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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類編』의 毁板과 火書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rinting Block Destruction and Book Burning of Yegi Yup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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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7.16 최종저작일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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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類編』의 毁板과 火書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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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학문적 검열과 출판의 정치적 메커니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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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고전번역원
    · 수록지 정보 : 민족문화 / 39권 / 39호 / 207 ~ 240페이지
    · 저자명 : 양기정

    초록

    본 논문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崔錫鼎이 편찬한 『禮記類編』의 毁板ㆍ火書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조선 후기의 사상적, 정치적 요인이 문헌의 出版과 流通에 굴절되어 나타난 현상의 일면을 문헌학적인 관점에서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다.
    『禮記類編』의 문제가 제기된 것은 1709년 1월 18일에 老論의 李觀命이 올린 상소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禮記類編』을 통해 최석정이 經書를 훼손하고 聖賢을 모욕하였다는 것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禮記類編』이 初刊되었을 때에 宋時烈의 문인이자 權尙夏의 동생인 權尙游가 增補와 重刊을 건의한 사실과, 초간된 지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노론 측에서 문제를 제기한 점 등은 그 裏面에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노론 측에서는 이관명의 문제 제기 이후로 『禮記類編』의 毁板ㆍ火書를 지속적으로 肅宗에게 요구하며 최석정과 소론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 갔으나, 숙종의 최석정에 대한 신임은 1709년 말까지 변함이 없었으므로 『禮記類編』에 대한 훼판ㆍ화서의 요구도 수용되지 않았다.
    1710년 1월에 肅宗이 자신의 병간호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藥院 都提調로 있던 최석정을 파직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숙종이 최석정을 소원하게 여기게 되었고 결국 최석정을 영의정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이때를 틈탄 노론은 3월에 『禮記類編』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여 毁板ㆍ火書를 관철시켰다. 숙종의 입장에서는 최석정이 실각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원활한 국정의 운영을 위하여 노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노론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최석정을 공격하는 명분이었던 『禮記類編』의 毁板ㆍ火書를 관철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세상에 천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禮記類編』의 毁板ㆍ火書는 숙종과 노론 서로에게 實利와 名分을 살리는 조치였던 것이다.
    毁板이 먼저 시행되었고, 火書가 나중에 시행되었다. 火書를 어느 官署에서 주관할 것인지를 가지고 논란이 있었는데, 『思辨錄』과 『國朝詩刪』의 전례에 따라 禮曹에서 주관하였다. 承政院에서는 궁중에 보관되어 있던 책과 각지에 頒賜된 책을 수집하여 예조로 이송하는 일을 맡았다. 지방에 반사된 책을 수거하는데 시일이 소요되었으므로 7월에 이르러서야 火書가 완료되었다. 당시에 火書된 『禮記類編』이 총 1,045책에 이르렀다.
    『思辨錄』의 火書에 이은 『禮記類編』의 毁板ㆍ火書는 이후 朱子性理學에 傾倒된 조선 후기의 사상적, 학문적 분위기를 더욱 固着시켰으며, 이로 인해 학문적인 다양성과 유연성이 사라짐으로써 다양한 문헌의 출판에 저해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禮記類編』이 毁板ㆍ火書된 이후로 『禮記類編』은 물론이고 『禮記類編』과 같이 經書를 再編한 문헌이 다시 간행되지 않은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study is to research an effect of ideological and political factor on the publication and distribution of books through Yegi Yupyeon(禮記類編) compiled by Choi Sukjeong(崔錫鼎 1646~1715), who was a prime minister and a scholar in the latter part of the Chosun Dynasty. The results of this research work are as follows.
    Lee Gwanmyong(李觀命) who was one of Noron(老論) bureaucrats officially raised the problem of Yegi Yupyeon to King Sukjong in January 1709 for the first time. He insisted that Choi Sukjeong defamed the authority of the Confucian classic and the majesty of the sage with Yegi Yupyeon. But, the proposal to republish Yegi Yupyeon was submitted by Gwon Sangyu(權尙游) in 1701, who was a student of Song Siyeol(宋時烈) and a younger brother of Gwon Sangha(權尙夏). It was nearly ten years since Yegi Yupyeon had been published when Lee Gwanmyong brought up the problem of Yegi Yupyeon. It means that Noron already knew Yegi Yupyeon very well ten years ago and they didn't consider Yegi Yupyeon as a trouble for a decade. Accordingly, we can make assumption that there were certain political purposes in Noron's attacking on Yegi Yupyeon.
    In January 1710, Choi Sukjeong was dismissed from the Head Officer of Medical Agency for Royal Family(藥院 都提調) by King Sukjong all of a sudden on the grounds that Choi Sukjeong had neglected his duty of nursing King Sukjong. Choi Sukjeong seriously lost the trust of King Sukjong through that case, finally resigning from the prime minister. Then Noron raised the problem of Yegi Yupyeon to King Sukjong in March 1709 once again, asking King Sukjong for the printing block destruction and book burning of Yegi Yupyeon. Their demand was accepted soon. By doing so, King Sukjong gained an actual profit in state management, Noron justified themselves.
    The book burning of Yegi Yupyeon was carried out after the printing block destruction of Yegi Yupyeon by Ministry of Rites(禮曹). Royal Secretariat(承政院) took a charge of gathering and transportation of books. The book burning of Yegi Yupyeon finished in July 1710, because it took several months to gather books distributed throughout the nation. The total books burned aggregated 1,045 at that time.
    The printing block destruction and book burning of Yegi Yupyeon occurred after the book burning of Sabyeonrok(思辨錄) made the learning and thought of the latter part of the Chosun Dynasty increasingly immersed in Neo-Confucian of Zhu Xi(朱熹). Consequently, gradual disappearing of diversity and flexibility in academia brought about an obstruction to the publication of various books. The fact that Yegi Yupyeon or any similar book wasn't published anymore after the printing blocks destruction and book burning of Yegi Yupyeon supports the theor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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