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병조판서 박습, 參議 李慤, 正郞 金自溫·李安柔·梁汝恭, 佐郞 宋乙開·李叔福을 의금부에 가두어 심문케하였다. 이후 태종은 박습과 강상인은 原從功臣이라고 면죄하여 강상인은 고향 ... 하는데 앞장서는 등 朝鮮王朝 개창에 큰 貢獻을 하였지만, 太祖妃 康氏와 鄭道傳·南誾 등의 배척으로 개국 후의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후 康妃는 태조 5년에 死去하고, 태조는 王
參議)를 거쳐 62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 그 후 예조참판·홍문관제학·춘추관동지사(春秋館同知事)를 역임하고, 69년 충청도수군절도사를 거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에 올랐다. 이어 ... 었다. 그러므로 세조조에 양성지(梁誠之)가 송나라 고사(故事)에 의하여 열성(列聖)의 어제를 편찬하기 위하여 규장각을 설치하고 또 이것을 봉안하기 위하여 비서각(秘書閣)을 설치 ... 閣志를 편찬하여 정조에게 올렸다. 규장각지는 1784년 6월에 최종본이 완성되어 임인자로 간행 배포되었다. 서명응은 跋文을 작성했는데, 大學 治國傳에 나오는 孝,悌,慈를 주제로 하
게 분노하였다. 태종은 병조판서 박습, 參議 李慤, 正郞 金自溫·李安柔·梁汝恭, 佐郞 宋乙開·李叔福을 의금부에 가두어 심문케하였다. 이후 태종은 박습과 강상인은 原從功臣이라고 면죄 ... 朝鮮王朝 개창에 큰 貢獻을 하였지만, 太祖妃 康氏와 鄭道傳·南誾 등의 배척으로 개국 후의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후 康妃는 태조 5년에 死去하고, 태조는 王 7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