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언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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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언해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2.1. 훈민정음의 기원설
2.1.1. 고전기원설
2.1.2. 고대문자 기원설
2.1.3. 산스트리트 문자 기원설
2.1.4. 몽고 파스파문자 기원설
2.2. 훈민정음 원본
2.3. 훈민정음 언해본
2.4.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고찰
2.4.1. 본문(예의)
2.4.2. 해례
2.5. 훈민정음 창제 동기와 목적
2.6. 훈민정음 제정의 경과
2.7. 훈민정음의 이론적 배경
2.8. 훈민정음 체계
2.8.1. 초성
2.8.2. 중성
2.8.3. 종성
2.8.4. 합자
2.8.5. 방점

3. 결론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훈민정음이 한국 문화의 가장 자랑스러운 보배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실용적이고도 과학적인 제자 원리와 그에 담겨 있는 심오한 언어철학은 세계 문자 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은 세종 25년(1443) 12월의 일이다. 이에 관한 문헌상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世宗實錄) 권 102, 세종 25년 계해(癸亥) 12월조에 실려 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우리말을 표기한 고유 문자가 있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것은 옛 문헌에 끼어 있는 편언들로서 과학적 논증이 서지 않는 한 하나의 추론에 그칠 뿐이다. 만약 표기 수단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자이거나, 한자 차용 표기 체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한 문화권에 자리하고 있었던 탓으로 일찍이 한문화를 받아 들여 소화하는 과정에서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향찰이나 이두와 같은 한자 차용 표기 체계를 창안하여 문자 생활을 영위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남의 문자를 빌어 우리말을 표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언어생활에서의 불편함이 문자 창제의 동기를 가져오게 하였고, 조선조에 들어서는 세종의 문화적 황금시대를 맞이함으로써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것이다.

훈민정음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한글이 창제되었을 때의 시초의 이름이며, 다른 하나는 창제된 훈민정음을 규정하고 그것을 해설한 책의 이름을 이르는 것이다. 세종은 재위 32년 동안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빛나는 치적을 남긴 성군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훈민정음의 창제는 가장 빛나는 문화적 유산을 남겨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로 한민족은 처음으로 합리적인 언어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한(漢)문화의 기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2. 본론
2.1. 훈민정음의 기원설
2.1.1. 고전기원설

고전기원설에 따르면 훈민정음의 글자는 중국 옛 글자인 고전(古篆)을 본받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에는 "이 달에 임금께서 언문 28자를 친히 만들었다. 그 글자는 옛날의 전(篆)자를 본뜨고, 초성ㆍ중성ㆍ종성으로 나누는데 합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 서문에서도 "설혹 말하기를, 언문(諺文)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을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였다 할지라도 소리로써 글자를 합하는 것이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때가 왔사옵니다."라고 하여, 훈민정음의 글자 모양이 옛 전자를 모방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 서문의 기록을 살펴보면, 훈민정음의 글자가 직접적으로 옛 중국의 고전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글자의 형상이 고전과 비슷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훈민정음은 상형의 원리에 따라 제자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고전과 유사한 모양이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고전기원설은 훈민정음의 글자 모양이 고전을 모방했다는 점에서는 인정되지만,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상형의 원리가 더욱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은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가운데에서도 독창적인 제자 원리를 창안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1.2. 고대문자 기원설

고대문자 기원설(古代文字 起源說)은 1911년 계연수가 지었다는 『한단고기』가 1979년 이유립에 의해 세상에 나온 이후, 여러 방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한글 기원설이다.

『한단고기』의 내용은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가림토는 단군세기에 실려 있다.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다르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다."

현재 가림토 기원설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이에 대한 부정 논거로 첫째, 한단고기라는 책이 고서가 아니고 1911년에 편찬되었기에 그 전에 믿을 만한 정사의 기록에 의거하여 기술된 저서가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문헌적 근거를 찾는데 있어 가림토의 출전이나 증거 자체의 신빙성이 떨어짐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 가림토가 5000년 전 단군 시대에 이루어졌다면, 그 시기의 문자발달사로 볼 때 복잡한 형태의 회화문자나 상형문자의 단계에 있을 시기인데 가림토의 글자 모양은 모두 간결한 부호로 되어 있다는 점이 의문스럽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단고기에서 글자 수를 38자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가장 발달한 형태의 음소문자임을 말해준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겨우 표의문자 초기 발달 수준인데, 그 시기 음소문자가 등장했다는 것은 사실상 믿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가림토 문자가 실재했었고, 단군 시대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진 문자라면, 한단고기 이외 다른 문헌에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부정 이유만으로 가림토가 실재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우선 한단고기를 믿기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겠고, 두 번째로 가림토는 그저 그 모양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이 어떻게 쓰였는지, 음소문자인지 그저 모양을 간단하게 본 뜬 상형문자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문자인지 알 길이 없으므로 섣부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 또 마지막으로 현재 발굴된 자료가 없다고 해서 과거에도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2.1.3. 산스트리트 문자 기원설

산스트리트 문자 기원설에 따르면, 우리나라...


참고 자료

문화재청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두산 백과사전
한글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강규선, 훈민정음 연구, 보고사, 2001.
강신항, 훈민정음 연구, 성균관대학교 출판사, 2003.
김민수, 신국어학사, 일호각, 1978.
김석환, 훈민정음 연구, 한신문화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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