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없는 쌍구가묵본이었던 듯하다. 이를 통하여 1880년대 중반에 북경의 금석학자들이 능비의 존재를 알게 되자, 이들은 양질의 탁본을 제작 구입하기 위하여, 전문적 탁공인 이운종 ... 는 아니라 쌍구가묵본에 가깝다. 일본 참모본부에서는 이 비문을 육군교관 횡정충직을 비롯한 몇 명의 학자들에게 위촉하여 비밀리에 해독 작업을 시켰으며, 이들은 5년간의 연구 끝 ... , 1880년 무렵에 능비가 세상 사람들에게 재발견되었다. 1882년에는 전면의 이끼를 제거하고 첫 탁본이 만들어졌으나, 이는 정식 탁본이 아니라 비면의 상태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볼
기 시작했고 획이 분명하지 않은 글자에도 석회를 칠해 선명하게 만들었으나 그 과정에서 석회를 메워넣을 때 그 사람이 쌍구가묵본을 참고하였고 자연히 몇몇 글자의 자획이 바뀌었다고 주장 ... 었다. 역사비평사는 고등학교때부터 역사비평이라는 잡지를 통해 알던 출판사였고 그 역사비평을 너무 흥미롭게 읽었던 나였기에 엄청난 기대를 갖고 보게 하였다. 난 지금까지 고대사 하 ... 를 다루고 있었다. 그중 눈길을 끌었던 것이 바로 덕천 승리산 사람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나는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생긴 모습은 다 똑같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또 신석기
을 해독할 수 있는 학자가 아니어서 석회를 메워넣을 때 쌍구가묵본(?)을 참고. 따라서 자연히 몇몇 글자의 자획이 바뀌어버림.(초천부의 후손과 현지인의 진술에 근거)③ 『송서 ... (369)조에 보면, 아라타와케(荒田別)·가가와케(鹿我別) 등을 보내 백제 장수들과 함께 신라를 치고, 이어서 가야지역의 일곱 나라를 평정하였다는 기사가 나옴. 여기서부터 고대 일본 ... 경 광개토왕릉비가 있는 통구로 들어감. 우연히 능비를 본 그는 이를 직접 해독한 뒤, 그 이용가치가 큰 것을 알고는 현지인을 조수로 고용하여 탁본을 만듬. 이때 그는 일본에 유리하도록 신묘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