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05cmko&idx=43468"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05cmko&idx=43469"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05cmko&idx=43470"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05cmko&idx=43471"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05cmko&idx=43472"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05cmko&idx=43473"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05cmko&idx=43474"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05cmko&idx=43475" 브랜드: 옙광고주: 삼성전자on air: 2004.10.08대행사: 제일기획제작사: 아프리카Copy:자막 : 유노윤호 역시 옙!yepp!시아준수 역시 옙!yepp!NA : 역시 옙좋은 광고• 전략적 측면에서의 ‘옙’ 광고시장 상황 분석경쟁업체인 아이리버가 시장 점유율(55%)로 업계 1위 리더를 유지하고 있고올해 02월 MP3 업계에 진출한 삼성 옙(25%)이 약 8개월 만에 다른 중소업체를 뒤로하고 2위를 차지하였다.소비자 분석주요 구매자는 음악감상을 위한 10대와 음악감상과 학습기능을 중시하는 20대 소비자가 있다. 이 중 10대는 감각적인 면(디자인)을 제품 선택 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브랜드 분석경쟁사인 레인콤의 ‘아이리버’는 기술력과 초기 MP3 시장에 입소문을 타고 브랜드 파워로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자사인 삼성의 ‘옙’은 삼성의 이미지와 유통력을 바탕으로 빠른 시간에 2위에 올랐고 여세를 몰아 1위 ‘아이리버’를 맹추격 중이다.광고 전략주 표적 집단인 10대 후반 20대 초반 집단에게 빅모델인 가수 ‘동방신기’를 기용하여 주목도를 높였다. 그리고 단순한 빅모델이 아닌 제품과 관련있는 가수 모델을 기용하여 ‘비디오뱀파이어’효과를 줄였다.•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의 ‘옙’ 광고광고 시기 및 활용 매체제품 특성인 5가지 이퀄라이저(음색)에 맞게 동방신기 다섯 맴버를 매치 시켜 7.5초 광고 5편을 만들어 15초 광고 3편을 제작 TV-CM 집행주로 표적집단이 주로 보는 음악방송에 배치함.주요 소비자10대 후반의 남녀(동방신기와 또래로 광고 주인공과 자신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음)Tone & Manner각 맴버의 이퀄라이저(음색)에 따라 다음과 같은 BGM을 사용함시아준수편 (YP-53)곡명: Mad capsule market 가수: Sunny Beach RD믹키유천편 (YP-T6)곡명: Mambo Italiano 가수: Dean Martin유노윤호편 (YP-ST5)곡명: Method of Mayhem 가수: Narcoti영웅재중편 (YH-999)곡명: If you leave my world 가수: MLTR최강창민편 (YH-920)곡명: EnjoY Yourself 가수: A+음향기기의 특성 상 타 광고에 비해 BGM볼륨이 조금 크게 만들어져 음질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하고 있음.중심 메시지“다양한 음악을 즐기는 우리를 위한 옙!”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14cmko&idx=43476"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14cmko&idx=43477"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14cmko&idx=43478"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14cmko&idx=43479"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14cmko&idx=43480"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14cmko&idx=43481"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14cmko&idx=43482" HYPERLINK "./storyboard_show_big.asp?code=6814cmko&idx=43483" 브랜드: 해태 맛동산광고주: 해태제과on air: 2004.10.12대행사: 하쿠호도제일제작사: PYXCopy:CMsong : 맛동산, 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해태 맛동산해태 맛동산남 : 동방신기 얼만큼 사랑해요?여 : 맛동산 만큼자막 : 동방신기를 부르는 스낵해태 맛동산모두 : 사랑하는 만큼 드세요나쁜 광고• 전략적 측면에서의 ‘맛동산’ 광고시장 상황 분석현재 우리나라 과자시장은 2조원 이상으로 4대 제과회사(롯데, 해태, 오리온, 크라운)와 기타 스낵전문회사 그리고 다국적 식품 회사가 참여하여 치열한 경쟁을 보이고 있다. 저관여 제품 시장으로 신제품 많고 사라지는 제품도 많다.소비자 분석스낵의 가장 큰 소비자는 10대 여고생이다. 그들은 식사 후 혹은 식사 대용으로 매점에서 스낵을 구입한다.브랜드 분석1975년 출시되어 해태제과를 대표하는 제품.특유의 바삭 함에 땅콩의 고소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맛“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라는 CM이 유명광고 전략30년간 장수한 제품의 특성으로 브랜드의 이미지가 현재 주요 소비계층에게 ‘옛 것’ 이라고 인식 되는 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현재 10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5인조 가수 ‘동방신기’를 모델로 함. CM송을 리믹스하여 10대에게 다가감.※ 전략적 측면에서의 ‘맛동산’ 광고는 표적 집단에게 적절한 모델 기용과브랜드 자산인 CM송을 이용하여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맛동산’ 광고광고 시기 및 활용 매체저녁 시간대에 TV CM만 집행주요 소비자10대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음.다른 서브타깃에는Tone & Manner‘동방신기’의 콘서트 실황을 재현한 젊고 열광적인 분위기.중심 메시지“사랑하는 만큼 드세요” – 광고 메시지로 부적절한 직접적인 메시지.※ ‘맛동산’ 광고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현 상황에서 적절한 광고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광고 메시지로 부적절한 메시지를 사용하고 있어 전략적으로 좋지만 나쁜 광고이다.좋은 광고와 나쁜 광고?좋은 광고란 한 마디로 광고 목표를 이루는 광고이고나쁜 광고란 당연히 광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광고이고 더 나아가 소비자를 우롱하는 광고라고 생각합니다.11월 현재, 여러 매체에 무수한 광고가 집행 중입니다.이 중 같은 모델을 기용하였지만 좋은 광고와 나쁜 광고로 희비(?)가 엇갈린 TV-CM을 소개하겠습니다.
10월 5일 화요일 가을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높았다. 아침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수원 집으로 출발하여 전날 뽑아둔 ‘신륵사’자료와 카메라를 챙겼다. 어릴 때부터 여러 절을 가보았지만 수업의 연장으로 가는 것이라 ‘신륵사’로 향하는 마음가짐이 약간은 무거웠다. 수원역에 도착하니 평일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뽑은 자료를 보니 ‘신륵사’는 수원에서 한 시간정도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여주에 있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벌써 해는 중천이었다. 한 시간에 딱 한 대있다는 여주 행 버스. 버스 출발 시간까지 15분이 남아있었고 시외버스 터미널은 버스 다섯 정거장이었다. 이번 여주 행 버스를 놓치면 시간이 너무 촉박해진다. 결국 예산 초과였지만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 역에 도착, 뛰어서 아슬아슬 여주 행 버스를 탔다. 버스를 놓칠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았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추수를 앞둔 황금물결과 푸른 하늘을 보며 한 시간이란 시간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도착한 여주 시외버스 터미널은 예상 외로 깔끔하였다. 어디를 갔을 때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것이 터미널과 역인 것 같았다. 수원에서 택시를 탔던 것에 대한 ‘아픔’이 배에서 전해졌다. 위장이 밥을 넣어달라고 야단법석이었다. 하지만 예산 초과. 어쩔 수 없이 천 원짜리 김밥 세 줄을 포장했다. 남한강의 풍치와 김밥. 김밥이 열 배는 맛있을 것 같아 위장을 조금 달래어 보았다. 여주 터미널에서 신륵사까지는 버스로 10분 정도 거리이고 택시로는 삼천 원이라는 상세한 신륵사 정보를 보고 무작정 버스를 기다렸다. 오 분 정도 기다렸을까? 인상 좋은 아주머니 한 분이 “학생 어디 가요?”하고 물으셨다. “예. 신륵사에 가려고요.”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친절하시게 “학생 신륵사는 건너편에서 타야하는데...”하시는 거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 감사해서 여러 번 인사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엉뚱한 곳에서 신륵사를 찾을 뻔 했다. 역시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라 사람들도 친절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버스가 왔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고 했던가.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신륵사 행인지를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속력을 내더니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여주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기사 아저씨께서 신륵사가 다음 정거장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드디어 신륵사 정거장에 내렸다. 그런데 예상외로 신륵사는 안 보였다. “산에 있는 건가?” 약간 걱정이 되었다. 시간은 벌써 두 시. 문제는 위장이었다. 밥 힘이 최고인데 점점 갈등이었다. 하지만 참은 만큼 더 맛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본능을 억눌렀다. 다행스럽게도 오 분정도만 걸으면 신륵사 일주문에 도착할 수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주변은 여주 도자기 축제 준비 때문인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사찰을 예상했는데 실망이었다. 일주문에 도착했을 때 그 실망이 더 커졌다. 일주문을 새로 만들었는지 단층을 입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옷을 입지 않고 손님을 맞는 경우였다. 일주문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면 실망이 덜했을 것 같았다. 일주문을 지나 흙길을 따라 걸었다. 오른쪽으로 황포돛배 나루터가 외롭게 남한강을 지키고 있었다. 평일에 특별한 불교 행사가 없어서인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앞에는 족히 백 년은 넘어 보이는 단풍나무가 있었다. 아직 푸른 기를 가지고 있는 모습에 드문드문 붉게 물든 모습이 수줍어 보였다. 매표소에서 천팔백 원을 주고 입장권을 샀다. 입장권에는 ‘신륵사다층전탑’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전각배치도가 없어 조금 아쉬웠다. 인터넷에서 뽑은 전각배치도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준비 없이 찾은 사람에게는 많이 아쉬운 부분일 것 같았다. 나는 미리 생각해둔 순서대로 신륵사의 중심인 ‘극락보전’으로 향했다. 다른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라고 했다. 현재 ‘극락보전’은 조선 정조 때 건축한 것이라고 하니 이백 년의 세월이 흐른 건물이었다. 지붕은 수업시간에 배운 팔작지붕 형태였고 기둥은 민흘림기둥, 초석은 자연석 초석이었다. 내부 중앙에는 불단위에 중생을 위하여 자비를 베푼다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극락보전’ 내부 대들보에 나옹화상의 필적이라고 하는 ‘천추만세千秋萬歲’ 현판이 걸려 있었다. 합장을 하고 삼배를 했다. 한 결 가슴이 시원해졌다. ‘극락보전’의 앞에는 보물 225호인 ‘신륵사다층석탑’이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져있었고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8층 석탑이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8층 몸돌 위에 지붕돌 하나와 몸돌 일부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층수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극락보전’의 뒤편으로 ‘조사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아담한 크기에 모양이 조금 특이했다.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보물 180호로 지공, 나옹, 무학 화상의 덕을 기리고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영정을 모셔둔 곳이었다. 중앙에 나옹화상, 좌에 지공화상, 우에 무학 대사를 봉안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나옹화상의 나무로 된 독존이 있었다. 틈틈이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다. ‘조사당’ 뒤 쪽으로 돌계단을 오르니 ‘신륵사보제존자석종’이 보였다. 언뜻 봐서 군대있을 때 보았던 총알탑 모양이었으나 그건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복학생의 안목이었다. ‘보제존자석종’은 나옹화상의 사리탑이라고 했다. 석종의 꼭대기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을 하고 있었다.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대표한다는 설명이 되어있었다. 석종의 앞에는 보물 231호인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이 있었다. 석등은 한 가지 암질이 아닌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세월의 흔적이 보였지만 세밀한 조각이 되어있던 중심부가 많이 훼손 되어있었다. 석등의 화강암과는 다른 암석으로 만들어진 듯 했다. 특히 조각의 형상이 사람 손에 훼손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석종과 석등 뒤로 보물 229호인 ‘보제존자석종비’가 있었다. 글이 많이 훼손되어 읽을 수가 없었다. 사실 몰라서 못 읽었다. 마침 지나가는 보살님께 석등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돌계단을 내려왔다. ‘극락보전’ 뒷길을 지나자 ‘칠성각’이라는 조그만 건물이 눈에 띄었다. ‘칠성각’은 토속신앙이 불교와 유합되면서 사찰 내에 조성된 전각이라 했다. 내부에는 칠성탱화와 산신 등이 모셔져 있었다. 다시 ‘조사당’과 ‘극락보전’을 거쳐 내려왔다. ‘극락보전’ 다음으로 규모가 큰 건물이 있었다. ‘구룡루’라는 다른 사찰의 전위누각에 해당하는 전각이었다. 신륵사는 주불전인 ‘극락보전’이 남한강을 마주하고 있어 다른 사찰의 전위 누각과 다르게 통로가 아니라 정자로서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구룡루’라는 이름은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 시 아홉 마리 용이 부처님을 목욕 시켰다는 경전 내용에서 따왔다고 한다. 길을 따라 보물 230호인 ‘대장각기비’로 향했다. 고려말 목은 이색과 나옹의 문도들이 함께 공민왕의 명복을 빌고자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라고 한다. ‘보제존자석종비’와 동일한 법으로 만들어져있다. 현재 많은 부분이 깨어져 전문을 해석할 수 없다고 한다. 대장각은 자취를 찾을 수 없고 이렇게 ‘대장각기비’만이 남아있다. 다음으로 가장 기대했던 보물 226호 ‘신륵사다층전탑’을 찾았다. ‘대장각기비’의 맞은편에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었다. 전탑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으로 흔하지 않은 형식이라고 국사시간에 배운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전탑을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누나에게 들은 지식으로 탑에 대해 분석을 해보았다. 기단은 화강암인 것 같았고 육층 혹은 칠층인 것 같기도 했다. 탑의 북쪽에 탑을 수리하며 만든 비가 있는데 거기에 써있는 정보에 의하면 지금 탑의 형태가 만들 당시의 모양과는 많이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탑의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고 그 위에는 ‘강월헌’이 있었다. 본래 이 누각은 나옹화상의 화장터였던 곳에 있었으나 1972년 홍수로 옛 건물이 떠내려 간 후 지금 자리에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누각에 오르는 계단의 난간이 전체적인 조화를 깨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난간은 얼마 전에 만들어진 듯 유난히 반짝였다. 그래도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어느 덧 노을과 어울려 아름다웠다. 문득 가방에 있는 김밥이 생각이 났다. 신륵사의 매력에 빠져 배고픈 줄 몰랐나보다. 역시 참은 보람이 있었다. 삼천 원 어치 김밥이 꿀맛 같았다. 김밥을 먹으며 강 건너편의 아파트 공사현장이 보였다. 아름다운 경치를 가질 아파트였지만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김밥을 게 눈 감추듯 먹었더니 목이 멨다. 아까 봐두었던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오는 길에 다람쥐를 발견했다. 살금살금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어릴 때 보고 오랜만에 본 다람쥐여서 너무 반가웠다. 물을 마시고 신륵사를 떠나는 데 노을이 지며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른 신륵사가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여주의 다른 고찰인 ‘고달사지’를 시간이 없어 못 돌아본 것이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마음이 맞는 친구와 여주에 다시 오고 싶다. 좋은 사찰과 좋은 사람들이 있는 여주가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