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다윗 언약에 대한 요약 및 본문 적용 2-2 2016210088 남윤준창세기 1:1 “천지창조, 그 말씀을 주신 이유” * 본문은 나눔고딕체로 작성되었습니다.성경본문 (개역개정판)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본문의 말씀은 매우 짧고 간결하지만, 하나님의 진리임과 동시에 모든 시간에 걸친 선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포입니다. 본 말씀을 해석하려는 여러 단체들의 많은 시도들이 있어왔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 시도들 가운데, 다음 세 가지에 따라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첫 번째, 창세기를 쓴 저자와 독자는 누구인가?두 번째, 하나님께서 저자를 통해 당시 독자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무엇인가?세 번째,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1. 저자와 독자는 누구인가?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소위 믿음이 강하신 분들께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곤 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저자니 독자니 그런 게 뭐가 중요합니까? 말씀이 말하는 것만 잘 알아들으면 됐지, 성경은 연구 대상이 아닙니다. 믿어야 할 대상이지, 성경은 fact(팩트/실상, 실제)잖아요.”성경은 팩트라는 말 자체는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팩트로만 얘기하면 사실을 다 드러낼 수 있을까요? 결론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팩트만으로는 사실을 제대로 다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과거에 저에게 있었던 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저는 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학교는 산에 있었기 때문에 차가 없이 개인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볼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갈 때 차를 얻어 타고 밖에 같이 나가곤 했습니다.그곳에서 생활하면서, 한 친구가 상담을 받고 싶어하여 식사 약속을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속 당일에 저는 몸살이 나서, 부득이하게 약속을 취소하고 휴식을 했습니다.그러던 중 또 다른 친구가 저의 방에 들어와서, 세탁물을 맡겨야 해서 나갈 건데, 혹시 같이 갈거냐고 물어봐주어서, 마침 맡겨야 할 세탁물이 저에게도 있어서 함께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기고 돌아오는데, 이 친구가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나온 김에 같이 밥을 먹고 가자고 했고, 저는 그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근처의 밥집으로 갔는데, 들어갔더니 원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선약을 취소했던 친구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이 경우 팩트는 무엇입니까? 제 입장에서의 팩트는, 전혀 식사할 생각이 없었는데 제 세탁물을 함께 처리해 준 친구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쩌다보니 식사하게 된 것이 팩트입니다.하지만 원래 선약을 했던 친구의 입장에서의 팩트는, 본인과 약속을 깨고 다른 사람과 밥먹으러 나온 것도 팩트가 됩니다. 거짓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삶은 이런 단순한 일상조차도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팩트만으로는 사실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일의 당사자가 하는 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사자에게 들은 말이 아니면 그게 옮겨지면서 부풀려지고 생략되고 서로 오해를 낳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보려고 할 때도 그렇습니다. 성경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쓴 사람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에게 영적인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게 하셨는데. 저자와 독자의 관계 속에서의 일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저자의 입장에서 성경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2. 저자와 독자자 그러면 저자와 독자를 알아봅시다. 창세기의 저자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본고에서는 모세를 인간 저자로 보는 학설을 받아들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성경의 가장 앞의 다섯 권은 모세가 썼다고 보는 배경에서 시작합니다.쓴 사람이 있다면 그걸 읽을 사람도 있었겠죠? 그 당시 1차 독자들은 누구였는가? 이집트(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있었던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들이었습니다. 모세 이전의 사람이었던 아담이나 아브라함 때는 창세기라는 책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왜 히브리 백성들에게 창세기를 써서 보여주었을까요?3. 당시 히브리인들의 물리적, 영적 상태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히브리인들의 상태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히브리 백성들은 이집트라는 나라에서 몇 대를 이어서 살았습니다. 창세기 뒷 이야기에 따르면, 요셉이 총리가 되고 야곱의 가족들은 기근을 피해 이집트 땅으로 옮겨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대가 이어집니다.처음에는 요셉과, 요셉을 아꼈던 바로(파라오)에게 보살핌을 받았지만, 몇 대가 지나면서 점차 다른 민족에 대한 반감이 생기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주민으로 왔던 그들이, 나중에는 노예가 됩니다. 이집트는 매우 강력한 국가였고, 히브리 백성들은 그 나라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강력한 나라들이 있듯이, 당시 이집트는 그런 강대국이었는데, 히브리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살았고, 그게 대를 이어지다 보니까 히브리 백성들도 자신들이 노예로 사는 것을 당연시 여깁니다.노예는 자연히 주인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문화를 히브리 민족이 받아들였고, 그들이 믿던 신까지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자연 만물의 신을 섬겼습니다. 태양의 신 라부터 시작해서, 바다의 신, 강의 신, 대지의 신, 독수리 신. 이런 자연 만물에 깃든 신을 섬기던 나라였습니다. 이 신들을 히브리 백성들도 받아들여서 섬기게 됩니다.물론 히브리 백성들은 자신의 유일신에 대해서 조상들에게 들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노예로 사는 자신들에게 어떤 권능도 내려주지 않았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자신들의 생사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집트 사람들의 신.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 자신들의 삶을 더 보장해 주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갔습니다.4. 갑작스러운 변화그러던 중에 갑자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히브리 백성들의 삶을 고단하게 합니다. 노동의 양을 늘리고, 심지어 나중에는 남자 아이들까지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더 이상 이집트는 히브리 백성들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중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그 괴로움 속에 있는 자신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합니다. 그렇게 히브리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광야로 인도됩니다.이집트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나올 때, 나가지 못하도록 파라오는 계속해서 막았습니다. 노예가 도망가는데 막는 건 당연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이집트에 내리십니다. 강을 피로 변하게 하시고, 개구리, 이, 파리를 보내시고, 가축들이 죽어나가고 종기와 우박, 메뚜기 떼가 창궐했고, 나중에는 태양조차도 힘을 잃고 흑암이 이집트에 깔리게 됩니다.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입니다. 이집트가 섬기는 신이 여럿이라고 했습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신은 어떤 신이었을까요? 태양의 신. 라가 가장 강했습니다. 당시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는 태양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졌습니다.그렇다면 이집트에 내리신 10가지 재앙은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강대국 이집트가 믿었던 신이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전부 굴복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자연만물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자연만물이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자연만물이 잠잠하게 때에 따라 쬘 땐 쬐고, 내릴 땐 내려주면 기후가 좋아쟈서 풍요를 선사합니다. 근데 이 자연만물이 미쳐 날뛰게 되면? 대 재앙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그 자연만물을 달래기 위해 경배하고 제물을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하지만 그 자연만물도 하나님이 명하시니 그냥 힘을 잃거나, 오히려 자연을 섬기던 이집트를 괴롭히는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걸 히브리 백성들은 똑똑히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그들이 숭배하던 신을 무력화시키셨습니다.그렇게 광야로 백성을 인도하시고 가장 처음 주신 말씀.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었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였습니다.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 모든 배경을 알고 읽으면 이것이 단순한 천지창조의 선포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의 백성들아, 너희는 지금까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사는 것을 당연시 하면서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았다는 것을 내가 안다. 하지만 보아라. 그들의 병거는 물론이고 신들조차도 너희들을 막아내지 못했지 않았느냐. 너희는 결코 종, 노예 같은 존재가 아니다. 내가 앞으로 만들어가는 인류 역사의 중심에 너희가 있을 거다. 그리고 모든 자연 만물들은 결코 너희가 섬길 대상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위해서, 너희들을 섬기는 피조물로 만든 것이란다.”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성경을 보며 깨달은 모든 영적인 의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 사실을 믿었을 때 성립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냥 생겨나는 법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거 미신이라고, 세상을 만든 신이 있다니 그건 미신이지, 그건 과학적이자 않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역으로 질문해봅시다. 누군가가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과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것. 이 가운데 뭐가 더 가능성이 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