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테드 창은 이처럼 SF 속 인공지능 로봇과 현실 속 기술의 발전 양상에 괴리를 느꼈다.[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그가 느낀 괴리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인공지능의 다른 형태를 제시한 작품이다. 전직 동물원 조련사인 애나는 신생 게임 회사인 블루감마사에 취직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경기는 인류에게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경이와 두려움을 심어준 사건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다. 애플의 시리, 페이스북의 딥페이스,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 그리고 최근 가장 문제가 되는 AI 일러스트, 딥페이크 등 멀게만 느껴졌던 AI 기술은 우리의 삶에 아주 밀접하게 나타나며 머지않아 인간의 생계마저 위협하게 될 것임은 이제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미래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원제는 <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이다. 제목만 보면 컴퓨터 기술 서적인가 싶지만 다행히(?) 소설이다. 객체로 번역되는 오브젝트(Object)는 IT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로써 속성과 행동 양식을 지닌 독립적인 단위 개체를 뜻한다. 소설에는 호랑이, 판다, 원숭이 등 동물과 닮았거나 상상 가능한 외계인 외형의 다양한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들을 디지털과 지능의 합성어인 디지언트(Digient, ‘디지털 존재’라고 번역 됨)라고 부르고 각 디지언트는 성격이나 기질과 같은 속성, 찡그리거나 웃고 걸어 다니는 등의 행동 양식 등 객체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특징을 갖는다. 즉, 제목의 ‘소프트웨어 객체’는 책에 등장하는 소프트웨어 인공지능들을 가르킨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언젠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장면들도 많고 한때 화두가 되었던 메타버스와 급격히 발전 중인 AI는 이 소설의 프리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며 인공적인 생명의 탄생과 누군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윤리적인 문제와 상황은 각자의 입장에서 짚어보고 고민해보는 시간도 갖도록 만드는 것 같다.
I. 들어가며
가끔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게임을 하곤 한다. 캐릭터를 만들고 사냥을 다녀 경험치를 쌓고 캐릭터의 레벨을 올린다. 캐릭터가 성장할 때마다 마치 내가 성장하는 것 같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내 몸이나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무엇인가에게 애정을 느끼는 일은 게임 캐릭터 이전에도 있어 왔다. 어렸을 때 많은 종류의 생물을 길러 보았다. 강아지, 고양이, 열대어 같은 집에서 쉽게 기를 수 있는 애완동물 말이다. 어린 나는 애완동물에게 많은 애정을 주었고, 이들은 내가 애정을 준만큼 나의 애정을 성장시켜 주었다. 어쩌면 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에 애정을 쏟은 것은 그 연장선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II. 테드 창과 단편집 「숨」
이 중편은 SF 소설가 테드 창의 두 번째 중단편집인 「숨」에 실린 유일한 중편 소설이다. 천재 SF 소설가라고 불리는 그가 17년 만에 펴낸..
<중 략>
IV. 하드웨어 객체를 향한 애정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강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만은 현실 세계 속 어느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그를 사랑한다. 여기서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 배우의 이미지다. 만약 그를 현실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실체로서의 그로부터 스크린 속 이미지만큼이나 강렬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지보다도 실체를 더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