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화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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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를 읽고
책을 읽을 때 언제 어디서 읽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미국의 한 저명한 평론가라는 소개로는 그 영향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를 읽는다. 미국이 곧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기 시작할 때 읽기 시작하여, 미국이 공습을 감행하고 있는 지금까지 읽고 있는 중이다. 위대한 영화들을 다룬 이 책의 부제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 영화와의 만남이다. ‘시대를 초월한’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시대를 초월하는 것, 평화를 바라는 인류의 마음도 시대를 초월하여 지켜내야 할 것 중에 속한다.
전쟁이 발발했고, 이 와중에 제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예측이 분분하다고 한다.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알리’의 윌 스미스가 이미 불참선언을 했고, 외국영화상 후보에 오른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도 불참을 선언했다. 로저 에버트는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멋진 인생’을 보며, 전쟁에 의해 불확실해진 미국의 근본적 낙관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로저 에버트는 이런 영화를 고집스럽게 만들어온 프랭크 캐프라에게 그런 가치관과 이상을 담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질문한다. 그 질문에 캐프라가 이렇게 답한다.
“글쎄요, 만약 없다면 말이죠, 사는 걸 포기하는 편이 낫겠죠.”(P.105)
이 위대한 흑백영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뼈아픈 말을 남긴다. 로저 에버트는 아주 차분한 어투로 영화 속에서 그런 질문을 찾아내고, 그 질문을 음미한 다음 확고하게 판단을 내린다. 그의 비평은 현학적이고 젠 척하는 용어들을 동원하지 않으면서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마치 현실인 것처럼. 아니 그 이상인 것처럼 행동한다. 미사여구와 형용사를 동원하지도 않으며, 비판은 어물쩡거리지 않고 직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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