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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采浩의 世界觀과 第3次露日協約(1910-1912) -러일의 내몽골분할협약(1912)체결을 중심으로- (The World View of Shin Chae-ho and the Third Russo-Japanese Treaty (1910-1912)-Focusing on the Russo-Japanese Convention of 1912 dividing Inner Mong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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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29 최종저작일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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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采浩의 世界觀과 第3次露日協約(1910-1912) -러일의 내몽골분할협약(1912)체결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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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만주학회
    · 수록지 정보 : 만주연구 / 16호 / 57 ~ 102페이지
    · 저자명 : 최덕규

    초록

    丹齋 申采浩가 1910년 1월 21일 大韓每日新聞의 논설 “滿洲問題에 就하야 再論함”에서 “지금 만주는 동양의 발칸반도(卽今 滿洲는 東洋의 巴爾幹半島라)”로 정의한 것은 당대 대한제국 지식인의 글로벌한 세계관을 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가 발칸문제와 만주문제를 연쇄와 연동의 동일선상에서 바라본 논거는 바로 “과거 유럽에서 어떤 나라의 강함과 약함, 어떤 나라의 존망이 항상 발칸반도 문제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요컨대 유럽역사의 모태가 바로 발칸반도라는 얘기다. 이는 한반도와 만주 역시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논증한 그의 만주관을 발칸의 역사에 투영한 것인바, 세계사 해석에 대한 신채호 선생의 탁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발칸반도와 만주를 비교하고 접속시킨 단재의 세계관은 그가 제시한 4천년 불변의 법칙(四千年 鐵案不易 定例)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과 壹衣帶水를 隔한 만주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한민족의 성쇠가 갈린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신채호는 뜻있는 군자는 “보호국의 지옥(被保護의 地獄)”에 떨어졌더라도, 망국의 눈물을 흘리지 말고 눈을 들어 ‘世界列强의 競爭點’이 된 만주문제를 밤낮으로 힘을 다해 연구해야 할 것을 역설했다.
    나아가 신채호 선생이 대한제국의 지식인들에게 만주연구를 촉구한 보다 긴급한 이유는 “大戰爭” 발발에 대한 예견이었다. 그가 “비스마르크(Bismarck)나 카부르(C.B.Cavour)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만주문제에 대해 고뇌할 때”라고 판단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가 우려한 바는 만주문제의 불안정성이 大戰爭으로 비화할 가능성이었다.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하는 것이 천하의 대세임에도, 만주는 이미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바, 한때 러시아의 세력권이 되었었고 현재 열강의 세력균형 하에 놓이게 되니 향후에는 또 어떠한 만주가 될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거였다. 요컨대 단재는 장래 어떤 “大戰爭”이 발발한다면, 그것은 바로 동양의 발칸인 만주문제에서 비롯될 것임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만주문제로부터 전쟁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신채호 선생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바, 각자가 본분에 진력하는 동시에 “장래 우리국민도 어떻게 하면 만주문제에 끼어들 것인가 모두가 나눠 연구할 바”가 그것이다.
    이에 본 논문은 100년 전 신채호 선생의 세계관을 계승하여 만주문제가 어떻게 발칸반도문제와 연동되는지를 러시아와 일본의 내몽골 분할협정(1912)을 중심으로 실증적으로 밝히고자했다.

    영어초록

    Editorials Shin Chae-ho authored in early 1910 on issues concerning Manchuria reflected his view of the world, which held a precise insight into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t the time that unfortunately became a reality for history. The fact that he anticipated the possible outbreak of a massive war originating over Manchuria bears major implications as we near the centenary of the occurrence of World War I. Shin Chae-ho’s view connoted a sense of crisis that instability in Manchuria, the Balkan of the East, would become the cause of a massive war as powerful nations at the time took great interest in the region and engaged in a heated competition over it. To solve such a crisis, Shin Chae-ho suggested the following:“Oh, people of Japan, since the world belongs to its people who will not allow Japan to take the lead alone, would it not be wise to maintain happiness by settling for a measure to achieve true peace in the East and strengthen Japan’s position within it?”The core issue of the conflict among the United States, Russia, and Japan in regards to Manchuria and Mongolia was that the United States regarded Manchuria as part of China, while Russia and Japan maintained the “partition of Manchuria” policy. Such a gap contributed to the failure of a joint action among the powers to help stabilize the new government of China, which was established as a result of the Chinese Revolution. The United States supported the “principle of universality” and promoted equal opportunity and open door policy in China. Meanwhile, Russia and Japan adhered to the “principle of particularity” and set Manchuria and Mongolia as their areas of particular interests and blocked the powers from intervening in these regions. As a result, the future of Manchuria and Mongolia, as to which path these two regions would eventually take, became a great concern. This issue required an approach from a world-history point of view as it was interconnected with the hegemonic competition between the United Kingdom and Germany.
    Against this background, this paper reevaluates the causes that prevented the powers from reaching an agreement on the Chinese issues from the perspective of global history by analyzing the international relations in the imperial period and Chinese policies of the Western powers during the Chinese Revolution. This paper refers to Japanese diplomatic documents, sourcebook of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and British documents on World War Ⅰ, in order to identify the process of concluding the third Russo-Japanese agreement on the partition of Inner Mongolia, and also cites from materials of the National Historical Archives of Russia.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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