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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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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포 김만중의 문학세계
    Ⅰ. 머리말한국 문학사도 허다한 작가가 출몰되면서 장식되어 왔지만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최초로 작가의식을 갖고 작품에 임한 작가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김만중이 이에 해당된다고 본다. 조선조 문학에 있어서 시조작가는 윤고산, 가사작가는 정송강, 소설작가는 김만중이 이에 해당된다는 것은 주지된 사실이다.특히 한국 소설사에 있어서 조선조 초기에 최초로 소설을 쓴 김시습의 에 이어 임병양란을 계기로 군 담류소설과 이 나왔다지만 조선조 중기 숙종 조에 이르러 비로소 국제적인 차원에서 논의될 만한 대작 이 김만중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것은 획을 그어놓은 사실이 아닐 수 없다.서포 김만중은 당시 문화적인 모든 현상이 중국문화권에 꽁꽁 묶여 있을 당시, 한국인은 한국어로 작품을 써야 한다는 뛰어난 국민 문학론을 제창하였을 뿐 아니라, 시문에 있어서나 소설에 있어서도 이들에 대한 일가견을 갖고 폭넓은 범 동양적인 지식의 경험을 통하여 문학창작에 임한 위대한 작가라는 것이다.서포 김만중은『구운몽』,『만필(漫筆)』,『당시성음합편(唐詩聲音合編)』,『송율(宋律)』,『고시선(高詩選)』,『시선(詩選)』,『대부인행장(大夫人行狀)』,『의상질의(儀象質疑)』,『지구고증(地球考證)』,『주자요어(朱子要語)』, 『문집(文集)』등 여러 저작을 남겼다.본고에서는 서포 김만중의 시세계를 중심으로 그의 문학에 관한 전반적인 검토를 하고자 한다.첫째 서포의 시학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그는 출생 과정부터 남달랐기에 가정의 교육이 엄했다. 때문에 그의 학문관이나 문학에 대한 인식은 어려서부터 이미 고정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서포가 학문을 통해 추구하는 세계와 문학을 통해 표출하려 했던 이상을 고구함이 그의 시세계 전반을 이해하는 데 우선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이다.둘째, 서포 김만중의 시세계를 분석함에 있어서 주제적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시세계 전반에 흐르는 주제들을 고독과 그리움의 정서, 이별의 정감을 통한 현실 의식에 대해서 살피고자 한다.셋째, 서포 김만중은 문학과 사상에서 뿐만 아니라 국어와고학에 뜻을 가진 사람은 虛伯?象村?東溟 이 세 사람이다. 허백의 학문은 형모에 있어, 비유하자면 감자를 실컷 먹고도 좋은 경치를 읇어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미 지극히 높은 경지에 이른 자라 하겠다. 상촌은 여러 사람들에게 걸음마를 배워 용의는 광대하고 섬밀하지만, 원래의 재질과 성조가 별로 합치되지 않았다. 동명은 사나운 기운을 발양함에는 뛰어났지만 간절하고 측은하여 여유 있는 뜻이 부족하였으니, 하나는 알고 둘은 얻지 못했다. 그래서 가행(歌行)에는 적합하나 오언(五言)에는 합치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조시인의 유일한 이였다.”이 인용문에서 서포는 이들을 이른바 동방의 고학삼대가로 칭송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학은 응당 명대 문화사조의 영향인 진한고문과 당시풍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서포는 이 세 사람도 유일하게 고조를 배운 시인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고학을 가지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포가 말하는 진정한 고학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를 논하기 전 그의 학고 정신은 이미 어려서부터 생기기 시작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구운몽이 점점 자라면서 재주가 더욱 뛰어났다. 고체를 짓는 이가 남긴 범칙을 좇고자 하여 한위의 악부와 와 등 제가에 힘썼으니 이해로부터 비로소 저술이 있다.”이를 통해 서포는 옛 사람들이 남긴 본보기를 쫓기 위해 한나라나 위나라의 악부와 문선에 힘쓴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포가 말하는‘고학'이란 단순한 ‘의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순정한 ‘상고’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가 남긴 시에는 악부를 비롯한 고시가 주류를 이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음을 넘어 그가 얼마나 상고에 치중하였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서포가 주장하는 ‘학고’는 어디까지나 진정과 참신을 통한 고대 문풍의 진작이었으며, 고대의 문화적 전형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었다.Ⅲ. 서포의 시세계1. 서포시의 특징김만중의 한시집인 『西浦集』의 간행 연대 않는 강직한 그의 성품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서포는 많은 유배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시를 남겼는데, 이를 통해 당면한 현실적 상황의 비탄과 회한의 심정을 읇었던 것이다.2. 서포시의 문학사적 의의김만중이 살았던 17세기는 지식인들이 하나의 사상체계 속에서 획일적으로 편입되어 있던 시기였다. 여기서 말하는 획인적인 사상체계란 물론 주자학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층 지식인들은 끊임없이 노불이나 양명학 등 이단을 논박하면서 주자학의 독점적 권위를 강화시켰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지식인들의 학문적 관심은 예송과 명분으로 한정되고야 말았던 것이다.이런 시대에 김만중은 노론의 중요 인물이였으며, 숙종 연간에 계속 된 남인과의 치열한 정권 다툼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서포는 송시열에게 직접 사사하지는 않았지만, 우암이 증조고의 문인이었던 관계로 그를 사표(師表)로 여겼으며 존경이 극진하였다고 한다.이 장에서는 서포의 현실 대응 태도를 중심으로 그의 문학이 가지는 의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서포는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당대 획일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 학풍에 물들지 않는 몇몇 안 되는 이였다. 그러기에 불교 같은 이단시되던 학문도 제대로 배워 참뜻을 얻을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17세기 한시사(漢詩史)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복고주의(復古主義)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비평에서도 17세기 후반까지 당시풍을 존숭하는 일련의 시화가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들 비평서들은 대부분 실제 비평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작품의 우수성은 당시에 얼마나 핍진한가가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6-17세기 당풍에 대한 모의적인 추종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시사의 중심적인 흐름 이면에 18세기 새로운 시학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17세기 초반부터 이미 싹트고 있었다. 서포도 당대의 문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나는 일찍이 호음의 시에 "지금도 개미집 봉점한 것 아직 붙어 있다."는 말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중략있다.Ⅳ. 서포의 문학사적 위상1. 서포의 문학 이론과 그 실제원래 언어는 문화 그 자체로써 그 문화의 기반이다. 따라서 국어는 한국문화의 그 자체이자 한국문화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포 김만중은 국어의 실체와 실상, 그 기능에 대하여 이론과 실제로써 그 전모를 파악하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로써 서포의 문화적 기반과 그 역량을 족히 알 수가 있다. 나아가 서포의 문화학적 방법론과 그 영역이 확인된다.서포는 일찍이 국문의 제자 원리를 알고, 그 창제과정에 대해서 연원적으로 검토하였다. 『서포만필』하 3칙하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서역의 범어 문자는 초성 · 중성 · 종성으로 합하여져서 글자를 이루니, 그 생성이 무궁하다. 원의 세조 대 서역승 파사파가 그 문체를 변화시켜 몽고글자를 만들었고, 우리나라도 이로 말미암아 언문을 만들었다.국문의 제자 원리와 그 연원의 문제는 전문적인 고구가 요망되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작 원리를 초성·중성·종성의 결합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그것의 범자 기원설을 논외로 한다 치더라도, 이 삼성 결합의 성자 이론만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합자 이론이 비록 당시에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하더라도, 그다지 상식화되어 잊혀지고 묻혀진 사실을 새삼스럽게 주목하고, 그 범자 연원까지 밝히려 한 것은 이 국문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자 학문적 관심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만중의 이러한 학구적 태도와 비교 문자적 접근은 당시 민중은 물론, 지식 ·문화인들 모두가 둔감하고 도외시하던 정음학사에 획기적인 의미를 보여 주는 터라 하겠다. 적어도 이 논의 당시나 후대의 정음학에 한 씨앗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서포는 위에서 높이 평가하고 소중히 취급한 우리말 시문을 통하여, 그 기·정책의 방편으로서, 이 국문을 귀중하게 생각하였다. 그러한 국어 작품들이 이 국문에 의해서만 완벽하게 기록·전승되고 재 ·생동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포는 실제로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와 창제 과정을 익히 알고 명심하였겠지만포만큼 뚜렷한 작품을 지은 사람도 드물고, 김만중만큼 합리적이며 거시적인 문학론을 펴낸 사람도 별로 없었다. 김만중의 문집과 업적 등이 이를 실증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우선 그의 문학세계를 장르별로 개관해 보면 다음과 같다. 김만중은 문학적 가통과 환경, 천부적 재능, 후천적 정진으로 하여, 당대 문학의 각 장르에 걸쳐 많은 수작을 지어 냈다. 그의 문집을 비롯한 저술과 당해 왕조실록에 의하면, 그는 한시의 각개 장르에 걸쳐 수작·명품을 많이 내었다. 5언 절구·율시·고시, 7언 절구·율 ·고시 등 장르를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주제· 사상과 표현 면에서 거의 완벽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국어 ·국문의 가요에도 손을 댔으리라고 본다.이어 그의 수필은 각개 장르에 걸쳐 이를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수필의 장르는 원칙적으로 교령·중의·논설·전장·비지·애제·서발·일기·기행·담화·잡문 등인데, 이 장르마다 매우 뛰어난 작품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양적인 문제이기 보다는 그 작품들의 질적인 실체와 기능에 관한 수준이다. 그 중에서 교령은 응제문으로 특히 기발하고, 주의는 상소문으로서 질량 면에서 가장 탁월하다. 그리고 논설은 그 정신과 수법이 상주와 상소문에 충만하여 있다. 한편 전장은 행장이나 전기로서 탁이한 작품을 내고, 서발은 서문과 발문으로서 명품이 많다.한편 그의 소설작품은 너무도 저명하여 재론할 여지가 없다. 적어도 『구운몽』과『사씨남정기』는 세계적 명작으로 널리 읽히고 연구되어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외 문인과 학자들이 이 두 작품에만 집착하여 찬양 평가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이 두 작품을 통하여, 서포의 모든 것과 고전소설의 전체를 임의로 분석·평가하는 폐단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작품의 무궁무진한 가치평가와 그 선양을 위하고, 서포 김만중의 문화적 실상과 위상, 그리고 고전소설의 전체적 진가를 올바로 발양하기 위해서, 상호 균형적이고 유기적인 연구·개발이 절실히 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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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4.01.08 | 22페이지 | 3,000원 | 조회(371)
  • 워드프로세서 한글2010에 나타난 맞춤법 오류 - 맞춤법 검사기를 중심으로
    워드프로세서 ‘한글2010’에 나타난 맞춤법 오류- 한글 맞춤법 검사기를 중심으로 -워드프로세서 ‘한글2010’에 나타난 맞춤법 오류- 한글 맞춤법 검사기를 중심으로 -- 목 차 -Ⅰ. 서론 ?????????????????????????????????? 11. 연구의 목적 ??????????????????????????????? 1Ⅱ. 본론 ?????????????????????????????????? 11. 맞춤법 검사기의 분석 ????????????????????????? 11) 맞춤법 검사기의 개발과정 ?????????????????????? 12) 맞춤법 검사기의 기능 및 특징 ??????????????????? 12. 맞춤법 검사 과정 ???????????????????????????? 11) 형태소 분석과 품사태깅 ???????????????????????? 12)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 띄어쓰기??????????????????? 13) 구문 분석과 의미 분석????????????????????????? 13. 맞춤법 오류 ??????????????????????????????? 11) 표준어 규정에 어긋난 예 ??????????????????????? 12) 띄어쓰기의 오류 ???????????????????????????? 13) 낱말 자체의 오류 ??????????????????????????? 1Ⅲ. 결론 ?????????????????????????????????? 1Ⅳ. 참고문헌 ??????????????????????????????? 1Ⅰ. 서론1. 연구의 목적작년 방송통신위원회 및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발표한 가구 인터넷 보급률 및 컴퓨터 보유율 통계표를 보면 2011년까지 가구 인터넷 보급률과 가구 컴퓨터 보유율이 꾸준히 증가하였다. 2011년의 가구 인터넷 보급률은 81.8%이며, 가구 컴퓨터 보유율은 81.9%이다. 그만큼 지금 현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이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문장 단위의 띄어쓰기 오류 수정, 구두점 오류 지원2000년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을 기본 사전으로 변경, 외래어 표기는 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의 용례를 따름2001년 대법원 법원도서관과 법률 관련 용어 사전 추가, 법원용 시스템 개발(전문분야 시스템)[3판]2003년 전면 수정과 재프로그램(프로그램 단순화, 안정성 증가)2004년 각종 순화용어 반영(행정순화용어 포함), 동남아어 표기법 수용2005년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네덜란드어 표기법 수용2007년 화합물 명명법을 대한화학회(IUPA에 근거)의 표준으로 바꾸고, 일부(“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 따위) 널리 쓰이는 것은 기존 표기와 대한화학회 표기 모두 허용하게 함[4판]2009년부터 특수문자 포함 어절의 처리영어 맞춤법 기능 강화2009년 SMS 문장의 처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시스템 개선 (㈜삼성전자와 공동)강한 맞춤법 검사 기능과 약한 맞춤법 검사 기능 분리외래어 순화직접화법 표기(구두점, 인용조사)순화용어비속어교과서 검정에 활용하기 위한 시스템 강화(교육과정평가원과 공동)와 실제 적용을 통한 시스템 검증2) 맞춤법 검사기의 기능 및 특징맞춤법 검사기의 첫 번째 특징은 높은 정확도 이다. 맞춤법 검사기는 실제 사용하는 어휘중심으로 등록하여 높은 정확도를 보여준다.기본 단어 사전(다수어절포함)113.3만여 개 (12M)일반단어 : 77.6만여 개오류단어 : 35.8만여 개체언이나 용언이 되는 단어의 사전어미 사전(선어말어미제외)2.2만여 개 (460k)일반어미 : 4,200여 개오류어미 : 18,200여 개~다, ~고 등과 같은 어미의 사전조사 사전4.400여 개 (100k)일반조사 : 2,500여 개오류조사 : 1,900여 개~은, ~이 등과 같은 조사의 사전-맞춤법 검사기의 단어는 일반 사전에 있는 단어가 아니라 맞춤법 문법 검사를 위해정제한 단어로 현재 사용하는 시사용어도 포함된다. 또한 반수 이상이 일반사전에 나오지않으며, 일반사전에 있는 단어의 2/3는 빈도가 낮아서 제거 되었다.다양한 방식의 한글 맞춤법 검사기의 기능 구조는 다음과 같다.한국어 맞춤법 문법 검사기철자오류관련의미 문체 관련 다수 어절 관련철자검사의미 오류 처리 다수 어절 사전띄어쓰기 검사번역투 오류 다수 어절을이용한 교정외래어 표기법문장 부호 검사복합명사 오류 복합어 붙여쓰기사투리 검사용어 순화한글/한자변환검사영어 철자 검사2. 맞춤법 검사 과정맞춤법 검사기의 검사 과정은 크게 4가지로 나누어진다.형태소 분석과 품사태깅(품사 부착)컴퓨터를 이용한 자동 띄어쓰기구문 분석의미 분석이 네 가지에 대해 분석해보기로 한다.1) 형태소 분석과 품사태깅형태소 분석- 어절의 분석 가능한 모든 형태소를 찾는 과정- 먹고부터서였지만 -> 먹다+고+부터+서+였+지만품사태깅- 주위 문맥을 보고 올바른 품사를 찾는 과정- 나는 -> 너와 나는? / 싹이 나는? / 새가 나는?형태소 분석과 품사태깅에서 과정은 형태소 분석 -> 확률 값 얻기 -> 계산 -> 선택의 순이다. 예를 들어 누나가새연필을사줄때면나는기쁘다. 라는 문장이 있으면 일단 형태소를 분석을 한다. 누나가/새/연필을/사/줄/때면/나는/기쁘다. 그 다음 각 단어에 대한 확률 값을 계산해 확률 값을 얻는다. 그리고 그 확률 값과 확률 값을 계산해서 단어를 선택하게 된다. 오차가 가장 적은 단어를 선택해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새 라는 단어에는 정말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동물’인 ‘새’도 있고 ‘새롭다’는 뜻의 ‘새’도 있다. 그리고 물이 샌다고 할 때 쓰는 ‘새’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어떤 글이 맞는 것인지 확률 값을 계산해서 그에 맞는 단어를 선택해 어떤 뜻을 갖고 있는 단어를 써야 할지 선택을 하는 것이다.‘누나가’에는 명사+조사‘새’에는 명사, 관형사, 자동사+어미‘연필을’에는 명사+조사‘사’에는 수사, 명사, 타동사+어미‘줄’에는 타동사+어미, 자동사+어미, 보조용언+어미, 명사+조사‘때면’에는 타동사+어미, 명사+어미‘나는’에는 대명사+조사, 자동사+어미, 보조용언+어미‘기쁘다’에는 동사+어미 이렇게 있기 때문에 이 중에서 붙여 쓸 수 있다.)로 쓰일 때는 표준어이지만, “이 사람은 내 사둔이다.”에서와 같이 조사를 동반한 명사로 쓰인 경우는 ‘사돈’으로만 써야 한다.현재 사전에 나와 있는 표준어는 ‘쌍꺼풀’이다. ‘쌍까풀’의 경우에는 빨간 밑줄이 나타나야 한다.‘와사비’란 말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란 것을 알면서도 사용자들이 너무나 쉽게 쓰는 말이다. 국어에 맞게 순화된 ‘고추냉이양념’이란 말이 표준어이고 또한 빨리 보편화되기 위해서라도 ‘와사비’에 대해서는 빨간 밑줄이 나타나야 한다.사전에서 ‘부비다’를 찾아보면 이라고 나온다. 요즘 생겨난 ‘부비부비’란 표현까지 모두 잘못된 경우이므로 서둘러 고쳐져야 한다.‘찌찌’란 말은 일본말에서 영향을 받아 생긴 말로, 표준어가 아니다. 아무런 표시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고쳐져야 한다.‘들어나다’는 표준어도 아니고 정확한 의미를 가지지도 못한 낱말임에도 불구하고 빨간 밑줄 표시가 나타나지 않는다.‘잔나비’는 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따라서 ‘잔나비’가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빨간 밑줄 표시가 필요하다.혼동 위험은 적지만, 간혹 잘못 써진 경우를 보게 되는 말이다. 잘못 사용될 경우가 적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표현만 허용되도록 표시해야 한다.‘삐라’는 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점차 사라져가고는 있지만 표준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삐라’에는 빨간 밑줄이 생겨야 한다.‘호치키스’라는 말은 현재 사전에 ‘스테이플러’의 상표명으로 나와 있다. 기기의 정확한 명칭으로는 ‘스테이플러’가 알맞다.일본말에서 파생된 말이 많다. ‘구루마’ 역시 그 중 하나인데, 올바른 표준어 사용을 위해서는 ‘구루마’를 맞게 표시해서는 안 된다.‘찝찝하다’라는 말 역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표준어가 아니다.‘정구지’는 방언임에도 많이 알려지고 또한 쓰이고 있다. 하지만 표준어가 아니므로, 아니라는 표시를 분명히 해야 한다.② 은어와 비속어의 허용 여부한글2010에서 허용하고 있는 은어와 비속어- 삥땅- 꼰대- 대따- 다구리- 무르팍--쯤데외이거 얼마 만인가? (O)3년 만에 (O)3년만에 (X)될 만한될만한네가 세 번째야.그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이거 얼마 만이야? (O)이거 얼마만이야? (X)이거 얼마만인가? (X)오랜만에 (O)오랜 만에 (X)할 만한할만한열 집째 탐문 중이야.(O)열 집 째 탐문 중이야.(X)10살쯤 (O)10살 쯤 (X)여드름이 난 데는 이유가 많아. (O)여드름이 난데는 이유가 많아. (X)그가 망령이 난 데는 다 까닭이 있어. (O)그가 망령이 난데는 다 까닭이 있어. (X)제시한 예 외에 다른 예가 더 있다.의존명사 ‘만’은 접미사 ‘-만’과 달리 띄어 써야 맞다. 하지만 옆의 예문에서는 의존명사로 쓰였음에도 빨간 밑줄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 되었다.‘오래간만’은 명사이고 그것의 줄임말인 ‘오랜만’ 또한 명사이므로 ‘오랜만에’는 붙여 써야 맞는데 두 경우 모두 허용하고 있으므로 고쳐져야 한다.보조용언 ‘만하다’의 띄어쓰기에 일관성이 없다. 띄어 쓰거나 붙여 쓸 수 있으나 ‘될만한’의 경우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째’는 접미사이기 때문에 명사, 관형사, 수사 뒤에 붙어 사용되어야 하는데, 오른쪽 예문에서처럼 ‘-째’를 붙여 쓸 경우, 빨간 밑줄로 표시되어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쯤’은 접미사이기 때문에 앞의 말에 붙여 써야 하는데,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두 경우 모두를 허용하고 있다.네 가지 예에서 쓰인 ‘데’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맞는데, 띄어 쓸 경우 빨간 밑줄이 나타나고 있다.예에서 제시한 ‘외’는 띄어 써야 하는 의존명사인데, 붙여 쓸 경우 빨간 밑줄이 사라지는 것으로 봐서 ‘예외(例外)’라는 낱말로만 인식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③ 이름과 호칭 띄어쓰기의 일관성이 없는 경우허용하는 예허용하지 않는 예비 고계백장군 (X)계백 장군 (O)노무현대통령 (X)노무현 대통령 (O)정약용선생 (X)정약용 선생 (O)장보고영감 (X)장보고 영감 (O)박찬호선수 (X)박찬호 선수 (O)박아무개씨 (X)박 아무개 씨 (O)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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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4.01.06 | 22페이지 | 5,000원 | 조회(2,946)
  • 역사교육의 정신분석학적 접근
    서론20세기에 정신분석과 다른 여러 학문들과의 만남은 필수불가결하게 이루어졌다. 정신분석은 지난세기 인문분야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고, 그 사상적 매력은 지금까지도 인문, 사회,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신분석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한 대로 문학적 요소가 강한 학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다른 어떤 이도 넘어설 수 없는 확실한 연구방향과 지향점을 제시했다. 정신분석학이 현대 상담심리학과 성격심리학의 바탕이 되는 것은 프로이트의 깊은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역사교육의 문제와 지향점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프로이트 정도의 통찰력을 요구한다. 선행연구도 없는 이 논문을 쓰는데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이론적 내용의 완성도보다 그 접점의 출발을 제시한 것에서 의미를 두고자 한다.이 논문에선 현 역사교육의 문제를 민족주의와 절대적인 합리성으로 보고 그것들로 인해 억압돼 있는 역사교육의 수많은 관점을 해방시키려는 방법으로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거대담론 즉 민족, 이성에 억압돼 있는 수많은 역사관들이 무의식에 있다 가정하고, 정신분석에서의 치료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그것들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현 역사교육의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이라 설명한다. 역사교육의 증상 즉 민족주의와 합리성에 집착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무의식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접근해보고 그 해결책으로 ‘자유연상기법’ 을 통해 역사교육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알아본다.‘거대담론에 억압돼 있는 역사교육’에서는 민족주의, 이성, 진보로 대표되는 현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해보고 ‘역사교육의 치료를 위한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을 의식화 했을 때 환자의 증상이 치료된다는 정신분석의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역사교육의 증상을 해결해 본다. ‘민족주의에 대한 강박증’에선 현 역사교육이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증상을 강박증으로 규정하고 무의식에 있는 역사를 억압하는 방법을 말한다. ‘절대적인 합리성에 대한 고착’ 에서는 근대의 역억압에 의해 그 곳(무의식)으로 쫓겨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초창기부터 무의식과 억압의 개념은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현 역사교육의 문제는 소수 거대담론의 역사교육이 무의식의 수많은 건강하고 실천적인 역사 교육관을 억압하고 그것의 부작용으로 증상을 발현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증상을 구성하는 생각은 소망과 충동의 표현이라고 믿었다. 즉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무의식의 역사들은 자꾸 억압의 굴레를 벗어 의식의 공간으로 나오려고 하지만, 현 역사교육은 거대담론에 고착되어서 방어기제로서의 증상을 강화, 발전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증상은 불안이 튀어나오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다.” 라고 말했다. 불안은 무의식의 욕망이 나옴에 따라 자아가 취할 수 있는 자기 방어적 성격을 띤다. 즉 포스트모던 시대에 역사교육의 무의식에 있는 것들의 힘이 커지면서 현 역사교육은 불안하게 되고, 그 힘을 회피하기 위해 증상을 낳는다.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 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하지만 거대담론에 젖어있는 역사교육의 문제를 간단에게 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작업은 분명히 현 역사교육의 저항을 가져온다. 프로이트도 치료를 위해선 우선 환자의 억압을 지탱하고 있는 저항을 제거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항은 무의식에 속해 있지 않고 자아에 속해 있다. 환자에게 저항의 무의미성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 억압을 제거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무의식은 저절로 의식화된다.이 점에 있어서 현 역사교육의 저항을 깨는 일은 역사교육의 무의식에 있는 수많은 역사적 관점들과 소통의 길을 열어주는 데 있다. 무의식의 역사적 관점이 거대담론의 역사적 관점보다 이 시대에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자아에게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다. 거대담론의 무의미한 측면을 강조하고 무의식에 있는 역사교육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Ⅲ.‘역사교육’의 정신분석1. 민족주의에 대한 강박증‘민족’, ‘민족주의’ 는 근대 한국 사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사 연구자들이 민족적 형식을 강조한 나머지, 민족을 초역사적 실재로 부당 전제함으로써 역사 연구의 인식론적 가치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인식 지평을 고정된 민족적 형식에 가둠으로써 무의식에 있는 건강하고 실천적 지향을 굴절시키고 있다는 이유이다.정신분석의 대표적 학자인 칼 융은 “무의식을 의식화 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라는 말을 남겼다. 무의식의 역사들은 언젠가는 억압을 뚫고 의식의 영역으로 올라 올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역사교육의 증상은 강화될 것이고, 무의식의 역사들은 마치 관심 받지 못하는 생물이 멸종하듯 하나하나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민족주의에 대한 강박증을 벗어나서 하루빨리 역사교육의 무의식과 용기 있는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민족주의에 의해 억압됐던 것들에게 잃어버린 의미를 찾아주고 그것으로부터 역사교육의 새로운 시작을 모색해야 한다.2. 절대적인 합리성에 대한 고착근대 역사학은 탐구방법으로 과학적 논리를 채택함으로써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했다. 역사 연구는 일종의 기계적 작업으로서, 사실적 자료들에 의한 경험적 연구를 추구하였고 그 결과에 대한 해석에는 ‘이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역사학은 인과관계의 시간적 계기성에 기초하여 객관성을 추구하는 전문적인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역사가들이 사실과 가치 그리고 역사와 허구를 구분하는 근거는 사료 고증에 있었다. 엄격한 사료 비판이 역사 연구의 기본 방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20세기 초에 역사학은 더 이상 문학의 한 분야가 아니었고 “역사학은 과학 이상도 그 이하” 도 아니었다. 역사가들은 역사 연구의 수사학적 전통을 따르기보다 과거의 현상들을 ‘설명’ 하기 위해 ‘구조’ 와 ‘이론’ 을 상정하였다. 역사적 현상이란 그 자체로서는 이해할 수 없으며 ‘필연’ 의 사유와 이론을 통해 비로소 이해된다고 보았다.하지만 최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대한 회의와 그것으로 인한 증상 등을 설명하면서 현 역사교육의 문제의식을 살펴봤다면 이 장에서는 그것들에 의해 무의식에 있었던 역사교육의 새로운 관점들을 모색해 보고, 특히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시사를 통해 역사교육의 다양한 측면들을 알아보고자 한다.미시사 혹은 미시문화사는 무엇보다 역사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역사 속의 복잡다단한 리얼리티는 전체사적 흐름이라는 이름 아래 정작 그 주역인 인간 개개인은 사라져버린다는 거대역사 보다는, 잘 테두리 지워진 지역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적 가치관이나 위기에 대처하는 전략 등을 탐색하는 미시적 접근을 통해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를 배웠다. 거시사는 역사에 일정한 흐름이나 법칙이 있다고 보고 이를 밝히기 위해 통시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관점을 말한다. 그러나 연구 주제가 정치, 경제, 남성이라는 한정된 키워드로 채워질 우려가 있다. 반면 미시사는 시대의 흐름에서 놓친 일반 민중의 이야기를 하나의 역사로 인정한다. 따라서 국가적으로 기록된 역사뿐만이 아니라 구술 기록까지 사료로서 그 범위를 확장시킨다. 마치 현미경으로 바라보듯 세밀하게 관찰해 이로부터 또 다른 하나의 역사를 만든다. 특히 미시사는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인종중심주의와 목적중심적인 사고가 나타나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권력을 잡고 있던 지배 계급보다 소위 하층 사람들에게 주목해 스스로의 사고와 신념을 가지고 행동했던 인간을 탐구하는데 목적을 둔다.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미시사를 의식으로 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미시사는 사료의 한계성도 가지고 있어 연구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료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들이 사료가 될 수도 있다. 일기류 역시 미시사적 접근에 활용될 여지가 많은 중요한 사료이다. 최근의 연구를 보면 그 소재와 제목이 밝혀진 것만 해도 천 종이 넘게 남아있다. 그 내용도 다양해서, 매일 자신이 읽는 책명을 밝히고 있 연구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거시사건 미시사건 모두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거대담론 중 하나인 민족주의나 정말 개인의 소소한 역사를 다루는 일상사나 모두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민족주의로 인해 어떤 특정집단이 이익을 받는다고 하여 근대의 낡은 이념을 전체화시켜 버리면 결국 억압돼 있는 무의식의 역사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최소한 무의식의 역사들이 거대담론의 역사와 한바탕 대결할 수 있는 자리라도 만들어줘야 되지 않을까?Ⅳ. 역사교육: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전환1.‘자유연상’ 을 통한 역사교육의 다양화프로이트는 ‘최면암시’를 응용하여 ‘자유연상’이라고 알려진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였다. 정신을 탐구하려는 상대방에게 단순히 무엇이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말하라고 요구하는, 전에 들어 보지 못했던 계획을 채택하였다. 이 중대한 결정 때문에 곧바로 놀라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프로이트가 채택한 수단이 초보적인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유연상을 통해 환자의 저항을 깨고, 환자의 증상을 지배하고 있는 무의식의 근원을 알 수 있었으며, 그것을 환자가 인식하게 하여 증상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 장에서는 역사교육의 관점에 자유연상을 도입하여 현 역사교육이 억압하고 있는 무의식에 대한 저항을 깨고 다양한 역사교육의 관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역사교육에 있어서 자유연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학에서 말하는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학계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의 사실이다. 역사는 발견되는 것만큼 창작되는 것이고, 현재 중심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역사에서의 ‘진리’란 과거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해석을 통해서 텍스트(언어, 기호)의 형태로 인식되는 것이다. 즉, ‘역사’와 ‘소설’의 차이는 역사가가 이야기를 ‘발견’하는데 반해, 소설가는 그것을 ‘창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와 달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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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2.24 | 22페이지 | 5,000원 | 조회(264)
  • 한중 FTA 이해 및 현황
    동아시아는 통화위기가 발생한 1997년까지 급속한 경제발전을 해왔다. 이 지역의고도성장은 일본을 선두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이른바 동아시아 NIEs가주도해 왔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 및 NIEs의 직접투자에 힘입어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이 그 뒤를 따랐다. 90년대부터는 중국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각국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장이 전망되는 지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국(OECD)의 보고서 『The World in 2020:Towards a New Global Age』에 따르면 향후 글로벌화와 경제자유화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전제하에 21세기 중국을비롯한 동아시아는 세계에서도 가장 변화가 예상되는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구체적으로는 1955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중국 8%, 인도네시아7%,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6.9%로 전망되고 있어 EU, NAFTA의2.8%, 남미의 5.3%에 비해 고성장이 예상된다.동아시아에서 제도적인 협력체 형성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 된 것은 97년 말 전개되었던 통화위기가 계기가 된 것으로 불 수 있으며, 이후 ASEAN+3 정상회의가 정례화 됨으로써 지역경제협력 및 경제통합 논의가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2005년 12월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ASEAN+3 정상회담에서 ASEAN 10개국과 한․중․일간의 합의로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국을 기본으로 하는 『쿠알라룸푸르선언』이채택되기도 하였다. 이 선언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정치, 경제, 안보 등 폭넓은분야의 협력을 목표로 하는 것은 천명하고 ASEAN+3가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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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2.21 | 25페이지 | 3,000원 | 조회(493)
  • 한반도 안보와 관련하여 한미동맹의 미래방향 제시
    2013년도 제 12회 대학생 안보토론대회 발표 논문제 5분과: 미래지향적 방위역량 강화를 위한 한미동맹의 발전방향한반도 안보와 관련하여 한미동맹의 미래 방향 제시우송대학교조원하제 5분과: 미래지향적 방위역량 강화를 위한 한미동맹의 발전방향한반도 안보와 관련하여 한미동맹의 미래 방향 재시??Ⅹ?Ⅸ. 서론Ⅰ. 한미 동맹관계1. 한미동맹의 성과 및 의의2. 동맹의 현안과 점검Ⅱ. 한반도의 안보상황Ⅲ. 한미동맹을 통한 한반도 안보의 향후 발전1. 한중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발전2. 한반도 안보협력 아래 한미동맹의 향후 발전Ⅳ. 결론제 5분과: 미래지향적 방위역량 강화를 위한 한미동맹의 발전방향논문 요약2013년은 대한민국에 박근혜 새 정부가 출범하였고 한미 60주년을 맞으며 한반도 정세도 극변하였던 특별한 해이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을 다시 한 번 짚어보며 현재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어떠한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현재 한반도의 상황을 한미동맹을 통해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그리고 또 북핵 문제에 공통적인 입장을 보이는 중국과 한미중 전략적 안보 협력을 구축하여 향후에 어떻게 발전하면 좋을지 등을 조사하고 연구하였다.??Ⅹ?Ⅸ. 서론올 2013년은 지난 1953년 10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고 결성되어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이한 의미가 깊은 해이다. 또한 2013년은 정전협정 60주년이기도 하다.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체결된 한미동맹은 셰계 동맹 사상 대표적인 성공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1960년대 미국의 경제적 지원 아래 대한민국의 경제력 및 군사력의 신장과 함께 과거 군사동맹 위주로 나아갔던 한미관계도 지속적으로 발전 해왔으며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에서 군사·경제·문화·사회를 모두 공유하는 글로벌 전략적 동맹관계로 발전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박대통령은 방미를 하며 한국과 미국의 동맹은 글로벌 전략적 동맹에서 글로벌 파트너쉽으로 가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오바마 대7일 미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여기서 이루어낸 가장 큰 성과는 북한의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미 양국은 단호한 대북정책 공조를 펼쳐 도발에 철저히 대응하면서도 대화의 창은 언제나 열어둔다는 점에서 서로 협력하여 한반도 안보상황을 현실적이면서 미래 지향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겠다는 점이다.한미동맹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했다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 흔들림 없이 지켜졌고 이것이 우리가 요즘과 같은 번영을 누리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고 한미동맹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2012년 10월 24일 워싱턴 D.C.에서 제 4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는 한미동맹 수립 60주년이 되는 2013년을 맞이해 지난 60년간의 동맹의 발전과 진전을 평가하고, 동맹 발전을 위한 국방 분야의 장기 비전 공동 연구를 포함한 장기 전략기획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2013년 5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공동선언의 주요 내용은 한미동맹의 성과를 평가하고, 아태지역 평화와 번영의 핵심 축으로서 한미동맹과 미국의 확고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충실한 이행 등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및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과 북핵 등 북한문제에 대한 공동대처를 강조하는 한편, 동북아 및 글로벌협력의 지속과 양국 국민들 간의 교류협력 강화 등을 통한 양국관계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요약된다.한미동맹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신뢰에 기반을 둔 철저한 대북정책 공조가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었다는 사실은 6·25전쟁 이후 60년 세월이 흐르도록 북한의 위협이 한결같이 지속되고 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역내 및 글로벌 안보환경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국제적 대응이 긴요한 사안임을 의미한다.2008년 후반 이후 한미관계가 최상의 상태임을 내외 전문가들은 물론 국민들까지 흔쾌히 인정하고 미래 발전을 기원하는 것은 양국의들이 꼬리를 무는 것은 양국 관계가 그만큼 긴밀히 연계되어 있고, 우리 국가 발전과 안보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우리가 지난 60여 년간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평화를 유지하면서 다방면에서 쌓아온 업적을 더욱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우리 스스로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을 정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대화와 협상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안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우리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정책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대화를 진행시킬 수가 있고 양보할 수 있는 범위가 판단되며 우리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전략적 접근이 마련될 수 있다 한미동맹과 북한 위협, 역내 국제관계의 변화 등 우리 안보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요소들에 대해 객관적이고도 엄정한 평가와 우리 정책방향을 미리 구상해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그리고 역설적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우리의 입자이 명확하게 정립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우리 모습을 진솔하게 되돌아보며 반성이 필요한 부분은 철저히 반성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생존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간과해버린 부분은 없었던가? 이념적 성향으로 편향된 주관적 목소리가 엄연하고도 객관적인 현실을 압도하여 국민의 안위를 위험에 빠뜨릴 때 정치지도자는 용기 있게 제 역할을 했으며 국민은 국민의 도리를 다했던가?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그리고 역내 안보정세가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그동안 우리는 우리가 처한 전략적 상황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데 소홀한 면이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를 제대로 식별하지도, 구체적인 청책 방안을 도출하지도 못한 채 국론분열만 양산했던 과거 실수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핵 개발 의도와 움직임을 빤히 바라보면서 20년 세월을 허송한 결 있다. 향후 5년간 상대해야 할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에서 기선제압을 해야 순조롭게 대남정책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햇볕정책으로 회귀를 압박하는 측면도 있다.다음 미국 정부의 대북저책 변경을 강요하는 무언의 메시지로 암시할 수 있다. 북한은 현재 상태가 바로 ‘대조선 적대시정책’,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북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치 않고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경제재재를 강화하자는 결의로 추가 채택한 데서 생겨난 것으로 인식된다 즉 북한은 아무런 전제된 조건 없이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신속히 회귀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정책이라는 것을 미국에게 계속 보이려는 것이다.한국 국민들에게는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시키려는 대남 심리전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전술이 제대로 먹히면 우리 사회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더해지며 대북 유화론의 발판 또한 강해지리라 북한 지도층은 생각하고 있다. 이 경우 ‘북남 관계’에서 지금까지의 ‘도발-협상-보상’의 반복 상황이 다시 일어날 수 있고 결국엔 북한의 이익에 요구되는 결과가 도래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북의 전술적 의도에 맞춰줄 경우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파행을 거듭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국면에서 우린 의연하며 냉정한 자세로 한미동맹에 착수하고 평화 및 안보를 위한 강력한 대북정책을 갖추어야 한다. 그와 함께 주변 국가와의 긴밀한 외교적 관계를 통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을 중지하고 진정성을 보이게 해야 하며 대화의 창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즉, 원칙적인 대화와 협력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다.Ⅲ. 한미동맹을 통한 한반도 안보의 향후 발전한반도 안보를 안정적이고 향후에 좀 더 좋은 개선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과의 관계를 장기적인 안목의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2004년 10월 양국 국방부 차원에서 동맹비전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합의하고 2년여의 연구 작업 끝에 2006년 9월 한미동맹 . 이날 합의 내용 중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내용은 ‘맞춤형 전략’이다. 이 전략은 평상시 북 핵에 대한 위기 상황을 ‘위협→사용임박→사용’ 등 3단계로 구분하여 외교 및 군사적으로 대처한다. 탄도미사일이나 항공기, 잠수함 등을 이용한 북한의 대남 미사일 공격 징후가 포착될 경우 한미 양국은 정밀유도무기 등 재래식 전력은 물론이고 핵전력까지 동원해 이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이 전략에는 미국의 핵우산 전력과 토마호크 미사일 같은 정밀타격무기 등이 포함된다. 맞춤형 전략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은 결국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한미동맹의 강력한 메시지를 저들이 느끼게 해야 할 것이다.1. 한중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발전지난 6개월간 박근헤 정부의 대표적인 성과를 꼽자면 외교 및 안보분야를 들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여건이 좋지 않은 배경에서 취임하였다. 미국과 중국의 새 정부 출범으로 미중관계의 새로운 관계 개선을 진행하는 부분에서 우리의 외교적 기반은 안전하지 못한 상태였다.이러한 국면에서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가장 먼저 한미 동맹관계를 재조명하고 대북 정책과 외교 기조에 대해 미국의 지지를 얻어낸 것은 매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6월에는 중국을 방문하여 대중외교를 강화한 부분은 이명박 정부와 다른 점을 부각시켰다. 이는 극과 극으로 치닫던 남북관계를 대화의 국면으로 전환시키며 북한에 특별한 양보 없이 개성공단 정성화 합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남북관계 전체 국면을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었다.2013년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양국 정상은 이 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한반도의 평화·안정 유지’가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 천명하여 강력한 ‘북핵 불용’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그 외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정치·경제뿐 아니라 과학·문화·인문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강화 방안에 합의하였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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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2.12 | 16페이지 | 3,000원 | 조회(426)
  • [A+] 박문수 고찰 논문
    역사와 문학 속의 박문수에 대한 비교와 고찰목 차Ⅰ. 서론Ⅱ. 역사 속의 박문수Ⅱ-1. 정치 관료로서의 행적과 위민(爲民)정책Ⅱ-2. 박문수 어사 이력에 대한 고찰Ⅱ-3. 인간적 매력 및 성격Ⅲ. 설화와 소설속의 박문수Ⅳ. 현대의 박문수 이미지 형성 과정Ⅴ. 결론*참고문헌Ⅰ. 서론1989년에 박인호 씨가 작사, 작곡하여 대중적 인기를 끈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이란 노래를 보면 ‘어사 박문수’ 란 구절이 등장한다. 또한 누구나 소설 『박문수전』을 통해 암행어사로서의 박문수(朴文秀, 1691~1756)의 활약상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주지하고 있듯이 박문수는 암행어사의 대명사로서 널리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박문수의 이러한 이미지를 형성시킨 것은 소설을 비롯한 아동도서, 위인전, 만화, 드라마, 영화 등과 같은 다양한 매체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어려서부터 접하게 되는 것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역사가 아니라 흥미유발과 극의 완성도 따위를 위해 가공 생산된 박문수의 형상이었다. 그 모습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사실로서 받아들임으로써 오늘날까지 박문수하면 그저 암행어사로서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들을 사랑했던 인물로만 알려져 있는 것이다.이런 상황 속에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왜 하필 박문수일까 라는 것이다. 우리가 암행어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인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이 ‘박문수’나 『춘향전』의 ‘이몽룡’ 정도일 것인데 이몽룡은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라는데 비해 박문수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소설화 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 밖에 다른 실존인물 중에서 암행어사로 알려질 만한 인물은 없었던 것일까? 조선시대에 지방에 어사를 파견하는 제도가 약 400년 동안 이어졌는데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어사들이 임명되었고 그 임무를 수행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파견 암행어사파견시기 및 지역이 황 (1501~1570)1542년 42세에 중 상황이 된 것이다. 박문수는 이때에 감시에 급제하였고, 노론이 완전히 몰락한 1723년 증광시에 급제했으니 정계진출에 있어서 그 개편과정에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 다음해인 1724년 박문수는 세자시강원 설서(世弟侍講院 說書)에 임명되었는데 세자는 뒤에 영조가 되는 연잉군(延?君)이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후에 연잉군이 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왕위에 오르자 소론에게는 다시금 위기가 닥치게 되었다. 이에 박문수는 사직 상소를 올렸으나 윤허 받지 못했다. 오히려 영조는 중심을 잃지 않고 국정을 운영하는 한편, 노론의 끊임없는 배척에도 불구하고 박문수를 힘써 보호하는 것은 물론, 평생 지척에 두고 자신을 보좌하게 했다. 이와 같은 단순하게 임금과 신하로서 설명할 수 없었던 영조와 박문수의 관계가 있었기에 박문수의 향후 행적이 있을 수 있었다.박문수의 관료이력에 대해서는 에 정리해두었는데, 박문수는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며 많은 분야에서 개혁적인 정치를 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자시강원설서로 영조와의 인연을 시작하였고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다시 기용됨에 따라 관직에 재임용되어 영남별견어사가 되었다. 이것은 박문수의 첫 번째 어사 이력이 된다. 영남별견어사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오명항의 종사관이 되어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박문수는 분무공신 2등에 책록되고 영성군에 봉해지게 되었다. 이후 1731년(영조 7년) 영남감진어사로 다시 한 번 활약하였고 이듬해에는 서명균(徐命均) 의 부사로 청나라에 가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박문수는 예조참판, 도승지, 병조판서, 형조판서, 호조판서, 예조판서, 어영대장, 수군절도사 등의 주요 관직을 역임하면서 군사 및 재정정책에 관해 영조를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박문수의 화려한 관직 경험은 많은 업적으로 이어졌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이 위민(爲民) 정책이었다.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박문수의 위민정책은 지방으로 파견되는 임시관리였다. 어사의 종류에는 임무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존재했는데, 시재(詩才), 시취(試取)어사, 감운(監運), 조운(漕運), 운량(運糧), 벌목(伐木), 기우(祈雨), 독전(督戰), 감군(監軍), 점군(點群) 어사 등이 있었고 명칭과 같이 시험의 주관자이거나, 운반책임을 맡은 자, 양곡운송 책임자, 벌목 책임자, 기우제를 주관하는 자, 군기 및 전투를 독려하는 자, 군사 감독 및 군인 점고를 행하는 자 등으로 나누어졌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 점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암행어사(暗行御史) 와는 구별된다. 암행어사는 ‘암행(暗行)’ 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목적과 행선지,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 암행어사도 어사의 명칭 중의 하나인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어사의 종류에는 지방수령의 형벌, 조세수납 등을 규찰하고 굶주리는 백성에 대한 진휼이나 백성의 고충을 염찰하는 업무를 행한 어사도 있었는데, 임무의 특성상 암행을 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라고 간주된다.이와 같은 어사(御使) 라는 지방감찰 관리는 성종 14년(1483)에 처음 파견되었고 암행어사라는 정식 명칭과 함께 임명하여 염찰하도록 한 것은 중종 때부터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관심사인 박문수의 어사 이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박문수의 어사 이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주장이 제기되어 왔고 또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박문수가 영남과 호서지방에 두 차례 어사로 파견되었다는 견해이고 둘째는 영남에만 파견되었다는 견해, 마지막이 일반적인 어사와 암행어사를 구분하지 않고 막연하게 암행어사로서 활동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오해에 대해서 본고에서는 박문수의 생애와 관력(官歷)을 세밀하게 연구한 최근의 논문들을 바탕으로 박문수의 어사 이력에 대한 오해를 종식을 하여 군정(軍情)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박문수를 음해하려는 무리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박문수가 경연자리에서 대신들 가운데 침묵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논척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당로자(當路者)를 아첨해 섬기는 데는 마치 노예와 같다.”이 때문에 대신들이 잇따라 상소를 올려 박문수를 질책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 중 유최기(兪最基)는 다음과 같이 비난하였다.“동방삭(東方朔)도 아니면서 해학의 기교를 부리고 우맹(優孟)의 태도를 모방하여 광변(狂辯)으로 사람들을 기만하며, 자기 멋대로 고관대작들을 능멸하였다.”박문수는 이에 실언하였음을 자인하였는데 그렇다고 본래의 생각을 꺾은 것은 아니었다. 박문수의 해학은 분명 그의 장점 중의 하나였으나 우직하고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지나치기도 하여 어려움에 빠뜨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해학을 즐겨 구사한 것은 반대로 그의 주도면밀한 성격과 예민한 정서를 나타내는 것으로 박문수의 성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세 번째, 박문수는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이것은 그의 유년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696년에는 조부가 이듬해 5월에는 백부,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부친마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세 해 동안 조부, 백부, 부친을 잇달아 잃게 되는 순탄치 못한 유년기를 경험한 것이다. 명문가에서 한참 귀염 받을 6~8세 사이 박문수는 죽음을 체험하고 상사(喪事)를 치러야만 했다. 박문수가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은 겨우 다섯 달이고, 아버지와 함께 지낸 채 2년이 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의 성장은 인간 박문수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관건이 된다.따라서 박문수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으며 성장했다. 뒷날 박문수가 보여주는 기질은 어머니의 그것과 비슷하다. 박문수는 전적으로 외가의 도움을 받았는데 13세인 1702년 어머니를 따라 삼척에 있는 외조부에게 갔었고 19세 때인 1709년에는 외숙 이태좌(李台佐)의 임소인 강원감영에 갔다가 금강산을 유람정이 딱한 소년을 혼사시키고 장인으로 하여금 재산을 나눠주게 함6해학비오는 날 단신의 재상 최석정을 놀림7해학폭염에 기우제 시 기지를 발휘하여 영조에게 우산을 씌움8해학한양 방비책에 대한 풍자9해학청 사신에게 볼에 있는 상처의 유래 설명10해학학문이 부족함에도 기지와 재치로 과거에 급제함 은 박문수 관련 설화에서 ‘해결’과 ‘해학’ 이라는 두 유형을 선별해본 것이다. 해결과 해학은 각각 박문수의 능력과 기질에 관련되는데 해결형 이야기는 박문수의 활발했던 위민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고, 해학형 이야기는 특유의 소박하고 직설적인 언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해결형 이야기는 어사 및 관찰사 시절 민원 해결에 적극적이었던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특히 가난한 소년 장가보내기와 노처녀 시집보내기 등을 주도했던 박문수의 행적에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거침없는 해학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평소 박문수의 성격과 평가에 부합한다. 설화 속 박문수의 형상은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해학을 즐겼으며 백성들의 편에 서서 많은 민원을 시원하게 해결해준 관료’ 임을 확인할 수 있다.민간에서의 박문수 설화는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전승되었다. 야담집의 그것에 비해 종류도 훨씬 더 많고 다채로운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박문수 설화를 연구하는데 있어 당시의 민중의식을 밝히는 텍스트로 활용되어왔다. 여기서 앞서 다루었던 박문수의 행적과의 관련성을 간략하게 검토해보기로 한다. 설화 속 박문수의 형상은 크게 ①정의의 심판자, ②백성의 원조자, ③도움을 받는 사람, ④평범한 사람, ⑤지혜가 부족한 사람, ⑥신이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것은 다소 모순되는 두 성향으로 나뉘는 것처럼 보이는데 ①,②,⑥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어려움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해 준다는 계열에 속하고 ③,④,⑤는 그 반대의 계열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인물에 대해 정반대의 두 분류로 나뉘게 된 것은 민중들이 박문수를 일관성 없이 혼란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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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2.01 | 16페이지 | 3,000원 | 조회(305)
  • 한일합방 전후 연해주 독립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의의
    한일합방 전후 연해주 독립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의의목 차Ⅰ. 머리말Ⅱ. 연해주 지역 내 한인의 거주 상황Ⅲ.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의 전개과정1. 유인석 의병과 성명회2. 권업회, 한인사회당3. 대한국민의회와 3·1운동Ⅳ. 일제와 러시아의 연해주 독립운동 탄압1. 니항사건과 4월참변2. 자유시 사건Ⅴ. 맺음말Ⅰ. 머리말두만강 하류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접경해 있는 한민족 고지인 러시아령 연해주는 한국근대사의 전개과정에서 한국독립운동 내지 민족운동의 중요 무대로 확대된 지역이다. 또한, 그를 이어 볼셰비키혁명 이후에는 한국근현대사에서 공산주의라는 복잡한 이념문제를 제기한 곳으로서도 주목할 의미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연해주 일대의 한민족 동향에 대해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그동안 이념의 대립으로 인해 지역적으로 차단되어 있었고, 더욱이 자료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이 분야 연구에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다.러시아지역 한인 민족운동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말 박형표에 의해 연해주 지역의 한인 독립운동에 대한 개척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이래, 1970년대 초에는 고승제에 의하여 연해주 이민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다. 그후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 1990년의 러시아와 한국과의 수교 등으로 러시아 지역의 한인 민족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이 분야에 대한 적지 않은 연구 성과들이 축적되었다. 그런데 이들 연구 성과들의 대부분은 한인 공산주의 운동에 관한 것이었다.러시아혁명 이전의 활동에 대하여는 박영석, 박환, 박민영, 반병률, 오세창, 윤병석, 이동언, 이동언, 이명화, 임계순, 정태수 등에 의한 연구들이 있다. 그들의 연구를 통하여 러시아 한인사회와 재러한인의 의병활동, 언론활동, 민족주의 교육운동, 성명회, 권업회 등의 독립운동단체, 독립운동기지인 신한촌 등에 대한 많은 내용이 밝혀지게 되었다.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연해주의 독립운동은 당시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도 무장투쟁과 국내진공을 통한 조국의 해방이라는 뚜렷은 지난 7월 8일 야유슈카에서 150명의 빨치산이 참여한 가운데 대화를 열었다. 나중에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나온 편지를 본 결과 이들은 군대 조직인 창의소를 발기하였다. 13도 창의대장에 유인석, 회장에 이범윤, 부대대장에 이남기, 훈련대장에 이상설을 선출하였다. 7월 8일 회의에서는 작은 부대들과 일본을 반대하는 모든 부대들을 합쳤다. 그전에는 지금까지 이범윤, 홍범도, 유인석이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상호 간에 연대성이 없었다. 앞서 언급한 유인석의 작전계획은 국내의 여러 항구에 불을 지르고 북쪽 지방에서 빨치산 활동을 재개하며, 각 도에 항일 전단을 살포하고 모든 일에 한국인의 단결을 호소하는 것이다.이 보고서를 통해 13도의군의 설립 장소가 암밤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3도의군이 결성될 때 참석했던 유인석의 아들 유해동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70리 떨어진 곳”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중심인물인 이범윤, 홍범도도 라즈돌노예와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암밤비 촌이 라즈돌노예 근처에 있었다는 것은 정태수가 편역한 『소련 한족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인 무장 유격대들은 라즈돌노예에서 조직되었다. 시두고우, 산두고우, 에르트고우, 암밤비 촌의 한인 농민들이 이곳으로 왔다.”암밤비에서 13도의군을 조직한 유인석은 1910년 7월 연해주 지역에 사는 모든 한인에게 민족적 조직인 창의소가 결성되었다는 것과 13도의군 책임자로 유인석·이범윤·이남기·이상설 등이 선출되었음을 알렸고, 대규모 항일전을 전개할 계획 하에 고종에게 연명 상소를 올려 내탕금으로 군자금을 지원해 줄 것과 연해주로의 파천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국내의 여러 항구를 불태우고, 북쪽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며, 각 도에 항일 전단을 살포해 한국인의 단결을 호소하는 작전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또한 유인석은 많은 사람들이 일본과의 결전에 필요한 군자금과 식량 등을 지원하고 창의소 회원으로 가입하는 등의 협조를 요청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 호소문에서 유인석은 로써 권업회는 러시아에 있는 한인단체 가운데서 처음으로 러시아 당국의 공식인가를 받은 단체가 되었다.1911년 12월 19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내 한민학교에서 권업회의 공식적인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창립총회에서는 임원을 선거하였는데, 의장 이상설, 부의장 이종호, 총무 김익용, 한형권, 재무 김기룡, 서기 이민복 등이었다. 연해주의 러시아인 주요 인사들을 명예회원으로 가담시키기도 했다.권업회는 그 명칭이 말해주듯 극동 노령 한인들에게 실업을 권장하고 근검절약정신을 기르며 교육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이 단체가 명칭을 권업이라고 한 것은 일본의 방해를 피하고 러시아 당국의 허가를 얻어 합법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위장술이었고 실제는 독립운동이 주목적이었다. 이러한 권업회의 목적은 곤다찌도 인가할 때 미리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이 권업회는 종래의 항일단체보다 진일보한 조직과 이념을 갖고 창립되어 회세를 시베리아 전역은 물론, 간도와 북만의 한인사회에까지 확대시키면서 효과적인 활동을 펴나가게 되었다.3) 권업회의 활동권업회는 급진적인 의병항전을 하거나 울분과 감정에 의한 극렬적인 항일시위를 하기보다는 민족의 힘을 길러 장기적인 전략으로 독립전쟁을 해야 한다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실업부, 교육부, 선전부, 검사부 등의 부서를 두고 교육 진흥, 신문 간행, 한인 자치활동, 토지 조사, 귀화문제 등의 업무를 추진하였다. 러시아 총독은 한인들의 이와 같은 활동이 극동노령지역에 있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는 요소로 간주하고 권업회 활동을 적극 권장하였고 한인들은 이에 고무되어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극동 노령당국은 권업회로 하여금 연해주 한인의 자치기관의 지위를 부여하고 러시아 당국의 행정 업무를 대행케 하였다.권업회는 중앙조직을 두는 한편 지방에 지회를 두어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권업회의 일반 회원자격은 회칙에 의하면 신앙·남녀·교육에 구별 없이 21세의 성년에 달한 자이면 누구나 입회할 수 있도록 되었다. 그러나 실제에컸던가를 말해준다.특히, 《권업신문》은 1910년 이후 안정된 러일 관계를 바탕으로 일본 측이 러시아 측에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탄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연흑룡주 총독이 한인에 대한 유화정책을 추진하여 일본의 요청을 일체 거절하는 분위기 하에서 한국인들의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 간행된 신문이다. 또한 1910년 8월에 국권 상실 이후 국내외 한인의 민족 신문으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즉, 《권업신문》은 미주의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간행된 《신한민보》와 동 하와이지방총회에서 간행된 《신한국보》와 더불어 항일민족의식을 선도하는 3대 언론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었다. 때문에 일제는 이들 신문의 국내 유입금지, 압수소각에 철저를 기하고자 소동을 벌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권업신문》이 연해주 한인의 강렬한 의기 소식을 만주로, 미주로, 본국으로 전하면서 온 민족의 독립의지는 더욱 결연해질 수 있었다.5) 한인사회당의 성립 배경1917년 러시아의 2월 혁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자 그 동안 억눌려 있던 한인사회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제정 러시아가 붕괴되어 구심력이 약해지고 여러 계층과 민족이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원심력이 강해지는 가운데 한인들도 점차 세력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96명의 한인대표들은 2월 혁명 직후인 1917년 6월 우수리스크에 모여 ‘제1차 전러시아한인대표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상설 중앙기관으로 전로한족회중앙총회(고려족회)를 결성하고 회장은 문창범이, 기관지 주필은 윤해가 담당했다.전로한족회중앙총회는 러시아 한인사회에서 최초로 중앙기관으로 결성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중앙총회가 선명한 반일노선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러시아 한인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반일적이었다는 점과 대회 주도인물의 성향으로 보아, 반일성향이 잠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뒤이어 1917년 10월 혁명이 발발하고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 영향이 연해주 지역으로 급속히 파급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문一.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한민족의 자주독립一. 일본통치철폐一.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정부 승인 요구와 국제연맹 참가一. 독립운동의 실정과 정부수립의 사실을 각국에 통고一. 이상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할 때 대일혈전포고대한국민의회 임시정부는 소비에트체제를 참작하여 국민의회가 입법, 행정, 사법을 모두 관장하도록 하고 그 안의 행정부를 임시정부로 설정했다. 국민의회 임시정부의 특징은 첫째, 의회주의 성격이 강하고 둘째, 극동노령과 간도의 수십만 교포를 배경하고 있으며 셋째, 독립군에 의한 무장투쟁을 강조하고 있고 넷째, 행정부 조직에 산업총장과 참모총장을 별도로 두어 교포의 산업진흥과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력투쟁을 적극 추진하려는 기구를 갖춘 것이다.또한 각료선임의 특징을 보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3·1독립선언 대표 손병희를 대통령으로 추대했고 부통령에는 국내와의 연락 관계를 고려하여 박영효를 추대하였다. 그러나 손병희는 감옥에 있었고 박영효는 국내에 있었으므로 모두 명예직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 국정을 담당할 국무총리에 이승만과 내무총장에 안창호를 선임한 것은 이들의 명성과 미주독립운동과의 관련을 중시한 듯하다. 김규식을 강화대사로 선임한 것은 이미 상해 신한청년당에서 파견한 기정사실을 임시정부 대표로 추인한 것이라 하겠다.3) 대한국민의회의 의의와 한계대한국민의회는 한말 이후 러시아령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역량을 총집결하여 체계적인 임시정부를 설립하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따라서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한 러시아령 지역의 한인 임시정부로서 독립운동사상 뚜렷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특히, 대한국민의회가 주도한 연해주 3.1운동은 국내에서 일어난 3.1운동의 흐름에 불을 붙이는 기폭제가 되어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 연해주의 한인 민중들은 연해주 3.1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족의식과 정치의식을 높일 수 있었다.1919년 3.1운동 직후 조직된 대한국민의회 임시정부는 한국독립운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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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1.26 | 25페이지 | 3,800원 | 조회(372)
  • [논문]현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Ⅰ. 서 론제 1절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1. 연구의 목적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출산율 변동 추의는 다음과 같다.〔표 1〕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변동 추의(단위 : 가임여성 1명당 명)2**************************7합계출산율1.301.171.191.161.081.131.26현재의 출산 수준이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 전체인구는 2017년 4925만 명으로 절정에 이른 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에서는 출산 장려를 위한 출산 장려금 지급, 출산 축하금 지급, 셋째 자녀에 대한 양육비 지원, 산전 후 휴가급여 등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는 출산과 양육 문제 자체를 바라보는 현실적인 관점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한 설문조사 결과 가구 소득별 수준이 낮을수록 자녀 출산 및 양육비의 비용 때문에 자녀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고려할 때 사회 전반에 걸쳐 출산을 희망하지만, 경제적 여건상 지연하고 있거나 더 이상의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지원 정책은 부재한 실정이다.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서양 국가들과는 달리 출산에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부모가 모든 지원을 하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낳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주어지는 단기적이고 산발적인 이벤트성 정책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아이를 낳아서 큰 부담 없이 잘 기를 수 있는 여건 즉,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통한 가족 형성에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한 것이다.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경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하여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출산장려정책을 진단해보고, 자녀 출산 및 양육비용의 경제적 부담과 저출산 현상의 관계를 조사하여 경제적인 수준도 점차 남성 못지않게 높아짐으로서 기능직, 전문직 등 다양화 여성 노동력이 노동시장에 대폭 진출하게 되었다. 〔표 2-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경제활동참가율도 꾸준히 증가하여 1991년 47.1%에 불과 했던 것이 2005년 50.1%까지 상승하였다. 또한 중졸이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중은 1991년 55.0%에서 2005년 30.8%호 낮아졌으나, 동 년도 고졸(39.2%)과, 대졸(26.6%)은 증가 하였다. 따라서 교육은 간접적으로 경제 활동참가율을 높인 반면, 미혼여성들의 초혼연령을 상승시켜 출산기능 기간을 감소시킴으로 출산율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표 2-3〕교육수준별 경제활동참가 비율 (1991-2005)(단위 : %)연도중졸이하고졸대졸전체연도중졸이하고졸대졸전체199155.033.69.447.1199910.137.517.447.6199252.435.010.547.1200039.738.418.648.6199349.337.111.447.1200138.039.219.849.2199448.038.012.147.8200236.539.821.149.7199546.538.613.248.4200333.239.724.048.9199644.939.114.418.9200431.839.925.349.8199744.538.314.949.8200530.839.226.650.1199840.437.516.547.1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연보」, 2006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변화추이를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15∼19세 여성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25∼29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980년의 32.0%에 2004년 63.7%로 25년 만에 두 배가량 급격히 상승하였다. 이러한 여성의 경제활동 구조가 M자형을 유지하는 이유는 20대 후반에서의 경제활동참가는 증가하지만 출산·양육기로 추정되는 30대 초반에서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저출산의 요인으로 지 즉, 생산인구 1인당 부담액을 산출하기 위하여 총 진료비를 생산 인구로 나누어 계산하면, 연간 41만원에서 87만원으로 증가할 것이다.3. 가치관의 변화 요인1) 결혼에 대한 가치관과거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보편혼의 가치관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혼인을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 유교가치관의 희석, 산업화,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보편혼은 약화되고 그 영향으로 충분한 미혼기간을 보낸 후 결혼을 하거나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즉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보편적인 구속이자 의무가 아닌 선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표 3-3〕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태도는 남성 29.4%, 여성 1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남성에 비해 여성이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도한 결혼 가치관의 변화는 결혼연령을 상승시켜 만혼 또는 비혼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많아지고, 초혼연령 상승은 여성의 출산연령 자체가 높아지는 결과와 함께 여성의 가임기간이 짧아짐으로 출산율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표 3-3〕미혼남녀(20~40세)의 결혼 필요성에 대한 태도(단위 : %, 명)성별, 연령반드시결혼 해야함결혼하는편이좋음해도 안해도 무방하지않는편이좋음모름계(사례수)미혼남성29.442.013.52.23.0100(1.466)미혼여성12.936.344.93.722100(1.204)자료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5년도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조사」, 20062) 자녀에 대한 가치관근대 산업사회에서는 자녀가 생산자가 아니라 피부양자가 되어 자녀를 부양하는데 더많은 교육이 요구되고, 물가의 상승으로 인하여 자녀부양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렇듯 자녀가 제공하는 의미가 변하면서 자녀에 대한 가치관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결혼을 하면서 일정수의 자녀를 출산하는 보편의 자녀관에서 점차 소자녀관이 확산되고 있다. 〔표 3-4〕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결혼 후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 는 질발급받아 각 지방자치단 체와 협약을 맺은 대형마트, 금융기관, 문화시설 등을 이용시 할인, 면제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5) 다양한 가정에 대한 지원① 신혼부부 가정㉠ 저소득 무주택 신혼부부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과 소형 분양주택을 특별 공급 합니다.㉡ 기존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차할 경우 주택기금에서 저리의 전세, 구입자금 융자도 병행 실시합니다.② 입양아 가정 및 장애아 가정㉠ 입양아 가정입양수수료 전액을 지원하며, 만 13세 미만의 입양아동에 대해 월 10만원의 양육수 당을 지급합니다. 장애아입양 가정의 경우 양육보조금(월 55만원) 및 의료비(연 252 만원)를 추가로 지원합니다.㉡ 장애아 가정만 12세 이하 취학 전 장애아동에 대한 보육, 교육비를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③ 농ㆍ어업 민 가정㉠ 농업인 영유아 양육비 지원농지 소유면적 5ha 미만의 농가 또는 이에 준하는 축산, 임업, 어업경영가구가 만 5 세 이하 자녀를 보육시설 등에 보내는 경우 보육. 교육비(정부 지원 단가)의 70%를 지원합니다. (단, 5세 아동은 100% 지원)㉡ 여성 농업인 일손 돕기 지원농지 소유면적 5ha 미만의 농가 또는 이에 준하는 축산, 임업, 어업경영가구가 만 5 세 이하 자녀를 보육시설 등에 보내지 않는 경우 보육비(정부 지원 단가)의 35%를 지 원합니다. (단, 만 5세아는 50% 수준 지원)제 2절 외국의 출산장려정책1. 프랑스(1) 출산율 추이프랑스는 1970년대부터 출산율 저하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해 1980년 고령사회 진입 이후 출산율이 지속 하락하였으나 1994년 이후로 현재까지 상승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95년 출산율이 1.71명까지 떨어지자 정부는 이대로 가다간 인구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특단의 출산장려 정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가 제안한 출산 장려 정책은 단기적 처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ㆍ인구 정책의 테두리에서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으로 이뤄졌으며 그 핵심은 아이의 양육비용은 낮춰 주고, 모 등 특정 직종의 여직원에 대해서는 유업휴업금(공제조합의 봉급이 직원부담분에 상당한 액)이 지급된다. 부분휴업의 경우에는 근무하지 않는 시간만큼 그변액을 감액하여 지급한다.민간부문은 고용보험법에 따라 육아휴직중인 근로자에게는 1995년부터 고용보험에서 휴업 전 임금의 25% 상당액의 육아휴직 급여가 지불되며, 건강보험법과 후생연금보험범법에 따라 건강보험 및 후생연금보험의 보험료 납부를 면제받는다.3. 영 국〔표 6〕 영국의 합계출산율 변화 및 국내총생산(1인당)60-6565-7070-7575-1080-8585-9090-9595-20002000-2005합계출산율2.812.522.041.721.801.811.781.701.60* 주 : 1995, 2000, 2002년 수치는 1인당 국내총생산(당해 년 가격)을 기준으로 함.* 자료 : 통계로 본 세계와 한국, 통계청, 2005국제통계연감, 통계청, 2005(1) 관련정책① 아동수당제도영국에서는 증가하는 아동양육비를 경감하고 자녀가 많은 가정에 대한 빈곤 방지를 위하여 ‘가족 수당법’을 제정, 제2차 대전 이후 급격한 출산율의 감소를 해결하였다. 첫째 자녀에 대한 수당 지급을 1977년부터 실시하여 아동에게 일정액의 아동수당을 지급하였다. 의무교육 종로 이전의 아동이라면 가정의 경제수준에 관계없이 한 자녀 이상을 가진 모든 가정에 지급하고 의무교육 연령 상한 이하(현재 16세)의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전일제 교육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19세까지 수당을 지급하고 편부모의 첫째 자녀는 일정액의 아동수당을 추가로 지급한다. 지급액은 첫째 자녀에게 주당 14.40파운드, 둘째 자녀부터는 주당 9.6파운드를 지급한다.②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제도영국은 여성근로자가 출산을 할 경우 18주 동안의 휴가를 부여하는데 이것은 입양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근무지에서 1년 이상 고용상태를 유지할 경우에는 본래의 18주에 추가로 11주의 휴가 사용이 가능하다. 한편 자녀가 5세가 될 때까지 13주 동안 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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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1.19 | 29페이지 | 5,000원 | 조회(888)
  • 율법과복음의충돌(마가복음)
    신약신학 세미나 소논문복음과 율법의 충돌-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와 유대인과의 논쟁을 중심으로 -2012년 12월 17일침례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신약학 전공최 정 운목 차Ⅰ. 서론 1Ⅱ. 유대교 사회에서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2Ⅲ. 복음과 율법의 충돌31. 복음과 율법의 긴장관계41) 죄사함 논쟁42) 안식일 논쟁53) 정결법 논쟁72. 복음의 결과와 확장91) 생명과 치유와 변화92) 복음의 확장: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로9Ⅳ. 결론 및 제언11참고자료12Ⅰ. 서론예수는 공생애 시절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잦은 갈등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그 갈등의 결과로 십자가 처형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방인 중심의 공동체였던 마가교회의 상황에서 복음이 유대인 문화를 넘어 이방인에게로 확산되는 개념은 마가신학의 하나의 독특한 면이라 할 수 있겠다. 마가에게 있어서 예수는 하나님의 약속된 구원적 통치의 시작이라는 견지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한 존재이셨으며, 동시에 자신을 통하여 이 복음을 역사 속에서 성취한 존재이셨다.그런 의미에서 마가복음에서 복음은 율법과의 갈등과 긴장을 뚫고 그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마가복음서 전체에 흐르는 복음과 율법의 긴장관계는 마가복음 신학에 대한 좌표 역할을 한다. 이 양자의 긴장관계는 마가복음서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독자들의 긴장을 재촉하며 빠른 속도로 전개되도록 촉매 역할을 한다. 이 긴장의 절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며, 즉 십자가의 사건이 긴장의 절정이 되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백부장의 고백 혹은 확인은 이 긴장관계의 붕괴와 더불어 복음이 유대인의 틀을 깨고 확산되는 기점을 제공해 준다.다른 공관복음과는 다르게 마가복음에서 복음은 율법과의 충돌을 통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복음으로 오신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어떠한 충돌을 경험하였고 또 그 복음으로 인한 결과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밝힘으로 복음의 가치와 위대성을 논하고자 한다. 일단 마가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유대인 분리되지 않은 종교생활을 장악하고 있던 제사장들의 역할은 점점 쇠퇴하였으며, 반면에 율법을 기록하고 가르치던 서기관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증대되었다. 서기관들의 역할이 단순한 율법이 기록에서 벗어나 율법을 가르치는 기능까지도 포함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동승하면서 그 중요성과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이로 인해 예수님 당시는 율법의 영향력 증대에 비례하여 서기관들의 영향력도 증대되었던 것이다.서기관들은 포괄적인 모세의 계명에 대한 세부 지침을 만드는 등 율법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러한 작업의 결과가 많은 유전들을 만들어 내어 민중들을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들이 끊임없이 율법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결과물들은 민중들에게 중요한 신앙생활과 일생생활의 지침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들을 얽어매는 명에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종교가 생활을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종교규범 자체가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규범이었으며 일상생활의 윤리 규범들이 바로 종교 규범이었기 때문에 민중들의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과거의 특정한 상황에서 지켜지던 많은 율법과 구전들이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에도 여전히 강요되고 있었다. 장로들의 유전은 사람들이 율법을 파괴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울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러한 울타리가 율법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치가 되었던 것이다.Ⅲ. 복음과 율법의 충돌마가의 이야기는 갈등의 이야기이며, 이 갈등의 이야기를 앞으로 추진시키는 힘이다. 주요 갈등은 예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일어나며, 종교 관원들과 유대 군중을 형성해간다. 군중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까지는 그분을 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관원들이었다. “친근한 서기관”들을 제외한 종교 관원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무리들이었다.예수와 충돌하는 사람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혹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로 제시된다. 서기관들은 유대교의 거룩한 전승의 연구와 교를 용서함(2:1-12), 제의적인 정결(2:15-17; 7:1-23), 금식(2:18-22), 안식일(2:23-28; 3:1-6), 이혼(10:2-12), 예수의 권위(11:27-22), 세금문제(12:13-17), 부활(12:18-27), 가장 으뜸 되는 계명(12:28-34),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12:35-37) 등이다. 이방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며 복음의 확장을 방해하던 대적자들과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제들은 복음과 율법의 긴장관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마가복음서에서 선언하는 ‘복음’을 뚜렷하게 드러내 주는 상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1) 죄사함 논쟁마가 시대에는 질병이 죄의 증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의 죄를 용서받는 것은 치료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를 용서한 것을 목격한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스스로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생각했다. 즉 용서를 선언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위를 그 자신에게 돌리셨고 하나님의 위엄을 침해시켰다는 것이다. 예수는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시기 전에 죄사함을 먼저 선언했다. 예수가 믿는 자들에게 주려는 근본적인 것은 죄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예수는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중풍병자 치유 사건을 활용했다. 그런데 죄사함의 주제는 유대교 지도자들도 심각하게 다루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경의 율법을 기초하여 성전에서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근거한 죄사함의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그런데 예수는 그들의 견해와 전혀 다른 죄사함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것이 유대교 지도자들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마가는 이 사건을 죄사함이라는 신학적 주제에 대하여 예수와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의 충돌과 관계시킨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먼저 예수의 선언에 의문을 제기했다. 예수는 역질문을 통하여 죄사함을 하나님의 권세와 관계시켰다. 예수는 인자가 땅에서 치유하는 사건에서 예수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진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얽어매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은 지도자들에 대하여 분개하면서 그들과 충돌했다. 예수는 선한 일을 위하여 안식일을 선용하고 치유하심으로 생명을 구하시는 반면, 관원들은 악을 행하고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이용한다(3:4, 6).또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더욱 감시를 받게 된다. 거기 한 편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실 것인가 아닌가를 보기 원했다. 그들의 규칙에 따르면 안식일에 이런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죽음의 위험에 처한 위기적 상황이 아니었고, 다른 날에 치유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논쟁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유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도전하신다. 예수님께서 제기하신 수사학적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항상 합법적이라고 주장하신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관한 옹졸하고 사랑이 없는 이해를 노출시키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고치신다. 결과적으로 논쟁 첫 순환 주기 끝 부분에서 예수님과 종교 관원들 사이에 갈등이 이미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까지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3) 정결법 논쟁마가는 예수와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의 대립 사건들을 이미 한데 모아 보도한 바 있다(2:1-3:6). 그런데 마가는 이 문맥에서 또 다른 대립 사건을 전달한다. 그것은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는 유대교의 정결법과 관계된 대립이었다. 이것은 씻지 않은 손 곧 불결한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위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지 말라는 장로들의 전승을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지키지 않은 데서 발생한 것이었다. 장로들의 유전은 음식과 관계된 정결법을 비롯하여 유대인서 다룸으로써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는데 있어서 유대교의 유전들이 걸림돌이 되었던 것을 반영한다.예레미아스(Jeremias)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이었다고 말한다. 바리새파 공동체의 신입회원은 바리새파적 정결 규정들과 십일조 규정들을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했고, 바리새파 공동체 가운데 압도적인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평민들도 바리새파적 십일조 규정들과 정결규정들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그처럼 강조한 정결 의식에서 중요한 것은 씻는 예식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이 이야기는 본래 마가 공동체가 이방인들을 포용하는 관행을 정당화해 주었다. 이 이야기는 또한 인종적/종교적 정체성을 지키도록 기능하는 제도로서의 정결체계가 인간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억압할 수 있음을 설득해 준다. 공동체의 정체성과 경계에 대한 지배적 이념을 넘어 마가는 하나의 대안적 비전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열린 공동체’로의 지향이다. 예수는 모든 음식을 정결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니 종래의 기준으로 볼 때에 부정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 예를 들면 이방인들이나 이스라엘의 불가촉천민들도 모두가 정결한 사람이 된다. 하나님 나라의 성결한 백성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한 사람들을 이렇게 정결하다고 여겨주는 것은 마가복음 안에서 예수의 일관된 행동이었다.예수께서 사람이 음식으로 부정해질 수 없다고 선언하였을 때(막 7:15), 그는 그로써 마가가 설명한 것처럼(7:19) 모든 음식이 정함을 밝힐 것이며, 의식적으로 지켜지던 모든 전통들을 원칙적으로 무효화시킨 것이다. 자신의 권위에 근거해서 예수는 모세법에 나타난 정결의식의 원칙을 거부하였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의가 더 이상 율법에 의해서 중개되지 않고 예언자들에 의해서 예견되었으나, 지금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실현 과정에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속행위에 의해서 중개된다. 결국 예수가 제시하려는 복음은 율법과 전통을 뛰어 넘는 새로운 국면의 인간 삶을 포함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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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1.09 | 14페이지 | 3,000원 | 조회(359)
  • 마태의 교회관-교회의본질과권위
    마태복음 세미나 소논문마태복음의 교회론2012년 12월 10일침례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신약학 전공최 정 운목 차Ⅰ. 서론 1Ⅱ. 교회의 시작과 출발과 기초21. 베드로의 신앙고백22. 계시의 특수성23. 반석의 의미9Ⅲ. 교회의 정체성: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121. 음부의 권세2. 교회의 권세Ⅵ. 교회의 권세: 천국의 열쇠(매고 푸는 것)를 가진 교회121. 천국의 열쇠122. 매고 푸는 권세12Ⅴ. 결론 및 제언13참고자료13I. 서론“교회(εκκλεσια)”는 사복음서 중에 마태복음에만 등장한다. 그만큼 복음서 중에 교회의 복음서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마태복음은 교회에 대한 관심과 교훈을 찾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많은 이해와 이미지,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진정한 교회의 기초, 정체성, 그리고 그 교회에게 부여하신 권위에 대한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마태복음 17장 16-18절의 말씀은 교회에 대한 교훈을 제대로 얻을 수 있는 본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이 본문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 교회가 다시 한 번 붙들어야 할 교회에 대한 이미지와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그 기초와 권위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교회, 그 출발점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의 권세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순간까지 든든히 설 것이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 되신다(계. 1:8). 먼저 절의 순서를 따라 교회의 기초, 다음에 교회의 정체성, 이어서 교회를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의 열쇠 개념 연구를 통해 교회의 권세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마태복음의 교회론을 살피기 위해 먼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카할’의 헬라어 번역인 ‘에클레시아’를 신약에서는 교회라고 통칭한다. 곧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무리’,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공동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의 출발과 시작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Ⅱ. 교회의 시작과 출발과 기초1. 베드로의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베드로의 이 고백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핵심적인 신앙고백이었다. 하나님 앞에 살아계신 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것은 아마도 그 지역의 잡다한 신들과 대조되는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은 가이사랴 빌립보의 신들처럼 살아 있지 않은 이 세상의 신들과는 대조되는 참되신 하나님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이 고백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를 축복하신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다. 따라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주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당신의 교회의 출발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의 핵심이 베드로의 고백의 내용의 요지는 예수께 대한 신앙고백이다.베드로의 신앙고백의 내용의 두 가지 요지는 첫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고, 둘째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직 나사렛 예수가 이스라엘과 온 인류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 곧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 또한 그 예수가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에 근거한 신앙이야말로 예수의 교회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앙고백의 공동체이며, 예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2. 계시의 특수성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나님이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하심으로써 예수에 대한 이 결론이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전달되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비록 인간의 이성과 추리 과정을 통한 것이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신앙고백을 인간의 이성과 추리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 즉 하나님께서 공인하시는 진리로 인정하신다. 그리스도는 예수가 메시야 되심을 하나님의 계시로 아는 자들과 베드로 위에 자기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설립의 권세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전체를 가리킨다. 이런 맥락에서 “내 교회”란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존재를 깨닫고 믿음으로 그분과 하나로 결합된 연합체를 가리킨다. 반석은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신앙고백이며, 따라서 그 핵심은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다.‘페트로스’와 ‘페트라’는 정확하게 동일한 단어가 아니다. 페트로스는 남성형 명사로서 ‘돌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페트라’는 여성형 명사로서 ‘바위’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마도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부여하시고자 한 이름은 ‘바위’라는 뜻의 ‘페트라’였겠지만, 이 단어의 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인 시몬에게는 적절하지가 않았고, 따라서 그 남성형 명사인 ‘페트로스’를 부여하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반석’의 심상은 안정과 지구력을 암시한다. 이 안정과 지구력은 심지어 지옥 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비록 이 땅위에 세워진 지역교회는 영적 전투 가운데 있는 불완전한 교회이지만, 영원한 우주적 교회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이어서 교회 정체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Ⅲ. 교회의 정체성: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1. 음부의 권세“음부의 문”이라는 은유는 구약성경과 구약과 신약 중간 시대의 기록들에서 발견된다. 이는 “사망의 문”과 동의어이다. 음부/스올은 죽은 사람들의 영역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 어구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가정할 때, “죽음의 권세” 또는 단순하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즉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죽음의 권세 또는 죽음이다. 또한 다른 해석으로 ‘하데스의 문들’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데스의 문들’은 구약의 ‘스올의 문들’을 번역한 것으로, ‘죽음의 문들’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를 그 기초로 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서 소멸되구원되는 것을 보았다(마10:8). 예수의 사역에서 들끓었고 그의 제자들이 동참한 죽음의 권세들과의 이 메시야적 투쟁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며, 교회가 이 투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 영원하며, 안전하다.Ⅳ. 교회의 권세: 천국의 열쇠(매고 푸는 것)를 가진 교회1. 천국의 열쇠“천국의 열쇠”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에 참여하는 길을 소유하고 제시하는 권세를 가리킨다. 천국의 길을 깨닫게 된 베드로는 천국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다(23:13). 그런데 이 열쇠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예수의 참된 정체를 깨닫고 그와 연합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권세이다. 예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스스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기 때문에 그들을 정죄하였다(눅 1152). 동일한 사상이 마태복음에도 나타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지식은 “계시로 인한 영적 소유”이다.베드로에게 위임된 권한은 계시, 즉 열 두 제자와 함께 가지고 있는 영적인 지식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가 자신이 통과한 계시의 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인도해 들일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이다.베드로는 교회를 대표하여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 그것은 과거 초대교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이해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에게 주신 영적인 특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할 때 묶여 있던 생명의 문들이 하나하나 열리게 되고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문 앞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2. 매고 푸는 권세“매일 것이요... 풀릴 것이다”는 말은 신학적 수동태로서 하나님의 능동적 활동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랍비들이 ‘허용된 것’(‘풀다’), ‘허용되지 않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해석은 단순미래수동태의 의미와 거의 다르지 않다. 미래완료형은 땅에서 매인 것은 땅의 결정에 앞서 하늘에서 이미 매여져 있게 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태가 피하고자 했던 단순미래수동태의 의미와는 분명히 다른 의미를 주기 때문에 그가 위도했던 것을 가능성이 좀 더 짙다. 그 경우에 마태는 땅에서 내린 어떤 결정에도 무조건 찬성하는 하늘의 자동 고무도장이 있다는 생각을 피하기 위해 우회적 시제를 사용했을 것이다. 반대로, 땅의 결정의 권위는 정확하게 말해서 하늘에서 이미 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내재한다.이 동사들은 관행적으로 그리고 확실히 옳게 율법이 요구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흔히 사용되는 랍비적 어법의 ‘매는 것(binding)’에 비추어 설명되고 있다. 따라서 이 용어들은 가르침의 기능을 말하고 있고 좀 더 명확하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binding)할 수 있는 할라카적인 판결을 하는 것 중 하나를 말한다. 이 경우에 16:19에 나타는 베드로의 ‘열쇠의 권세’는 누가 천국에 받아들여 질 수 있고 없는가를 결정하는 문지기의 권세라기보다는 그의 직분의 열쇠가 그로 하여금 집안 일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청지기(steward)의 권세이다(일반적으로 이 열쇠의 비유에 구약의 배경으로 여겨지는 사 22:22에서처럼). 따라서 할라카적인 판결이 궁극적으로 특졍한 율법에 대해 누가 ‘죄인’이고 아니고를 인정하게 될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누가 천국의 소속이다 아니다 하는 선언의 의미나, 또는 좀 더 명확하게 말해서 자주 이 구절이 분명히 요한복음 20:23의 비슷한 언어의 영향하에 읽혀지고 있는, 개인의 면죄나 유죄 선고의 의미는 이 용어들의 본래의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여기서 목적하고 있는 권위는 규율적인 판단의 권위보다는 좀 더 직접적으로 가르침의 권위이다.18장의 문맥은 실제로 이 권위적 선언이 제자공동체의 일치성과 회원 자격에 영향을 줄 것을 암시하고 있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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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1.09 | 15페이지 | 3,000원 | 조회(286)
  • 히브리서의 설교 스킬(최정운)
    히브리서 세미나 소논문히브리서의 설교 skill-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와 비교하여-지도교수 장 동 수2012년 6월 4일침례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신약학 전공최 정 운목 차Ⅰ. 서론 .............. 1Ⅱ. 설교적 특징 .. 11. 구조 .............. 12. 수사학적 표현들 ......... 2Ⅲ. 설교문 작성 .. 31. 청중 이해 ......... 73. 명확함 ............ 7Ⅳ. 결론 .............. 8참고자료 ........... 9Ⅰ. 서론현대에 들어와서 Buchanan 같은 신학자는 히브리서를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하나의 설교로 이해했으며, 또한 France는 히브리서 저자를 성경강해자로 보기도 하였다. 또한 히브리서는 최초의 완전한 원기독교 설교이며, 고대 수사학의 모든 수단과 언어 양식들을 전제하면서 이것들을 기독교로 끌어온 최초의 설교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여러 가지 책들과 논문들을 통해 볼 때 오늘날 히브리서의 설교적 관점의 이해가 다각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특별히 이러한 설교적 관점에서 히브리서는 역사적으로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와의 유사성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둘의 특징을 보면, 모두다 제의적으로 주조된 사유형식을 갖고 있고, 계시에 대해 날카롭게 가르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생생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인조만큼은 히브리서의 묶음쇄와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통 설교문을 작성할 때 서론과 결론, 도입과 마무리가 같은 주제 안에서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 중에 종종 처음 도입 부분에서 중심 주제와는 상관없는 예화나 유머들이 사용될 때가 있다. 커다란 대 주제 안에서 시작과 끝을 같은 주제로 맞추는 것은 신약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곧 고대 설교가들인 스데반과 히브리서 저자가 보여준 본받을만한 모범적인 설교의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수사학적 표현들히브리서에는 두운법(1:1), 수구반복(11장에서 8번), 대조법(7:18-21; 10:11-12), 모운(10:26-27), 연결사 생략(11:33-34, 37), 교차대구법(2:8-9; 7:23-24; 10:38-39), 다아트리베 논쟁법(diatribe, 3:16-18), 생략법(12:25), 중언법(5:2), 전치법(2:9), 곡언법(4:15), 리듬(1:1; 1:6; 2:1; 2:8) 등의 수사학적 요소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스데반의 설교에도 역시 ‘너희들’과 ‘하나님’, ‘우리’와 ‘너희들’을 번갈아가며 설명하는 대조 기법과,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이어가는 반복 기법 등 수사학적 표현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이러한 두 설교의 다를 수밖에 없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표현방법이라든지, 연설기법 등 말 그대로의 수사학적인 표현과 방법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펴 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설교자들 역시 현대에는 수사학이라는 어딘가 모르게 낯선 표현방법을 고수하고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문학적, 글쓰기 방법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설교자로서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겠다.히브리서와 스데반의 설교의 특징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스데반의 설교와 히브리서를 비교해가면서 설교문 작성과 전달이라는 설교 스킬적인 부분에 대해서 간단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Ⅲ. 설교문 작성1.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을 예로 들어 사람들을 다루시고 인도하시고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보여준다. 특별히 스데반 설교의 두 가지 주제인 율법과 성전의 개념들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신약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히브리서도 구약 인용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구약적 개념들과 성경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 그것을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론적 재해석으로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스데반의 설교와 히브리서의 구약 인용은 예화 사용에 빗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예화를 찾는 것은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화가 빠진 설교는 어딘가 모르게 건조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주제에 딱 맞는 적절한 예화 사용이야말로, 설교를 더 감질 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더욱이 일반적인 예화의 사용도 필요하지만, 스데반 설교와 히브리서에서 주가 되는 성경 말씀과 이야기를 활용하는 예화 또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4. 그리스도 중심적스데반은 설교의 대 주제인 구약의 율법과 성전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약속과 임재의 상징이었던 율법과 성전 대신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는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이와 매우 유사하게 히브리서 역시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론적 해석과 논증이 곳곳에 소개되고 있다. 거쓰리는 히브리서의 주요 성격은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한 점인데 이는 무한한 가치가 있으며, 이 한 가지만으로도 히브리서의 정경성에 관한 회의적 논의들을 넘어서 정경에 가입될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스데반의 설교와 히브리서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점에서도 역시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기독교를 포함하는 그 어떤 종교에도 자신을 말씀하셨다”라는 표현은 과거 하남이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최종적으로 이제는 이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직접화법을 통해 청중으로 하여금 더욱 더 집중하게 하고,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을 수 있겠다.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 중에 많은 경우가 “누구누구가 말했습니다.” 또는 “어느 어느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설교자는 “성경이 말씀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스데반과 히브리서 기자처럼 보다 생생한 표현으로 청중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다가간다면 훨씬 효과적인 설교사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설교문 작성은 설교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너무나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작성된 설교라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결국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잘 작성된 설교가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데반과 히브리서의 기자의 설교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Ⅵ. 메시지 전달1. 주목 끌기“청중의 주목을 끌 방법을 알지 못하면 그들의 주목을 받을 자격도 없다”고 말한 스펄전처럼 스데반의 설교에는 여러 가지 주목을 끄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설교의 처음부터 아브라함이라는 유대 민족의 가장 중요한 조상의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중요한 인물들과 그에 따른 사건을 소개함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집중해서 듣도록 하기 위해 이야기와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히브리서 역시 ‘우리 조상들’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과 개념들을 활용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설교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이 외에도 긴장을 자아내는 강한 경고구절과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는 격려의 메시지 등을 통해 청중으로 하여금 계속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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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1.09 | 11페이지 | 3,000원 | 조회(250)
  • 로마카톨릭의 마리아론
    선교신학 세미나 소논문로마가톨릭의 마리아론지도교수 이 현 모2012년 5월 28일침례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신약학 전공최 정 운목 차Ⅰ. 서론 .............. 1Ⅱ. 마리아론의 역사 ......... 11. 기독교 초기 마리아론의 태동 ................ 12. 테오토코스 논쟁과 에베소 공의회 .......... 23. 중세 시대의 마리아론 ............... 3Ⅲ. 로마가톨릭 마리아론의 주요 교리와 반론................ 41. 마리아 종신 처녀설 .. 42. 마리아 사제의 보편화가 되기 전까지 마리아론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그러기에 일차적으로는 마리아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기독교 역사 이래 마리아론이 가톨릭교회 안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중요한 교의적 개념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봄으로 마리아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꾀하고자 한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회에서는 이를 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개신교 신학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또한 성경적,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주요 교리들을 비판해 보고, 동시에 마리아론을 대신할 수 있는 개신교만의 대안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 보고자 한다. 먼저 마리아론의 등장과 초기 교회 역사 속에서 다루어진 마리아론의 형태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마리아론의 역사1. 기독교 초기 마리아론의 태동4세기경, 로마 카타콤의 벽면에 그려진 초기 성모자 성화 마리아론의 기원은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순교자에 대한 공경이 대중신심으로 가장 두드러졌다. 순교자들에 대한 공경에 이어 초대 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구약과 신약 및 대망(待望)과 성취(成就)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로마의 카타콤에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프레스코화가 그려졌으며,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한 가장 오래된 기도는 250년경에 작성된 ‘성모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고통 받는 인류와 임금들의 임금이자 심판자인 아들 예수 사이를 중개하는 연민 어린 존재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 전승을 토대로 마리아의 공경 사상은 서서히 자리 잡아 왔지만, 교회의 공식적인 교의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2. 테오토코스 논쟁과 에베소 공의회테오토코스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테오스(Θε??)’와 출산이라는 뜻의 ‘토코스(τ?κο?)’라는 두 개의 단어를 합친 합성어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나님을 낳은 사람’이 된다. 본래는 남성형 명사이지만, 슬라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 하나의 교리가 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리아론의 주요 교리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경을 근거로 비판해 보고자 한다.Ⅲ. 로마가톨릭 마리아론의 주요 교리와 반론1. 마리아 종신 처녀설(영원한 동정)1) 마리아 종신 처녀설평생 동정인 마리아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도 동정이었으며, 예수를 낳는 중에도 동정이었으며, 예수를 낳은 후에도 동정이었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잉태 이전의 동정성은 남성의 활동 없이 잉태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출산시의 동정성이 의미하는 것은 출산의 고통이나 동정성의 파괴 없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출산 후의 동정성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출산 후에도 마리아가 인간적인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평생 동정인 마리아 교의는 마리아가 인생 전반에 걸쳐 ‘영원한 동정녀(?ειπ?ρθενο?)’였으며, 그녀의 유일한 소생은 예수 한 사람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동정의 몸으로 기적적으로 잉태하여 낳은 것이라고 가르친다.기독교 초기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에도 마리아를 ‘동정녀’라고 불렀다. 이 교리는 점차 발전하여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셨다.”라고 고백함으로써 교회의 가르침으로 공식 선포되었다. 그리고 649년 라테란 시노드는 “성모님은 해산 전에, 해산 중에, 그리고 해산 뒤에도 동정녀이셨다.”라는 말로써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을 더욱 강조하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 교리를 다시 확인하였다.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동정이었다는 이론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한국어 성경을 포함한, 대부분의 번역된 신약성경에는 ‘형제들’이라고 표현된 이 단어의 그리스어 원문은 ‘아델포이(?δελφο?)’이다.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형제들’을 뜻하지만, 같은 민족이나 보편성에서 제외되는 유일한 예외로서 마리아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며, 그녀가 원죄 없이 잉태된 유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854년 12월 8일 교황 복자 비오 9세는 1851년부터 1853년까지 세계 모든 가톨릭 주교들의 자문을 받아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져온 로마 가톨릭 신자들의 성모 신심과 봉헌, 교부들의 증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하여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Ineffabilis Deus)》을 반포함으로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음을 가톨릭교회의 교의로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은 12월 8일로 제정되었다.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는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의된 교황 무류성의 해당 조항에 따라 선포되었다.2) 마리아 무죄 잉태설 비판중세 가톨릭 안셀무스, 베르나르도, 토마스 아퀴나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핵심 진리가 약화된다고 하여 마리아의 무죄 잉태를 반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경중심인 개신교에서는 여러 구절들을 근거로 마리아가 무죄하다는 이론 자체를 반대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롬 3:23),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한 죄가 모든 인류에 미치게 되었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은 결국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무죄설은 비성경적이며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3. 마리아의 승천1) 마리아의 승천 이론2004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루르드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강론 중 요한복음 14장 3절을 성모 승천 교의의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로서 언급하였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마리아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약속의 보증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인간들의 부활과 승천의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인 마리아도 하나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겸손과 순명의 덕행으로 하늘나라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임금이며 더 나아가 하늘나라와 온 우주의 통치자이므로, 그 어머니인 마리아는 당연히 천상의 모후로 불러 마땅하다고 언급한다. 일반적으로 모후(母后)란 말 그대로 임금의 어머니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교황 비오 9세는 “주님께서는 성모님을 하늘과 땅의 모후로 세우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천사들의 무리보다 그리고 성인들의 계급보다 더 높이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오른편에 서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모성의 기도로 가장 강력하게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바를 얻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결코 실망하게 되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천상의 모후라는 용어는 교회로부터 공식적인 인준을 받기 전부터 마리아에게 전구를 요청하는 기도와 그녀에게 헌정된 종교 문학 작품 및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을 주제로 한 그림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가톨릭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최근 들어 우주 공간에 대한 현대 과학의 이해를 반영하여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에게 ‘우주의 모후’라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이 그녀가 천상의 모후가 된 궁극적인 이유라고 말하였다. “마리아가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여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은 그녀를 피조물 가운데 가장 많이 총애하였으며, 그리스도는 그녀에게 하늘과 땅의 모후라는 영예를 주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늘나라로 들어 올림을 받아 그녀의 거룩한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여겨지며,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나온 바와 같이 태양을 입고 그리스도를 낳은 여인으로 묘사된다.2) 천상의 모후 비판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마리아를 통치자의 자리에 앉힌 경우가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물을 다스리며 통치하는 임금이 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전 15:27-28, 엡 1:22, 빌 3:21, 히 2:8, 계 21:5). 마리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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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위논문 | 2013.11.09 | 18페이지 | 3,000원 | 조회(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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