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변화하고 있었다. 이 전환기에 조선에서는 자주 외교를 모색한 외교정책으로서 두 부류가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유길준의《양절론》과 김윤식으로 대표되는《양득론》이었다. 이들 두 논리 ... 것이었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두 외교정책의 이론은 개략해보면서 19세기 말 조선외교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한다.우선, 김윤식의《양득론》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김윤식에게 ‘속국 ... 이 자주의 조건이라고 인식하지도 않았다. 김윤식의 양편 또는 양득의 구상은 약소국으로서 조선의 생존전략은 무엇보다 고립을 면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요컨대 옛 중화체제의 주변
이 지나치게 문제 삼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홍장의 말에 대한 수긍의 의미인 것이다.학계 일각에서 유길준의 ‘양절체제론’을 높이면서 김윤식의 ‘양득론’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있으나 이는 잘못 ... 이다. 양득론은 조공관계를 인정하고 내정 및 외교에 관한 자주를 보장받았다는 점에서 양절체제론과 하등 차이가 없다. 조공국과 속국은 언어상의 차이에 불과하다. 다만 양득론은 양절 ... 하는데 무해하여 평등권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주권 상실의 걱정도 없고, 사대의 의에도 배반되지 않으니, 가히 양득이라고 하겠습니다.”이는 속방을 명기함에 따라 안보가 확보
1.유길준은 누구인가?1856(철종7)~1914. 구한국 말기의 정치가, 개화운동가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성무(聖武), 호는 구당(矩堂)이다. 서울 출신으로 진사 유진수(兪鎭壽)의 아들이며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이경직 등에 한학을 배웠다.1870년 박규..
해서는 동등의 예도 를 행하면서 조선에 대하여는 독존한 체모 를 강요하는 현실을 두고 양절체제 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각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한 후에도 청국과 사대질서를 유지하고 있 ... 는 조선의 이중적 국제질서를 양절체제로 묘사한 것이다. 이런 양절론은 현대용어로 중국과의 자주적 동맹 론이라고 볼 수 있겠다. 급진적 변혁을 주장하지 않고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 ... 이 결여된 낙관적인 대외관을 가졌다고 비판받았으나 유길준은 현실 정치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하면서도 중국에 대해 약소국으로서 도덕적 항의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양절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