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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교 역사의 배경
1.1. 유대교적 배경
기독교는 유대교의 뿌리에서 시작했다. 유대교적 배경은 기독교가 탄생하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먼저, 구약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자 뿌리이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과 계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과 메시야 사상을 다루며, 구원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의 약속을 성취하신 분으로, 기독교는 구약성경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둘째, 유대교의 역사와 신학은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같은 구약의 인물들은 기독교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 등 유대교의 주요 사건들은 기독교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 또한 유대교의 신정, 왕정, 성전 제도 등은 기독교에서 변용되어 나타났다.
셋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의 구성원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신약성경 또한 유대인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을 계승하였으며, 기독교 신학의 발전에 유대교적 토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넷째, 유대인들의 유일신 신앙과 강한 도덕성은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대교는 유일신 신앙을 통해 우상숭배를 배격하였고, 십계명을 통해 윤리 규범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유대교의 특징들은 기독교 신학의 토대가 되었다.
종합하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경전, 역사, 신학, 신앙, 도덕 등의 토양 위에서 탄생하고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는 유대교적 배경 없이는 성립될 수 없었던 것이다.
1.2. 헬라적 배경
헬라적 배경은 기독교 역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는 헬라 세계의 문화적, 교육적, 철학적 토양 위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먼저, 헬라의 제국 성장은 기독교 전파에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을 통해 헬라나 그리스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소위 "헬레니즘" 문화가 형성되었다. 특히 교통 및 통신망이 발달하고 공용어인 헬라어가 보급되면서 기독교 복음 전파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늦어도 1세기 말에는 기독교가 전 지중해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또한 헬라 철학은 기독교 신학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알렉산드리아 신학 전통은 영혼과 육체에 대한 이원론적 사고,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안디옥 신학 전통은 보다 실천적이고 거시적인 특징을 지녔다. 이처럼 헬라 철학은 기독교 신학의 발전에 핵심적인 토대가 되었다.
더불어 헬라 종교와 문화도 기독교 형성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헬라 종교의 다신교적 특성, 신비 종교의 영향 등은 기독교 예배와 의식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헬라 문화의 예술, 교육, 제도 등이 기독교 문화 형성에 반영되었다. 특히 도시 중심의 헬라 문화는 기독교 공동체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광범위한 헬라 문화권의 형성은 기독교 전파와 발전에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헬라적 토양 위에서 기독교는 보편적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1.3. 로마제국의 배경
로마제국의 배경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로마제국은 외형적인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제공하였고, 통일된 언어와 교통망을 통해 복음 전도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변화하면서 평화를 구가하던 시기가 있었다.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하여 로마 제국 시대를 열었다. 그는 제1차 삼두정치로 등장한 인물로, 손자 아우구스투스와 함께 로마를 안정적으로 통치하였다. 이후 제2차 삼두정치를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옥타비아누스가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엄칭호를 받으며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군림하게 되자, 로마는 약 200년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를 "로마의 평화"라고 일컫는다. 로마는 완벽한 교통망과 통일된 법률, 공용어인 라틴어를 구축하였으며, 이는 기독교 전파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였다.
로마제국의 다신교 및 황제숭배는 기독교와 충돌하게 되었다. 황제들은 자신들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도록 강요하였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유일신을 믿는 것과 양립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지속적인 박해를 받게 되었다. 특히 네로 황제 때 있었던 대화재 사건으로 기독교인들이 희생양이 되면서 극심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로마제국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기독교 역사의 배경이 되었다. 통일된 정치 체제와 언어, 교통망 등은 복음 전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지만, 다신교와 황제숭배는 기독교와의 충돌을 야기하여 박해의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로마제국의 배경 속에서 초대교회는 성장하고 발전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2. 초대교회의 형성과 발전
2.1. 1세기 기독교 세계의 역사
우리가 "기독교"라고 부르는 세계는 로마적이고, 헬라적이며, 유대적인 여건에서 출현하고 발전했다. 로마 세계는 외형적 토양으로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제공하였으며, 교통망이 발달되고, 언어가 통일되어 복음 전도를 가능하게 하였다. 로마 세계의 정치적인 통일, 교통의 발달, 언어의 통일, 도덕적인 요인, 종교 및 사회적인 요인이 당시의 기독교를 널리 확산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요인들이다. 또한 헬라 세계는 문화적 교육적 및 철학적 배경을 제공하였고, 유대 세계는 급박한 유대적 종교 배경을 형성한 기반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났다. 성령 충만을 받은 이들을 통해 복음은 불길처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확산되었다. 그 후, 처음 30년 동안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네로 황제 전까지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어느 정도 로마 제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처음 시작된 것은 유대교로부터였다. 예를 들면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건이 있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었다. 더불어 네로 황제는 로마에 발생한 대화재 사건의 원인을 황제 숭배를 거부한 기독교인에게 돌리고 기독교를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공식적인 대박해였으며, 역사에 1차 박해기간(약 A.D. 64-96)의 시작으로 알려졌다. 그 후로 도미티안, 트라얀 황제의 박해가 이어졌다. 주후 64년부터 시작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는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계속되었다.
1세기 말엽부터 속사도들이라 알려진 이들이 수많은 종교적 저술을 남겼다. 속사도들은 초기 기독교 저자들로서 사도시대 이후 이어진 속사도 시대라고 불리는 1세기 말부터 2세기까지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1세기는 로마의 감독 클레멘트와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대표적이다.
2.2. 2세기 기독교 세계의 역사
2세기 기독교 세계의 역사는 크게 다음과 같다""
2세기 전반은 속사도 시대, 2세기 중엽은 변증가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박해(A.D 98-249) 기간 동안 박해가 지역에 따라 국부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폴리갑과 저스틴 등이 2세기의 대표적인 순교자이다""
2세기에 들어서 당대의 이단들과 정부 지도자들 및 지식인들에게서 기독교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