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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江陵地方 程夫子 影幀과 祠·院의 事體 論議 (A Study on Jung Buja's Portrait and the Discussion of Suitable Dignity about the Sadang・Seowon in Gangneung Province of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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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27 최종저작일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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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江陵地方 程夫子 影幀과 祠·院의 事體 論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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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사)율곡학회
    · 수록지 정보 : 율곡학연구 / 29권 / 255 ~ 280페이지
    · 저자명 : 이규대

    초록

    이 논문은 17세기 朱子 중심의 학문적 성향이 지방사회에서 인물의 논평과 祠·院의 事體 논의에서 작동되는 양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강릉지방 士林의 黨色은 西人이 주류였고, 老·少論으로 분화되는 시기에 노론으로 경도되었다. 여기에는 이 지방 사림들의 栗谷 李珥·尤庵 宋時烈과 交遊가 기반이 되었다. 우암은 1679년(숙종 5) 流配 중에 강릉을 경유하였다. 이 무렵 그는 강릉지방에 소장된 程顥·程頤 즉 程夫子의 影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 영정은 漁村 沈彦光이 구득하였다. 그는 1537년(중종 22) 館伴使로서 사신 龔用卿과 吳希孟으로부터 영정을 구하였다. 그는 末年에 파직되어 귀향하였고, 영정은 沈氏 一門에 소장되었다.
    우암의 영정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학문에 대한 자부심의 소치였다. 朱子學의 道統을 정립하였던 그는 정부자 영정을 취득한 사실과 아울러 이후 140여 년 동안 봉안해 온 심씨 일문의 행적을 극찬하였다. 특히 영정을 취득한 어촌에 대해서는『近思錄』을 중시했던 己卯 士林의 학행을 계승하는 인물로 평가하였다. 이것은 朱子道統論에 입각한 의미 부여였다.
    이를 계기로 一門에서는 어촌의 伸寃과 文集 발간을 모색하였다. 이 작업은 우암이 관직에 복귀하는 1680년(숙종 6년)에 본격화 되었다. 일문에서는 5년 동안 3차례의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己卯 士類를 신원하지 못한 것은 典範의 흠”이라는 우암의 견해에 힘입어 어촌은 1684년(숙종 10)에 신원되었다. 이어서 일문에서는 尤庵·朴世采·李敏敍 등 華陽門人들에게 題號·序文·跋文 등을 부촉하여 어촌의 문집을 발간하게 된다.
    여기에 우암의 朱子道統論이 작동되며, 이를 추동력으로 서인세력과 심씨 일문 간에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影堂 건립이 논의 되었고, 그 논의의 핵심은 事體 문제였다. 사체 논의 결과에서 영당은 栗谷의 ‘朱子祠’를 본받아서 심씨 일문이 주체가 되는 家塾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우암을 비롯한 화양문인들은 記文과 “歷武夷登雲谷”의 扁額과 “養蒙” “養正” “養秀”의 堂額을 영당 건립의 당위성을 지원하였다. 이로서 영당은 우암의 事業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숙으로 운영된 지 14년 만에 우암과 어촌의 追配가 논의되었다. 논의의 핵심은 역시 事體 문제였다. 화양문인들은 講學 藏修의 기능과 一鄕의 公論에 의거한 配享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書院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영당의 書院化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체 논의는 그 운영 주체와 재정 문제를 함축하는 것이었고, 학술성의 제고와 일향의 공론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 영당 운영의 중심기구로 齋會와 서원의 의례로서 焚香禮를 비롯한 規約이 마련되었고, 이후 우암과 어촌을 배향하여 영당은 ‘河南書院’으로 발족하였다. 다만 門中書院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영어초록

    This paper seeks to understand Juja center of academic inclinations aspect that work at the local community in the 17th century. Seoin was the mainstream of a factional tendency of Gangneung province Sarim. Seoin leant towards Noron in the period divided by Noron and Soron.
    In 1679(Sukjong 5th), Uam was via Gangneung in exile. By this time, Uam showed interest in Jungho and Jungsin that is Jung buja's portrait. Eochon Sim eon-gwang got the portrait. In 1537(Jungjong 22th), He took the portraits from the envoys, Gong Yong-gyeong and Oh Hui-maeng, in the character of the Gwanbavsa. He has been dismissed and was returning home in his later years. the portrait is housed in the Sim's sept.
    It was because of pride for the study that Uam are interested in for portraits. After obtaining the portrait he who was established a spiritual system Jujahak was praised to the fact that portrait was enshrined during the whole 140 years. This fact has been evaluated as a succession of Kimuo sahwa's learning and virtue. It was a meaning that was grounded in Jujadotong theory.
    With this as a momentum sept was sought fishing village of redress a grievance and an anthology. This work began in earnest in 1680(Sukjong 6th) that Uam is restored. Uam was raised three times of petition for 5 years. And chagrin of the fishing village has been resolved on the strength of Uam's view, "It is the fault of the discipline that did not solve the chagrin of Kimuo classical scholars." Subsequently, sept was requested to Hwayang disciple that anthology's title, foreword, epilogue, etc. As a result, the publication it.
    Jujadotong theory of the Uam has been applied to this work. As the driving force in accordance with Jujadotong theory, the network was formed between Seoin forces and Sim' sept. Under such background, the Sadang construction was discussed. Discussion of the core was Matter of the dignity work. Therefore, the Sadang has been imitating 'the Juja shrine'. the Sadang was defined as a Gasuk that was the subject Sim's sept. Hwayang disciple, including Uam were supporting a dossier and a framed picture. For this reason, the portrait hall is also be evaluated to business of Uam.
    First time in 14 years from being operated by Gasuk, A additional enshrining of Uam and Eochon was cross lips. Discussion of the core was Matter of the dignity work. Hwayang disciple emphasized function of Ganghak Jangsu and Baehyang based on public opinion. This is to direct the identity of the seowon and means a change in the seowon of the portrait hall. This discussion was implied the central operating body and financial problems. In addition, discussed was Promotion of academic and was oriented to public opinion.
    At this time, Jeahoe is provided as the central mechanism of the Sadang. Also, Bunhangye and bylaw was established as a rite of seowon. Uam and Eochon was enshrined in the Sadang. The Sadang was launched as Hanam-seowon. However, Hanam-seowon has limitations that Hanam-seowon did away with the nature of the Munjung-seowon.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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