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원간섭기 초반 親朝와 監國 (Chinjo(親朝) and Gamguk(監國) during the early Yuan Intervention period)

한국학술지에서 제공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다양한 논문과 학술지 정보를 만나보세요.
32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3.11 최종저작일 2015.12
32P 미리보기
원간섭기 초반 親朝와 監國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사연구회
    · 수록지 정보 : 한국사연구 / 171호 / 101 ~ 132페이지
    · 저자명 : 이정훈

    초록

    본 논문은 원간섭기에 새롭게 등장한 국왕의 정치형태인 친조가 대두 및 시행되는 과정, 친조에 대한 인식 변화, 감국의 여부 등을 고찰한 것이다.
    몽골과의 3차 전쟁이 일어난 뒤, 고려가 강화를 요청하자, 몽골은 고종의 친조를 요구하였다. 국왕의 친조가 전례 없던 일이고 몽골이 항복의 전제조건으로서 친조를 요구하였던 만큼, 고려에서는 국왕의 친조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몽골의 친조 요구가 계속되자 국왕 대신 태자가 입조하였다.
    태자는 국정 운영의 최고 결정권자가 아니었으므로, 고종대에는 누가 국정을 운영할 것이냐는 문제는 대두되지 않았다. 그러나 태자 입조 후 고종이 사망하자,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신료들 간에 의견이 나뉘었다. 결국 국왕을 대신하여 입조하였기 때문에 태자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결정이 났다. 이에 태손이 감국하였다.
    원종대에는 두 차례 친조가 실시되었다. 원종 5년 원에서 친조를 요구하였다. 친조를 두고 그 대책이 강구되었는데, 대다수의 재추들은 반대를 하고 이장용만이 찬성하였다. 이렇듯 원종 1차 친조 때까지도 친조는 부정적이었고 친조에 대한 불안감도 컸다. 원종은 친조를 시행하면서 김준에게 감국을 명령하였다. 2차 친조는 폐위된 원종이 복위되면서 시행되었다. 2차 친조 때에는 1차와 달리 신료들간에 별다른 논의나 대책이 강구되지 않았다. 2차 친조 때에는 宗室인 왕종이 감국하였다.
    충렬왕대에는 11번의 친조가 시행되었다. 충렬왕대에는 원종대보다 친조 횟수와 친조 기간이 늘어났다. 또한 원, 국왕, 신료 등 친조를 요구하는 주체들이 이전보다 다양해졌으며, 때로는 고려의 친조 요청이 원에 의해 거부되기도 하였다. 국왕의 친조에 대해 재추 또는 신료들 간에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 이러한 변화는 친조가 고려와 원 사이에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감국은 친조 기간 동안 국정 운영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장치였다. 반면 국왕권을 대행한다는 점에서, 감국은 권력을 분산시키고 국왕권을 제약하였다. 친조가 자주 시행되는데도 감국이 계속된다면, 국왕권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원과 고려 양국을 연결하는 역로망이 정비되어 국왕이 친조를 하는 동안 역로망을 통해 국왕에게 신속하게 보고하고 국왕도 신속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첨의부와 도평의사사 등 정치기구가 정비되어 국왕의 부재 속에서도 행정 운영 및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도록 하는 등 친조 기간 동안 국정 운영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친조 기간에도 국왕은 국정 운영 최고 책임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 충렬왕대에는 감국이 시행되지 않았다.

    영어초록

    This thesis considers the emergence and process of chinjo(Royal trip to Yuan), as a new political format of the king during the early Yuan Intervention period, the change of the consciousness on chinjo and the existence of gamkuk(vicarious execution of king) and others.
    After the third war with the Mongols, Goryeo offered peace terms and the Mongols demanded chinjo by King Gojong(高宗). Since chinjo by the king was unprecedented and it was demanded by the Mongols as the pre-condition for surrender, it was not even discussed in Goryeo. However, due to the continuing demand from the Mongols, the crown prince attended the court instead of the king.
    Since the crown prince was not the final decision-maker in state affairs, the issue of who would operate such affairs did not emerge during the reign of Gojong. But after the crown prince attended the court, Gojong died, resulting in a division of opinions on who would succeed. Finally, the crown prince succeeded because he attended the court for the king.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was left to gamguk.
    There were two chinjos during the reign of Wonjong(元宗). Yuan demanded chinjo in the fifth year since his coronation. Subsequent response was sought on chinjo, to which most subjects opposed, except for Lee Jangyong(李藏用). As such, chinjo was perceived negatively with a sense of insecurity until the first chinjo by Wonjong. As he executed chinjo, Wonjong commanded Kim Joon(金俊) to gamguk. The second chinjo was performed as the deposed Wonjong was reinstated. For the second chinjo, there were no measures or responses sought among the subjects, contrasting to the first chinjo. For the second chinjo, Wongjong(王琮), a royal, was left to gamguk.
    There were eleven chinjos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nyeol(忠烈王), in which there were more times and periods of chinjo compared to the reign of Wonjong. Also, there were more diverse entities demanding chinjo, including Yuan, the king, and the subjects; and sometimes the requests of chinjo by Goryeo were rejected by Yuan. There were no discussions on chinjo by the king. Such change was due to the perception of it as a means to resolve the practical matters between Goryeo and Yuan.
    Gamguk was a means to fill out the vacuum in state affairs during the period of chinjo. On the other hand, gamguk may disperse the power and restrict the sovereign right in replacing the sovereignty. If gamguk was to be continued due to frequent chinjo, the sovereign power would have been weakened. Therefore, gamguk was not performed in the reign of King Chungnyeol. It is because first, the establishment of a postal road between Yuan and Goryeo enabled quick report to and commands from the king. Second, the political organizations such as Cheomoe-bu(僉議府) and Dopyeonguisasa(都評議使司) were established for administration and discussion of major state affairs to minimize the vacuum in state affairs.
    Cheomeo-bu and Dopyeonguisasa were organized under the system of state affairs. King Chungnyeol performed his roles as the supreme authority of the state even during the period of chinjo, resulting in a sovereign power stronger than before.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한국사연구”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25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31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