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굵은 골재의 마모 시험1. 적용범위 및 시험방법(1) 이 시험은 철구를 사용하는 로스앤젤레스 시험기를 사용하여 부순돌, 부순광재, 자갈등의 마모에 대한 저항성을 시험하는 방법이다.(2) 이 시험은 시료인 굵은 골재가 마모저항이 요구되는 콘크리트에 사용 가능한지 여부를 판정하기 위하여 행한다.2. 시험기구(1) 로스앤젤레스 시험기 : 안지름 710mm, 내측길이 510mm 의 양끝이 밀폐된 강철제의 원통형으로 구성(2) 체 : No.3, No.4, No.8, No.12, 및 10, 13, 19, 25, 40, 50, 65, 80mm체(3) 철구 : 지름 약 47.5mm, 무게 390~445g의 주철 또는 강철로 된 것으로 시험에 사용되는 철구의 수 및 허용 총 중량은 표1. 의 값을 사용해야 한다.등급사용 철구 수사용 철구의 총 중량(g)A125000±25B114580±25C83330±20D62500±15E125000±25F125000±25G125000±25표1. 사용철구의 수 및 총 중량3. 참고사항(1) 골재의 시료는 그 입도를 표2. 의 7개 등급 중의 하나로 선정해야 한다. 사용되는 입도는 공사에 사용되는 골재의 입도를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료의 A, B, C, D급은 1g, E, F, G급은 5g의 정밀도로 측정한다.표2. 사용시료의 등급에 따르는 중량정방형 체눈을 가진 체의크기(mm)중 량(g)통과체남는체ABCDEFG8065----2500(*)--6550----2500(*)--5040----50005000(*)-40251250----5000(*)5000(*)25191250-----5000(*)191312502500-----131012502500-----10No.3½--2500----No.3½No.4--2500----No.4No.8---5000---주 : (*)시료 중량의 허용치는 ±2%이다.(2) 시험용 시료와 철구를 로스앤젤레스 시험기에 넣은 후 매분 30~33회 회전시킨다. 시료가 A, B, C, D의 입도의 경우에는 500회, E, F, G인 경우에는 1000회 회전시킨다.4. 시험방법(1) 일정한 양이 될 때까지 105±5℃의 온도로 건조시킨 깨끗한 B급 시료를 표2.를 참고하여 5000g준비한다.(2) 표1.을 참고하여 로스앤젤레스 시험기에 11개의 철구를 넣는다.(3) 철구와 시료를 로스앤젤레스 시험기에 넣은 후 매분 30~33회로 500회 회전시킨다.(4) 시험이 끝난 후 시료를 시험기로부터 들어내어 No.12체로 체가름한다.(5) No.12체에 잔류하는 시료를 물로 씻은 다음, 항량이 될 때까지 105±5℃의 온도로 건조시켜 최소 1g까지 계량한다.(6) 시험한 시료의 시험 전의 중량과 시험 후의 중량의 차를 시험 전의 시료의 중량 백분율로 표시한다.마모율(%) =시험 전의 시료의 중량 - 시험 후의 시료중량× 100시험 전의 시료의 중량5. 주의사항(1) 암석을 손으로 거의 입방체에 가까운 입형으로 깬 것을 이 방법에 의해 시험한 경우의 마모감량은 같은 암석으로부터 만든 부순돌에 대하여 시험한 경우의 마모감량의 약 85%정도의 것이다.(2) 로스앤젤레스 시험기에 의한 굵은 골재의 마모감량의 한도는 포장 콘크리트의 경우는 35%이하, 댐콘크리트 및 부순돌의 경우는 40%이하로 한다.(3) 마모율이 40% 이상인 굵은 골재라도 선정된 배합비로 만든 콘크리트에서 만족한 강도를 얻었다면 사용해도 좋다.
Ⅱ. 건설장비Ⅱ-1. 건설장비의 선정성공적인 기계화 시공을 위하여 시공법, 작업조건, 작업능률, 토질 등에 알맞은 기계를 선정해야 한다. 근래의 전문화된 기계가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고, 기종에 따라서 그 특성이 다르며 같은 기능을 가진 기계라도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능력 차이가 있으므로 이들 조건을 퉁분히 검토하여 적합한 기종을 선정하고 최저 공사비로 시공할 수 있어야 한다.건설교통부에서 적정공사비 산정과 기계화 시공의 합리적인 발전을 위해 예시한 작업 종류별 및 운반거리별 작업기종은 표 Ⅱ-1, Ⅱ-2와 같으며, 공사 규모별 표준건설기계는 표 Ⅱ-3과 같다.표 Ⅱ-1 작업종류별 적정기계작업 종류건설기계 종류벌개, 제근불도저(레이크 도저)굴 삭로더, 굴삭기(유압식 백호), 불도저, 리퍼, 셔블계 굴삭기(파워셔블, 백호, 드래그라인, 클램쉘)적 재로더, 버킷식 엑스커베이터, 셔블계 굴삭기(파워셔블, 백호, 드래그라인, 클램쉘)굴(삭)착, 적재로더, 굴삭기(유압식 백호), 버킷식 엑스커베이터, 셔블계 굴삭기(파워셔블, 백호, 드래그라인, 클램쉘)굴(삭)착, 운반불도저, 스크레이퍼운 반불도저, 덤프트럭, 벨트컨베이어부 설불도저, 모터 그레이더함수량 조절살수차다 짐롤러(타이어, 탠덤, 진동, 로드), 불도저, 진동콤팩터, 램머, 탬퍼정 지불도저, 모터 그레이더도 랑 파 기굴삭기(유압식 백호), 트렌처비탈 마무리백호, 모터 그레이더, 앵글도저착 암래그해머, 드리프터, 브레이커, 크롤러 드릴표 Ⅱ-2 운반거리별 적용기계작업 구분운반거리표준기종절토, 압토평균 20m불도저흙운반60m 이하불도저60~100m? 불도저? 셔블계 굴삭기(백호, 셔블, 드래그라인, 클램쉘)+덤프트럭? 로더+덤프트럭? 굴삭기+덤프트럭? 피견인식 스크레이퍼100m 이상? 셔블계 굴삭기(백호, 셔블, 드래그라인, 클램쉘)+덤프트럭? 로더+덤프트럭? 굴삭기+덤프트럭? 피겨인식 스크레이퍼? 모터 스크레이퍼표 Ⅱ-3 표준건설기계(예시)구분작업기계작업종류작업규모표준규격불 도 저유압리퍼작업중규모 이하대규모19 칭이다.(1) 트랙터(Tractor)기계트랙터는 엔진, 동력전달장치, 주행장치, 작업장치로 구성되어 있으며, 트랙터의 크기는 엔진의 출력과 자중으로 표시한다. 토목공사용 트랙터의 엔진은 연료비가 적고 힘이 좋으며 저속회전인 디젤기관을 많이 사용한다. 또한 트랙터는 주행장치의 형식에 의해서 차륜형(wheel type), 무한궤도형(crawler type) 및 반무한궤도형(semocrawler type)으로 구분한다.1) 불도저(Bulldozer)▲ 불도저불도저는 타이더 도저(tire dozer)와 무한궤도형 도저(crawler dozer)로 나누는데 차량 단위중량(tonf)당 엔진마력이 10ps 이상되는 것이 우수하다. 사용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의 배토판을 붙인 것이 있다.(a) 앵글도저(Angle-dozer)배토판을 수평방향으로 20~30°정도씩 좌 또는 우로 돌려서 산등성이를 깎아 반대쪽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b) 틸트도저(Tilt-dozer)배토판을 상하로 10~40cm 기울여 경사면 굴착이나 도랑파기작업을 할 수 있다.(c) 버킷도저(Bucket dozer)흙을 밀어서 들어올리는 작업을 한다.(d) 트리도저(Tree dozer)V자형의 작업판을 하나 더 붙여서 상하로 움직이게 하여 개간 정지작업에 쓰인다.(e) 레이크도저(Rake dozer)호박돌 채취나 뿌리 제거에 유리하다.이 밖에도 토량이 많아지도록 배토판을 안으로 구부린 U도저, 배토판 중앙에 힌지(hinge)를 붙여서 안팎으로 V자형으로 꺾을 수 있게 한 힌지도저 등이 있고 스크레이퍼나 왜건(wagon)을 끌기 위하여 어태치먼트를 C프레임에 붙인 푸시도저(push dozer), 제설기(snow-plow)를 붙인 것, 유압립퍼(ripper)를 붙인 것,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하여 에어 모터(air motor)를 붙인 것 등이 있다. 최근에는 수중불도저로 제작되어 하저, 항만의 수중굴착에 사용한다. 불도저는 굴착, 절토, 되메움, 정지, 다짐 등 각 작업에 널리 쓰이는데 운반거리는 30m(최근래에 독일에서 개발한 무한궤도형의 스크레이프 도저는 주행속도가 10km/h로 빠르지는 못하나 접지압이 작아서 연약지나 요철지의 통행이 차륜형 스크레이퍼보다 우수하고 U턴이 없이 왕복동작만으로 작업을 할 수 있어 좁은 장소나 낭떠러지의 가장자리까지 사토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3) 트랙터 셔블(로더)(Tractor shovel 또는 loader)▲ 트랙터 셔블로더는 트랙터의 전면에 버킷을 장치하여 이 버킷으로 굴착?적재를 동시에 할 수 있다. 파워셔블과 같이 굴착력이나 불도저와 같이 강력한 압토력은 없으나 불도저와는 달리 버킷 안에 담은 흙을 높이 들어 올려서 트럭에 적재할 수 있다.로더는 소, 중규모의 공사에서 압토 굴착을 하여 트럭에 적재하는 작업을 연속적으로 하여야 하는 곳이거나 비교적 소규모의 작업이 몇 개소에 흩어져 있을 경우에 이들 작업을 1대의 로더에 맡겨서 처리할 경우는 뛰어난 기동성과 범용성을 발휘하여 능률이 좋으며, 특히 소규모 공사에서 배토판 또는 레이크를 부착한 셔블을 사용하거나 또는 뒤쪽에 립퍼나 백호(back hoe)를 붙여서 각종 작업을 1기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덤프능력을 갖춘 트랙터 셔블은 자력으로 굴착, 적재, 운반, 사토가 모두 가능하다.적재 방식은 다음과 같이 여러 방식이 있다.(a) 프론트 엔드(Front-end)식차체 전방의 버킷으로 굴착하여 담아서 버킷을 차체 전방에서 들어올려 버킷을 기울여 사토하거나 트럭에 적재하는 형식(b) 오버헤드(Overhead)식차체 전방에서 버킷을 굴착하여 흙을 담은 채로 차체 전방에서 차체 위를 거쳐서 차체 뒤쪽으로 기울여 사토하거나 트럭에 적재하는 형식(c) 쓰이웨이(Three way)식버킷의 경사, 사토, 적재를 차체의 전방 및 후방에서도 할 수 있는 형식(d) 스윙(Swing)식파워셔블의 붐(boom)처럼 버킷 암을 선회시켜서 사토나 적재를 하는 형식(e) 사이드 덤프(Side dump)흙을 담은 채로 버킷을 차체 측방으로 기울여서 사토나 적재를 하는형식(2) 셔에서 가장 기본적인 형으로 딥퍼의 위치를 정확하게 정하여 단단한 붐으로 흙, 풍화토, 연암까지도 굴착할 수 있다. 마력과, 중량, 작업능력은 버킷용량에 비례한다.운반거리 1,000m 이상되면 토운차(trolley)나 트럭과 조합하여 사용하면 유리하다.2) 백호(Back hoe)▲ 백 호일명 드래그셔블이라 한다. 셔블용량 0.3~0.8m3인 것이 많으나 대형은 3.0m3급도 있다. 이 기계는 기계의 위치보다 낮은 장소(약 6m)의 흙을 파서 기계보다 높은 위치에 둔 트럭에 적재할 수 있으며, 좁은 곳에서 작업을 쉽게 할 수 있고, 수송이 편리하여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딥퍼암(dipper arm) 끝의 장치만 바꾸어 끼면, 제형수로, 비탈의 성형, 립퍼, 브레이커, 클램쉘(clam shell) 역할도 할 수 있어서 가장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계이다.3) 드래그라인(Drag line)▲ 드래그라인드래그라인 굴착기는 크레인용 붐과 드럼버킷 및 훼어 리이드(드래그 로프를 본체 윈치에 감아 돌릴 때 로프의 이탈 방지 장치)로 구성된다. 드래그라인은 스크레이퍼 버킷을 호이스트(hoist)에 달아올려 멀리 하천바닥, 수로바닥 등에 떨어뜨린 다음 버킷을 끌어당기면서 토사를 끌어모아 기계 부근에서 달아올리고 붐을 회전하여 직접 성토하거나 토운차에 적재한다.굴착 깊이는 약 5m정도까지 가능한데, 정확한 굴착이나 사토 또는 경지반의 굴착에는 적합하지 않으나 넓은 범위에 걸친 굴착과 적재를 할 수 있고 수중굴착도 가능하다. 버킷용량은 0.3~3.0m3가 많으며 붐길이가 9~12m일 때 가장 작업하기 쉽다. 주행장치를 가진 위킹 드래그라인도 있다.4) 슬랙라인(Slack line)▲ 슬랙라인와이어 로프를 지점과 지주 사이에 150~200m 간격으로 설치하여 지주 밑에 설치한 장치로 굴착용 버킷을 활동시켜서 낮은 지대나 수중토사를 파올린다. 골재 채취에도 이용되는데 시설비가 비교적 싸다.▲ 클램쉘 및 클램쉘 버킷5) 클램쉘(Clam shell)클램쉡은 그레인붐, 클램쉘버킷, 태그cket ladder excavator)▲ 버킷래더 굴착기래더 주위를 연속적으로 회전하는 연속 버킷으로 토사를 긁어 담아올려서 슈트(chute)를거쳐 반대쪽으로 이동시켜서 토운차가 받도록 되어 있다. 토운차가 만재되면 자력으로 전진하여 다음 토운차에 실으며 래더는 윈치로 상하의 굴착 깊이를 조절한다.2) 버킷휠 굴착기(Bucket wheel excavator)▲ 버킷휠 굴착기이 기계는 하부주행기구과 상부선회체, 버킷휠, 버킷붐 및 리어컨베이어(rear conveyer)로 구성되어 유압으로 조작하고 있다. 버킷휠은 6~8개의 날끝이 달린 버킷을 달고 있으며, 엔진으로부터 오는 동력은 콘버드, 프로펠러 샤프트를 거쳐서 버킷휠을 회전(약 10~12rpm)시킨다. 각 버킷이 연속적으로 판 흙은 붐 부분의 전면 컨베이어에 온다. 이것은 다시 차체 뒤쪽의 적재 컨베이어를 지나서 슈트를 거쳐 사토하거나 트럭에 적재된다. 주로 연질토나 느슨해진 흙을 400~700m3/h 정도 처리할 수 있다.3) 트렌처(Trencher)▲ 트렌처이 기계는 도랑 굴착과 가스관, 수도관, 전신주 등의 매설 및 암거 굴착에 널리 쓰이고 있는 연속 래더식 도랑 굴착기이다. 굴착능력은 대략 폭 0.3~0.9m, 깊이 1.5~2.5m이다. 하부원형 텀블러(tumbler)를 회전시켜 토사를 굴착하고, 토사의 낙하 위치에서 긁어 떨어뜨리는 해로우(harrow)장치가 있다. 버킷의 래더는 래더암과 그 부속나사에 의해서 깊이를 상하로 조절하도록 되어 있다.(4) 모터 그래이더(Motor grader)▲ 그래이더불도저나 스크레이퍼 등은 대략적인 정지에 사용되고 세밀한 정지를 하는 것은 그레이더이다. 그레이더는 견인신과 자주식이 있으나 대부분이 자주식 모터 그레이더를 사용하고 있다. 모터 그레이더는 일반차량과는 달리 기관이 운전석 뒤쪽에 있으며 기계의 중앙부에 배토판(blade)이 있고, 그 앞에 갈퀴(scarifier)가 있다.주행 중에 배토판을 기계식이나 유압식으로 상하, 좌우 경사, 360° 수평회전할 수다.
달리기 주법의 종류와 방법육상경기를 능률적으로 하려면 먼저 기본적으로 달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 달리는 거리나 연습이 필요에 의하여 그 기본 주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1) 샤 킹 (shacking)샤킹은 워밍업이나 쿨링 다운 등, 달린다고 할 정도가 아니고 걷는 것보다는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정도로 아주 느리게 몸 전체의 힘을 뺀 자세로 달리는 것이다. 이는 워밍업이나 쿨링 다운을 할 때 맨 처음 시작하는 방법인데, 몸의 어느 부분이든지 긴장을 풀어버린 상태로 달리는 방법이다.(2) 조 깅 (jogging)이것은 샤킹보다는 달린다는 느낌을 가지고 달리는 방법인데, 사킹보다 속도도 약간 빠르고 팔이나 발의 동작도 주법에 맞는 동작으로 달리는 것이다. 즉, 달리는 형태는 갖추되 신체의 부담을 거의 주지 않은 상태로, 이것 역시 위밍업이나 빠른 속도로 달린 다음의 호흡조정 운동 등에 이용하는 방법이다.(3) 스트라이딩 (striding)이는 보폭을 넓혀서 달리는 질주법이다. 따라서 팔을 흔드는 동작도 크고 피취도 느려지지만, 리듬을 붙이고 무릎을 높이 들어올려서 그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무릎 아래 부분을 앞쪽으로 뻗으면서 달리는 방법이다. 위밍업이 끝난 다음 100m 내지 200m를 내달릴 때 이용된다. 또 중거리 주자가 레이스를 할 때도 이 방법을 쓴다. 중거리 경기에서 많이 쓰인다.(4) 트로팅 (trotting)트로팅은 보폭을 좁게 하여 발을 빨리 옮기는 주법으로 단거리의 스타트와 중거리 및 장거리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발의 피치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나 도로경기의 오르막길을 효율적으로 달리기 위한 방법의 연습으로도 많이 사용된다.따라서 팔의 움직임은 작고 발 동작은 빨라야 하기 때문에 무릎을 많이 올리지 않는다. 피취를 빠르게 하는 연습 등에 이용되는 방법이다.(5) 스프린팅 (sprinting)스트린팅은 온몸, 특히 다리의 탄력을 이용하여 무릎을 높게 올리고 팔을 힘차게 쳐달리는 주법으로 주로 단거리에서 많이 적용되고, 스피트 향상을 위한 연습으로 많이 한다. 스트라이드와 피취가 조화를 이루고 온몸이 긴장한 채 폭발적인 힘으로 달리는 방법이며, 100m, 200m에 이용되는 주법이다.(6) 롱 스프린팅 (long sprinting)이는 스트라이딩보다 보폭을 약간 좁히고 리드미컬하면서도 거의 전력을 다하는데에 가까울 정도로 달리는 질주법인데, 400m의 도중 질주 등에서 볼 수 있다. 폭발적인 힘을 쏟는 것은 아니지만, 미끄러지듯이 달리는 주법으로 피취는 올라가지 않는다.(7) 직 선 주이 것은 발바닥과 무릎을 똑바로 하여 직선을 정확히 밟으며 빠른 속도로 팔을 전후로 힘차게 휘두르며 큰 동작으로 달리는 방법이다.(8) 관 성 주관성주는 100~200m를 처음에 주자의 70% 정도의 스피드를 내서 달리기 시작하여 그 달리는 관성을 이용하여 힘을 새롭게 들이지 않고 스피드의 변화가 거의 없이 달리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기원전 69~30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 최후의 여왕 이집트어, 에티오피아어, 혈거인어,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메디아어, 파르티아어 등 여러언어에 능통하여 외교수완 발휘 강직하고 총명하며 몽상적인 여성. 지적인 감각과 재치가 남다름. 형제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 14세와 결혼 로마영웅인 카이사르(BC 48~44)와 안토니우스(BC 40~30)의 연인 악티움 해전(BC 31)에서 패하여 재기하지 못하고 독사로 가슴을 물게하여 자살함.클레오파트라는 정말 미인이었나?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첫만남 ; 왕위소유문제로 이집트에서 도망쳤던 클레오파트라는 동생의 눈에 띄지 않게 카이사르를 만나기 위해 융단으로 가장해 몰래 숨겨져서 들어옴.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죽고 클레오파트라는 14세와 함께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혼자 통치하는 것이었음. 클레오파트라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카이사르와 부부로 보이기 위해 선박을 이용해 나일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여행함. 카이사르의 아들인 카이사리온을 낳음. 로마 광장 중앙부에 도금한 클레오파트라 상을 세움으로써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음. 카이사르가 왕위에 오를 것을 두려워하여 공화주의자들은 그를 검으로 습격. 많은 부상을 입은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상의 받침대에 쓰러져서 출혈 과다로 죽음. 로마 주인이 사라짐과 동시에 전세계를 지배하려던 클레오파트라의 꿈도 사라짐. 그녀가 느낀 슬픔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의 귀환으로 클레오파트라는 급히 로마를 떠남.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정치적으로 카이사르 정도의 위치에 오른 안토니우스는 앞으로 있을 전쟁의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불러들임. 수차례 거절 후 수상왕궁으로 안토니우스를 초대하여 접대함. 화려한 것을 좋아하며 여성편력이 있는 안토니우스를 이용하여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함.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 1년을 머무름. 안토니우스의 아이인 남녀 쌍둥이를 낳음. 후에 아들 한 명을 더 낳음. 4년 후 결혼함.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통해 과거 선조들이 다스렸던 땅의 대부분을 되찾음. 안토니우스가 일생일대의 중요한 전투인 파르티아 원정에서 크게 패하여 막강한 세력을 갖춘 옥타비아누스와 대조를 이룸.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트라를 왕들의 여왕, 카이사리온을 왕 중 왕으로 임명. 이것은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악티움 전투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참패함. 옥타비아누스에게 항복하고 왕궁으로 돌아온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을 결심함. 그러나 후에 클레오파트라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클레오파트라에게 옮겨져그녀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옥타비아누스기원전 63년 ~ 기원후 14년 카이사르 사망 후 그의 양자이자 조카아들인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의 유언대로 후계자로 임명됨. 금발에 흰 얼굴로 병약하였지만 예리한 지성, 끈기, 권력을 향한 끝없는 갈망을 지니고 있었음. 역대 최고의 정치가이자 선전가 BC 27년 원로원으로 부터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음. 옥타비아누스로 인해 로마의 평화시대가 시작됨.클레오파트라와 옥타비아누스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카이사리온이 되지 않고 옥타비아누스가 임명됨 클레오파트라는 그래도 자신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 안토니우스를 만나 그를 이용해 로마를 지배하려함. 옥타비아누스의 누이를 아내로 둔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랑 결혼하자 옥타비아누스 분개 안토니우스가 파르티아 원정에서 패하자, 옥타비아누스는 그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굳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후에 대립이 커져 결국 악티움전투로 까지 이어짐. 이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가 대승리를 하게 됨. 안토니우스의 자결. 클레오파트라도 뒤따라 독사에게 가슴을 물려 자살함.악티움전투{nameOfApplication=Show}
1. 서론 ........2p.2. 본론(1) 십자군의 구성 ........3p.(2) 십자군 전쟁의 배경 .4p.(3) 십자군 전쟁의 원인 .5p.(4) 십자군 전쟁의 경과 ..6p.① 십자군 전쟁 전기 : 제1회 십자군~제3회 십자군 .........7p.② 십자군 전쟁 후기 : 제4회 십자군~제7회 십자군 .........8p.(5) 십자군 전쟁의 실패의 원인 .........9p.3. 결론 .........9p.4. 참고문헌 ........로 표기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운동”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말하는 것 같고, “원정”은 멀리 정복 나서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쟁”은 처음에는 성지탈환을 명분으로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그 의미가 변질되어졌기 때문에 이를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십자군“전쟁”이라고 하려고 한다.이제부터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2. 본론(1) 십자군의 구성전쟁이라 하면 당연히 기사들로 군이 구성되어져 있다고 생각되어지지만, 십자군 전쟁은 예외였다. 자료를 찾아보았을 때, 1250년에 프랑스에서 동방으로 항해했던 ‘The St. Victor'라는 배에 대한 기록에는 그 배엔 453명의 십자군을 수송하고 있었는데 그 중 기사는 14명에 불가하고 나머지는 90명의 하인들, 300명의 일반 남성들, 42명의 가족을 따라온 일반 여성들이었다 한다. 이처럼 십자군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직업 또한 대장장이, 수선공, 구두장이, 포도주 상인처럼 다 십자군에 참여한 성직자, 기사, 노동자의 모습양했다.그럼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길고 긴 전쟁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아마 그들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벌을 속죄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했다고 한다.1095년 말 Urban교황은 11월 27일(수요일)에 중요한 발표를 위해 총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이 첫 십자군 전쟁의 시작이다. 총회에서 교황은 엄숙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만든 다음에 그의 생각을 발표했다. 그는 서쪽의 기독교인이 동부의 해방을 위해 행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 부자 상관없이 행진해야 하며 서로 죽이는 것에서 벗어나 대신에 십자군 전쟁에서 싸워야 한다고.... 아마 그들은 십자군 전쟁이 신의 계시이며 신이 그들을 이끌 것이고 신이 그들은 돌봐줄 것이라 맹세하는 십자군 고 생각했을 것이다. 교황은 “신의 계시이다!”라는 외침을 끝으로 그의 연설을 마쳤다. 그, 부활하신 이 도시가 기독교인들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믿었다.(3) 십자군 전쟁의 원인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데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먼저 종교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중세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기독교인들이었으며 그들의 사상 또한 기독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제나 죄에서 벗어나 영구적인 형벌에서 헤어나려는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속죄방법으로 앞에서 말했듯이 성지를 순례하였다. 하지만 1076년부터 성지가 셀주크 투르크에게 점령당하면서 이들은 성지 순례를 방해받기 시작했다. 이에 한창 권력이 강화되었던 교황은 이를 계기로 동방 교회에 대한 서방 교회의 우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자기 주도 하에 동서 교회의 통일을 이루려는 생각으로 십자군 전쟁을 제창하게 된 것이다.그리고 경제적인 요인을 볼 수 있다.10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서 유럽사회는 민족 이동기 이후 수세기 동안의 혼란기를 지나 전반적인 안정기에 들어서 개간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해 사회 전체에 활력이 넘쳐흘렀고 이는 다시 국왕, 제후, 기사 등의 모험심과 정복욕을 자극했다. 특히 봉건 체제 하에서 확립된 장자 상속제로 인해 기사의 차남과 삼남 등은 토지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토지를 체제 외부에서 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국왕과 영주는 영지 확대를 통해 지위와 권력의 증대를 꾀했다. 한편 상공업의 발전 속에서 도시의 상공업자인 시민들은 상업권을 확대하기 위해 이슬람 상인과 동방 무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겨루고 있었다. 이와 같은 요인들을 종합해 볼 때 십자가 운동은 성숙해진 유럽 봉건 사회에서 대외적으로 팽창하려는 열기가 높아진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르반 2세의 연설 대외적인 정치적 원인은 셀주크 투르크족의 진출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원래 종교적 편견이 강하여 이슬람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신앙과 아시아의 니케아를 함락시키고(1097년 5월), 안티오크로 진격했다. 도중에 플랑드르 백작은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에데사를 공략해서 에데사 백령을 창건했다.다음해 안티오크를 점령한 십자군 본대는 제노바 함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1099년 7월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예루살렘 공격은 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수반했다고 한다. 십자군은 그곳에 예루살렘 왕국을 수립한 뒤 대부분 귀국했다. 십자군 원정로제1회 십자군 전쟁으로 타격을 받은 이슬람측이 북부 시리아를 회복하고 1144년 에데사 백령을 정복하자 제2회 십자군이 조직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독일의 콘라트 3세가 이끄는 십자군 부대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12세기 후반 이슬람측에서는 유능한 장군 살라딘이 이집트와 시리아의 지배자가 되어 크게 위세를 떨쳤다. 살라진은 전병력을 동원해 예루살렘왕국을 공격해 함락시켰다(1187년). 이때 살라딘은 약탈과 학살을 금지시켜 기독교도조차 그의 기사도 정신을 찬양했다고 한다.예루살렘 함락에 충격을 받은 유럽은 영국의 리처드 1세, 프랑스의 필리프 존엄왕, 독일의 프리드리히 1세를 지도자로 하는 제 3회 십자군을 조직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으로 양국의 십자군 출발이 늦어지자 독일 황제가 먼저 출발했으나 소아 시아의 하천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군대 일부는 계속 시리아로 행군했지만 예루살렘의 포위공격 대부분의 기사는 귀국하고 말았다.1190년 여름 리처드 1세와 필리프가 함께 출정했다. 하지만 두 왕의 대립은 행군 내내 계속되어 리처드는 각지를 전전하다가 결국 살라딘과 협상해 순례자들의 자유로운 예루살렘 출입을 보장받고 귀국하고 말았다.② 십자군 전쟁 후기 : 제4회 십자군~제7회 십자군가장 강력한 교황권을 이룩했던 인노켄티우스 3세는 이슬람 교도의 본거지가 된 이집트 공략을 위해 제4회 십자군을 제창했다. 하지만 유럽의 국왕들은 그의 호소에 아무도 호응하지 않아 북프랑스의 기사들 중심으로 십자군이 구성되었다. 그들은 육로 대신 해로멸렬한 군조직과 이산된 지휘계통, 군예산의 비생산적 소비 등,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전쟁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국가마다 다른 전쟁목표의 표출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지탱하던 신앙심마저 사라지고 세속적 욕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3. 결론십자군 전쟁의 영향은 예상보다 적지 않았다. 비록 십자군 전쟁은 성지탈환이라는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기독교를 중심으로 전체 유럽 인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선 십자군의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즉, 비로소 유럽의 정체성을 확인한 사건이라는 해석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중세 유럽사회가 지닌 체제들, 봉건주의와 로마 기독교의 문제점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근대문명으로 가는 고리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가들 중에는 십자군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성지회복에 실패했다고 하여 보잘것없는 전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십자군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근대문명의 모든 발달을 십자군의 영향으로 돌리려는 사람들이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십자군이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 결과마저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며 거꾸로 전쟁의 결과만을 확대하여 모든 것들을 십자군에 끌어 붙이는 것도 결코 적당한 해석은 아닐 것이다.십자군 전쟁의 영향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을 것이다.첫째로는 교황권과 봉건주의의 쇠퇴를 들어야 할 것이다. 십자군전쟁은 교황청이 주도되어 봉건사회가 이에 따른 사건이었으나 전쟁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체 내의 모순이 들어나게 되어 붕괴에 이르렀다. 교황권의 쇠퇴는 바로 봉건사회의 쇠퇴를 뜻하였다. 왜냐하면 중세사회는 교황권과 봉건주의라는 두 기둥이 지탱하는 건조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쇠퇴는 중세의 상층계급인 승려들과 귀족들의 몰락을 초래하게 되었다.둘째로는 왕권의 강화를 들어야 할 것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중세사회의 모순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통일적 지배를 지향하려는 기독교의 보편주의와 봉건적 분권주의였다. 처음에는 성지회복이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