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和가 일곱 살 때 별세했다. 모친 金愼子는 인자하고 후덕한 성정으로 당시 대구의 여류 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또한 그는 청상의 고절을 노후까지 그대로 지키며 아들들을 교육하는데 ... 기미 독립운동 다시 대구에서 계성 학교 학생들을 동원,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선전문을 스스로 만들어 등사하는 등 시위 행사에 앞장섰으나 사전에 주요 인물들이 검거되자 서울로 탈출 ... 화는 1936년 중국으로 형 李相定을 만나고 돌아왔다가 간첩 혐의로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 나온 후, 대구에서 교육 문화사업에 주력하며 교남 학교의 무료 강사가 되었다.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