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 유럽의 기업과 현황본론 2, 프랑스 BIG3, 독일 자동차 산업4, 영국 자연주의 화장품 The Body Shop맺음말1. 유럽의 기업과 현황표- 유럽의 기업 현황-포츈지 선정 (2006년 3월) 세계 100대 기업순위기업국가업종5HSBC영국Banking7Royal Dutch/shell group네덜란드Oil & gas operations8BP영국Oil & gas operations10UBS-스위스연방은행스위스Banking11ING Group네덜란드Diversified financials15TOTAL프랑스Oil & gas operations17BNS Paribas프랑스Banking19Banco Santander스페인Banking20Barclays영국Banking24HBOS영국Banking28AXA group프랑스Insurance29Allianx Worldwide독일Insurance30Credit Suisse Group스위스Diversified financials31ENI이탈리아Oil & gas operations33E.ON독일Utilities38Fortis네덜란드Diversified financials39Deutsche Telekom독일Telecommunications services41ABN-Amro Holding네덜란드Banking43Societe Generale Group프랑스Banking45Daimler Chrysler독일Banking46Credit Agricile프랑스Banking47Lloyds TSB Group영국Banking50Nestle스위스Food drink & tobacco54France Telecom프랑스Telecommunications service56Deutsche Bank Group독일Diversified financials58BBVABanco Bilbao Vizcaya스페인Banking58Sanofi-aventis프랑스drugs & biotechnology61Siemens Group독일Conglomerates64Electr, 프랑스 BIG1. BIG사의 시작회사 설립자인 이탈리아 출신의 바이런 마르셀 빅은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동업자 에드아르드 버파드와 파리 교외에 있는 공장을 구입했을 당시 만년필 부품을 만들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현재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의 아들 부루노 빅의 회고에 따르면 우연히 손수레에서 영감을 얻은 후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부루노는 "아버지는 어느 날 손수레를 밀다가 수레바퀴를 보고 만약 수레바퀴가 둥근 공처럼 사방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잉크를 운반하는 최상의 컨베이어 벨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투자 자금을 볼펜에 모두 쏟아 부었다"고 설명했다. 볼펜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한 미군들에게 만년필이 새고 번지는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빅 볼펜은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펜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이에 자그마한 중소기업으로 출범한 빅볼펜은 그동안 급성장가도를 달려 지금은 면도기와 라이터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으며 총 매출이 14억 유로를 넘어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최초의 볼펜 제조업체인 프랑스의 빅(BIG)이 빅 볼펜을 시장에 처음 내놓은 이후 55 년 만에 볼펜 1000억 개를 팔았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제품을 출시한 이후 빅 볼펜이 매초에 평균 57개씩 팔려나간 셈이라고 설명했다.2. BIG사의 비전, 가치, 철학① 기업 비전: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주저 없이 혁신을 이끌어왔다. 책임감 있는 작업을 통해, 신뢰받고 훈련된 사원들이 조직되어 효과적이고 혁신적인 팀으로 이루어왔으며, 거래에는 뛰어난 서비스를, 제품에는 우수한 품질을 부여하여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공하였다.② 기업 가치: 빅을 일하기에 특별한 곳,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와 윤리의식, 전문성, 국제적인 감각, 리더십, 팀워크에서 보여 지는 프로페셔널한 야망이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였다.③ 제품의 철학: 50여 년 전에 설립된 이후, 빅은 명백한 비전으로 성공을 이루어 왔다. 최고의 품질로 만들기, 저렴한 가사는 1926년 독일의 다임러사와 벤츠사가 합병하여 생긴 독일의 대표적 자동차회사이다.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1834년3월 17일 독일의 숀도르프에서 태어나 1900년3월 6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동차와 함께하며 세계 자동차 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는 1886년 4륜 마차보디에 1기통 462cc엔진을 얹은Motorwagen을 만들었고 1890년에는 슈트트가르트 인근에 DMG(Daimer Motren Gesellschaft)를 설립했다. 그의 주변에는 빌헬름 마이바흐라는 출중한 엔지니어링 디자이너가 있었으며 마이바흐 또한 다임러 벤츠 회사의 초기 역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칼 벤츠 (Karl Benz)는 1844년 11월 23일 독일의 칼스루헤에서 태어나 1929년 4월 4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동차를 벗삼으며 세계 자동차사에 일획을 그었다. 칼 벤츠는 1886년 3륜차에 1기통 엔진을 얹은Patent Motorwagen으로 독일제국의 특허를 받았으며 이 차는 휘발유 엔진을 얹은 최초의 자동차로 회자되기도 한다. 칼 벤츠는 1883년 만하임 인근에 Benz & Cie.를 설립했다 다임러와 벤츠 두사람은 100km쯤 떨어진 곳에 살며 자동차에 관한 일을 했지만 생전에 서로 마주친 적은 없었다고 전해진다.1900년 에밀 옐리넥은 다임러의 이사로 선출된다.에밀은 오스트로 헝가리 제국의 장군으로 니스의 영사(무관)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매우 부자인 자동차광으로 주위의 부자 친구들에게 다임러 차를 팔며 비공식 딜러 역할을 했다. 그가 이사가 되어 회사에 제안한 첫 번째 자동차는 매우 뛰어난 진정한 의미의 퍼포먼스 카였다. 이에 마이바흐(이미 다임러는 죽었음) 가 내놓은 차량이 4기통 5.9리터에 35마력을 내는 차이다. 옐리넥은 이 차에 자신이 너무도 귀여워하는 막내딸의 이름을 붙였다. '메르세데스' 이것이 메르세데스 자동차의 시초이다. 이후 옐리넥은 다임러 차의 몇몇 국가에 대한 판매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차의 이름는 이후 네바퀴 굴림 기술을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정착되어 현재까지 아우디의 모든 시리즈에 적용되고 있다. 1994년 전 모델에 걸쳐 풀모델 체인지를 실시했는데, 더불어 모델 이름도 단순한 멋이 풍기는 A4(아우디 80), A6(아우디 100), A8(V8)로 바꾸었다. 2002년 A시리즈 외 스포츠성을 강조한 S3, S6, S8 시리즈가 생산되고 있으며, 영화에 먼저 소개되어 친숙한 TT 쿠페와 로드스터, SUV인 올로드 콰트로(Allraod quattro)가 있다. 1980년에 발표된 아우디 콰트로와 1994년에 선보여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는 A8은 '세기의 명차 100선'에 당당히 들어 아우디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 준다.3. BMW호사성(luxury)과 역동성(sport)의 조화는 오랜 기간 동안 고급 자동차 제작사들의 지상 과제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확연한 성격차로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두 시장을 아우르는 럭셔리 스포트 시장은 두 시장의 단순 교집합이 아닌 소비자들의 성능과 호사성에 대한 양립하며 갈등하는 욕구을 채워줄 수 있는 거대한 폭발성을 지닌 무한한 시장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두 가지 성격을 한 차종에 구현해 낸다는 것은 메이커 입장에서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 영역에서 성공적인 회사가 많지 않은 까닭이다. 독일의 BMW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대표적인 제작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내놓았던 대표적인 차들은 고급 세단으로서도 손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성능 또한 출중해서 스포츠카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망을 모자람 없이 충족시켜 주었다.1916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에서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던 두 회사의 합병으로 Bayerische Flugzeugwerke AG(Bavarian Aeroplane Works 혹은 BFW)가 출발했고, 1917년에는 Rapp Motorenwerke GmbH가 Bayerische Motoren Werke 이름을 바꾸며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BMW 트레이드마크를 등록하였다.독일은 1차.독일자동차만의 특징독일의 자동차들은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며 또 그에 맞는 노련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명실상부한 자동차의 원조국으로써 그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수십 년간 급속도로 성장 해왔던 미국과 일본이 결코 넘볼 수 없는 기술의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일본과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발달 하였어도 그 모태는 독일이었으며 아직도 주요한 기술 및 노하우는 독일을 따라올 수가 없다. 또한 일본은 독일과는 다른 특징으로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값이 싸고 경제적인 이미지로서의 일본자동차를 생각한다면, 값은 결코 싸지 않지만 디자인, 편리함, 모든 면에 있어서 특히 안정성 면에 있어서는 독일의 차가 제일로 꼽히는 것이다.독일차들은 주로 고급차이기 때문에 한 가지 모델이 보통 8년 정도 생산 된다.이것은 독일차가 갖는 분명한 장점이다. 8년 정도 생산하려면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 필수고 모델을 바꿀 때마다 신기술들로 무장을 하며 내구성 역시 뛰어나기 때문이다.독일차는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가 2년만 타도 구형이 되는 반면 독일차들은 8년을 타야 구형이 되니 차를 자주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그리고 독일차의 다른 특징인 고성능. 독일차들은 거의 대부분이 세로배치 엔진에 후륜구동을 쓴다. 물리적으로 볼 때 후륜구동이 기동성면에서 유리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스포츠카들은 거의 100% 후륜구동인 것이다. 그리고 세로배치에 후륜구동은 앞뒤 무게배분에 균형을 맞출 수 가 있고 실제로도 50:50의 무게배분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독일차들은 크기로 퀄리티를 정하지 않는다. 물론 차 크기가 작으면 가격이 저렴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작다고 해서 품질이나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 차의 크기는 특징일 뿐 가치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유럽 사람들은 특히나 작은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4, 더 바디샵(The Body Shop)1.더 바디샵의 시작더 바디샵은 1976년 기업가 아니타 로딕있다.
1. 실존 인물 대장금(大場今)드라마 대장금으로 화제가 된 인물 대장금은 실존인물이다. 드라마 ‘허준’과 ‘상도’를 연출한 이병훈 PD는 드라마 ‘허준’의 자료를 찾던 도중 중종이 ‘내 병에 대해선 장금만큼 아는 이가 없다.’는 한 줄의 기록을 발견한 뒤 대장금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여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한다.이병훈 PD의 이 발언으로 인해 역사서에 대장금의 기록이 한 줄 밖에 없었고 그 기록만으로 만들어진 완전한 픽션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실제로 기록을 찾아보면 여러 군데에서 대장금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1515년(중종 10년) - 인종을 낳은 후 산독으로 세상을 떠난 장경왕후 윤씨(중종의 제1계비(繼妃))의 치료를 맡았던 의관들의 처벌을 놓고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의녀인 장금은 호산(護産: 왕실비빈의 출산을 돌보는 일)하여 공이 있었으니 당연히 큰상을 받아야 할 것인데, 마침내는 대고(大故)가 있음으로 해서 아직 드러나게 상을 받지 못하였다. 상은 베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형장을 가할 수는 없으므로 명하여 장형(杖刑)을 속바치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 양단(兩端)을 참작하여 죄를 정하는 뜻이다.'1524년(중종 19년) - '의녀 대장금(大長今)의 의술이 그 무리 중에서 조금 나으므로 바야흐로 대내(大內)에 출입하며 간병(看病)하니, 이 전체아(全遞兒)를 대장금에게 주라'1533년(중종 28년) - '내가 여러 달 병을 앓다가 이제야 거의 회복이 되었다. 약방 제조와 의원들에게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의녀(醫女) 대장금과 계금(戒今)에게는 쌀과 콩을 각각 15석씩, 관목면(官木綿)과 정포(正布)를 각기 10필씩 내리고'1544년(중종 39년) 1월 29일 - '내가 저번에 감기가 들어 해수증(咳嗽症: 기침)을 얻어서 오래 시사(視事)하지 못하였다. 조금 나아서 경연(經筵: 군주에게 유교 경서와 역사를 가르치던 자리)을 열었더니, 그 날 마침 추워서 전의 증세가 다시 일어났다. 의원 박세거(朴世擧)와 홍침(洪沈) 및 내의녀(內醫女) 대장금과 은비(銀非) 등에게 약을 의논하라고 이미 하유(下諭)하였거니와, 이 뜻을 내의원 제조에게 이르라.'1544년(중종 39년) 2월 9일 - '의녀 대장금에게는 쌀과 콩을 도합 5석(石), 은비(銀非)에게는 쌀과 콩 3석을 하사하고'1544년(중종 39년) 10월 25일 - '이날 의녀 장금이 나와서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상께서 삼경(三更,저녁 11시∼1시)에 잠이 들었고, 오경(새벽3시∼5시)에 또 잠깐 잠이 들었다. 또 소변은 잠시 통했으나 대변이 불통한 지가 이미 3일이나 되었다"고 했다.'1544년(중종 39년) 10월 26일 - '상에게 병환이 있었다. (중략). 전교하기를, "내 증세는 대체로 보아 조금 뜸한 듯하나 대변은 아직도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약을 의논하고 있다." (중략). 전교하기를, "내 증세는 여의가 안다." 여의 장금의 말이 "지난밤에 오령산을 달여 들였더니 두 번 복용하시고 삼경에 잠이 드셨습니다. 또 소변은 잠깐 통했으나 대변은 전과 같이 통하지 않아 오늘 아침 처음으로 밀정(蜜釘)을 썼습니다" 하였다.'1544년(중종 39년) 10월 29일 - 상에게 병환이 있었다. (중략) 아침에 의녀 장금이 내전으로부터 나와서 말하기를, "하기가 비로소 통하여 매우 기분이 좋다고 하셨습니다."하였다. 얼마 후에 약방에 전교하기를, "내가 지금은 하기가 평소와 같고 다만 기운만 약할 뿐이다. 지금 제조 및 의원과 의녀가 모두 왕래하고 있지만, 의원은 입직할 것이 없으며 제조도 각기 해산하여 돌아가라"대장금에 대한 기록은 한 번이 아니었다. 1924년 실록에 비로소 ‘대장금: 장금의 의술을 높이 사 중종이 직접 내린 이름’이란 호칭이 나오며 그 이후에 의녀(醫女)가 아닌 여의(女醫)라는 호칭이 종종 등장함을 알 수 있다.실제 인물 대장금은 궁중에서 중종을 보살피던 의녀였으며 그 당시 시대에서 여자의 몸으로 ‘대장금(大場今)’이라는 호칭과 함께 중종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2. 대장금과 한류드라마 대장금은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겨울 연가’와 더불어 최근 비즈니스 교과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엄청난 부가가치를 이룩하였다.대장금이 이만큼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인 이병훈도 자신의 드라마가 중국에서 이처럼 인기를 모을수 있는데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문화가 서로 통하고 가치관이 서로 같은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고 그가 말했다. 장금은 평범한 궁녀로 그녀가 겪어왔던 어려움과 위험 그리고 성공은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보통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이러한 감동은 국경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후난(湖南) 위성방송 총 편집실 주임 리하오(李浩)는 "우리가 을 '청춘 성장 영화'로 여기는 것은 드라마의 관중 대부분이 여성인 동시에 이야기 주제와도 부합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장금의 전설적인 인생과 완강한 생명력은 가장 주요한 판매 포인트이다"고 덧붙였다.-푸단대학 한국 연구센터 주임 스위안화(石源?)는 "의 섬세한 제작도 매우 중요해 한국에서 역사극의 원가는 현대극의 1~1.5배 다"고 소개했다. "일반 한국 드라마는 한화 약 1억5천만원(인민폐 1백5만위안)으로 1회를 촬영하지만 은 약 한화 2억원(인민폐 1백40만위안)으로 1회의 드라마를 완성한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의 성공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또 배우의 연기가 출중하고 내용이 훌륭했으며 드라마를 찍은 환경과 배경이 세밀하고 정교했다.-주홍콩 한국총영사 조환복(???)은 이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것은 이야기 줄거리가 선명하고 구조와 연기가 좋은데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내용에 강한 교육성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인생 목표를 수립하는데 촉진 작용을 한다. 또한 집착적인 추구와 인내심을 양성하는데 유리하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는 인생 태도를 지니게 한다.-상하이 대학교수 거훙빙(葛?兵)은 "한국과 중국 내륙, 타이완, 홍콩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문화 가치관에서 더욱 쉽게 유가 문화의 심오함과 동아시아 관중의 인정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 대장금은 뚜렷한 선-악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체 이야기의 중심이 주인공 대장금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남자 주인공 지진희의 역할도 대장금을 보조하는 역할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대장금을 제외하고 가장 비중이 높았던 인물인 한상궁도 중반에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극에서 퇴장한다. 하지만 한상궁의 죽음은 단순한 한 인물의 죽음이 아니라 대장금의 시련, 그리고 극복의 원인으로서 죽음을 통해 비중을 더 높일 수 있었다.
무정 - 형식, 영채, 선형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이광수의 소설 「무정」은 봉건적인 제도의 그늘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했거나(영채), 이제 막 근대적인 단계로 올라선 지식인(형식, 선형)들의 성숙을 형식을 중심으로 한 삼관관계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무정」에는 두 가지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당대에는 드물었던 형식과 선형의 자유연애와 형식과 영채의 구시대적 가치관에 기초한 애정이 그것이다. 이 두 개의 다른 흐름은 구시대적 가치와 근대적 가치를 각기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영채는 구시대적 가치를 지닌 여인으로 개화되지 않은 전형적 인물이다. 개화론자이면서도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아버지 밑에서 학교에 다니며 신식교육을 받으면서도 , 을 배우는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배우는 신?구가 공존하는 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아버지의 교육 아래서 가부장권에 순응하였고 그리하여 아버지의 “너는 형식의 아내가 되어라.”라는 말에 아무런 내면의 갈등 없이 아버지의 명령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영채의 이런 의식은 감옥에 투옥된 아버지와 오빠들을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는 것과도 이어진다. 개인의 욕망이나 권리 보다는 아버지와 오빠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기생이 된 뒤에도 그녀의 봉건적인 태도는 계속 드러난다.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기에 영채는 형식을 가슴에 품게 되었으며 기생이 되어서도 순결을 유지한다.영채의 운명인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의해 변화한다. 형식에 대한 사랑을 눈 뜬 것도 아버지의 명령에 의해서였으며 기생이 된 것도 부모를 위한 자기희생적 효도라 할 수 있으며, 순결을 잃자 자살을 결심하는 것도 어릴 적부터 봉건적 가치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선형은 당대에 드믄 높은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다. 집안의 유복함, 깨우친 아버지 등 선형이 가진 조건은 근대적 가치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영채가 집에서 과 을 배웠다면 선형은 여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였으며 유학을 준비 중인 근대적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이 두 여성인물의 중심에는 형식이 있다. 형식은 경성학교 영어 교사로 당대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형식이란 인물에서 중요한 것은 분명 당시의 다른 사람들보다 깨인 지식인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완벽하게 봉건주의에서 벗어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형식이 영채와 선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형식에게 영채는 은사의 딸이다. 형식이 영채에게 갖는 감정은 ‘애정’ 이라기보다는 ‘의리’에 가깝다. 그리고 선형은 선형의 아버지 김장로가 형식을 사윗감으로 점찍어놓고 선형의 과외선생으로 불렀다 할지라도 사제 관계에서 애정을 느낀 대상이다. 형식이 이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채와 선형 둘 다 아름다운 여인이고 영채에 외모를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그녀의 직업이 기생이라는 것에 마음이 걸린다. 결국 형식은 무정하게도 영채가 아닌 선형을 선택한다.영채를 어떻게 할까? 은인의 따님인 것을 위하여 내 아내로 삼을까? 그리하는 것이 내 도리에 마땅할까? 그러나 형식은 눈을 번쩍 떳다. 그러나 영채는 처녀가 아니다. 설령 어제까지는 처녀였다 하더라도 오늘 저녁에는 이미 처녀가 아니다.형식이 선형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유의지, 연애 감정에 따른 것이다. 봉건적인 구시대적 가치를 따르자면 자기 자신의 욕망을 벗어 놓고 자신을 위해 순결을 지켜온 영채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형식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선형을 선택한다.구시대적인 결혼은 결혼 당사자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다. 이광수는 “혼인 없는 연애는 상상할 수 있으나 연애 없는 혼인은 상상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형식이 선형을 선택하는 것은 애정의 문제와 더불어 결핍과 욕구 충족이라는 관점에서도 설명된다. 형식은 서구 사회를 선망한다. 서구의 지식, 교육을 옳은 것으로 보는 것은 이광수의 한계라고들 하지만 형식이 선형을 선택하는 것은 형식에게 결핍되어 있는 ‘지식’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형식은 ‘미국 유학’으로 대표되는 ‘지식과 학문’의 결핍 충족과 ‘사랑하던 미인’으로 대표되는 ‘애정’의 결핍 충족의 대상으로 선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형식의 갈등의 원인이 되던 영채의 ‘죽음’을 통해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형식이 갈등했던 것은 영채와의 의리 문제와 그녀의 순결 문제였다. 하지만 선형을 선택함으로써 그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고전주의는 17~18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한 면밀한 주석과 함께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 작품들을 모범으로 삼고 거기에 들어 있는 공통적인 특징들을 재현하려는 경향을 가진다.이 시대의 특징은 개인의 자유 분방한 재능의 발휘보다는 조화, 균형, 전아 등 형식적 조화와 완성의 미를 추구하였으면 대표적인 작품으로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 라신의 『소송광』, 몰리에르의 『 수전노』, 세익스피어의 『햄릿』, 벤존슨의 『말 없는 여자』, 실러의 『군도』, 드라이든의 『경이의 해』등이 있다.고전주의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흄, 엘리어트 등 주지파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로 이어진다.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는 고전주의의 몰개성적 성격에 반발하여 독일, 프랑스에서 일어나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주관적이며,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낭만적인 경향을 띤 작품을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환상적, 열정적, 주정적인 낭만주의 소설이 풍미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 이후 나도향, 김유정 등에 의해 쓰였다.낭만주의의 특징은 형식이나 질서의 구속을 거부하고, 합리적 사고 방식이나 이성보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로운 활동과 사상, 감정의 분방함을 지향하여, 멀리 있는 것과 현존하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을 기조로 한다. 낭만주의의 성격은 주관적, 정열적, 신비적, 초자연적, 혁명적이다.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워즈워드의 『수선화』,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 뒤마의 『몽테크리스트 백작』, 바이런의 『차일드 하롤드의 순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발자크의 『농부』, 호든의『주홍 글씨』, 위고의『레미제라블』등이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폐허』, 『백조』등이 있다.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구별은 학자들에 따라 그 구별이 다르다.스트리치, 카자맹, 하버트 리드 등은 그리스 로마 문학, 17, 18 세기의 고전주의, 사실주의, 20세기 신고전주의가 고전주의에, 중세문학, 19세기 낭만주의와 상징주의가 낭만주의에 속한다고 보았다.슐레겔은 고전적인 예술은 아름다움과, 보편성, 관념성, 결정성, 폐쇄성, 장르의 순수성이고 낭만적인 예술은 힘과 개성, 회화성, 무한성, 개방성, 장르의 혼합성이라 하면서 의식적인 romantic과 classical의 대립에 대해 자각하였다.스타알 부인은 고전주의적인 시는 조형적이며 사건중심적인 그리스 비극이며 운명에 관한 완결된 시라고 하였고 낭만주의적인 시는 회화적이며 성격 중식의 현대극, 섭리에 관한 시로 진보하는 시라고 구별하였다.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대조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고전주의가 객관적 인식과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것을 중시했던 것에 비해 낭만주의는 주관적 인식과 개체적이고 민족적인 것을 존중하였고 역사에 있어서도 고전주의는 보편성를 추구했고 낭만주의는 민족사를 추구했으며 고전주의가 이성을 중시하고 형식을 중시한 문체를 사용한 것에 비해 낭만주의는 감정을 중시하고 자유분방한 체제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고전주의는 고대를 동경하고 도시적 취미를 동경했으나 낭만주의는 각 민족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중세를 동경하였고 전원을 애호하였다.구체적으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비교하면 고전주의가 그리스와 로마 문학에서 구성법칙과 취재 범위를 수득한 방면 낭만주의는 중세적 정감의 부활을 의도한다. 또한 고전주의는 정규적인 질서를 체득하여 시는 대구법을 극 작품에서는 삼일치의 법칙을 중시하였고 낭만주의는 자연대 인관 관계가 주 요소이다. 고전주의가 인본적, 주지적 특징을 지닌다면 낭만주의는 인간의 구속적인 법칙을 파기하고 원시 상태로의 귀환을 의도하고 반항적인 이념, 독창성과 개성 존중, 주정적이고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한다. 반면 고전주의는 현실적이고 법칙적, 보편성 원리를 주축으로 하고 있으며 대표적, 전형적, 보편성과 통제의 미를 이루고 균형을 이룬 조형적인 미를 추구한다. 낭만주의는 이와는 반대로 자유분방한 자세와 폭발적인 정감과 감격을 추구한다.
몽상가들 - 현실과 허구 사이국문학과 20030251 이수나The Dreamers,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은 그 제목처럼 꿈꾸는 사람, 현실성 없는 이상을 꿈꾸는 세 명이 젊은이들의 모습을 다룬 영화이다.영화는 1968년도 프랑스 68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1968년도에 영화에 빠진 세 젊은이의 이야기. 이 영화는 1968년도의 영화에 대한 영화이다.영화 중간 중간 나오는 수많은 다른 영화의 자료화면. 그 장면을 이자벨과 테오, 매튜는 그대로 현실에서 그 장면을 똑같이 따라한다. 분명 영화 속 장면은 허구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매튜가 이란성 쌍둥이 이자벨과 테오를 만난 곳은 1968년 프랑스 68혁명이 진행 중인 시네마 테크 ‘프랑세즈’이다. 영화관에서 만난 영화광들. 하지만 당시의 현실은 문화에 대한 억압 정책으로 인해 더 이상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 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에 반발한 사람들이 저항을 시작한다. 이러한 장면이 실제의 흑백 자료화면과 함께 교차 편집되어 이 영화과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을 더욱 강조한다.이 영화는 자료화면 사용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 자료화면은 실제 그 당시 저항의 모습을 담은 필름과, 영화의 필름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쉽게 두 부분으로구분지을 수 있다. 실제 그 당시의 저항 모습을 담은 필름은 ‘현실’, 영화 자료 화면은 ‘허구’. 현실과 허구. 이 영화를 볼 때 현실과 허구, 이 두 가지 시각이 중요하다. 현실과 허구는 현실가와 몽상가를 가르는 주요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자벨과 테오, 매튜는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몽상가들이다. 그들은 직접 시위 현장에 있고 시위를 참여하지만 그보다 영화 장면 따라하는 것을 더 즐긴다. 그리고 그들만의 아지트가 된 쌍둥이의 집에서 그들만의 허구-영화를 현실에서 재현해내기 바쁘다.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해 내고 그것이 어떤 영화인지 맞추기, 영화 속에 있었던 장면을 실제로 해보기 등.이자벨과 테오 그리고 매튜는 같은 몽상가이지만 조금 다르다.이자벨과 테오의 아버지는 시인이다. 관념적 세계를 추구하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가진 이들 쌍둥이들이 몽상가인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프랑스인. 매튜의 국적은 미국. 미국의 실용주의를 생각한다면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총체적이고 관념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같은 몽상가 중에서도 더 깊고 진한 몽상가는 이자벨과 테오 이 쌍둥이 남매이다. 이 두 쌍둥이는 매우 흥미로운 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태초의 사랑과 같은 것이라며 자신들을 정신이 이어져 있는 샴쌍둥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행동을 매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근친으로 오해할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다.매튜의 두 사람의 근친에 대한 오해와 이들의 유희적 놀이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간이다. 세 사람이 머물고 있는 집 밖으로는 시위와 억압이 계속 되고 있지만 그들은 집안에 그들 스스로 갇혀 유희적 놀이를 계속한다. 현실에서의 도덕적 관념이라는 것은 이들 사에서 초반에 갈등의 대상이 됐지만 세 사람 모두 그것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현실과는 동 떨어진 유희적 놀이에 더 집착하게 된다. 당시 시대 상황의 젊은이들을 생각할 때 그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단 한 마디. 그것은 그들이 몽상가들이기 때문이다.앞서 세 사람의 몽상가들 중에 더 깊은 몽상가를 이자벨과 테오 쌍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매튜는 어떤 유형의 몽상가일까.매튜는 미국에서 온, 실용주의의 나라에서 온 친구이다. 쌍둥이들의 아버지지의 관념적인 대화에서 그는 식탁 받침대의 모양-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의 실제적인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는 쌍둥이들의 아버지의 말문을 막히게 하고 자신들의 아버지를 이겼다는 점은 쌍둥이들이 그를 자신들 안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허구의 세계인 영화에 빠져있는 매튜 역시 몽상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자벨과 테오 만큼 깊고 진한 몽상가는 아니다.여전히 그는 현실과 허구 그 중간점에 서 있다. 이자벨에게 끌리는 만큼 그는 허구의 세계에 끌리게 된다.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은 불필요한 고통일 뿐이다. 시위 현장에 나가서 싸워야 하고, 경찰과 대립하여야 하고. 하지만 허구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고통이 없다. 오직 쾌락이 있을 뿐이다.근친으로 오해한 이자벨과 테오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며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한 테오는 결국 그들과 동화된 듯 보인다. 현실적 관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자신과 여동생이 보는 앞에서 자위를 하는 테오의 모습에서 거부감을 느꼈던 매튜이다. 하지만 그가 쌍둥이들과 같은 허구에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이자벨에 대한 이끌림 때문이었다. 쌍둥이들은 그들이 자궁 안에 함께 있던 그 모습을 그대로 이어나가려 한다. 현실에서는 성별의 구분이 있지만 두 쌍둥이들에게는 그저 상대방이 또 하나의 자신인 것이다. 하지만 매튜는 이자벨을 이성의 존재로 받아들인다.매튜와 이자벨의 섹스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매튜가 현실과 허구의 정확한 가운데 점에서 허구를 바라보고 있다가 허구의 세계로 한 발 내딛는 것과 동시에 태고의 사랑-성별의 구분이 없던 이자벨과 테오 두 샴쌍둥이의 갈라짐.샴쌍둥이는 모든 것을 함께한다. 고통도 기쁨도 일상적인 생활 모든 것을 함께 한다. 하지만 매튜와 이자벨의 섹스에서 테오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자벨의 첫 경험은 테오가 함께 느낄 수 없는 본질의 것이다. 테오가 이전에 이자벨 앞에서 했던 자위하고는 다르다. 자위는 허구이다. 하지만 섹스는 현실이다.정신적 샴쌍둥이었던 두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서로에게서 떨어지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한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 다름없는 그런 아픔일 것이다. 그리고 매튜와 테오의 논쟁- 예를 클랩튼과 지미 핸드릭스 중 누가 더 대단하냐, 베트남 전쟁 등 하지만 이상한 점은 영화에 대해서는 서로 많은 부분에서 동의를 한다. -은 이러한 갈등을 가시화한다. 자신의 한 몸이었던 이자벨을 지키려는 테오와 섹스를 통해 묶여져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은 매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