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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 - 2025 방송통신대 리포트 및 과제물 업데이트, 중간고사/기말고사자료
"방통대 전통사회와생활문화" 검색결과 321-340 / 1,20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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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와생활문화 과제물(경주 양동마을 답사 후 안내 과정 및 내용 정리)
- 2013학년도 ( 2 )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전통사회와생활문화학 번 : ******-******연 락 처 : 010-****-****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 과제유형 : (공통) 형o 과 제 명 : ‘전통생활문화’의 주제와 관련 있는 곳을 찾아 직접 답사한 뒤, 자신이 그곳의 안내자가 되어 안내하는 과정 및 내용을 정리할 것.전통생활문화와 관련된 곳을 찾아 답사하고, 그 곳의 안내자가 되어 안내해보라는 주제를 받고 어떤 곳을 선정해야 할까 무척 고심하였다. ‘주변 박물관을 대상으로 해볼까?’, 아니면 ‘사찰을 중심으로 둘러볼까?’ 하지만, 전통생활문화와는 조금 동떨어진 대상물들로 보여 인터넷과 책들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만난 것이『경주의 양동마을』이었다. 경주를 거쳐 포항으로 가기 위해 몇 번쯤은 지나쳤던 곳으로,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기와집과 초가집이 한데 어울려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한다. 지금은 민속마을 등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우리의 다양한 한옥을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과, 어떤 자재를 이용하여 어떤 형태로 집을 지었는지를 볼 수 있고, 조상들이 집을 어떻게 생각했으며, 공간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알 수 있으며, 어떻게 한옥을 자연과 조화롭게 만들 수 있었는지 등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이곳 양동마을을 선택하게 되었다.양동마을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가옥 150여채가 잘 보존되어 있는 한옥마을이다. 마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말 여강 이씨 이광호가 처음 정착하였고, 손자 사위인 풍덕 류씨 류복하가 처가를 따라 이곳에 왔다. 이어 세조 5년(1459년) 문과에 급제하고 중앙정치에 입문하여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계천군에 봉해진 월성 손씨 손소(1433~84)가 유복하의 무남독녀에게 장가들어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으면서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이후 이광호의 5 외동딸에게 장가들어 이곳에 정착하면서 월성(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시대 대다수의 양반 마을이 장손 중심의 씨족마을을 이루었지만, 양동마을은 사위가 처가에 들어와 씨족마을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외손마을’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곳이다. 씨족마을의 구성요소인 종택, 살림집, 정자, 서원, 서당 등 유형유산과 유교 예법에 따른 의례, 전통놀이 등 무형유산이 전해져 내려오며, 국보 1점, 보물 4점, 중요민속자료 12점, 경상북도유형문화재 2점 등 시도 지정 문화재만 22점이다. 또한 조선 500년 동안 문과 26명, 무과 14명, 사마 76명으로 과거급제가 모두 116명이나 되었으며,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조선 중기 중앙의 관직을 두루 역임한 우재 손중돈(1463~1529)과 사후 동방5현의 한분으로 문묘에 배향된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 등이 있다.마을의 전체 전통가옥 150여채 중 50여채가 기와집으로, 신분의 차이에 따라 지형이 높은 곳에 양반가옥이 위치하고, 낮은 곳에 외거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듯 형성되어 있다. 집들의 기본구조는 대개 ㅁ자형이거나 튼 ㅁ자형으로 되어 있고, 간혹 대문 앞에 행랑채를 둔 예도 있으며, 혼합배치 양식으로 ㄱ자형이나 ㅡ자형도 있지만, 대체로 집의 배치나 구성 따위가 경상도 지방의 가옥이 지니는 특색을 띠고 있다. 양동마을의 초가지붕은 둥근 반달 모양이 아닌 사다리꼴 형태가 대부분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했다가 초가지붕으로 되돌린 것이라 옛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한다.우리나라의 국가 지정 전통마을 7개소 중 마을의 역사와 규모 및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및 가치, 그리고 뛰어난 건축과 조경양식,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향토성 등의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로 평가받고 있다. 이로 인해 1984년 12월 24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제(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7월 31일에는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양동마을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우리의 전통가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먼저 알아 본 후 마을을 한번 둘러보기로 하자.첫째, 안채는 집안의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으로,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에 위치하였으며, 보통 안방, 안대청, 건넌방, 부엌으로 구성된다. 안채는 위치상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인 북쪽에 위치하는데, 이는 여성들의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하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공간배치라 볼 수 있다. 또한 가족들의 의식주를 전담하는 공간으로 가구류도 의복과 침구류 보관을 위한 수납용 가구 등이 놓였다.둘째, 사랑채는 외부로부터 온 손님들에게 숙식을 대접하는 장소 또는 이웃이나 친지들이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거나, 집안 어른이 어린 자녀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교육하는 장소였다. 또한 사대부 남자들이 사랑채에 모여 학문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시를 짓거나, 거문고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등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부유한 집안의 경우는 사랑채가 독립된 건물로 있었지만, 일반적인 농가에서는 주로 대문 가까이의 바깥쪽 방을 사랑방으로 정해 남자들의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사랑채는 보통 사랑대청과 사랑방으로 구성되며 부유한 집안은 누마루를 마련하는 등 한층 품위를 살렸다. 유교의 금욕주의적 영향으로 사랑방의 가구나 장식은 매우 간소하게 꾸며져 보통 몇 개의 방석과 작은 책상, 장농과 책장, 문방소품 등으로 구성되었다.셋째, 전통주택은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공간을 다르게 배치하였는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경우에는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하인들이 기거하거나 곡식 등을 저장해두는 창고로서 행랑채가 따로 있었다. 바깥행랑채는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집안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머슴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고, 중문간 행랑채는 양반들이 기거하는 안채, 사랑채와 중간쯤인 공간으로 청지기가 거처하였다.넷째, 조선시대에는 조상숭배의식의 정착으로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나 사랑채 뒤쪽 제일 높은 곳에 사당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보통 사당에는 4개의 신위를 모시는데, 서쪽부터 고조의 신위, 증조의 신위, 할아버지의 신위를 모시며 마지막에 부모의 신위를 모신다.이제부터는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며 우리의 옛 문화를 맘껏 즐겨보기로 하자.먼저, 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제일 높고 전망이 좋은 장소에 자리잡은 관가정(觀稼亭)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관광객에게 개방된 일부 건축물 중 하나로, 양민공 손소의 둘째 아들이자 이언적의 외숙으로, 성종과 중중 때의 명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우재 손중돈이 분가하여 지은 집이면서 손중돈의 불천위 사당이 있는 곳이며, ‘농사 짓는 광경을 내려다보는 정자’라는 뜻의 관가정은 누마루가 있는 정자이기도 하다.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아들?딸이 하나하나 배워가며, 시련을 겪으면서도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직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듯 싶다.손중돈은 차남이었지만 당시의 관례대로 큰형이 장가들어 마을을 떠남으로써 종손이 되었다. 그는 문묘에 배향될 정도로 학문이 깊었고, 평생 벼슬살이를 했다. 그의 몸에 밴 관료의식은 유가의 이념과 맞물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예법 연구로 이어졌고, 관가정의 반듯한 대칭 구조 또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하겠다.관가정은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 모양을 이루고,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집의 배치는 중문을 중앙에 두고, 서쪽에 사랑채, 동쪽과 북쪽에 안채를 두었다. 안채의 동북쪽에는 사당을 배치하고, 담장으로 양쪽 옆면과 뒷면을 둘러막아 집의 앞쪽을 탁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관을 바라보게 하였다. 하지만 1981년 보수하면서 전면에도 담장을 쌓았고 일각 대문을 내어 본래의 조망이 많이 가려졌다. 안채에는 세 칸의 넓은 대청이 있고, 안방과 사랑채 사이에 또 마루가 있으며, 사랑채에서 안강 들판 쪽으로 넓은 마루가 또 있다. 마루가 이렇게 많고 넓은 것은 살림집이 후대로 오면서 제사 때 필요한 공간 때문이다.이 변화로 인해 관가정은 외부와 연결되면서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파괴하지 않고도 공간의 자유를 찾게 되었다. 지금은 사랑채의 대청 앞을 담이 막아서고 있지만, 예전에는 초가집들이 접근로에 있어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통제가 가능했기에 담장과 대문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집의 영역은 그대로 물봉에서 호명산으로 이어지고, 안강 뜰로 확장된다. 2차원의 평면 내에서는 대칭성에 갇혀 있던 곳이 3차원의 공간에서는 마음 가는대로 풀려나오는 집. 그 한계 속에서 자유롭기에 자유의 한계를 훌훌 털어버린 집이 관가정이다.여러 고택들과 아름다운 돌담길을 따라 거닐다보면 어느 순간 멈춰버린 시간 속을 여행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마을 우물에서, 초가지붕 위의 둥그런 호박들을 보면서 예전 고향의 향수가 떠오를 수도 있겠다.한참을 걷다 보면 마을 북동쪽에 위치한 서백당(書百堂)을 만나게 된다. 월성 손씨의 종가로, 이 마을의 입향조가 된 양민공 손소가 성종 15년(1454년)에 지은 집이며, 손소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과 외손으로서 문묘에 배향된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으로, ‘서백(書百)’이란 ‘하루에 백번을 참을 인(忍)자를 생각하며 살면 행복이 오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ㅡ자형 대문채 안에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와 연결되는 안채는 ㅁ자 형태를 취하며, 오른쪽 뒷마당으로 사당을 모시고 있다.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며,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라 하나, 현재도 후손들이 살고 있어 안채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사랑방과 침방이 대청을 두고 ㄱ자 모양으로 놓여 있고, 대청을 사이에 두고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서로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작은 사랑방을 모서리 쪽에 두었다. 툇마루가 작은 사랑방과 대청으로 연결된 점이 이채로우며, 서백당 현판의 맞은 편에는 손소가 이 집을 짓고 기념하기 위해 손수 심었다는 560여년 된 향나무(현재 경상북도기념물.
- 방송통신대 | 4페이지 | 3,500원 | 등록일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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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교육] 사회변화에 따른 교육
- 방송통신대학교 과제물교과목명 : 인간과 교육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제유형 : ( 공통 ) 형○ 과 제 명 :① 사회변화에 따른 교육형태의 변화를 살펴보고, 현대사회에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시오.② 매슬로우(Maslow)의 욕구위계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그 교육적 시사점을 논하시오.- 이하 과제 작성1. 사회변화에 따른 교육형태의 변화를 살펴보고, 현대사회에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시오.- 목차 -1) 사회 변화에 따른 교육2) 교육의 형태와 유형(1) 학교교육(2) 대안학교(3) 가정교육(4) 홈스쿨(5) 평생교육1) 사회 변화에 따른 교육한 인간이 태어나면 자신의 부모가 속한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된다. 사회는 저마다 이미 통용되는 언어와 축적된 문화, 그들만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개인은 그 사회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과 학습을 통하여 성장해 나간다. 이렇듯 인간은 ‘교육적 존재(Homo Educatus)’로서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교육 활동을 통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언어와 문화를 끊임없이 배우며, 사용하며, 향유하며 살아간다.교육은 각 시대의 배경이나 사회가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그 형태와 내용, 방법을 달리한다. 원시 시대는 자연의 재난이나 맹수의 위협에서 벗어나 생명과 종족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었다. 원시사회의 교육은 형식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아니었다. 우선 교육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가정이다. 가정은 한 개인의 성격이나 경험이 형성되는 1차적이고 기본적인 교육이 행해지는 곳이다. 각자의 가정에서 조부모나 부모의 보호와 양육을 받으면서 생활 방식을 습득하고, 자연스런 일상의 생활을 통하여 언어를 듣고 이해하고 말하고 알아간다.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축제나 관혼상제와 관련된 행사 등에 참여하며 때와 장소에 맞는 정서와 의식을 배우게 된다. 성장해 가면서 철저한 기독교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교육의 목적을 두었다. 반면 동양의 중세 사회에는 유교적인 삶을 추구하며 예와 인을 갖춘 군자의 삶을 이상으로 삼았다.18세기 이후 서양사회에는 시민계급이 형성되고 확산되면서 교육의 대중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19세기에는 학교교육의 의무화가 이루어지면서 학교 교육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사회나 국가에서 하나의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하여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학교교육은 개인의 인격 형성과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로 보편화 되었다. 이제 현대 사회에서 학교교육은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며 국민에게 공통의 지식과 가치관을 가르치므로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2) 교육의 형태와 유형교육은 한 개인의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모든 과정에서 속하게 되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교육기관의 역할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술과 태도와 지식을 가르치며, 다양성을 지닌 사회에서 다양성을 지닌 인간을 사회화시킨다. 교육은 크게 학교교육과 학교 외 교육으로 나눈다. 그리고 학교 교육을 형식 교육 또는 정규 교육이라 하고, 학교 외 교육을 비형식교육 또는 비정규교육이라고 한다. 학교교육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연속적이며 위계적인 구조 하에서 연령순으로 단계가 정해진 체계이다. 그러나 학교 외 교육은 이러한 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다. 흔히 유아교육, 가정교육, 사회교육은 학교 외 교육으로 분류한다.또한 형식교육은 국가가 학력이나 학위를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교육으로서 학교 교육(초.중등 및 고등교육)을 말한다. 비형식 교육이란 교실, 교사, 학생, 교과서, 시간표 등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국가의 인증을 받지 않는 교육으로서 사설기관에서 이루어지는 학력 보충교육, 연수원에서의 기업교육, 시민단체에서의 시민 교육 등을 말한다. 이 두 가지를 의도적 교육이라고 한다. 형식교육과 비형식교육은 국가의 학력인적을 가지고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학교는 개인적,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관이다. 인간은 신체적, 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이 가장 왕성하고 활발하게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들은 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우정을 쌓고, 사회성을 배우고,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서 세상의 지식들을 배운다.오늘날 학교교육은 사회적 국가적 제도와 지원 하에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정규학교교육은 형식적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현대사회에서의 학교교육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내용, 교육행정, 재정의 효율화 등의 교육개혁을 꾀하기도 한다. 특히 획일화되고 경직된 교육의 병폐를 고쳐나가기 위한 노력도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단조로운 학교나 학급구조를 지양하여 좀 더 다양하고 융통성 있는 교육체제와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학급관리 측면에서는 자습의 원리나 학습과정의 개별화 등의 요소를 적용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평가와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위해서 교사는 인도자, 격려자, 카운슬러의 역할을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학습의 장을 교실이나 학교 밖으로 나가는 활동을 장려함으로 학습이 삶의 현장이나 문화적 공간과 배타적이거나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2) 대안학교(Alternative education)대안교육은 기존의 정규학교의 교육에 대한 반기로 나타난 교육이다. 그것은 19~20세기에 거쳐 학교교육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존경쟁의 가치, 적자생존의 가치로 인간과 인간간의 유대를 단절시키고,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자연환경과의 친화력을 약화시키고, 개발 중심의 비인간화에 대한 반기였다.대안학교는 ‘아동중심주의’에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대안학교의 교육은 ‘자유, 성장, 흥미, 활동, 발견’ 등을 핵심적 개념으로 학교는 즐겁고, 인간적인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안학교의 특징은 작은 학급에 의한 인간성 회복, 아동과 학리학자들에 연구에 의하면 인간 성격의 기본 틀은 가소성이 가장 많은 시 5~6세 이전에 형성된다고 한다. 이시기에 성격의 기초가 형성되고 그 이후는 재학습에 불과하다고 한다. 성격뿐만 아니라 지능의 좋고 나쁨도, 체격의 크고 작음도, 정서의 풍부함과 빈약함도, 학습 능력의 많고 적음도 결국은 인간의 초기 경험이 상당부분 결정한다고 한다.그러나 현대 가정교육의 문제점은 적지 않은 가정이 별거나 이혼, 가족이 떨어져 사는 가족해체 현상에서 비롯된다. 가족해체 현상은 전통적인 대가족보다는 부부 중심의 핵가족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가족 내부의 정신적 유대감이 약화되거나 악화되고, 가족 부양 체계가 약화되는 경우이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대인관계의 기술이나 행동양식 등을 습득하는데 가족해체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또한 빈곤가정의 아동이 갖게 되는 욕구불만이나 갈등 방임 등이 문제 행동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고, 반대로 부유한 가정의 아동은 자립심이 부족한 결과로 인한 문제행동이 유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4) 홈스쿨홈스쿨은 재택교육 또는 가정학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홈스쿨은 가족의 사회적 기능을 강화시키면서 개인에게 교육의 기회에 있어서 최대한의 평등을 제공하고 사회문제를 해소하는 교육으로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각광받는 대안교육의 하나이다. 홈스쿨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들이 올바른 종교가치관 정립과 가족 간의 유대감 증폭, 보다 나은 학업 성취도에 대한 기대 등이다.재택교육의 방법은 교과목 한 장을 완전히 마칠 때까지 수업을 계속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일대일 수업방식이라 학습효율도 높다. 교재는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와 참고서, 통신판매용 교재 등 정기적으로 새로운 교재와 교습방법을 사용한다.(5) 평생교육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의 최초 주창자인 렝그랑(Lengrand)은 평생교육의 정의를 “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 생애에 걸친 교육과 개인 및 사회 전체의 교육의 통합”이라고 하면서 평생교육은 “모든 국민들에이 길어지고 여가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이에 삶의 질을 위해서 계속적인 학습과 교육이 요구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재: 조화태 외 공저(2012). 『인간과 교육』. 서울: 방통대 출판문화원.- 기타 ① 이소희 외 공저(2004).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학현사.② 한숭희 저(2014). 『평생교육론』. 학지사.2. 매슬로우(Maslow)의 욕구위계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교육적 시사점을 논하시오.- 목차 -1)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2)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이 주는 교육적 시사점1)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인본주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는 인간의 행동을 원초적 본능이나 욕망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매슬로우는 인간을 자아실현을 위하여 노력하는 존재로 규정하였다.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생존적 경향과 실현적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생존적 경향이란 기본적 욕구나 박탈 동기로 생존을 단순히 생리적 차원에서 유지시키려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 그리고 자존 욕구 등이다. 실현적 욕구란 자신의 잠재 능력, 기능, 재능을 발휘하려는 성장 요구로서 이런 욕구가 만족될 때 심리적으로 성숙하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매슬로우는 이러한 생존적 경향과 실현적 경향이 욕구의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일종의 위계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강도의 순서에 따라 욕구의 위계는 맨 아래 생리적 욕구에서 시작하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 자존 요구, 최상의 위치에 자아실현 욕구 이렇게 5단계로 그 욕구를 삼각형 모양으로 도식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에 대한 서열이 일반적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다섯 가지의 욕구들의 발달 단계별 특징을 살펴보면? 1단계 : 생리적 욕구이다. 인간의 욕구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욕구들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유기체의 생물학적 유지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욕구들이다. 우선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려는 요구이다. 목마를 때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마시려는 욕구이다. 졸리거나 자고 싶다.
- 방송통신대 | 8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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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차 1교시에 학습한 평생교육네트워크에서, 평생교육네트워크가 갖는 중요성과 의미를 설명하고, 학습자가 속한 지약사회의 평생교육네트워크 구축과 유지를 기술하고, 향후 지역사회 평생교육네트워크 구축 방향에 대해 기술하세요.
- 한다. 준형식교육은 개방형 학교교육으로서 준학교 형태의 기관에서 진행하는 비전통적인 차원에서의 공식교육을 칭한다. 여기에는 방송통신대학교나 산업대학, 기술대학, 원격대학, 사이버대학 ... 평생교육경영론주제: 5주차 1교시에 학습한 평생교육네트워크에서, 평생교육네트워크가 갖는 중요성과 의미를 설명하고, 학습자가 속한 지약사회의 평생교육네트워크 구축과 유지를 기술 ... 하고, 향후 지역사회 평생교육네트워크 구축 방향에 대해 기술하세요.목차I. 서론II. 본론1. 평생교육네트워크란1) 평생교육이란2) 평생교육네트워크란2. 부산 진구의 평생교육네트워크3
- 리포트 | 5페이지 | 2,000원 | 등록일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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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다카시의 진정한 학력 독후감
- *책 제목: 사이토 다카시의 진정한 학력*출판사: 지식의 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독후감 제목: 온고지신(溫故知新)나에게 있어 학력이라는 것은 이력서에 쓰는 학력이라는 의미로 국한 ... 되어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방송통신대에 편입하게 된 계기는 영어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타 대학 학부생일 때 끝내 학사 졸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내 스스로 ...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 했지만,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를 위축감은 숨길 수 없다. 훗날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 집에 다니는 6살 아들, 4살 딸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인적 사항의 아빠 학력
- 리포트 | 4페이지 | 1,000원 | 등록일 2021.02.28 | 수정일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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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말과제물 2021년 2학기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 2021학년도 [2]학기 기말 과제물교과목명 : 전통사회와 생활문화학 과 :학 번 :성 명 :연 락 처 :O 과제명 :1. 민장속의 다양한 모습을 읽고 민장 작성하기2. 자신을 조선시대 살았던 인물로 상정하고 공부나 과거를 보는 과정, 관료와 양반으로서의 활동 등을 가상하여 정리하기Ⅰ. 서론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표출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고 쉬워졌다. 인터넷에 자신의 억울함을 올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기자들이 뉴스로 내보내 알려주기도 하고, 최근에는 심지어 청와대 게시판에 올려 해결하려 들기도 한다. 물론 최근에도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현대 문명에서 인터넷이 있었다면 과거 조선시대에는 ‘민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주민이 관부에 올리는 소장으로 자신의 억울함이나 뜻하는 바를 적어 해결을 요청하는 서한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민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 하였다. 물론 어느 시대나 부정 부패나 부조리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민장도 좋은 취지로 시작은 하였으나 관리하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시대 배경에 따라서 제대로 전달이 되거나 해결이 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그 당시 힘 없는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자 했다는 것에 상징적인 의미를 두고 싶다. 한편, 이런 민초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 사회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골간이 되는 교육과 과거제에 대해 알아보고 과거를 통해 등용된 관료와 양반의 삶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민장 - 나는 가진 것 없는 민초이옵니다수령 나으리 저는 충청도 옥천군 갈마실에 살고 있는 이민초라고 하옵니다. 저는 늙으신 부모님과 처자식을 부양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저희 집을 포함하여 전체 다섯 집이 모여 사는 작은 고을이며, 땅은 그리 넓지 않아 농사를 지어 입에 풀칠할 정도입니다. 보릿고개에는 산으로 들로 풀뿌리와 나무 껍질을 구하러 다녀 겨우 연명을 할 수 있을 정도 이옵니다. 저희 고을에 사는 사람들도 저와 별반 다름없이 늙은 부모님과 가족들을 건사하기도 벅찬 사람들입니다. 고을에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것은 저밖에 없어서 이렇게 고을 사람들을 대표하여 수령님께 억울함을 말씀 드리 오니 부디 깊이 헤아려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저희는 집집마다 모두 장정이 1명씩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역을 면제받기 위해 군포로 조 8말씩 바쳤습니다. 저희는 모두 집을 부양해야 되기에 군에 갈 수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군포를 납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군역이 늘어났다며 중첩해서 부과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가 여유가 있다면 나라를 위해서는 2중든 3이든 군포를 납부할 수 있겠으나, 작은 땅덩어리에서 나오는 곡식으로는 중첩해서 떨어지는 군포는 커녕 부모님과 처자식도 먹여 살릴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억울한 저희들의 입장을 널리 이해해 주셔서 올해부터 저희들에게 중복 부과되는 군포를 빼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중첩 제외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민초, 김길동, 박흥수, 최차수, 차돌이 입니다. 저희 5명에게 중복해서 부과되는 군포를 내년부터 제외시켜 주시고, 착오로 올해 중복 납부된 군포를 돌려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꼭 억울함을 풀어 주길 부탁드립니다.관가의 대응 및 조치이민초가 올린 민장을 세심하게 살펴 보았다. 그대의 고을 옥천군 갈마실은 산골마을로 토지가 좁고 산이 많은 지역으로 쌀을 수확하기에는 어려운 고을임을 조사로 알게 되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의 가족 구성과 함께 민장을 올린 사람들의 됨됨이를 알아본 결과, 결코 거짓을 말하거나, 허풍을 떠는 사람들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를 포함한 고을 사람들에게 군포가 중복 부과되고 있음도 확인했노라. 이에 나 수령은 그대 고을에 중복부과 되던 군포를 내년부터 해제시켜 장정 1인당 조8말씩만 바치도록 명하노라, 또한 올해 추가로 부과되었던 군포는 돌아오는 동짓달에 되돌려 주도록 조치할 터이니 그리 알고 있으시게.비록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마을 주민의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민장을 작성해 보았다. 상상해서 민장을 작성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뜻을 조리 있게 적어보기도 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제도가 조선에 있었다는 점을 체득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2. 교육과 과거 및 관료와 양반의 삶-공부나 과거를 보는 과정 ?내 나이 서른 다섯에 문과에 급제하고 보니 그동안 마음 고생하신 부모님과 뒷바라지 해준 아내와 돌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구나. 과거에 급제한 지금 이 나이가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다른 급제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늦은 것 만도 아니다. 올해 가장 어린 급제자는 스물 두 살에 사대부 집안 장손이고, 가장 늦은 급제자는 마흔 둘의 경상도 김진사댁 아들이다. 내가 비록 공부는 잘한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적어서 사람들과 나눠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렇게 적어본다내 비록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밭뙈기에 노비를 건사하고 살 정도는 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께서는 글공부를 즐겨하셔서 어려서부터 늘 책을 옆에 끼고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집안 대소사를 챙기시느라 자식들 공부는 숙부에게 맡기셨다. 숙부께서는 비록 급제하지는 못하셨으나, 1차는 늘 통과하셨는데, 그래서 어려서부터 과거와 관련된 과목들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여섯 살때부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천자문은 글이 어려워서 처음에는 입으로만 외웠는데, 그렇게 수십 수백번을 반복하다 보니 저절로 암기하게 되었다. 천자문을 떼자마자 여덟 살때부터는 소학을 시작했다. 소학은 일상생활의 예의범절과 수양을 위한 격언들을 묶어 놓았는데, 처음에는 문장이 익히기 어려워서 잘 외워지지도 않았지만, 뜻도 모른 채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머리속에 들어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소학을 떼자 마자 효경을 시작하고 문장을 짓는 법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열 다섯살이 되어서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스승을 찾아 집을 나서게 되었다. 부유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부모님께서는 고민도 많이 하셨으나, 집안의 장남인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친한 친구가 있다며 영천 거접으로 갈 것을 추천하셨다. 나는 거기서 본격적으로 과거공부를 시작했다. 글재주가 좋았던 나는 3년마다 치러지는 식년시 문과에 응시하도록 준비하였다. 스물 두살에는 부모님께서 소개해주신 옆 마을 규수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공부하러 거접에 다니고 열중하느라 아내를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그렇게 공부에 집중하여 스물세살부터 과거에 응시하여 3번이나 치렀으니 서른 두살까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동안 과거에 응시하러 한양에 다녀가는데 들어간 돈만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부모님 낯을 뵐 수가 없었다. 낙방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문과 식년시 시험 과목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 두자니 체면이 이만저만 구겨지는 게 아니었다. 부모님께는 마지막 시험이라 말씀드리고 죄송하지만 좋은 스승을 찾아 족집게 과외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실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나는 35살이 되던해 문과에 합격을 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서 뒷간에서 나올 수 없었다. 나는 홍패를 받아들고 유가를 진행했는데, 그리 뿌듯하고 신기할 수 없었다. 고향에 돌아와서 축하연을 베풀고 친구들의 장난을 다 받고 있자니 여간 행복한 게 아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벌써 훌쩍 자라서 효경을 배우고 있었다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4,500원 | 등록일 2022.02.16 | 수정일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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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간과제물 2021년 2학기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 2021학년도 [2]학기 중간 과제물교과목명 : 전통사회와 생활문화학 과 :학 번 :성 명 :연 락 처 :O 과제명 :교재에서 다룬 전통사회의 경제생활, 의식주생활, 공동체생활, 의례생활 등과 관련된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을 모아 정리할 것I.서론18세기 후반 영국의 산업혁명을 필두로 해서 19세기에는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이 산업화를 시작했다. 가까운 일본을 보더라도 19세기 중반부터는 선진국을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6.25가 지나고 박정희 대통령때부터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느리게 시작한 산업화 덕분인지 비교적 근래까지 과거 전통을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급격한 산업화 때문인지 매우 빠른 시간에 그간의 전통문화는 초고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 덕분에 요즘 젊은 친구들보다는 전통문화를 좀 더 경험해 본 듯싶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겪거나 들어본 전통문화에 대해 아는 부분만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II.본론첫번째,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경제생활이다. 조선시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귀족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士農工商의 사회였다. 士農工商! 더 이상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경제활동이 얼마나 위축 되었을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조선후기부터는 5일장이 성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5일장은 5일에 한 번 열리는 것으로 열흘에 두 번 열리기 때문에 그 장이 열리는 날짜(1-6, 2-7, 3-8, 4-9, 0-5)에 따라 이름이 불리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충북 옥천군이란 곳에도 5일장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만 해도 면 단위에서도 장이 열렸는데, 지금은 읍에서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학교 다닐 때 장이서는 날이면 곳곳에서 몰려든 물건파는 상인과 그것을 사려는 주민들이 모여들어 문전성시를 이뤘다.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평소 볼 수 없었던 각양각색의 물건들과 많은 사람들이 흥미로웠다. 칼 갈아주는 아저씨, 마른 고추나 참기름 등을 파는 할머니, 옷 등 잡화류를 가져온 아주머니 등 어느 것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었다두번째, 먹고 입고 사는데 필요한 의식주생활이다. 어려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상복으로 한복을 입으셨다. 1910년대 生이신 두 분은 기성복보다는 한복이 더 편하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는 바지를 입으실 때 늘 발목에 대님을 하셨는데, 사실 멋있다기 보다는 굉장히 번거로워 보였다. 그래서, 늘 왜 저렇게 불편한 한복을 입으실까 하고 어린 마음에 생각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한복이 편하셨을 테고, 또한 지금 우리가 입는 바지를 입으셨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농사철이 되면 시골은 전쟁이다. 그 중에서도 벼농사는 가장 으뜸이다. 벼를 키우는 못자리 작업부터 모내기, 벼 사이에 자라는 풀을 뽑는 피사리, 추수까지 어느 것 하나 사람손이 안가는 것이 없다. 특히 모내기철이 되면 모내기하는 날 인력 조달을 위해 어머니는 품앗이를 한달여간 하셨던 것 같다. 조석 식사를 준비하는 건 당연한 거고 거기에 빨래까지 일은 쌓여만 갔다. 그래도 품앗이라는 교환노동이 있었기에 한철만 고생하면 그런대로 주식을 확보할 수 있었다.우리집은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집이었는데, 다른 집과 비교하면 큰 편이었다. 부엌과 대청마루, 방 두개로 이뤄진 본 채와 비록 붙어있기는 하지만 사랑방과 사랑방에 딸린 마루도 있었다. 창고로 활용했던 마당 건너편 방과 화장실 등 전체적으로 디귿 형태의 집이었다. 어려서 밤에 화장실 가는 게 가장 무섭고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또한 잊지 못 할 추억이었다. 온돌 형태의 집은 과거 기준으로 보면 혁신적인 문화였다. 부엌에서 불을 피워 그 열을 방으로 전달하여 활용하는 것인데, 추운 겨울에는 땔감이 보통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늦가을부터는 나처럼 어린 아이들은 산에서 마른 나뭇잎과 가지를 주워 오고, 어른들은 나무를 베어서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갈라서 장작을 만들어 한쪽에 수북하게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셋째, 마을단위의 공동체 생활에서 서로 돕는 것이 필요한데 그중 계는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습게도 예전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계주가 곗돈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리는 장면’이다.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되지만 누구 하나가 룰을 어겼을 경우 피해가 전체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마련이다. 우리 어머니도 동네에서 계를 하셨다. 매월 몇 일만 일정금액을 계주에게 전달을 하는데 내가 그 심부름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동네에서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상여를 운반하는 일을 해야 되는데, 늘 동네 젊은이들이 모여서 준비하곤 했다. 그때 동네 어려운 일일 있을 때 모여서 했던 단체 행동이 ‘상여계’였던 것이다. 상 등 힘들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일가족만의 손으로는 도저히 감당 안되는 일처리에 ‘계’와 같은 단체 규약은 어쩌면 당연히 있어야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넷째, 유교를 기본으로 한 예법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이 아닌가 싶다. 이로 인해 발달하게 된 의례생활은 최근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성균관대에 와서 배워간다고 한다. 근래 들어 기존의 제사를 모두 모아서 한번에 지내기로 했지만 이전엔 제사가 정말 많았었다. 설과 추석에 지내는 차례는 포함시키지 않아도 말이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늘 ‘음복’이라며 제사 때 지낸 술을 조금이라도 나눠 마시게 했는데, 음복을 하게 되면 겁이 없어진다고 하여 겁이 많던 나는 특히 음복을 거부하지 않았었다. 물론 어려서는 그 양이 입술에 닿는 정도였지만 그 덕분인지 겁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하였다. 차례를 지내면 가장 귀찮았던 게 성묘 가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묘는 집 뒷산에 있어서 한번에 성묘가 가능했지만, 증조 할머니 산소는 앞산에 있고 높이가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앞산 증조할머니를 뵈러 갈 때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빠지려고 했었다. 물론 그 핑계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산에 가는 것이 때로는 놀이처럼 느껴져서 재밌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 방송통신대 | 4페이지 | 4,500원 | 등록일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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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자원의이해2) 강의 1강에서 학습한 세시풍속 중 제석에 대해서 서양에서 방문한 관광객에게 설명한다는
- 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IV. 참고문헌 1. 한국문화자원의이해2(2017), 한국방송통신대출판문화원. 2. 한국의 세시풍속(2013). 장주근저작집간행위원회. ... 과 번영을 기원하는 기회로 여겨졌다. 이는 서양의 전통 기독교 사회에서 조상이나 고인을 기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한국 특유의 조상 숭배 문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 하게 여겼다고 할 수 있다. 2) 제석의 의미와 상징성 제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전통 사회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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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와문화다양성) 거주하는 지역사회의 문화다양성(또는 다문화가족) 현상을 알아보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 문제점
- 교과목명: 사회복지와문화다양성 거주하는 지역사회의 문화다양성(또는 다문화가족) 현상을 알아보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 문제점 및 사회복지 실천적ㆍ정책적 대안을 논하시오(30점).목차Ⅰ. 서론Ⅱ. 본론1. 지역사회의 문화다양성 현상 설명2. 문제점3. 사회복지 실천적, 정책적 대안 제시Ⅲ. 결론마치며Ⅳ. 참고문헌Ⅰ. 서론문화는 사회와 사회의 구성원의 특유한 정신, 물질, 지적, 감성적 특성의 총체를 뜻한다. 문화는 예술과 문학의 형식뿐만 아니라 생활양식과 함께 사는 방식, 가치 체계, 전통과 신념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라는 것은 시공간에 여러가지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각 문화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은 각각의 집단의 정체성 및 독창성을 구현하게 되는 인류의 공동 유산이라 볼 수가 있다. 또한 다양성은 그것의 수단과 기법과는 관련없이 인류의 문화유산이 표현되고 진흥, 전달되는데 사용되는 방법과 예술적 창작, 생산, 보급, 유통, 향유의 방식 등에서 나타날 수가 있는 다양한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것이다. 얼굴 생김새가 각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우리는 각 사람마다 생각하고 있는 것과 그것을 표현하게 되는 방식도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함은 사람과 사람의 차이, 집단 간의 차이, 지역 간의 차이, 나라 간의 차이, 나아가서는 문화권 간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문화다양성이라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과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면서 존중하게 됨으로써 다양함이 공존될 수 있는 풍요로운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정신이자 실천을 뜻하는 것이다. 이 문화 다양성은 언어나 의상, 전통, 사회를 형성하는 방법, 도덕과 종교에 대한 관념, 주변 상호작용 등 사람들 간의 문화적 차이를 포괄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본론에서부터는 우리 지역의 문화다양성을 알아보며 사회복지적인 접근까지를 해보고자 한다.Ⅱ. 본론1. 지역사회의 문화다양성 현상 설명두 아이의 어린이집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던 한 주부가 행정안전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생활공감 주부모니터단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이에 지원을 하여 모니터 요원으로 선발되었고 주부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하다 보니까 사회 전반을 바라보게 되는 안목이 생기게 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다. 급기야 이 주부는 활발한 활동으로 인하여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게 되었으며 2010년에는 어린이집 빈자리 알림 서비스를 제안하여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기자로서 생활 속에 있는 정책이야기를 누리꾼들에게 홍보하게 되었으며 한국정책방송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리포터로 이 주부를 캐스팅하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에 학사 학위만 두 개(한국방송통신대 무역학과, 중어중문학과)를 취득했고, G20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통번역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그리고 그녀는 서울 송파구청에 계약직 공무원으로서 발탁되었다. 평범한 듯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중국계의 결혼이민자인 리홍리씨다.송파구는 지역내에 존재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적인 지원을 위하여 다문화 계약직을 공개 모집하여 리씨를 선발하게 되었다. 리씨는 그 이후로 송파구청의 출산장려다문화팀에 소속되어 매일 4시간씩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장경옥 팀장은 리씨가 업무 수행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같은 부분이나 정책을 홍보하는 부문에서 쌓게 된 경험,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의욕을 높게 평가하게 되어 리홍리 씨를 송파구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을 했다라고 말했다.우리 지역 송파구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다문화가정의 구성원이 선발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인상깊었다. 한국 사회에 와서 적응을 하며 잘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내면서 이런 결과를 이뤄냈을까라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2. 문제점하지만 위와 같은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다문화가정은 현재 취업을 하기에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어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다. 통계청의 2017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게 되면 도내의 다문화가족은 1만4289명으로 집계된 바 있다. 우리의 주변에서 다문화가정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점점 더 다문화 혼인건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다문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통계가 있음에도 여전히 다문화가족들이 취업을 할 수 있는 장벽은 높기만 한것이 현실이다. 언어소통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전문성의 결여로 인하여 농업과 어업, 단순한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게 되는 것이 다반사로 생기며, 양질의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표현할 만큼 힘들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자체에서 취업지원사업 등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 발전 속도가 너무나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결혼이주여성들이 글로벌센터에서 취업교육으로 이미용 기술을 배우는 사례가 있었다 그중 한 참가자는 처음에 일을 하고 싶어서 지인에게 일자리를 소개받고 교육과정들을 이수했다고 하며, 우연한 기회에 중국 선원이 병원에 입원을 해서 통역을 하다가 센터에 취직하게 되었고, 지금은 가정폭력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해서 상담업무도 병행 중이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여기까지 오기는 쉽지 않았다고 하며, 막상 취직을 하려고 해도 또 다른 장벽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인하여 직장 혹은 업장에서 지위를 다르게 부여받는다라며 토로한 바 있다. 또, 이주여성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겨우 최저임금만 보장받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고, 급여 인상폭 등의 처우개선 같은 부분도 홀대받다 보니까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례들만 보더라도 다문화가정에서 취업을 하기까지는 정말 힘들고, 취업을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되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열심히 일을 해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인데 마음처럼 상황이 잘 되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3. 사회복지 실천적, 정책적 대안 제시가장 먼저 실천적인 대안으로는 사회복지단체에서 다문화 인식개선 캠페인을 여는 것이다. 이런저런 캠페인이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만한 임팩트가 큰 캠페인은 아쉽게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생각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을 울릴 수 있는 다문화 인식개선 캠페인을 기획해서 진행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또한, 다음으로 다문화가정의 취업문제 해결을 위하여 전문성을 강화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높은 취업장벽부터 직장에서의 홀대는 이주민여성들의 성장을 막으며 다문화사회를 실질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게 되는 가장 큰 한계가 될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으로 자긍심을 가지며 당당히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전문성을 강화시키는 양질의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2,000원 | 등록일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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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대체 교육4 지역사회교육론 지역에서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데 연계의 필요성과 사례를 제시하고, 연계를 활성화하는 방안
- 방송통신대학교지역사회교육론24년 1학기출석대체과제개설학과교육학과교과목명지역사회교육론개설학년4학습범위교재 : 5 ~ 7장멀티미디어강의 : 6강 ~ 8강지역사회교육론지역에서 주민 ... 기술, 지역성, 공동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문화공동체’를 인식하게끔 도와준다. 따라서, 지역 주민의 삶을 고양하고 해당 지역사회의 문화 발전을 이끄는 ‘시민예술’은 지역과 지역민 ... ? 안산시의 지역문화재생 사례를 중심으로3. 결론4. 출처 및 참고문헌1. 서론21세기 한국 사회는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관습적. 규범적 답습에서 벗어나 각 사회 구성원이 개인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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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 문화교양3 전통사회와생활문화 양반의일생 전통시대 의례생활 서술
- 방송통신기말과제물23/2학기전통사회와생활문화대상학과문화, 관광, 중문(4학년)교과목명전통사회와생활문화대상학년3학년, 4학년평가유형공통형전통사회와생활문화1. 교재 제9장, 제10장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양반의 일생에 대해 서술해주세요.※아래의 내용(①~②)를 반드시 포함하여 작성해 주세요.2. 교재 제13장, 제14장, 제15장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 시대 여러 의례 생활을 서술해주세요.목차1. 교재 제9장, 제10장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양반의 일생에 대해 서술해주세요.2. 교재 제13장, 제14장, 제15장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 시대 여러 의례 생활을 서술해 주세요.참고문헌1. 교재 제9장, 제10장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양반의 일생에 대해 서술해주세요.나는 의성김씨 30대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내가 5세부터 “천자문”, “소학”, “효경”, “사서삼경”을 가르쳤다. 10세에는 “사략”, “사마천의 사기”, “고무진보”, 이백과 두보의 시를 보면서 오언절구와 같은 시를 짓기도 했다. 나는 15세에 의성현의 향교에서 본격적으로 학업을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진사 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하는 것을 바라셨다. 나는 향교에서 사서삼경을 숙독하고 본격적으로 글짓기를 했다. 가끔 아버지와 숙부 앞에 내가 지은 시를 읊곤 했다. 집안 어르신들께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다. 나는 19세의 나이로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성균관에서 매일 경서를 공부하고 열흘에 한 번씩 주어진 주제로 글을 지어 평가받았다. 성균관 생활은 고단했으나 성균관의 교육은 문관배양과 문과 시험준비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나는 성균관 생활에 성실히 임했다. 문과는 시험형식과 시행 사유에 따라 다양하다. 그중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시험인 식년시에 응시해 과거에 합격했다. 성균관에 입학하던 해 식년시가 있었으나 과거에 응시할 준비하지 못해 3년 후인 22세 과거에 응시했다. 하지만 초시에서 낙방하고 23세 때 대비마마 환갑연을 기념한 별시가 있었지만, 별시마저 낙방했다. 나는 다시 식년시를 목표로 사서삼경과 제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식년시는 “회시” 초장의 “사서삼경”, “강경” 시험이 당락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께서 수험교재라 할 수 있는 과거의 시험답안지를 모은 “삼장무선”라는 책과, 좋은 글만 뽑아 만든 발췌본 구해주셨다. 과거공부는 합격을 목표로 하므로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도 전략이다. 나는 일찍 과거에 급제한 한 편이다. 보통 20대에 시작해서 30~40대가 넘어서 급제하는 경우가 많다. 평생 20~30차례씩 과거를 보지만 결국 낙방하고 귀향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성균관 입학 후 6년만인 25세 문과 합격했다.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관서인 승문원에 종 6품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승문원은 문과 급제자 중에서도 문벌이나 자질이 뛰어난 사람들이 배속된다. 하지만 면신례는 혹독했다. 나는 신고식인 면신례를 치르는 동안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빨리 승진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이의 당번을 대신에 하면서 밤낮없이 근무했다. 그러나 나는 오랜 타향살이와 과로로 병을 얻어 귀향하게 되었다. 요양이 끝날 무렵 주상 전하는 나의 노고와 자질을 인정하여 고향의 지방관으로 발령했다. 귀향하여 종6품 현감으로 지방관리도 삶을 시작하였다. 그동안 한양에서 성균관 유생 생활, 관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족들과 별거하였다. 고향의 지방관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아내 “이씨”는 가장 기뻐했다. 지방관으로 근무한 지 몇 달이 안 되어서 흉년들었다. 나는 백성들을 구휼한 공적으로 포상을 받았다. 그리고 몇 해 지나 죄인이 도망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살인 사건에 연루된 죄인으로 방범이 허술한 틈을 타 도주하였다, 나는 급히 인근 지방관에서 파발을 띄어 도망간 죄인을 다시 잡아 드렸다. 내가 의성현에 부임한지 3년째 되던 해 부산현에서 왜구 선박들이 출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부산현에서 도움을 청하면 바로 응하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했다. 간혹 지방관리인 나를 속이려는 관청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사소한 것들을 모두 벌하면, 고을의 민심이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의성형 지방관으로 4년의 관직을 수행하고 다시 가족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 승문원에서 중국과의 외교문서를 관리하는 종4품의 교감(校勘)으로 배속받았다. 주상전하께서 승문원에서의 공로를 인정하여, 다시 승문원 교감으로 발령받을 수 있었다. 나는 35세인 지금도 승문원 관리로서 직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40세가 훌쩍 넘어도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 사찰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 나와 같은 향교 출신 교우는 함께 성균관에 입학했지만, 문과에 들지 못해 진사로 고향에서 식솔들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2. 교재 제13장, 제14장, 제15장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 시대 여러 의례 생활을 서술해주세요.나는 충청도 홍주목의 사대부인 파평 윤씨 27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나는 13세가 되는 해에 관례를 치렀다, 관례는 성인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다. 관례는 삼가례로 치렀는데, 초가에는 망건을 쓰고, 심의를 입었다. 제가 때는 사모를 쓰고, 삼가 때 복두를 썼다. 내가 16세가 되던 해부터 집안 어른들은 나의 혼인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남송(중국)의 유학자인 주자가 12세기에 정리한 혼례를 절차를 사대부에서는 대부분 따랐다. 혼인 과정은 의혼, 납채, 납패, 친영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의혼은 혼례를 논하는 것이며, 납채는 청혼서와 허혼서를 교환하는 것, 납폐는 정혼됨을 폐백으로 확인하는 것이며, 친영은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는 것이다, 이런 절차를 걸쳐 공주목의 사대부의 여인과 17세에 혼인하였다. 집안 어른들은 하루빨리 내가 아들을 얻길 원하셨다. 하지만 혼인하고 여섯 달이 넘었으나 태기는 없었다. 아내는 마곡사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아내는 낮에는 절에 다녀오고, 밤에는 정화수를 떠 놓고 삼신할머니께 치성을 드렸다. 어머니는 평택현에 아들을 많이 낳은 산모에게 쌀과 미역을 가져가 첫국밥을 지어 주고, 산모가 진자리에서 입던 옷을 얻어 오셨다. 이런 치성 덕인지 3개월 후 아내가 임신했다. 어머니는 아내에게 태교를 위해 몸가짐을 정갈하게 하고 음식을 가려 먹을 것을 강조하셨다. 나는 19세 첫째 아들을 얻었다. 나는 대문에 고추, 숯, 짚으로 금줄 직접 만들어 달았다, 출산한 지 세이레가 지나고 친척들은 선물을 가지고 아이를 보기 위해 방문하였다. 나는 종손으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봉제사를 지내고, 접빈객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우리는 종가로써 1년에 45번의 제사를 지냈고, 쌀 300가마는 족히 들었다. 하지만 모든 비용을 종손이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문중에서 관리하는 제전(祭田), 묘전(墓田), 학전(學田) 등을 마련하여 충당했으면 이는 우리 족계를 유지하고 지역의 대성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가 32세가 되던 해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의 곁에서 임종을 지켰다. 영혼을 부르는 예식인 초혼을 하고, 아버지 시신을 시상판 위에 모신 후 앞에 병풍을 치고 문상객을 받았다. 친지와 이웃은 마당에서 불을 피워 놓고 밤샘을 하였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컸지만 나는 문상객을 맞이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다. 초종을 마친 후 습, 소렴, 대렴을 행하고 나서 제대로 상복을 갖춰 입었다. 이 과정은 하루씩 이루어졌으며, 상복을 갖추어 입는 성복은 오복제에 따랐다. 장지와 장일을 정하고 광중을 파고 선주를 만드는 치장을 하고, 아버지의 영구를 사당에 옮겨 고하는 천구도 했다. 상여꾼들은 미리 준비한 술과 유밀과를 먹고 마시며,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며, 상여놀이를 했다. 마치 먼 길 떠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선영에 모신 후 신주를 영여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를 장례를 마친 후에도 초우제, 재우제, 삼우제를 지냈으며, 49재는 예산 수덕사에서 지냈다. 이제 나는 이제 아버지의 대신 문중의 종손으로 시제를 지내야 한다. 시재는 사중시제라 하여 4계절의 중간 달인 음력 2, 5, 8, 11월에 길일을 택해 부모부터 고조부가 제를 지내는 것이다. 시재는 문중은 남자 후손으로만 구성된 조직으로만 지내야 한다. 아버지의 상장례 후 장손의 혼인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나는 관례와 혼례를 했고, 자녀도 출산했다. 이제는 자녀의 관례와 혼례를 준비해야 한다. 아버지의 상장례도 치렀으며, 이제는 기제와 시제도 지내야 한다. 이런 복잡한 의례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의례는 격식과 절차에 맞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우리 가문의 결속을 다지고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이런 의례 때마다 백성들에게 일거리와 먹거리와 볼거리를 마련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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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교육의 역사
- 의 원격교육의 시대별 정리를 보자면 1968년 11월 공포된 법률 제2,045호인 개정 교육법 제114조 2항의 “국립 대학교에 방송통신대학을 둘 수 있다”는 조항에서 출발 ... 한다. 우리나라의 최초 원격교육기관은 방송통신대학으로 경제적인 요인과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고등교육의 기회를 잃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시키는 것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볼 수 ... 있다.1972년 1200명의 정원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많은 발전을 해왔고, 현재 방송통신대학의 교육체계는 방송교육, 자율학습, 출석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사이버대가
- 리포트 | 3페이지 | 2,500원 | 등록일 2021.01.26 | 수정일 20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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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와생활문화) 1. 교재 제1장, 제2장, 제3장 중 한 장을 참조하여, 전통사회의 경제생활 양상에 관한 나의
- 은 압박감을 느낄 때도 많다. 3. 참고문헌 - 송찬섭 외(2016).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 교과목명: 전통사회와생활문화 [과제명] 1. 교재 제1장, 제2장, 제3장 중 한 장을 참조하여, 전통사회의 경제생활 양상에 관한 나의 가상 이야기를 서술해주세요. (20점) 2 ... . 교재 제13장, 제14장, 제15장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 시대 여러 의례 생활을 서술해주세요. (30점) - 목 차 - 1. 전통사회의 경제생활 양상에 관한 나의 가상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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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생각하는 30~40대 주부들에게 적합한 평생교육방법을 제시하고, 그 이유를 기술하시오
- , 어머니교실 등의 다양한 평생교육이 있다. 두 번째, 공민학교나 개방대학 방송통신대학 기술학교 등 준 학교형태의 기관에서 실시하는 평생교육. 세 번째, 사설학원에서 평생교육기관 ... 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평생교육의 기본철학은 전통적인 학교교육에 대한 의문에서 제기되었으며 그 이론적 틀은 생의 주기, 사회변동 그 질적 내용 및 계속 통합교육의 세 가지 측면으로 구성 ... 되어 있다. 평생교육의 취지는 개인의 인격, 신체적 성숙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성장 발달을 전 생애에 통해 계속 시키는 데에 있으며, 이런 평생학습의 기회는 언제 어디서 어떠
- 리포트 | 3페이지 | 2,000원 | 등록일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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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에서 다룬 전통사회의 경제생활, 의식주생활, 공동체생활, 의례생활 등과 관련된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을 모아 정리할 것
- 인구증가와 도시화, 인터넷발달, 산업화 때문에 과거와 비교할 때 현재는 빠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으로 생활에 대해서 인식이 과거 변화가 이뤄진 시간보다 더 빠르게 변화를 하고 있다. 한국의 장례문화는 불교와 유교 중심으로 오랫동안 이뤄졌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경제성장이 급격하게 이뤄져서 변화에 예민하지 않았던 장례문화에 변화가 생겼다. 생활 수준 향상과 환경에 대한 우려로 장례문화 인식이 변화하면서 행위와 법규, 묘지의 형태, 장소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다. 전통적인 사회에 있어서 추모는 묘지를 중심으로 하여서 죽은 자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산 자의 봉사가 주된 인식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추모는 죽은 자를 매개체로 하여서 산 자들의 관계 형성과 발전이라는 인식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 방송통신대 | 4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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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자원의이해1) 1. 안학궁이 당나라 궁궐제도를 모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 교과목명: 한국문화자원의이해1 [과제명] 1. 안학궁이 당나라 궁궐제도를 모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3점) 2. 고려시대 별궁을 모두 나열하시오? (3점) 3. 조선시대 왕의 침전은 기본적으로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가? (3점) 4. 교태전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적 특징은 무엇인가? (3점) 5. 경복궁의 4대 궁성문 이름을 기술하시오. (3점) 6. 공주, 옹주, 군주, 현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3점) 7. 경운궁의 정문 이름은 무엇인가? (3점) 8. 대한제국의 탄생을 상징하는 경운궁의 공간 두 곳은 어디인가? (3점) 9. 서양 건축양식에 전통 목조 건축양식을 가미하여 경운궁에 건설된 근대건축물로 고종이 외국인들과 외국문화를 경험했던 공간은 어디인가? (3점) 10. 고종의 집무실 또는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기도 했던 장소는 어디인가? (3점) 1. 안학궁이 당나라 궁궐제도를 모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3점) 1) 안학궁의 건축 배치 고구려의 안학궁은 5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 중국의 남북조 시대와 당나라 초기의 궁궐 건축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안학궁의 배치 방식은 당나라의 궁궐 배치와 유사한 편이다. 중앙에 중요한 궁전이 자리하고, 그 주위를 다양한 부속 건물이 둘러싼 형태는 당나라의 궁궐 배치 방식과 닮아 있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권력 중심의 궁궐 구조와 유사한 점에서 고구려가 당시 중국 궁궐의 양식을 참고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주요 건축물의 형태 안학궁에서 발견된 주요 건축물들은 기와 지붕, 대형 목조 건축물, 그리고 궁전 내부의 장식적 요소들이 당나라 건축 양식과 흡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기와의 모양과 문양, 건물의 지붕 구조는 당나라의 전통적인 궁궐 양식과 매우 비슷한데, 이는 고구려가 당나라의 건축 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3) 유물 분석 안학궁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 특히 도자기와 장식품에서도 당나라 궁중에서 사용되던 문양이나 양식과 유사한 것들이 발견되었다. 이는 고구려 궁궐이 당나라의 궁궐 문화 및 예술적 특징을 수용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2. 고려시대 별궁을 모두 나열하시오? (3점) 고려시대의 별궁은 왕과 왕족들이 휴식, 행정,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했던 궁궐들을 의미한다. 수도였던 개경 이외에도 지방에 여러 별궁이 있었으며,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한양에 있는 남경 별궁, 팔관회를 거행하던 팔관보궁, 고려 후기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세웠던 강화궁, 왕이 서경을 방문할 때 머무르기 위하여 세웠던 서경 별궁, 그 밖에 수도 개경에서 왕과 왕족들이 머물렀던 이궁 등의 별궁들이 있다. 3. 조선시대 왕의 침전은 기본적으로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가? (3점) 1) 배치 구조 침전은 궁궐 내에서 내전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왕과 왕비가 머무는 사적인 공간으로, 외전(외부 업무와 행사)과는 구분되어 있는 형태였다. 이러한 침전은 일반적으로 후원과 가까운 위치에 배치되어 왕의 휴식과 사적 생활이 자연과 연결되도록 배려되었고 왕비가 머무는 거처에 해당하는 교태전이나 중궁전과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왕과 왕비의 생활 공간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2) 건물의 형태 침전은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 양식을 따랐으며, 겹처마와 팔작지붕을 가진 단아한 형태의 건물로 지어졌다. 평면 구조는 전형적인 "一"자형 또는 "ㅡ"자형을 이루며, 내부는 여러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주요 공간은 왕의 침실과 왕이 가족이나 신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응접실을 포함하고 있었다. 침전의 내부는 비교적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왕의 지위에 맞게 고급 목재와 장식이 사용되었다. 4. 교태전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적 특징은 무엇인가? (3점) 1) 팔작지붕 교태전의 가장 두드러진 건축적 특징 중 하나는 팔작지붕이다. 팔작지붕은 경복궁 내 주요 건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통 지붕 양식으로, 건물의 네 면이 지붕으로 덮여 있고, 위로 올라가는 곡선형 처마가 특징이다. 이 지붕은 건물의 위엄과 품격을 더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왕비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정면 9칸, 측면 4칸의 구조 교태전은 정면 9칸, 측면 4칸의 넓고 장대한 평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전통 건축에서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건축적 배치로서, 교태전이 왕비의 위상을 반영한 중요한 건물임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9칸이라는 넓은 공간은 왕비의 생활 공간뿐 아니라 여러 궁중 의례와 행사가 진행될 수 있는 충분한 규모를 제공하고 있다. 3) 장식적 문양과 세밀한 공예 교태전은 장식적인 문양과 세밀한 공예로도 유명합니다. 내부와 외부의 기둥, 창호, 처마 끝 부분에 화려한 조각과 문양이 새겨져 있어 왕비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특히, 단청으로 장식된 처마와 벽면은 조선의 전통적인 색채 감각을 보여주며, 궁중 건축물의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볼 수 있다. 5. 경복궁의 4대 궁성문 이름을 기술하시오. (3점) 경복궁의 4대 궁성문은 궁궐의 주요 출입문으로, 각각의 문은 경복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문들은 궁궐의 외곽을 둘러싸며 경복궁의 방어와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각각의 성문의 이름과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자 가장 상징적인 문이다. 경복궁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궁궐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하고 있는 문이다. 둘째, 북쪽의 흥례문이 있는데 이는 경복궁의 내부에 있는 문으로서 광화문을 지나 마주하는 문으로서 경복궁의 외전에 들어가는 문이며 중요한 궁궐 의례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셋째, 건춘문이 있는데 경복궁 동쪽의 문으로서 왕이나 신하가 동편으로 나갈 때 주로 사용된 문이다. 넷째, 서쪽의 영추문이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덜 사용된 문이며 주로 왕실의 후궁 또는 내시들이 주로 드나들던 문이라고 할 수 있다. 6. 공주, 옹주, 군주, 현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3점) 1) 공주: 공주는 정비인 왕비가 낳은 왕의 딸을 가리킨다. 공주는 왕비가 낳은 자녀이므로 왕실 내에서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지는 딸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의 적녀로서 높은 위상을 가지며, 일반적으로 부마라 불리는 고위 귀족과 혼인하게 된다. 2) 옹주: 옹주는 후궁이 낳은 왕의 딸을 의미한다. 옹주는 왕의 서녀로, 왕비의 딸인 공주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다. 그럼렇지만 왕의 딸이므로 일반 귀족보다 높은 신분을 가지며, 공주보다는 낮은 지위의 귀족이나 왕족과 혼인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3) 군주: 군주는 대군이나 왕자의 딸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왕의 직계 딸은 아니지만, 왕족의 딸로서 귀족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왕의 손녀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왕의 딸인 공주나 옹주보다는 지위가 낮은 편이다. 4) 현주: 현주는 군주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왕족 에 해당하는 군의 딸에게 주어지는 호칭이다. 현주는 군주의 아래 지위를 가지며, 왕족이나 귀족 사이에서 낮은 신분을 가진 딸에게 붙여졌다. 현주 역시 왕족의 일원으로서 일정한 특권을 누렸으나, 공주나 옹주와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7. 경운궁의 정문 이름은 무엇인가? (3점) 경운궁의 정문은 대한문이다. 대한문은 경운궁의 정문으로, 원래의 이름은 인화문이었으나, 1907년에 순종이 이 문을 대한문으로 개칭하였다. 이는 대한제국의 국호에서 따온 것으로, 대한제국의 위엄과 독립성을 상징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대한문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의 주요 출입구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덕수궁의 정문으로 남아있다. 8. 대한제국의 탄생을 상징하는 경운궁의 공간 두 곳은 어디인가? (3점) 대한제국의 탄생을 상징하는 경운궁의 두 가지 중요한 공간은 즉조당과 중명전이다. 이 두 공간은 대한제국 선포와 관련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첫째, 즉조장의 경우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 거처했던 공간으로, 특히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 장소였다. 1897년 고종은 이곳에서 황제로 즉위하였으며, 이를 통해 조선 왕국에서 대한제국으로 국가의 위상이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조당은 대한제국 출범을 준비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대한제국 황제로서 고종의 위엄과 권위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둘째, 중명전은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이 외교적 업무를 처리하던 중요한 공간이다. 이곳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 선포식을 거행한 장소로, 조선 왕국에서 황제로 즉위한 후 황제국으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중명전은 특히 국제적 외교 사절을 접견하거나 중요한 외교적 결정을 내린 곳으로, 대한제국의 외교적 자주성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9. 서양 건축양식에 전통 목조 건축양식을 가미하여 경운궁에 건설된 근대건축물로 고종이 외국인들과 외국문화를 경험했던 공간은 어디인가? (3점) 정답은 석조전이며 해당 건물은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외교적 만남을 가지거나 외국 사절단을 접견하던 장소였다. 또한, 석조전 내부에서 다양한 외국 문화를 접하며 서구 문물과의 교류를 경험하는 장소였기도 했다. 이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국제적으로 자주적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한 상징적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10. 고종의 집무실 또는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기도 했던 장소는 어디인가? (3점) 정답은 중명전이다. 중명전은 경운궁 내에 있는 서양식 건물로서 고종이 외교사절을 접견하거나 공식 업무를 보는 공간이었다. 1905년에는 이 중명전에서 일본에 의하여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외교권을 상실한 가슴아픈 장소이다. 당시 고종은 이곳에서 근대적 외교 활동을 벌이며, 서구 열강과의 외교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공식업무를 진행하였지만 반대로 국권을 상실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여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김윤미 외(2017). 한국문화자원의 이해1. 한국방송통신대출판문화원.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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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2021 1학기 중간과제물
- ○ 과제유형 : ( 공통 ) 형○ 과 제 명 :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여 를 수강하면서 생각하게 된 바람직한 학습방향 및 학습태도에 대하여 서술하시오.I. 서론나는 이번 학기에 방송대를 편입하여 3번째 방송대 생활을 시작했다. 첫 번째 방송대는 일본학과를 2004년에 입학하여 우여곡절 끝에 2011년에 졸업을 했다. 2016년 2월에 편입하여 작년 2월에 졸업한 두 번째 방송대 생활은 문화교양학과로 입학을 하여 관광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졸업을 했다. 이번 1학기에 역사 관련 학과로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게 되면서 3번째 방송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지난 두 번의 방송대 생활에서 를 한 번도 수강하지 않았었다. 일본과 일본사에 관한 관심으로 일본학과를 졸업했었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한 관심으로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했었으며, 심지어 책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세계의 역사에 대해선 항상 먼저 겁을 먹고 피하려고 해왔다.지난번 문화교양학과를 다니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좋아했던 우리나라 역사,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강의는 관광학과를 복수전공을 하면서 거의 모든 과목을 수강했지만, 왜 그렇게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선 쉽게 눈이 가질 않았다.그런데 이번에 편입을 하고 수강 신청을 하려는데 1학년 과정의 과목을 보고 2016년 문화교양학과를 편입하면서 들었던 첫 번째 강의가 머릿속을 스쳤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서 편입했던 방송대에서 첫 번째로 강의를 들었던 라는 과목. 그때 들었던 내용이 바로 이슬람교의 전통춤인 ‘세마’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수강 신청을 하는 그때 과목에서 다뤘던 사람들이 조금씩 떠올랐다. 과목을 A+를 받은 것으로 보아 참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아! 맞다! 그때 다른 나라의 역사를 참 재미있게 공부했었지, 왜 내가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에 겁을 먹어야 하지? 그때처럼 그냥 편하게 공부하면 되는 건데 말이야.’우리나라 역사를 정말 재미있게 공부하여 책까지 낸 것처럼 다른 나라 역사도 그렇게 편하게 공부를 하면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나는 이번 학기 과목을 수강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학습을 해 왔고, 이런 방법으로 를 학습하면 어떨까 하고 다음과 같이 제시해본다.II. 본론가. 학습 방향나는 다음의 세 가지를 를 학습 방향으로 제시를 해보고자 한다.첫째, 2016년 를 공부할 때처럼 세계의 역사를 인물을 중심으로 공부를 해보고자 한다. 과목을 수강할 때 펠리페 2세를 공부하면서 16세기 스페인 제국을 느꼈었고, 루미를 공부하면서 중세 이슬람문화를 간접적으로 겪었으며, 파농을 공부하면서 처음 알제리전쟁을 접했었다. 인물을 통한 공부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든 스토리를 통해 익힌 역사는 쉽고 재미있게 이해가 되었다. 역사도 스토리라면 인물을 중심으로 배운 스토리는 역사를 더 실감이 나게 느끼게 할 것이다.둘째, 교재와 강의를 통하여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도 중요하지만, 역사 공부는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한 경험상 역사에서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강의와 교재 읽기는 필수적일 것이다. 따라서, 교재도 읽고 강의를 들어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도록 해야겠다.이제까지 방송대를 2번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역사와 관련된 교재들은 버리지 않았다, 이번 학기 를 공부하면서 기존의 교재를 비교하면서 흐름을 파악하면 더 재미있는 공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셋째,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을 지으면서 공부를 하고자 한다. 전술했듯이 나는 우리나라 역사가 좋아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공부하다 보면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역사가 더 쉽게 파악될 때도 있고, 가끔은 세계사적인 위치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을지 동시대의 우리 역사와 다른 나라 역사를 비교해봄으로써 우리 역사를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고, 반대로 우리 역사를 통하여 다른 나라의 역사를 더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나. 학습 태도그러면 세계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어떤 학습 태도를 보여야 할까? 나는 3월 중순인 지금까지 벌써 강의를 11강까지 수강했다. 강의를 수강하면서 내가 느낀 를 공부하기 위한 바른 학습 태도는 비교하기, 관심 두기, 찾아보기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첫 번째, 비교하기는 세계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는 의외로 우리 역사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가까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도 비슷하지만, 중세나 유럽의 역사도 그러한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이 그들의 백성을 위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왕조가 바뀌는 경우라던지 나라의 힘이 세지면 문화적으로 강성한 나라가 되어가는 모습이 그렇다. 세계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와 비교해보며 이런 재미를 찾는다면 세계의 역사가 더욱 쉽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를 학습하는 첫 번째 방법으로 비교하기를 추천한다.지금은 코로나19의 시기라고 한다. 뉴스 대부분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소식을 먼저 쏟아내고 있고, 다른 나라의 소식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우리는 저절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에 관심을 끌게 된다. 즉,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지금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는 ‘거리’들을 만들어 주고 있다. 코로나19를 통하여 중세의 흑사병을 알아보고, 그로 인하여 중세시대의 사회문화상을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지금 미얀마에서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은 마치 우리나라의 광주민주화운동을 생각나게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먼저 겪은 우리나라는 지금 미얀마 국민에게 더욱 응원하게 된다. 따라서, 를 학습하는 두 번째 태도는 바로 세계의 다른 나라에 관해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닐까 한다.
- 방송통신대 | 4페이지 | 3,500원 | 등록일 2021.03.22 | 수정일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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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 의식주생활, 경제생활, 공동체생활, 의례생활 등과 관련된 자신(또는 자신이 살던 고향마을 등)의 경험을 모아 정리할 것. 전통사회와생활문화
- 전통사회와생활문화교재에서 다룬 전통사회의 경제생활, 의식주생활, 공동체생활, 의례생활 등과 관련된 자신(또는 자신이 살던 고향마을 등)의 경험을 모아 정리할 것전통사회와생활문화교재에서 다룬 전통사회의 경제생활, 의식주생활, 공동체생활, 의례생활 등과 관련된 자신(또는 자신이 살던 고향마을 등)의 경험을 모아 정리할 것I. 서론II. 본론1) 현대사회에서 의식의 변화: 폐백을 중심으로2) 폐백 례의 절차 전환: 경험 중심으로3) 현대사회에서 음식에 대한 인식 변화: 폐백 중심으로III. 결론VI. 출처 및 참고문헌I. 서론전통적으로 혼례와 출산은 인생의 큰 관문으로 여겨져 왔다. 출산은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이고 혼인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정으로 여겨지며 남녀가 결합하여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형식과 그 의미에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과거나 지금이나 길일을 골라 혼인을 하며 정해진 복식을 입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행하는 등 행사의 의미가 강했다. 반면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오면서 혼례식의 절차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며 그 패러다임 자체 역시 경제 , 건강 등 다각도를 고려한 관점이 탄생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혼례 의식의 변화를 살펴보고 혼례 시 필요한 음식의 현대화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II. 본론1) 현대사회에서 의식의 변화: 폐백과 감소하는 출산율을 중심으로전통적인 혼례 의식은 서구적인 영향을 받기 이전까지는 유지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전통보다는 신식결혼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본인 세대까지 이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러한 신식결혼까지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서 축소되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신식 결혼에 드는 비용이 청년들에게 큰 비용으로 다가오면서 친한 하객들만 초대해서 간소한 결혼식을 치루는 ‘스몰웨딩’이 인기를 끌고 있다 즉 전통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폐백(幣帛)과 같은 절차는 이미 신식결혼에서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스몰웨딩’에서는 폐백을 아예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이바지 음식의 경우도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지 본인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바지 음식이나 폐백 절차 자체를 모두 폐백 음식이나 폐백 절차 등을 모두 준비하는 업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혼례가 간소화되는 문화와 전통문화를 잊어버리는 것에 따라 새롭게 생긴 직업으로 사료된다. 문헌 조사 결과 혼례가 간소화된 데에는 앞에서 언급한 본인 세대나 청년 세대가 생일상에 대한 의식은 높은 반면(66.8%), 돌상(43.5%), 백일 상(42.4%), 폐백 상(21.4%)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에 기인한 것으로 사료 된다. 하지만 폐백은 단순히 남녀가 결합하는 ‘의례’적인 행위를 넘어서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그 행위를 넘어서 세속적인 것과 구분되고 대부분 원만한 부부생활을 누리는 것을 기원하며 현세대를 넘어서 후세대까지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인 것이다. 실제로 혼례상에 놓이는 청홍조나 청홍실, 대나무, 소나무, 표주박, 밤과 대추, 닭과 기러기 등은 금슬과 다산, 그리고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물품으로 해석 된다. 따라서 결혼 문화를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 세대들의 실정에 맞춰서 축소하되, 폐백과 같은 중요한 전통 문화는 지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출산의 경우는 혼인 자체가 경제적인 문제로 인식이 되면서 감소하게 되면서 앞서 언급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성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은 본인세대에서 없어진지 오래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세대를 이어가며 본인의 씨를 이어가야 한다는 인식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본인의 경험상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도 본인의 아래 세대에서는 경제적 관념이 앞서서 퇴색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경제적 관념을 앞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전통적으로 출산이란 성스러운 의식이며 반드시 겪어야 하는 관문이라는 것을 강요하는 것 보다는 출산을 해서 본인의 세대를 남김으로서 본안의 자취를 남긴다는 의식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출산율 반등에 요 될 것이다.2) 폐백 례의 절차 전환: 경험 중심으로현재 신식 결혼과 함께 수행되는 폐백 례의 경우는 이미 충분히 예식으로 인해 피로가 쌓인 신랑과 신부로 하여금 폐백을 전통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 보다는 단순한 허례허식과 같은 절차로 여기게 한다. 실제로 신랑과 신부는 폐백 례에서 자신이 무엇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 기억하지도 못하고 회사의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예를 시부모님과 부모님께 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는 과거의 폐백 절차가 변질되어 ‘폐백 드리기’라는 이름으로 보편화된 것이다. 하지만 신랑·신부를 고려하여 이러한 ‘폐백 드리기’를 폐지하고 일반적인 신식 결혼이나 ‘스몰웨딩’같은 서구식 결혼 절차를 따로 치를 경우는 결혼식 다음 바로 폐백 절차를 치루는 것 보다는 다른 날짜에 치르는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옛 전통 방식의 폐백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마음가짐이나 상징 자체를 지닐 수 있을 것으로 사료 된다.3) 현대사회에서 음식에 대한 인식 변화: 폐백 음식을 중심으로그림 1 서울 지역의 폐백 상품 모형폐백과 같은 혼인의 문화 자체가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변화했듯이 해당 폐백 음식 문화 역시 시대의 흐름과 사회 풍조의 영향에서의 변화를 피하지 못했다. 또한 최근에는 여성의 사회 참여도 확대, 남성의 육아 확대 등으로 남녀 모두 바쁜 사회 활동 속에서 간편성과 다양성, 경제성과 신속성 등을 고려해 폐백 음식 전문 업체를 이용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음식 전문 업체를 이용하기보다는 폐백 전통음식의 의의를 고찰하고 요즘 세대의 사회·문화에 맞춰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일단 폐백 음식은 전통적으로 시아버지에게는 대추를 드리고 시아버님에게는 육포를 드리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서 형제 친척 모두 화목하고 자식을 잘 키우라는 등의 덕담을 경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들어가야만 한다. 이외에 여자를 상징하는 약과·전과 남자를 상징하는 밤·대추·배·사과 등을 올려야 한다.그러나 지역마다 선호하는 음식이 다르고 데코레이션 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폐백 음식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폐백 상품의 가격이 기본 상품 가짓수 3가지 이하에 가격이 20만원이 넘는 것을 고려하면 경제적 관념이 높은 현재 세대들은 이러한 문화에 빠르게 정착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폐백 음식은 더 이상 퇴행되지 않고 전문점에서 주문한 것 보다 더 의미가 있고 지역적 특색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대화가 성공할 경우에 업체의 경우에도 소비에게 맞춤형으로 커스터마이징을 해 주어서 다양성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상품의 개발이 가능 해 질 것이기 때문에 폐백 문화는 더욱 발달 할 것으로 사료된다.III. 결론
- 방송통신대 | 6페이지 | 3,000원 (50%↓) 1500원 | 등록일 2021.01.22 | 수정일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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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2021-1 학기 중간 과제물,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여 <세계의 역사>를 수강하면서 생각하게 된 바람직한 <세계의 역사> 학습방향 및 학습태도에 대하여 서술하시오.
- 2021학년도 1학기 중간과제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제유형 : ( 공통 ) 형○ 과 제 명 :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여 를 수강하면서 생각하게 된 바람직한 학습방향 및 학습태도에 대하여 서술하시오.I. 서론나는 이번 학기에 방송대를 편입하여 벌써 3번째 방송대 생활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일본학과를 2004년에 입학하여 우여곡절 끝에 2011년에 졸업을 했다. 2016년 2월에 편입하여 작년 2월에 졸업한 두 번째 방송대 생활은 문화교양학과로 입학을 하여 관광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졸업을 했다. 이번 1학기에 역사 관련 학과로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게 되었고, 글쓰기를 배워보고 싶은 욕심에 세 번째 방송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솔직히, 지난 두 번의 방송대 생활에서 를 한 번도 수강하지 않았었다. 일본과 일본사에 관한 관심과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한 관심으로 문화교양학과와 관광학과에서 공부했고, 심지어 우리나라역사에 대하여 책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세계의 역사’,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선 항상 먼저 겁을 먹고 피하려고 해왔다.지난번 문화교양학과를 다니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좋아했던 우리나라 역사,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강의는 관광학과를 복수전공을 하면서 거의 모든 과목을 수강했지만, 왜 그렇게 다른 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과목에 대해선 쉽게 눈이 가질 않았다.그런데 이번에 다시 편입을 하고 수강 신청을 하면서 1학년 과정에 개설되어 있는 과목을 보고 2016년 문화교양학과를 편입하면서 들었던 첫 번째 강의가 머릿속을 스쳤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서 문화교양학과로 편입했던 방송대에서 첫 번째로 강의를 들었던 라는 과목. 그때 들었던 내용이 바로 이슬람교의 전통춤인 ‘세마’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수강 신청을 하는 그때 과목에서 다뤘던 사람들이 조금씩 떠올랐다. 과목을 A+를 받은 것으로 보아 참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아! 맞다! 그때 다른 나라의 역사를 참 재미있게 공부했었지, 왜 내가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에 겁을 먹어야 하지? 그때처럼 그냥 편하게 공부하면 되는 건데 말이야.’우리나라 역사를 정말 재미있게 공부하여 책까지 낸 것처럼 다른 나라 역사도 그렇게 편하게 공부를 하면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이 그때 들었던 것이다. 그때의 그 느낌으로 또, 벌써 대부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느꼈던 과목의 학습 방향과 학습 태도를 적어보려고 한다.II. 본론가. 학습 방향나는 다음의 세 가지를 를 학습 방향으로 제시를 해보고자 한다.첫째, 2016년 를 공부할 때처럼 세계의 역사를 인물을 중심으로 공부를 해보고자 한다. 과목을 수강할 때 펠리페 2세를 공부하면서 16세기 스페인 제국을 느꼈었고, 루미를 공부하면서 중세 이슬람문화를 간접적으로 겪었으며, 파농을 공부하면서 처음 알제리전쟁을 접했었다. 인물을 중심으로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든 스토리를 통해 익힌 역사는 쉽고 재미있게 이해가 되었다. 즉, 역사도 스토리이니 인물을 중심으로 배운 스토리는 역사를 더 실감이 나게 느끼게 할 것이다.둘째, 교재와 강의를 통하여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도 중요하지만, 역사 공부는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한 경험상 역사에서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강의와 교재 읽기는 필수적일 것이다. 더 재미있는 공부를 교재도 읽고 강의를 들어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도록 해야겠다.이제까지 방송대를 2번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역사와 관련된 교재들은 버리지 않았다. 방송대 교재의 가장 큰 특징은 알기 쉽게 쓰여져있다는 것이다. 이번 학기 교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를 교재로 학습하면서 기존에 공부했었던 교재의 내용들과 비교하면서 흐름을 파악하면 더 재미있는 공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셋째,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을 지으면서 공부를 하고자 한다. 전술했듯이 나는 우리나라 역사가 좋아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공부하다 보면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역사가 더 쉽게 파악될 때도 있고, 가끔은 세계사적인 위치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을지 동시대의 우리 역사와 다른 나라 역사를 비교해봄으로써 우리 역사를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고, 반대로 우리 역사를 통하여 다른 나라의 역사를 더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나. 학습 태도그러면 세계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어떤 학습 태도를 보여야 할까? 나는 3월 중순인 지금까지 벌써 강의를 11강까지 수강했다. 강의를 수강하면서 내가 느낀 를 공부하기 위한 바른 학습 태도는 비교하기, 관심두기, 찾아보기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첫 번째로 제시하는 ‘비교하기’는 세계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는 의외로 우리 역사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가까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도 비슷하지만, 중세나 유럽의 역사도 그러한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이 그들의 백성을 위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왕조가 바뀌는 경우라던지 나라의 힘이 세지면 문화적으로 강성한 나라가 되어가는 모습이 그렇다. 세계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와 비교해보며 이런 재미를 찾는다면 세계의 역사가 더욱 쉽게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를 학습하는 첫 번째 방법으로 비교하기를 추천한다.두 번째로는 ‘관심두기’를 제시하고 싶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시기라고 한다. 뉴스 대부분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소식을 먼저 쏟아내고 있고, 다른 나라의 소식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우리는 저절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에 관심을 끌게 된다. 즉,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지금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는 ‘거리’들을 만들어 주고 있다. 코로나19를 통하여 중세의 흑사병을 알아보고, 그로 인하여 중세시대의 사회문화상을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지금 미얀마에서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은 마치 우리나라의 광주민주화운동을 생각나게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먼저 겪은 우리나라는 지금 미얀마 국민에게 더욱 응원하게 된다. 따라서, 를 학습하는 두 번째 태도는 바로 세계의 다른 나라에 관해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닐까 한다.
- 방송통신대 | 4페이지 | 5,800원 | 등록일 2021.04.18 | 수정일 202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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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속 인권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쓰시오. 첫째, 다문화의 개념을 정의한다. 둘째,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인지 설명한다. 셋째, 우리나라에서 다문화 인권에 관련된 문제가 무엇이 있는지 설명하시오. 넷째, 다문화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 방법을 논하시오.
- 에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여야 한다.예를 들어서 각 지자체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 학교에서 운영하는 ‘한국방송통신대 ... 면서 많은 생활양식이 변화되었고 서양문화와 문물을 접하고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그 전통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것이다.1980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에도 산업화를 이루고 새마을 운동 및 ... 을 논하시오.1. 다문화의 개념 및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인가?다문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써 쉽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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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론(출석) ) 우리 대학과 같이 비대면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원격교육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접근가능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온라인 학습은 많은 이들에게
- 마케팅론(출석)우리 대학과 같이 비대면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원격교육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접근가능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온라인 학습은 많은 이들에게 효과적인 교육 방법으로 각광받으며 그 수요 또한 크게 증가하어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시오.1. 원격교육 시장을 세분화하기 위해 적절한 기준을 3개 이상 제시하고, 해당 기준을 적용하여 세분시장을 구분하시오.예)시장세분화 기준: 연령세분시장의 구분: 10대,20대,30대,40대,50대,60대이상2. 위에서 제시한 기준들을 활용하여 원격교육의 세분시장(틀)을 도출하고, 각 세분시장의 특성을 설명하시오. 특히 각 세분시장의 소비자들이 원격교육에 대해 어떠한 욕구를 갖고 있는지를 포함하여 기술하시오.마케팅론(출석)우리 대학과 같이 비대면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원격교육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접근가능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온라인 학습은 많은 이들에게 효과적인 교육 방법으로 각광받으며 그 수요 또한 크게 증가하어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시오.1. 원격교육 시장을 세분화하기 위해 적절한 기준을 3개 이상 제시하고, 해당 기준을 적용하여 세분시장을 구분하시오.예)시장세분화 기준: 연령세분시장의 구분: 10대,20대,30대,40대,50대,60대이상2. 위에서 제시한 기준들을 활용하여 원격교육의 세분시장(틀)을 도출하고, 각 세분시장의 특성을 설명하시오. 특히 각 세분시장의 소비자들이 원격교육에 대해 어떠한 욕구를 갖고 있는지를 포함하여 기술하시오.1. 원격교육 시장을 세분화하기 위해 적절한 기준을 3개 이상 제시하고, 해당 기준을 적용하여 세분시장을 구분하시오.2. 위에서 제시한 기준들을 활용하여 원격교육의 세분시장(틀)을 도출하고, 각 세분시장의 특성을 설명하시오. 특히 각 세분시장의 소비자들이 원격교육에 대해 어떠한 욕구를 갖고 있는지를 포함하여 기술하시오.3. 출처 및 참고문헌1. 원격교육 시장을 세분화하기 위해 적절한 기준을 3개 이상 제시하고, 해당 기준을 적용하여 세분시장을 구분하시오.원격교육은 온라인교육, 이러닝, 사이버교육 등 관련 분야를 포괄하는 대표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수자 및 학습자가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여러 가지 형태의 온라인 기반 매체를 활용하고 학습자료와 결과를 공유하고 상호작용하는 교수와 학습활동을 전개해나가는 교육 방식을 말한다. 원격교육은 온라인과 전자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기업 및 일부의 대학을 중심으로 하여 기업의 재교육 및 평생교육의 차원으로 여러 교육과정을 제공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후에 방송통신대학교, OCW와 MOOCs, 사이버대학교 등을 통하여 정착되었다. 전통적 교육환경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며 여러 교육기관에서 활용되면서 대표적 교육환경으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또한 일반대학에서도 기존의 대면 교육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원격교육을 적용하는 시도들이 활발히 지속되고 있다.세분화란 비슷한 선호 및 취향을 갖고 있는 소비자를 묶어 몇 개 고객집단으로 나누고, 이 가운데에 특정 집단을 골라서 기업의 마케팅 자원 및 노력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의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략이다. 시장세분화를 위해 여러 소비자를 소수 그룹으로 나누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 소비자 나이, 교육수준, 소득수준 등 인구통계학적 특성, 성격, 라이프스타일 등의 심리적 특성, 그리고 소비패턴, 문화, 주거지역 등 여러 소비자 특성 변수를 활용하여 시장세분화를 할 수 있다.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시장세분화 방법 중의 하나가 코호트 분석이다. 코호트는 특정한 경험을 공유하는 소비자 세대를 의미한다. 학자마다 연령대별 분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2016년도 기준으로 대략 50~60대에 해당하는 베이비부머, 그리고 30~40대에 해당하는 X세대와 10~20대에 해당하는 위제너레이션 등이 있다. 원격교육 시장을 세분화하기 위하여 기준이 필요한데, 몇 가지 기준으로 원격교육 시장을 세분화하면 다음과 같다.-시장세분화 기준: 연령-세분시장의 구분: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이상-시장세분화 기준: 소득수준-세분시장의 구분: 저소득층, 중산층, 고소득층-시장세분화 기준: 교육수준-세분시장의 구분: 중학교 졸업,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졸업, 대학원 졸업2. 위에서 제시한 기준들을 활용하여 원격교육의 세분시장(틀)을 도출하고, 각 세분시장의 특성을 설명하시오. 특히 각 세분시장의 소비자들이 원격교육에 대해 어떠한 욕구를 갖고 있는지를 포함하여 기술하시오.시장 세분화는 시장을 공통의 특성을 갖고 있는 다양한 하위 그룹으로 나누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각 그룹의 필요 및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여 이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화장품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을 경우, 제품을 나이대 및 피부 타입에 의하여 다르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하여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것이다.1) 원격교육 시장 세분화: 연령 기준먼저 연령 기준으로 하여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이상이다. 먼저 10대는 상위 학교로의 진학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수요가 있다. 대면으로 교육을 받기 어렵거나 원격을 선호하는 10대들의 성격이기에 학교 교과과정에 대한 교육내용이 필요할 것이다. 20대는 취업이나 취미를 목적으로 하는 수요가 있으므로 취업을 위한 자격증이나 취미 관련 내용의 원격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30대는 결혼과 육아에 대한 교육 수요가 있는 계층으로, 내집 마련이나 출산, 육아 등 관련 내용의 원격교육이 요구된다. 40대는 자녀양육, 재테크 등의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로써 자녀교육이나 투자 관련 내용의 원격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50대는 가장 사회생활이 왕성할 시기이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경제적인 내용의 원격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60대이상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원격교육으로 노후에 할 수 있는 활동에 관한 내용,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인문학 등의 내용이 필요할 것이다.2) 원격교육 시장 세분화: 소득수준 기준
- 방송통신대 | 5페이지 | 3,000원 | 등록일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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