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에서도 불교계의 폐단은 상당히 심각한 편이었다. 많은 사원이 비대화되어 사원 소유의 토지와 노비가 늘어남으로써 국가의 재정 기반이 위축되었다. 또 승정 운영이 문란해지 ... 면서 군소 종파가 난립하고 종파간의 분쟁이 치열해졌다. 그런가하면 사원은 각종 편법으로 소유지를 넓혀갔고 이러한 사원소유토지의 확대는 종파간의 사원 쟁탈전을 격화시켰으며, 사원은 이러 ... 에 현세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현실에 집착해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도전은 유교에서는 마음에 모든 이치가 들어있다. 고 하고, 마음과 이치
에 이르는 기간동안 왕권이 약해짐과 동시에 집현전출신의 관료들이 재상화되어 권력이 집중되자 비집현전 관료들의 불만이 상대적으로 강해졌고 이들은 유력왕족 수양·안평대군을 중심으로 세력 ... 의 난이 태종의 정치적 야심과 정도전의 사병혁파에 불만을 품은 개국공신들의 불만이 촉발시킨 것이기는 하지만, 도평의사사체제에 따른 사대부들의 불만 역시 난의 원인중의 하나였으며 태종 ... 었職階制는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등장하게 된다. 즉 왕의 정부운영에 상직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제도로써 등장하게 된 것이다.육조직계제는 왕이 직접 육조
을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 세종대왕이 직접 홀로 백성들이 글자를 모르는 것을 어엿비 여겨 1443년 12월 직접 언문 28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훈민정음이라 한다. 훈민정음을 만든 ... 후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 상소가 이어졌는데 그 이유는 세종의 독단적인 행동 때문이었다. 제상에서부터 신하까지 모든 신료 들과의 상의 후 이를 공표 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 한데 ... 면 신 숙주는 한글서전 편찬에만 참여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후 젊은 집현전 학자들이 그 한글을 가지고 서적을 편찬한 것이다. 세종대왕은 문화적 업적
)에 이르러 소위 ‘제 1차 왕자의 난’을 주도하게 된다. ‘제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정도전이 죽고 이방과를 정종으로 세워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방간과 이방원의 세자 ... 한 틈을 노린 수양대군의 왕위찬탈행위였다. 야심을 가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의 준비가 완료되자, 단종의 측근이었던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한 후 안평대군까지 제거해 권력을 탈취 ... 다. 안정적인 정치운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즉위한 직후부터 재위 말년까지 난언(亂言)사건이 끊이지 않았으며, ‘사육신’ 관련 역모 음모가 터져 나왔다. 만일 세조가 적장자라는 명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