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경제학의 역사적 변천
1.1. 근대 경제학 이전의 변천
1.1.1. 원시공동체
원시공동체는 목축, 농경을 대표하는 정착경제 이전의 인간집단으로, 기본적으로 혈연적 단체였다. 이 집단은 수렵·어로 등의 생산 집단이면서 동시에 소비 집단이었다. 농경 자체를 공동체적으로 공동노력을 해야 할 곳에서는 오래된 공동체가 농경공동체로 바뀌게 되었고, 이런 공동체는 필요한 분업의 거의 전부를 내부에 조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았으며 오랫동안 사회 전체에 공동체적 특징을 심을 수 있었다.
1.1.2. 노예제도
노예제도는 생산노동의 담당자가 노예인 사회제도이다. 한 인격이 다른 노동력을 소유하고 지배·착취하는 제도로서, 인격성이 부인되며 물건으로 간주되었다. 노예제도는 고대사회에서 오리엔트·인도·중국·일본·한국 등에서 존재했으며, 남북아메리카와 식민지 등의 플랜테이션에서도 존재했다.
노예제도는 개인이 다른 개인의 소유물이 되는 체제로, 인격성이 부정되고 노동력만이 이용되었다. 고대 사회로부터 근대까지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었던 이 제도는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경제적 여건상 노예제도가 불가피하게 유지되었으며, 이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경제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1.3. 봉건제도
봉건제도는 영주와 농노로 이루어진 토지소유와 지배 체제를 의미한다. 봉건제도 아래에서 봉신은 주군으로부터 봉토를 받았고, 그 토지를 장원이라는 단위로 경영하였다. 장원에 거주하던 농노들은 영주에게 부역이나 수공업 생산물을 바치는 의무를 지고 있었다.
봉건제도의 경제적 특징은 영주의 토지가 봉신들에게 분할되어 세습되었다는 점이다. 영주는 봉신에게 토지를 제공하는 대신 군사력 제공과 충성을 요구하였다. 이는 토지와 군사력이 결합된 형태의 지배 체제였다.
봉건제도의 붕괴 과정에서 농촌에서는 농노가 부역 대신 화폐지대를 바치게 되면서, 영주 직영지가 임대지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봉건제도의 한 축이었던 장원제도가 붕괴하게 되었고, 농민은 점차 농노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이처럼 봉건제도는 토지 지배 체제와 신분제에 기반을 둔 사회 질서였으며, 그 붕괴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이행하게 되었다.
1.1.4.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상공업을 중시하고 국가의 보호 아래 국산품의 수출을 장려하여 국부의 증대를 꾀하려는 주의로 16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걸쳐서 유럽 여러 나라에 퍼졌던 경제사상이다.
중상주의자들은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장려하였으며, 수입을 제한하고 식민지 경제를 활용하였다. 국내 산업 육성을 위해 중상주의자들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통제하였다.
중상주의의 핵심은 국부의 증대를 위한 무역수지 흑자 달성이었다. 이를 위해 중상주의자들은 상공업을 장려하고 수출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실시하였다. 또한 국가 개입을 통해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자 하였다.
중상주의는 봉건제도 붕괴와 자본주의 발달의 과도기에 등장한 경제사상이었으며, 당시 유럽의 국가들이 경제적 강대국이 되기 위해 추구했던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1.1.5. 중농주의
중농주의는 자연의 통치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중농주의자는 상공업에 편중하고 농업을 돌보지 않았던 프랑스의 중상주의에 반대하고 자연법철학관을 바탕으로 개인적 자유를 존중하며 농업의 생산적 성격을 강조했다.
중농주의자들은 농업이 모든 경제활동의 근본이라고 믿었으며, 농업을 중시하고 보호하여 농업 생산을 증대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을 인정하는 자연법 사상에 기초하여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중농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케네, 투르고, 미라보 등이 있다. 이들은 자연법에 입각한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을 강조하였고, 토지와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지주계급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또한 국가에 의한 경제 간섭을 반대하고 자유경쟁을 옹호하였다.
중농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제한적이나마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결국 중상주의와 더불어 고전파 경제학의 등장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중농주의는 농업의 중요성을 제창하고 개인의 자유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경제사상사에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1.2. 근대 경제학의 변천
1.2.1. 고전경제학 개괄
18세기 말 ~ 19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에서 융성한 경제학의 주류적 흐름인 고전경제학은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을 주요 학자로 한다.
고전파경제학은 영국의 농업혁명·산업혁명에 수반해서 자본주의경제가 성립한다는 역사적 사정을 배경으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학설을 비판하면서 성립하였다. 이후 여러 가지로 전개되면서 경제학의 큰 흐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최초로 산업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에 처음으로 경제 이론을 집대성했던 인물로, 후세의 경제학도들은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의 대표작인 '국부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을 제시하며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였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영국 고전파 경제학의 정점을 이루었으며, 그 이후 경제학의 발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제 사상가이다. 그는 가치론, 지대론, 분배이론 등을 체계화하여 경제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는 인구론을 주장하며 인구증가와 식량생산 간의 불균형을 지적하였다. 그는 기술 진보와 자본 축적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지속되는 이유를 인구의 증가에서 찾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고전주의 경제학을 보완·발전시켰다. 그는 개인적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철학적 사상을 경제학에 도입하였으며, 특히 분배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처럼 고전경제학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경제 체제 발달을 배경으로 성립·전개된 대표적인 경제학의 주류 흐름이었다.
1.2.2. 주요 학자
아담 스미스는 최초로 산업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에 처음으로 경제 이론을 집대성했던 폭 넓은 지적 소유자로 후세의 경제학도들은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는 1723년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국부론』을 발표하며 고전파 경제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꼽힌다. 그의 주요 경제학 이론은 국가개입의 최소화, 자유방임주의, 분업과 생산성의 중요성, 노동가치설 등이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영국 고전파 경제학의 절정을 장식한 경제학자이자, 그 이후 경제학의 발전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제 사상가이다. 그는 1772년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주요 저서로는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가 있다. 그의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비교우위론, 소득분배론, 지대이론 등이 있다.
1.3. 현대 경제학의 변천
1.3.1. 시대적 배경
1.3.1.1. 19세기 서구 경제의 발달
19세기 전반부터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에 의하여 야기된 여러 가지 문제 즉,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계급대립,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해상충 등 여러 가지 위기적 사실의 계기를 보았다. 19세기 중엽부터 약 반세기간 안정기에 들어가서 생산력이 굉장히 팽창하였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산업이 크게 진흥되었고, 자연과학이 진보되어 많은 발명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금융, 상업의 제도들도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그에 따라 봉건적인 잔재가 일소되고 신흥 자본가계급이 지주계급을 완전히 억누르게 되었으며, 문화적 자유주의 및 인도주의가 제창되었다. 이와 같은 19세기 서구 경제의 발달은 근대 경제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3.1.2.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 대두
19세기 초부터 고전학파 경제학은 독일의 역사학파와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경제학파로부터 동시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학파는 후진자본주의의 입장에서 경제이론의 역사적 상대성을 강조하였다. 즉, 한 나라의 경제상황은 그 나라의 총체적인 역사적 경험의 결과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고전학파 경제학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비판하였다.
한편, 칼 마르크스에 의해 집대성된 사회주의학파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여 자본주의 붕괴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계급 간 갈등과 이로 인한 모순을 분석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내재적 한계를 지적하였다. 이를 통해 고전학파 경제학의 자본주의 옹호 이론을 비판하였다.
이처럼 역사학파와 사회주의학파의 비판은 고전학파 경제학의 보편성과 객관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들은 고전학파 경제학이 특정 시대와 체제에 제한된 경제이론이라고 주장하며, 경제현상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중시하는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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