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의 근원에 대한 물음과 ‘시가 내게로 왔다’는 제목의 심층을 음미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구체적인 시작품을 만나면서 공감하고 공명하는 여정이 잘 느껴지는 글입니다.좋은 표현을 파란색으로 표시해 보았습니다.쪽 번호를 달아놓았습니다.시와 하나 된 온기를 느끼며- 김용택,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고시는 어디서 오는가. 시의 근원을 쫓는 끝없는 물음과 외침은 끝내 하나의 값으로 수렴하지 못한 채 미지수의 영역으로 남았다. 이렇듯 시를 읽는 독자는 시인의 손끝에 다다른 문자들의 향연이 단순히 작가의 의식과 경험에서 비롯된 산물인지, 세계의 진리를 표방한 더 큰 지향점을 향해 있는지 판단할 도리가 없다. 어쩌면 시를 감상할 때 시의 시작점을 찾는 것처럼 무모한 도전은 없을지도 모른다. 시 감상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시를 창작한 시인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를 건네받은 독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재창조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김용택 시인의 문집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을 때면 짧고 간결한 책 제목에서부터 시인의 견고한 시 인생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김용택 시인은 시를 ‘시가 내게로 왔다’라고 표현했다. 시가 지닌 모호함의 정서를 한 마디 집약된 문장으로 한 번에 정리한 셈이다. 나는 이 문장으로 미루어 볼 때 김용택 시인에게 있어 시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라고 짐작한다.먼저, 시를 읽는 행위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존재했던 타자의 세계가 독자 내면세계로 옮겨오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개별적 문자로 존재했던 타자의 언어가 나라는 존재와 맞닿으면서 직접적인 관계 맺음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는 상호 간의 소통을 통해 이질적 세계가 통합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고 존재의 전환, 즉 세계의 중심이 교체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시는 언어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오롯이 작가 개인의 전유물로 기능한다. 언어의 틀로 옮겨지지 않은 생각은 제 가치를 입증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추상적인 생각이 실제 문장 단위로 실현되어 발화될생명력을 지닌 주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시의 소재는 따로 정해진 기준이 없다. 내 삶의 단면 어느 것도 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늘 일상이란 시를 만난다. 하루 동안 직면하는 가지각색의 관계와 상황의 속성은 의도적 노력 없이 주어진 것들이다. 시는 삶에 찾아와 살아 숨 쉬는 무한한 생명력을 지녔고 사람은 일상 속 작은 것들에서 벅참과 울림을 느끼며 시의 존재를 확인하곤 한다. 인간의 삶과 필연적으로 동행하는 시란 존재는 끊임없이 우리 내면에 되살아나 현재의 나를 자극한다.김용택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왔다》는 시인 본인의 창작물을 담은 출판물이 아니다. 특이하게도 본인의 글이 아닌 ‘시인 김용택이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한 시들’을 모아 엮어낸 책이다. 김용택 시인은 자신이 문학을 공부하며 읽었던 시인들의 시 중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아 숨 쉬는 49편의 시를 선정해 추천한다. 산골에서 선생으로 일하며 한평생 문학에 빠져 살았던 그가 좋아하는 다른 시인의 시라니 얼마나 대단한 작품일까 읽기 전부터 한껏 독자의 촉수를 자극했다. 김용택 시인은 다른 시인의 시 작품에 본인의 감상과 해석을 가만히 덧대어 책을 엮었다. 자신이 시를 통해 체험한 내면의 울림에 독자도 동참하기를 바라서였을까 일종의 시 속 세계로 가는 초대장을 건네받은 기분이었다.다음으로 시집을 읽으며 마음에 남았던 몇 가지 작품에 대해 나의 개인적 감상을 남겨보고자 한다. 김용택 시인이 엮은 문집을 통틀어 읽어보면 그는 유독 자연을 그린 시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사계절의 공기가 얼굴에 바로 맞닿는 듯한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먼저, 언급할 시는 정현종 시인의 라는 시다. 시 자체의 표현은 생각보다 간결하다. 하지만 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전혀 가볍지 않다. 시인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나도 시인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다. 오늘날 현대인은 나무가 인간 삶에 미치는 자생적 힘의 형상을 잊고 살아간다를 나무에 깃들여 사는 삶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날 자연의 가치를 훼손하는 현대인의 무자비함은 인간 태초부터 함께했던 인간 삶의 터전을 영원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 미관상의 이유로 집 뒤의 상수리나무가 모조리 베어지는 현장을 목격했다. 어린 시절 유일한 놀이터였던 우리 집 뒷산이 공허한 공터로 변해갈 때마다 나무에 새겨진 추억이란 나이테가 하나씩 도려내지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인간이 돌아갈 나무의 품이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건 인간의 나약한 내면을 어루만지고 품어주었던 진정한 포용의 공백일 것이다. 자연을 돌보고 가꾸어야 하는 건 자연이 인간 소유하에 종속적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본체이기 때문이다.두 번째는 정호승 시인의 라는 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시인의 한 구절 한 구절 진심 어린 말이 따뜻한 위로가 되어 내 마음을 휘감는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라는 시인 정호승의 산문집을 불과 몇 주 전 읽은 기억이 있다. 산문집을 통해 미리 접했던 시였던 만큼 이번 문집 어귀에서 다시 읽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인간 정호승의 내면을 짧게나마 엿본 직후라 그런지 스치듯 라는 시 제목을 보자 오랜 지인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불쑥 튀어나왔다. 시인은 수선화에 빗대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했다고 고백한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이른 봄 피어나 작은 봄바람에도 일렁이는 수선화의 한없는 연약함이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떠올리게 했다고 한다. 시인은 많고 많은 봄꽃 중에 왜 유독 수선화를 인간의 외로움에 비유했을까. 내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주의’, 한 마디로 ‘자기애’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르시스가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물속에 빠져 죽자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났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은 흔히 홀로도 외롭지 않은 견고한 내면을 가진 사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당당함경험이 없는, 어쩌면 자리를 내어 주었다가도 더 큰 내면의 외로움을 대면하고 숨은 사람 같다. 자신 안에 갇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마주 볼 수 없는 사람은 얼마나 외로울까. 이 시를 읽고 사람마다 제각각 삶의 외로움이 있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우리가 어찌 타자의 외로움의 크기를 함부로 재단하고 우열을 가릴 수 있으랴.정호승 시인의 시구절은 그 자체로 따뜻한 끌림을 가졌다. 시 중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내려온다.’라는 표현이 있다. 해 저물면 산 그림자 드리우는 것이 자연의 이치거늘 어찌 이를 외로움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지 평범한 존재를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아는 정호승 시인의 시선이 참신하면서도 경이롭기만 하다. 자신의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살아있음을 확인받고자 하는 종소리처럼 인간은 원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존재다. 오늘날 사회는 꾸밈과 허울로 내면의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써야만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외로움의 정서에 병적인 시선을 들이대던 시대는 지났지만, 외로움과 고독이 인간이기에 주어지는 자연적 속성임을 인정받기에는 아직 이르기 때문인 것 같다. 시인은 인간은 외로운 것이 당연하며 외로움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디며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나 아닌 누군가도 외롭고 아프다는 사실이 내 상황을 직접 구제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만 외길을 걷고 있지 않다는 것 자체에 크나큰 위로를 느꼈다. 동질감에서 오는 위로만큼 큰 위로도 없다는 걸 시인은 알고 있는 듯하다.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힘든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내면의 나약함을 회피하려고 안간힘 쓰던 때가 많았다. 감정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없이 작고 하찮게 느껴져 자책도 했었다. 시인의 말을 듣고 나니 극복하지 못해도 있는 그대로 외로움을 수용하고 견뎌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 일인지 깨달았다. 그동안 공연히 채찍질만 당한 내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외로움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평생. 여섯 줄의 짧은 문장이 순식간에 끝이 났다. 시를 다 읽었을 때쯤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나를 적셔왔다. 그때부터 비로소 진짜 시 감상이 시작되었다. 시의 할머니는 홀로 농사를 지으며 고단한 삶을 보내는 인물이다. 할머니의 외로운 인생길 위에는 자신과 닮은 소 한 마리가 놓여 있다. 할머니와 소가 일생을 동행하며 하루의 고단함을 나눠 갖는 장면은 애틋하면서도 무언의 슬픔이란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김종삼 시인의 짧은 시에서 우리 할머니가 보내온 90년 남짓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비춰 보는 기분이었다. 평생을 홀몸으로 농사지어 자식 다섯을 굳건히 키워내신 할머니. 키우던 소를 하나씩 팔아 자식 대학 보냈다던 할머니의 얘기가 그 시절 어른들의 삶을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동요했다. 고달픈 할머니의 외길을 곁에서 알아주고 함께할 사람 하나 없는 현실이 참으로 마음 아팠다. 소의 목덜미에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갖다 대는 대목에선 사람과 짐승이란 구분 없이 대상 간의 거리감이 좁혀지며 존재의 일체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과 나귀 이 둘의 관계가 떠오른다. 장돌뱅이 인생의 고됨과 외로움을 나귀란 존재를 통해 위로받고 위안 삼는 인물의 모습이 이와 크게 닮아있다고 느꼈다.시의 제목 ‘墨’ 뜻을 검색해보니 먹으로 그린 동양화라는 뜻이란다. 제목을 알고 보니 시의 내용이 마치 한 편의 수묵화처럼 눈에 그려지는 것 같다. 저마다 다른 인생의 이야기를 갖고 살아가는 개별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시라는 짧은 언어를 통해 잠시나마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과거를 추억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한 것 같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시의 놀라운 힘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시인이 구사하는 문체적 독창성도 주목하고 싶다. 시인은 별다른 말 없이 고요히 전개되는 적막함으로 독자가 스스로 더 많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덧붙여 시의 마지막 두 문장을 보면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끝을 맺는다. 이는 시인이 전다.
이번 학기 ‘재무제표분석’ 전공과목을 수강하면서 기업 재무제표의 흐름을 읽고 기업의 관점에서 기업 성과를 어떻게 보고하는지 추론해보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부채비율 조정을 위해 영구채를 발행하거나, 유형자산을 처분하는 등 기업의 경영성과 개선을 위한 다양한 회계처리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재무재표분석 활동에서 활용했던 회계이론들을 접목하여 다양한 실제 사례를 제시하고 있어 기업 실정에 맞는 회계처리가 무엇인지 재확인할 수 있어 유익했다.첫째, 1장에서 제시된 ‘빅배스’ 회계처리는 유형자산손상차손 감가상각을 통한 비용 절감을 통한 발생 원인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전임자와 신임자의 관계성으로 설명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얼마 전 기사에서 갑작스러운 주가 상승으로 빅배스 논란이 된 기업의 소식을 접했다. 기자의 발언이 큰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규제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고 논란을 빚었던 것이 생각난다. 빅배스가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의사결정에 큰 혼란을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기업이 악화된 경영상황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인지 빅배스 효과를 노린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지 그 판단의 모호함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덧붙여 국내, 국제적으로 어떻게 이를 규제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둘째, 제일모직 사례를 읽으며 자산재평가의 단기효과와 기업 결정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었다. IFRS 도입에 따라 자산재평가가 전면적으로 허용되면서 기존 통용되던 원가모형과 새롭게 도입된 재평가모형 간의 단순비교 어려움이 증가했는데, 기업 간 정보를 비교하는 정보이용자 관점에서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또한, 자산을 재평가할 때 기업마다 재평가 대상으로 삼는 자산의 항목이 상이하고 복잡하므로 기업의 재무제표를 볼 때 기업들의 재무비율, 회사의 공시내용을 면밀하게 살피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셋째,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에서는 CJ E&M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내용이 인상깊었다. 펀드매니저는 애널리스트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애널리스트의 연봉이나 평판이 결정되는 일종의 갑을 관계에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애너리스트와 펀드매니저 간의 불공정한 정보 공유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강력한 유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또 공정공시제도가 존재하지만 이 제도는 개인에 대해 형사처벌 할 수 없고 기업만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기업이 아닌 개인 간의 불공정한 정보공유 문제나 상하관계 안의 부정은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 법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레임에 갇히지 말라’라는 문장처럼, 정해진 틀에 갇혀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컬어 우리는 ‘프레임’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맥락상 어렴풋이 알고 있던 용어였는데, 심리학자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 소개를 통해 ‘프레임’이 문제를 보는 관점, 사고방식, 나아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선택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하는 마음의 창이라는 것을 알았다.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먼저, 1장에 실패를 부르는 ‘회피프레임’이었다. 성취하는 사람은 ‘접근’ 프레임을 갖고, 안주하는 사람은 ‘회피’ 프레임을 가진다는 해석이 나의 경험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공감이 갔다. 성취지향적인 사람은 실제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실패가능성에 주목하기보다 보상에 주목하고 도전하고 본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과정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무슨 일을 시작하기까지 수차례 주저하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회피 성향, 일종의 ‘회피 프레임’이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번째, 3장에 ‘자기중심적 프레임’, 그 중에서도 ‘허위합의 효과’를 보면서 자신의 의견, 선호, 신념, 행동 전반에 자기중심적 필터가 덧씌워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름대로 객관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타인의 의견을 왜곡없이 수용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미 시작점 자체가 스스로의 ‘자기중심적 프레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니 더 조심스러워지는 측면도 있었다. 저자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때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중심적 프레임을 적용하고 살아가면서도 정작 그 주체가 되는 나조차 프레임 체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반응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경우 스스로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기 위해 자기검열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하다. 또한, ‘자기중심적 프레임’은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는데 왜곡된 굴절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의견과 생각을 개진하기 위해 필수적인 소통의 창구라고 생각한다. 즉, ‘프레임’이 자기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창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 책은 자기중심성이 만들어내는 심리학적 오류를 꼬집어내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그 프레임의 작용을 조절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알아내는 과정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셋째, 경제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프레임’의 작용 부분에서, 합리적 소비를 가로막는 ‘이름 프레임’이 인상깊었다. 돈에 붙여지는 이름에 따라 돈을 다르게 쓰게 된다는 단순한 원리가 사람의 소비행태를 좌지우지 한다는 점에서 작은 마케팅 기법들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키는지 실감이 났다. 경제적 합리성의 기본은 돈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실제로 할인 품목 상품을 구매할 때면 ‘원래 가격’이라는 명목하에 충동구매를 절약으로 정당화 때가 많았다. 돈의 가치를 절대적인 액수가 아닌 ‘원래 가격’이라는 상대적 가치로 파악한다는 문장이 허점을 찔렀다. 상품 값이 항상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고, 9로 끝나는 마케팅 기법도 연상적으로 떠올랐다.
무가 특징① 무속신화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 많음, 건국신화는 주로 남성 중심② 전문직업인에 의해 구연, 구연무당에 따라 세부적 내용이 달라져 무속 연구에서 누구 구연본인지 중요③ 주술성, 신성성, 전승 제한, 오락성, 율문 전승1. 특징- 만주족 신화- 여신들의 세계에 대한 내용으로, 여성이 중심이다.- 창조신부터 천지 자연을 관장하는 신까지 생명과 자연현상에 모두 여성신의 성격을 부여- 창세신화의 성격우주와 인간, 자연 현상에 대한 본풀이: 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샤먼의 기원을 밝히는 샤먼 본풀이이면서 세계와 인간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본풀이줄거리천지의 세 자매신 아부카허허, 바나무허허, 와러두허허, 이 세 창조여신에 의해 하위신이 파생되어 천지 자연을 관장하는 신부터 악신 예루리까지 세계가 창조됨.한국 신화와 만주 창세신화① 은 자연 신화적 요소가 강함,: 자연현상을 창세여신 아부카허허의 몸의 일부, 또는 움직임의 결과로 파악자연에 대한 만주족의 애정과 외경을 발현인간의 본질적 대립 문제인 선악, 생사 문제를 다룸아부카허허와 예루리의 싸움 과정에서 따뜻함과 얼음, 빛과 어둠, 생과 사, 존재와 소멸의 문제, 즉 자연과 인간의 총체적 갈등과 대립을 신들의 행위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우주 만물 생성 원리를 신들의 관계를 통해 다양하게 제시한다.※창세신화: 창세가, 천지왕본풀이, 천궁대전제주도/ / ① 공통점: 우주 창조에 대한 근원적 본풀이, 즉 창세 신화적 성격을 지님.② 차이점: 우리 신화는 남성 신격이 최고신, 만주족 신화는 여성 신격이 최고 주재자였다가 신화의 결미에서 남성신으로 변화여성 천신이 다른 여신과 여자를 만들고 남성은 나중에 창조창조와 생명 활동의 중심이 여성, 여성 신격 중심-하늘에서 천지왕이 (신격)이 내려와 지상의 여신과 결합해서 이승, 저승을 다스릴 신격을 낳음.최고 주재자 미륵이 개벽 후 세상의 혼돈을 수습하는 존재지 우주와 인간의 창조자는 아님. 일월조정 줄거리대별왕, 소별왕이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없었음, 부친 찾아 자청비에게 산에 문도령을 보다가 우마를 잃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자신이 속은 것을 안 자청비가 그를 죽임. 부모는 일 잘하는 남종을 죽였다고 자청비를 집에서 내쫓음.⑥서천꽃밭의 사위가 된 자청비, 죽은 정수남을 살리려 혼을 불러옴.자청비는 남장을 하고 서천꽃밭으로 가서 부엉새를 잡아주는 공을 세우고 그 집의 사위가 된 후 생명꽃을 얻어와 정수남을 살림. 부모는 여자가 남자를 죽였다 살렸다 한다고 다시 내쫓음.⑦ 문도령과의 재결합⑧ 문도령과의 결혼자청비는 시부모가 낸 칼선 다리 건너기 시험을 통과하고 문도령과 결혼⑨문도령의 죽음과 환생자청비가 남장을 하고 서천꽃밭으로 가 환생꽃을 가져다가 문도령을 살려냄.⑩ 음모를 꾸민 병사들을 무쇠 수제비와 무쇠 방석으로 물리침나라에 변란이 일어나자 자청비가 서천꽃밭에 가서 생명을 죽이는 악심꽃을 가져와 난을 진압⑪농경신으로의 좌정공을 인정받아 하늘옥황으로부터 ‘오곡종자’와 ‘열두시만국’을 얻어 지상으로 내려오고, 정수남을 목축신으로 삼음.신의 체계, 관계하늘 상세경: 문도령지상 중세경: 자청비(농경신)하세경 정수남(목축신)제주도 문화적 특성뜬땅: 농사 짓기 힘든 척박한 토지, 목축으로 땅을 눌러 줘야 함하늘: 기후적 측면, 변덕이 심해 통제가 필요즉, 자청비가 중심에 위치하면서 상세경, 하세경 문제를 조절하는 역할자청비가 문도령과 맺은 일방적 관계, 정수남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했던 이유무속 원리1. 변신샤머니즘, 신과의 접촉을 위해 새로운 세계로의 타계 여행자청비가 두 번의 남장-문도령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당 진입, 자청비의 남동생이라 속이고 성적 정체성을 감춤. - 서천 꽃밭에 꽃 구하러 갈 때(남장하고 사위가 되어 결혼, 꽃을 가져옴)- 남장의 의미: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갈 수 없는 공간을 진입2. 혼 부르기남장해서 서천 꽃밭을 가서 붕새로 변한 정수남의 혼을 부름.3. 샤먼 의식: 칼선 다리 건너기‘칼선 다리 건너기’는 만주식의 성무식과 유사- 불 붙은 석탄 위를 걷는 의식작두 위 춤 추는 행위를 연상 , 의 딸은 한송이 명진국 딸은 많이, 저승할망은 부정 이승할망은 긍정※주인공의 등장 지연 : , 의 강림도령, 의 명진국 따님※, , 샤먼은 신과 인간의 영매로서의 기능무속 신화에서 바리공주, 오늘이, 치히로: ‘주인공’은 타개 여행을 경험원래 있던 세계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진입: 제의적 죽음다른 사람을 도우며 자신도 성장, 치히로가 강의 신, 하쿠, 보의 문제 해결에 동참터널, 다리, 탈해(제의적 죽음)※농경신: , 농업 신은 주로 여신, 여성이 가진 생명의 상징성자청비: 농경의 신, 제석본풀이(당금애기) : 삼신, 아들들은 풍요 관장(제석신은 농업적 풍요)신화는 인간 세상의 현상, 문화의 전범을 만드는데, 이를 설명해주는 역할자청비가 칼선 다리 건널 때 다리가 베임 ? 옷에 피가 나는데 이는 월경을 의미천하국의 대목신과 지하국 지탈부인이 혼인하여 황우양씨를 낳는다. 황우양씨가 성장하여 혼인하고 황우뜰에서 살고 있는데, 천하궁의 누각이 쇠동풍에 무너져서 이를 다시 세우려고 황우양씨를 부른다.황우양씨는 천하궁 차사에게 잡히어 부인이 만들어준 집 짓는 연장을 가지고, 부인과 작별하고 천하궁을 향해 출발한다. 이 때 부인은 길 가는 도중 누가 말을 걸더라도 말대꾸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황우양씨가 소진뜰을 지나다가 소진랑과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의 말에 속아 옷을 바꾸어 입는다. 소진랑은 황우뜰로 가서 황우양씨의 부인을 납치하여 소진뜰로 데려온다. 그러나 부인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시일을 연기하며 정절을 지킨다.한편, 황우양씨는 꿈자리가 산란하여 문복을 해 보고 집안에 변고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서둘러 천하궁의 일을 마치고 황우뜰에 이르러 부인의 혈서를 발견하고 즉시 소진뜰에 다다른다.황우양씨는 우물에서 부인을 만나 그간의 사연을 듣고 청새·홍새로 변신하여 부인의 치마폭에 숨어서 소진랑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소진랑을 잡아 장승을 만들어 세워 놓고, 소진랑의 부인은 서낭을 만들고 그의 자식들은 노루·사슴·까마귀·까치 등으로 만든다.황우양씨 부부는 다시 황우엄치기, 모래성 쌓고 넘나들기, 짚북과 짚닭 울리기 등의 시험을 거쳐,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스님과 세 아들의 피가 합쳐지는 것을 확인하고, 친자임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신직을 부여한 후, 스님과 당금애기는 승천하고 아들 삼 형제는 제석신이 되었다.※, 서사 구조 유사① 부부가 딸을 가짐, 딸 홀로 두고 외출② 스님에 의해 딸이 잉태③ 딸이 가족에게 쫓겨남.④ 세 아들 출산※, 비교홀어머니에게 태어난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가서 만난다는 심부담, 아버지의 친자 확인 시험① 의 삼 형제는 당금애기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묻고, 스님을 찾아 서천국의 절을 방문아버지의 친자 확인 시험: 신성성의 증명(손가락으로 피를 내어 세 아들의 피가 합쳐지는 것) 이후 인정② 의 아들 ‘유리’가 성장 후 아버지 ‘주몽’을 찾아 떠남, 아버지 인정을 받고 왕으로 즉위아버지에게 신성성을 증명하는 과제 수행: 몸을 들어 공중에 솟아 창문을 타고 날아 하늘에 닿음: 도술로 잉태(신이), 잉태한 여주인공의 시련(버림 받음), 아이들이 부친을 찾는 것원부인은 아들 ‘할락궁’을 출생, 성장하면서 김장자에게 고역, 도망나와 서천 꽃밭으로 아버지를 찾아가는데 김장자가 할락궁이 도망한 것을 알고 원부인을 살해. 할락궁은 서천 꽃밭에서 회생의 꽃을 얻어 어머니를 회생시키고 김장자 일가를 죽임, 모자는 서천꽃밭에 가서 꽃밭대왕이 됨.남선고을의 남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일곱 아들을 두고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여산부인이 남편에게 무곡(貿穀)장사를 하도록 권유하자 남선비는 배를 타고 장삿길에 나섰다.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닿은 남선비는 노일제대귀일 딸의 꾐에 빠져 재물을 탕진하고 그녀에게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다. 남선비는 그녀가 주는 겨죽으로 연명하며 몇 년을 지내는 동안 영양실조로 눈마저 멀었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여산부인은 아들들이 만들어 준 배를 타고 남편을 찾아 오동나라에 닿았다. 남편을 찾아 헤매던 여산부인은 우연히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남편의 행방을 뒤집어쓰고 앉아 자신이 바로 그 점쟁이인 척하면서 일곱 아들의 간을 먹어야 낫겠다고 한다. 어리석은 남선비는 그 꾐에 빠져 아들들을 잡을 생각으로 칼을 간다. 뒷집에 사는 청태산마귀할머니가 불을 담으러 왔다가 남선비가 칼을 가는 연유를 물어 알고는 이 사실을 일곱 아들에게 귀띔한다.이 말을 들은 막내아들이 자신이 아버지 대신 여섯 형의 간을 꺼내 오겠으니 아버지는 나중에 자신만 처치하라고 속이고는 형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간다. 일곱 형제가 지쳐 졸고 있는데,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 “노루 한 마리가 내려올 텐데 그 노루를 포위하여 죽이려고 하면 알 도리가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과연 노루 한 마리가 내려오기에 일곱 아들이 그 노루를 둘러싸고 죽이려 하였더니 노루가 조금 있으면 산돼지 일곱 마리가 내려올 테니 어미는 살려 두고 새끼들의 간을 꺼내 가라고 알려 주었다. 아들들이 기다리니 과연 산돼지 일곱 마리가 내려와 새끼 여섯 마리의 간을 꺼내었다. 막내가 형들에게 자신이 소리치면 들이닥치라고 하고는 산돼지 새끼 간 여섯 개를 가지고 노일제대귀일의 딸에게 가서 먹으라고 주었다.그러고는 문틈으로 엿보았더니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그 간을 먹는 척하고는 자리 밑에 감추는 것이었다. 막내아들이 들어가 노일제대귀일 딸의 머리채를 칭칭 감아 끌어내어 마을 사람들에게그 죄를 알리고 형들에게 소리쳐 들이닥치게 하였다. 이렇게 되자 놀란 남선비는 달아나다 정낭(집의 입구에 대문 대신 걸쳐 놓는 굵은 막대기)에 목이 걸려 죽어 주목지신(柱木之神)이 되었고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화장실에 들어가 목을 매어 죽어 화장실의 신인 측도부인(厠道婦人)이 되었다. 일곱 형제는 서천꽃밭으로 가 환생꽃을 따다가 주천강 연못에 빠져 죽은 어머니를 살려 조왕신으로 모시고 일곱 형제는 각각 신직을 차지하였다.※가신: , 옛날 동경국이란 곳에 버물왕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아들 아홉 중 위로 셋, 아래로 셋이 죽어 가운데 셋을 소중히 기르고 있었다. 그러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들의 죽음을 예언하자 버물왕이 스.
1. 해방 이후 반세기 문학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적 요건은 ( 식민지 지배 )로부터의 해방과 ( 민족분단 )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역사 체험이다.2. 해방 이후 한국 문학은 1) 해방에서 ( 한국 전쟁 )에 이르는 시기, 2) 1950년대 초에서 1960년대 후반, 3)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세 단계로 시기 구분이 가능하다. 이 경우 각 단계의 속성은 1) 민족문학의 재확립, 2) 문학과 현실의 분열, 3) ( 문학적 자기발견 )과 ( 사회적 확대 )라는 세 가지 특질로 규정될 수 있다.3. 해방 직후 문단에는 ( 식민지 시대 문학의 청산 )과 ( 새로운 민족문학의 건설 )이라는 두 가지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해방 직후 문단적 상황의 변화 과정은 두 가지 측면으로 규정되는데, 첫째는 정치적 현실의 제반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해방 직후 문단의 변화과정이 문학인들의 내적인 필연성이나 어떤 욕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4. 임화, 이태준, 김기림, 김남천, 이원조 등에 의해 해방과 함께 가장 먼저 조직된 문학 단체는 ( 조선문학건설본부 )이다. 그리고 위의 인물들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민족 계열의 문화인들 중에서 변영로, 오상순, 박종화, 김영랑, 이하윤, 김광섭, 김진섭, 이헌구 등이 별도의 문화 단체인 ( 중앙문화협회 )를 설립하였다. 이기영, 한설야, 송영, 윤기정 등은 위의 노선에 반발하여 각 부분의 문화 예술인들을 규합하여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좌익 계열의 단체는 조선 공산당의 종용으로 1945년 12월에 ( 조선문학가동맹 )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통합을 이루었다. 그리고 민족진영의 문인들도 ( 전조선문필가협회 )를 창설하여 문학인으로서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공헌하고 민족 문학을 발정시켜 나가자는 강령을 채택하였다.5. 일제 잔재의 숙청작업의 구체적인 과제로서 해방 직후의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었던 것은 ( 국어 정화 작업 )과 ( 친일 또는 부일의 작품은 세태 풍자를 통해 작가들이 행한 현실 비판을 보여준다.11. 좌익 문인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 진보적 리얼리즘 )이란 ( 이데올로기 )의 소설적 실천을 의미한다. 이런 소설적 실천으로 ( 지하련 )의 , ( 안회남 )의 , ( 이근영 )의 , ( 이태준 )의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 백철 )의 좌우문단 통합론으로부터 구체화된 ( 중간파적 입장 )은 정치 추종의 문학에서 벗어나 문학적 건강성을 회복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중간파의 문학적 지향이 백철의 주장대로 현실적이며 신윤리적 의식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지목하고 있는 ( 염상섭 )의 , , ( 황순원 )의 , , ( 최정희 )의 , , 그리고 ( 안수길 )의 , 박화성의 등에서 볼 수 있다.12. 해방 공간의 ( 좌익연극운동 )을 주도한 극작가 가운데 송영, 신고송, 함세덕, 박영호 등은 계급의식에 바탕을 둔 연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이 발표한 대부분의 희곡작품은 이념성이 강한 목적극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 송영 )의 , 이 대표적인 작품이며, 1930년대 과 을 통해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살려내 낭만주의적 극적 경향을 보여 주었던 ( 함세덕 )은 을 통해 작가적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좌익 진영의 정치적 목적극과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극작가로 아래의 두 명을 들 수 있다. ( 유치진 )은 를 통해 3.1운동을 소재로 항일 운동의 문제를 그려내고 있다. ( 오영진 )은 , 등의 작품을 통해 현실 사회의 비리와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주제로 하고 있다.13. 해방 당시 시단에서 해방 직후의 열정을 실감 있게 보여주는 세 권의 합동 시집을 간행한 바 있는데, , , 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해방 직후 시단에서 좌익 진영에 가담하여 가장 활발한 창작 활동을 전개한 시인은 박아지, 설정식, 오장환, 이용악, 임학수 등이다. 그런데 정치적 이념을 주장하기 위한 이른바 정치시가 서정 양식으로서의 시형태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의 설적 배경으로 수용하면서 소설이 지켜온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의 은 서사성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의 구조를 해체하고 오히려 대담하게 관념의 단편들을 대입하고 있다. ( 김성한 )의 소설은 소극적이며 순응적인 인간상을 배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구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동적 인간형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는데, 그의 과 의 경우에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적 의지를 그려놓고 있다. ( 선우휘 )는 , 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 등의 작품을 통해 상황에 대한 인간적 결단과 참여를 중시하는 행동주의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 손창섭 )의 소설에서 부정적인 인간상의 창조는 인간 존재에 대한 냉소 어린 모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상황성의 중압감을 선뜻 감지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그의 대표작은 , , , , , , 을 들 수 있다. ( 이범선 )의 소설적 관심은 에서와 같이 민족의식과 역사 감각에 머물지 않고, , , 등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비판의 정신으로 확대된다. 또 ( 전광용 )은 단편 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역사적 격동기를 체험하는 주인공 이인국 박사의 패배적 역정을 풍자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민족의 수난사를 부각시킨 를 통해 자신의 작가적 관심을 집약시키고 있다.17. ( 전후현실의 암울함 )과 그에 대응하는 ( 문학 정신의 치열함 )을 전후 문학의 주류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인간의 내면세계를 진지하게 탐구하기도 하고 전통적인 윤리의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폭넓게 그려내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토속적 공간과 향토적 정서를 추구한 작가로 ( 오영수 ), ( 정한숙 )을 비롯하여 농촌 생활을 소재로 역사적 수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나 주체적인 민족의식이 토착적인 세계 속에서 외래적인 것과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준 이나 과 같은 작품을 창작한 ( 하근찬 )을 들 수 있다.18. 전후 소설 문단에서 여류 작가들의 일상의 현실과 삶의 체험을 자신의 시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후기 시에는 에서처럼 삶에 대한 달관의 자세를 더욱 잘 보여준다. ( 조지훈 )은 이후 , 등의 시집으로 전후의 자기 세계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전후 현실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과 그 조건을 날카로운 감각으로 표출시켜 놓고 있는 ( 박남수 )의 노력은 시집 로 집약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미지 자체의 역동성이 지적인 균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시집 으로 묶여졌다. 그리고 청록파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세계에 대한 비판으로 구체화된 모더니즘 시운동을 보이는 ( 후반기 ) 동인은 김경린, 조향, 박인환,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등이 주축을 이루어 만들어졌다. 이들의 관심은 도시 문명의 불안한 인상이거나 개인의 내면 의식의 미궁이었다. 그리고 전후 시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위의 동인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절대적인 신앙에 근거하여 관념적인 자기 추구에 집착했던 ( 김현승 )과 존재의 의미와 언어의 가능성을 시의 세계에서 가늠하고 있던 ( 구상 ), ( 김춘수 )의 업적이 이 시기 시적 경향의 한 가닥을 대변하고 있다.22. 전후 문학의 성격이 전환기적 고비를 맞이하게 된 것은 ( 4.19 혁명 )과 관계가 깊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거대한 열망과 부정부패에 대한 단호한 비판을 동시에 내포함으로써, 정치 사회적인 측면만이 아닌 사람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중대한 정신사적인 전환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문학의 경우에는 전후문학이 빠져들었던 위축과 나태와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전후 의식의 극복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진폭을 남기고 있는 비판적 쟁점은 ( 문학의 현실 참여 )와 관련된 문단의 분파적 논쟁이다.23. 시의 ( 현실 참여 문제 )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시인은 ( 김수영 )이다. 그의 시가 지적인 언어와 서정성의 조화를 추구한 것이라면, ( 신동엽 )의 경우에는 시를 통해 전통적인 서정성담고 있다. 위의 작가가 ( 감성 )의 작가라면 ( 관념 )의 작가로 ( 이청준 )을 지목할 수 있다. 그는 , , 등에서 현실과 관념, 허무와 의지 등의 대응 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한다. 그의 소설적 작업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우 활발하게 전개하여 지적이면서도 관념에 빠져들지 않으며,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냉정하게 포착하여 그 자신의 독특한 소설적 구도 속에 담아놓고 있다. 그의 , , , 등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이 대결 관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26. 전후 극문학의 변화는 ( 이근삼 )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 그는 희극 를 발표하면서 전통적인 리얼리즘극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한국 극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풍자성을 강조한 이 작품에 비해 그의 은 혹독하게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풍자적인 기법과 예리한 현실 인식은 상류층의 삶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과 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27. 한국 사회는 1970년대에 급격한 ( 산업화 )의 과정에 돌입하여 여러 가지 사회 변동을 겪게 된다. 경제의 급성장과 근대적인 산업체제의 확립, 도시의 확대와 대중문화의 확산, 사회 구조의 변화와 생활 패턴의 다양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의 확대 등은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한국 사회의 변모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관심사가 되었던 문학의 현실 참여 문제는 ( 참여 )와 ( 순수 )의 양분법적 대응 논리에서 벗어나 당대 현실의 문제와 문학의 지향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쟁(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 상업주의론, 농민문학론, 민중문학론, 노동문학론)으로 이어져 비평 활동의 양상은 창작의 영역에도 직결되고 있다. 소설의 경우 주제적 측면에서 볼 수 있는 ( 사회적 관심의 확대 )라든지 장르적 측면에서의 ( 장편화 ) 추세 등은 모두 리얼리즘에 대한 평단의 논의를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사회적 모순에 대한 소설
1) “개화기 소설의 유형학에 대하여”개화기 서사문학은 창작연대적으로 1903년경부터 1919년까지 창작된 작품을 통칭하며, 역사·전기, 번안, 창작소설 등의 다양한 서사 양식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먼저 개화기 소설은 서사의 양식적 요건에 따라 장편 서사와 단편 서사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장편 서사는 인물과 행위의 구조를 바탕으로 장대한 형식 속에 다채롭게 변화하는 세계가 나타난다. 이와 달리 단편 서사는 구조적 체계성이 부족하여 이야기의 서사성보다 주체성을 강조하며 심미적 충동보다 현실 상황과 관련되는 지적 또는 윤리적 요구가 강하게 드러난다.개화계몽 시대 대표적인 단편 서사 장르로는 ‘우화’와 ‘풍자’가 있다, ‘우화’는 인간의 행동 원리나 도덕적인 명제를 예시하는 짤막한 이야기로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지적 도덕적 요구에 따라 당대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문학 양식이다. 대표작으로 안국선의 은 현실 비판과 새로운 이상 제시를 위해 우화적 성격을 활용하고 있다. ‘풍자’는 관념적인 주제나 이론을 다루며, 당대 사회지배 담론의 언어적 표상들을 비판하거나 논리적 허구성을 풍자하는 공격성을 지닌다. 대표작으로 은 소외된 인물의 삶을 통해 내실은 가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개명 개화를 비판하고 대내적인 면에서 진정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둘째, 개화기 소설의 서사 양식은 경험 서사와 허구 서사로 분류할 수 있다. 경험 서사는 신채호, 장지연과 같은 전통적 지식인 작가들이 주목했던 ‘역사·전기소설’이 이에 해당한다. 역사·전기소설은 이야기가 경험적 현실 세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인물, 사건, 배경의 실재성이 강조된다. ‘역사·전기소설’은 1905년경부터 대두하여 일제에 의한 경술국치를 전후해 사라진 애국계몽 사상의 전파를 담당했으며, 번안과 전기적 요소가 뒤섞인 이 계열의 작품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적 소설이라기보다 당대 지사들의 애국계몽 운동의 결실이라 볼 수 있다.개화계몽 시대에 소개된 ‘영웅 전기’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 근거해 독자적인 장르로 분류할 수 있다. ‘영웅 전기’는 일본적 식민주의 담론의 확대에 대응하면서 민족 공동체 의식의 구현, 외세에 대한 저항, 자주독립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영웅 전기’로 장지연의 은 침략적인 외세로부터의 영국군과 위기에 몰린 프랑스 상황에서 한국의 현실을 우의적으로 드러내면서 한국인에게 경각심을 주는 애국심 고취의 역할을 하며, 신채호의 영웅 전기 은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한 구국적인 인간상을 제시한다.허구 서사로는 이인직, 이해조와 같은 작가들이 주목한 ‘신소설’이 있다. ‘신소설’은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에 의하여 이야기가 구성되는 허구 서사로 작가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인물의 삶의 과정을 그려 가는 심미적 충동이 중요시된다. ‘신소설’은 개화계몽 시대의 서사 양식 중 가장 대중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근대소설이 요구하는 사실성과 허구성의 전체적인 조화에 근접하면서 경험적 사실과 개인의 일상을 구현하고 있다. 이인직의 부터 ‘신소설’이란 용어가 등장했으며, 이해조의 , 등 대중적인 흥미를 위주로 한 신소설의 대중적 확대가 이뤄졌다. 최찬식의 대표작 과 같이 청춘 남녀의 애정 갈등과 사회 윤리 문제를 다루면서 신소설의 통속화 과정이 이뤄졌다. 1910년대 ‘신소설’은 가족 윤리의 붕괴, 물질적 욕망의 확대 등과 같이 식민지 상황에서 새로이 이루어진 가치관의 혼란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신소설’은 국문체를 서사적 문체로 정착시킨 대표적인 문학 양식이며 허구적 장편 서사 양식이 많고 개인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서사 양식의 주제를 통해 장르적인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한편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의 의미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신소설의 주인공이 한계를 지닌다.마지막으로, 개화기 소설의 유형으로 ‘번역·번안 소설’을 들 수 있다. 근대적 소설 개념이 정착되기 이전 개화기 소설은 ‘창작’만이 아니라 ‘번역·번안 소설’이 상당수를 차지했으며, 번역·번안의 대상으로는 세계 문학 전체와 한국 고전 소설까지도 포함한다.는 오락성에 치중했음을 느낄 수 있다. 가장 많은 수의 ‘번역·번안 소설’은 역시 애정물로 대중적인 것은 조중환에 의한 이다.2) “1920년대 전반기 근대시의 형성 과정과 제 양상”1920년대 전반기 시 문학은 3·1운동 실패를 계기로 하여 큰 문학적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 사건의 결과 대두한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적 물결은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낭만주의 문학’은 1920년대 초 3.1 운동 실패라는 암울한 정서를 바탕으로 감상적이면서 퇴폐적인 시적 경향을 보였다. 즉 인류의 좌절과 절망의 경험이 ‘눈물, 애수, 절망, 밀실, 어두움’ 등의 퇴폐적인 정서로 시 속에 자유롭게 유출된 것이다. 이는 식민지 통치 체제가 고착화된 당시의 암울한 현실에 기인함과 동시에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젊은이들의 정열이 문학 이외의 분출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시인들은 3.1운동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발견하고 민족의 정서를 민족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게 되었다.1920년대 근대시의 구체적 양상으론 ‘자유시와 시적 형식의 발견’, ‘시적 정서의 발견’, ‘낭만적 열정과 현실의 인식’을 큰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초창기 시단에 등단한 김억, 황석우 등은 서구 근대시에 기초하여 시적 형식과 율격에 자유시의 성립 기반을 확립했다. 김억의 는 시의 형태적인 실험을 다양하게 전개하여 한국 근대시의 새로운 시적 형식 정립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요한은 김억에 의해 확보되기 시작한 근대적인 자유시의 시적 형태를 정립하는데 기여한 시인으로, 그의 대표작 를 보면 한국의 근대시가 민족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고 국어의 미와 생명을 창조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용운은 당대 문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앞장섰던 승려였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던 저항적인 지식인으로 민족과 시적 인식을 담아냈으며, 대표작으로 이 있다. 김소월의 대표작 , 는 자연에 대한 인식, 정감의 세계를 중요시하여인식을 동시에 보여준다.이 시기의 시들은 비록 감정의 무절제한 발산을 보이기도 했지만, 형식상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표현하는 근대적 자유시의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3) “신경향파 문학과 KAPF의 전개과정”1920년대 ‘한국 근대문학’은 일제강점기 치하 민중의 궁핍한 생활상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지식인들의 현실비판의식이 폭넓게 제기되는 문학적 경향이 마르크스주의와 결합 되면서 조직적으로 확대되었다. 1920년대 민중 문학은 이전의 감상적 낭만주의, 자연주의 문학의 경향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경향의 새로운 문학으로서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했다.‘신경향파 문학’의 등장은 계급문학 운동의 전개 과정과 맞물려 이해되어야 한다. 계급문학 운동은 마르크스주의를 근거로 1925년 결성된 ‘KAPF’를 기반으로 대중적 실천을 도모했다. KAPF는 염군사 계열과 파스큘라 계열의 합동단체로서, 무산계급 문화 수립을 목표로 활동하다 두 차례의 방향전환 후 1935년 해체되었다.KAPF의 제1차 방향전환은 1927년 조직의 확대 개편을 통해 계급문학 운동의 실천이념과 노선을 제시하며 이뤄졌다. 이후 급진적인 사회주의자 조직인 ‘제3전선’파의 국내 계급 문단 진출을 통해 조직의 대폭적인 개편이 이뤄졌으며 무산계급 운동의 방향전환은 부분적 투쟁으로부터 조선의 민족적 정치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KAPF의 제2차 방향전환은 신간회 해체에 자극을 받은 KAPF가 1931년 볼셰비즘으로 기울어 ‘전투하는 계급의식’을 내세워 비로소 ‘당의 문학’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극좌적 이데올로기를 품은 동경의 소장파들이 주축이 되어 KAPF의 장악한 것이 제2차 방향전환이다. 안막, 김효식, 임인식, 권환 등이 중심인물이고, 이때부터 KAPF의 서기장으로 임인식이 선임되었다.KAPF의 해산은 동북사변(1931) 후 치안유지법 강화의 영향으로 한국의 사상탄압이 강화되어 일어났으며, KAPF 제1차 검거(1931.2), 제2차 다양한 탈식민지주의적 문학 담론을 생산했고, 그 결과 노동소설, 농민소설, 계급 시 등의 집단적 문학 형식이 나타났다.‘신경향파 소설’은 크게 ‘농민소설’과 ‘노동소설’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농민소설은 계급문학 운동의 창작적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농민들의 삶을 계급적 성격과 관련지어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최서해의 은 궁핍한 현실과 삶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이기영의 은 계급문학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농민들의 다양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리얼리즘 소설적 성취를 보여준다. 농민 문학론은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계급적인 위상을 문학의 관심사로 부각시켰다는 의의가 있다.둘째, 노동소설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되는 노동조건과 노동환경 등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투쟁 과정을 주된 소재로 다룬다. 노동자와 지배 자본가의 계급적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전위적 성격의 창조가 노동소설의 주된 목표라 할 수 있다. 송영의 소설 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겪는 인종적 차별과 계급적 박대를 보여주며, 자신의 노동 체험을 바탕으로 체험적 주체성을 소설로 구현했다. 이북명의 , 등의 작품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당한 노동조건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한설아 소설 은 노동 계급의 예술적 참여와 투쟁적 의식의 고양에 적극적 관심을 보여준다.4) “1930년대 소설의 양상을 작가의 성향과 관련하여 설명”1930년대 소설은 1935년 KAPF 해체 이후 1920년대 한국문학의 주조를 형성하고 있던 집단적 이념 추구의 경향이 개인과 일상의 문제로 전환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프로문학의 지나친 이념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문학적 반발로 그 결과 소설은 식민지 현실과 계급 이념의 문제를 떠나 문학적 관심의 다원화가 나타나게 된다.1930년대 소설에서 확인되는 ‘모더니즘적 경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인의 내면 의식의 추이를 다양한 서술 기법을 통해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더니즘 소설’은 궁극적으로 창조의 삶 그 자체라고.
1-1 문학사 방법론(1) 한국의 근대문학은 한국 사회의 근대적 변혁 과정에서 형성된 공동체의 산물로, 한국 근대문학의 대상과 범주는 문학의 보편성과 역사적 실재성에 근거한 ( 논리적 체계 )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근대 문학은 ( 국문체 )를 기반으로 성립된 새로운 문학 양식의 총체이다.(2) 문학사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 문학 텍스트 )를 역사적 실체로 취급하며, 그 존재 방식과 의미와 가치를 하나의 ( 역사적 )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며, 문학사는 과거 문학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발견하고 재구성해야 할 논리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학사 연구는 문학 텍스트에 대한 역사적 ( 설명 )과 문학적 ( 해석 )을 동시에 수반한다.(3) 국어국문 운동은 민족어로서의 국어와 국문의 재발견을 통해 한문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언어적 의미론적 ( 탈중심화 )의 지향을 강화하고 있다. 국어국문 운동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또 하나의 민중 운동은 ( 독립협회 )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치 개혁 운동이다. 국한문 혼용 방식의 기능적 효용성과 이념적 절충성에 대해서는 개화 계몽운동 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 두 가지 다른 관점이 충돌하고 있다.1-2 개화기 문학(1) 개화계몽 시대의 국한문 혼용 방식은 문자로서의 한자가 지니고 있는 ( 표의성 )과 국문의 ( 감응력 )을 결합시킨 문자 표기 체계의 기능성을 중시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개화계몽 시대의 새로운 글쓰기의 문학은 전문적인 문인 계층의 등장과 함께 성립된다.(2) 개화계몽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문인 계층 가운데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 유원표 등은 같이 ( 주자학 )의 전통 속에서 경전 위주 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신소설이 대중적으로 확대되면서부터는 소설의 기능을 교훈적인 측면에만 한정하지 않고 유희적 측면을 포함시킴으로써, 소설을 읽는 ( 재미 )를 강조하기도 하였다.(3) ( 신채호 )는 소설의 사회적 기능과 정치성에 근거하여 소설에 대한 개혁방안을 제시 통해 그 장르적인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사적 담론 구조의 특성은 일본이 의도적으로 유포하고자 했던 ( 조선 보호론 )의 논리의 승인이다. 이해조의 신소설 가운데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대중적인 흥미를 위주로 하여 구성한 이른바 ( 가정소설 )의 부류에 속하는 작품이다.(6) 개화계몽 시대의 시가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 한문학의 퇴조 )와 ( 한시의 전통 )의 쇠퇴라는 점이다. 개화가사는 예술작품으로서의 결구보다는 ( 사회 계몽 )과 여론 형성이라는 목적이나 의도가 앞서 있기 때문에 예술적 의장에는 그만큼 소홀했다. 개화계몽 시대의 기자 양식 가운데 장르적인 실체로서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개화가사와 개화시조 뿐이다.1-3 1910년대 문학(1) 1910년대 신소설은 가족 윤리의 붕괴, 물질적인 욕망의 확대와 같이 ( 식민지 ) 상황에서 새로이 이루어진 가치관의 혼란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2) ( 이광수 )는 문학과 예술의 발전을 통한 새로운 민족정신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의 은 한국문학사에서 근대적인 장편소설의 등장이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의 는 한 가정의 구성원을 중심으로 ( 과학 입국 )이라는 계몽적 요소와 애정 갈등이라는 통속적인 요소를 결합시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1-4 1920년대 문학(1) ( 김동인 )은 1919년 동경 유학시절 주요한, 전영택, 김환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 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평론 , 는 한국 근대비평의 확립 과정에서 본격적인 비평 작업의 성과로 주목된다. 그의 초기 소설 가운데 그의 소설적 관심과 기법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와 를 들 수 있다. ( 현진건 )은 삼일운동 직후 , , 등을 통해 지식인의 좌절과 경제적 빈곤상을 보여주면서 작가로서의 위상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 나도향 )은 낭만적인 경향을 벗어나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언어표현, 언어의 반복과 도치 등을 통한 활달한 수사적 기교, 전체적인 시적 어조를 통제하며 시적 형식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는 리듬의식 등이 서사적 장시로서의 양식적 속성을 유지하는데 적절하게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3) 한국 근대시 형성 과정에서 ( 김소월 )은 시정신과 시적 형식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인 서정시의 정형을 확립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미덕은 토착적인 한국어의 시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 근대시의 형성 과정에서 ( 한용운 )은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당대 문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앞장섰던 승려였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던 저항적인 지식인이었다.(4) ( 이상화 )의 초기 시작 활동을 대표하는 는 그가 지니고 있던 문학적 열정과 감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에 그가 발표한 , 과 같은 작품은 시적 대상으로서의 현실 세계를 역동적으로 포괄하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절실하게 추구하고 있다. ( 최남선 )이 주장한 시조부흥운동은 이병기, 이은상, 주요한, 조운 등으로 이어지면서 두 가지 측면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 하나는 시조의 시적 창작활동이 활성화되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시조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됐다는 점이다.(5) 1920년대 초기 연극 운동은 ( 학생극 ) 운동을 바탕으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 조명희 )는 동경 유학 시절 김우진, 최승일 등과 함께 를 조직하여 초창기 학생극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희곡 창작에도 관심을 보여 , 등을 발표한 바 있다. 1920년대 희곡문학의 기반은 ( 김우진 )에 의해 확립된다. 그는 , , , , 등의 희곡 작품을 남겼다.(6) 한국 근대문학은 일본 식민지 상황 속에서 문학을 통한 계급 이념의 조직적인 실천을 추구하는 계급문학운동을 경험한 바 있다. 계급 문학 운동은 ( 마르크스주의 )의 이념을 근거로 하여 진의 ( 내용 형식 ) 논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계급문학운동의 이념적 지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한 논쟁이다. 첫째는 계급문학의 기본적 성격문제이다. 박영희는 이 논쟁의 방향을 소설적 형식이나 창작의 요건과는 전혀 상관없이 계급문학의 이념적 성격에 대한 논의로 바꿔놓고 있다. 둘째는 계급문학운동의 ( 이념성 )에 대한 강조이다. 계급문학운동의 볼셰비키화를 통한 정치적 진출 문제가 제2차 방향전환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리고 조선프로예맹의 조직은 이른바 ‘( 신건설사 사건 )’으로 불리고 있는 제2차 검거를 계기로 1935년 해체되었다.(8) 임화가 지적한 ( 경향소설 )의 두 가지 부류는 소설의 내적 형식 자체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사실성과 이념성의 지향을 각각 드러낸다. ( 최서해 )는 그의 소설 , , , 을 통해 궁핍한 현실과 삶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여 식민지 조선의 참담한 민중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 조명희 )는 을 발표하면서 계급적인 이념의 구현이라는 분명한 지향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 이기영 )은 계급문학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한국 민중의 황폐한 삶의 문제성을 식민지 시대 농촌 현실에서 찾아보고자 하였으며, 농민 문학의 확대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작품 활동은 1924년 잡지 의 현상 문예에 입선한 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고, , ,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계급 소설의 장편적 확대를 가능하게 만든 장편 소설 은 계급문학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거둔 단편적 성과물들을 한데 모아 총체적으로 형상화해낸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9) 1920년대 노동 소설의 주요 작가 3명을 기술하시오. ( 송영, 이북명, 한설야 )(10) ( 동반자 ) 작가란 계급적 이념 성향을 보여주면서도 계급 문단 조직이었던 조선프로예맹에 가입하지 않은 작가들을 의미한다. 계급 문단과 직접적인 관계없이 진보적인 성향의 작품 활동을 실천했던 문인 가운데 대표적인 작가로 유진오와 이효석을 들 수 있다. 초창기 계급문단에서 경향적인 색채를 드러내 최재서 )가 리얼리즘을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문제로 보지 않고 객관적 태도의 문제로 한정한다면, ( 백철 )은 주관적 의식의 문제에 더 관심을 부여하였던 것이다.(2) 1930년대 후반 소설의 경향을 최재서, 백철 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회적 상황의 문제와 직결시켜 논의했던 비평가로 ( 임화 )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에서 계급문단의 해체 이후 사상성의 감퇴를 중요한 소설적 특징이라고 하였다. 그가 소설문학의 위기를 ( 성격 )과 ( 환경 )의 부조화라고 지적하고 있다면, ( 김남천 )은 소설이라는 문학 형식이 시민 사회의 모순을 전체적으로 제시하는데 그 본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3) 1930년대 소설에서 확인되는 모더니즘적 경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 개인의 내면 의식 )의 추이를 다양한 서술 기법을 통해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더니즘 소설은 궁극적으로 창조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 이념성을 배제하고 기법적인 면에서 새로운 변혁을 시도하고 있는 점은 인간의 삶에 대한 해석의 새로움과 다를 바가 없다.(4) ( 박태원 )의 문학적 활동은 1933년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등과 ( 구인회 )에 참여하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그의 , 은 소설 기법과 문학적 성과를 동시에 규명해 볼 수 있는 문제작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기법적인 실험성이 일단 그 신선한 충격을 잃고 유형화되어버릴 때 오히려 터무니없는 통속성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 이상 )의 소설은 근대적인 것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중심을 이룬다. 그의 작가적 고뇌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에 잘 드러나 있다.(5) ( 이태준 )의 초기 단편소설인 , , , 등은 현실의 삶에서 좌절한 인간의 모습을 깊이 있게 천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최명익 )의 작품은 자의식의 내면 공간을 밀도 있게 그려낸 이상의 작품 세계와는 달리 당시 일상의 공간 속에서 지식 계급의 불안 의식을 성실하게 표현한다. ( 채만식 )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특징을 요약한다면 식민지 현실에 대한이다.
선우휘, 《묵시》를 읽고1950년 6월 25일. 오늘날 한국 문학사의 흐름을 두 갈래로 양분하는 큰 사건이 발발했다. 북한과 남한 한민족 공동체를 뒤흔든 이데올로기적 비극이었다. 전쟁의 비정함을 몸소 체험한 문학계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 실존에 근본적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현대문학은 이러한 해방과 분단이란 민족의 수난사를 겪어오며 수십 년에 걸쳐 우리 민족적 정서를 회복하고자 문학의 방향을 재정립해왔다. 이 과정에서 확립된 한국 현대문학은 전후 세대에게 과거 역사가 남긴 유언과 해법을 통해 평화의 실마리를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따라서 우리는 한국 현대문학을 감상할 때 단순히 작품 자체를 두고 논하기보다 작품 뒤에 놓인 사회적 배경과 민족적 정서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필요하다. 선우휘의 소설 《묵시》를 감상하기에 앞서 우리 문학사를 대표하는 문인 ‘선우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작가 ‘선우휘’는 해방 이후 문단에 등단하여 1955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교사, 군인, 언론인 등 다양한 역할을 지내며 한국이 처한 결정적 국면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몸소 겪어낸 인물이다. 《묵시》에는 주인공 ‘나’가 사회부 기자로 일하던 당시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는 ‘선우휘’ 소설에 있어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반영된 결과다. 해방 후 그의 작품은 파괴된 현실과 이념의 불합리성을 향한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특히, 지난 학기 전공 수업을 통해 한 차례 접한 적 있는 ‘선우휘’의 초기 소설 《불꽃》은 당대 다른 작품들과 달리 민족의 수난사와 전쟁의 비극을 동시에 파헤치는 동시에 휴머니즘적 행동주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의 문학은 60년대 중반기에 이르러 행동주의에서 내면적 휴머니즘으로 방향을 옮겨가다 70년대 초반 문학적 침묵기에 빚어낸 작품 《묵시》는 그 내면화 과정의 한 정점을 표상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작가로서 역사적 위기 속에서 ‘이광수’란 문인이 행했던 역사적 처신에 관한 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소설 《묵시》의 이야기는 주인공 ‘나’와 조선인 선생과의 대화로 시작하여 춘원 ‘이광수’와 그의 친구 ‘서낭’의 일화로 이어진다. 주인공 ‘나’는 당대 영향력 있던 문인으로 추대받던 ‘춘원’ 이 쓴 친일 저서에 분노하여 담임 선생을 찾아간다. ‘이광수’의 친일 행동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나’에게 선생은 ‘이광수’가 한 친일 행동의 배후를 설명해준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시기 ‘춘원’과 함께 문학을 공부했던 그의 문학인 친구 ‘서낭’이란 인물로 대화의 초점을 옮긴다. ‘서낭’은 일제 말 갑자기 벙어리 행세를 하며 암흑기를 보낸 인물로 그가 갑자기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당시 문학계는 여러 가지 추측만 난무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인공 ‘나’는 취재차 들른 소도시 여관에서 우연히 ‘서낭’의 아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들을 통해 과거 ‘서낭’이 벙어리 행세를 했던 사건의 진상을 듣게 된다.소설의 문체적 특징은 ‘대화’ 형식이 작품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나’와 ‘선생’의 대화로 시작한 소설은 대화 안에서 파생된 내화로 다시금 대화의 초점을 옮겨간다. 작가는 ‘대화형’ 문체를 통해 인물, 배경에 대한 정치한 묘사 없이 ‘이광수’와 ‘서낭’의 일화를 화두로 꺼내놓고 속도감 있게 소설을 전개해나간다. 서사 중심 서술의 지루함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기교적 장치로써 대화를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체적 특성은 소설 《묵시》의 액자식 구성과도 연결된다. 주인공 ‘나’와 ‘스승’이 나누는 대화가 ‘춘원’과 ‘서낭’의 일화로 전환되는 부분은 대화의 속성을 이용해 외화와 내화를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 효과를 엿볼 수 있다.소설의 배경은 1900년대 초반부터 1945년 해방 이후까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지나온 수난과 격동의 시기를 담고 있다. 소설 《묵시》를 읽고 나면 일제의 탄압과 통제 아래 문학계가 당면했던 암울한 현실을 알 수 있다. 일제 탄압에 저항해 끝까지 조국 광복을 표명했던 저항 문인도 있었으나, 3 · 1운동 이후 본격적인 문인의 친일화가 시작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씁쓸한 사실이다.“낭만이면 몰라도 독립을 얻으리라고는 믿지 말게.”위의 구절은 ‘춘원’이 상해로 망명할 때 ‘서낭’이 했던 충고다. ‘서낭’은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서울로 돌아가려는 학우들을 만류하며 1920년 시점에서 민족의 독립은 절대로 쟁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일제에 맞설 수 없는 조선의 무력함을 정확히 인식한 현실적 인물이었던 것 같다. 일제 말 대다수 문인이 친일 문학의 대열에서 자신의 생사를 도모할 때 ‘서낭’은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뜻을 대신했다. ‘침묵으로 뜻을 표한다는 것’은 곧 이 작품의 제목 《묵시》가 가리키는 근본적 의미기도 하다.‘당시의 말세기적 상황에서 그의 탐미적 새디즘은 그로 하여금 그렇게 결심케 했다.’‘그렇게 해서 그 가열한 태평양 전쟁 말기의 몇 년을 서낭은 심해의 패류인 양 스스로를 지켰던 것이다.’‘전쟁 협력이 강요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벙어리 시늉을 하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일제에 대한 저하의 욕구불만에 사로잡혀 있던 의식적인 지식층에게는 적성을 풀어주는 하나의 청량제가 아닐 수 없었다.’‘서낭’의 침묵은 단순히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한 문인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민족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적 은둔은 아니었다. 그의 침묵은 나약한 한 개인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저항에의 목소리였다.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의 자리에서 진술될 가치가 있는 것은 극적인 싸움의 기록이거나, 아니면 인간성의 재생 의욕이면 족한 것이었을 따름이다. 일제 치하 일본의 막강한 권위에 무작정 반대표만을 던질 수 없던 현실을 이해한다면, 친일 물결에 동조하지 않은 것 자체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앞에 두고도 끝내 침묵을 지켜야 했던 그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굳은 결의를 보여준다. 동시에 직접 문단에 목소리 낼 수 없어 침묵만을 고집했던 그에 행위에 연민까지 느끼게 한다.‘서낭’의 침묵에서 일제를 향한 민족의 저항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면, 이와 비교하여 우리는 친일 문학의 저편으로 발 빠르게 움직였던 일부 문인들의 행보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이 소설의 중심 화제로 제시되는 문인 ‘이광수’는 우리나라 근대 문학사에 친일 문학이란 오점을 남긴 대표 인물로서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내화의 주인공을 ‘이광수’가 아닌 ‘서낭’으로 삼음으로써 문인 ‘이광수’를 직접적 비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친일 행동의 배후가 되는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삼았다. 이광수는 자유연애, 신교육, 농민 계몽 등 다양한 제재를 다룬 근대 문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한 영향력 있는 문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친일행위의 선두에서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문학가로 비난받고 있다.
문학과 종교-이문열, 작품 을 읽고-오늘날 문학과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인간은 현재의 안위와 미래의 행복, 나아가 영원한 낙원을 갈망하는 연쇄적인 욕망의 주체다. 종교는 그런 인간의 소망이 직접 투영된 또 하나의 세계로 소망과 대비된 그들의 일상에 ‘영원한 구원’을 위한 지침서를 내린다. 매일 내일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연약한 인간이란 존재가 영원한 치유를 안겨줄 신적 존재에 의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문학은 인간 내면의 목소리를 언어적 아름다움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져 온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해답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문학과 종교의 관계 맺음을 통해 초월적 존재의 위대함을 노래한 작품은 이미 여러 작가의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개화 열풍에 힘입어 기독교 신자가 양적 팽창을 거듭한 이후, 근대 문학사에서도 기독교를 소재로 한 종교적 색채를 담은 작품이 다수 창작되었다. 초기 작품들은 기독교의 교리적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신자들의 참다운 종교 생활만이 개인의 구원과 나라의 안녕을 위한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며 교훈적 성격이 강했다. 이후 기독교적 소재를 다룬 문학은 다양한 변모를 보여주며 다채로운 성격을 지닌 종교문학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이광수는 기독교의 교리를 미학적 언어로 형상화하여 기독교를 사상적 배경으로 한 작품을 다수 창작한 작가 중 하나다.오늘 감상할 작품 은 문학과 종교,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의 작품들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일반화된 종교적 신념과 개념을 나열하거나 기독교 종교 자체의 신념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뒤틀린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짐으로써 새로운 종교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이 작품만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작가 이문열은 을 통해 기독교의 이념과 배치된 사회 현실과 인간의 근원적 존재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찾아가고자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1. 작가 이문열먼저, 소설 의 본격적인 감상에 앞서 우리는 작가 이문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문열은 1970-80년대 당대 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작품의 참신한 소재와 주제의 깊이 면에서 대중의 뜨거운 호응과 논란이 뒤따르는 우리나라 문학계가 주목할 만한 문인이다. 작품은 작가의 일생을 통해 빚어진 세계관이라 칭할 수 있는 만큼 작품 감상 이전에 그의 작가 등단 이전의 삶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는 6·25를 전후해 아픈 가족사를 겪으며 월북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국가의 감시와 억압 속에 순탄치만은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파괴된 현실과 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한 인식은 향후 이문열 작품에 깊이 자리한 사상적 바탕이 된다. 본 작품 은 이문열이 본격적인 작가로서 문단 생활의 첫발을 내딛게 한 작품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그의 작품은 종교, 예술관을 비롯해 분단과 사회 여러 계층의 문제까지 넓은 영역에 걸쳐 다양한 소재를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작가 작품의 다채로움은 무엇보다 최초의 장편 소설인 에서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70년대 대중과 문학인들이 익숙하게 다루지 않았던 종교라는 분야를 중심 소재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는 시대를 뛰어넘는 작가의 개성과 도전적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종교에 부여했던 맹목적 믿음의 기원을 찾아가 신념의 어긋난 모순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작가 특유의 참신함이 돋보인다.2. 창작 배경다음으로 이 작품이 창작된 시대적 배경을 되짚어 보면 문학 작품에 내포된 작가의 의도를 조금 더 선명히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은 1979년 출판된 책으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사회적 배경과 민중의 현실이란 현대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 했다. 당시 사회는 냉전 체제의 붕괴와 급속한 산업화, 불합리한 독재 사회의 소산으로 삶의 뿌리를 상실한 민중들의 고통과 저항의식이 주를 이뤘다. 국가는 끝자락에 내몰린 빈민계층의 암울한 현실에 어떤 실질적인 해결책도 내세우지 못했다. 작가는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힘없는 민중들의 고통과 현실적 한계를 해소해줄 전능자를 필요로 했고, 이는 곧 신적 존재와 인간의 구원이라는 주제로 초점이 옮겨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3. 작품 분석먼저 이 작품은 작가가 사건 전개를 위해 설정한 작품의 구조적 장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도구로써 이원적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첫 번째 구조적 특징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는 정통적인 기독교의 유일신을 부정하는 아하스 페르츠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예수와 동시대 태어난 인물로 신의 아들과 대비된 사람의 아들로 묘사된다. 그는 인간 세계에서 삶의 어두운 이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기독교가 품은 진리에 모순을 제기하고, 진정한 신의 존재적 의미를 찾아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역신과 민족신을 마주하면서 그는 참된 신의 존재를 알고자 숱한 위기를 경험에도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신과의 만남이 반복될수록 그는 인간을 속이고 어긋난 진리만을 내포하고 있는 거짓된 신적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해소되지 못한 참된 신을 향한 갈망은 다시 돌아온 광야에서 그가 예수와 처음 만나게 되면서 속도감을 더한다. 그는 예수에게 인간과 고통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신을 시험하려고 시도하지만, 예수에게 사탄으로 규정되어 내쫓긴다. 아하스 페르츠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가는 이에게 천국이란 허구만을 쫓게 하는 기독교란 종교에 회의감을 경험한다. 이러한 회의는 인간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이상적인 세계만 제시하는 신의 아들 예수를 인정할 수 없었던 아하스 페르츠가 신과 구별되는 사람의 아들로 재탄생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신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 그 둘의 이상은 결국 인간과 세계의 구원을 둘러싼 태도의 근본적 방향을 달리한다. 이처럼 한 인물이 신의 존재적 의미를 찾고 재창조해나가는 과정을 액자 구조를 사용해 내화의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아하스 페르츠를 중심으로 한 신과 인간의 구원 문제가 한 편의 독립적인 소설로 느껴질 만큼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독자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주는 흥미로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두 번째 이야기는 액자 밖에서 펼쳐진다. 이야기는 신학자 민요섭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의 죽음에 얽힌 살인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가는 경찰의 관점으로 서술된다. 경찰은 민요섭의 노트 단서를 기반으로 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나가는데 이 과정이 한편의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연상케 한다. 종교적 이치와 인간의 대립을 다룬 다소 무게감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단서와 추리를 통해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추리소설의 전달 방식을 적용해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특유의 긴박함으로 재미를 유발한다.소설에 나타난 문체적 특징도 작품을 한층 돋보이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천상과 지상이라는 다소 특수한 배경을 설정하고, 이와 걸맞은 작가의 심리학적 상상력과 신비로움이 글 속 곳곳에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아하스 페르츠가 신적 존재를 찾는 여정을 담은 내화 구성 부분에서는 독자가 모험하는 듯한 생동감을 일으켜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 작품은 종교란 소재에 따라올 수 있는 심리적 거리감과 난해함을 작품만의 이원적 구조의 이점과 인물들의 심층적인 내면 표현을 활용해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어 남다른 문학적 가치가 있다.다음은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파악해 볼 것이다. 작품의 외화 부분에는 민요섭과 조동팔 두 인물이 사건 전개에 중요한 입지를 가진다. 작품은 경찰이 민요섭의 살해 사건을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민요섭은 기독교 집안의 자녀로 기독교에 대한 회의로 신학교를 그만두었던 과거가 밝혀진다. 연이어 민요섭이 자필로 작성한 노트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 노트 속 이야기가 앞서 말한 아하스 페르츠의 여정을 다룬 내화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민요섭의 과거 행방을 쫓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민요섭이 살았던 여관집 아들 조동팔이란 인물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사건은 행적을 감추었던 조동팔이 개명 후 살고 있다는 집을 찾아가 민요섭에 대한 살해 행위를 자백받으며 끝을 맺는다.이 둘의 사건을 다루는데 가장 큰 논점은 왜 조동팔이 민요섭을 살인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먼저 두 인물의 관계를 분석해보면, 조동팔은 단순히 민요섭이 머문 여관 주인의 아들이 아니라, 민요섭이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신에 대한 믿음을 공유한 후계자다. 민요섭은 외국 선교사의 양자로 기독교 집안에 자녀로 자라나 기독교에 대한 일말의 거부감을 품을 새 없이 순조롭게 성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어떤 구원도 베풀지 않는 신에 대한 회의와 원망은 기독교와 기독교가 표방하는 유일신에게 일종의 반발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노트 속에 드러난 아하스 페르츠라는 인물은 아마 기독교 종교에 대한 자신의 회의와 불신을 대신 표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신의 모순에 대항한 새로운 인간의 신으로 변모하는 아하스 페르츠라는 존재의 탄생이 편견 가득한 고통 받는 인간의 삶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판단이었다. 조동팔은 이러한 민요섭의 믿음에 동조했고, 신념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맹목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지나친 행동을 일삼는다. 과거 그들은사회적 부적응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종교 교육을 하는 등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라는 믿음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내밀한 내면을 나누며 합일된 생각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둘이었지만, 조동팔은 민요섭이 종교에 대해 품었던 기존의 회의와 고뇌의 과정은 배제한 채 신의 재창조라는 결과에만 집중한다. 민요섭은 타락한 세상에서 신의 무력함을 대신할 존재로 인간을 내세우지만, 인간 자신이 모든 일을 책임지고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도리어 두려움과 무력함을 경험한다. 종교를 외면하고 회의적이었던 그는 방황의 시간을 거쳐 결국 신앙의 길로 귀의하게 되는데, 이를 본 조동팔이 자신들의 신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살해를 결심한 것이다. 조동팔은 민요섭이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성서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며 자신만의 완전한 신을 재창조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