로 떠내려가도/ 저 율도국으로 흘러가고 싶다'(파란만장)에서 고향의 배경이 되는 물의 이미지-海圓(제1한강교에 날아든 갈매기)으로 표현한다. 또한 '새들이 내 흉곽으로 기어들어와/ 날개 짓는 소리가 소란하다/ 내려가고 싶다/ 유리 같은 땅'(이 문으로)에서 보듯이 고향에서 보았던 그 물위를 날아가던 새와 시인을 동일시하려 하고 있다. 이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그는 잘못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잘못 날아왔었다', '병아리의 사체를 들어올리면서 그때야 나는 거기에, 아주 작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날마다 건너는 것인데도 강을 건던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 같다'(제1한강교에 날아든 갈매기, 시작메모1,2)며 현실적인 한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